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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날을 맞은 한 남자. 그는 전에 연락한 이삿짐센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좀 불안하긴 했다. 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보적으로 싼 업체였기 때문이다.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현관문 앞엔 단 한 명의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잠깐 놀랐지만, 이내 머리에 달린 큰 귀를 보고는 수긍했다. 여자의 작업복엔 "김다연"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다연은 인간 여자의 몸을 한 코끼리였다. 물론, 큰 귀와 회색 작업복만 빼면 전혀 코끼리같이 보이진 않았다. 코도 길지 않고 말이다. 오히려 귀엽고 단정한 아가씨 같았다. 코끼리는 야생에서도 무리지어 살기에, 인간 모습이 되니 진짜 인간보다도 더 예의바르게 보였다. 주인을 대하듯 남자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시작하면 되나요?" 다연이는 정중하게 물었다.

"네."

"알겠습니다!"

덩치는 작아졌어도 그 힘은 코끼리다웠다. 여자는 소파나 침대까지도 가볍게 들고 옮겼다. 혼자서 거뜬히 4명의 일을 하는 것 같았다. 한시간쯤 같이 짐을 싸고 옮기다 보니, 또 자연스레 말도 트게 되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그 친근한 얼굴에 다정한 성격까지. 당장 메이드로 들이고 싶을 정도로 성실한 여자였다.

하지만 코끼리의 식성은 어디 가지 않았나보다. 항상 주머니에 버터덩이만한 곡물 바를 넣고 다니며 틈틈이 우적우적 먹는 게 보였다. 어딘가에 코끼리의 배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먹어도 먹어도 그칠 줄 몰랐다. 

그래도 일만 잘하면 되지 뭐 어떤가. 짐 정리는 슬슬 끝나가고 있었다. 다연이는 마지막 보따리를 옮기며 물었다.

"혼자 사는데 짐이 꽤 많으시네요?"

"...네. 제가 좀 낭비벽이 있어서..."

"아,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좀 더듬었을 뿐인데 여자는 당황하는 것 같았다. 다연이는 원래 8톤짜리 동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남자는 그 광경에 살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괜찮아요. 근데-"

그 때였다. 여자의 뱃속에서 나온 꾸르르륵 소리가 둘의 대화를 방해했다. 그 소리는 인간의 배에서 나온 것이라 하기엔 너무 깊고 음산하게까지 들렸다. 마치 맹수의 표효를 들은 것 마냥, 둘은 잠시 말을 잃었다. 여자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기 배를 쳐다보았다.

"괜찮아요?"

"아- 네, 괜찮습니다! 짐은 다 쌌고, 점심 먹을 시간이네요!" 다연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점심 먹고 최대한 빨리 와주실 수 있나요?"

"네..?"

"제가 오늘 일이 있어서 빨리 끝내야 하거든요."

여자는 잠시 망설이는 듯 했지만, 이네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먼저 이사할 집으로 가 여자를 기다렸다. 아직도 새 페인트 냄새가 났다. 30분쯤 지났을까, 점심을 마친 여자도 짐이 든 차를 끌고 새 집으로 헐레벌떡 도착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가 뭔가 달라진 걸 느꼈다. 회색 자켓에 가려진 배는 훨씬 불룩 솟아 있었다. 그 불안한 꾸르륵 소리는 오히려 더 상시로 나오고 있었다. 물어보려 했지만 여자는 무시하고 일을 서둘러 시작했다.

"빨리 끝낼게요..."

확실히 뭔가 달랐다. 일하는 중간중간에 다리를 꼬거나, 낮은 신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더 가까이서 보니 머리에 식은땀도 흐르는 것 같았다. 유쾌하던 성격은 어디가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큰 짐을 몇 개 들여놓았지만, 여자의 얼굴은 이미 홍당무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떼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남자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남자는 물었다.

"저기, 어디 아파요?"

"괜찮아요... 이것만 끝내면..."

"아직 저기 더 남았는데요."

남자가 구석에 쌓여있던 짐을 가르키자, 다연이에겐 그제서야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일이 끝날 때까지 참는 건 불가능한 것이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

"저기요? 병원이라도 가야해요?"

"...ㅎ...화장실..."

결국 예의바른 코끼리 아가씨는 소화기관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욱!!

남자는 여자의 엉덩이에서 갑작스레 울린 소리에 놀랐다. 따뜻한 가스가 퍼지는 게 느껴졌다. 분명 코끼리면 초식일텐데, 인간의 음식을 먹어서인지 푹 삭힌 김치에 똥을 비벼놓은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이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화장실은 저긴데요." 남자는 참고 말했다. 하지만 다연은 요지부동이었다.

"ㅈ-제 말은 그 뜻이 아니라..."

여자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이미 자극은 시작되어 돌이킬 길이 없었다. 자켓 밑 불룩하게 부풀어온 배는 마치 끓는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이 코끼리의 배를 달래기 위해, 지금 다연이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다연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던 말도, 한 마디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당-!!

인간의 몸에 갇힌 거대한 코끼리의 방귀였다. 소리로도, 가스량으로도 어떤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허리케인처럼 실시간으로 터져나오는 어마어마 양의 가스는 마치 항문을 찢는 듯한 우렁찬 소리를 내며 울려퍼졌다. 너무 진하게 발효되어 집 안 공기가 순식간에 노란색으로 물드는 게 보일 정도였다. 

5초, 10초, 20초를 지나고도 그 파워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오히려 항문이 더 넓어졌는지, 가스줄기가 더 두꺼워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탱크로리 하나를 가득 채울만한 메탄가스가, 1분 전까지만 해도 예의바른 직원으로만 보였던 여자의 약간 큰 회색 엉덩이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뿌아아푸푸우우우우우루루루루룩!!-뿌우우우우우우우우아아아아라라라라라락!! 부라라락!

30초도 지나지 않아 온 집이, 모든 방 구석구석까지 시큼한 냄새로 꽉 찼다. 그러고도 모자라 가스의 농도는 계속해서 두 배, 세 배 높아지고 있었다. 집이 한순간에 한여름같이 축축하고 따뜻해졌다.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이었고, 귀는 윙윙거렸다. 하지만 불쌍한 건 역시 코였다.

냄새는... 비교적 평범한 썩은 냄새였지만, 그 농도와 세기가 문제였다. 며칠동안 발효시킨 음식물 쓰레기를 선풍기 강풍 앞에 두고 그 앞에 코를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식물성이라도 썩은내가 꾸역꾸역 들어오니 뇌가 혼미해졌다.

하지만 남자는 그 와중에도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 빼고는 멀쩡해 보였다. 너 나쁜 소식은, 여자의 배는 조금도, 정말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연의 배가 다시 요동치자, 그 반동에 잠시 가스줄기가 멈췄다. 하지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다연은 대바늘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다시 배를 부여잡아야 했다. 꾸르륵거리는 소리는 진짜 코끼리 배의 울림을 듣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여자는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바로 남자의 얼굴이 위치한 쪽이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던 건, 다연의 회색 작업복의 정중앙에 있는 갈색 얼룩이었다.

"죄송합니다, 더이상 참을 수가-!"

빠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락!!-푸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푸뿌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경험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시작하자마자 남자는 더욱 강해진 풍압에 나자빠졌으니까. 하지만 그 잠시동안, 남자는 반쯤 액체같은 방귀의 쓰나미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아무리 코끼리라도 이렇게 방귀를 뀔 수 있다니. 지금까지의 가스량만 해도 이미 체육관 하나 쯤은 거뜬히 채울 양이었다. 지금 그 양이 남자의 집에 집중되고 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전까지 여자의 항문을 꼭지점으로 뒤로 생성되었던 가스의 원뿔은, 더더욱 강해지고 넓어져 이제 집안 가구를 움직일 정도였다. 선반부터 시작해, 온 집안이 코끼리가 지나간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푸푸푸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당-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1시간같은 1분이 지났다. 하지만 일반인이 1시간 종일 뀌어도 이만큼의 방귀를 뀌진 못할 것이다. 남자의 새집은 이미 폐허를 방불케했다. 조심스레 직접 갖고 온 식물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벽의 페인트는 벗겨지기 시작했다.

가스는 너무 진해 방 안이 끈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한가운데엔 다연이만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내, 다연은 울음을 터뜨렸다. 예의바른 직원으로써, 코끼리로써, 여자로써 지켜야 할 게 완전히 산산조각났다. 하지만 다연의 배는 여전히 빵빵했다.

그 때, 기적일까, 남자는 정신을 차렸다. 산소 부족으로 머리가 띵했지만, 용케 샛노란색 메탄 안개 속에서 여자를 찾아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괜찮아요...?"

"..." 

착각인지 모르지만, 여자의 머리에 달린 큰 귀가 쫑긋하는 것 같았다. 다연은 고개를 돌려, 남자를 촉촉한 눈으로 빤히 보았다.

"다 뺐어요?"

"아니요..."

"그럼- 콜록콜록- 일단 나갈까요?" 

"ㄴ-네!" 다연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가스가 밖으로 확 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사우나를 나오는 듯 했다. 여자는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엘레베이터가 오길 기다렸다. 이런 뒷모습은 또 귀여웠다. 이런 뒷모습에서 그런 방귀가 나오다니...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남자는 비밀이었지만 성에 관해 꽤나 잡다한 취향이 많았다. 방귀는 그 중 한 켠에 불과했지만, 다연의 코끼리다운 엄청난 가스의 농도에 곱해져 남자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편 엘레베이터는 너무 느렸다. 다연의 배는 언제 뀌었냐는 듯 다시 꽉 차 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었다. 

"으윽... 죄송한데... 엘레베이터는 안될 거 같아요!"

그리고는 다연은 비상계단을 급히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따라갔다. 하지만 뜀박질은 다연의 장을 더 자극했고, 곧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대로 뀐다면 다시 방 안 꼴이 될 게 뻔했다. 그렇다면 남자도 이번엔 의식을 잃을 게 확실했다.

그 때, 끝없이 내려가는 계단의 한가운데 뚫린 구멍을 보고, 남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만! 이렇게 어때?"

남자의 말을 용케 알아들은 다연은, 엉거주춤 계단 난간을 올라갔다. 마치 정글짐에서 놀던 어린아이처럼, 다연은 팔다리를 난간에 단단히 걸치고, 다부진 엉덩이는 19층 아래로 쭉 뚫린 계단의 한가운데를 막았다.

"좀 자세가 이상한데요..."

"그래도, 이럼 냄새도 밑으로 갈 거 아니야?"

"밑에 사람들은요?"

"에이, 설마..."

"저희 코끼리들 얕보지 마시라고요."

"어... 그래도 현관문 있으니까 상관 없겠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조만 보면 상쾌하기 그지없는 말과 함께, 다연은 눈을 꼭 감았다.

푸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두두두두두두두두두푸두두두두두두둥-!!!

비상계단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에 마치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코끼리도 코로 이렇게 울긴 힘들 것이다. 발효된 가스가 로켓을 방불케 할 엄청난 압력으로 19층 바닥까지 닿을 기세로 뿜어져나왔다. 전에 언제 뀌었냐는 듯, 
압력은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20초, 30초, 50초... 곱하기 초당 방출되는 메탄가스량, 정말 아파트를 채울 기세였다.

여자도 이 자세는 불편했는지 처음엔 온 몸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곧 힘을 뺐다. 통로가 더 넓어진 듯, 더 낮고 웅장한 소리로 다연의 엉덩이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휴우... 이제야 좀 항문이 넓어졌나 보네..." 여자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힘을 풀고 말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꼴 보여드려서..."

"죄송한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어떻게 이런 걸 참고- 아니, 애초에 방귀를 어떻게 이렇게 뀌어요?!" 남자는 소리를 높여 물었다.

"코끼리니까 그렇죠 뭐... 엄청 먹은 게 다 장 속에서 발효되니까..."

남자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뭐, 해리포터에 나오는 가방처럼 마법으로 코끼리의 트럭만한 거대한 장이 저 작은 배 안에 들어갔나..?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그럼 왜 진작- 말 안하셨어요?"

"일 끝날때까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제 잘못이에요... 원래 점심 먹고 뺐어야 하는데." 여자의 눈엔 다시 눈물이 고여갔다. "죄송합니다..."

"아이, 죄송할 거 없다니까요. 다 자연 현상이잖아요, 그렇게 힘이 센 대가로."

"그렇긴 하네요."

-부푸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당 -뿌우우우우우우아아아아푸아아아아아악-! 뿌우우우우다다다다다푸라라라라락--!!

그렇게 말하는 도중에도 다연의 엉덩이에선 한결같이 메탄가스가 배출되고 있었다. 여자가 자세를 좀 바꿀때마다 새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다 채웠는지, 냄새는 이제 현재 층까지도 올라오고 있었다. 밑층에서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누군가 소방알람까지 울렸다.

"쓰읍." 여자는 썩은 표정을 지었다.  "이젠 진짜 - 부우욱! - 나가야겠네요."

"아직도 남았어요?"

"네. 저 코끼리라니까요."

침묵이 감돌았다.

"이 정도로는 저희 사이에선 조금 뀐 거에요." 

의문의 미소를 지은 이삿짐센터 아가씨의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윙크를 하고는, 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남자는 잠시 멍하니 섰다. 몸은 멍했지만, 머리의 열망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보낼 순 없었다! 즉시, 남자는 기다리고 있던 엘레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입구로 내려갔다.

"잠깐만요!" 남자는 겨우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서 여자를 잡을 수 있었다. "어디 가세요?"

"뭐 당연히 집 - 아, 그 전에 가스 뺄 곳 좀 알아보고요."

"제가 아는 한적한 곳이 있는데 거기서 빼실래요?"

"거기 좋아하는 곳이에요?" 

"...아니요."

"그럼 됐네요. 길 좀 알려주세요."

그 때,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 여자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그러지 말고...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네..?"

"솔직히 그쪽 그렇게 뀌는 거 진짜 매력적이거든요! 그러면 오늘 일 배상은 청구 안할테니까, 실례 안된다면..."

여자는 여전히 남자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남자도 금세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가스가 새나오는 아파트를 뒤에 두고, 무서운 정적이 흘렀다.

여자가 대답하기 전까진 말이다.

"네! 고객님이 원하신다면요!"

둘은 동네 뒷산을 올랐다. 가는 도중 다연은 몇 번이고 '가볍게' 한 쪽 다리를 들고 주변 나무의 나뭇잎이 다 떨어질 정도로 몇 초간 세찬 방귀를 뀌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뀌는 게 정말 무덤덤하게 정글을 헤치는 코끼리를 보는 것 같았다.

"여긴가요?" 마침내 둘은 숲 한가운데, 조금 햇볕이 드는 곳에 도착했다. 있는 것이라곤 벤치 몇 개와 운동 기구가 다였다.

"ㄴ...네." 남자는 말했다.

"역시 고향인 자연과 가까워야 좀 상쾌한 기분이 나네요. 장도 좀 제대로 움직이고요."

"무슨-" 하지만 말할 새도 없이 여자는 폭탄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뿌푸푸푸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락!!

부부우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앙-!! 푸라랑!!


마치 하늘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코끼리가 있는 힘껏 코로 나팔을 불어도 이런 소리가 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엉덩이로는 가능하는가 보다. 어찌 보면 거대한 장 전체를 울림관으로 하는 또다른 악기였다. 아니, 메아리치는 대장에서 공연하는 오케스트라였다.

눈 앞에 있는 게 단정한 소녀가 아니라 진짜 집채만한 코끼리였다면 차라리 어느 정도 믿음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다연은 이제 적어도 자기 몸의 10배는 거뜬히 넘어가는 크기의 방귀를,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몇 번이고 배출하고 있었다. 그러고도 불편함이 가시지 않는지, 한쪽 다리를 들고,

뿌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두두두둑!!

벤치에 앉아 양쪽 다리를 들고,

푸푸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등-!!!

뿌아아아아라라라라라파아아아아아다다다당-!!!

숨쉬기도 이렇게 하긴 힘들 것이다. 한때 상쾌했던 공기는 이미 다연의 뱃속에서 발효된 퀴퀴한 냄새로 이미 대체되었다. 분명 사방이 트인 숲인데도 말이다.

"아, 맞다. 어떠세요? 버틸 수 있겠어요?" 다연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여전히 무식하게도 예의바르게 보이는 저 얼굴과 함께. 

"아... 네."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켜 보았다. 하지만 실수였다. 바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다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에요."

"산소 없이 숨쉬는데 적응하라고요?"

"에이, 방귀가 아무리 강해도 산소를 없애는 건 아니라고요. 가스농도가 높아질 뿐! 물고기는 온통 물이어도 잘만 숨쉬잖아요?" 여자는 유쾌하게 말했다. 남자의 눈엔 눈물 범벅이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메탄가스 속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라고?"

"저희같은 코끼리랑 같이 다니시려면 그러는 편이 나을걸요."

"그 대가로 싫은 사람 있으면 근처에도 못 오게 하고, 지금처럼 일도 서로 도와주고, 뭐 공생 같이?"

헤헤, 그런 셈이죠... 잠시만요." 그리고 여자는 살짝 오른쪽 엉덩이를 들었다. 살짝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둘 다 간과한 게 있었다. 수레가 거대할수록, 꽉 찰수록 소리가 적다는 것.

뿌푸푸푸푸푸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푸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정말 갑작스레 시작된 방귀의 폭탄에 새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다연도 이번 방귀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는지 당혹스런 얼굴을 짓고 배에 손을 갖다댔다. 말 그대로, 구멍뚫린 거대한 비행선처럼 엄청난 양의 진노란색 가스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가스줄기의 크기만 해도 진짜 코끼리의 절반 크기였다.

이쯤 되면 다연 혼자서도 거대한 농장의 메탄가스 배출량을 따라잡을 것 같았다. 마치 끝없는 가스의 기차가 여자의 엉덩이에서 나오는 듯 했다.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여자의 36.5도의 습한 온실가스는 주위를 삽시간에 한여름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인류의 환경오염같이, 여자의 방귀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뿌다다다다다뿌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푸푸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닥-!!!

너무나 긴 방귀 동안 남자에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지, 이런 가스량을 가지면 어떤 기분일지, 내가 가스중독으로 죽지는 않을지 말이다. 한편 다연은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이내 눈을 지그시 감고, 손을 모으고 차분히 자신의 아랫배가 일을 끝내길 기다렸다. 거름 냄새에 찌든 회색 작업복은 거세게 휘날렸고, 이미 팬티는 찢어진 듯 정제되지 않은 소리가 났지만 상관없었다.

그리고 냄새는... 며칠, 아니 몇 주일지 모르는 시간 동안 장속에서 발효된 어마어마한 양의 곡물, 거기다 인간 사회에서 먹은 계란, 유제품, 가공식품까지,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과 정화조를 합치면 딱 이 냄새이지 않을까. 마치 코가 기관총으로 쏘이는 것 같았다. 한편 다연은 이 냄새를 맡고는 알았다. 이제 장 속 묵은 가스가 슬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으..." 여자는 중얼거렸다. "이건 제 입장에서도 좀 심하네요. 인간 음식 때문인가..."

그녀 또한 하루 종일 이 수준의 방귀를 뀌진 않기에, 냄새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뀔 수밖에 없었다. 계속 장 속에 묵혀뒀다간 얼마나 더 독해질 지 모르니까. 

-뿌아아아아다다다다다당!! -푸푸푸우우우우우우우우르르르르르르르륵-!!! 푸르르륵!!

3분 1초가 지나서야, 이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방귀는 마침내 끝났다. 남자는 뭐라 할 힘도 없었다. 다연도 어색하게 큰 귀를 이용해 반쯤 인화성이 된 공기를 부채질했다. 하지만 반경 50m는 족히 생성된 가스의 돔 앞에 별로 쓸모 없는 짓이었다.

"이래도 괜찮아요? 빨리 나가서 신선한 공기라도 마시고 오실래요?"

하지만 남자의 폐와 뇌는 다른 신호를 보냈다. 메탄 중독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걸까, 아니면 진짜 다정한 이삿짐센터 아가씨의 엄청난 반전 매력에 빠져버린 걸까.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 같았다. 

"...아니. 더..." 남자는 다연을 잡고 말했다. "더... 가보자. 너도 좋지?"

"네. 인간 세상에 살면서 매번 방귀 참기 너무 힘들었거든요... 조금이라도 실수로 뀌면 이상하게 보고..." 다연은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할 건 없고..."

"저희 코끼리는 감사한 건 절대 잊지 않거든요. 그 의미로 환영식 해드릴게요! 그건 바로..."

그리고 다연은 남자의 옆에 딱 붙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마치 여자의 아랫배 전체가 끓어오른 듯한 진동이었다. 다연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남자의 손을 단단히 부여잡고, 처음으로 제대로 본래의 8톤 코끼리의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외쳤다.

"저랑 같이 느끼시는 거에요, 코끼리 대장 풀 파워!"

빠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랑-!!!

진정한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코끼리 아가씨의 산을 뒤엎는 듯한 방귀 앞에서 남자는 한 마리 작은 참새에 불과했다. 코끼리의 트럭만한 대장의 지진같은 진동에, 사방을 뿌옇게 뒤덮는 진갈색의 안개에 남자의 생각마저 멈출 것 같았다.

확실한 건, 인간의 눈으로 코끼리를 판단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다연은 자연재해 그 자체였다. 인간이 농장을 만들든, 소를 수십마리를 키우든 대자연에 도전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은 제일 큰 화산처럼 폭발하는 다연의 메탄가스 앞에서 모두 산산조각났다. 이전까지의 방귀 모두, 이번 방귀 앞에선 맛보기에 불과했다.

뿌푸푸푸우우우우우루루루루뿌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빠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지만 남자는 마지막 남은 정신으로 생각했다. 이 자연재해가, 이 코끼리의 방귀가 얼마나 강하든, 그녀는 여전히 착한 인간의 마음을 가진 아가씨였다. 누구와 다를 바 없는 순수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여자. 남자는 다연을 사랑했다. 설령 그녀의 메탄가스에 질식해 죽더라도, 다연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변 환경은 이게 숲속이 맞는지 의심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주변 나무들의 잎사귀는 모두 날아가고, 몇몇은 뿌리마저 뽑혔다. 엄청난 양의 독가스에 셀 수 없는 곤충들과 새들이 그 자리에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이 모든 가스를 뿜어내는 여자는, 여전히 남자 곁에 있었다. 남자의 손을 잡고, 조금이나마 의지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손에서 느껴지는, 주위의 가스보다 약간 더 따뜻하고 말랑한 그 촉감에 미소지었다.

뿌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랑부우우우우우푸푸푸푸푸푸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남자의 뇌는 결국 산소 부족과 메탄 과다에 응급정지를 선언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건, 한결같은, 아니 여전히 더 커지고 있던 코끼리 아가씨의 산을 뒤흔드는 방귀와, 그 사이로 들리는 다연의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도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차서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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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안이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배고픔과 어지러움을 느끼고 물을 뜨러 가려는 찰나, 침대 옆에놓인 쪽지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이삿짐센터 다연입니다! 
여기 제 연락처입니다. 앞으로 저희 코끼리 이삿짐 서비스 많이 이용해주세요! 감사합니다!

PS. 기절하고 나고서도 몇 십 분 정도 더 뺐는데, 그 후폭풍은 직접 가서 구경해보세요! 5분도 안돼서 기절해 버리시면 서운하죠... 뭐, 일반 인간은 1분도 못 버티긴 하지만요. 앞으로도 그리우면 연락해 주세요!"

전날 기억을 잃은 곳으로 가보니, 마치 산불이라도 난 듯 족히 100미터 반경의 숲이 사라져 있었다. 그곳에 아직도 남아있는 다연의 독한 자연 냄새는, 헛웃음만이 나오게 했다. 그리고 더 위험한 의문이 들었다.

다른 코끼리들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