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속에서 샴페인의 상큼한 알코올 향이 코를 찔렀다.


술 향기에 잠시 아뜩해지는 것도 잠시, 천천히 방금 일어난 일을 상기해 보았다.


그러니까, 처음은 아리스와 돈가스 덮밥을 먹고 화장실에 갔다 왔더니.


술 초콜릿에도 잔뜩 취하는 그녀가 방금 10도짜리 샴페인 반 병을 들이켰고.


현재는 만취 상태로 간사이 사투리를 쏟아내며 지금 내 품에 파고들어 있다는 점.


그리고 나를 끌어안고 횡설수설하는 이 은발의 여자는 지금 나를 놓아줄 생각이 단 1도 없다.


아리스를 떨쳐내려는 2차 시도가 이루어진 순간, 딩동 하는 소리로 초인종이 울린다.


그리고 인터폰 화면이 떠오르며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회장님, 계십니까? 나가미네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나가미네가 왜 갑자기?


나가미네에에에, 하면서 꼬부라진 목소리로 소리지르는 그녀를 팔로 단단히 붙들자 그녀가 품 안

에서 버둥댄다.


간신히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 데에 성공했다.


문화제까지 몇 달씩이나 남은 지금, 아리스의 정체가 누군가에게 밝혀진다면 완전한 재앙이 될것이 뻔했다.


날뛰는 아리스를 간신히 제지하며 턱으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회장 선배는 지금 주무십니다."


[너, 너는 김덕성?!]


"으우웁!! 읍읍!!"


나가미네의 표정이 단숨에 얼음장처럼 굳는다.


[너, 대체 뭔데 회장님이랑 이런 야심한 밤에... 설마 회장님의 몸에 손을 댄 건 아니겠지? 검은

귀축......이제는 회장님한테까지...]


인터폰 너머로 비춰진 나가미네는 당황한 표정으로 무언가 계속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발언의 내용은 더 이상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구르르르르르르르릅…


하는 낮고, 굵고, 긴 진동음이 내 품 안의 은발의 여자에게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팔이 지탱하고 있던 그녀의 배에서.


이리저리 저항하던 아리스의 몸에서 힘이 약간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제대로 듣고 있는 거냐! 대답해라! 회장님과 지금 상태를 보고...!]


인터폰 너머 쪽의 사정도 대단히 당황한 듯해 보였지만, 지금 나에게는 나가미네에게 이러쿵저러

쿵 상황을 보고할 여유 따윈 없었다.


꾸르르르르르륵, 꾸드드드드드득...


연신 그녀의 배에서 울려대는 진동. 여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든 침착해야 한다.


두뇌를 풀가동하며, 아리스가 원작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설정들을 누구보다 빠르게 리콜했다.


외강내유형의 캐릭터라, 응석 부리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하지만 겉으로는 우아한 척 연기하는 설

정.


완벽한 학생회장 모습이지만 의외로 마음이 여린, 그런 캐릭터가 바로 아리스.


그런 '갭 모에' 설정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원작 7권에서의 뒤풀이 에피소드에서 그녀가 취했을

때 주정을 부리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런 원작의 아리스의 매력 포인트에는 일반적인 갭 모에 설정 외에 한 가지 추가적인 설

정이 있었다.


평소 장내에서 생성하는 가스, 그러니까 방귀의 수준이 남들과는 차원이 달라서, 과거에 놀림을

받았다는 것.


그래서 엄격한 학생회장이자 아가씨로서 군림하는 아카데미에서는 억지로 꾹꾹 참고 다닌다는 설

정이 불현듯 뇌리에 스쳤다.


그 생각이 떠오른 바로 그 순간, 아리스가 무의식적으로 배에 약간 힘을 주는 것이 팔에 느껴졌

다.


뿌르르르르르륵--!!! 푸드드드드드드드득!!

어림잡아 적어도 4초는 되는 거센 파열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 저 정도면 과거에 놀림이 아니라 두려움을 받았다, 고 표현하는 게 더 고증에 맞는 게 아닐까?


어지간해서는 아리스 본인을 위해서라도 아무런 기색 없이 넘어가려 했지만, 방금 그 소리 정도

면 인터폰에도 분명 들렸을 것이다.


아무리 조그맣게 묘사해 봐도 인간의 것이라고는 차마 믿기 어려운 소리와 길이였는데, 들리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거겠지.


"......"


나가미네도, 나도.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나가미네 쪽.


[...방금 소리, 대체 무슨 소리지?! 김덕성! 똑바로 대답해라!!]


어떻게든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입을 열려던 순간, 내 앞의 시야가 갑작스레 맹해졌다.


머리가 날카롭게 핑 돌면서 기관지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 절로 기침이 나왔다.


"우에에엑...!! 켈록! 켈록...! 허억..."


악취는 많이 맡아 보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런 류의, 아니 이런 차원의 악취는 처음 경험해보는 악취였다.

정신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서 어떻게든 흡입하지 않으려 저항해 보지만, 이미 방귀의 묵직한 냄새는 기도를 타고 몸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어지러워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 온 힘을 써보지만, 차마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도같다.


'이 정도 위력이라는 설정은 원작에 없었잖아...!'


[검은 귀축....회장님을 범하는 현장에서 검거된 건가......! 이 굉음은 그렇게 설명될 수밖에!!!]


"아무튼 지금 자고...우욱...있으니 나중에 얘기하는 걸로...켁... 하겠습니다...!"


크게 당황한 나가미네를 무시한 채로 다급히 통신을 끊고 아리스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푸하아....!! 하아.... 하아아아아아아......"


아리스가 크게 숨을 내쉬며 비틀댄다.


자기 방귀는 스스로한테는 냄새가 안 난다더니, 지금 누구는 잠깐 들이쉰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아찔한데도 잘만 이 구린 공기가 들이쉬어지는 모양이다.


"김덕서이 니......진짜 나빴데이......딸꾹!"


뿌우우우우우우웅~


딸꾹질과 함께 다시 한번 그녀의 하반신 쪽에서 시끄러운 누출음이 들려왔다.


"이래 빵구소리도......귀엽고 꼬소~한 아쨩을 그래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기고? 딸꾹! 이히히히...아

야야, 속이 좀 얹힌 기가......."


부르르륵... 부욱... 부르르르르르르륵......!!


아리스가 횡설수설하는 와중에도 쉴 틈 없이 그녀의 엉덩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방귀는, 도무지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뜨듯한 공기가 스위트룸 안을 메우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어떻게든 그 가스를 맡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방귀가스의 악취는 이제 술 때문에 약간 울큰하게 매운 기운까지 풍기면

서 나의 몸 안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기침을 해버렸다가는 기관지, 나아가 몸 전체가 온전하지 못할 것을 직감한 나는 본능적으로 터져나오는 기침을 온 힘을 다해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위트룸을 이제 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 이 상태의 아리스... 그리고 그녀의 방귀가 남들에게 공개되는 참사가 벌어지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회장 선배, 많이 취하셨는데, 흡...이만 자는 게..."


최대한 호흡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탓에 우습게 변해버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가능한 한 아리스를 빨리 재우고 여기를 뜨는 것이, 그나마 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


그러나 아리스는 대답 대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헤벌레 웃어 보인다.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풀어져도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도저히 맞받아 웃어 줄수만은 없

는 냄새였다.


"내는 술 같은 거 안먹는다 아이가... 이래 봬도 내는 말이다...아카데미 회장인데...!"


뿌드드드드드드득....!


동시에 저음의 묵직하면서 폭력적인 소리가 대략 짐작해도 6초 정도는 아리스의 하반신에서 터져나왔다.


"아-쨩 방구는 꼬소~해가지구......맡으면 오히려 더 맡고 싶어 진다 아이가......딸꾹! 한번 맡아 봐도 괘안타......!"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동시에 숨을 참으려던 나의 노력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냄새라도 맡지 않기 위해 입으로 잠깐 동안 숨을 들이킨 나는 그대로 기관지가 쓰라리게 아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크흐으으윽....!! 쿠후욱! 켁....으윽...!!"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나의 몸은 연신 기침을 해댔고, 그럴수록 스위트룸을 꽉 채운 치명적인 독가스는 나의 폐를 꽉 채워나갔다.


단순히 독한 방귀, 수준이 아니라 생화학 가스, 그것도 한껏 농축된 생화학 가스라는 표현이 맞는듯했다.


비단 후각뿐만이 아니라 가스에 노출된 눈까지 시큰시큰하게 아파 오면서 눈물마저 질질 흐르기 시작했고, 온 몸의 세포를 유린하는 가스의 냄새에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어느새 바닥에엎어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엄살부리지 말고 일어나레이...... 딸꾹! 꼬소~한 방구 냄새 맡고 호들갑을 이래 떨면 어쩌자는 기가!"


누구보다 태연한 아리스의 사투리가 엎어진 나의 위쪽에서 들려왔다. 착각인지, 아니면 실제로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인지 그녀의 목소리마저 흐릿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뿌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우욱...!!!


"으으응...뜨신 방구가 나와삣다... 조금만 더..."


푸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윽........


그녀가 뿜어낸 농밀한 장내가스는 치마를 타고 아래로 내려와, 아리스 바로 아래쪽에 엎어진 나에게 직격했다.


머리 주변에 뜨거운 가스구름이 형성됐다는 것을 온도로 눈치채자마자 호흡을 틀어막았음에도, 꾸득한 독가스는 나의 의식보다도 한 발 빠르게 숨구멍을 틀어막았다.


"케흑!!! 켁!!! 컥!컥!!"


한 번도 내 본 적 없는 희한한 기침 소리가 나도 모르게 목에서 터져나왔다.


그저 미소녀의 배 속에서 숙성된 장내 가스에 불과할 터인 방귀는 마치 찐득한 액체처럼 내 코에 흘러들어와 나를 익사시키고 있는 듯했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래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매 순간 갱신하면서, 어떻게든 아득해져 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있어 본다.


몸이 무의식적으로 이리저리 뒹굴며 몸부림치는 걸 내려다본 아리스가 푸후후, 하고 웃음지었다.


"아-쨩 방구가 그렇게 좋았나......? 딸꾹! 더 맡고 싶은 거 아이가?"


아니오, 절대 아니오, 제발 얌전히 잠들어만 주세요라고 목놓아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이미 고문당하는 중이었던 나의 성대는 한 단어조차 허용하지 못했다.


대신 케헥, 쿨럭쿨럭 하며 그저 방귀가스를 폐 안에서 순환시켜줄 뿐이었던 본능적인 기침만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몸부림칠 뿐.


얼굴에 뜨듯한 물이 질질 흐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얼굴을 덮고 있는 진득한 방귀가스 때문에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침인지. 또는 아리스의 방귀가 너무 농축되어 액체처럼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는 채로 나는 그저 헛구역질을 동반한 기침을 하며 버둥댈 뿐이었다.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앗......이번 건 좀 독한 긴데......"


결국 나의 수용 한도에도 한계점이 존재했다.


한낱 양아치에 불과했던 나의 정신력이 결국 임계점에 도달했고.


그대로 나의 의식은 희미해지면서, 마치 꺼지는 아날로그 TV처럼 반짝 하는 소리와 동물 사체에 날계란을 썩힌 듯한 냄새와 함께 꺼져들어갔다.




.....







음, 으으음...


스스로도 모르게 목구멍 언저리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이 떠지기도 이전에 코를 찌르는 악취가 먼저 느껴졌지만 최근에 느꼈던 것보다는 확실히 덜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보다 등 쪽에 느껴지는 이 푹신한 감촉, 위화감이 들고 있다.


바닥은 분명히 아니면서, 마치 침대 같은 편안한 감촉.


편안한 감촉, 침대... 


잠깐, 침대?


"쿠마쨩, 이 누나야랑 같이 자장자장..."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나른하고도 힘빠진 목소리.


그리고 등 뒤에서 상체를 끌어안는 따뜻하고 푹신한 감촉.


도무지 떠질 것 같지 않던 눈이 본능적으로 확 떠진다.


제일 처음 시야에 잡힌 것은 내가 누워 있는 침대의, 때 하나 없는 순백색의 침대 시트.


침실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교토의 색색으로 빛나는 야경.


그리고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 뒤를 돌아보자, 당연하게도 코끝에 훅 끼치는 알코올의 냄새.


"쿠마쨩, 이제 꾸욱~하고 자는 기다, 누나야랑 같이 푸욱..."


푸르르르르르르륵....


힘빠지는 파열음이 아리스의 뒤쪽에서, 마치 밸브가 풀린 호스에서 빠져나오는 물과 같이 뿜어져 나온다.


"제발, 좀 놔주십..."


곧바로 코 쪽으로 올라오는 썩은내에 차마 하려던 말을 다 끝낼 수 없었다.


캄캄한 방 안에서, 아리스는 지금 그 누구보다 편안한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힘빠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뿌르르르르르르륵...부르르륵!!! 뿌우우우우우욱!!!!!


아리스를 감싼 이불이 마치 산 정상에 꽂혀있는 깃발처럼 펄럭댄다.


차츰 강해지는 방귀의 세기가 나른해지려던 의식을 확 깨우고, 곧이어 멈춘 호흡 너머로도 전해지는 예의 악취가 후각세포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아리스의 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수를 생각해 보려던 찰나, 등 뒤에 따듯한 체온이 직접 몸에닿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느낀 지 꽤나 된 듯한, 어머니의 품 안의 감촉같은 그 따듯함.


그녀의 그 익숙한 감촉에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 아리스 쪽을 응시했다.


아리스가 한층 더 세게 내 머리를 가슴팍에 끌어안았고, 언제 갈아입었는지 하늘하늘한 네글리제의 안에서 그녀의 가슴의 부드러운 감촉이 그대로 얼굴에 느껴진다.


"엄마......이제 어디 가려는 긴데......이제 아-쨩 엄마 말도 잘 듣고......참한 여자가 될 끼다......"


술김에 엄마를 부르는 아리스를 보며, 그녀의 설정과 내 상황이 절로 겹쳐 생각난다.


"그러니까......아무데도 가면 안 된데이..."


아리스의 어머니도, 그리고 내 어머니도. 병원에 누워 계실 것이다.


그녀가 유독 완벽해 보이려 하는 것도, 가난한 가정을 혼자 부양해야 하기 때문.


그리고 우리 집안에서도 부모님을 부양할 사람은, 나 말고는 없다.


병원에 누워 계신 어머니, 항상 그늘진 표정의 아버지.


그런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돌아가야 한다.


"아무데도...가믄......"


흐려지는 목소리는 이내 새근거리는 조용한 숨소리로 바뀐다.


잠시 감상에 차 아리스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그녀가 느낄 중압감에 공명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성이 다시 머리에 돌아왔고, 우선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침실에서 빠져나가는 것.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가 첫 번째, 그리고 라노벨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가 두 번째였다.


몸을 이리저리 뒤틀어 보지만, 꽈악 조인 아리스의 팔은 도무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그리고 별안간 아리스의 배에서 들리는 소리.


구르르르르르르르르릅.... 꾸우우우욱,,구우우우우욱....


"돌겠네, 진짜..."


육성으로 말할 정도로 다급한 나의 심정과는 다르게 아리스는 마냥 편안한 표정으로 나를 꽉 끌어안았다.


부르르르르르르르르륵!!!!!!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그녀의 뒤쪽에서 강한 바람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 전까지는 술에 취했더라도 그나마의 의식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아리스의 의식의 통제란 것을 완전히 벗어난 방귀의 세기.


풍압은 마치 2페이즈의 보스처럼 한 층 강화되어 있는 건지, 그녀를 덮은 나름 두꺼운 이불은 마치 종잇장처럼 휘날렸다.


이제는 진하다기보다도 매캐하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자욱한 가스는 결국 내 호흡기관에 들어왔고,


"우욱...크흑! 컥!!"


죽는다.


이대로 이 밤이 지나가면 무조건 죽는다.


그렇게 느낄 정도로 그 독가스의 냄새는 지독했다.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악---!!! 꾸롸롹---!!


이불이 그녀에게서 완전히 뒤로 밀려나 바닥에 풀썩, 하고 떨어졌다.


분명 내가 체중으로 누르고고 있었을 터인 이불인데, 내가 차마 눈치챌 틈도 없이 나의 체중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방귀의 풍압은 가히 가공할 만했다.


이미 수십 초 간은 독가스를 뿜어내었을 터인데도, 아리스의 뱃속은 멈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엉덩이에서 계속 방귀를 뿜어내고 있었다.


"음냐, 흠냐...후후우......"


그녀가 나를 끌어안는 부드러운 감촉과는 정반대로 그녀의 엉덩이 뒤쪽 벽은 이제 물건들이 휘날리고 있는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고, 슬슬 내가 숨을 참는 것에도 한계가 도달하기 시작했다.


아까 전과보다도 사뭇 다른 위력의 가스가 수십초 동안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이미 후각을 넘어서서 촉각적으로도 고통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의 폐도 호흡을 참는 것에 슬슬 한계가오고 있었다.


수많은 생각이 내 뇌를 스쳐 지나간다.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나, 코로 숨을 쉬어야 하는가.


일반적인 악취였다면 입으로 숨을 쉬는 편이 당연히 편했겠지만, 이미 일반적이기는 커녕 영거리에서 맡아 버린다면 목숨마저 보장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박--!!! 뿌우우우우우우아아아앙---!!!!


결국 그 순수한 독가스를 나는 코로 들이마셨고,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하고 농밀한 생화학가스로 점철된 공기를 나는 들이마시고 말았다.


"케헤에에에엑!!! 우후으으으윽...으윽..윽..."


제대로 기침마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그 가스로 가득 찬 위력은 단숨에 나를 사지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전의 방귀는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정도로 묵직하고, 매캐하며, 이제 술방귀까지 섞여 시큼하기까지 한 방귀의 냄새는 나의 눈에 단숨에 눈물이 핑 돌게 했다.


무서웠다. 공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질식해 죽는 게 아닐까? 아리스의 방귀에 질식해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뿌아아아아악--! 뿌락.. 뿌우우우우우욱!!!


제멋대로 호흡이 멈추고, 다시 쉬어지다 멈췄다.


뿌푸아아아아아아악푸부르르르르르르륵-!!!!


더 이상 산소 따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으로 침실의 공기는 메탄과 스카톨의 배합체만으로 가득 농축된 듯했다.

이제는 수십 초 단위를 넘어 분 단위까지 끊이지 않고 배출되는 농축 독가스는 침실을 덜컹덜컹 흔들고 있었고, 동시에 내 의식도 아련해져만 갔다.


그러나 그 아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마치 폭탄소리와 같은 방귀소리 속에서도, 선명히 들리는 아리스의 아래쪽에서 들리는 천둥같은 소리.


꾸구르르르르르르르르르릅.......

아, 이제 정말 끝이구나.


잘 있어라, 이 세상. 아니, 양쪽 세상 전부…


뿌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득--!!!


뿌부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룩---!!!!


뿌어어어억!!! 뿌욱!! 뿌르르르르륵!!!

푸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북--!!!!


벽 하나를 족히 박살낼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침실이 지진이 난 것 같이 진동했다.


죽기 전의 환청인지, 마치 갈색 구름과 같이 형상화되어 그녀의 엉덩이에서 퍼져나가는 가스 구름이 나에게 닿자 의식이 탁 하고 꺼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정말 라노벨이랑...쿠엑...현실은 다른 건가...쿡..우욱..윽......"


마지막까지 그 차이에 절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애캐 옆에서 죽는다니 그나마, 그나마 행복한 죽음이구나.


비록 그 최애캐가 뀐 경악스러운 방귀에 질식해서 죽는다고 해도.부모님, 저 꼭 돌아가야 했는데......죄송합니다......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 때문인지 머리가 찌릿 하고 아파온다.


분명 나는 좀 전에 질식사했을 건데 비명이라니 참 희한하다. 죽고 나서 비명을 듣는다는 소리는 처음인데.


"히익, 히익... 이 가스나가 미쳤데이. 참말로 미쳐버렸데이..."


칸사이 사투리.


아, 천국에서는 다들 칸사이 사투리를 쓰는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목소리는 분명 아리스의 목소리인데.


아직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게슴츠레 떠서 위를 바라본다.


"미쳤데이, 참말로... 어무이......아부지......내 인자 우짜면 좋노......"


정신이 나간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은빛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네글리제 차림의 미소녀. 틀림없이 내가 보고 있는 이 여자는 아리스가 맞다.


그렇다면.


"...저, 아직 살아있는 겁니까?"


"히이이익!!"


귀신이라도 본 듯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리스가 헛바람을 삼킨다.


뽀오옹...


아직도 남은 가스가 있는 건지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귀여운 파열음이 들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 역시 어제에 비견될 수준은 아니지만 끔찍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기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홍당무 저리가라 할 정도로 새빨갛게 물드는 아리스의 얼굴.


그녀의 심장이 쿵쿵하고 뛰는 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그 누구보다 아리스다운 리액션, 그리고 아직도 공기 중에 매캐하게 남아있는 독가스의 진한 악취와 완전히 초토화되어버린 아리스 뒤쪽의 풍경.


거기다가 내 얼굴에 흐르고 있는 이게 전날 독가스의 반응으로 인한 눈물이 맞다면, 틀림없이 나는 살아있다고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이힉, 힉, 히이이익..."


몇번 더 기겁하던 아리스는 이윽고 등을 빠르게 내게서 돌려 앉더니 양쪽 뺨을 때린다.


짝, 하고 한 번, 아니 두 번 더.


몇 초간 잠잠하던 그녀가 별안간 헛기침하더니, 다시 내게로 돌아서 앉는다.


"크흠, 큼, 흠... 기, 김덕성 군."


"네, 왜 부르십니까?"


잔뜩 잠긴 목소리가 나왔다. 분명 소리는 한 번도 지른 적이 없는데, 아마 목이 가스로 박살난 탓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어, 어제. 드, 들었습니까?"


"사투리 말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대단한 방귀소리 말하시는 겁니까."


아리스의 얼굴이 더 새빨개지며, 그녀가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다, 다 들었단 말이제!! 거거거, 거기다가 내 방구까제 들어버리고, 거, 거기에, 내랑 같이, 도, 동침도..."


아리스가 별안간 입을 틀어막는다.


본인 입장에서는, 몇 시간 전에 나를 죽일 뻔한 방귀보다도 자기랑 같이 잠들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나보다.


"이, 이, 이이이게 다 김덕성이 니 때문이데이! 거거거, 검은 귀축..."


새빨개진 얼굴의 아리스는 주섬주섬 떨어진 이불을 주워, 자신의 몸을 가린 채로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당연히 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꽐라가 돼서 나를 두 번씩이나 방귀로 기절시킨 여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하지만 어쨌건, 아리스의 정체가 발각되는 건 피해야 될 문제고, 여기서 그녀와 나름 연줄을 만들어 놓으면 써먹을 수 있겠지.


"니, 니니니, 이거 아무한테나 말하고 댕기면 우, 우예 되는 긴지 알고 있제...? 이건 절대로......"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겁니다."


아리스가 더듬으며 내뱉던 말을 탁 자르고 먼저 딱 잘라 말한다.


그녀가 열심히 놀리던 입술이 일순 헤벌어진다.


"아무......일도...?"


그녀가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되묻는다.


"선배가 칸사이 사투리를 내뱉으면서 저를 껴안은 것도, 선배가 위력...적인... 가스를 배출...하며 저와 같은 침대에서 잔 것도, 전부 없었던 일이고 모르는 일입니다. 그냥...... 없던 일로 하는 거죠." 



1초, 2초, 3초.



약간의 이해하는 시간이 걸리고 아리스의 얼굴에 화색이 확 돈다.


"지, 지지지진짜로......? 비밀로 해준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다음부턴 술 절대 함부로 마시지 마시고. 이제 다 괜찮으니까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십쇼, 회장 선배. 제발."


사실 별로 괜찮지만은 않았고, 마비된 것 같은 코랑 호흡기관은 며칠이 지나야 회복될 것만 같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지만.


초점이 빠진 눈으로 아리스가 멍하게 중얼거린다.


"평소...평소 모습......"


몇 초간 아리스와 나 사이에 정적이 흐르고, 아직 홍조는 남아있지만 아리스답게 빠르게 침착해진 얼굴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일...... 비밀, 지켜준다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덕성 군."


"그럼 됐습니다,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팽 하고 어지럼증이 일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방문 쪽으로 향했다.


"그......"


"안녕히 계십쇼."


등 뒤에서 무언가 말하려는 아리스를 뒤로 하고 방문을 열어 복도로 나갔다.


덜컥,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그제서야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쉴 수 있었다.


"후우우우우우우....하아아아......"


방의 공기에 비하면 마치 알프스 꼭대기의 공기와 같은 청정한 공기였다.


조금만 더 복도의 공기를 만끽하며, 가능한 한 크게 숨을 쉬어 폐에서 독가스를 정화해보려 노력했다.


이만저만 몸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피로가 한계돌파 직전이라, 하품이 계속 나왔다.


"하아암..."


비록 죽을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어쨌건 결과적으로는 나름 이득인 셈이었다.


아리스의 정체도 들키지 않았고, 그녀와 연줄도 쌓았고, 마음의 빚도 지워뒀으니.


아리스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오히려 무언가 대가를 받는 것보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덮고 넘어간다는 말이 보다 심적으로 빚으로 작용할 공산이 높았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훤히 꿰고 있는 덕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그 강하다는 학생회의 힘도 약간 빌릴 수 있겠고, 7권 문화제 에피소드 개입도 좀 쉬워지겠고.


목숨을 담보로 따낸 성과였다.


살아서 돌아가는 스스로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복도에서 사람을 처음 마주쳤다.


초콜릿색 바가지 머리에 안경. 누가 보아도 나가미네 레이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학생회 일을 돕는 다른 생도들도 있었다.


내가 그를 목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미네 레이지도 나를 인지했고, 투두두둑, 하며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들을 어지럽게 땅바닥에 떨어트린다.


서류가 이리저리 흩어졌지만, 나가미네 레이지는 내가 더 큰 관심사인 듯했다.


"넌......! 김덕성?"


나가미네 레이지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린다.


"가, 간밤에 윗방이 덜컹대면서 흔들리던데......! 대체 회장님과 무슨 일을 한 거냐! 빨리 대답해라!!"


내 대답과 상관없이 이미 스스로 결론을 도출했는지, 나가미네의 눈에는 절망이 가득 찬다.


생도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히익...... 검은 귀축, 저 정도였다니...... 사이온지 선배를 저렇게 강하게..."


"그것도 밤새도록...? 대, 대체 얼마나 쩔길래 사이온지 선배마저 밤새도록 저렇게 강하게 한 거야?"


"사이온지 언니...... 검은 귀축한테 결국 져 버렸어......"


또 시작됐다, 또, 또, 또.


"회장님께까지 결국......"


"나가미네 선배, 뭘 생각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배의 상상과는 전혀 다르니 일 보십쇼."


"나의 회장님이...... 안 돼, 안 돼......나의 회장님이......어흑흑흑..."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절망하는 나가미네와, 자기들끼리 쑥덕대며 나를 피하는 엑스트라들.


"역시 침대 위의 폭군다워......나가미네 선배는 불쌍하지만 김 군 정말 대단할 것 같아......"


"나가미네 선배랑은 비교도 안 될 거 같아, 침대 위에서의 박력......"


혼자 훌쩍대던 나가미네는 별안간 나를 올려다본다.


"기, 김덕성, 다, 당연히, 회장님, 채, 책임은 질 거지?"


떨리는 목소리와 흘러나오는 눈물에서 그의 진심이 가감없이 느껴진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십쇼."


한숨을 쉬며 그를 무시하며, 생도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자 생도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아무튼 이제 진짜 방으로 갈 시간이다.


할 일이 아직 많아.





아카데미 검은머리 외국인 팬픽임 커미션한 소설이구 

여전히 커미션 해줄수 있는 사람 구하는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