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침침한 숲 속, 나무에 묶여있는 피슬은 힘없이 고개를 축 떨구고 있었다. 몸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지, 헐겁게 자신을 묶고 있는 밧줄 하나 풀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헤일리는 답답한 듯, 말했다.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약물과, 몸을 망치는 독약을 매일같이 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피슬의 입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다.


"시우..."


죽음이 다가 오기라도 하는지 눈앞이 캄캄했다, 피슬은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눈을 깜빡거렸지만, 흐릿하고 어두침침한 시야는 여전했다.


그 모습에 헤일리는 답답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 정말 죽여버릴지도 몰라? 나도 한정되어있는 시간이 있고 그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거든. 모래 시계의 모래가 이제 곧 전부 떨어지고 말 거야."


헤일리는 피슬의 가슴에 칼을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발끝으로 쪼그려 앉은 헤일리가 중심을 조금만 잃는다면, 그대로 칼날이 파고들 것이었다.


연약한 살갛을 뚫고, 근육을 갈라 단번에 생명력을 가득 담고 뛰고 있는 심장을 꿰뚫으리라.

피슬의 심장은 구멍 난 채로 열심히 뛰어보겠지만, 주인을 살리는데 무리일 것이다.


"몰라...알아도...화물의 위치는 알려주지 않을 거야."


피슬은 힘없이 말했다. 의식이 온전치 않았다. 마치 꿈을 꾸듯 다 풀려버린 얼굴로 그것만큼은 절대로 말할 수 없다는 듯 헤일리의 속을 박박 긁어내고 있었다.


"으으..."


헤일리는 충동적으로 손에 쥔 단검을 앞으로 밀어버릴 뻔했다. 바르르 떨리는 손에 피슬의 가슴 쪽에는 작은 혈선이 만들어졌다.

어린아이가 낙서한 것처럼 피슬의 가슴에는 딱지진 상처들이 가득했다.

그, 작은 선 하나하나가 헤일리의 갈등이 담겨있었다.


"3시간이야. 나도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어."


헤일리는 결국 피슬을 죽이지 못했다. 단검을 다시 허리춤에 끼워 넣고는 팔짱을 끼고 피슬을 내려다봤다.


피슬은 않을 거야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4일. 정신을 해이하게 만드는 독과, 몸을 망가트리는 약에 한계까지 몰린 피슬이었다.


"죽어도…. 말 하지 않을 거야..."


다만 의지는 명확했다. 헤일리는 피슬을 걷어차고 때리는 것보다는 그냥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방법은 지난 시간 동안 충분히 했으니까. 고문에 가까운 폭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만 증명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정말로 죽어버릴 텐데?"


남은 방법은 죽음뿐이었다.

헤일리는 남은 세 시간이라는 시간에 피슬을 고문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살짝 실눈을 떠,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피슬을 바라봤다. 곧 영원히 보지 못하는 그 모습을.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마지막 세 시간이 지났다.


"결국 끝까지 말하지 않았네. 나도 이제는 어쩔 수 없어. 너를 살려둘 수는 없거든."


헤일리는 무심하게 피슬을 내려다보며 잠깐 넣어두었던 단검을 꺼냈다. '다가 오기라도~!' 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꺼내진 단검. 전처럼 피슬의 가슴에 닿지 않았다.


다가 오기라도 강하게 쥔 손아귀 힘에 단검의 끝이 바르르 떨렸다. 앞이 아닌 뒤로 당겨지는 단검은 화살처럼 헤일리의 팔에 화살처럼 쏘아질 것 같았다.


피슬은 흐릿한 눈빛으로 자신의 가슴을 향한 단검을 바라봤다.

이제는 지쳤다. 고통도 싫었고, 혼자 괴로움을 이겨내는 게 싫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모든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한 순간, 다가오는 단검과 겹치는 한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보고 싶은 얼굴.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안아보고 싶었다.


'푹!'


피가 튀었다. 얼굴에 흩뿌려지는 새빨간 핏물에, 두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피슬은 그래도 마지막에 고통은 없구나 생각하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고통이 없다고 한들 이렇게 없을수가 없었으니까.


"아...?"


피슬은 천천히 두 눈을 떠 눈앞을 바라봤다. 핏물이 눈에 스며들어 갔는지, 세상이 붉었다.

하지만 붉어진 세상 속 무너지는 한 사람이 보였다.


'쿵!'


헤일리는 피슬의 앞에 쓰러져 풀잎들을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작게 몸을 경련했다. 입으로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헤일리의 가슴은 깔끔하게 칼날로 꿰뚫려 있었다. 바닥과 함께 꿰어진 칼날은 심장을 단번에 관통했다.


"시우...?"

"허억...허억..."


피슬은 숨을 몰아쉬는 시우의 모습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가운 얼굴에 머리가 각성했다. 흐릿한 정신은 일순간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두 눈에는 총기를 되찾아 눈을 마주쳤다.


"다행이야."


시우는 단 한마디만 남기고 나를 안아 주었다.

그의 옷은 성한 곳이 단 하나도 없었다. 비릿한 피가 스며 나오기도 했다.


피슬은 자신을 껴안은 성우의 거칠어진 숨소리에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잠깐 타올랐던 의식의 불꽃이 훅! 하고 사그라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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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어?"


피슬이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이 지난 이후였다.

시우는 간신히 의식을 되찾은 피슬의 이마를 손으로 살살 쓸어 주었다. 피슬은 따뜻하게 몸을 덮은 담요와 시우의 손에 안도감을 느꼈다.


'주르륵~!'


하지만 동시에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고, 고문까지 당했다.


시우는 엉엉 울기 시작하는 피슬의 모습에 조용히 눈물을 닦아주었다. 몇 번이고, 피슬의 뺨을 오가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시우가 피슬의 눈물을 닦는 것을 멈춘 것은 한참이 지난 이후였다.


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피슬은 당황스러움에 눈물을 멈췄다. 뱃속이 이상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뱃속에 드레곤이라도 있는 것 처럼, 우렁찬 소리가 났다.


"배...배가 고픈 걸까?"


피슬은 얼굴을 붉혔다. 점점 몸의 상태가 돌아오면서 뱃속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점점 느껴졌다.


수많은 독약에 신의 눈은 피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어떻게든 생명의 끈을 붙잡기 위해, 독약을 해독했고, 피슬의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 많은 독을 해독할 수는 없었다.


"흐윽..."


뱃속이 터질 것 처럼 부풀어 오르는 느낌에 피슬은 양손으로 배를 부여잡았다.

느껴졌다. 배를 감싼 양손이 점점 위쪽으로 올려지는 것이.


시우는 그런 피슬의 모습에 그저 배가 고픈 줄로만 알았다. 며칠을 굶었을 테니 당연하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슬에게 뭐라도 먹여아한다는 생각에 웍을 모닥불 위로 올렸다.


"죽을 것 같아..."


정작 피슬은 뱃속에서 차오르는 가스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독약을 해독하고 남은 찌꺼기들이 위장의 움직임에 맞춰 가스로 변하고 있었다. 피슬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절대로 지금 이 뱃속에 차오르는 가스들을 배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마침 남은 육포가 있어서, 따뜻한 수프를 만들어 줄게."

"고...고맙다..."


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피슬의 몸은 성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치료를 방금 끝마치기는 했지만, 새하얗던 피슬의 피부는 얼록러록한 멍들로 가득했다. 가슴 한가운데 만들어진 칼자국들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는지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시우의 눈에는 피슬이 몸을 뒤트는 것이 아직 고문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것을 보였다.

그것이 내심 안타까워, 요리하는 와중에도 피슬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다른 곳을 봐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정작 피슬의 마음은 달랐다.

시우가 시선을 떼지 않으니, 뱃속에 들어찬 가스를 내보낼 기회가 없었다.

시선을 보고 있다는 것은 감각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선도 그리고 청각도 집중되어 있어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었다.


피슬은 차마 시우의 앞에서 방귀를 뀔 수는 없다는 생각에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쉴수록 배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못 참겠어...'


곧 한계는 찾아왔다.

피슬은 자신의 몸에 덮인 담요를 찢어낼 듯 손에 힘을 주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난 뒤였다.


시우가 만드는 수프는 보글보글 끓어올라 완성에 가까워졌고, 피슬의 배도 악독한 독약의 찌꺼기들로 보글보글 끌어 올랐다.


피슬은 손으로 살살 배를 두드려 봤다.

통통! 하고 뱃속이 가득 들어찬 소리가 들렸다. 공기층이 얼마나 압축되어 있으면, 울려야 할 소리가 먹혀 먹먹한 소리가 났다.


"괜찮아? 일단 밥이라도 좀 먹어야 하지 않을까?"

"지...지금 내가 먹을 수 있을 것 상태 인 것 같아?...."

"그래도 좀 일어나서 먹어봐. 뭐라도 먹어야 체력을 회복하지."

"정말로 무리다. 나중에 먹도록 하겠다..."


그런 와중에 몸을 일으키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피슬은 자신에게 다가온 시우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단히 담요를 붙잡았다.

시우의 손에 들린 수프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에 피슬의 배가 더 요동쳤다.


한동안 먹지 않았던 음식에 소화기관이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안에 쌓여있던 찌꺼기들이 소화되기 시작하면서 유독한 가스들을 잔뜩 만들어냈다.


"하아...하아..."


점점 상황은 심각해져 갔다.

피슬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배에 눈물을 머금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 위장에만 머물러 있었다.

소장을 풍선처럼 부풀라며 내려오는 탓에 어느 한 곳에서 막혀버린 듯 방귀가 나올 것 같은 신호는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먹어야 해. 가만히 누워있어 내가 먹여줄 태니까."


정말로 괴로워 보이는 피슬의 모습에 시우는 직접 그릇을 손에 쥐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나무 숟가락을 들어 수프를 떠 피슬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


다가온 숟가락에 피슬은 굳게 입을 닫았다. 안 그래도 뱃속의 가스가 마구 생성되고 있었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저...정말 괜찮아...오히려 먹으면 더 힘들거랏서."

"아니야. 힘든 일을 겪어서 식욕이 없는 건 알아. 하지만 일단은 먹어야 체력을 회복할 수 있어. 빨리 건강해 져야지."


'스윽~!'


눈앞에 아른거리는 숟가락에 피슬은 군침을 삼켰다.

몸은 너무나도 솔직했다. 눈앞에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온몸이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생존본능이었다. 며칠을 굶은 신체는 살기 위해 영양소를 원했다.


"흐윽...! 흐극...!"


피슬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그냥 음식을 먹고 시원하게 뱃속의 방귀를 내보낼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방귀를 참아내 시우 몰래 해결을 할 것인지.


피슬이 선택한 것은 방귀를 참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안 먹겠다는 거야...?"


그런 피슬의 모습에 시우는 답답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피슬은 위험해 보였다.

그럼에도 고고하게 빳빳이 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숟가락에 있는 음식을 피했다.


꿀꺽!


그러면서 정작 숟가락이 코앞을 스쳐 지나갈 때는 목울대를 일렁거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


꼬르르르르르륵~!


사실 마음만 같아서 피슬은 시우가 들고 있는 수프에 머리를 처박고 먹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피슬의 몸속에서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는 가스들이 있었다.


저걸 먹으면 정말로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었다.


그만큼 독의 영향은 강했고, 지금도 점점 배의 압력은 강해지기만 했다.

힘으로 제어하고 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아...하아...배가 고프지 않으니 당연하다. 그보다 식사는 됐고, 가서 주변이나 한번 둘러보지그래?"


피슬은 벅찬 숨을 헉헉 내뱉으며 어떻게든 시우를 내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내가 갈 리가 없잖아?"


시우가 갈 리가 없었다.

괜히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생각한 시우는 구멍 난의 뺨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주며 간호를 이어갔다.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먹어 피슬."

"고집이 아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거다!"


꼬르르르르르르르르륵~!


피슬이 말이 끝나자마자 튀어나오는 우렁찬 소리.

시우의 표정은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이 되었다. 반대로 피슬의 표정은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표백되어버린 수준.


"하아...하아..."


더 이상은 한계.

이제는 눈의 힘으로 억누르는 것에도 한계가 왔다.

평소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쇠약해진 몸과 정신은 힘을 유지하는 것에 현기증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피슬?"

"안돼...이대로라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시우를 어떻게든 이곳을 떠나게 하기 위한.


'하지만 어떻게...?'


허나 피슬의 머리에 떠오르는 방법은 딱히 없었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제발..."


그저 애원할 뿐이었다.

시우가 잠시 자리를 떠주기를 간절히.


"이렇게 부탁하겠다. 그러니까 잠깐만 자리를 비켜줘. 최대한 멀리 떨어져 달란 말이다."

"묶고 있는 정말 이해를 못 해서 그러는데 이유라도 설명을..."

"윽..."


볼록, 시우는 말하는 와중 배가 볼록하게 올라는 피슬의 상태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


혹시 상처가 깊어서 뱃속에 복수가 차오르고 있는 걸까.

시우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이상 피슬의 아랫배가 저렇게 급격하게 부풀어 오를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꾸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룩!!!


그러면 저 우렁찬 소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엄청난 압력의 공기가 좁은 가죽 주머니를 통과하는듯한 저 소리를 ?"


시우는 혼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지금 피슬의 상태에 맞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가 없었다.


"나...나와...! 나온다고...!!!"


그만큼 피슬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가파른 절벽에 한 손가락만으로 걸친 채 않을 거야 바닥나가는 느낌.

시우가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방귀를 참아내는데 온 정신을 쏟아야만 했다.


"나와...?"

"제...제발...자리를 비켜줘...!"


이제는 거의 애걸복걸하는 피슬이었다.

시우는 그제야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힘을 주었다.


반쯤 무릎이 펴지고 손에 들려있는 수프 그릇을 놓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울려 퍼지는 피슬의 처절한 신음.

마치 심장에 칼이라도 박힌 것 마냥 절규하는 그 소리에 시우는 그대로 흠칫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짦은 시간 시우의 머릿속에선 최악의 경우가 하나 불쑥 튀어나왔다.

사실 피슬의 몸속에선 엄청난 괴물이 자리를 잡고 있고, 배가 튀어나오는 건 그 괴물이 이제 나오려는 것이라는 생각에 시우는 다급히 고개를 돌려 피슬을 바라봤다.


뿌부부부붑부부부북! 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뿌르르르르르르륵! 뿌르다다다다다다다닥!!!!

푸확! 


엄청난 바람이 시우를 향해 몰아쳤다.

순간 바람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의 나무들의 나뭇잎들이 파동에 휩쓸려 피슬과 멀어지기를 원하는 것처럼 기울어졌다.


"무슨..."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시우는 귀가 먹먹한 느낌에 양손으로 귀를 살살 쓸어내렸다.


"욱...!"


손을 들어 올린 순간 터져 나오는 헛구역질.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뒤늦게 코안 쪽의 점막을 폭행하는 엄청난 냄새가 인식되면서 덜컥 숨을 멈추고 말았다.


'무...무슨 냄새가...'


시우의 입장에서는 살면서 처음 맡아본 냄새였다.

온갖 재료들이 들어가 있는 마녀의 항아리에서도 이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코를 확 찌르는 식초처럼, 점막을 태울 것 같은 강렬한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달걀이 썩어 고체가 되어버리는 직전의 상황까지 가서야 나는 강렬한 냄새는 코가 아닌 입으로 숨을 쉬는 것 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코의 깊은 곳.

냄새를 판별하는 세포에 조금이라도 냄새가 역류한 순간 코로 들이쉰 것보다 역한 냄새를 맡아졌기에.

너무 강한 냄새는 차라리 얻어맞은 것 같은 고통만을 느끼지만, 역류한 냄새는 말 그대로 최악의 악취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냄새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문제는 방귀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


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뿌딕!!! 뿌빠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피슬의 방귀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보다 더 강해지고 있었다.


"아..."


그리고 참고 참았던 피슬.


'기분 좋아...'


괴로운 생리현상을 해결하며 적잖은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혼자서 자위를 하다 느껴지는 묶고 있는 비슷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녹아버릴 듯 힘이 쫙 풀려버린다.


"흐아아아아아..."


자신의 몸에서 나온 방귀 냄새를 맡지 못했기에, 황홀경이 방해받는 일은 없었다.


"우웩!! 웨에에에에엑!!!"


물론 시우는 괴로움을 잔뜩 받고 있었다.


지독한 냄새에 양손을 목을 틀어막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시간이 갈수록 밀도 있는 악취가 지역을 장악해가기 시작했다.


생동감이 넘치게 고개를 들고 있던 꽃들은 천천히 꽃잎을 바닥으로 늘어트리기 시작했다.

풀들은 누가 짓밟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바닥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크엑...! 웨에에엑!!!"


시우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을 뒹굴뒹굴 구르며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 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미 밀어버릴 뻔했다 피슬이 뿜어낸 악취에 오염되어 있었고, 탁하고 묵직한 기운은 바람에 날아가지도 않고 냄새와 함께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으긋...! 시...시우!"


그 무렵이 되어서야 피슬의 눈이 시우에 닿을 수 있었다.

모기향을 가득 채운 컵에서 꿈틀거리는 모기처럼 온몸을 벌벌 떨며 괴로워하는 시우.


꾸르르르르르르르르륵!!!!


피슬은 다시 방귀를 참아내기 시작했다.

방귀를 내보내 홀쭉했던 피슬의 배는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헉...허억...헉..."


덕분에 시우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이..."


헉헉 거리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시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의아한 눈빛으로 다 삭아가는 주변의 환경에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


"켁...!!!"


뒤이어 정신과 함께 후각도 점점 되돌아온다.


"나...나는 잘못 없어."


피슬은 그런 시우를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꼈다.

해방의 순간은 달콤하기 그지없었지만, 다시 한 번 참으면서 올라오는 괴로움과 죄책감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피슬...이게 무슨 일..."


뿌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건 실수였다.

피슬은 방귀를 참으려고 했지만, 한순간 집중이 흐트러지며 그대로 괄약근을 통해 방귀가 미친 듯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푸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우연인지 운명인지 파동 형이 아닌 부채꼴로 뿌려지는 피슬의 방귀

힘겹게 뒤를 돌아 피슬을 바라본 시우의 얼굴에 그대로 직격한다.


"으퓨하부으가으하헉!"


엄청난 압력과 냄새.

눈이 매캐해지는 느낌에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화생방에 들어온 것 마냥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 같고 눈은 뜰 수가 없어 꽉 감긴 채 부들부들 떨린다.


뒤틀린 황천의 식초향.

시우는 그 향을 견딜 수 없었다.


"푸크...프하하하하핳...!"

"시...우?"


결국 미친 사람처럼 날뛰기 시작한다.

벗어날 수 없는 고통에, 광대처럼 팔다리를 휘청거리며 눈물을 사방으로 흩뿌린다.


"왜...왜 저러는 거야?"


뿌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빵!!!!!


한 번 터져 나온 방귀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터져 나온 오줌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휘청~!


그리고 그건 정말 피슬이 의도한 게 아니었다.

방귀를 뀌며 불편해진 자세를 뒤척거리던 와중 각도가 정확히 시우를 향하게 되었을 뿐


푸화아아아악~!!!


시우의 머리가 순식간에 전부 뒤로 넘어간다.

올백 머리가 되어버린 시우.


"괘...괜찮아. 시우?"


광대처럼 몸을 휘청이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니 불안해진 피슬이 안부를 물어본다.


"..."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썩어버린 고목처럼 그대로 모든 행동을 멈추고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털썩!


그러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옆으로 털썩 쓰러진다.


"..."


피슬은 어린아이가 낙서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조용히 입을 닫았다.


생명에는 지장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피슬은 자신의 뱃속의 상황을 해결하는데 온 힘을 쓰기로 했다.


"후우..."


어차피 기절해서 듣지도 느끼지도 못할 테니.

빠르게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게 최고의 방법일 거다.


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뿌르르르륵!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부우우우욱!!!


터질 것 같은 압력을 배출하는 데 힘을 푸는 게 아닌, 배에 살짝 힘을 주는 것 만으로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가스가 터져 나온다.


'움찔!'


그 순간 시우의 몸에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피슬은 보지 못한 작은 움직임.


'사...살려줘...'


시우는 의식이 있었다.

아니 온몸을 흔들며 발광을 할 때도 의식은 있었다.


단지 온 신경계가 혼란을 일으켜 경기를 일으킨 것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을 뿐이었다.


'몸이...움직이지가 않아...'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시우는 몸이 감옥이라도 되는 것 마냥, 그대로 괴로움을 느껴야만 했다.


'도대체...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필 피슬이 방귀를 뀌는 장면이 시우의 기억 속에는 삭제되어버려, 시우는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왜 움직이지 않는지, 이 고약한 냄새는 무엇인지. 그리고.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 폭발음은 도대체 뭐지?

이 소리가 들릴 때마다, 뿜어져 오는 바람과 함께 악취는 더욱 강해져만 간다.


"컥...크억..."


이제는 숨도 못 쉴 정도가 되어버렸다.

가위에 눌려 멋대로 숨을 못 쉬는 느낌이 이런 걸까.


지독한 악취에 정신이 각성됨과, 숨을 못 쉬어

점점 의식이 잃어간다.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지막 까지 시우가 들은 건, 뱃고동 소리처럼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피슬의 방귀 소리였다.


"..."


뿌륵~! 뿌윽! 뿌르르륵!!!


소심하게 울려 퍼지는 방귀 소리.

간신히 진정이 되어가지만, 그 오랜 시간 이어진 참혹함은 그대로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그르르르륵..."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시우.

다 죽어버린 풀들은 갈색으로 변색하여 처참하게 바스러지고.

생명력이 가득했던 나무마저 위태롭게 보였다.


"미안해...미안...미안해..."


피슬은 기절한 시우에게 계속해서 사과했다.

정말 죽을 것처럼 보이는 시우의 모습에 피슬의 정신은 잔뜩 피폐해져 있었다.


-덜그럭! 덜컥!


그러던 와중 멀리서 들려오는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


바닥에 누워있는 피슬은 동공을 덜덜 떨며 상처들이 시작했다.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할지.


"윽..."


그냥 기절해 버리자.

피슬은 마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그대로 눈을 감아버리고 의식을 잃어버린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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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억이 하나도 없는 거야?"

"없어. 정말로."

"...큰일이네 시우도 그 순간의 기억이 없었다 하고."


상처들이 추궁에 피슬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조용히 루미네의 시선을 피해 몸을 옆으로 돌렸다.


"고약한 냄새가 났고, 그대로 기억이 끝났어."

"으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시우는 내 방귀 때문에, 기절해 버렸고 그 오염으로 오해받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걸.


"...그보다 할 말이 있어."


하여 사건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 피슬은 상처들이 대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꺼내질 때마다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