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총을 든 병사들 사이로 장교가 걸어왔다.

조잡하게 생긴 방독면을 쓰고 걸어오는 모습은 인외의 존재 같다.


"흠."


장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계하던 병사들도 안심하고 소총을 아래로 내렸다.


"하아....아, 앗....!"

"하아...아아, 아, 아아...."


주변에서 엘프들의 가녀린 목소리로 괴로워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보통은 수풀 속에 숨어 자신들의 숲을 침범한 침입자들을 내쫓아야 할 자들이, 곳곳에 쭈그려앉아 배를 잡고 있다.

새하얀 맨살 엉덩이를 내보인 채로.


푸득, 푸르르...!!


"흐읏, 아...."


엘프들이 저마다 거칠게 신음하며 엉덩이에서 오물 덩어리를 뱉어냈다.

어째서인지 갑자기 찾아온 강한 복통과 변의에 수풀에 숨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대변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엘프들에겐 죽을만큼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저항할 수가 없었다.


"...하아...."


쉬이이이이이....


바지조차 내리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대로 설사변을 뿜어냈던 엘프는 한심하게 소변까지 새어나오는 것도 틀어막지 못한다.

한숨을 쉬는 엘프를 바라보며 장교가 말했다.


"길안내 고맙군. 하지만 보상을 받기엔 늦은 모양인걸."

"아직 한 명이 버티고 있습니다."


병사 한 명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다른 병사들이 소총을 겨눴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쉬면서, 에아를린은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있다.

칼을 뽑아든 에아를린이 이를 꽉 물었다.

그 이유는...


꾸르륵, 꾸르르륵....!


"아, 윽...!"


뱃속에서 커다란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고통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도 견디지 못하고 남들의 눈앞에서 한쪽 손으로 엉덩이를 누르는 꼴사나운 자세를 취했다.


"굉장한 정신력이군, 아직도 버티고 있나. 하지만 엘프들이란 자존심만 강하고 현실은 보지 못하는군. 그런 상태로 제대로 칼을 휘두를 수나 있을까?"

"입 닥쳐라 인간...숲을 침범하고 독을 푼 것은 너희들이겠지...?"

"이 독은 특수한 독이지. 나무와 식물을 병들게 하는 것은 뿌린 곳에만 한정될 뿐, 하지만 흙에 스며든 독기는 넓게 퍼지지. 그 독기는 오직 너희 엘프에게만 영향을 준다. 그 영향이란 바로.."


말이 차마 끝나기도 전에 에아를린이 허공을 칼로 그었다.

인간과는 달리 엘프는 태생적으로 특수한 능력을 가졌다.

마법적인 종족인 그들은 이렇게 마음대로 마법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마법은 발동되지 않았다.


꾸르르르르륵!!


"하앗....?!"


갑자기 엄청난 복통과 함께 밀려오는 압력에 당황한 에아를린이 칼을 놓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양손으로 엉덩이를 눌렀다.

장교가 에아를린을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 엘프의 몸속에 깃든 마력에 뒤섞여 오염시키는 것이지. 그러면 너희는 몸속의 독기를 배출하기 위해 계속해서 배설물을 만들고, 결국 너희는 알아서 몸에서 생겨나는 마력을 계속해서 배출해야 되는 신세로 전락하는 거다."


푸드득!


그 얘기에 호응하듯 주변의 엘프들이 꼴사납게 소리를 울렸다.

하등하다고 여긴 인간들 앞에서 무력하게 성대한 배설 소리를 울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엘프들은 엄청난 수치와 고통 속에서 점점 생각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에아를린은 계속 저항하고 있지만, 그녀 역시 꼴사나운 배설 참기 자세를 보인다는 사실이 너무나 창피하여 죽을 맛이었다.


"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인간...! 숲을 침범한 대가는 결코 가볍게는..."

"이미 너희 마을의 위치도 파악됐다. 지금쯤 우리 병사들이 깃발을 올리고 있겠지. 아, 마침 저기 연기가 보이는군."


흠칫.

에아를린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인공적인 분홍색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정확히 마을 위치다.

그것을 보고 모든 엘프들이 절망에 휩싸였다.

지금껏 한번도 위치를 들킨 적도 없고 어떤 인간에게도 함락당하지 않을 자신들의 마을이, 그 요새가, 너무나 손쉽게 점령된 것이다.

자신들보다 한창 아래라고 여겨지는 인간들 손에.


"이 참에 확실히 해두도록 하지. 여기는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이 숲에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뭐...?"

"인간과 엘프가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기로 한 옛날 이야기 따위 기억할 수 있는 건 너희 엘프들뿐이지. 영토 조약에 참여하지 않고 스스로 숲에 틀어박힌 너희는 스스로 권리 행사를 포기한 것이다."

"그딴,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해서...하아, 하아....다른 엘프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미안한 소리지만 가만히 있어야 할 거다. 이미 수많은 숲의 엘프 부족들이 우리 국가의 관리 하에 놓였고 이는 너희 여왕의 용인 하에 이뤄진 일이다."


여왕.

중앙집권 국가가 아닌 엘프들의 여왕은 신분적인 존재가 아니라 태생적인 존재이다.

가장 강력하고 고귀한 엘프인 여왕은 주변 일대 엘프들에게는 항상 믿고 따를 존재이다.

옛날에는 강대한 엘프 제국의 단일 여왕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지역마다 존재하는 여왕 엘프가 주변 엘프 세력들 사이에서 느슨한 연맹을 이어줄 뿐.

하지만 여왕은 엘프들에겐 중요한 구심점.


그렇게 만들어진 연맹이 하등한 인간 따위에게 패했다는 의미이다.

에아를린이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우린 자랑스러운 엘프다, 너희 인간이 수작을 부려도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리 없다...!"

"흥, 지금은 우리가 너희 존엄을 존중해주고 있는 거야. 지금 시대에 엘프란 존재는 아무데서나 똥오줌을 흘려대고 오물을 흘리는 지저분한 소수민족에 불과하다."

"입 닥쳐! 엘프를 더 모멸하면 가만두지 않겠, 아, 아악...!"


꾸륵, 꾸르륵...


에아를린이 더는 서있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발꿈치로 엉덩이를 누르면서.


"시대가 변했다, 엘프. 너희는 수명이 길어서 세월의 흐름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지? 우리가 공장을 늘릴수록 공기중에는 산업의 냄새가 스며들고, 자연환경에 예민한 너희 엘프는 점점 약해지지. 그게 쌓이고 쌓여 이제는 이렇게 한심해졌다니 너무 우스운걸."

"하아, 하아....!"

"유치원생들도 다 아는 이야기지. 너희 엘프 대표가 길 한복판에서 한심하게 소변을 지려버리거나, 너희 여왕이 수도를 방문했다가 회담 도중에 똥개처럼 의자에 똥을 지려버렸다는 얘기는 말야."

"닥쳐...!"


모멸감에 분노한 에아를린이 장교를 노려보았다.

그것을 본 장교가 말했다.


"좋다, 그 강한 정신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내기를 하나 해보지."

"내기...?"

"너희는 수송열차를 통해 수용구역으로 이송될 것이다. 도시로 진입할 때 중간에 화물을 적재하는 곳이 있지.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 네가 배설을 참는 데에 성공한다면 정상적인 화장실도 제공하고 너희 대우도 개선시켜줄 것을 상부에 요청하도록 하지. 자, 이제 가자."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병사들이 엘프들을 붙잡았다.


"자, 잠깐!"

"이거 놔! 아직, 멈추지가..!"

"놔! 놓으라고! 하다못해 씻을 시간이라도 줘!"


엘프들이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기 시작했다.

저항해보려고 해도 이미 몸에서 힘이 빠진 터라 땅에 다리를 질질 끌기만 할 뿐이다.

그 와중에도 아직 배설이 멈추지 않은 이가 다수라서 곳곳에 배설물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큭, 하앗, 하아...!"


에아를린은 온힘을 다해 변의에 저항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터져나올 것만 같은 상태에서 끌려가는 것은 고문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내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자신만이 이 엘프들의 처우를 결정할 희망이 됐으니까.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꾸륵, 꾸르륵...!


"하아, 하아...!"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오물 덩어리 탓에, 배의 감각이 이상해지고 있다.


'불가능해,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아아, 나온다, 나올 것 같아, 아아...!'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 천박한 생각.

어느새 눈까지 가려지고 팔에 족쇄가 채워진 엘프들은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끌려오던 중 더러워진 바지를 벗어 맨살 엉덩이를 내보인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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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초교육 학교의 교실에서 수업이 한창이었다.


"자 그러면 말해볼까요? 엘프가 자신들의 숲을 침범하지 말 것을 선언한 것이 언제였을까요?"

"1580년!!"


아이들이 힘차게 답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편입된 엘프 영역은 어디일까요?"

"북부 접경지대요!"

"네, 그러면 북부의 엘프 여왕과 영토 복속 조약이 맺어질 때 무슨 일이 있었죠~?"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옷에 큰 실례를 해버렸어요!"

"돌아가는 길에도 오줌을 쌌어요!"


마지막으로 교사가 말했다.


"엘프는 몸이 약해서 배탈이 자주 나고 화장실을 잘 못 가린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엘프들이 남들의 시선 탓에 괴로워하지 않도록 따로 모여살게 해줬죠. 그곳을 우린 뭐라고 하죠?"


아이들은 대답했다.


"게토!!"


게토.

엘프 수용구역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