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 숨어사는 엘프 마을.

아주 옛날엔 주변 인간 세력들을 복속시키고 노예로 부리며 악명을 떨쳤던 종족이지만 지금은 숲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조용히 살아가는 엘프들의 작은 촌락이다.

숲 바깥의 일에도 관심을 끊고 조용히 사는 이들이 아직 인간에게 들키지 않은 이유는 마법 덕분이다.

태생적으로 마법에 능한 엘프들은 미개한 인간이 함부로 자신들의 영역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숲의 구조를 비틀었다.

함부로 들어온 인간은 포기하고 숲을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숲 속을 헤매야 한다.

엘프들의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숲을 훼손해가며 억지로 길을 만드는 이들은 엘프 파수꾼들에게 끌려가 합당한 벌을 받는다.


*인간은 엘프보다 몸이 약하고 수명이 짧기 때문에 엘프의 벌에 크게 고통 받지만 엘프는 인간을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은둔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수백년째.

전성기처럼 화려한 마법 문명을 꽃피우지는 못하더라도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엘프들에게 가장 보람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굳이 자연 속에서 사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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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변두리에서 엘프 순찰대가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도 마찬가지야."


순찰대장은 땅의 흙과 말라비틀어진 식물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생명이 사라지고 오염된 흙에서 기분나쁜 감각이 느껴진다.


"점점 이런 일이 많아지고 있어요. 역시 누군가 일부러 독을 풀은 걸까요?"

"왜 감지 마법에 걸리지 않은 걸까요?"

"변두리로 갈 수록 마법이 약해지고 있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어서 돌아가자, 장로님께 알려야지."


그렇게 말하며 오염된 흙을 만지던 순찰대장이 몸을 일으켰다.

순찰대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모두 왠지 서두르는 모양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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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마을에 도착하자, 순찰대는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순찰대가 돌아왔다!"


보초가 소리쳤다.

그러자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름다운 엘프는 이 마을의 장로.

까마득한 옛날부터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녀는 전성기의 엘프 제국 귀족이었다고 알려져있다.


"변두리는 어땠나요? 에아를린."


그녀가 순찰대장을 이름으로 부르며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마법이 약해져 독기가 침투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랬나요..."

"왜 이렇게 마을이 어수선한 것인가요?"


마을 곳곳에서 엘프 경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삶에 여유가 배어있는 엘프답지 않은 모습이다.


"조금 전부터 마을의 보호마법이 갑자기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쪽을 감시하러 갔던 분들이 실종됐는데, 1명만이 돌아와서 탈진했어요. 지금은 의식을 되찾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엘프들이 없어졌다. 그것은 숲에서 은둔하는 엘프들에겐 충격이다.

수백년간 숲에서 엘프를 찾으려 시도한 자들 중 무사한 이가 없었다.

들짐승은 물론 미개한 인간따위가 엘프를 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무언가 중대한 일이 생겼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엘프 마을과 숲의 운명과도 직결될지 모른다.


엘프들이 숲에 숨어사는 것은 도망쳐서가 아니다. 세상에 널리 자신들의 뜻을 알렸으니 세상 이들에게 숭배받으며 숲에 숨어 휴식을 취하면서 낙원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 엘프의 땅을 누군가가 더럽히려고 든다면 절대 용서해선 안된다.


"그러니 막 왔는데 미안하지만 동쪽 숲을 정찰해줄 수 있나요?"

"분부대로. 즉시 실종자들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고마워요, 당신에겐 늘 신세만 지는군요."

"아닙니다. 당신 덕에 이곳이 성역으로 남을 수 있던 것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순찰대가 다시 동쪽으로 떠났다.


"그러면 이제..."


장로가 뒤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던 순간.


....꾸르르륵...!


"어...?"


갑자기 찾아오는 기분나쁜 뱃속의 감각.


"장로님?"


이상하게 여긴 보초 엘프가 장로에게 다가갔지만...


꾸르르르륵...!


"읏?!"


곧 그녀도 배를 움켜잡고 주저앉았다.

하나둘씩, 엘프 마을의 아름다운 엘프들이 갑자기 한 손으로는 배를, 다른 손으로는 엉덩이를 누르며 제자리에 멈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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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이상하다.

순찰대장 에아를린은 동쪽 숲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평상시의 숲은 엘프의 마법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고 신선한 공기 속에서 새들이 노래하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공기도 무겁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어째서 점점, 배가 무거워지는 것 같지...?'


기분탓이 아니다.

정말로 엘프들의 하복부에 점점 불편한 감각이 쌓여가고 있다.

물론 엘프는 인간따위보다 훨씬 우월한 신체를 지녔기에 이런 걸 참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숲에 가득한 이 기이한 분위기는 기분나쁜 감각을 더 증폭시키고 있었다.


".....잠깐."


순찰대장이 대원들을 정지시켰다.


"....누군가가 오고 있어요."


멀리에서 들려오는 수풀을 헤집는 소리.

순찰대원들이 각자 칼을 뽑고 화살을 겨누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이 냄새는....?'


점점 가까워지는 수풀 소리.

그리고 점점 강해져오는 기이한 악취.


"하아, 하아, 읏, 큭....하아...!"


가뿐 숨을 내쉬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히익...!"


엘프들을 보자 그녀는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도 뾰족한 귀와 고운 피부,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진 엘프이다.

순찰대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당신은...?"


실종된 동쪽 감시대의 대장.

평소 주의깊고 여유가 많으며 나긋나긋하지만 일에는 착실한 성격으로 인망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동포들에게도 겁을 먹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가지런히 정돈돼있던 옷은 너덜너덜하고 아랫도리는 찢어져서 그 속이 다 보이고 있는데, 엘프의 질긴 옷가지는 어지간해선 찢어질 일이 없다.


"무슨 일이 있었죠?"

"아, 아아....아...."


순찰대장 에아를린이 조심히 손을 뻗자 이미 혼란에 빠진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부욱!!


"웃?!"


그녀에게서 들린 불쾌한 소리.

긴장하고 있던 순찰대가 큰 소리에 놀라 움찔했다.


"크, 아아....하아....하아...!"


배를 움켜쥐고 숨을 헐떡이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은 오랜 세월을 같이 산 다른 엘프들에겐 처음 보는 모습이다.

이윽고 몸에서 힘이 빠지며 제자리에 주저앉은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하아."


한숨을 쉬고, 그녀는 곧 몸에서 모든 힘을 뺐다.


뿌우우욱...!

푸륵, 푸르르르르....!!

쉬이이이이이이이......!


곧 모든 엘프들이 경악하며 물러섰다.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맡으며.


푸르륵, 뿌우우욱....!


"크하악, 하아....아, 아악....!"


푸욱!!


천천히 새어나오고, 갑자기 폭발하듯 터져나오고, 힘없이 땅바닥에 널브러지는 오물.

아름다운 엘프의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배설물이 앞뒤로 터져나오고 있다.

저 가녀린 몸에 어떻게 담아내는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이, 이건 대체...?"


엘프들은 경악하였다.

아름다운 엘프가 이렇게 끔찍한 몰골이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엘프의 배설행위는 다른 생물들과는 다르다.

엘프는 자연에 존재하는 독기를 몸으로 흡수하고 자연이 정화하기 쉽도록 몸속에서 변환시켜 배출한다.

그것은 길게는 일주일이나 걸린다.

필요하다면 조금 더 견뎌내기도 한다.

항상 자연 속에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엘프들에게 이런, 제어되지 않는 설사와 새어나오는 소변은 상상하기 힘든 일.

애초에 마을이 아닌 바깥에서 아무데나 배설 행위를 한다는 것은 엘프들에겐 기억도 안 나는 까마득한 옛 갓난아기 때나 하는 짓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인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수치에 눌려 죽어버리고 싶어할 정도로 치욕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인망 높은 자신들의 동포가, 자신들의 눈앞에서 저지른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아, 아, 아아...!"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그녀가 입을 뻐끔거릴 때, 뒤쪽에서 다시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경계하면서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혼란스러워하던 엘프들은 곧 무언가 이상하단 걸 눈치챘다.


꾸륵, 꾸르륵....!


에아를린의 뱃속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꾸르르르륵!!


곧 모든 순찰대원들의 뱃속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이것이 숲 속 엘프들의 몰락 첫장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