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다, 언제적 이야기였더라. 네온사인도 기차도 없던 그 옛날, 어느 산 너머 바닷가에 작은 마을이 있었더랬다. 그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 어떤 곳보다 평화로워보이지만, 실은 그 마을만의 ‘명물’이 두 명, 살고 있었다. 방귀 한 방으로 나무를 뽑고, 파도를 뒤엎고, 산을 떨게 하는 두 방귀쟁이 아가씨들. 너무 강한 방귀 탓에 남산과 북산, 두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사는 그들은 아침마다 수탉 대신 마을 사람들을 방귀소리로 깨우는, 마을 사람들에겐 이미 익숙한 존재들이었다. 두 여인 모두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혼기가 차서도 아직 둘 다 시집을 가지 못했는데, 그 이유 첫번째는 당연히 그 방귀 탓이었고, 두번째는 만날때마다 으르렁대는 투계같은 성정 탓이었을 것이다. 


남산 기슭에 사는 여인 다홍은 시끄러운 일을 싫어하지만, 후술할 북산 여인과 마찬가지로 제 방귀 하나에는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다. 겉으로는 조신하고 고요해보이며, 실제로도 도도한 아가씨이지만,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순간 그녀의 뒤에서 폭풍같이 몰아치는 방귀바람에 장정도 버티지 못하고 빌빌 기기도 했다. 


북산 기슭에 사는 여인 청랑은 말 그대로 여걸(女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밭을 갈고, 우물을 파는 등,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방귀를 통해서였다. 뻐엉, 하는 소리 한 방이면 만사를 해결하고 유유히 밥 얻어먹고 사라지던 그녀는 마을의 자랑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장난기가 조금 지나친게 문제였을까, 그녀는 남산 여인에게 가끔 방귀로 시비를 걸고는 했다. 승부는 매번 무승부로 끝났다.


두 여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주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는 했다. 해안가에서 바다를 향해 시원하게 방귀를 비우는 두 여인이 종종 그곳에서 방귀를 겨루는 즉석 시합을 하고는 했던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또 시작이군,’ 하면서 여인들의 우렁찬 방귀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매일 하던 생무를 이어나가곤 했다. 방귀 시합의 계기는 매번 우연하고도 하찮았다. 이번 시합도 마찬가지였지만.


매일 아침마다 밤동안 배에 더부룩하게 쌓인 방귀를 비워내려, 두 여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해안가에 모이곤 했다. 비몽사몽, 자고 일어나 얇은 적삼에 속바지를 대강 입고 눈을 닦으며 북쪽에서 내려온 청랑과, 치마, 저고리에 장옷까지 걸쳐입고 고작 방귀를 뀌러 나온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도도한 걸음걸이로 걸어나온 다홍이 해안가 중간에서 눈을 마주쳤다. 청랑은 대강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다홍은 살짝 고개숙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다홍은 그러곤 바닷가쪽을 향해 엉덩이를 살짝 내밀고는 저고리와 치마로 가려진 배 위에 손을 얹고 살살 문지르며 배 안에서 잠들어있는 제 방귀에게도 아침을 전해주었다. 다홍의 배도 슬슬 잠에서 깬듯 쿠르륵, 꾸으으윽, 하며 불길하게 떨려왔다. 


“...다홍이 언니, 뭐 먹었길래 벌써 소리가 그리 큰거야?”


“...부끄럽게 막 묻지 말아줄래?”


다홍이 청랑의 질문에 대답을 마치곤 흣, 하곤 가볍게 힘을 주자,


 -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 


마을 사람 모두를 깨우는 투계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도 퍼져나갔다. 썰물로 수위가 내려가 물에 젖은 땅만이 잔뜩 드러나있는 이곳에, 다홍의 방귀로 솟구친 모래먼지가 다시 한번 흩뿌려졌다. 청랑은 그 방귀를 보고 경쟁심이 돋았는지 제 배를 살살 문지르곤 질 수 없다는듯 일부러 힘껏 힘을 주며 방귀를 내질렀다.


 - 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 


방금 다홍의 방귀보다 조금 강했다. 방귀를 뀌곤 시원해하는 표정으로 ‘이번 한 발 어때?’ 하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다홍에게 윙크하는것까지, 청랑의 이번 방귀는 다홍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었다. 다홍도 이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투계였다. 경쟁심을 갖지 않고는, 도발하지 않고는,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천성이었던것이다.


“...두고봐. 흐응..!!”


 - 뿌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 


한때 바닷속에 파묻혀 있었을 조개와 흙, 바위들이 드드드, 하고 밀리며 저 멀리 떨어진 해안선을 향해 후진했고, 주변에 일었던 모래먼지는 아예 더 심해졌다. 이에 질세라 청랑도,


“흐으읍...!!!”


 - 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 


하늘을 날던 불쌍한 갈매기 몇 마리가 푸른 투계의 우렁차고도 녹진한 포효에 휘말려 저 멀리 바다에 던져져 풍덩, 하고 빠졌다. 다홍의 방귀로 밀려났던 바위들도 첨벙, 첨벙, 하고 물에 잠겼다. 투계들은 서로를 한번 힐긋 노려보더니, 이내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를 향해 엉덩이를 겨누고는...


“끄으으응...”


“우읏...흐으으읍...!”


 - 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 


 - 뿌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윽!!!!!!!!!!!!!!!! - 


있는 힘껏 방귀를 부딛쳤다. 두 사람의 옷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찢어지고, 둘은 모래사장에서 던져지다시피해 해안의 양 끝 모래벌판에 풀썩, 하고 쓰러졌다. 모래바닥이었어서 망정이었지 이정도로 날아간 사람은 보통 중상을 입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듯 일어나, 저 멀리 보이는 서로를 향해 엉덩이를 쭉 내밀었다. 볼에 조금씩 쓸린 상처가 나고, 옷이 거진 넝마가 되어갔지만 상관없었다. 두 투계의 마음 속에는 ‘내가 최고의 방귀쟁이가 되겠어’, 하는 하찮은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배를 꾹꾹 누르며 남아있는 가스를 모으고, 모아서는, 허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쭉 내민 뒤, 주먹을 꽉 쥐고, 이 바닷가가 어찌되든 상관없이 있는 힘껏 경쟁심 잔뜩 담긴 방귀를 내질렀다.


“흐으으으응...!!!!!”


“후으으으읍..!!!!!”


 -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 


 - 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뿌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뿌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뿌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 


소리는 확연히 차이났지만, 세기와 양은 막상막하. 어느 하나 이길것같지 않은 팽팽한 싸움에 모래사장의 가운데가 확 패여버리고, 모래폭풍이 하늘을 가릴듯 불어닥치며 찬란하게 떠오르는 햇볓조차 가려버렸다. 두 투계는 그렇게 해가 뜨고 하늘이 완전히 파래질때까지 힘껏 방귀를 뀌어대다가, 가스를 죄다 비우고 뱃속이 쪼그라들듯한 느낌이 들정도가 되어서야 분출을 멈추고 풀썩, 쓰러져 심호흡했다. 


귀에 새겨져 울릴 정도로 웅대했던 방귀소리가 뇌리에서 사라질 때 쯤 하늘로 떠오른 모래먼지가 가라앉아 두 방귀쟁이 여인들의 이불이 되어주었다. 그러다 밀물이 몰려와 두 여인들을 덮었던 모래를 씻어주고, 그제서야 여인들은 넝마가 된 옷으로 제 몸을 가리며 간신히 일어나 모래사장의 가운데, 그녀들이 방귀를 잔뜩 뀌다가 바닷물이 고인 구덩이가 되어버린 곳에서 몸을 담가 모래를 대강 씻어냈다. 누구 방귀가 더 센지 의논할 기운도 없는 그들은 한낯이 되어서야 대화의 물꼬가 텄다. 다홍의 목소리였다.


“...청랑아.”


“...왜 언니?”


“...점심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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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맞아서 전래동화로 써봤다

전래동화 나름 각색하면 꼴리는거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