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덩어리가 수면을 때렸다. 30분 넘게 벌인 사투의 결과가 고작 그것이었다. 뱃속에 또아리를 튼 묵직한 덩어리는 고개조차 내밀지 않았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변기에 너무 오래 앉아있던 탓에 허벅지가 저렸고 항문은 쏟아질 듯 아렸다. 


”하아.“


윤서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천천히 일어나 바지를 끌어올렸다. 삼 주 넘게 묵은 변 덩어리가 아랫배와 항문을 짓눌렀다. 불룩 튀어나온 배를 문지르니 뱃가죽 아래가 돌덩이처럼 딱딱했다. 변기엔 손톱보다 작은 덩어리 하나가 표류할 뿐이었다. 그걸 쳐다보고 있자니 무거운 뱃속처럼 마음까지 축 쳐졌다.


조윤서. 타국에서 남편이 보내는 생활비로 일곱 살 딸을 키우는 32세의 가정주부. 성숙한 인상과 농염한 몸매의 미녀. 최대의 고민은 일년 넘게 앓아온 변비. 일 년 동안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이번 건 익숙해지기엔 너무 심했다. 삼 주였다. 압박감 때문에 걷기도 어려울 정도의 변이 쌓일 시간이었다. 그 좋다는 유산균도 변비약도 소용이 없었다. 


도대체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까?


윤서는 무거운 몸을 끌고 화장실을 나섰다. 늦겨울 땅거미가 지는 아파트엔 적막이 감돌았다. 딸애의 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밥 먹여야지, 얘가 뭘 먹으려나? 윤서는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조용했다. 똑똑, 또 조용했다. 


‘얘가 뭘 하는거야?’


윤서는 빼꼼 방문을 열었다. 교회 한 번 나가본 적 없는 아이는 모니터에 대고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 응가 잘 하게 해달라는 소리가 똑똑하게 들렸다. 한편으론 딸애 입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게 부끄러웠지만, 아직 학교도 안 간 애가 그런 기도를 하는 게 대견스럽다는 마음이 훨씬 컸다. 윤서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없이 문을 닫았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니터에 떠 있던 흉한 그림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건. 부숭부숭 털이 돋은 우악스런 손아귀는 꼭 원숭이의 잘린 손 같았다.


그날 밤에 일어난 일은 그냥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딸애가 졸라 시켜먹은 떡볶이가 너무 매웠던 것도, 그래서 혀가 너무 아파 맛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도. 속을 달래려고 벌컥 벌컥 들이킨 우유가 유통기한이 몇 주 지난 걸 모를 정도로.


**


다음날 고통은 끝났다. 그녀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방식으로. 


대신 전혀 다른, 그녀가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이 그녀를 엄습했다. 하필 딸애와 같이 탄 버스에서. 


꾸르르르르릉!


시작은 소리였다. 천둥같은 소리에 옆자리에 탄 딸애가 갸우뚱한 얼굴로 윤서를 돌아볼 정도였다. 뒤이어 폭풍이 뱃속을 휩쓸기 시작했다. 윤서는 직감했다. 삼 주 넘게 뱃속에 있던 것들이 세상에 나오려고 한다는 걸. 


팔등을 따라 소름이 돋아올랐다. 때아닌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뱃속은 계속 꾸륵거렸고 부륵 부륵 하고 가스가 조금씩 샜다. 삼 주를 푹 묵은 지독한 냄새였다. 승객들이 코를 쥐고 주변을 살폈다. 딸애가 윤서의 손을 꼭 잡았다. 윤서는 그저 제발 무사히 집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화장실까지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버스가 정류장에서 급정거를 했을 때, 거리에서 발을 헛디뎠을 때 그리고 도어락을 열다가 변이 조금씩 샜을 뿐이었다. 사실 샜을 뿐이라고 하기엔 많은 양이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금방이라도 열리려는 괄약근을 용케도 붙잡은 채로 변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불행히도 그녀의 인내심은 거기가 끝이었다.


푸드드득!


바지에 손을 댄 그 순간 항문은 그녀의 의지를 떠났다. 엉덩이가 뜨뜻해지면서 몸도 생각도 정지했다. 얄궂게도 딸애가 그녀의 뒤에 있었다. 그렇게 서른 두 살 엄마 조윤서는 일곱살 딸애 앞에서 삼 주 묵은 똥을 바지에 모조리 지려야 했다. 눈치없는 항문은 삼 주치의 똥과 함께 푸득거리는 경박스런 소리를 뱉어댔다. 터져나오려는 울음만은 가까스로 참았다. 


'애 앞에서 울기까지 해버리면 나는 뭐가 돼?'


그 날 이후 윤서는 일 년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변비에서 해방되었다. 엄마가 똥을 잘 싸게 해달라는 바람대로.


대신 시도때도 없이 배가 아프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한 순간 변비 환자에서 심각한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가 되었다. 그건 변비와는 비할 바 없는 고통이었다. 배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화장실을 찾아야 했고 주변에 화장실이 없으면 배가 아파왔다. 버스에서도, 서점에서도, 마트에서도, 복통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건 윤서가 시도때도 없이 사회적 자살의 문턱을 디뎠다는 뜻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윤서는 마침내 변을 지려버리고야 말았다. 딸애의 유치원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타이트한 바지에 롱코트 차림이었기에 들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생들 앞에서 똥을 지린 채로 서 있는 건 참을 수 없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 날 윤서는 마침내 터져버리고 말았다. 화장실 문을 잠궈두고 변을 지린 바지를 빨면서, 윤서는 꺼이꺼이 울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제발, 제발 이 고통에서 해방되게 해달라고.


윤서는 몰랐다. 그걸 딸애가 원숭이 손에게 소원을 빈 걸. 딸애는 빌었다. 우리 엄마 배가 안 아프게 해달라고.


**


그 다음날은 봄맞이 세일이 있었다. 윤서는 딸애를 데리고 붐비는 백화점에 갔다. 유달리 이르게 찾아온 봄에 맘이 들뜬 윤서는 오랜만에 옷장에서 하얀 니트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몇년 새 살이 쪘는지 엉덩이가 유달리 끼었다. 윗쪽은 조금 헐렁한 게 모양새가 조금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워낙 오랜만에 차려입은 터라 마음은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풍성한 몸매가 코트 위로 여실히 드러났기에 그녀는 쇼핑을 하는 동안 수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래, 내가 이런 여자였지 하면서 백화점을 돈 그녀의 양 손은 어느새 푸짐한 쇼핑백으로 가득했다. 


"엄마, 이제 집에 가자."


딸애가 보채는 통에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새 저녁 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래 가자, 하면서 윤서는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그때였다. 예고없는 복통이 그녀를 급습한 건.


"씁!"


순간 뱃속을 강타한 복통에 윤서는 양손 가득한 쇼핑백들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흘러내렸다. 아뿔싸, 주변을 둘러보아도 화장실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이 안보여.'


그 생각이 든 순간 항문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샜다. 아, 이대로 끝인가? 백화점 한복판에서? 윤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누군가 윤서의 손을 잡았다. 딸이었다. 놀라 휘둥그래진 눈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는 딸에게 윤서는 구조요청을 보냈다.


"화장실...."


딸애는 윤서가 찾지 못한 걸 용케도 찾아냈다. 똘똘한 딸애는 엄마의 손을 잡아 끌었다. 윤서는 죽을힘을 다 해 엉덩이를 쥐어짜면서 걸음을 옮겼다. 팬티와 속바지를, 하얀 원피스를 조금씩 조금씩 적시면서.


딸애를 따라 도착한 화장실 앞으로 긴 긴 줄이 늘어서 있던 건 생각지 못한 불행이었다. 윤서는 직감했다. 이 줄이 없어질 때까지 참을 수 없다는 걸. 그냥 여기서 옷 벗고 일을 봐버릴까, 라는 말도 안되는 충동을 가까스로 참은 건 손을 잡은 딸아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딸아이가 윤서의 항문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일 분이나 지났을까, 윤서가 그 줄 한가운데서 인내의 끈을 놓아버린 건 그녀의 의지에 의한 게 아니었다. 그냥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푸드드드득!


설사를 쏟아내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모조리 윤서를 돌아보았다. 남녀노소 족히 오십은 될 듯한 사람들 한가운데서, 일곱살 딸아이의 손을 잡은 채로, 서른 두 살의 애엄마 조윤서는 똥을 지렸다. 그날따라 똥이며 오줌이며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윤서는 항문에서 푸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울지도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백화점 직원의 도움으로 그 자리를 벗어날 때까지, 윤서는 그냥 서있는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이천이십사년 삼월 십사일 오후 다섯시 이십분, H백화점 4층 화장실 앞 복도. 윤서는 그 순간 그 공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뜨끈한 똥이 엉덩이를 비집고 나오는 것도, 속바지를 넘쳐 다리로 흘러내리는 것도, 같이 터진 오줌이 구두를 채우는 것도, 그 모든 것 하나 하나가. 그 지독한 냄새와, 똥오줌이 바닥에 고이는 소리와, 그리고 윤서에게 총탄처럼 날아와 박힌 시선과 비명도 모두 모두. 


그날부터였다. 그녀를 시도때도없이 괴롭히던 변의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만 괄약근이 미처 배가 아프기도 전에 열려버렸다. 배가 아파지려고 할 때면 그 백화점의 복도가 윤서를 집어삼켰다. 그러면 윤서는 살갗을 파고드는 그 감각에 짓눌린 채 자기도 모르게 항문을 풀어버렸다. '똥마렵네' 라는 생각이 들면 똥은 이미 항문을 지나고 있었다. 


그 날 후로 윤서는 자주 바지에 똥을 쌌다. 지하철에서도 쌌고, 마트에서도 쌌고, 집에서도 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결에 오줌도 지리기 시작했다. 꿈 속의 윤서는 그 백화점에 있었고, 그럴 때마다 침대 위의 윤서는 이부자리에 지도를 그렸다. 그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버리는 바지와 팬티가 하루에도 몇 벌, 게다가 이불까지. 산더미같은 빨래에 윤서는 지쳐갔다. 게다가 딸애를 데리고는 다녀야 했다. 


그래서 윤서는 기저귀를 차기 시작했다. 대변까지 막아줄 만큼 두꺼운 것으로. 안그래도 엉덩이가 큰 탓에 기저귀를 차면 오리마냥 우스운 모양새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쌀쌀한 날씨에 걸친 긴 외투가 엉덩이를 가려주기는 했다. 코트가 엉덩이 위에 불쑥 솟아오른 게 우스꽝스럽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딸애 앞에서 그런 꼴을 해야 한다는 게 죽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병원은 언감생심이었다. 딸애는 기저귀 뗀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엄마가 기저귀를 차야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딸애를 재우고 나면 윤서는 화장실에 홀로 앉아 숨죽여 울었다. 몇 날을, 몇 주를. 


늦봄의 어느날 윤서가 기저귀를 찬 생활에 어느정도 적응했을 때, 짧은 외투 아래로 엉덩이가 훤히 드러난 걸 윤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하원하는 딸애를 데리고 돌아서는 윤서의 등 뒤로 조그만 아이가 말을 툭 던졌다.


"선생님, 저 아줌마 기저귀 찼어요?"


윤서는 우스꽝스럽게 부푼 엉덩이에 화살비처럼 꽂히는 시선들과 날카롭게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날 밤, 윤서는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딸애는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우리 엄마가 기저귀를 떼게 해달라고. 


이역만리 타국에 있던 남편이 돌아온 건 그 다음날이었다. 


**


그냥 싸 여보. 내가 다 치울게. 


딴에는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남편은 한참 울던 윤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대소변을 가리는 데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그렇게 치료하기도 한다고. 대소변을 편하게 대할 수 있으면 유분증은 극복될 거라고. 


반신반의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우선 딸애를 시댁에 맡겼다. 딸애한테는 더이상 그런 꼴을 보일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윤서는 기저귀를 벗었다. 당연히, 못 가리던 대소변을 다시 가릴 수 있게 된 건 아니었다. 윤서는 수시로 대소변을 지렸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는 산책을 하다가도. 


남편은 자상하기 그지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지를 버리는 윤서를 꼼꼼히 씻겨주고, 산더미같이 쌓이는 빨래를 매일같이 돌렸다. 마치 그녀가 서른 두살 주부가 아니라 두살배기 애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윤서는 변해갔다. 처음에는 죽을만큼 부끄러웠던 게 점차로 익숙해졌고 어느새 바지에 일을 보는 게 당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윤서는 기다리게 되었다. 똥오줌을 지리고 나면 남편이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혀 주기를. 그건 남편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깊고 깊은 애정에 대한 갈구이기도 했다. 


그러기를 몇 주, 어느새 윤서는 남편이 없으면 흘린 대소변을 치우지도 홀로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는 어린애가 되어 있었다. 일을 보고 나면 더러워진 엉덩이를 남편에게 들이대며 칭얼댔고, 남편이 집에 없으면 씻지도 않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데 대한 부끄러움 같은 건 없어진 지 오래였다. 물론 이건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지만 이제 와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윤서는 지금의 생활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스러웠다.


딸애가 돌아온 건 그와 같은 시간이 두 달 남짓 흐른 후였다. 


**


녹음 사이로 매미가 울었다. 오똑한 콧잔등을 따라 흐른 굵은 땀방울이 흙바닥에 똑 떨어졌다. 아파트 앞 놀이터, 윤서는 흙장난을 하는 딸애와 놀아주는 중이었다. 깔깔대며 조잘대는 두 모녀의 모습이 세상 돈독해 보였다. 남부러울 것 없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거기까지는. 


쭈그려 앉은 윤서의 엉덩이에 뜨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게 더워진 몸이 뱉어낸 습기인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뿜어져 나온 소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딸애가 흙장난에 정신이 팔린 사이 윤서는 슬쩍 사타구니를 만져보았다. 다행히도 젖지 않았다. 윤서에겐 딸애 앞에서는 그러면 안된다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때 등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윤서의 귀를 파고들었다.


“엄마, 저 아줌마 응가했어.”


윤서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딸애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남자애가 제 엄마로 보이는 여자의 손을 잡고 윤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자는 못 볼 거라도 본 듯 망측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윤서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홱 돌려 남자애를 억지로 잡아 끌었다.


그 동안 윤서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아직 항문에 걸려 있는 커다란 덩어리가 바지를 잡아 끌고 있는 걸. 지독한 냄새가 슬슬 올라왔다.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에 윤서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쭈그려 앉은 그녀의 발 아래로 커다란 웅덩이가 생기고 있었다. 흐름을 따라 휘도는 하얀 거품이 그게 오줌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윤서가 쏟은 게 분명한 오줌이 흙바닥을 따라 딸애의 손을 휘감았다. 딸애가 윤서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엄마, 오줌쌌어?”


야외에서 지리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딸애 앞에서 지리는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조그만 애한테 지린 걸 들킨 건, 그것도 딸애 앞에서 그런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딸애의 물음에 말도 안되는 대답을 해버린 건.


“아...아니야. 엄마...엄마, 땀이야. 땀 나서 그래. 엄마 쉬야 한 거 아니야.”


한동안 잊고 살았던 설움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 순간 윤서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건 아니라고. 적어도 딸애 앞에서는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눈물 콧물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마음과는 달리, 윤서의 입에서는 엄마로서의 자존심을 모조리 짓뭉개버리는 말이 튀어나왔다.


”오빠, 오빠 오라그래. 오빠 어디갔어? 왜 안와? 오빠....“


윤서는 바닥에 주저앉아 세상 서럽게 울었다. 철퍽 하고 똥이 뭉개졌다. 딸애가 남편을 찾으며 애기처럼 우는 윤서를 꼭 껴안고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누가 딸이고 누가 엄마인지.


”괜찮아 엄마. 아빠 집에 있대.“


”진짜?“


그 짧은 말에 마음이 사르르 풀린 윤서는 눈물을 닦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 순간의 윤서에겐 딸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판단할 능력조차도 없었다.


“응, 그러니까 집에 가서 아빠한테 씻겨달라고 하자.”


“그래. 빨리 가자. 헤헤.”


윤서가 일어서자 아직 엉덩이에 고여 있던 똥이며 오줌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윤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남편이 그 부드러운 손길로 윤서의 몸을 구석구석 만져줄 테니까.


“착하다 우리 엄마.”


딸애가 형편없이 젖은 윤서의 궁둥이를 툭툭 두드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윤서의 바지 속에서 대변이며 소변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뭉개져갔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남편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딸애의 얼굴이 나이에 맞지 않게 어두워진 걸 알아채지 못했다. 원숭이 손에게 빈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건 그냥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아이는 자기가 엄마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