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조명에 쏘여 피로해진 눈을 눈꺼풀의 위로 적당히 힘을 주어 문지르고, 평소와 같은 가게의 내부를 습관적으로 살폈다. 먼지만이 떠다닐 듯 텅 빈 테이블이 내 공허한 의식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이렇게도 편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2층에 자리한 보드게임 카페에는 놀랍게도 사람이 찾아오는 일이 드물어, 온종일 앉아 있어도 손님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구경할 만한 사람이라면, 매일 출근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1층 서점의 여주인(건물의 주인이기도 했다)뿐이었다. 허리가 곧게 뻗어있다고 해야 할지, 서 있는 자세가 굉장히 올곧아서,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30대 중후반의 여성이었다. 항상 라일락 향의 향수로 몸을 치장하고, 포근해 보이는, 품이 큰 직물 스웨터를 입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옷의 영향으로 뚜렷한 신체의 실루엣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얇게 떨어지는 그녀의 턱선을 보면 그녀가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짙은 눈썹이나 그림자가 진 눈꼬리가 차가워 보여 왠지 말을 걸기 꺼려졌으나, 그녀는 자신의 외모와는 다르게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었다. 항상 친근하게 대해 주었고, 불편한 점에 대해 신경 써주는 좋은 고용주였다. 특히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미인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이 일자리는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유일하게 나쁜 점이라면, 정말로 하는 것이 없어서 끔찍하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끔뻑끔뻑 눈꺼풀을 놀리며 건조한 눈에 촉촉한 감을 되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퇴근 전인 이 시간대에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피가 안 통할 지경이어서 의자에서 일어나 공간을 잠깐 거닐어보거나, 허리를 비틀어 기지개를 켜거나, 아예 엎드려서 눈을 푹 감고 있어 봐도 정말로 시간은 달팽이처럼 흘러갔다.

 

그래도 뭐, 시간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서 따분함에 잡아먹혀 죽어버리기 전에 무사히 퇴근할 수 있었다. 열쇠로 문을 잠그고 1층의 서점 계산대에 앉아 있는 여주인에게 짤락, 소리를 내는 열쇠 꾸러미―화장실 열쇠를 포함해서 두, 세 개 엮인 것이 고작이었지만―를 주머니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그녀는 오늘도 수고했다며 그것을 받아서 들고 손 인사를 해주었다.

 

보통은 서점 또한 같은 시간에 영업을 끝마쳤기 때문에, 마감 정리를 같이하는 게 일과였지만, 그녀는 오늘 일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물론 정말로 이례적인 건 아니고 종종 있는 일이다―오늘은 혼자 먼저 돌아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뚱한 얼굴로 기분이 나빠 보이던 그녀는 오늘 약국에 꼭 가야 한다며 혼잣말했었기에, 아무래도 그 일이라는 것은 약국에 들르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 나를 배웅해주는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일종의 짜증이 섞인 불쾌한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낯빛이 어두웠던 것이 아무래도, 감기, 몸살처럼 대수롭지 않은 잔병에 걸려 고생하는 듯했다.

 

딱히 입 밖으로 어디 아프세요, 빨리 낫기를 바랄게요,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지랖일 것 같았고, 또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날카롭게 변해버린 눈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건물의 바깥으로 도망치듯 걸어 나갔다. 아무리 친분을 조금 쌓았다고 해도, 그녀 같은 미인이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쳐다보면 어찌할 방법을 몰라 부담스러울―그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뿐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다음날이 되어서도 유지되고 있었는데, 열쇠를 받으러 1층 서점에 들렀을 때 그녀는 매우 침울한 상태였다. 신체에 기운이 다 빠진 듯 축 늘어져 보였고, 이마에는 조금의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으며 나에게로 뻗은 손도 꼿꼿이 든 것이 아니라 책상 위로 떨어져 버리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태였다. 아무래도 오한이나 몸살이 제대로 걸린 것 같았다. 인사 이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평소처럼 2층으로 올라가서 따분한 시간을 보냈다.

 

계산대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는 법인데, 아무래도 오늘은 그녀 생각이 주를 이뤘다. 답답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하복부를 매만지던 그녀였는데, 생리통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내가 그녀의 주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변태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행동거지로 미루어보아 그럴 확률이 높았다.

 

“짤랑, 짤랑.” 카페의 유리문에 달린 손님의 존재를 알리는 종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청명한 소리를 내었다. 다른 곳을 보던 고개는 천천히 문 쪽으로 돌아가 손님의 외형을 살폈다. 하지만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익숙한 단골손님도, 처음 보는 손님도 아니었고 오늘 아침 인사를 나눴던 1층 서점의 여주인이 있었다. 굉장히 급해 보이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주위를 살피며 엉기적엉기적 걸어오는 모습에 의문이 들 차에, 그녀가 말했다.

 

“열쇠 좀―”

 

고작 그 세 글자를 말하고 무릎도 반쯤 쪼그리고, 허리도 비틀고 고개도 푹 숙인 채로 하나의 손만 내 앞으로 쭉 뻗은 그녀. 뭔 일인지는 몰라도 재촉하듯 까딱거리는 그녀의 손가락들 탓에 덩달아 행동이 급해진 나는 허겁지겁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서 손 위에 올려주었다.

 

조심조심, 한 발씩 옮겨가며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 그녀를 보고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녀의 반응이 궁금해, 그녀를 불러세우기 위해서 능청스레 질문을 던졌다.

 

“근데 화장실은 왜요?”

 

천천히 걸어가던 그녀는 우뚝 멈추고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려 시선을 맞추었다. 조금만 붙들고 있거나, 말랑말랑해 보이는 배를 꾸욱, 하고 눌러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기세의 얼굴이었다. 오른쪽 입술을 앞니로 짓씹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보려는 그녀였지만, 그녀의 행동은 너무나 적나라했다. 당장이라도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 일어나버릴 것 같은, 그런 움직임이었다.

 

“그…, 1층 화장실이 막―힌건 아니고…. 고장이 나서 위층도 그런가 확인하려고….”

 

“아~ 그러세요?”

 

두 손을 아래로 뻗으며 쭈뼛거리는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는 귀여운 행동을 이어갔다. 얼굴이 발개져서 되지도 않을 변명을 하고, 뒷구멍은 제대로 단속하기 위해서 뾰족한 손가락으로 청바지가 찢어지도록 꾹꾹 눌러 막는 모습이 어찌나 유아적인지 흥분되는 광경이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고작 똥을 못 싸서 꼼지락대는 모습이라. 특히 그녀와 같은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이러한 상반된 행동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아무튼, 그런 거니까 근처로 오지 마세요!”

 

강력한 변의가 와버린 듯 앙칼지게 소리치고는 여자 화장실의 열쇠를 꾸러미에서 고르며, 목표 지점을 향해 올곧게 꿈질거리는 보폭이 웃기면서도 내가 가진 왜곡된 욕망을 부르는 광경이었다. 그녀가 근처로 오지 말라고 말했지만, 어찌 어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최소한의 의식은 남아있었는지, 여자 화장실의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하지는 않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화장실 근처로 걸어갔는데,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이 얇은 나무 문의 표면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대니 여자 화장실 안의 소리는 내 상상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주듯 자세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

 

끼익, 쾅!

 

철커덕.

 

찰칵, 찰칵.

 

빨리빨리빨리빨리!

 

스으윽, 스륵.

 

터억.

 

뿌으더더더더더더덕!!!

 

뿌드드득, 뿌드드드드득, 푸웅덩.

 

하아아아아♥

 

뿌지지지지직, 퐁당. 부으으으윽―

 

뿌득, 뿌지지직, 퐁당. 촤라라―뿌브르푸르르륵―라라락! 투트더더덕.

 

흐읏!

 

꽈르르륵―뿌드덕푸드더덕! 뿌우웅, 뿌웅.

 

부지지지지지지지직―!

 

꺄읏!

 

아아, 또 채웠다….

 

돌돌돌―

 

스윽, 스윽.

 

꾸루우우우욱.

 

으으, 아직 더 나올 것 같은데….

 

꾸루욱!

 

흐익!

 

스으윽, 철컥, 철커덕!

 

********

 

갑작스럽게 들리는 철제 잠금장치의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문에서 귀를 뗐다. 문고리는 공격적으로 젖혀지며, 화장실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되었다. 그 안에는, 바지의 단추만 잠근 채로 벨트가 철렁거리고 있는, 화장실의 들어가기 전과 비슷한 자세의 여주인이 있었다. 그리고, 차마 감각 기관으로 느끼기 싫어질 정도의 불쾌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변기에 가득 들어찬 그녀의 똥 냄새임이 분명했다.

 

“고장 났나요?”

 

그녀가 잘 볼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를 비틀어 쥐고 그 지독한 냄새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게 그녀에게 표현했다. 나의 존재는 완벽하게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 홍당무가 되어버리는 그녀가 어찌나 귀여운지, 엉덩이를 깨물어 줄뻔했다.

 

“에?! 어째서 여기…?”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똥을 싸고 싶다는 기본적 욕망에 굴복해버린 그녀는 나를 타박하는 것을 포기했다.

 

“네? 아, 네…. 고장 났으니까 들어가지 마세요….”

 

굳이 들어가서 보지 않아도 여자 화장실 변기의 폭식을 그릴 수 있었다.

 

꾸루르르륵!

 

그녀의 뱃고동 소리―정확히는 장 속에서 날뛰고 있는 대변의 탭 댄스 소리―가 내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게 울렸다.

 

“흐익! 아, 그, 저기, 남자 화장실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비켜주실래요?”

 

“당연하죠.”

 

두 손으로 여자 화장실 맞은편의 남자 화장실의 방향을 공손하게 가리켰다.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꾸벅이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잠금을 풀어내는 그녀의 동작은 애처로우면서도 코미디인 장면이었다. 나를 뒤로하고는, 이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양 다시금 문을 쾅, 닫고 문의 잠금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방금과 마찬가지로 문의 표면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

 

후우, 후우.

 

짤까닥.

 

끼이익, 쾅!

 

터억.

 

뿌두드드드드드득―푸웅덩. 뿌드지지지지직―풍덩.

 

끄으읏, 하아아아♥

 

촤르르르르르륵. 뿌데덱, 뿌지지직―포옹당.

 

하아…, 다 쌌다….

 

돌돌돌―

 

스윽, 스윽.

 

스르르륵, 짤깍. 철그럭, 철그럭. 샤악.

 

…이 정도면 내려가겠지?

 

철커덕, 쏴아아아아―아아아, 꼴꼴꼴꼴.

 

어, 어?

 

철커덕, 쏴아아아아, 꼴꼴꼴꼴꼴. 꿀럭꿀럭.

 

아…, 이것도 막혔네….

 

********

 

손을 씻고, 옷매무새를 다시 갖추고 나온 그녀는 이전보다 한층 편안해 보였다. 아주, 날아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두 화장실 모두 고장이 났으니 오늘은 건물 화장실을 쓰지 말고 다른 상가 화장실을 쓰라는 말을 했지만, 다른 상가 화장실이라니, 여주인의 묵은 변들과 체취들이 듬뿍 밴 2층 화장실을 두고 다른 화장실을 갈 수는 없었다. 절대 쓰지 말라며 열쇠마저 가지고 가버린 그녀였지만, 마지막에 마지막 실수, 두 화장실 문을 깜빡하고 잠그지 않았다는 앙증맞은 실수를 저질러버린 것이었다. 두 변기의 처참한 죽음을 핸드폰에 담고, 특별히 이름을 붙여 저장했다. 그날, 그녀가 떠난 바로 그 시간. 그녀가 한 무더기 쌓아둔 똥 덩어리의 위로는 내 욕망이 가득 흩뿌려졌다.


*


변기를 순식간에 3개나 죽여버린 희대에 연쇄 살변기마. 너무 흥분되지 않나요. 원래 쓰려고 잡는 양의 3분의 1정도의 짧은 단편입니다.


그리고 요새 드는 생각인데, 이 정도 분량의 단편, 또는 저번에 쓴 정도 분량의 소설을 일정 글자 수로 나눠서 노벨피아에 비정기 연재해볼까 하는데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