나는 어머니의 병실 앞에 섰다. 문을 열기 두렵다. 손이 떨리며 호흡이 가파르다. 나는, 과거에게서 도망치겠어. 몸을 빙글 돌려 병원을 빠져나와 근처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동자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고여 세상이 흐릿하고 묽게 보인다. 그리고 눈을 통해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곳은 비가 내리고 있다. 하나는 과거에서 도망치려는 사람을 위해 흘렸고 다른 한가지는 과거에서 도망친 자가 흘리는 비였다.


폭포보다 더욱 강하게 내려 꽂는 물줄기에 생각이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하으 양손은 얼굴에 밀착, 거기서 우우우 하며 소리를 내본다. 손바닥에 밀려오는 진동과 다시 귀로 돌아오는 소리는 생각을 정리해주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서 병원에 도착했지만 막상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게 한참을 얼굴을 가리며 비를 맞았다. 이제는 정말 쓸쓸하고 추워서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이런 사람을 건드리다니 괴짜 중에 괴짜겠거니 하며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새벽에 보았던 소녀가 서있었다. 지금 내 눈에는 소녀가 아닌 과거에서 나를 쫓아온 사신 같았다. 나는 이제 내 명은 끝이구나 하며 마음을 다짐했지만 육체는 그걸 거절한다. 소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의자에서 튀어나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빠르게 낚아 챈 손목에 내 도주는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싶어 소녀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나를 붙잡는 거야?”


오빠랑 함께 하면 잊힌 기억을 찾을 거 같거든요.”


소녀의 악력이 조금 느슨해지자 손목을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리 꼽으며 벗어났다. 그러자 왼쪽 손목을 붙잡으며 계속 말을 거는 소녀는 포기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놔.”


싫어요, 당신이 이야기를 하겠다 하기 전까지는 안 놓아요.”


포기할 마음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 난 저 소녀와 함께할 생각이 없다. 언제든 내 과거를 열어버릴 듯한 시한폭탄 같은 존재는 너무나 싫고 짜증나서 말이지. 그때 소녀가 손목을 너무나 강하게 꽈악 쥐어 버린다. 이건 여리여리한 여자의 악력이 아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프니까 그 손목부터 당장 놓아. 잠시 이야기는 해줄테니까.”


그러자 소녀는 손목을 놓아버리고 내 옆에 서서는 나를 풀썩 앉혀버린다. 내가 바라본 소녀의 새하얀 모습은 전혀 눅눅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까. 소녀의 모습을 보자 나는 확신이 들었다. 저 녀석은 평범한 무언가는 아니다. 찌릿하게 올라오는 척추의 전기신호가 몸 곳곳으로 퍼지며 모든 오감이 말한다. 저 여자는 분명 너의 인생을 바꿀 거야! 나도 알고있다. 분명 나를 파멸로 이끌어갈 선봉대의 대장임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서 피하려 하지만 세계는 그걸 원하지 않는가 보다. 깊게 올라오는 한숨과 함께 말의 서두를 때었다.


그래, 이야기라도 해보자.”


소녀는 말에서 느껴지는 작은 떨림을 캐치하며 답했다.


추워요? 말을 하면서 조금 떠시는데.”


“-----”


나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직도 저 소녀가 두렵다. 함께 있기만 해도 내 과거를 샅샅이 파헤쳐서 도굴하고 그것을 관찰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물론 내 과거가 그리 좋지만은 않아서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이겠지. 오죽하면 본인마저 잊어버리려 하는데 말이다.


서론은 집어치우고 말할게요. 저랑 함께 다니면서 제 기억을 찾아주세요.”


당치 않은 소리에 자리를 벗어나며 말했다. 원래 저런 말은 서론을 길게 말하며 설명해야 납득이 되는데 저 소녀는 그걸 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대한 내 행동은 자리를 뜨는 것 외에는 없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와 함께 다니는 게 어려워서 말이야. 돌봐야 하는 어머님이 계시거든.”


소녀는 우우 하며 볼을 부풀리더니 달려와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남자는 손목을 때내며 자기 갈 길을 걸어갔다.


이쯤이면 더 이상 그만 따라오겠지.’


찰팍거리는 물걸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후우 안심하며 길을 걸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 소녀와 대화를 나누니까 어째선지 마음이 참 편안 해졌다. 물론 내가 원래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아서 그렇게 많이 편하지는 않지만.



졸린 상태일 때 적어서 뭔가 뭔가란 말이지.

부족한 점이나 피드백 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팍팍 말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