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목록]

1



-2화-


...으윽!


머릿속 한 구석에 지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지며 정신이 들었다.


"크으..."


눕혀져 있는 등을 통해 바닥의 딱딱한 감각이 전해져왔다. 머리속이 약간 울리는 듯한 멍한 느낌이 들었다. 잘 힘이 안 들어가는 몸의 여기저기를 움찔거리니 정신을 잃기 전 기억이 하나 둘씩 떠오르고, 조금씩 상황이 기억났다.

맞아... 난 드래곤에게 납치당했었지.

그리고...?!


'잠시 자.'


"...!!"


"일어났네."


정신을 잃기 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기억나던 중 소녀의 목소리가 머리 바로 위쪽에서 들려왔다. 흐릿해져있었던 기억이 점차 선명해지면서 소녀에게 당했던 일이 떠오르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 따지고 싶은 충동감이 강하게 들었다.

어떻게 사람한테 그걸 먹일 수... 잠깐, 방금 분명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었지?

게다가 꼭 뭔가 그 사이를 가로막고있는 듯 한... 허억?!


'으아앗!'


"끄응..."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것에 경악한 나머지 방금 전까지 남아있던 잠기운이 깔끔하게 날아갔다. 소녀는 내 얼굴, 즉 눈 바로 위에 엉덩이를 벌리고 쪼그려 앉은 채 힘을 주고 있었다. 이제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연분홍색 항문이 움찔거리며 수축했다가 늘어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안색이 새파래졌다.

안 돼, 이런 건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흘리면 안 돼."


소녀는 엉덩이를 살짝 움직여 내 입쪽에 항문을 위치시켰다. 항문이 부풀어오르면서 다시금 그 안쪽에서 내용물이 나오려고 했다. 등골에 싸늘해진 나는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했으나 몸이 마치 마비라도 당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하기조차 꺼려지는 그것이 소녀의 항문에서 나와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기만 해야 하는 것이다!

제발 멈춰- 라고 애타게 말하려던 그 때였다.


'잠깐, 이건...?'


나는 소녀의 항문에서 나온 그것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에 살짝 당황했다. 손가락 몇 마디 정도 되어보이는 크기의 그것은 생물의 전형적인 대변이 아니라 알처럼 생겼었다. 게다가 악취도 안 났다.

이건 대체- 라고 내가 의아해하기가 무섭게 그 알처럼 생긴 소녀의 배설물이 내 입으로 들어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우웁...!"


"휴... 끝났어."


소녀의 배설물을 내가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삼키자 소녀는 한시름 놨다는듯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벌어진 항문이 소녀의 호흡을 대신 하듯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면서 뻐끔거리며 속살을 내보였다. 내가 토해내려고 켁켁거리자 소녀가 엉덩이를 살짝 움직여 내 입 쪽에 있던 자신의 항문을 내 눈 앞에 바짝 갖다댔다.


"뱉어내면 더 넣을거야."


"웁...!"


벌어져서 안쪽이 보이는 항문이 위협적으로 움찔거리자 더는 이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억지로 입을 꾹 닫았다. 그제서야 소녀는 만족했다는 듯이 내 위에서 일어나 옷마무새를 가다듬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쳐지지 않고 훤히 보이는 소녀의 가랑이를 보면서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제보니 옷 아래로는 아무것도 안 입고 있네. 아무데서 싸려고... 이게 맞나? 아무튼 그럴려고 안 입은 건가.


소녀는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했다.


"이제 일어나도 될 거야."


"어...?"


내 등 밑으로 손을 집어넣은 소녀는 누워있던 내 윗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러자 방금까지는 아무 힘도 안 들어가던 몸에 점점 활력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지면서 몸이 일으켜졌다. 나는 움찔거리면서 꿈틀대는 내 손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놀랐다.어떻게 된 거지? 아까는 꼼짝도 할 수 없었는데...


"내상이 심해서 급한대로 치료했어. 중상을 입었던 곳은 거의 나았을거야. 그치만 아직 완전히 나을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해."


"네가 날... 치료했다고?"


나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소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치료라고 할 만한 건 전혀 안 한 것 같았는데, 언제 한 거지? 내상이 심했다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당혹스러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내게 소녀가 말했다.


"난 포션 호문쿨루스니까."


그리고 소녀의 왼쪽 눈가에 초록색 빛이 나며 상형문자같은 것이 나타났다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포션 호문쿨루스?"


처음 들어보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호문쿨루스라면 모르지는 않지만... 포션 호문쿨루스는 뭐지?


"모르는 거야?"


내가 어리둥절한 것을 눈치챘는지 소녀가 묻자 나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모르는 걸 아는 척 할 필요는 없겠지.


"호문쿨루스가 뭔지는 알고 있어?"


"그거잖아.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조인간. 예전에야 꿈같은 얘기였지만, 마생물학이 발달한 요즘은 제법 많아졌지."


소녀의 말에 답하며 나는 호문쿨루스를 처음으로 봤던 때를 떠올렸다. 예전에 한 번 영지에 호문쿨루스를 판매하는 상인이 찾아왔었는데, 그 상인이 영주님에게 호문쿨루스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을 얼핏 들었다. 호문쿨루스들은 겉보기엔 사람과 차이점이 거의 없는 것 같지만 내부적인 구성은 생물보단 기계에 가깝다고 했다. 일종의 골렘이라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라서 그 정도만 듣고 말았는데 여기서 이렇게 다시 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되게 신기했었지.

내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 된 인조인간들. 그게 호문쿨루스야."


"특정한 목적?"


"그래. 예를 들면..."


소녀는 물건들이 쌓여있는 곳에 가서 뒤적거리더니 책 한 권을 가져왔다. 제목에 '호문쿨루스 전집' 이라고 적혀있는 책을 소녀가 펼치자 다양한 사람, 아니 호문쿨루스의 그림이 나타났다. 창을 들고 있는 호문쿨루스, 공구를 들고 있는 호문쿨루스... 마치 직업 안내서같았다.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호문쿨루스는 사람을 아득히 능가하는 신체능력과 병장기를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건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호문쿨루스는 강인한 체력과 근력을 가져. 특화된 분야에 한해서는 사람보다 훨씬 유능해."


"호오..."


소녀가 읽어보라는 듯 책을 나에게 살짝 밀자 나는 책을 들고 호문쿨루스들의 그림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옆에는 비교를 위해서인지 사람도 같이 그려져 있었는데, 척 봐도 호문쿨루스가 사람보다 월등히 강해보였다.

호문쿨루스란 이런 것이었군.


"그래서..."


나는 책을 읽다가 슬쩍 소녀를 쳐다봤다. 멍한 표정의 소녀가 물음표를 띄우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까닥이자 나는 운을 띄우듯이 질문을 던졌다.


"너는 '포션 호문쿨루스' 니까... 포션을 만드는데 특화된건가?"


나는 책을 내려놓으며 소녀가 나한테 '포션' 을 먹였던 장면을 잠깐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내가 먹었던 것들은 악취가 전혀 나지 않았다. 약 특유의 쌉싸름한 맛은 있었지만. 그걸 나한테 먹인 방법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그렇지, 정상적으로(?) 먹었다면 그게 약이라는걸 먹는 순간 알아차렸을 것이다.


"맞아."


내 질문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가슴에 한 손을 짚었다.


"나는 포션을 만드는 호문쿨루스. 먹어본 것이라면 어떤 포션이라도 만들 수 있어. 그것이 나, 만능 포션 제조사 루엔브야."


"만능 포션 제조사..."


이름을 밝힌 소녀의 말을 들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까 들었던 말의 일부분을 되뇌었다. 먹어본 거라면 어떤 포션이든 제조해낼 수 있다... 생각해보니 엄청난 능력이었다. 저 말대로라면 전설의 비약이라도 먹어보기만 했다면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고 보니 이름은 루엔브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살짝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포션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설마...?"


"응, 네가 겪은 대로."


루엔브는 자신의 배를 탁 짚으며 말했다.


"난 내가 먹은 포션의 재료를 몸 속에서 포션으로 만들어. 내 장기는 모두 포션 제작을 위한 거야. 그리고 완성된 포션은 배출구로 내보내."


"으아, 세상에..."


질색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엽기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만능 포션 제조 능력을 가진 것 까지는 좋은데, 왜 하필이면 그 방식이란 게...!


"포션을 만드는데 쓰이는 곳은..."


"자, 잠깐!"


나는 루엔브가 일어서서 옷을 걷어올리려 하자 다급하게 루엔브를 제지했다. 그사이에 허벅지까지 자신의 옷을 걷어올린 루엔브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 보여줘도 돼!"


"안 궁금해?"


설명하는데 조금 들뜬 듯한 루엔브는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날 마주봤다. 나는 조금 마음이 약해지려고 했지만 더 이상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어서서 루엔브의 어깨를 약하게 부여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상관없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한테나 그러면 안 돼! 어쨌거나 넌 여자애야. 호문쿨루스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라고."


"호문쿨루스든 인간이든 마찬가지...?"


루엔브는 무언가 큰 감명을 받은 것처럼 내가 한 말의 일부분을 되뇌였다. 말이 먹혀들 것 같자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래. 넌 인격체로써 존중받을 권리가 있어. 그런 건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거라고. 넌 호문쿨루스라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난 한 명의 사람으로써 널 같은 사람으로 대할거야."


"나를, 사람으로..."


루엔브는 놀란 듯 하면서도 날 올려다보는 시선을 당당히 고정시키고 다시금 내 말의 일부를 중얼거렸다. 뭔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말한 것 같지만 아무튼 이걸로 루엔브가 엉덩이를 까는 것은 막은 것 같아 난 겨우 안심했다.


"그래, 루엔브."


내가 어깨를 부여잡고 있던 손을 떼자, 루엔브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말, 처음 들어."


그리고는 꼴똘히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호문쿨루스를,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는거야?"


"그거야..."


나는 갑자기 묘해진 루엔브의 태도에 조금 당황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루엔브에게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루엔브는 지금까지 포션 만드는 도구로만 취급을 받았을 뿐, 인격을 가진 존재로 대해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껏 루엔브가 어떻게 취급받아왔는지를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좀 특이한 면모가 있긴 해도 본질적으로는 착하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론 그랬다.

난 확실히 루엔브에게 말해두기로 마음먹었다.


"당연하잖아. 인간이나 호문쿨루스나 똑같은 인격을 지닌 존재야. 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넌 좀 별난 소녀일 뿐이야. 도구 같은 게 아니라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최대한 추려서 말했다. 별볼일 없는 말솜씨라 제대로 말한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난 내가 할 말을 분명하게 전했다고 확신했다.

무릇 인격을 지닌 존재라면 누구나 자신의 인격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으니까.

어떤 배경을 가졌든 간에.


"...흐음."


루엔브는 내 말에 무언가를 꼴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괜히 뻘쭘해진 나는 너무 낯간지럽게 말했나 싶어 조용히 루엔브와 마주보기만 했다.

눈싸움같은 시선 교환이 적막 속에서 계속되던 중, 루엔브가 뭔가를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정했어."


"어? 뭘?"


"너랑 같이 여길 나갈래."


"뭣?!"


난데없이 이 곳을 나가자는 이야기를 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해서 난 그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루엔브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원랜 여기서 그냥 시간을 하염없이 보낼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달라졌어. 준비를 갖추고 내일 여길 탈출하자."


"그렇지만 여긴 드래곤의 둥지인데?!"


나는 루엔브를 말리며 그 빌어먹을 거대한 드래곤에게 잡혀왔던 순간을 떠올렸다. 압도적인 체구도 체구지만 그 속력은 반칙 수준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래도 난 우리 영지의 기사들 중 나름 강한 축에 들었는데, 도망칠 겨를도 없이 바로 그 드래곤에게 낚아채여 이 곳에 끌려왔다.

그런 무지막지한 놈을 상대로 어떻게? 게다가 여긴 엄청나게 높은 절벽 한가운데인데!

나도 결코 약한 편은 아니지만, 그 드래곤은 규격 외의 상대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당혹감과 걱정, 그리고 두려움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던 나에게 루엔브가 짧게 말했다.


"할 수 있어."


"...!"


"날 도와준다면."


루엔브는 조금 의연해보이는 표정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디 작은 손이었지만 지금은 왠지 커보였다. 여전히 멍해 보이는 표정이지만 눈동자에 비치는 황금색의 눈빛은 루엔브의 결심을 어렴풋이 말해주고 있었다.

진심이구나, 이 녀석.


"이름을 알려 줘."


"너..."


다시 한 번 루엔브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듣기에는 그 나이대의 소녀와 비슷한 톤이었으나 나는 그것이 결코 평범한 소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 좋아.

나도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내 이름은 데펜이야. 잘 부탁해, 루엔브."


그 말과 함께 루엔브의 손을 맞잡는 순간,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으앗?!"


청록색의 빛이 내 손을 맞잡은 루엔브의 손에 감돌다가 강렬한 빛이 터져나왔다. 루엔브의 눈에 아까 봤던 문양이 빛을 내며 떠오르고, 같은 문양이 천천히 내 팔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문양이 그려져감에 따라 주위에 강한 바람이 불며 루엔브를 감싸듯이 몰아쳤고, 나는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어 눈가를 팔로 가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바람이 거칠게 온 몸을 휩싸는 가운데, 루엔브가 말했다.


"임프린팅(Imprinting)- 등록 완료."


"...!"


루엔브의 말과 동시에 바람이 잦아들며 이내 조용해졌다. 팔을 내리자 루엔브의 손을 맞잡고 있는 내 팔에 문신처럼 새겨진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루엔브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루엔브가 살짝 웃으며 한 말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데펜, 나의 새로운 주인이 된 걸 축하해. 이제부터 나는 데펜만의 포션 호문쿨루스야. 앞으로 잘 부탁해."


"뭐, 뭐라고~!"


그리고 이것이...

이후 수많은 사건들의 출발점이자 나의 본격적인 모험의 발단으로 회자될 루엔브와 나의 여정이 시작이었다. 




예, 뭐... 이런 내용입니다.


식분이긴 한데 진짜 똥(?)은 아니라서 식분 싫어하는 사람도 그냥저냥 읽을 수 있을것 ㅎㅎ...


질문은 언제나 환영.


재밌게 보셨으면 추천 아끼지 말아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