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수요일



유리의 실체는 보면 볼수록 기가 막혔다.

말 없고 차갑고, 도도하고 신비한 유리는 다 가면이었어.


아침부터 그 애는 나를 정신없이 휘둘러댔다.


각종 끼 부리기에, 민망한 장난에, 성희롱, 성추행까지. 하도 많이 당한 나머지 몇 번을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2교시에는 배가 조금씩 구륵거렸다. 방귀가 뀌고 싶었다.

나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열린 창문 쪽으로 엉덩이를 살짝 들고는 푸스슷-하고 소리 없는 방귀를 뀌었다.


방귀 냄새를 맡았는지, 유리가 날 곁눈질로 슬쩍 보는 듯 했다.  

나는 애써 외면하려 했다.


그러자 유리는 내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스흐읍-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내보낸 가스가 잔뜩 섞인 공기를!


정말, 민망해서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았어.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 다녀와 보니, 내 노트에는 예쁜 글씨체로 '방귀쟁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교실에서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대놓고 눈웃음을 치질 않나, 자기 자리 옆을 지나가는 내 엉덩이 사이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고, 손가락 냄새 맡고(더러워!).


점심시간에 똥 누러 가는 나를 쫓아와서 같이 들어가게 해 달라고 생떼를 쓰고, 내가 응가 하는 걸 보면서 하악대고.


으,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려.


유리가 나한테 야한 장난을 치는 건 괜찮지만..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도 좋지만 너무 시도 때도 없으니 곤란해.


내일은 꼭, 교실에서는 참아 달라고 말해야지. 


그건 그렇고, 유리에게 나는 뭘까?


그냥 관심이 가는 여자애? 성벽이 같은 변태 동료?

아니면, 영상을 무기로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놀이 상대?


아니면,


"너가 예뻐서."

”정이연이 무지하게 착한 애라는 거, 그때 알았어.“


그건, 내가 생각하는 그런 뜻이 맞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상상을, 유리도 똑같이 하고 있을까?


서로의 더러운 부분을 보여 주는 것 뿐만이 아닌, 

우리가 입을 맞추고, 서로의 옷을 벗기고, 서로의 몸을 만지는,

그런 상상을.


이제야 조금 마음이 편해진 줄 알았는데.

다시 싱숭생숭해져 버렸어.


왜 그렇게 예쁜 거야. 그 애는.





3월 28일 목요일



오늘은 내가 도서위원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나와 사서 선생님이 아닌 누군가가 도서실에 들어왔다. 


물론 그 누군가는 유리였다.


유리는 도서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이내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내가 있는 컴퓨터 책상 안쪽으로 들어왔다.


“도서위원님, 안녕.“


”결국 여기까지 오는구나…“

”안전지대인 줄 알았는데…“


”응? 안전지대?“

”나랑 노는 거, 싫어?“


”아, 아니, 싫지는 않아.“

”싫지는 않은데….“


”싫지 않은데, 왜?“


”너무, 자주 하니까….“

”애들이 볼까 봐 무섭기도 하고…“


”후후, 그건 걱정 마. 안 보이게 잘 할게.“


이 구제불능 변태에게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지.


”그것도 정도껏이지..!“

“어제, 똥구멍 찔렸을 때, 소리 지를 뻔 했단 말이야.”


”아하하하, 그건 미안해. 충동적이었어.“


“교실에서는, 좀 참아 줘.”

“혹시 모르잖아.”


”으음, 그럼 그 말은….“

“여기서는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말이야?”


”으극!?“


유리가 의자에 앉은 날 뒤에서 확 끌어안더니, 자기 가슴을 내 뒤통수에 문질러댔다. 몰캉하니 부드러운 촉감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바, 바보야, 여기도,”

“누가 올지, 모르잖아…!”


그 애가 입을 내 귓가로 가져왔다.

흥분이 고조된 듯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덩달아 기분이 야시시해지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정 그러면 우리, 그 화장실로 갈까?”

“이연이, 응가 할 시간이잖아.”

 

“어..!?”


"가자, 응?"


“나, 도서실 오기 전에 하고 왔는..."


"뭐!?"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리가 난데없이 고성을 질렀다.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먹먹했다.


"...."

“…물은 내렸어?”


“당연하지! 내가 너냐?”


"하아...."

"보고 싶었는데...."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 애가 한껏 미간을 찌푸렸다.

무지무지 화가 나 보였다.


아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혼자 응가를 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란 말이야!?


나는 최선을 다해 항변했지만 그 애는 막무가내였다.

내 응가를 못 본 걸 그렇게까지 원통해할 줄이야.


"몰라. 너도 그랬으니까, 나도 마음대로 할 거야."


"어?"


그렇게 선언한 유리는 뒤돌아 서서 치맛자락을 올리더니, 앉아 있는 나에게 자기 엉덩이를 쑤욱 들이밀었다. 


흰 레이스 달린 팬티에 얼굴이 닿을 것 같았다.


"으응-!"


뿌욱-


"읏...!"


유리가 방귀 한 발을 내 얼굴에 끼얹었다. 큰 볼일 보기 직전에 나오는 똥방귀 냄새가 났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독했다.


"유리야, 안 돼. 설마...!"


"아, 나온다..."


뿌우웅-

뿌직, 뿌지직-


뿌드드드득.

푸쉬익-


이 애, 팬티에 그대로, 똥을 누고 있어...!

여긴 도서실인데, 누가 올지도 모르는데!


"유리야, 안 돼! 여기서 하면, 누가 오면 어떡해!"


"싫어. 내 맘대로 할래."


아, 이 애의 변태력은 어디까지일까.

그 와중에 유리 응가 냄새를 맡고 금세 젖어버린 나도 한심해.


"으으읏-"


뿌드드드-푸슷-

뿌옹-


고형의 똥이 엉덩이와 팬티 사이를 채워갔다.

탄성이 부족한 면 팬티가 부풀 대로 부풀었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똥이 허벅지 쪽으로 삐져나오려 했다.


"하아, 하아..."


"우웃, 냄새..."


유리의 엉덩이와 내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방금 내보낸 똥의 온기가 얼굴에 닿고 있었다. 

그 애가 배변하며 뿜어내는 방귀의 풍압도 피부로 느껴졌다.


더러워지는 엉덩이도, 연갈색으로 변해 가는 팬티도, 똥의 냄새도, 온기도, 방귀 소리도, 유리가 몰아쉬는 숨소리도,

모든 게 너무 야해서 머리가 고장나버릴 것 같았다.


나는 당장 유리의 하체를 껴안고 똥으로 부풀어오른 팬티에 얼굴을 묻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야 했다.


다행히도(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내가 욕구에 져버리는 일 없이, 그리고 유리의 똥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일 없이 그녀의 배변은 끝났다.


똥을 다 눠 버린 유리는 나에게로 돌아서 쪼그려 앉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 애의 눈빛을 나는 분명히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옥상에서 보았던 마치 짐승 같은, 욕망의 노예 같은 그것과 완전히 동일한 눈빛을, 그녀가 보여 주고 있었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잔뜩 상기된 표정, 빨개진 두 볼. 달라진 눈빛.

뜨거워진 듯한 우리 주변의 공기.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유리는 눈을 감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실이라서 다행이야.


똥 냄새로 자욱한 도서실에서, 우리는 첫 키스를 했다.


끈적하고 물컹한 유리의 혀가 내 입 안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나는 유리의 셔츠 단추를 풀고 옷 안에 손을 넣어 그 애의 가슴을 만져댔다. 천국 같은 촉감이었다. 내 목덜미를 핥기 시작한 그녀가 묻히는 침 냄새도 더할 나위 없이 야했다.


그녀는 내 팬티를 쥐고 허벅지까지 내렸다. 그리고는 내 항문을 잠시 애무하는듯 하더니,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쑤욱 넣었다.


"히잇!?"

"아으으읏-"


유리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내 항문 안을 구석구석 휘저었다.

뽑은 손가락 끝에는 노란 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미 진동하던 유리의 똥 냄새와 다른, 내 똥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져갔다.


"우와, 더러워..."

"응가 하고, 제대로 닦아야지. 이연아."


"다, 닦았는데...!"


"이걸로 용서해 줄게. 혼자 응가 한 거."


말릴 틈도 없이, 그녀는 그 손가락을 입에 넣어 쭙쭙 빨아들였다.


"변태...!"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 품에 그 애를 꼭 안았다.

품 속의 이 변태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유리는 내게 순순히 안겼다. 그 애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아, 몰라 이제.

그냥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그러나 내 바람과 정반대로,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 전임을 알리는 예비 종이 울려퍼졌다.


점심시간이 끝난다는 것은 곧 사서 선생님이 나와 교대하기 위해 도서실에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눈빛 교환조차도 없이 옷을 다시 여미고 뒷정리를 시작했다.


유리의 도라에몽 주머니 같은 파우치가 이번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물티슈로 여기저기 묻은 똥을 닦아냈고, 내 목덜미에 묻힌 침도 깨끗이 닦아 주었다.


그녀의 팬티 속 똥은 내가 조심조심 비닐 봉투로 옮겨 담았다.

팬티를 내릴 때는 정말 끔찍한 냄새가 났다. 유리는 어제 응가를 못 해서 더 그렇다며 변명했다. 


똥 범벅이 된 팬티도 결국 봉투 안으로 들어갔다. 노팬티로 오후 수업을 들어야 했던 유리였지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창문을 열어, 묶인 봉투를 그제와 똑같은 폼으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브이 사인도 잊지 않았다.


깔끔히 뒷정리를 하고, 방향제를 몇 번이고 뿌려댔지만 냄새는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사서 선생님이 도서실에 들어오자마자 코를 막고 "이거 무슨 냄새야?"라고 물으셨다.


유리는 '이연이가 아까부터 속이 안 좋다고 자꾸 방귀를 뀌어서'라고 둘러댔다. 나는 꼼짝없이 누명을 썼다.


사서 선생님이 그걸 바로 믿어버리신 것도 너무 억울해!

내 방귀 냄새가 심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닌데...!  


나는 도서실을 나와 손바닥으로 유리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팬티 없는 맨엉덩이를 때리는 타격감이 아주 좋았다.


유리는 쓰라리다며 한참 동안 자기 엉덩이를 손으로 문질렀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복수였어.


교실로 돌아가며, 나는 먼저 말을 꺼냈다.


“평소에는 대체 이걸 어떻게 숨기는 거야…”


"...뭘?"


"얌전하고 차가운 애인 줄 알았는데...."


"우후후후. 그랬어?"


"웃지도 않고, 말도 잘 안 하고."


"그야, 재미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그래?"


"응."

“너랑 만나기 전까지는,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는걸.”

“이연아. 너랑 만나서, 나 너무 좋아."


유리가 빙긋 웃었다.


그건 고백이었을까?


그걸 들은 내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댔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그 말의 의미를 물어보지 못했다.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쓰는 지금도 그 말만 생각하면, 그리고 도서실에서의 일만 생각하면 얼굴을 가리고 뒹굴고 싶어지는걸. 





3월 30일 토요일



목요일에 있었던, 도서실에서의 일 이후 유리는 더 대담해졌다.


금요일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다.


1교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내게 뿌우우웅-하는 방귀 소리가 들렸다.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대담한 방귀였다.


우리 교실의 모두가 같은 소리를 들었다. 조용하던 수업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져 교실 전체가 웅성댔다.


거의 똥 냄새에 가까운 구린내가 퍼져나가자, 웅성대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유리의 냄새에 어느새 익숙해진 나는, 방귀를 뀐 사람이 유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유리는 또 그 짓궂은 눈웃음을 보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우리 반 아이들은 한 명도 그 애를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와 가장 가까이 앉는 아이들까지도.  


그 애 앞에 앉은 남자아이가 누명을 덮어썼다. 눈물 날 만큼 억울해 보였지만, 유리는 끝까지 자백하지 않았다(악질!).


뭐, 그 애를 의심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유리는 철저하게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런 평소의 그녀는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은 요조숙녀 그 자체였으니까.


유리의 가면 벗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나도 아마 용의선상에서 그 애를 제외하고 시작했겠지?


서로 등을 맞대고 쪼그려 앉아서 화변기에 같이 응가를 하자는 기상천외한 제안을 받은 것도 그 날이었다.


그 애는 정말 변태 짓의 화수분이다. 변태 짓을 하고 또 해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것 같아. 


...결국 우린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약간 추운 개인실 안에서 우리는 또 지독한 똥 냄새를 맡으며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유리에게 데이트를 청했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말을 더듬거리는 내가 웃겼는지, 그 애는 한참을 웃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웃었다.


웃긴 상황이긴 했다. 낡은 화장실 화변기 칸 안에서, 게다가 두 명이 엉덩이를 마주 보고 싸 놓은 산더미 같은 똥 옆에서 첫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이니.


그 애는 내 볼에 입을 한 번 맞추고는, 생각해둔 곳이 있으니 그곳으로 나와 달라고 했다. 


데이트 날은 일요일. 바로 내일.


...긴장돼.


일주일간 매일매일 유리랑 있었는데도, 왜 긴장되는 거야?


내일 뭘 입고 나가지? 혹시 더러워지진 않을까?

향수를 뿌려야 하나? 머리는 어떻게 하고 가지?


귀찮아서 일기도 안 쓰려고 했는데, 잠이 너무 안 와서 결국 일기장을 펴 이렇게나 적고 말았다. 이래도 못 자면 어쩌지? 





3월 31일 일요일



나는 30분이나 일찍 약속장소인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도착해서도 거울을 보고 또 봤다.


학교에는 머리도 대충 묶고, 화장도 제대로 안 하고 가면서.

나도 참 이상해. 학교에서도 매일 유리를 보는데도.   


유리도 일찍 나와 주었다. 

흰 셔츠에 베이지색 테니스 치마를 입은 유리는 정말이지 너무 예뻐서, 당장이라도 껴안아 주고 싶었다.


그 애가 정한 데이트 장소는, 의외로 평범하게 한강공원이었다.


여의나루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며, 우리는 톡으로 대화를 나누었다(당연히, 남들에게 들려서는 안 될 내용이었으니까).


그때 유리는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유리는 나와 비슷한 체질이었다. 어릴 때부터 대변이 자주, 많이 나오고 냄새도 심했다고 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똥쟁이들의 인생 최대 고비는 역시 초등학생 시기였다. 유리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똥을 어떻게든 참으며 학교를 다니던 그 애는, 어느 날 수업 중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는 변의를 느꼈다.


참다 못한 유리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가 시원하게 볼일을 봤다. 하지만 운 없게도 변기가 막혀 버렸고,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 온 아이들이 그 대량의 똥을 보고 말았다.


용의선상에는 당연히 유리밖에 없었다. 유리의 똥은 엄청난 이슈가 되어 수많은 아이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 층의 거의 모든 여자아이가 그녀의 똥을 봤고, 심지어 다른 층에서 와서 사진을 찍어 가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애는 그 때 창피함과 함께 이상한 기분을, 처음 느껴 보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가 변태가 된 건 그때부터였다고 한다.


다만 이사를 간 중학교 때쯤 되어서야 자기가 그런 걸 좋아하는 변태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이 말을 하면서 자기를 선배 취급해 달라고 했다. 진짜 이상한 애야.)   


그런 이야기를 포함해서,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목적지였다.


우리는 손깍지를 끼고 걸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저 걷기만 해도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은 한강공원에서, 유리와 나는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배에 신호가 왔다.


유리 몰래 방귀를 뀌려 했지만 냄새를 숨길 수 없었고, 그 애는 꿀렁이는 내 배를 쓰다듬으면서 쿡쿡 웃었다.


"후후,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이제 와서."


"으, 그래도 기껏 꾸미고 나왔는데...."


"나올 것 같아, 응가?"


"응."


"저기서 하자."


"어?"


유리가 가리킨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갸우뚱하며 그 애에게 되물었다.


"저기?"


"응. 저기."


"화장실이 없는데?"


"이연이가 바깥에서 똥 누는 거, 보고 싶어."

"신호 오면, 내 것도 보여 줄게. 후후."


이래서 한강이었구나. 노상에서 응가 할 곳이 많은 장소.


유리가 가리킨 곳을 다시 보니, 쪼그려 앉으면 몸이 숨겨질 법한 키 큰 풀밭이었다. 곧 저기가 내 화장실이 되겠지.


...저런 데 들어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못 이기는 척 순순히 풀밭 한가운데로 걸었다. 유리가 들뜬 걸음걸이로 앞장섰다. 정체 모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풀이 조금 드문드문 난 한가운데서 팬티를 내리고 앉아 배에 힘을 넣었다. 그 애는 내 엉덩이 뒤에 자리를 잡았다.


"으으응-"


뿌직-뿌지지지지직-

툭.


뿌드드드-뿌드드-

푸스으으으-


드물게 굵은 똥이 나왔다. 나오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똥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주변의 풀 냄새와 젖은 흙 냄새에 변비 똥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섞여들어갔다. 강바람 덕분에 냄새가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으음, 이연아. 너 변비 생겼어?"


"....왜?"


"방귀 냄새도 평소랑 좀 다르고...."

"오늘 네 응가, 양이 엄청 많네."

"나도 이렇게 많이는 거의 못 누는데." 


"그게... 어제 응가를 참았어."


"응? 왜?"


"오늘, 너랑 만나는 날이라서..."

"똥, 많이 누고 싶었어."


"아하하하하, 변태."

"그러다 진짜로 변비 생겨. 변태야."


그 애가 웃으면서 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내가 그녀에게 더 많은 똥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고백이, 어지간히도 그 애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아직, 누는 중인데..."

"엉덩이, 만지지 마...:

"묻을 수도 있잖아."


"우후후, 괜찮아."


"흐읏...!"


뿌드득- 툭.

뿌지지직.

푸륵. 뿌루룩.


진갈색의 묵은 똥 두 덩어리가 내 엉덩이 밑에 누웠다.

이어서 조금 부드러운 황갈색 똥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아, 하읏-!"


뿌직, 뿌직, 뿌직-

뿌뤄러러럭- 뿌욱-


부드러운 똥이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술술 나와 주었고, 마지막의 시원한 방귀 두 번으로 나는 배변을 마무리했다.


유리는 거의 넋을 잃고 내 똥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굉장한 양이었다. 이미 굵고 긴 진한 색 똥 위에 균열도 없는 연한 똥이 잔뜩 올라앉아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우와, 엄청 많이 나왔다. 다 눴어?"


"하아아-"

"응. 다 눴어."


"후후, 고생했어. 닦아 줄까?"


"읏..."


유리의 엉덩이를 닦아 준 적은 한 번 있지만, 

그 애가 내 엉덩이를?


부끄러워. 부끄러워. 부끄러워!

하지만, 굉장히 야한 기분이 들 것 같았어.


"으흐음."

"닦아 줬으면 좋겠어, 이연아?"


"...."

"응. 닦아 줘."


용기를 짜내서 말했다. 잠시 다른 곳을 봐야 했지만.

그런 나를 본 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깐만, 이 손 아까 똥 눌 때 내 엉덩이 만졌던...

에이, 뭐 어때. 어차피 변태들끼리인걸.


그녀가 티슈를 뽑아 내 항문을 부드럽게 건드렸다.


"히잇!"

"흐읏, 으으읏..."


상상하지 못한 촉감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누군가 내 항문을 만진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기분일 줄이야.


"쉿. 이연아. 목소리 커."


유리는 능숙하게 내 엉덩이를 슥슥 닦았다. 


기분이 이상한데도, 뭔가 중독될 것 같았다. 상냥한 유리의 손길이 내 가장 부끄러운 부위에 직접 닿는 것이 좋았다.


"흠흠."

"하아, 이연이 응가 냄새."


"냄새 맡지 마!"


....내 똥 닦은 휴지 냄새를 그 애가 맡는 건, 역시 조금 싫었다.


"...아."


"왜? 더 나올 것 같아?"


"...아니. 괜찮아."


큰 목소리를 내서 배에 힘이 들어갔는지, 방귀가 마려워졌다.


꽤나 냄새 나는 것이 나올 것 같았다.

내 배변 직후의 방귀는 늘 냄새가 심하니까.


이미 보여 줄 걸 다 보여 줬는데, 방귀는 왜 부끄러울까.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이연아. 똥구멍 조이고 있으면 안쪽 닦기 힘들어."


"미, 미안...!"


"으음, 계속 조이고 있네."

"혹시, 방귀 나올 것 같아서 그래?"


이쪽 분야에 있어, 유리는 쓸데없이 눈치가 좋았다.


"...."


"빨리 뀌어. 바보야."


그녀가 장난스레 손가락으로 내 항문을 간지럽혔다.

항문에 주던 힘이 순식간에 빠졌다.


"으... 아!?히얏!"


뿌우우우웅-!


괄약근이 풀리자 큰 소리로 가스가 나왔다.

으으. 주변 사람들한테 들렸을지도 몰라.


"우후후, 시원하겠다."


"부끄러워..."


우리는 내 엉덩이를 닦은 휴지만을 봉투에 넣어 그 자리를 떠났다. 제법 강한 바람 때문인지, 똥을 눈 곳에서 몇십 미터를 떨어졌는데도 희미하게나마 똥 냄새가 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 내가 눈 똥 냄새를 맡았겠지.

이런 거에 이상한 기분이 들다니. 나도 정말 중증 변태구나.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데이트를 이어갔다.

즐거웠다. 꽤 오랫동안 친구가 생기지 않아 사람 대하는 것이 아주 서투른 나였지만, 그런 것을 의식할 틈조차 없이 유리는 나를 즐겁게 했다.


공용 자전거를 빌려 타기도 하고, 강가를 따라 걷기도 하고, 동호회 아저씨들의 테니스 게임을 구경하기도 했다.


사실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유리의 미소 짓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즐거웠기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리의 응가 신호가 끝까지 오지 않아서 유리의 똥을 볼 수는 없었지만, 괜찮아. 내일 보면 되니까. 내일도 만날 거니까.




어두워지기 전에 지하철을 탔다. 오는 길에 유리는 지하철 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내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그 애는 내 어깨에 기대어 쌕쌕 소리를 내며 잤다. 혹시 그 애도 나처럼 잠을 설친 걸까?


궁금했지만 굳이 그녀를 깨우지는 않았다. 

깨우기에는 잠자는 얼굴이 너무 귀엽기도 했고, 자는 유리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그 애는 의외로 졸음에 약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으로 걸을 때도 유리는 졸면서 비틀비틀 걸었다. 엉덩이를 살짝 꼬집어줄까 했지만, 그녀가 방귀를 뀔까 봐 그만두었다. 


어둑어둑해진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을 붙였다.


"..저기, 유리야."


"으음.."

"응?"


"그 영상, 아직 가지고 있어?"

"일주일 전에 찍은, 그거."


"...아, 그 영상?"

"벌써 지웠어. 좀 됐어. 믿어도 돼."


유리가 잠 덜 깬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응. 처음에는 그거 없으면 네가 나랑 안 놀아줄까 봐..."

"계속 가지고 있을까 했는데,"


"했는데?"


"없어도 될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직접 붙잡고 있으려고."


거기까지 들은 나는 까치발을 들어, 유리의 얼굴을 손으로 틀고 그 애의 입술에 뽀뽀했다.


"좋아해. 유리야."


유리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나는 마음 편히 웃음지었다. 


나는 유리가 좋아.

그 애는 변태. 나도 똑같은 변태.


유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줘.

그리고 나도, 유리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어.


곧 벚꽃이 피면, 유리랑 꽃을 보러 가야지.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