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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레사의 레어는 단순한 동굴이지만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마치 개미굴같은 구조. 루엔브와 내가 있던 곳은 일종의 현관같은 곳이었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더 넓고 큰 동굴로 이어졌다. 각 동굴에는 갈림길이 제법 많이 나 있어 미궁을 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드래곤의 레어 치곤 꾸밈새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의 동굴 그 자체. 어마어마하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재보도 봤는데 동굴에는 어떤 장식도 없었다. 여기가 레어라는 걸 몰랐다면 그냥 보물이 쌓여있을 뿐인 곳으로 착각했을 정도다.여러모로 이상한 드래곤이다. 보통 드래곤들은 사치가 굉장한 나머지 궁전도 울고 갈 정도로 으리으리하게 레어를 꾸민다던데. 그만한 재보도 있었으니 불가능하진 않았을테고.

알 수 없는 구석 투성이군...


"여기야."


얼마나 동굴 속을 걸었을까, 루엔브와 나는 그냥 길이 뚫려 있던 동굴들의 통로와 다른 커다란 문 앞에 멈춰섰다. 내 키의 열 배는 충분히 되어보이는 거대한 문. 지금껏 지나온 동굴들 중에서 여기만 막혀 있으니 루엔브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여기가 그 무구 창고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당연하다면 당연하려나. 문으로 막힌 곳은 여기가 유일하니까.

근데 이걸 어떻게 열고 들어가야하지?


"열쇠가 필요해."


내 생각을 읽듯이 말한 루엔브는 느닷없이 또 자기 옷을 걷어올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하반신을 훤히 드러냈다.그리고 쪼그려앉은 채 흐읍, 하고 힘을 주더니 항문에서 흰 덩어리같은 것이 나왔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느끼는거지만, 꼭 용변 보는 것 같다. 실제론 아니지만.

"그게 뭐야?"

"형상재현 포션이야. 일회용."

자기가 배출한 흰 덩어리를 집어 든 루엔브는 내가 그 덩어리가 뭔지 묻자 나에게 그걸 슥 들어보였다. 그러자 흰 덩어리가 움찔거리더니 루엔브의 손 위에서 점차 모양이 변해갔고, 곧 열쇠 모양이 되었다. 포션을 단순히 먹는 걸로만 알고 있던 나는 그것이 상당히 신기했다.

약이 아닌 포션도 있나보다.


"손 위에 올리고 재현하고 싶은 물건을 떠올리면 그 물건으로 변해. 어느정도 제약이 있어."


"편리한 포션이네."


"먹으면 큰일나."


다른것도 굳이 먹어야 할 필요는... 크흠.

루엔브는 열쇠로 변한 포션을 쥐고 짧게 설명한 루엔브는 문의 자물쇠같은 것에 열쇠를 끼워넣고 돌렸다. 철컹 하는 묵직한 쇳소리가 나면서 자물쇠가 떨어지고 문이 저절로 스르륵 열렸다. 열쇠는 문이 열리자 흐물흐물 녹아내려 없어졌다.

과연. 저래서 일회용이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문이 열리자 루엔브가 휙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나에게 손짓했다.


"들어가자."


"너 되게 신나보인다?"


"기분 탓이야."


"아, 그러십니까."


대놓고 시치미를 떼는 루엔브에게 나는 실없는 소리를 한 번 해주고 창고 안으로 들어가 안의 엄청난 광경에 숨을 삼켰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지금까지 봤던 대충 쌓여만 있던 동굴의 물건들과 달리 붉은 색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거대한 홀 같은 방 안의 무구들은 흡사 전시관처럼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척 보기에도 살벌해 보이는 오만가지 무기들이 늘어서 있으니 감탄이 나왔다. 평범한 단검에서부터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거대한 칼까지 별의별 무기가 다 있었다. 못해도 100개는 넘어보였다.

말도 안되는 규모다. 혼자서 이걸 다 모았다고?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에 입을 쩍 벌리고 있던 나는 헛, 하고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내 검부터 찾아야 해."


"어떻게 생겼어?"


내 검을 찾으려 무기들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는데 루엔브가 나에게 착 달라붙어왔다. 내가 검을 뺏긴 건 아는데 검을 직접 본 건 아닌 모양이다.

음, 생김새라... 좀 특이하긴 하다.


"날이 없어."


"검인데?"


"설명하자면 좀 복잡해."


말보단 찾아서 직접 보여주고 설명해주는게 낫겠다 싶어 나는 무기들을 훑어보며 빠르게 지나갔다. 이 곳의 무기들은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는 것 같으니 검 종류가 있는 곳이라면...

도검류의 무기들이 모여있는 곳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드디어 내가 그토록 찾던 내 검을 찾았다.


"바로 이거야!"


"정말 날이 없네."


손잡이와 코등이 부분이 깔끔하고 세련되게 장식되어 있는 검을 발견한 나는 곧장 그것을 주워들었다. 뺏겼을 때의 모습 그대로다. 혹시나 켈레사가 훼손하기라도 한 건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 기우였던 모양이다.

날이 없는 네모반듯한 세이버(긴 양날검) 형식의 검신, 널찍한 손잡이 부분과 코등이에 음각되어 있는 금속제 장식. 여기저기 빛바랬지만 세공된 은처럼 반질반질한 윤기. 거기다 검신에 새겨진, 마법검임을 나타내는 마법 룬 문자.

어느 한 군데 상한 곳 없이 뺏겼을 때 모습 그대로다!

검을 되찾았다는 희열감을 만끽하는데, 아까부터 은근히 밀착해오는 루엔브가 나에게 바짝 달라붙으며 물었다.


"날이 없는데?"


"기본 상태에선 검보단 둔기에 가까워. 하지만 이렇게 하면..."


나는 검의 손잡이를 잡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검의 룬 문자에 하늘빛의 빛깔이 돌면서 검신에 바람이 모여들고, 뚜렷하게 형태를 이룬 바람이 검신의 날 부분에 밀집되면서 새햐얀 날이 되었다.


"...비로소 검이 되지."


"정말이네."


"조심해. 요동치고 있는 검날이라 닿기만 해도 베여."


나는 루엔브가 검을 만져보려고 하자 다급하게 주의시켰다. 세차게 범람하는 강물같은 형태로 유동하는 바람의 날은 직접 휘둘러 베지 않아도 매우 강한 절삭력을 발휘한다. 루엔브의 손이 조금이라도 닿았다면 바로 피를 봤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검, 폭풍검 게일하울러.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보물이다.


"평소엔 날이 없지만 마력을 주입하면 매우 강한 절삭력을 가진 바람의 칼날이 만들어져.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 날씨를 바꿀만한 폭풍도 일으킬 수 있다고."


"신기하다."


"뭐, 나는 고작 검날만 유지하는게 전부지만."


내가 마력 운용을 멈추자 바람으로 바람의 검날이 사라지고 검이 원래의 몽둥이같은 형태로 돌아왔다. 나는 검을 허리춤에 찬 뒤 허리띠에 달려 있는 철사를 검의 손잡이 끝부분에 고정시켰다.

잃어버릴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허리춤의 벨트랑 연결되는 철사까지 달아둔건데 그걸 그 드래곤 녀석이 끊어버리고 가져갈 줄은 몰랐다. 철사를 더 튼튼하게 만들든지 해야겠다.

이걸로 제일 중요한 건 갖춰진 셈이군.


"그래, 일단 검은 되찾았으니 다행이긴 한데..."


나는 온갖 무기들이 휘황찬란하게 늘어서있는 화려한 무기 창고를 둘러보며 루엔브에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드래곤을 혼자서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야."


"데펜은 충분히 강할거야."


"칭찬은 고맙다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루엔브의 태도에 괜히 내가 멋쩍어졌다. 게일하울러가 강력한 마법검인 건 맞지만, 아직 난 내 검의 위력의 10%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내 마나 수준도 평범하다. 애초에 난 견습 기사니까.

그에 반해 이 무기 창고에 있는 무기들을 보건대, 켈레사라는 그 드래곤 녀석은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답도 안 나올 정도로 강할 게 분명하다. 안 그러고서야 어떻게 이 많은 무기를 모았겠는가. 단순히 멋지게 생기기만 한 무기 뿐 만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무기들도 널려 있었는데, 그런 무기들은 하나하나가 막강한 무구다. 그런 것들을 하나도 아니고 이만큼 많이 모았다는 것은 그만한 힘과 능력이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내가 어찌저찌 유효타를 먹이는데 성공해도 녀석의 공격 한 번에 난 사경을 헤멜 게 뻔하다. 이건 그만큼 불공평한 대진이다. 내가 극강의 방어구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네가 싸울 건 아니잖아."


"난 싸우는 쪽으론 아무것도 못 해."


"아주 당당하게 인정하는구나..."


혹시나 싶어서 찔러봤는데 역시나.

그럼 어떻게 그 드래곤하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일까?


"방법은 간단해, 데펜."


내가 의구심을 가득 담아 살짝 노려보자, 루엔브가 가슴에 손을 턱 짚으며 말했다.


"내가 준 포션으로 강해지면 되는거야."


그리고는 옷을 올려 하반신을 드러내고 가랑이를 벌리더니 자기 음부를 슥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데펜, 여길 벌려줘."


"뭐, 뭣?! 네가 그냥 꺼내면 되잖아!"


"빨리."


내가 기겁하자 루엔브는 되려 음부를 나에게 슥 들이밀었다. 원치 않는 탐방을 시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나를 민망해지게 만들다니!타협이란 없었다. 루엔브가 하겠다고 하면 그냥 따르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다.


"...알았어."


그래, 생각을 그냥 고쳐먹자. 루엔브는 포션 호문쿨루스니까. 방식이 매우 꺼림칙할 뿐. 다른 의미는 없는 것이다.

익숙해져야 한다. 익숙해져야 한다...


"이러면 되냐...?"


나는 루엔브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루엔브의 음부를 양쪽으로 벌렸다. 질구며 요도가 훤히 드러나고 잔뜩 묻어있는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이거... 점막액이라곤 했지만 정체가 뭘까, 하고 생각하던 중 어느새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루엔브가 말했다.


"핥고 싶어?"


"무, 무슨 소리야?!"


"그러고 싶은 것 같아 보여서."


"아니거든!"


날 그런 변태로 보다니!


"언제든 핥아도 돼."


"필요 없어..."


루엔브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하자 나는 아연질색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거다. 내가 맛이라도 가버린다면 모를까.

근데 어째서인지 알수없는 불길함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나올거야, 데펜. 떨어뜨리면 안 돼."


잠깐의 골아파지는 대화가 끝나고, 루엔브가 으응... 하고 힘을 주자 음부 둔덕이 살짝 부풀어올랐다. 곧이어 질구 안쪽에서 동그란 무언가가 질척이는 물소리와 함께 질구에서 나오자 나는 그것을 땅에 떨어지기 전에 가까스로 받아냈다. 주먹만한 크기의 경단처럼 생겼는데, 축축하고 말랑말랑했다.

이것도 포션이겠지?

후, 하고 숨을 고르면서 옷을 내린 루엔브가 설명했다.


"'버스트 마이트' 라는 포션을 반고체 상태로 뭉친거야. 먹으면 잠시동안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어."


"오, 그래?"


갑자기 이 수상쩍은 경단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포션다운걸 보게 되는구나.

하지만 루엔브가 뒤이어 한 말에 살짝 들뜬 기분은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효과가 끝나면 심각한 탈력 증상에 빠지게 되니까 조심해."


"뭐?! 싸우는 도중에 그렇게 되면 끝장이잖아!"


"지속시간이 제법 기니까 괜찮을거야."


"믿어도 되는거냐...?"


루엔브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난 불안한 느낌이 다분히 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되면 진짜 큰일날텐데.내가 의심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루엔브가 말했다.


"그거라면 일시적으로나마 충분히 켈레사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수 있어. 나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보조할거야."


"그래, 고맙다."


어쨌든 그 드래곤한테 싸움을 걸 수 있을 만한 방법이 생긴 것 같아 나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루엔브도 도와주겠다고 하니 이제와서 말릴 수는 없을 것이다.

뺏겼던 검을 찾았고, 도핑 수단도 생겼다.

이제 남은 건...


[-----!!]


"윽, 이건...?"


경단을 주머니에 주섬주섬 집어넣는데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창고가 크게 흔들렸다. 예사롭지 않은 흔들림에 나는 직감적으로 올 것이 왔다는 것을 느꼈다. 루엔브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조용히 말했다.


"왔어. 켈레사." 



천천히 올리려다가 반응이 궁금해서 모아둔 거 그냥 한 번에 다 올립니다


추천과 댓글 부탁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