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


봄은 그런 계절이었다. 홀로 사는 아파트 화단 나무들이 연두색 이파리를 피워내면,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아래 묻어둔 외로움도 슬쩍 슬쩍 돋아나는 것이었다. 등산 소셜링에 가입한 건 주말 낮 홀로 기울이던 소주에 얼큰하게 오른 취기 때문이었다.


술이 깨고 소셜링을 탈퇴할 지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결국 탈퇴하지 않은 건 위약금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공기를 맛보고 싶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겠다. 소셜링 구성원 남자 넷에 여자 넷, 그 중 후자 때문이었다.


그 다음 주말 ㅇㅇ산 입구에서 멤버들을 만났다. 먼저 온 남자 호스트와 여자 셋은 서로 잘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나머지 남자 둘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핵심인 마지막 여자. 일년도 더 된 지금도 나는 그때 그녀의 모습을 머리칼 하나까지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 새하얀 단화를 신은 키가 170 남짓에, 머리가 자그맣고 팔다리가 쭉 뻗은 서구적인 체형. 파란 캡 아래 옅게 화장한 얼굴은 여우처럼도 강아지처럼도 보이는 귀염상이었고, 스포티한 하얀 점퍼 위로 까만 생머리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하체, 펑퍼짐한 회색 건빵바지가 엉덩이에서 허벅지 중간까지 터질 듯 팽팽했다.  안그래도 큰 하체를 와이드 팬츠로 덮은 탓에 하체가 상체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멀리 정류장에서 그녀가 내릴 때부터 그녀의 하체만 보였고, 모임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것만이 생각났다. 


산행 내내 그녀의 뒤에 서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일 못 타는 사람이 선두에 서야 한다는 규칙 때문이었다. 먼저 온 넷은 산행 경력자였고 그녀는 역도 선출, 그것도 무려 국대 상비군 출신이었다. 멸치인 내가 선두에 서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싶다는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뒷풀이 자리를 노리고 있었건만, 그녀는 산행이 끝난 후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지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나는 그때 볼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팽팽하게 부푼, 조금 젖은 회색 천 안에서 거대한 살덩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잠깐의 순간이 선명하게 남았다. 재미없는 뒷풀이를 마치고 귀가해서 잠들도록, 일상을 보내고 보내도록, 그 엉덩이는 잊히지 않았고 불쑥 생각나곤 했다. 가끔 그것이 꿈에 나오면 어김없이 몽정을 하였다. 


나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등산을 가면 만나지 않을까 하면서 수없이 소셜링에 참여했지만 허사였다. 그 사이 나는 등산 경력자가 되었고, 근교 높은 산들을 무리 없이 오를 구력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잊었다.


잊은 줄 알았던 그녀를 다시 만난 건, 그와 같은 시간이 일년 남짓 흐른 이듬해 봄 어느날이었다.


**


그날 소셜링은 ㅁㅁ산이었다. 소셜링을 하기엔 꽤나 높고 험한 악산(岳山)이었는데, 입구 중 하나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여서 꽤 올라본 터라 등반에 자신이 있었다. 혼자 올라도 될 ㅁㅁ산을 굳이 소셜링으로 오르기로 한 건 역시나, 봄이 그런 계절이라서였다.


약속시간 20분 전부터 입구 카페에서 기다리는데 웬 걸, 오라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메시지만 떴다. 누구는 몸살이 났고 누구는 배탈이 났고 누구는 늦잠을 잤단다. 화룡점정은 숙취 때문에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겠다는 호스트였다. 그렇게 하나 둘 불참을 통보하다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약속을 한 주 미루자는 결론이 났다. 


"지랄났다 아주."


기왕 나온 거 혼자라도 탈까, 아니면 그냥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더 잘까? 아 그냥 들어가자 하며 일어선 순간 딸랑 카페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왔다. 파란 캡에 귀여운 여우상, 까만 생머리에 하얀 점퍼, 그리고 그 라인. 


그녀였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녀를 잊지 못했다. 쿵쾅대는 심장을 안고 자리에 앉아 모자 챙 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일년 새 살이 좀 쪘는지 턱선이 조금 둥글어져 있었다. 그리고 꿈에도 나왔던 그 하체가 심지어 더 커져 있었다. 


짙은 쥐색 레깅스는 뭐랄까 '넓다'나 '크다' 정도를 넘어 '막대하다' 내지는 '광막하다' 따위의 수식어를 붙여야 할 것 같은, 대륙의 평야를 연상케 하는 골반을 감싸고 있었다. 그 아래 근육의 모양새가 그대로 드러나는 허벅지는 금방이라도 포장지를 터뜨리고 튀어나올 것 같은 햄 같았고, 검은 양말로 덮은 종아리는 얼마나 팽팽한지. 전체적으로 그건,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왜 거기 붙어있나 싶은, 중량급 역도 선수의 하체가 거기 붙어 있었다. 


아, 국대 상비군이랬지.


음악이 아니었다면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그녀에게 들렸을 것이다.


그녀는 발그레한 얼굴로 헉헉대며 주변을 둘러보다 핸드폰을 두드렸다. 내 핸드폰에 메시지가 떴다.


밤비: 어 ㅠㅠ 저 지금 봤어요. 다들 안오시는 거에요?


설마...설마? 진짜로? 그 일 년을 못 만난 사람을 여기서 만났다고? 단 둘이?


죄송해요, 다음에 봬요 따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 사람들에게 우리의 조우를 알릴 필요가 없다. 나는 핸드폰을 넣고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밤비 님이시죠?"


"도요 님?"


그녀가 방긋 웃음을 지었다. 살짝 포인트를 준 입술 아래 예쁜 치아가 가지런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 밖의 것이었다.


"저희 ㅇㅇ산 같이 오른 적 있죠?"


아,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


그녀는 귀염상에 어울리는 구김살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고, 말이 정말 정말 많았다. 이게 그때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제1봉 정상까지 꽤나 가파른 경사를 한 시간 남짓, 쉬지 않고 말하는 그녀는 숨이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누가 선출 아니랄까봐.


그녀는 작년에 우리가 나눈 대화를 기억한다고 했다. 그녀가 운동을 그만둔 후 처음 참여한 모임이었는데, 그 어색한 자리에서 똑같이 어색하게 있던 나와 죽이 참 잘 맞았다고. 고백하자면 나는 그날 그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엔 오로지 그녀의 하체 뿐이었으니까. 


여하튼,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사실 말은 거의 그녀만 했다) 제1봉 정상에 올라 있었다. 꽤나 난코스인 제1봉을 오르고 나면 제2봉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간단하게 목을 축이고 나서 우리는 능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쯤 갔을까, 나는 그녀가 정상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녀가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다. 얼굴은 일그러졌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게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말수도 급격히 줄어 있었다. 그 급경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던 사람이 갑자기 이러다니, 혹시 어디 다친 거 아니야? 


"밤비님 괜찮아요?"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누가 봐도 중환잔데?


멈춰서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데, 그녀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오지마요!'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후다닥 등산로 밖 숲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숲속 저 편에서 푸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거? 야외탈분? 설마? 이렇게? 여기서? 


나는 국부를 빳빳이 세운 채로 한동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가 돌아온 건 오분 쯤 뒤였다.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화장실이 있는데 그마저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배배 꼬았다.


"아니...저, 아까 화장실 못 가서.... 잊어버려요! 알았죠? 가요, 가요 빨리!"


과장된 제스쳐로 내 등을 떠민 건 부끄러워서였을 게다. 우리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제2봉에 닿았다. 그 너머로 제3봉이 신선들이 사는 영산과도 같은 자태를 드러냈다. 


"와, 예뻐요."


그녀가 방긋 웃었다.


제3봉으로 넘어가는 코스는 가파른 골짜기를 따라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없는 좁디 좁은 계단이 이어지는 난코스중의 난코스였다. ㅁㅁ산을 완등해본 경험이 꽤 되는 나도 그 코스에 들어서기 전엔 십 분은 쉬었다. 


조금만 쉽시다 하고 자리에 앉는데 그녀가 내 등을 찰싹 때렸다. 진짜, 무지하게 아팠다.


"뭐야, 남자가 이렇게 약해서 어디다 써요?"


깔깔 웃은 그녀가 날듯이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무거운 몸으로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역시, 선출은 인간이 아니구나.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붙잡고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기서 사고가 일어났다.


**


골짜기 깊은 곳, 앞서 가던 그녀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지나갑시다, 하면서 우리 뒤를 따르던 등산객들이 그 좁은 계단을 점령한 그녀의 엉덩이를 겨우 헤쳐나갔다. 그럴 때마다 그녀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그건 단지 신체접촉 때문만은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제3봉 등산로 근처에 엄폐할 나무 따위는 없었다. 선택지는 둘이었다. 제2봉 화장실 아니면 제3봉 화장실. 어느 쪽이나 숨 넘어가는 오르막을 올라가야 하는 건 똑같았다. 그나마 제2봉이 조금 더 가까웠다. 제발 도와달라고, 그녀가 울음기 가득 섞인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밤비님, 돌아가요."


나는 돌아서서 어느새 까마득해진 제2봉 정상을 향해 발을 옮겼다. 뒤따르는 그녀의 발걸음은 굼벵이 같았다. 퉁 퉁 울리는 발소리가 그녀의 걸음 하나 하나가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보여주었다. 조금 추운 날씨인데도 그녀의 얼굴이 진땀으로 가득찼다. 그 사이에도 등산객들이 위로 아래로 우리를 지나쳐갔다. 


"도요 님...."


오분의 일도 채 오지 못한 시점,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녀가 고운 얼굴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물었다.


"저 진짜...진짜 죄송한데..., 제가 앞에 가면 안될까요?"


그녀의 뒤 멀리 또 등산객 한 무리가 우루루 몰려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낯선 이를 뒤에 놓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녀는 나를 지나쳐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내 얼굴 바로 앞에서 흔들리는, 인체라기보다는 천체에 가까운 두 개의 입체를. 만유인력은 실재한다, 저것이라면 진실로 중력을 가질 수 있다 - 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력적으로 흔들리는...아아, 중생대의 지축을 뒤흔들던 용각류 공룡이 저리 걸었으리라.

 

그리고 그 사이의 깊은 골짜기 - 정말로 자연물로서의 골짜기와 같은 그것은 음영이라기엔 너무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기서 진한 구린내가 풍겨온 건 기분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작년 그 날 그녀의 뒷모습, 그때 젖어 있던 게 설마 이건가?


그렇게 금방이라도 터져나오려는 대변을 억지로 틀어막은 채로, 엉덩이 바로 뒤에 남자의 얼굴을 두고, 그녀로서는 굴욕적일 수밖에 없을, 나로서는 인생에 다시 없을 산행이 시작됐다.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스치며 한 사람, 한 사람. 층계가 하나 둘. 그녀의 발걸음은 꼬여갔고, 골짜기의 음영은 짙어져갔다. 그리고 한 순간, 복통을 못 이긴 그녀가 허리를 숙인 통에 그녀의 엉덩이가 정말로 내 코 앞에 왔고,


푸드드드드드득!


굉음과 함께 엉덩이 사이 골짜기가 화산 터지듯 폭발적으로 융기했다. 레깅스는 솟아오른 모양 그대로 짙은 갈색으로 물들었고, 그 번들거리는 표면을 너머 더러운 액체가 주륵 주륵 흘러내렸다. 푸슥 푸슥 터지는 가스와 함께 괴악한 악취가 코를 뭉갰다. 이어서 졸졸대는 소리를 내며 후득 후득 떨어진 뜨뜻한 오줌이 내 옷이며 신발에 잔뜩 튀었다. 그동안 그녀는 내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댄 그 상태 그대로 엉거주춤하게 굳어 버렸다. 나 역시도 고간을 불쑥 세운 채로 멈춰있었다. 


“으...흐으으....”


그 상황에서 흐느끼는 소리마저도 어찌나 섹시한지. 


그나마 내가 먼저 정신을 차린 게 다행이었다. 위쪽에서도 아래쪽에서도 등산객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후드티를 벗어 그녀의 허리춤에 두르고는 엉덩이를 떠밀었다. 그것은 따뜻했고 말랑했으며 심층은 굳은 가죽처럼 팽팽했다. 그 통에 내 후드티에도 젖은 자국이 생겼다.


“밤비님. 가요 빨리. 내가 뒤에 가려줄게.”


잠시 후, 그녀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주오던 등산객들이 그 기세에 놀라 허겁지겁 비켜섰다. 


나는 그녀의 꽁무니를 따르면서 그 막대한 육체가 팽창하고 수축하는 것을, 허리에 걸친 회색 후드티 위로 갈색 자국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을, 그 아래 그녀의 굵다란 허벅지 사이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이따금 푸식거리는 소리와 함께 썩은 쓰레기를 방불케 하는 악취가 엄습했다. 목구멍까지 피맛이 차올라 깊은 숨을 들이쉬면 그 냄새가 여지없이 코를 파고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이십 분. 평소라면 사십 분은 족히 걸릴 거리를 우리는 이십 분만에 주파해 제2봉 정상에 돌아왔다. 그녀는 화장실을 앞에 두고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서럽게 울었다. 오해하기 딱 좋은 모양새에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쯧쯧 혀를 차고 지나갔다. 


”밤비님, 저, 화장실에서, 좀, 씻고, 올래요?“


나는 개처럼 헐떡대는 숨을 겨우 잡고 물었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할 뿐이었다. 이래서야 아무것도 처리할 수 없잖아. 회색 후드티 위로는 갈색 젖은 자국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는 얼른 그녀를 사람 없는 구석으로 데려간 후 갈색 자국이 보이지 않도록 후드티를 고쳐매 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를 안고 물었다.


“저기, 아까 우리 만난 카페에서 5분만 가면 제 방이에요. 거기서 씻어요.”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풀고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빨리 갑시다. 금방 갈 수 있죠?”


내리깐 눈에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 얼굴에 저항하지 못하고 멍하게 입을 벌린 사이 그녀는 내려가는 길을 향해 거의 뛰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산을 타는 사람은 처음 봤다. 집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미친듯이 뛰었을 뿐이다.


**


그냥 그랬다. 우리는 왜 그랬던 걸까? 그냥, 봄이어서 그랬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그런 눈빛을 주고받고 있던 걸까? 모르겠다. 어쨌든, 아파트 문을 열고 현관에 섰을 때 우리는 녹아내리는 사탕마냥 끈적이고 달짝지근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가 빳빳하게 솟은 고간을 슬쩍 움켜쥐었다.


“뭐에요 이거?”


아직도 젖은 목소리로, 아직도 젖은 눈빛으로, 그녀가 샐쭉 여우같은 웃음을 지었다. 젠장, 그래버리면.... 그녀가 내 볼을 핥는 그 순간 상황은 끝났다. 

어느새 내 손은 그녀의 허리춤에 올라가 있었다. 허리에 묶인 후드티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막대한 육체를 감싼 레깅스를 - 그녀와 함께 서서히 끌어내렸다. 


레깅스가 엉덩이를 내려간 그 순간,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악취가 봉인에서 풀려난 악마처럼 날뒤었다. 그녀가 내 손을 골짜기로 가져갔다. 나는 아직도 거기 걸려있던, 형편없이 뭉개진 대변 덩어리를 움켜쥐었다. 그 뜨뜻하고 끈적이는 덩어리가 손을 감쌌을 때, 나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나는 그녀의 몸을 돌려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 아니, 그녀가 스스로 벽에 기댔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녀는 가슴을 벽에 대고서 나를 돌아보며, 그 거대한 엉덩이를 들이댔다. 갓 쪄낸 찐빵처럼 토실하고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그것은 짙은 갈색으로 범벅이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 골짜기를 벌려 그 깊숙한 데 있는 항문을 마주보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뿌직!


그 순간 그녀가 설사를 쏟은 건 명백한 고의였다. 


"헤헤."


그 앙큼한 웃음은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얼굴에 설사를 뒤집어쓴 그 순간,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끝냈다. 나는 바지를 내리고 잔뜩 솟은 고간을 그녀의 항문에 그대로 들이박았다. 그 깊디 깊은 블랙홀이 나를 빨아들였다. 단련된 엉덩이 사이의 단련되지 못한 괄약근이 음경을 단단하게 조였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엉덩이가 고무공처럼 흔들렸고, 그 사이에 고인 설사똥이 철벅거리는 소리를 냈다. 철벅이는 소리에 우리의 신음이 섞인 리듬은 점차로 빨라졌다.


절정에 다다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쥬륵


나는 그녀의 항문 속으로 정액을 뱉어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벽에 기대 주저앉아버렸다. 오늘은 너무 많이 움직였어. 서있을 힘도 없었다.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며, 그 여우같은 웃음을 띄고 물었다. 


“뭐야, 남자가 이렇게 약해서 어디다 써요?“


그녀가 내 가슴팍에 엉덩이를 들이대고 주저앉았다. 그녀의 오줌으로 이미 더러워진 가슴팍에 변이 잔뜩 묻었다. 그녀의 엉덩이는 무거웠고 부드러웠으며 동시에 단단했고 따뜻했다. 다시 서지 않을 줄 알았던 음경이 빳빳하게 섰다. 그녀가 음경을 살살 문질렀다. 


아, 아아.


저 안쪽으로 우리가 아무렇게나 벗어서 던져버린, 대소변에 잔뜩 찌든 옷가지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너머 베란다 밖으로 이제 막 연두색 이파리들을 돋우어낸 나무들이 봄볓에 빛나고 있었다. 나무들뿐만 아니라 작은 방 안에서 뒹굴고 있는 두 마리 짐승들에게까지도 그 따스한 햇살이 와닿았다. 아아, 봄은 그런 계절이었다.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