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길어져서 분리함

막편 곧 올라올 예정

 



언젠간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내 이름은 강여름. 지난 3년 동안 겨우 하이퍼인 걸 숨기고 학교에선 조용하지만 흠 잡을 데 없는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며 계속 꾹꾹 참아온 결과는 이거였다.

 

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스스스스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시험 성적이든 뭐든. 그런데 바로 내 장, 내 엉덩이가 내 말을 듣지 않다니, 몇 분 간은 머리가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뒤에서 기침소리가 나오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뒤에 누구였지? 맞다, 이가을. 항상 시험에서는 실수로 몇 개를 틀려먹어 나보단 아래였지만 괜찮은 녀석이었다. 얼굴도 순수하고 나같이 말도 적어, 최소한 막 말하고 다니진 않을 거라 믿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녀석에게는 들켰으니, 도박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도박은 정확히 성공했다.

 

난 샤워를 마치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녀석 말대로 오늘은 좀 푹 자기로 했다. 어차피 하루인데. 그리고 눈을 감고 오늘 일어난 만화같은 일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아... 아무리 그래도 처음 제대로 얘기한 사이에 시작부터 그런 부탁은 너무했나. 하지만 당황한 가을이의 표정은 너무 귀여웠다. 녀석이 역겨워하는 모습도 이상하게 재밌었다. 

 

...푸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맞다. 오후 4시 반쯤에 시작된 내 방귀는 아직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내 배가 물리법칙을 위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심지어 똥을 쌀 때도 막히지 않고, 오히려 똥과 같이 터져나와 요란한 사고를 낼 뻔 했다. 다 싼 후에도 휴지를 가까이 가져갈 수도 없어 샤워로 닦아야만 했다. 물론 샤워 중에도 전혀 끊기지 않았고 말이다. 오히려 똥이 없어지고 나니 더 강하게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다.

 

이젠 역겹기보다는 피곤했다. 그냥 공기가 나오는 거였다면 똥구멍으로 그저 숨쉬는 느낌이었겠지만, 장 깊숙한 곳이 꿀렁이며 썩은 음식 냄새가 지속적으로 뿜어져나오고, 빈 자리를 발효된 음식에서 갓 올라온 따뜻한 가스가 또 채우기를 반복하니 간지러우면서 차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익숙해지기도 힘들었다. 아니, 익숙해지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아무래도 진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긴 해야겠다. 난 SNS를 열고, 익숙한 그 녀석의 아이디를 찾아 메세지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간만에 원없이 자 머리는 상쾌했지만, 내 배는 전혀 아니었다. 직감적으로 자는 동안에도 가스가 전혀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꿈에서도 계속 뀌었던 것 같다. 방 전체가 조금 갈색으로 물든 것 같은 건, 제발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창문을 열어놓지 않았다면 질식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숨이 턱 막혔다.

 

방문을 열자 내부, 외부의 공기의 냄새뿐 아니라 물리적 성질 자체가 다른 것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이미 나가고 없고, 여동생만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 녀석은 괴물이 나왔다는 듯 동그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언니 잘 때 어땠는지 알아?"

 

"응." 난 대충 대답하며 기지개를 폈다.

 

스스스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두두두두두두두두둥!!!

 

힘을 주자 자는 동안 나른한 근육 때문에 장에 쌓인 엄청난 양의 누런 가스가 또 터져나왔다. 동생은 정말 넋을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난 말없이 아침을 서둘러 먹었다. 안그래도 가스가 끊기지 않는데 밥을 또 먹어도 되나 고민했지만, 밤새 배출한 걸로 배가 허전했다. 뭐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게 제일이라 했으니 마음 가는 대로 먹었다. 밥을 먹으며 가을이에게 학교 앞 길목에서 기다리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향했다. 속옷에 냄새가 배었을진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 녀석과 함께할 거니 상관은 없었다. 

 

여전히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썩은 냄새의 가스가 자동차 배기가스처럼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학교로 가는 발걸음은 왜인지 평소보다 가벼웠다. 축제날이라 그런 걸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늘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이제 있어서인 것 같다.

 

학교 옆 사람이 비교적 적은 길목으로 들어서자, 난 바로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제 내 가스를 장장 2시간동안 풀로 경험해야 했던 그 귀여운 얼굴.

 

나를 보자 가을이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반겼다. 어색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뭐,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야. 그 방귀... 끝나면 톡하라고 했잖아. 까먹었어?"

 

난 말없이 배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부으으으스스스푸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너 설마 아직까지도 안 끊겼어? 자는 동안에도 내내?

 

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안좋은 건데 왜 미소가 지어지는지 모르겠다. 녀석은 어안이 벙벙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듯 했다. 솔직히 나도 지금 똑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뀌는 당사자이기에 좀 더 실감이 잘 될 뿐.

 

"...그래도 잠은 충분히 잤지?"

 

뜻밖의 질문이었다. 역시 가을이, 항상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저번에 물어봤을 땐 짜증에 내쳤는데 그 일은 아직도 후회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얼굴이 붉어지는 걸 가까스로 식히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응."

 

"그럼 언젠간 나아지겠지. 근데 그럼 오늘 축제는 어떻게 하고?"

 

난 미소지으며 순서대로 내 엉덩이와 녀석의 코를 가리켰다. 

 

푸우우우우우우우우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스스스스스스스스…

 

그러자 녀석은 말벌이라도 본 듯 바로 기겁하며 뒷걸음질쳤다. 하긴 어제 일이 보통 일은 아니었으니까.

 

"아니 아니. 오늘 학교 내내 하는 건 무리야. 어제도 집 가서 한동안 냄새 안 빠져서 고생했는데."

 

"너 어차피 축제에서 같이 놀 사람도 없잖아."

 

그러자 가을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기만 했다. 이것도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명치를 찔렀나.

 

"그니까 나랑 같이 다니면서 너무 냄새나면 한번씩 마셔달라고. 어차피 사람 많아서 누가 뀐 건지도 모를텐데." 난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전문가도 알아봤으니까, 찾기만 하면 돼."

 

"누구?"

 

하지만 난 말을 아꼈다. 가을이는 하는 수 없이 결국 내 옆에 붙어 학교로 향했다.

 

학교축제는 역시 왁자지껄했다. 한 자리에 1분 이상 있을 순 없었지만 우리도 축제에서 즐길 건 즐겼다. 포토부스에서 같이 사진도 찍고, 토스트도 먹었다. 우리가 같이 다니는 걸 신기하게 보는 친구들도 있었고, 놀리는 아이들도 몇몇 있었지만 다들 수긍하는 듯 했다. 공부만 하는 범생이 둘이 어울려 노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인가.

 

부우우우우으으으으으으으으스스스스스스스스...

 

밤새 뀌어서 그런지 지금 가스줄기는 어젯밤보다 훨씬 약해졌지만, 여전히 끊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정신없는 축제 덕분에 조금 실수해도 바람소리와 냄새가 가려진다는 게 다행이었다.

 

한 코너에서는 특별한 장기자랑을 하면 상품을 준다고 광고했다. 내가 장난삼아 해볼까하고 가을이에게 묻자, 녀석이 기겁하는 모습이 볼 만 했다.

 

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으으으으으으으으으...

 

하지만 여유로움도 잠시, 아침과 간식이 위에서 장으로 넘어가면서 또 가스가 뭉클뭉클 쌓이는 게 느껴졌다. 그냥 다 잊고 여기 복도 한가운데서 모조리 내뿜으면 어떨까. 내 뇌가 너무 계산적이어서 그런 일은 죽어도 허용하지 않겠지만 상상해보고 싶었다. 최고 범생이인 내가 하루아침에 방귀의 여왕으로 커밍아웃할 때, 주변 아이들이 어떤 반응일지. 사실, 우리 학교에선 새로운 일도 아니긴 하다.

 

바로 내가 찾던 그 전문가. 부스를 돌아다니며 계속 찾아다녔다. 몇 번 만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리 튀는 얼굴은 아니라 못 알아보면 어쩔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부스를 지날 때, 딱 얼굴을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바로 기억에 떠오르는 그 녀석을 발견했다.

 

"가람아!"

 

고개를 돌린 그 여학생은 나보다 키가 약간 더 큰, 그리고 머리가 좀 더 길고 단정한 소녀였다. 옆에는 다른 한 남학생이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모를 래야 모를 수가 없는 우리 학교의 네임드 소녀였다. 가을이도 그들을 보자 내가 말한 전문가가 뭔지 바로 납득하는 듯 했다.

 

"어, 네가 어제 메세지한 거야?"

 

"아, 너구나!" 옆에 있던 남학생이 말했다. "난 나루야. 그럼 너도 그..."

 

난 고개만 끄덕였다. 그 때, 어느샌가 가람이는 내 옆으로 와 냄새를 맡고 있었다.

 

스스스스스스푸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

 

"응, 문제가 뭔지 확실히 알겠네. 그럼 따라와." 

 

우린 학교 건물을 나와 다시 건물 뒤편으로 향했다. 

 

"그래서... 너도 하이퍼인데, 너무 참다 뀌니까 아무리 해도 끊기지가 않는다고?"

 

"어제 7교시부터 하루 지난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니까. 언젠가 끊기긴 하는 거지?" 가을이가 먼저 물었다.

 

"뭐 마음만 먹으면 평생 뀔 수도 있긴 한데, 그럼 오히려 불편할걸. 길고 얇은 것보단 짧고 굵은 게 백번 낫지."

 

"너도 짧은 건 아니잖아."

 

나루의 말에 가람이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쳤다.

 

"어쨌든, 질질 끄는 것 보단 한번에 확 터뜨리는 게 좋다고."

 

"알아. 근데 말을 들어야지..."

 

가람이는 좀 더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세게 뀌어봐."

 

난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고 힘을 주었다. 때마침 뱃속도 끓고 있었다.

 

부으으으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당~!!

 

오토바이같은 소리와 함께 썩은 피자 냄새의 가스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가람이의 말에 백번 공감이 갔다. 이러는 편이 몇십배는 시원하고 가스도 잘 빠졌다. 거기다 대장이 요동치는 느낌도 의외로 좋았다. 20초가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이걸 교실에서 뀌었다면 수업 하나 파탄내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람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는 긴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진짜 이게 최대야? 야, 그 정도는,"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당!!!

 

"가스 안 차는 날에도 바로 할 수 있겠다."

 

...문화 충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시험에서 완전 신유형의 문제가 나왔을 때도 이 정도로 어안이 벙벙하진 않았다. 하긴, 지하철역 하나를 모조리 채운 소녀한테 이정도는 식은 죽 먹기겠지. 하지만 직접 느끼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가람이는 순수하고 맹한 표정에 변화 하나 없이, 다리를 살짝 벌리고 내 것보다 서너배는 큰 방귀를 뿜어내고 있었다. 비록 길이는 좀 더 짧았지만, 세기, 가스량, 냄새 모든 방면에서 훨씬 위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게 평범한 학생이 우등생을 상대하는 기분이려나. 

 

더 충격받은 건 당연히 가을이었다. 학교 뒤편 전체를 가볍게 채워나가는, 어제 저녁의 내 것을 산들바람으로 보이게 하는 방귀에 공포에라도 질린 건지 동공이 수축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내가 녀석의 눈망울을 너무 자세히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 맞다, 넌 괜찮아? 이름이?" 나루가 가을이에게 물었다. 아직도 눈을 비비며 기침하고 있는 녀석을 대신해 내가 대답했다

 

"가을이야. 괜... 찮을걸. 어제 내 2시간 연속 방귀도 버텼으니까."

 

"그정도 약한 건 누구나 푸우우우우우우우욱! - 버티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더 세게 뀔 수 있는데?"

 

"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난 어릴 때부터 청소날 때문에 세게 뀌는 게 습관이었는데..."

 

그리고 가람이는 또 아무렇지 않게 엉덩이를 살짝 뒤로 뺐다.

 

푸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락~!!

 

학교에서 가람이는 특별관리대상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왜 가람이의 주변 자리엔 항상 나루에 더해 혹시나 실수로 잠에 드는지 감시하는 2명이 상시로 붙는지, 왜 기름진 것이 급식에 나오면 선생님과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나마 내 방귀는 아직 '방귀'의 범주에 들어가지, 이 소녀는 나와 비교도 안 되는 걸어다니는 생물학 재해 그 자체였다. 도데체 어떤 인간이 산더미만한 푹 발효된 가스를 한번에 아무렇지 않게 뿜어낸다는 말인가? 한번은 가람이가 실수해서 녀석의 반 전체가 야외에서 수업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푸라라라락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당~!!! 

푸으으으드드드드득~!!

 

스커트를 휘날리며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서 교실 한두채를 꽉 채울 만한 가스가 뿜어져나오고 있는데도, 가람이는 무슨 일 있냐는 듯 그 자세를 가만히 유지하고 있었다. 나도 그 동안 계속 뀌고 있었지만, 녀석의 배출에 비하면 태풍 앞의 선풍기였을 뿐이다. 난 저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질투심 났다.

 

맞다, 그리고 냄새. 지금까진 나도 뀌고 있는데 남의 냄새 가지고 뭐라 할 순 없어 쉬쉬하고 있었지만, 이젠 참을 수 없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썩은 냄새에다가 청국장과 누린 고기를 한사발씩 다시 들이부어 또 썩힌 듯한 냄새. 기체인데도 똥을 비비는 듯한 느낌이 드는 냄새에 나도 기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을이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래도 이번 건 좀 크긴 했나보다. 특히 마지막이 더러워서 나루조차 얼굴을 찌푸릴 정도였다.

 

"가람아 너 진짜 청소시간 다가오는 건 아니지?"

 

"아니. 이번엔 확실해. 바로 어제 저녁에 같이 뺐잖아."

 

"청소시간이 뭔데?"

 

"가스가 엄청 쌓여서 방귀가 비교도 안 되게 커지는 때. 지하철역에서도 청소날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이것보다 훨씬 더 커진다고...?"

 

"이건 청소날 방귀에 비하면 애교지."

 

"그럼 혹시 어제 공원에서 들렸던 소리가..."

 

"빙고~!" 가람이가 웃으며 외쳤다. "더 세게도 할 수 있었는데. 피자 5조각만 먹었는데 그만 먹으라 해서..."

 

"야, 더 먹었으면 학교 나가지도 못하고 터졌어." 

 

나루의 웃음 섞인 대답이었다. 역시 저 정도로 가스가 차도, 늘 옆에 의지할 사람이 붙어있으니까 좋은 거겠지. 난 항상 이미지 생각, 공부 생각하느라 참고만 다녔는데... 또 질투심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우리 좀 있으면 반 부스로 교대해야 하거든." 

 

가을이가 말했다.

 

"아 맞다. 그니까 잘 뀌는 법이라 했지, 음..." 가람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항상 즉흥적으로 뀌는 타입이지, 계산하는 타입은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청소날의 그 느낌을 떠올린 끝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 알겠다. 내 경험상으로 중요한 건 장이랑 리듬 맞춰서 뀌는 거야. 그 느낌 알지? 공명하는 것처럼."

 

"그거 말고도 또 중요한 거 있잖아." 그 때 나루가 끼어들었다.

 

"뭐?"

 

"가람이도 처음엔 힘들게 참고 다녔는데, 나랑 다니다 보니까 훨씬 더 시원하게 잘 뀌게 된 거거든. 그만큼 믿고 같이 있어줄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아. 그런데 이미 있는 것 같네."

 

그 말에 나와 가을이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5초도 안되어 홍당무같이 빨개지는 얼굴에 시선을 피했다.

 

"ㅈ...진짜? 근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못해도 돼. 나루도 아직 며칠마다 한 번씩 기절하는데." 가람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이제 우리 반 부스를 지켜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구석에서 간단한 회계와 음악을 트는 담당. 앉아서 들어오는 돈만 세고 적으면 되었고, 음악도 내 맘대로 틀 수 있어 방귀소리는 실수하지 않는 한 얼마든지 가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스는 계속 쌓일 거라는 게 문제였다.

 

가을이는 내 바로 뒤를 돌아다니며 음식 서빙 일을 맡았다. 매운맛 카페라는 아이디어는 누가 낸 거야. 사람이라도 적게 오기를 바랬는데 머피의 법칙인지 반대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나마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도 매운맛 때문이라 생각할테니 그 점만은 장점이었다.

 

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륵..!

 

가을이는 컵라면 서빙하랴, 내 뒤로 와서 가스 흡수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학원에서보단 비교적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교적으로. 음식물 쓰레기장, 분뇨 처리장 한가운데에서 하룻밤 캠핑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만일 방귀를 너무 많이 뀐 죄로 들어가는 지옥이 있다면 딱 내 상황일 것이다. 전생의 평범한 삶에서 한 1년동안 뀌었을 만한 방귀를 제일 중요한 날 하루에 몰아서, 그것도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좋… 잘 통하는 사람 앞에서 뿜어내야 한다는 형벌. 하지만 구린내가 맛으로 느껴질 정도의 진한 가스를 흡수하고 있으면서도 가을이의 입에 띈 변함없는 미소는 이 지옥 마저도 천국처럼 느껴지게 했다. 저 미소를 지금까지 하루 종일 책상에 처박으며 낭비하고 있었다니.

 

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내 가스가 아마 오늘 우리 학교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는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가람이는 제외하고. 어찌 보면 가을이는 지금 학교 옥상의 태양광 패널보다 훨씬 더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녀석은 그새 적응했는지 아직도 멀쩡히 돌아다녔지만, 시간이 지나며 걸음이 점점 느려지는 게 눈에 띄었다. 정말 이런 걸 좋아하는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아직도 버틸 수 있는지 궁금했다.

 

…설마 진짜 좋아하나? 뭐 그럼 차라리 잘됐다. 솔직히 나도 취향이 그리 평범한 편은 아니니까. 애초에 공부를 혐오하지 않는 것부터 우리 둘 다 정상이 아니지 않는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정말 어디까지 좋아할 수 있는지 볼까. 어차피 내 배도 더 심하게 들끓고 있었다. 난 의자에 앉아 다리를 좀 더 넓게 벌리고, 엉덩이를 좀 더 앞쪽으로 향했다.

 

스스스스스스푸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시냇물에서 계곡물 정도로 가스가 더 많이 흐르기 시작했다. 방귀의 크기를 한 번에 뀐 양도 아닌 초당 배출하는 가스량으로 판단하고 있다니, 이게 물리학 문제도 아니고 뭔가. 눈에 띌 정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가스를 보고 바로 달려온 가을이는 역시나 냄새를 맡더니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갈 길은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난 가람이의 말을 기억하고, 그저 내 장의 리듬에 내 항문을 맡겼다. 

 

그 상태로 1시간이 지나고…

 

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부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1시간 반이 지나서…

 

부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스스스스스스스스스…!!

 

하지만 협주곡은 돌림노래같이 끝나지 않았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내 커피와 인스턴트 음식으로 절여진 배는 지금까지 18시간이 지났는데도 변함없이, 아니 오히려 뿜어낼수록 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가을이의 얼굴에서 그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몇 분에 한 번 꼴로 창문에 가 맑은 공기로 세수를 했다. 하지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다행인지 아닌지 아무도 없었다.

 

그 때 아직 헛기침도 마치지 않은 찰나, 누군가가 녀석을 불렀다.

 

"야, 3번 테이블에 엑스트라 매운라면!"

 

"지금 가!"

 

가을이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조리된 컵라면의 용기를 조심히 들고 갔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걸음걸이부터, 머리놀림까지...

 

그 순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직후 내 눈에 들어온 건 책상 다리에 걸려 넘어진 가을이였다. 다행히 녀석이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라면은 바닥에 온통 엎질러진 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은 소란스러워졌다.

 

"가을아!" 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내가 아직도 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만일 닦으러 허리를 숙이기라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내 뇌는 왜 이럴 때도 쓸데없이 똑똑한 걸까.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이 구석을 벗어나지 못하고 눈으로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야, 뭐해?!"

 

"미-미안..."

 

"야 씨, 다 묻었잖아!"

 

가을이는 아직도 욱신거릴 몸을 일으켜 연신 사과할 뿐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 건 제발 내 냄새 탓이면 좋겠다. 다들 가을이에게 너무 가혹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내 부모님도 실수했다고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러면서도 녀석은 날 보았다. 난 있는 힘껏 다시 가스밸브를 좁게 조이고, 녀석에게 그 일 먼저 끝내라 손짓했다. 그러자 녀석은 바로 걸레를 집으러 달려갔다. 계속되는 험담에도 가을이는 꿋꿋이 자리를 청소하고,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괜찮아?"

 

"괜찮아. 오늘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이제까지 참았던 것이 물밀듯이 몰려와 입을 열 겨를도 없었다. 거기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니 장도 더 활발해지는 것 같았다. 미안, 이것만 참아줘. 난 엉덩이 양쪽을 최대한 넓게 벌리고, 수돗물이 콸콸 흘러넘치기 직전까지 꼭지를 돌린다는 느낌으로 힘을 풀었다.

 

스스스스스스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대장 깊숙한 곳에서 푹 발효된 따스한 썩은내가 내 코마저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엉덩이에서 뿜어져 벽에 한 번 반사되고, 내 몸을 돌아 회절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바람이 느껴질 정도면 바로 뒤는 어쩔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냄새를 맡자마자 직감적으로 어제 먹은 피자가 발효되어 나온 냄새라는 게 느껴졌다.

 

딱 하루 지났는데 일주일은 발효된 듯한 진한 냄새라니, 좀 더 연구하면 발효식품의 새 장을 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내 항문을 태우면서 안 그래도 불쌍한 가을이를 더 고문하는 용도로밖에 쓸 수 없었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푸푸푸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르릉…!!

 

코끼리가 와도 다 흡입하기 힘들 만한 양의 누런 가스를, 지금 나와 통하는 유일한 친구한테 끊임없이 뿜어내야 한다니. 하지만 내 대장은 자비 따위는 학원 선생님보다 몰랐다. 시간이 갈수록 배는 더 살살 아파왔고, 가스줄기는 소리 없이 배출할 수 있는 한계치를 오락가락할 정도로 더 진하고 굵어졌다.

 

녀석도 더이상 커버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 것 같았다. 아마 지금쯤 옐로스톤 공원에서 뿜어나오는 수준의 유황과 메탄가스를 들이마셨을 가을이는, 점심시간을 20분 남기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용케 기절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모두 들이마시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아참, 그리고 내가 어제 피자를 10조각 넘게 먹었다는 사실은 거의 반 전체가 들었다. 이 지옥불로 구운 피자 같은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용의자는 하나일 것이다. 이제 정리만 하면 되는데, 제발… 내 아랫배 자체라는 시한폭탄을 해체, 아니 조금이라도 타이머를 늦추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짜냈다. 하지만 가을이의 표정도 그렇고, 이제 아무리 생각해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때,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락!!

 

교실에 메아리친 우렁찬 방귀소리의 근원은 내가 아니라 손님들 테이블 한가운데였다. 그 가운데엔 또 그 긴머리 소녀가 있었다.

 

"야!"

 

"미안. 순간 조절이 좀 풀렸네~"

 

바로 가람이었다. 옆에는 늘 그렇듯 나루가 다른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있었고 말이다. 구석에서부터 조금씩 퍼져나가던 내 냄새는 가람이의 방귀 폭탄에 모조리 가려졌다. 일반인은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무슨 냄새야?"

 

"가람이! 알잖아!..."

 

"오늘 잠잠하다 했더니..."

 

그리고 가람이는 나를 보고는 윙크를 날렸다. 덕분에 정리할 때까지 무사히, 아무도 눈치 못 채고 끝마칠 수 있었다. 난 곧바로 가을이를 데리고 사람이 드문 과학실 쪽 복도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제서야 또 우린 동시에 한숨을 푹 쉬었다. 어제 오늘만 이 짓을 하는 게 몇번인가.

 

"야, 진짜 아직도 안 끝났어?"

 

"응. 근데 진짜 거의 끝낼 수 있을 거 같거든? 점심 먹고 힘만 내면..."

 

"안 그래도 가스 차는데 점심 또 먹게?"

 

"소화되는 데엔 시간 걸리잖아. 빨리 밀어내는 게 먼저라고."

 

"그럼 급식실에서는 어떻게..."

 

그 때 어느샌가 다가온 가람이가 또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급식 테이크아웃 티켓. 

 

"이거 보여주면 야외에서 먹을 수 있을 거야."

 

"고마워."

 

가을이가 먼저 감사인사했다.

 

"뭘. 하이퍼끼린 돕고 사는 건 당연하니까. 오히려 여름이 지금까지 챙겨줘서 내가 더 고맙지."

 

그리고 가람이는 녀석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분명 격려하는 의미였겠지만, 둘이 가까이 있는 걸 보니 묘하게 기분이 안좋았다. 난 서둘러 사이에 끼어들어 가을이의 반대쪽 어깨에 팔을 올리고, 와이셔츠에 배인 내 가스의 썩은 치즈향이 느껴질 정도로 녀석의 품에 더 가까이 붙었다.

 

"그래. 진짜 고마워. 그러니까 우리 빨리 가서 점심 먹자." 

 

그리고 난 녀석을 재빨리 데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놀리는 듯한 가람이의 표정은 뒤로 한 채. 이제 시험에 비유하자면, '킬러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