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마을을 돌면서 가는 곳마다 빨갛게 달아오른 엉덩이와 소변에 젖어 누렇게 얼룩진 옷을 내보이며, 유리아는 바지를 내린 상태로 마왕성에 다다랐다.

마왕 영지의 중심지이지만 다른 나라의 수도처럼 번영한 도시라기보단 거대한 요새에 가까운 곳.

그나마 사람 사는 느낌이 나던 다른 마을들과는 달리 살벌한 입구부터 수많은 창칼이 자신을 겨누는 것을 느끼며 유리아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겨우 몸을 닦아내고 지하감옥에서 심문을 받아오길 벌써 몇시간인가.


철커덩!


누군가 또다시 감옥문을 열고 들어왔다.


"흥....또 내 입을 열게 하려고? 아는 게 정말로 적어서 미안하게 됐군. 애초부터 즉흥적인 출정이었으니 말이다. 너희에게 더 말해줄 건 없..."

"아하~단장의 갑옷이라고 딱히 특별하게 생기진 않았네?"


처음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런 성에 어울리지 않는, 앳된 남자아이의 목소리였으니까.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건 어린 남자아이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이전에 해골을 통해 전해들은 위압적이던 목소리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자마자 유리아는 긴장했다.


"근데 이렇게 단련된 몸을 가진 정예 기사란 사람이 아무데서나 바지를 내리는 줄은 몰랐는데 말야. 오, 혹시 아직 오줌 냄새가 나려나?"


그러나 상대는 어린 아이같은 모습처럼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유리아의 자존심을 계속 찔렀다.

치욕과 모멸이라면 익숙하기에 유리아는 일단 견뎠다.


"더 말해줄 건 없다. 그러니 날 고문해도 결과는 같을 뿐, 너희의 야만적인 행위는 아무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 내가 듣기론 이미 말한 것들도 다 별 가치 없는 거랬는데 말야. 일부러 숨기려고 가짜 정보를 늘어놓는 것처럼."

"흥, 그래봤자 변하는 건 없을 거다. 너희가 내게 수치심을 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코 내가 나라를 배신하게 하진 못할 것이다. 너희 야만인들이 아무리 인간을 괴롭혀도, 인간은 강하다. 너희는 절대로 우릴 굴복시키지 못할 거다."


비록 바지를 벗고 맨살 엉덩이를 내보인 채 팔이 묶인 상스러운 모습일지라도 유리아는 이때만큼은 기사다운 말과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자 남자아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다시봤는걸. 역시 그 지위는 괜히 따낸 게 아니네. 좋아, 그럼 거래하지 않을래? 누나!"


마지막으로 다소 장난기 섞인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가 말했다.


"거래...?"

"간단해. 나갈 기회를 줄게. 몸 상태 온전히, 그냥 아무 것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이해가 안 됐다. 왜 그냥 풀어주겠다는 것인가?


"....너희 야만인들이 약속을 지킬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미끼가 너무 조악하군. 그냥 풀어주겠다고? 웃기는 소리."

"요즘 사람들이 심심해하는 거 같아서 말야. 볼 거리를 주고 싶은데, 뭔지 알아?"


따악!


남자아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뒤에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하인이 나타나 수정구슬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 보인 건 커다란 원형 경기장 속에서 야수와 싸우는 검사.


"누가 이길지를 두고 돈을 걸 수도 있고, 그냥 순수하게 즐길 수도 있어. 근데 누나 같은 강한 사람이 나가면 되게 흥미진진할 거 같지 않아?"

".....나보고, 광대놀음을 하라는 것이냐...!"


유리아는 일단 분노했다.

자기 혼자만 갖고 치욕을 느끼는 것은 그저 자신 개인의 수치일 뿐이다.

하지만 이건 왕국의 기사 자체를 모독하는 행위였고 그걸 스스로 하라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응? 싫어? 근데 이기기만 하면 여길 그냥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끌리지 않아?"

"....."

"사람들은 야수와 싸우고 승리를 쟁취해내는 기사를 우러러 볼 거야. 되게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혹여 실패하더라도 용감하게 싸웠다면 다들 박수를 칠 걸? 아, 패배해도 누나가 죽거나 하진 않아. 야수랑 싸울 정도로 강한 사람이 그냥 죽어버리면 손해가 크거든."

"......"


유리아는 잠시 고뇌하기 시작했다.

마땅한 탈출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지금으로선 확실히 고민되는 제안이긴 했다.

다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긴 했다.


"아, 이래도 거절하겠다면야 더 제안하진 않을게. 누나도 할 일이 많을 테니까. 더 얻을 정보가 없다면야 사람들에게 붙잡힌 기사를 더 보여줘야 할 거 같거든. 그러니 거절할거면 지금 말해줘, 순회를 준비해야 할 테니까."


유리아가 반사적으로 다시 긴장했다.

오늘 있었던 안좋은 일이 반사 작용처럼 멋대로 떠오르자 맨살을 드러낸 엉덩이쪽이 다시 따가워지는 것만 같았다.

지하감옥은 차가운 곳이라 그런 곳에서 맨살을 계속 드러내고 긴장하면 몸이 다시 떨려오기 시작했다.


"....여기 몇시간째 묶여있느라 통 쉬지도 못했지?"


남자아이, 마왕이 다시 웃으면서 속삭이기 시작했다.


"마왕성은 그 자체만으로 들어온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장소니까 말야. 2대 마왕이라고 자칭하던 그 멍청한 얼간이는 제대로 활용 못했지만, 성 전체의 마력 회로를 잘 작동시키면 안에 있기만 해도 마력이 넘쳐나는데 마력 재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은 그게 그냥 배출돼야 하거든. 그래서 여기선 가만히 있기만 해도 배출이 필요해진대."

"......"


유리아는 듣기 싫다는 것처럼 불쾌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지금 내 제안 받아들일거라면 말해줘. 그럼 여기에다 이거 두고 갈 테니까."


텅.


마왕이 무언가를 두드렸다.

하인이 들고 있는, 앞뒤로 긴 형태를 지닌 도자기. 무언가를 담기 위한 통처럼 생긴 것.

하지만 유리아는 그걸 그저 바라만 볼 뿐 입을 열진 않았다.


"....그럼 우린 갈 테니까, 나중에라도 말해줘."


마왕이 돌아서자 하인도 도자기 통을 들고 같이 돌아섰다.


"잠깐."


그리고 유리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았다.....제안, 읏."


잠시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 견디는 표정으로, 유리아는 말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너희의 검투사 일을 해주겠다."

"그렇게 나와야지."


마왕이 만족하며 나가자 하인이 유리아의 발 앞에 도자기를 두고 갔다.

그리고 마왕과 하인이 감옥을 나가고 문이 굳게 닫혔다.


"....."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유리아는, 이내 황급히 앞으로 발을 뻗었다.

그녀의 양손은 뒤로 묶인 채 벽에 사슬로 연결되어 더는 앞으로 갈 수 없다.

그래서 다리와 하반신을 최대한 앞쪽으로 땡겨, 도자기 통을 어떻게든 당겨와 자신의 몸 아래에 두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주저앉았다.

도자기에 닿은 피부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자마자, 유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힘을 풀어버리고 말았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요강'에 볼일을 본 유리아는 오줌을 참느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단 사실이 부디 바깥에 알려지지 않기만을 빌었다.


2시간 뒤 요강을 비우러 마왕의 하인이 왔을 때 유리아는 그것의 2/3를 채워놓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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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마왕 영지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모여들어 저마다 다양한 야수와 검투사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유리아는 경악했다.

마왕의 강압적인 통치 하에서 신음하는 노예 인간들의 삶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는 저마다 검투사의 오락을 즐기면서 판돈을 걸고 광기에 물든 것처럼 저마다 야수와 검투사를 응원하고 격한 싸움에 환호하는 광경만 보일 뿐이다.

그 격렬한 광기와 마왕의 통치에 안주하는 태도는 유리아의 상식을 무너트리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검투사들과는 다른, 남부 왕국의 갑옷을 입은 여기사의 등장에 의아해했다.

곧 기이한 마법 기계가 허공에서 소리를 울렸다.


"마왕님을 섬기는 가신이 마왕님의 축복을 등에 업은 이들에게 알립니다. 이 자는 그간 국경지대에 침입해와 숲을 태우고 요새를 공격하고 사람들을 해방이란 명목으로 납치해가던 남부 왕국의 기사단을 이끈 기사단장입니다. 오늘, 그 벌을 만회하고자 여기서 전투를 벌이고자 찾아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잠자코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일개 인간으로 마왕군에 대적하고 전투를 벌여온 남부 왕국의 정예기사는 이런 내지에서는 볼 일이 드물기 때문에, 다들 유리아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무언가 이상했다.

사람들에게 선망의 눈빛을 받고 환호성 속에서 행진하는 것을 흔하게 겪던 유리아에겐 지금 이곳 사람들이 더 신기한 존재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자 왜인지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주목받는 거라면 익숙할 텐데 어째서? 혹시 나는 지금, 곧 있을 싸움에 긴장하고 있는 건가...?'


마왕 영지에서는 사악한 마법 기운으로 변이된 짐승들이 흔하다.

그런 짐승도 수없이 해치웠거늘, 야수와의 싸움을 앞두고 왜인지 긴장하고 있었다.


'큭, 정신 차려라 유리아! 마왕군에게 겨우 한번 기습당해 패한 것만으로 어디까지 추락할 셈이냐!'


의지를 다잡으며 유리아가 이를 꽉 깨물고 투구의 바이저를 내렸다.


"그러면 여러분께 이제 이 기사가 어떻게 붙잡혔는지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어....?'


하지만 곧 유리아는 사람들의 시선이 위로 집중된 것을 보았다.

신비한 마법이다. 허공에 거대한 영상이 투영되고 있다.

마왕군 영지로 침입해온 자신이, 기사단을 이끌던 자신의 모습이.

그러다가 말을 멈추고 제각각 주변을 살피며 수풀 속에서....


'아니야. 이건, 이런 건.....'


유리아가 경악하였다.

남부 왕국의 믿음직한 정예 기사단이거늘 차마 다같이 야외 방뇨를 하려다가 기습받았다고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유리아와 일부 기사들만은 주변 경계를 하고있긴 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한심하여, 벌써부터 몇명이 웃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시야의 사각을 뚫고 들어온 짐승들이 순식간에 습격해오고, 그걸 대응하느라 마왕군 병력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 뒤로 나온 것은 강에 빠진 유리아 자신.

같이 강에 빠졌던 마왕군 병사의 칼만 들고 돌아다니며 몇 번이고 바지를 내리려다가 추격을 피해 달아나는 한심한 모습.

처음에는 갑옷을 다 추스른 상태에서 도망쳤으나 나중에 가선 다 내린 바지를 손으로 잡아 올린 채 엉거주춤 뛰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다 보이는 곳에서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려다가 결국 따라잡히고,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한 채 목에 칼이 닿자 유리아는 두손을 들고 항복했다.

영상에는 소변을 멈출 수가 없어 계속 물줄기를 흘리면서 붙잡히는 꼴사나운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우하하하하하하!!


사람들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기사는 바깥에서 바지를 내리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니, 붙잡혔을 때의 옷차림 그대로 싸우게 해주는 '편의'를 봐줄까 합니다!"

"뭐?"


유리아가 경악하여 그 기계를 올려다본 순간.


훅!


갑자기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자신의 갑옷을 크게 두드렸다.

그로 인해 휘청거린 순간 어째서인가 갑옷 아랫도리의 고정이 멋대로 풀려버리고 말았다.

갑옷은 물론 속의 내의까지 모두 멋대로 풀려 내려가고 말았다.

속옷 대용으로 아래에 두른 천은 애석하게도 세탁할 시간따위 없었는지라 대충 물로 씻고 말렸을뿐이다.

그러니 노랗게 변색된 모습이 그대로 보일 수밖에 없다.


폭소 소리가 커져간다.

참을 수 없는 수치 속에서 유리아가 황급히 바지를 끌어올리려 했으나 왜인지 일정 높이 이상 올라가질 않았다.

마치 두 발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옷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해진 아랫도리를 통해 냉기가 침투한다.


부르르!


한창 긴장해있던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마치....'


옷차림도, 감각도, 모두 악몽같은 어제의 일과 같다.

멋대로 기억이 떠오른다.

자랑스럽고 용맹하며 긍지 높은 기사 유리아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간을 누르며 도망치던 기억이.


쿵!!


"힉....!"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란 유리아가 돌아보자, 산양의 뿔 달린 거대한 곰 같은 야수가 자신을 향해 맹렬히 돌진해왔다.


크오오오오오오오!!


"으, 아아아아아아!!"


유리아는 급히 창을 들고 싸웠다.

몸집에서부터 차이가 나기에 회피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려간 바지가 보폭을 제한하여 몸을 크게 움직일 수가 없다.


"으아아아아!!"


몸의 행동이 제한되자 압박감이 더욱 커졌다.

공포로 인해 비명을 지르며 유리아가 형편없는 싸움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자신을 방해하는 건....


'아, 아아....하필 이럴 때.....이래선.....마치....!'


유리아가 다리를 오므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떨었다.


"뭐야, 엄청 못 싸우네. 정말 저런 실력으로 마왕군이랑 싸웠다고?"

"그보다 저것 좀 봐.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는데?"

"아니야, 잘 봐. 저건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유리아의 양쪽 귀가 뜨거워졌다.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어떻게든 티내지 않으려고 유리아가 온 힘을 주어 자세를 고쳤다.

앞으로 달려가려고 시도하곤 있지만 바지 내린 상태에서는 수비적인 행동이 강제될 뿐이다.


그래서 다시 야수가 덮쳐왔다.


"으아아아아아아!!"


파악!!


유리아가 야수의 눈에 힘껏 창을 찔러넣었다.


크오오오오오오!!


야수가 비명을 지르며 유리아를 내던졌다.

겨우 몸을 일으킨 유리아에게, 한쪽눈에 창이 박힌 야수가 기어왔다.


유리아도 뒤로 기어가면서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하지만 곧 등 뒤가 막다른 벽이란 걸 알아채자 공포가 밀려왔다.


'아, 아아....아직, 이런 모습으론, 죽을 수 없어.....제발, 이런 모습으로 죽고 싶지 않아...!'


쉬잇....


죽는다는 상상을 하자마자 제멋대로 아래쪽에 힘이 풀릴 뻔했다.

살짝 새어나온 액체가 흙을 적셨다.


크오오오오오오!!


"으아아아아아아!!"


자신을 덮쳐오는 야수에게 유리아가 비명을 지르며 얼굴 앞을 가렸다.


철컹!!


그런데 야수의 몸에 묶여있던 쇠사슬이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졌다.


"거기까지!"


조련사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치자 야수는 괴로워하며 끌려갔다.


"하아, 하아...."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오자, 곧바로 무언가 거대한 파도 같은 것이 몸속에 들이치는 것만 같았다.


"읏.....하아, 하아...!"


다리를 오므리고 몸을 숙인 채 양손으로 고간을 누르는 행위.

지금 온 사방에 자신은 화장실이 급하다고 홍보하는 것만 같았다.


'안돼, 안돼....! 제발, 여기서 이 이상 흉한 꼴을 보일 순 없어, 여기서 더 창피해질 순 없어! 제발, 제발....! 싸버리면 안돼!!'


남부 왕국의 온 기사의 이미지를 더럽힐 순 없다.

그리고 이 이상 자존심을 짓밟히기도 싫었다.

유리아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야....설마 진짜로 해낼 줄은 몰랐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서 날아온 해골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축하해, 덕분에 누나에게 걸었던 사람들은 행복하겠는데?"

"읏, 야, 약속한대로....약속한대로 날 풀어줘라....당장!"


유리아는 약한 모습 보일 순 없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참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안돼."

"어....?"


하지만 바로 맥이 빠져버렸다.


"야, 약속과 다르잖아! 이 비겁한....!"

"말했잖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바로 풀어준다곤 안했어."

"뭐?"


해골은 말한다.


"여기 남고 싶다면 지금 바로 화장실에 보내줄게. 하지만 정말 나가고 싶다면, 경기장을 나가서 아무에게나 화장실을 빌려. 만약 바깐에서 아무데나 오줌 얼룩을 남기기라도 한다면 누나는 평생 이 영지의 노예로 살아야하는 거야. 누나 입으로 직접 말했지? 왕국의 긍지 높은 기사를 모욕하지 말라고. 그래서 존중해주기로 했지. 그 정도로 대단한 기사가 소변도 못 가리고 아무데나 실례를 해버릴 리 없잖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태연한 척 하는 것도 이미 포기하고 유리아는 다른 사람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양손을 앞에 모아두고 있었다.


"어떻게 할래?"


유리아가 고개를 올리자, 허공에 다시 영상이 투영되고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다.

여기서 대놓고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다. 그것만은 죽어도 피하고 싶었다.


"크, 윽.....!!"


유리아는 사실, 당장이라도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유리아는 꾹 참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크, 아아아!!"


짜증 섞인 울분인지 아니면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유리아가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바지를 내린 상태로.


"하아, 하아.....하아....!!"


일단 경기장을 나가, 건물 안의 복도를 달렸다.


"우왓."

"뭐야!"


다른 사람과 마주칠 땐 치욕으로 죽고 싶었다.

남들 보는 앞에서 갑옷까지 입은 기사가 바지를 다 내린 채 고간을 잡고 달리고 있으니까.

투구가 없었더라면 얼굴이 새빨개진 유리아가 어린애처럼 울먹이는 게 보였을 것이다.


"큭?!"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경기장에 마련된 변소.

줄이 길게 늘어져있다.

그 줄에 서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그 시선이 무서워 유리아는 바로 밖으로 도망쳤다.


'어, 어디로? 어디로 가야해? 소, 소변이, 소변이 너무 마려워, 오줌이! 오줌, 오줌오줌오줌, 오주우우우움!'


아까만 해도 내려간 바지에 다리가 걸려 움직이질 않았는데, 그새 바지 내린 상태로 조금이라도 잘 움직이는 요령을 터득한 걸까.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간 유리아가 곧 개울 위의 다리에서 아래를 보았다.


꾸욱....!


개울의 물을 보자마자 지금 이 자리에서 엉덩이를 내밀고 소변을 싸고 싶은 욕망이 가득 들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방금처럼 기이한 마법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까발려질지도 모른다.


"크, 하아, 하아....!"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뒤로 내밀며 온힘을 다해 사타구니를 억누르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런 유리아의 옆에, 어린 꼬마아이가 보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이 안 잡히는 듯 꼬마아이가 유리아를 조금 무서워하며 바라봤다.

유리아는 이미 반쯤 이성을 놓았다.

다른 건 몰라도, 길거리에서 싸는 것만 피할 수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었다.


"너, 너희집은 여기서 가깝니? 오줌, 나, 오, 오줌이.....벼, 변소를 빌려다오....!"


유리아가 거칠게 호흡하며 그렇게 말하자 꼬마아이는 무서워서 그대로 뒤돌아 도망쳤다.


"머, 멈춰....!"


아이를 쫓아 달려가자 마을 주민들이 바지 내린 기사의 흉한 모습에 경악하기 시작했다.

아이엄마는 아이의 눈을 가렸고 누군가는 또 그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화, 화장실, 화장실을 빌려주십시오!"


쾅쾅쾅!


자신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을 쫓아 집 문을 거칠게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화장실을 찾는 유리아의 모습은 이미 기사로서의 긍지도 자존심도 모두 버린지 오래다.


쉬잇....!


"크, 아아....악.....!"


허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이미 젖은지 오래인 속옷을 붙잡은 채 유리아가 기어갔다.


"아아, 제발....여, 여기서는....바깥에서만큼은...."


지금 싸버리면 마왕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평생 이 마왕 영지에 갇혀 오줌싸개 기사로 놀림받으며 노예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유리아가 엉거주춤하게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 걸어갔다.

바지 내린 채로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로 나아가던 유리아는 곧 골목에 숨어있던 다른 아이를 찾아냈다.

이번에는 도망 못가게 한 손으로 팔을 붙잡고 유리아가 울면서 빌었다.


"미, 미안하다....하나만, 부탁 하나만.....너, 너희집의, 너희집의 변소를 빌려다오, 아, 아아아아 아직, 아직 나오면, 아아...!"


하필 그때 밀려온 요의의 파도로 인해 유리아가 황급히 양손으로 앞을 누르느라 아이가 도망치고 말았다.


"크, 하아.....하아....!"


놀라운 인내력으로 유리아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된 그 상태 그대로 3분을 버텼다.


쉬잇...!


벌써 몇번째 찔끔일까. 이 정도면 인간을 초월한 수준의 인내였다.

살면서 단 한번도 이렇게까지 참아본 적이 없었다.

이러다 요도가 영구적으로 망가지는 게 아닐까, 그런 공포가 유리아를 자극했다.

그 공포로 유리아가 다시 기적처럼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숨도 제대로 안 쉬어져, 유리아는 투구를 벗어던졌다.

눈물 고인 기사의 눈은 풀려있다.


쉬이이이이, 쉬이이이이이이....


꼬리처럼 길게 젖은 물자국을 남기면서 기어간 유리아는 본능적으로 고향을 향해 가는 것만 같았다.


쉬이이이이이이이...!


"크, 하아, 하아......아, 아아...머, 멈춰, 멈춰라....멈춰....."


주문처럼 의미도 없이 멈춰달란 애원을 반복하며 기어간 유리아가 도착한 곳은 가장 처음 자신에게서 도망갔던 꼬마의 집.

문을 열고 아이는 유리아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며, 유리아는 마지막 힘이 다했다.


푸쉬이이이야아아아아아......!


"하아......하아......."


엉덩이를 높이 들고 얼굴을 땅에 파묻은 채 유리아는 참고 또 참아온 소변을 분사하기 시작했다.

마치 물로 된 칼이 다리 사이에서 나오는 것만 같았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오줌 세기가 너무 강한 탓인지 제멋대로 속옷 대신 감아놓은 천이 풀려버렸다.

오줌이 나오는 반동을 견딜 힘조차 없어진건지 엉덩이가 제멋대로 떨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


'아.....또, 쉬해버렸다....'


겨우 소란이 멈췄단 생각에 다시 거리로 나온 주민들 앞에서 유리아는 한참의 시간동안 가만히 오줌을 뿜어냈다.

사람들은 바지 내린 기사의 놀랍고 처절한 싸움과 그 후의 추태에 관해 떠들었고, 서 있을 힘조차 없어진 유리아가 두 병사에게 몸을 맡긴 채 황홀해진 표정으로 끌려나가던 것도 이야기했다.

발자취처럼 길게 남긴 오줌 자국은 커다란 웅덩이로 끝났다.

그 자국을 거꾸로 따라서 끌려가던 유리아는 그 와중에도 소변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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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이후 마왕 영지 곳곳에서 바지 내린 기사 유리아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소변을 가릴줄 몰라 아무데서나 오줌을 싸는 탓에 그 벌로 유리아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각지의 검투사 경기에 참여하고 있으며, 바지 내린 상태로도 용케도 이기고 있다고 전해진다.

다만 마왕이 내린 벌로 인해 유리아는 반드시 누군가가 봐줘야만 볼일을 볼 수 있으며, 언제든 속옷을 벗을 수 있도록 항상 바지를 내리고 다녀야한다는 소문이 있다.

일이 썩 잘 풀리지는 않는지 유리아는 항상 각 마을에 흠뻑 젖은 기저귀를 차고 도착한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