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엘프는 경외의 대상이자 인간들을 힘으로 지배하며 모든 종족 위에 군림하는 대제국의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엘프들은 그저, '가축'이다.

 

활기찬 도시는 쉼없이 굴뚝에서 매연을 뿜고 공장의 기계들이 돌아가지만 그럴수록 엘프들은 몸속의 마력이 이상반응을 일으켜 역한 형태로 변하게 된다.

'배설물'로.

그로인해 엘프는 하루에도 몇번이나 오물을 배출해야하고, 지금의 인간들에게 엘프는 하루에도 몇번이나 길가에 냄새나는 오물을 흘려 주변을 더럽히는 골칫덩이들일 뿐이다.

 

새로 잡힌 엘프들은 도시의 거리를 끌려다니며 주민들 사이를 행진했다.

아이들은 벌거벗은 엘프들이 멈추지 않는 배설에 괴로워하며 이미 부풀어오른 기저귀 틈새로 오줌을 흘리는 엘프들의 행진을 기괴하게 바라보았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엘프가 인간이 아닌 더럽고 악취나며 관리가 필요한 존재임을 배우게 되었다.

 

새롭게 개발 사업이 결정된 미개척 숲이 영토로 편입되는 문서에는 해당 숲에서 살고 있던 미등록 엘프 마을 장로가 변기의자에 앉은 채 서명하였다.

(장로는 다른 엘프들에 비해 유난히 대변보다 소변의 비중이 두드러지는 체질이었다.)


다른 엘프 공동체 대표들과 마찬가지로 장로 역시 마지막 절차로 시청 앞에서 병사가 다리를 잡고 안아올려 양쪽으로 벌린 채 공중으로 소변을 분사하는 모습을 기념사진으로 촬영하여 정식으로 숲의 엘프가 국가 관리 하에 편입되길 희망했음을 알렸다.

해당 사진은 신문 5번째 페이지에 실렸다.

 

아직도 저항 의지가 남아있던 엘프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입소절차로 첫날 침대에 결박당한 채 밤을 보낸 뒤엔 잠잠해졌다.

침대에 묶인 채 버둥거리며 풀려고 시도하던 엘프들은 최소한 잠들진 않으려고 저항했으나 결국 모두 지쳐잠든 뒤 다음날 흠뻑 젖은 이불 위에서 눈을 떴다.

 

보통 엘프 특유의 강한 자존심과 우월주의는 게토에서 이불을 적시고 벌을 받는 과정에서 대부분 희석되었다.

때문에 둘째날부턴 굳이 결박할 필요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엘프들이 밤 중에 실례를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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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피는 300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엘프다.

엘프에게 시간을 따지는 감각과 개념은 인간과 달라, 비록 그것을 갖고 서열을 정하는 엘프가 있진 않으나 일선에서 오랜 시간을 살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다른 엘프들에 비하면 젊고 어리숙한 것은 사실이었다.

릴피가 태어났을 때 이미 숲의 엘프들은 숲 밖에 나가지 않았기에, 릴피는 엘프들이 숲에 틀어박혀 살기 전의 세상을 모른다.


물론 다른 엘프들도 먼 옛날 인간들을 지배하던 고대의 엘프 제국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적어도 수백년을 산 엘프들은 인간과 충돌하고 여러 인간 노예를 거느리던 크고 작은 엘프 국가들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

반면 릴피는 그저 숲에서 온순하게 자연과 교감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릴피는 인간이 엘프를 그렇게 증오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오래 살았고 더 현명하던 다른 엘프들이, 엉덩이에서 끔찍한 악취를 풍기고 인간들의 시선에 소변을 지리며 순종적으로 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릴피가 가장 공포를 느낀 점이 바로 그것이다. 엘프들이 너무나 손쉽게 굴복해버린 것.

 

엘프는 배설을 참는다는 감각을 잘 모른다.

엘프에게 배설 행위는 며칠에 한번씩 있는 번거로운 행위로 그마저도 배출량은 적을뿐더러 몸 속에서 마법적인 힘에 의해 변성된 탓에 빠르게 분해되어 흙의 양분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엘프들은 모진 고문에도 버티는 정신력이 고작 복통과 배설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존경하는 다른 엘프들이 기저귀에 똥을 지리며 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본 릴피는 소변까지 지릴 정도로 무서웠다.

그 수치심 탓에 릴피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괴로웠다.


"......."

 

릴피는 굉장히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걷고 있었다.

 

"엄마, 엘프야."

"쉿, 보면 안 돼. 가까이 가지 마. 가까이 가면 너도 쉬야하는 병 옮는다?"

 

아이가 손가락질하며 기분나쁜 표정을 짓자, 아이 엄마가 황급히 아이의 눈가를 손으로 가리며 혐오감 가득한 눈빛으로 길을 피했다.

 

"......"

 

수치심에 릴피도 황급히 눈길을 피했다.

지금 릴피는 상의부터 하의까지를 하나로 연결한 옷으로 겨우 몸을 가리고 있다.

기저귀 커버의 역할을 겸하는 이 아동복 같은 것을 크기만 늘려 성인 여성에게 입힌 기괴한 모양새.

이것은 자신이 엘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엘프라면 반드시 입어야만 하는 옷이었다.

혹여 엘프라는 것을 모르고 옆을 걷던 시민이 악취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게토 안에서는 의류 착용이 허가되지 않아 모든 엘프가 알몸 기저귀 차림으로만 지내야하고, 그것 역시 철조망 너머를 걷던 인간들에게 여과없이 보여진다.

하지만 그 어떤 인간도 엘프의 알몸을 보며 성욕을 품진 못했다.

매일 악취를 풍기고 아무데서나 배설을 저지르는 엘프를 보며 자란 인간은 엘프를 지저분한 동물로 여기기에 엘프의 알몸을 보아도 혐오감만 내비칠 뿐이다.

한때 인간에게 숭배까지 받던 종족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엘프들에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쉬야하는 병....'


릴피의 기저귀는 지금도 조금 묵직해져있다.

게토에 이송되는 과정에서 몇번이나 '실수'를 저질러버리고, 그 뒤로도 기저귀에 실례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탓일까.

그 날 엘프들의 몸은 망가졌다. 배설을 참는다는 낯선 경험을 몇번이나 겪어버린 후로 제대로 참는 게 힘들어졌다.

용기를 내서 인간들의 거리를 걷기 시작하고 겨우 10분만에 인간들의 시선에 공포를 느낀 릴피는 쉬야를 저질러버렸다.


누가 봐도 릴피의 아래쪽이 부풀어있는게 바로 보일 것이다.

인간 아기는 기저귀를 사용하고나면 병균 감염을 막기 위해 바로바로 닦고 교체해야한다.

하지만 엘프는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면역력을 가졌기에 실례한 기저귀를 차고 있어도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들은 자기 배설물을 담은 더러운 기저귀를 차고 거리를 다니는 엘프에게 역겨움을 느꼈다.

악취가 날까봐 누구도 릴피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인간이 관리해주는 엘프의 생활은, 철저하게 엘프의 자존심을 없애버리는 과정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중에 실례한 기저귀부터 눈에 들어온다. 엘프는 원체 마력이 많은 생물이라 그 반동으로 배설량도 많아서, 기저귀가 넘쳐버리는 일도 다반사다.

엘프의 먹거리는 엘프가 직접 재배해야 하므로 매일 밭을 가꾸고, 마을에서 그랬던 것처럼 각종 식물을 돌보며 살아간다.

하지만 차이라면 게토의 모든 식물은 엘프가 직접 만든 '비료'가 쓰인다는 것이다.

엘프의 배설물은 순수한 마력이 변해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식물에게 많은 양분을 줄 수 있기에.

우리가 배설한 오물을 우리가 먹는 기분을 누가 알까.


지금도 이렇게, 인간의 멸시를 받으며 기저귀를 차고 거리를 걷는 것은 엘프의 자존심을 없애버리는 과정이다.

릴피는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게토로 돌아가고 싶었다. 적어도 그곳은 엘프들이 있으니까. 인간들 사이를 걸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직 돌아갈수는 없어.'


굳은 의지를 다지며 릴피가 걸어갔다.

인간 도시의 굴뚝에선 연기가 끝없이 뿜어져나오고, 도로에는 종종 자동차가 다닌다.

엘프의 몸은 인간의 기계들이 뿜어내는 매연에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여기 더 오래 머물수록, 더 강한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꾸르르륵....!


"큭..."


점점 복통이 강해지고 있다.

릴피는 아직도 도시로 이송되어올 때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기억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복통이 덮여오고 아래에 힘이 풀리던 그것을.

노련하고 마력이 발달한 나이든 엘프일수록 반응이 더 심했다.

게토에 온 뒤에도 엘프는 장이 너무 약하고 예민하여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신호가 오곤 하지만 그 날의 고통보단 덜할 것이다.

하지만 게토를 벗어나 인간 도시 안을 걷다보면 다시 그때처럼 심한 복통이 찾아오곤 한다.


"하아......하아....."


사실은 한참 전부터 호흡을 고르며 걷고 있었다.

그러나 복통이 찾아온 모습을 들키고 싶진 않았다. 인간들에게 이보다 더한 멸시를 받고 싶진 않았다.


"큭, 하아....!"


릴피는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1시간이나 걸어다녔음에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이대로 싸버릴 수는....'


엘프가 밖에서도 길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모든 엘프는 기저귀를 의무착용해야 한다.

길에서 아무데서나 배설물을 싸질러 길을 더럽히지 않도록.

작은 볼일 한번까진 허용되지만, 만약 큰 실례까지 저질러버리면 그 즉시 엘프는 게토로 복귀해야한다.

엘프의 기저귀는 오직 게토에서만 받을 수 있기에.


만약 그걸 거부하고 억지로 밖을 다니다가 기저귀가 감당 못할 정도로 배설을 반복하여 길을 더럽힌다면, 엘프는 처벌받는다.

게토 밖으로 나온 엘프의 활동영역을 자연스럽게 제한해주는 조치이다.


그래도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대로를 따라 긴 간격을 두고 놓인 무언가가 있기에.


"하아......하아......큭, 아...."


꾸르르르륵....!!


슬슬 복통이 강해져오는 릴피는 멀리서 보이는 그것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부우웅...!!


"힉?!"


그러던 중 느닷없이 옆에서 나타난 차량에 놀라 뒷걸음질쳤다.

자동차는 매쾨한 매연을 뿜으며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남겨진 매연이 다시 릴피의 몸을 자극했다.


꾸르르르르륵!!

푸쉭, 푸쉬....!


바로 앞에서 자동차가 지나간 탓에 한번에 변의가 밀려왔다.

엉덩이에서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공기가 샜다.


"아, 아아...!"


슬슬 엘프의 이변을 눈치챈 인간들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릴피에게서 떨어졌다.

눈앞에서 엘프가 한손으로 엉덩이를 누르고 한손으로 배를 부여잡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면 누구라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아, 더, 더는 안돼, 당장, 당장 화장실을...!!'


릴피가 양손으로 엉덩이를 누르며 달려갔다.

도로를 향해 놓여있는 '엘프 전용 화장실'을 향해.

용변을 참을 수 없게 된 엘프가 쓸 수 있도록 인간이 배려해놓은 조치.

그것은 좀 큰 배수구에 엉덩이를 댈 수 있게 만든, 그저 큰 하수구 구멍이다.


"크, 하앗...!"


황급히 달려간 릴피가 사슬에 묶인 열쇠를 잡아당겼다.

엘프의 외출복은 함부로 벗지 못하도록 작은 자물쇠가 걸려있다.

정상적인 상태의 엘프라면 마법으로 간단히 부쉈겠지만 몸의 마력이 계속 배설물로 변하는 이곳에선 불가능하다.

오직 이렇게 허락된 장소에서만 풀 수 있다.


철컥!


자물쇠를 풀자마자 외출복 아래가 열리면서 색이 누렇게 변한 기저귀가 드러났다.


찌익!!


다급하게 그것을 잡아당기자 큰 소리를 울리며 기저귀가 열렸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와 마주한 릴피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오줌과 땀에 젖은 아랫도리가 시원해졌다.


"흐큭......하아....!!"


기저귀를 풀어헤친 릴피가 급히 엉덩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길에서 조금 위로 올라와 곡면의 접시 형태로 만들어진 받침대가 바로 엘프 전용 변기였다.

그것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드디어 릴피가 힘을 뺐다.


푸르르륵!!!

푸욱!!!!


배관 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변기의 높이는 길바닥보다 조금 더 높을 뿐이다. 그 위에 앉아있는 엘프의 모습은 그냥 길바닥에 주저앉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아.....하, 으, 크으윽....!!"


잠시 안도하던 릴피의 표정이 다시 고통스럽게 구겨졌다.


꾸르르륵!!


부욱!!


"아, 아아....!"


양팔로 배를 감싸고 앞으로 고개숙인 릴피가 몸을 떨었다.


'진즉에, 찾았어야 했는데.....'


신호가 오자마자 곧바로 이용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인간들 앞에서 이런 창피한 꼴로 공개배설을 할 수가 없었다. 금방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결과 한참동안 화장실을 쓸 기회가 없었다.

그 탓에 복통이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아아.....하지만.....안 늦었다....'


뿌우욱!!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마치 릴피의 해방감처럼 크게.

옛날의 그녀였다면 이 천박한 모습따위 상상도 못했으리라.

인간들도 소리와 악취에 경멸하는 표정을 보이며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릴피에게 접근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한심하군."

"하아.....하아.....너, 너는....?"


식은땀에 젖은 릴피가 올려다보자, 모자로 귀와 머리를 감춘 여성이 있었다.


"이 악취나는 돼지가 같은 동족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


릴피는 이제까지 중 가장 큰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다.

왜냐하면, 이번의 상대는 인간이 아니니까.


"한낱 인간 따위에게 잡힌 엘프를 만나기 위해 왔는데, 이렇게나 한심할 줄이야."

"....."


상대는, 엘프였다.


뿌우웅!!


그리고 릴피의 입 대신 엉덩이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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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피가 복통에 시달리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인간 영역을 돌아다닌 이유는, 바깥에서 엘프와 같은 눈동자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혹시라도 바깥에 숨어사는 동족이 있다면 탈출을 도와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다른 엘프들은, 릴피가 존경하던 노련한 엘프들은 이미 탈출 의지조차 잃었다.

예를 들어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순찰대장이던 에아를린에게 이 얘길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엘프보다 배가 더 약해서 하루에 1번은 꼭 기저귀에 설사를 지려버리는 자신이 탈출 할 순 없을거라며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릴피만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 것이다.


".....말한대로 찾아왔다, 어디에 있지?"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을 엘프어로 말하며 릴피가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말한대로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왔다.

똥오줌 묻은 엉덩이를 드러낸 동족과는 대화할 기분이 안 난다는 이유로, 그녀는 릴피가 뒤를 닦고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흥, 여전히 악취가 나는 군."

"큭....모욕이나 주려고 부른 건 아닐테지?"


느닷없이 뒤에서 나타난 비웃는 엘프에게 릴피가 화를 냈다.


"용케도 그런 소리가 나오네, 지금 오줌 싼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게 누구지?"

"......"


얼굴이 붉어진 릴피가 눈앞의 엘프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옷으로 완벽히 위장했다.


"왜, 나도 너희처럼 똥오줌 못 가려서 기저귀나 차고 다닐 것 같아?"


엘프 여성은 노골적인 비웃음과 함께 옷 사이를 살짝 열어 속에 입은 얇은 속옷 일부를 보여주곤 다시 닫았다.


"어째서....어째서 너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거지?"

"우린 너희처럼 길 걷는다고 똥을 질질 흘리지 않아. 마법도 못 부리게 된 너희는 인간보다도 한참 낮은 격이니, 같은 엘프로 취급해주는 것도 다행으로 여기도록 해."

"왜 그렇게 고압적인 것이지? 우린 같은 동포인데, 도와주지도 않을 텐가?"

"동포? 어떻게 우리가 같지?"


릴피의 말에 화를 내며, 엘프 여성이 목걸이를 꺼내 표식을 보여주었다.


"그건...."

"이게 뭔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진 않겠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서."

"나의 이름은 밀레노라. 하이 엘프의 정찰대원이다."


그 표식은 바로 오래전 엘프 제국의 표식이었다.

릴피도 배운 적이 있다.

고대에 인간들을 노예로 부리며 군림하던 강대한 엘프 제국은 엘프들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황금이 가득하던 그 시대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부류가 잔존했고, 그들은 여전히 엘프 제국의 허영심에 빠진 채 살아간다고.


그것이 이른바 '하이 엘프'였다.


오래 전 소통이 단절되어 잊혀진 동지들로 취급되곤 했는데 설마 직접 만나게 되리라곤.

그것도 인간의 영역에서 말이다.


"하이 엘프가 왜 인간 영역에 있지? 너희는 인간과 함께 사는 건가?"

"웃기는 소리. 미개한 땅짐승들과 함께 살면 엘프의 아름다운 문화는 그들의 야만성에 침식당할 거다. 인간은 절대 접근할 수 없는, 마법으로 가려진 산 속의 왕국에서 우리는 엘프 제국의 양식을 유지해왔지. 근데 설마 우릴 버리고 숲속으로 떠난 엘프들이 이런, 엘프라 부를 수도 없는 신세가 됐을 줄이야. 푸하핫, 너무 웃겨...."


릴피가 더욱 불쾌해했다.


"우린 돼지처럼 끌려와 수난을 당하며 살고 있다. 같은 엘프를 그렇게 모독하는 너희는 인간보다 무엇이 낫다는 거지...!"

"인간에게 지고 똥오줌이나 지리는 건 너희야. 우리가 아니지."

"너희라고 오물을 배출하지 않을 것 같으냐."

"물론이지?"


밀레노라는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지난 세월동안 나는 한 번도 배설행위 같은 지저분한 행위를 한 적이 없어. 우리 왕국 모두가 그렇지."

"엘프도 이 세상의 일부야. 너희가 무슨 신이라도 된 게 아닌 이상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어."

"아니, 천만에. 그런 천박한 행위를 하느니 엘프이길 포기하는 게 낫지. 하이 엘프의 위대한 마법은 신체의 생리작용에도 간섭해서, 체내에 축적될 모든 찌꺼기는 전부 마법 영역의 안으로 보내지는 거야. 쉽게 설명하자면, 네가 방금까지 싸질러대던 그 똥오줌이 네 엉덩이에서 나오는 대신 평생 건드릴 일도 없을 다른 차원에 보내진다고 해야할까?"

"그럼, 아예 다른 세상에 버린다는 거냐?"

"정확히는 마법 속에서 아주 천천히, 인간은 인지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시간이 늘어지는 다른 영역에서 영원히 쌓이는 거지. 이 덕에 우린 마음껏 마력을 증폭시키고, 마음껏 음식을 탐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어. 아름다움과 품위를 유지하며 엘프의 문화를 꽃피우지. 그런데 우릴 버리고 떠난 고대의 동족들이, 한심하게도 인간 따위에게 붙잡혀선 가축으로 길러진다는 거야. 그래서 와봤지."


밀레노라가 코를 붙잡고 다시 비웃었다.


"근데 설마 이렇게 똥오줌도 못가리는 아기들이 됐을 줄은, 푸흡, 푸흐흐...!"

"....그만해."

"여기뿐이 아니야. 이 인간 나라 전역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 내가 직접 전해들은 것만 해도 이미 넷이나 되는 엘프의 여왕이 변기 위에서 인간 문서에 서명을 했어. 수백명의 엘프들이 매일 이불을 적시고, 기저귀에 똥을 지리면서 걸어다니고 있어. 푸흐흐흐...! 네가 그 광경을 봤어야 했는데. 아 참, 너도 이미 오줌싸개지?"

"나, 나는 오줌싸개 같은 게 아니야! 우린 그저 인간들의 오염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우린 그런거에 굴복 안해. 인간은 인간이야. 인간에게 저항도 못하고 엉덩이에서 똥방구나 뀌어대는 건 너희들이야."


릴피는 분했다.

하이 엘프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모른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배가 아프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를 모른다.

그래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모욕하는 거다.

밀레노라가 자신의 고통을 알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비웃는다는 게 너무나 분했다.


".......부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밀레노라는 릴피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우리를, 우리 동족을.....제발 구해다오...."


무릎을 꿇고 릴피가 말했다.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건 너희 하이 엘프뿐이다. 제발...!"


고개를 조아리면서까지 릴피가 부탁하자, 밀레노라의 목소리가 조금 차분해졌다.


"너희를 돕는 게 어떤 이득이 된다고? 우린 너희 우드 엘프들에게 버림받았어. 내 선조들을 버리고 떠난 종족이, 무슨 낯짝으로 도움을 청하지?"

"........"

"아름다운 도시를 인간들이 약탈할 때, 엘프의 유적을 인간들이 발굴할 때, 인간들이 엘프의 영역을 차지할 때, 너흰 나무 가꾸는 거만 신경쓰고 아무것도 안 했잖아."

"........"

"너희가 엉덩이에서 악취나 풍기고 있을 때 우린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해냈어.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우리만의 업적이야. 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너희를 도와야하지?"

"........"


밀레노라가 어떤 모독과 비난을 퍼부어도, 릴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밀레노라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너희가 도움을 갈구한다면, 네가 직접 와서 도움을 청해봐."

"뭐....?"


밀레노라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내일 정오에, 여기에서 다시 만나. 오지 않으면 이 얘긴 없었던 거로 하겠어."

"하, 하지만 어떻게 하려고....?"

"그건 내일 알려줄게. 너희 오줌싸개 똥싸개 엘프들에게 섣불리 정보를 다 알려주면 화장실 빌리는 조건으로 다 불어버릴 걸?"

"우린 절대...!"


릴피는 화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중간에 말이 막혔다.

모진 고문도 버텨낸다던 엘프들이, 고작 용변 마려움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마음이 무너지고 정보를 다 불어버린 것은 사실이니까.

인간들에게 마을의 위치가 들통난 것도 운없이 붙잡힌 엘프 정찰대가 설사를 참지 못하여 변기를 빌리는 조건으로 고백한 탓이었다.

마을의 역사부터 자신들의 신상까지 모든 것이 화장실을 빌리는 조건으로 스스로 전해준 정보다.

릴피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여기서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 인간 냄새가 진동을 해서, 여기 더 있고싶진 않아. 덤으로 네 오줌 냄새도 참기 힘들고. 내일은 적어도 깨끗한 모습으로 오도록 해, 가능하다면 말이지. 쉬쟁이 씨."


마지막으로 한번 더 웃으면서 밀레노라가 릴피의 아랫배를 발로 가볍게 눌렀다.


"웃?!"


쉬이이이이이이....


".....한심하기는."


릴피가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밀레노라는 사라진 뒤였다.


"......."


릴피가 몸을 일으키자, 기저귀에서 새어나온 오줌이 후두둑, 하고 떨어졌다.

다리 아래가 다 젖어버렸다.

도움을 청하는 거에 집중한 탓에 오줌이 마려운 것도 몰랐다.


"하아...."


부르르!


시원한 감각에 몸을 떤 릴피가 무거워진 기저귀 탓에 다리를 벌리고 엉거주춤하게 게토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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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밖에서 길을 더럽힐 정도로 오줌을 싼 벌로 엔진을 돌리며 멈추지 않는 복통을 견디면서 기계를 조작하는 노동을 해야했다.

20분 노동이 끝난 후 기력이 다 빠져 쓰러진 릴피는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설사에 고통받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