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까지 오니까 힘들다

 



점심 시간.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엔 의외로 가스의 흐름에 큰 변화가 없었다. 옆 테이블의 가람이도 한두번 실수한 것 외엔 뀌지 않았다. 그 한두번이 급식 전체에서 썩은 맛을 나게 할 수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열린 공간이라 가을이도 어찌어찌 점심을 다 먹고 교실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모두 강당에 모여 공연을 볼 차례였다. 이보다 좋은 기회가 더 있을까. 모두 줄을 서고 나가며 텅 비는 교실을 보니 벌써 준비한다고 배가 요동지는 것 같았다. 난 줄 바로 옆 가을이에게 귓속말했다.

 

"이-이제 사람도 없으니까 나 혼자 해결할게. 공연 재미있게 봐!"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있다 가겠다고 선생님한테 말한 후, 교실으로 혼자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휑한 교실이 이보다 반가울 수는 없었다. 드디어 가을이 신세도 지지 않고 마음껏 방출할 수 있었다. 옆옆반도 모두 빈 걸 확인한 후, 난 시험삼아 그 자리에서 손을 쭉 뻗고 스트레칭해 보았다.

 

푸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이 맛이지. 하지만 생각보다는... 약했다. 가람이의 레벨에 비해선 당연히 턱없이 부족했고 말이다. 물론 다른 학생들이 본다면 한 여학생이, 그것도 전교 1-2등을 다투는 범생이가 교실 전체를 채울 만한 썩은 가스를 뿜어내고 있다는 것에 뭐라 말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드드드드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등~!!!

 

어제 4시 반쯤 시작했으니, 지금까진 한 20시간 뀌었나. 이젠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20시간 동안 배가 더부룩한 것도 아니고, 20시간 내내 말 그대로 방귀가 끊기지 않았다니. 그러고서도 지금 이렇게 뿜어낼 가스가 남았다니.

 

그래도 어제랑은 배의 움직임이 달라진 게 확실히 느껴졌다. 이 가스의 재귀함수에 끝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른다. 다시 팔다리를 뻗고 힘을 주려는 순간, 교문이 열리는 소리에 성급히 엉덩이를 손으로 막았다. 다행히 이내 보인 건 익숙한 얼굴이었다.

 

"ㄱ-가을아? 공연 안 보고 왜 왔어? 진짜 괜찮다니까."

 

"어차피 공연은 누가 녹화해서 유튜브에 올릴 건데 뭐. 그냥 너랑 같이 있는 게... 더 의미있을 거 같아서."

 

"무슨 의미?"

 

녀석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그랬고 말이다. 또 정적이 감돌았다. 제발, 우리 둘 다 사회성이 마이너스 무한대로 발산하긴 하지만 지금이라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가을이가 먼저 대답을 할까? 아니, 그래도 지금까지 가스든 뭐든 모조리 배출하고 있는 내가 먼저 나서야겠지. 

 

난 녀석에게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그리고 팔을 책상에 얹고, 지금까지 녀석 앞에서 마음껏 가스를 배출한 것처럼 가벼운 미소를 짓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 했다.

 

"나도 너 좋아."

 

"ㄴ...나도."

 

하지만 우리 같은 찐따에겐 불가능했다. 말을 교환하자마자 개미귀신처럼 우린 둘 다 머리를 푹 숙였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당-!!

 

어색한 주위를 환기하고자 한 건지, 순간 내 엉덩이의 조절이 풀려 오토바이같은 소리와 함께 가스가 터져나왔다. 근데 어떤 제정신인 사람이 주위를 환기하겠답시고 방귀를 뀔까, 가람이도 이러진 않겠다.

 

빨리 다른 주제를 생각해야 했다. 당연히 공부 관련은 안되고, 사적이면서도 그나마 덜 어색한 것 뭐라도.

 

"아 맞다, 아까 라면 엎질렀을 때... 못 도와줘서 미안. 내 방귀냄새 때문에 실수한 걸텐데..."

 

"아니야. 그냥 내가 주위 안 살펴서... 그런 건데 뭐." 녀석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손은 붉어진 볼을 덮은 채로 말했다. "...난 왜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게 없을까."

 

"네가 뭘 제대로 못해."

 

"그렇잖아. 시험 때도 맨날 실수해서 틀리고... 라면도 제대로 못 옮기고..."

 

"야, 모두 완벽하면 그게 사람이냐? 그게 다 인간미지. 나도 인간미는 –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있잖아?"

 

한쪽 다리를 살짝 들자 갑작스레 교실에 울린 우렁찬 소리에 녀석은 우는 도중에도 피식 웃었다. 좀 사디스트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모습도 너무 귀여웠다. 겉으로는 단단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내 대장보다 더 연약한 남자애. 녀석은 우는지 웃는지 모를 그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그게 인간미냐? 넌 방귀마저도 탈인간 급이면서..."

 

"어쨌든, 내 말은 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부모님이 뭐라 하든 신경쓰지 말고, 오케이?"

 

"ㄱ-그건 어떻게 알았어?"

 

"네 얼굴에 다 쓰여 있거든. 원래 비슷한 처지 사람끼리는 잘 알아본다고 하잖아?"

 

녀석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나라고 모를 줄 알았나? 학원에서 들을 때마다 단어 하나하나에 자기비하가 드러나고, 문제 하나 틀릴 때마다 세상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는 게 보이는데. 

 

아직도 대답하지 않는 가을이에게, 난 주변을 환기하며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멍청아, 나한테는 잘 잤냐고 걱정하면서 정작 네 건강엔 신경 안 쓰고 있었냐?"

 

"나 멍청한 거 아니거든! 너도 내가 말하기 전까진 신경 안 썼으면서." 그 때 가을이는 멍청하다는 말에 유독 목소리를 키웠다. 이제까지 여자인 나보다도 목소리가 작던 게 비로소 잠깐 역전되었다. "난 그래도 걱정해주는 사람한테 신경 끄라고 소리지르진 않지!"

 

솔직히 잠시 당황했다. 그래서 나온 대답도 제법 유치했다.

 

"...지금 소리 질렀잖아."

 

"신경 끄라고는 안했어."

 

그리고 소리지르느라 가스를 너무 들이마셨는지 기침을 했다. 또 정적이 감돌았다.

 

"그럼 계속 신경 써? 어떻게 신경 써줄까?"

 

가을이는 입을 열지 못하고 내 눈망울만을 빤히 바라보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배도 여전히 끓고 있는데, 이젠 정말로 빨리 좀 끝내고 싶었다. 이 끝없는 방귀도, 마음 하나 못 털어놓는 나 자신도 지겨웠다.

 

"그래. 그냥 우리 둘 다 부으으으으으으으으드드드드득..!! 멍청한 걸로 하자. 남한테는 신경쓰면서 자기는 못 챙기는 방귀쟁이 멍청이랑 말 없는 멍청이. ㄱ-근데 우리 둘 다 멍청한데 왜 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거냐?"

 

지금만이라도 머릿속의 모든 계산적 부분을 구석으로 한데 몰아두고, 녀석의 얼굴만을 보았다. 내 어떤 면이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멍청이.

 

난 팔을 벌리고 가슴을 열었다.

 

"자기한텐 신경 못 쓰고 서로한테만 신경 쓸 수 있으면... 항상 붙어다니면 되는 거잖아? 맞지?"

 

그러자 가을이는 도로 팔을 벌리고, 내 품에 꼭 안겼다.

 

"그럼 그렇게 하자."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녀석의 품 안이 이렇게 따뜻한지는 처음 알았다. 아무리 푹신한 침대라도 이 아늑함, 세상에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이 느낌을 재현할 수는 없었다. 맞닿은 목, 교복조끼를 어루만지는 팔, 촉촉한 볼까지 하나도 후끈해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물론, 내 아랫배도 포함이었다.

 

이게 가람이가 말했던 그 느낌이구나. 아랫배를 잡고 있던 마지막 스트레스 한 가닥이 풀리자, 비로소 교복 밑으로 내 배 전체가 깊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울림은 내 몸 전체와 가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제 녀석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았겠지만,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팔을 더 잡아당겨 녀석과 나를 단단히 고정한 후, 난 아랫배에 온 힘을 집중했다.

 

"그러니까 그대로 있어봐..!"

 



그 순간, 여름이의 의도가 하나만 있던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랑…!!!

 

나의 온 몸이 녀석의 아랫배와 함께 전율하자, 비로소 지금까지 꼭꼭 감춰놓은 여름이의 진정한 가스, 그 진정한 힘이 활짝 꽃피기 시작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벚나무의 모든 꽃이 한날 한시에 피며 꽃가루를 뿌리는 듯했다. 차이점은 녀석의 엉덩이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가루는 몇십배는 더 진한 누런색이고, 몇십초는 가뿐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 뿐이다.

 

앞의 모든 20시간동안의 방귀는 에피타이저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연히 무서웠다. 녀석의 엉덩이에서, 내 바로 앞에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가스는 생물학적, 기체역학적 모든 법칙을 무시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난 계속 그 자세로 여름이를 껴안고, 뒤에서 교실 전체를 감싸며 솟아오르는 가스구름을 지켜보기만 했다. 어차피 단단히 날 붙잡고 있는 녀석의 팔을 빠져나갈 수도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다.

 

다다다다뿌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같이 폭주족의 오토바이를 훔쳐 탄다고 해도 이보다 진동이 심하진 않을 것이다. 같이 상한 피자를 먹어 배탈이 났다 해도 이렇게 아랫배가 요동치는 걸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나만이 범생이 여름이의 이런 면을 아는, 이런 면을 터놓은 유일한 사람이라니. 이미 신체적 거리는 0이었지만, 마음의 거리는 녀석이 가스를 더 내뿜으면 내뿜을수뢰 더 가까워져 착 붙는 것만 같았다.

 

몇 분이 지났을지 몇 시간이 지났을지는 상관 없었다. 교실 전체가 천둥같은 소리로 진동하고, 진노란색 가스로 꽉꽉 차 정말 한여름 공기처럼 느껴졌지만, 녀석의 품 안은 변함없었으니까. 흩날리는 긴머리도, 꾸륵거리는 아랫배도 말이다.

 

라라라라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등~!!!  뿌우우우우두두두둥~!!

 

하지만 어디라도 계속 머무를 순 없겠지. 십년쯤 묵은 썩은 김치 피자 냄새가 쌓이고 쌓여 반사적으로 눈물을 흘릴 정도까지 되자, 먼저 팔을 푼 건 여름이었다. 나도 마지막으로 여름이의 등을 토닥인 후 팔을 풀었고, 그제서야 녀석의 가스줄기는 폭발하는 댐 레벨에서 다시 강물 상류 레벨으로 줄었다.

 

약간의 정적 이후, 여름이는 비로소 웃음을 터뜨렸다.

 

"캬, 이제야 제대로 나오네!" 녀석이 이렇게 호탕하게 웃는 광경은 처음 보았다. 전교일등을 했을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말이다. "어때, 이정도면 가람이한테 비빌 수 있을 거 같아?"

 

"솔직히 아직은 약간 부족한 거 같은데. 양은 괜찮은데, 느낌이..."

 

"그건 걱정 마셔. 다음 건 진짜 진득할 거 같으니까." 녀석은 배를 어루만지고는, 다리를 벌리고 다시 뀔 준비를 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 났는지 날 보더니 잠깐 멈추었다.

 

"아 참. 너 싫어하는 애 누구야? 아무나 말해봐. 아까 소리지른 그 새끼?"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녀석은 자리를 살피고는, 한 책상 위로 올라가 앉았다.

 

"그 새끼 자리가 여기였지... 그럼~!"

 

뿌우우우우우우우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드드드드드드드득~!!!

 

소리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마 스컹크라도 이 소리를 들으면 자신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내뿜는 동물이 있다 생각하고 도망치지 않을까. 정말 저런 방귀를 뀌면서도 어떻게 팬티가 멀쩡한지 궁금했다.

 

호기심에 살짝 옆에서 맡아본 냄새는 역시나였다. 아무리 나쁜 애라지만 이 책상을 써야 한다니 불쌍했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건 다시는 꿈도 못 꿀 것이다.

 

"어우, 방석도 있었다면 거기에 푸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륵!! 원없이 뀌어줄 텐데."

 

"그런데 우리 반에서만 뀔 거야? 이러다 한 일주일 동안은 냄새 안 빠지겠다..."

 

난 공기를 휘저으며 기침했다. 이미 교실 전체가 녀석의 대장과 다름없는 환경이었기에 사실 휘젓는 것도 의미 없었다. 교실문과 창문까지 모두 열어도 이 썩은 냄새로 절여진 오염지대를 정화하는 데엔 역부족이었다.

 

여름이는 저 평범해 보이는 교복 밑에 지금까지 항상 교실을 이렇게 만들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 범생이같이 어설프게 웃으며 생각하는 모습은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다른 반에도 가야지. 골고루 평등하게!"

 

녀석은 당당히 소리치고는 교실 밖으로 행진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공연에 집중하고 있는지, 복도는 여전히 휑했다. 여름이는 어느 반부터 먼저 채울지 죽음의 뽑기를 하는 듯 했다.

하지만 정하기도 전에 예상보다 빨리 배를 부여잡은 녀석은, 갑자기 아이디어가 난 듯 날 보았다.

 

"그냥 여기서가 더 좋을 거 같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 녀석은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허리를 숙이고 나에게 윙크했다. 여름이의 이런 포즈는 생전 처음 봤지만, 이제 놀라울 게 뭔가.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둥~!!!

 

복도 전체가 녀석의 엉덩이에서 나온 공사장 드릴 같은 소리로 메아리쳤다. 아무리 강당에서 시끄러운 공연을 하고 있다 해도 거기까지 들릴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마치 만화처럼 복도 전체를 채우며 뿜어져나오는 누런색 가스에 녀석의 스커트는 허리케인 속 우산처럼 힘없이 펄럭였다.

 

하지만 녀석은 그새 적응했는지, 어제라면 한시간에 걸쳐서 뀌었을 걸 1분만에 내뿜는 수준임에도 그 자세를 유지하며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었다. 만화에서나 볼 법 한 모습이었지만 그것도 너무 아름다웠다. 대비라고 해야 할까. 난 앞에 서서 말없이 녀석의 배가 연주하는 더러운 협주곡을 감상하였다.

 

드드드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푸라라라라라락..!!

 

하지만 배출하던 도중 갑자기 녀석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나? 실수라도 했나? 뒤를 돌아보니, 복도에는 입이 떡 벌어진 채 서있는 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여름이를 대신해 내가 제발 비밀로 해달라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며 손짓했다. 선생님은 넋이 나간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당으로 향했다.

 

"...어차피 말해야 하는 건데 뭐."

 

난 애써 여름이를 달래려 했다. 선생님들한테 잘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건 모범생인데, 제발 이것 때문에 흐름이 끊기진 않았으면 하고 빌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강당으로 사라지자, 녀석은 오히려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뭐 생활기록부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눈치 안 보고 끝까지 가보자고~!"

 

푸아아아아아라라라라랑~!! 뿌아아아아아다다다당푸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륵~!! 부으으으드드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닥!!! 푸으으으으으라라라라라랑!!

 

뭐라 표현해야 할까. 아마 수능지문에 나오는 문학작가를 총동원해도 지금 녀석이 뿜어내는 방귀를 제대로 글로 담아낼 순 없을 것이다. 영화로도 부족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생각하고 있던 범생이 여학생이 학교에 다연장 미사일같이 무자비한 방귀를 뿜어내고 있는 현장. 그 현장을 360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느끼고 있다니.

 

정말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녀석의 방귀에서 고스란히 내 코로 전해져오는 어제 급식 잔반통을 통째로 일주일정도 썩힌 듯한 냄새, 음식물 매립장에 함께 갇혀버린 듯한 이 느낌은 전혀 초현실적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때, 이정도면 가람이 레벨인 거 같아?"

 

다시 방귀가 잠시 세기가 줄어들자, 녀석은 안경을 바로잡고, 포즈라도 짓는 것마냥 머리칼을 넘기며 나를 보았다. 정말 판단을 기다리는 건지 눈동자에서 경쟁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솔직히 일반인인 내가 보기엔 가람이나 여름이나, 내 뇌로 제대로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가스를 뿜어내는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어제 녀석이 나에게 장난쳤으니, 나도 한번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직도 한참 약한 거 같은데."

 

"뭐?"

 

"체조 시간에 더 열심히 했으면 안 이랬지. 너 유연성도 여자 중에 꼴찌잖아."

 

"너도 거의 꼴찌였으면서!"

 

"어쨌든, 그걸로 가람이 이기는 건 꿈 깨."

 

"으으으... 그 말 후회할 거다!"

 

그러자 여름이는 팔다리를 쭉 피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녀석이 이렇게 스트레칭하는 건 커녕 기지개 펴는 장면도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것 같았다. 체육 시간에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피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지금은 진짜 스포츠를 할 때였다.

 

녀석은 스트레칭을 끝낸 후, 이를 악물고 팔을 앞으로 폈다. 그런 다음 허리를 한껏 구부리더니,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으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다음으로는 다리를 쭉 벌리고,

 

푸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그리고 한쪽 다리를 들고... 는 하려다 넘어질 뻔 했다. 녀석은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만 웃어!" 하지만 그 대가로, 녀석은 마지막으로 안경을 꽉 잡고, 허리를 팍 숙이고 대장의 끝과 내 얼굴이 일직선이 되도록 바로 조준하였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그 순간, 난 똥벼락이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에 가장 가까운 경험을 했을 것이다. 스커트 밑 단 하나의 삭은 팬티만을 거쳐, 대장에서 바로 방사형으로 뿜어져나온 순수한 여름이의 가스. 진짜 똥과의 차이점은 촉감 뿐이었고, 그것마저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여름이는 강했다. 가람이와 비교하는 게 뭔 소용인가. 20시간을 내리 맞아도 전혀 적응할 수 없는, 장 속 제일 깊숙한 곳에서 우러러나오는 썩은내의 폭포수. 그런 폭포수를 다소곳이 엉덩이를 든 자세로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는 모습. 머리든, 대장이든 여름이는 날 모든 방면에서 압살했다.

 

-다다다다다다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ㅇ-알겠어, 미안 미안!"

 

난 10초도 못버티고 뒤로 나자빠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코에 온갖 화합물이 들어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녀석도 내가 자빠진 걸 보았지만, 끊는 건 알다시피 불가능이었다. 그 자세로 계속 가스를 복도 전체에 뿜어내는 광경이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귀여웠다.

 

"너 충분히 강해! 인정할게. 이제 가람이 평소보단 더 쎄진 거 같은데."

 

이번 웨이브 또한 몇 분이 지나서야 잦아들었다. 도데체 언제부터 방귀를 세는 기본단위가 분이 된 걸까. 상대성이론이 작용해도 이러진 않겠다. 그제서야 여름이는 몸을 다시 일으킨 후, 활기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야지. 오늘은 내 청소날이라고!" 

 

녀석이 활기찬 모습을 보니 그나마 나에게도 에너지가 좀 환급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손을 잡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다시금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와닿았다. 누런 빛의 진한 가스는 복도 전체를 채우고, 문을 잠근 반에도 꽉꽉 스며든지 오래였다. 환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나무가 썩어들어가는 거 같기도 하였다.

 

"야, 벌써 여기 층 모두 네 방귀로 꽉 찼는데? 더 뀌었다간 일주일은 냄새 남겠어."

 

"그래? 그럼 이제 아래층으로 가야지!"

 

"야, 아무리 그래도 후배들 층을 빌린다고?"

 

"급하면 선배가 먼저지 뭐. 1학년 애들 중에도 하이퍼 있으면 언제든 우리층으로 오라고 해."

 

여름이는 내 손을 이끌고 밑층으로 내려갔다. 이젠 새롭지도 않았다. 내 작은 팔을 잡는 비슷한 자그만한 손의 부드러운 느낌도, 녀석의 뒤에 꼬리처럼 붙어다니는 결이 다른 지독한 가스가 내 얼굴을 계속 후려치는 느낌도. 녀석은 복도 중앙 쉼터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한 마디의 경고도 없이 다시 가스밸브를 완전히 틀어놓았다.

 

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푸으으으으르르르르르부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드드드드드드드드득~!!

 

다행히 이제는 또 힘이 좀 빠진 듯했다. 물론 아까에 비해 빠졌다는 거지, 어제는 최대 출력이어도 이거의 반의 반도 안 되었을 것이다. 벌써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고 있는 건가. 그럼에도 여름이는 책상에 턱을 괴고 이제 평소 알던, 문제집에 얼굴을 파묻고 있지 않을 때의 무심한 표정을 다시 짓고 있었다.

 

"근데 진짜 계속 뀌고만 있으니까 시원해도 지루하다. 넌 이럴 때 뭐해?"

 

그 표정으로 녀석은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인데 왜 이렇게 귀여울까.

 

"난 몇시간동안 계속 방귀뀌진 않거든."

 

"그거 말고, 그냥 학교에서 할 일 없고 심심할 때."

 

"그림 그리거나... 그냥 상상하기?"

 

"뭘 상상하는데, 내 얼굴?"

 

"...가끔은?" 

 

내 어색한 대답에 녀석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 생각났다. 잠시만, 뭐 좀 가져올게!"

 

그리고 여름이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난 그제야 짧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어제부터 가스를 너무 많이 들이마셔서 뇌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걸까. 여름이가 좋은 것까진 이해가 되도, 왜 저 방귀가 매력을... 추가하는 거지? 이걸 녀석이 알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몸이 떨렸다. 이렇게나 가까워졌는데, 잃는 건 절대로 싫었다. 하지만 혹시 녀석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아무리 본능이라고 해도, 본능 하나만으로는 지금까지 녀석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지금은 뭘 가지러 간걸까? 설마...

 

그 찰나, 여름이가 계단을 다시 뛰어내려왔다. 하지만 여름이의 손에 들린 건 너무나 실망적이었다. 문제집과 노트, 그리고 필통이라니.

 

"야, 넌 이 상황에서도 문제집을 풀고 싶냐?"

 

"미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솔직히 너도 더 좋은 아이디어는 없잖아."

 

"그래도..."

 

"이참에 내기는 어때? 여기, 한 쪽 전체 먼저 푸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콜?"

 

녀석은 문제집의 깨끗한 페이지를 열고, 샤프와 노트 몇 쪽을 찢어 건네주었다. 어렵긴 해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난이도로 보였다. 문제는 상대가 절대 꺾어본 적 없는 여름이라는 것 뿐.

 

"어차피 이길 거면서... 콜."

 

그렇게 가스 아포칼립스가 학교에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우린 문제집에 몰두했다.

 

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닥~!!!

 

푸라라라라라라라라뿌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드드드드드드드득~!!!

 

하지만 당연히 변수는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눈이 맞을 때마다, 녀석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리를 들어 내 쪽으로 가스를 뿜어냈다. 아까보다 냄새가 약해질 것이라는 건 큰 착각이었다. 하나같이 썩은 치즈와 고구마를 똥 속에서 며칠간 구워 만든 죽음의 피자같은 냄새와 맛이 나면서도, 선전용 미사일마냥 나에게 굴복하라는 듯 한발한발이 묘하게 다른 냄새를 담고 있었다.

 

저 트럼펫같은, 튜바같은, 어찌됐건 전혀 여름이같지 않은 소리가 학교 의자를 울리며 쉴새없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집에서도 저렇게 뀌면서 공부하는 걸까. 누가 방해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셀프메이드 집중 공간. 그 안으로 들어가 같이 집중하고 싶었다. 물론 지금같이 경쟁할 때는 빼고.

 

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부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드드드드등~!!!

 

부으으으드드드드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20분도 안되서 깨끗하던 이 층마저 여름이의 냄새에 완전히 잠식되는 것만 같았다. 물론 기체는 확산되는 게 당연한 현상이지만, 몇 만 리터의 학교 공간에 희석되고도 아직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무서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입 안은 어제 저녁의 급식을 변기에서 다시 주워먹는 느낌이었고, 불닭볶음면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던 코도 끊임없이 점막을 자극하는 매운 가스에 재채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여름이 앞에서 굴할 순 없었다.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은 느낌을 삼키고 한문제 한문제 차근차근 풀어나가, 결국 녀석의 가스보다 먼저 끝을 보았다.

 

"다 풀었다!"

 

"어, 진짜?" 녀석은 놀란 듯 내 시험지를 보았다. "정말이네..."

 

"솔직히 말해, 너 봐줬지."

 

"아니. 진짜 네가 이긴 거 맞아. 제법인데."

 

녀석의 진심이 담긴 칭찬 한마디에 머리속이 다시 싹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벌칙 정해."

 

"...스킵할게."

 

"에이, 어디서 착한 척이야."

 

"네가 이겼으면 무슨 벌칙 하려고 했는데?"

 

"내 엉덩이에 10분간 얼굴 대고 가스 들이마시기."

 

여름이가 저 얼굴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이, 하라고 해도 못했을 거면서."

 

"할 수 있거든? 증명해볼까?"

 

"증명해봐."

 

"그럼 여기 당장 누워."

 

"ㅈ-잠깐?"

 

"네가 하고 싶다면서?"

 

여름이가 그렇게 사악하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10분이다. 지금까지 22시간동안 했으니까, 그정도는 할 수 있지?"

 

내 얼굴에 드리워오는 갈색 얼룩진 팬티에 공포감에 휩싸였다. 제발 지금까지 드럼통 몇십개를 채울 만한, 코끼리 똥을 모조리 기화시켜서 내뿜어도 부족할 만한 양의 가스를 내뿜었으니 좀 멎을 때가 되리라 빌었다. 하지만 여름이의 얼굴엔 전혀 그런 걱정이 없어 보였다. 다행히 처음에는 책상 위에 앉아, 거리가 약간 떨어진 채로 했지만, 지옥이 10cm 위에 있나 바로 위에 있나는 차이가 없었다.

 

"전교 1등한테 이런 거 받는 걸 영광으로나 생각하라고. 스트레스 좀 확 빼보자~!"

 

뿌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 오감이 여름이의 장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었던 건 녀석의 광기에 젖은 것 같은 웃음소리 뿐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이게 나았다. 어차피 매번 수치를 당할 바엔 결국 날 걱정해주는 사람이 하는 게 나았다. 어차피 부모님의 막말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질 바엔 아무 감정 없는, 아니 믿음이 담긴 여름이의 독가스가 나았다.

 

물론 사람의 말은 고막이 찢어질 듯 쩌렁쩌렁하진 않았다. 내 얼굴 전체를 유황불 폭풍으로 굽고, 내 기도와 폐 전체를 똥으로 칠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도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본질부터 다른 여름이의 바람은, 오히려 그런 점을 매력으로 만들었다.

 

"아직 3분밖에 안 지났어~ 더 강도를 높여봐야겠지?"

 

푸아아아아아아아아악뿌으으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드드드드드드드드드…!!

 

지난 22시간은 과연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최고의 시간이었을까. 가까이서 보면 최악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최고였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과 모든 걸 터놓은 난생 처음의 경험이었으니까. 그러므로 지금 당장 코가 타는 것 같더라도, 몸 전체가 압도적인 풍압에 눌리는 것 같더라도, 결국엔 최고의 시간인 것이다.

 

여름이는 여전히 배를 살짝 움켜쥐고, 스커트가 내 얼굴에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썩은 가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쩌렁쩌렁 울리는 항문 사이로 중간중간 들리는 신음과 웃음소리만 들어도 그 자세가 눈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스 분출 세기가 3번째로 강해질 무렵 녀석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멈추더니, 몸을 기울이는 게 보였다.

 

"어, 이제 보니까 너 벌써 진도 한참 앞서 나가고 있구나..."

 

녀석의 손이 사타구니에 닿자, 그제야 몸 전체 감각이 현실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맞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아무리 녀석이 좋다고 해도, 우리 사이에 벌써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럼 나도 따라잡아야지. 이제 안 봐준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녀석은 다시 웃음을 터트리고는 바로 내 머리 위로 하반신의 무게를 고스란히 실었다.

 

드드드드드뿌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이제야 실감이 났다. 이건 사람이 받을 만한, 아니 그 어떤 생물체도 앞구멍으로 받을 수 있을 만한 양의 가스가 아니었다. 흰긴수염고래라도 이정도의 구린내나는 메탄가스를 숨구멍에 뿜어낸다면 온몸을 뒤틀고 기침하며 쓰나미를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그걸 지금 고스란히 받고 있는 내 호흡기는 당장 꺼내서 내부에 가득 찬 듯한 똥을 씻어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여름이의 아랫배와 내 온 몸은 공명진동수가 강제로 맞춰진 듯 함께 진동하였다. 그 때문인지 귀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터지지 않고, 내 바로 위의 땀나는 팬티에서부터 교실 전체를 울리는 협주곡을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웅장함, 여름이의 참된 모습을 내가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반쯤 경외에, 반쯤 공포에 질린 상태로 내 필름은 완전히 끊겼다.

 


 

-라라라라라라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런 걸 여태까지 못해보고 있었다니. 몰래 야동을 봤을 때도, 사실 틀린 걸 맞았다고 넘어갔을 때도 느끼지 못한 쾌감의 극치였다. 범생이 모범생인 자신이 지금 자기 반도 아닌, 다른 교실에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게 믿기 힘들었지만, 지금 구름 위에 있는 듯한 내 뇌는 그딴 건 걱정하지 않았다. 마치 방귀를 추진력 삼아 천국까지 올라가, 항문부터 장을 따라 아랫배 곳곳으로 도파민이 쭉쭉 뻗어나간 듯한 맛이었다. 물론 냄새는 전혀 딴판이었지만. 

 

"그리고 10분! 맛 어땠냐? 잘 즐겼어?" 여름이는 광기에 젖은 수준의 웃음을 겨우 멈추고 말했다. "너 일부러 뀌라고 도발한 거지? 뭐 나도 스트레스 확 날렸으니까 됐는데."

 

일어나 가을이를 보니 언제보다도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잠든 듯 그곳에 축 처져 있었다. 뭐 그럴 줄 알았지. 소녀는 녀석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어깨를 흔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반응이 없었다.

 

"...야, 기절했냐? 설마 죽은 건 아니지?"

 

설마 해 확인해보니 다행히 숨은 아직 제대로 쉬고 있었다. 헉헉거리는 걸 보니 체내 산소농도감지 시스템도 멀쩡한 듯했다. 곧 일어나겠지, 하고 여름이는 옆에 앉아 기다렸다. 하지만 10분, 20분이 지나도 녀석은 깨어나지 않았다.

 

"...가을아?"

 

보건실에서 아이스팩을 가져와 끼얹었는데도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는 걸 보니, 보통이 아니었다. 여기서 더 강제로 깨우고 싶진 않았다. 방금 전에 서로한테 무리하지 말라고 한걸 깰 순 없었으니까. 그래서 여름이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가을이가 활짝 열어준 가스밸브는 여전히 흘러나오게 한 채로.

 

푸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스스스스스스스스...!!

 

"아니, 갑자기 또 왜 안되는데..."

 

하지만 여기서 더 세게 뀔 맛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시도해도 소리만 요란할 뿐, 방귀는 훨씬 세졌는데 무언가 더 부족한 느낌이었다. 아까 날려버린 스트레스도 한순간에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가스가 다시 들어간 것도 아닌데, 가을이가 옆을 떠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걸까. 그냥 지금까지 너무 많이 뀌어서 피곤해졌나? 그럼 왜 하필 지금인데? 나름 똑똑한 머리로, 여름이는 자신의 장을 해독하려 애를 썼다.

 

아까 너무 자극적으로 뀌어서 현자타임 같은 게 왔나? 다시 생각해봐도 평소 여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긴 했다. 그래서 한번 저질러 보면 정말 모든 게 풀리지 않을까 하고 해본 건데,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아무리 가을이를 제압하고 노예처럼 부려도, 아무리 거의 무한히 방귀를 뀐다고 해도 그 쾌락은 결국 바닥이 없는 구멍에 물 붓는 꼴이라는 것이다. 가끔은 좋겠지만, 여름이가 결국 찾는 건 쾌락이 아닌, 방귀를 처음으로 제대로 트게 해 준 친구와의 믿음과 동행이었다.

 

여름이는 그제서야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이번 웃음은 전의 웃음과는 달랐다. 몇시간동안 고민하던 문제의 실마리를 드디어 풀었을 때 짓는, 자그만하면서도 깊은 미소였다. 그리고 말없이, 머리 옆에 앉아 가을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뭐야? 얼마나 지났어?"

 

"한시간 정도." 

 

드디어 가을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방귀의 열과 바람이 진짜 머리카락을 변형시켰는지 일어났는데도 바람에 휘날린 듯한 삐죽머리는 그대로였다. 애써 웃음을 참으며 여름이는 시계를 가리켰다. 3시 20분. 어제 뀌기 시작한 시각이 4시였으니, 정말 24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좀 끝날 거 같아?"

 

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응. 거의 막바지. 지금 뱃속에 쌓인 것만 다 배출하면 진짜 끝낼 수 있을 거 같아." 여름이는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끝까지 있어줄 거지?"

 

"당연하지."

 

둘은 주먹을 맞댔다.

 

"그럼 마지막도 아까처럼 짜릿하게 또 해볼래?"

 

"ㅇ-어? 좋긴 했는데, 벌써 또 다시 하기는..."

 

"진짜 못해주는 거야? 실망이다..."

 

"ㅇ-아니! 원하면 해줄게!"

 

여름이는 가을이가 애써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감추려는 걸 보고는 웃기만 했다.

 

"내가 아까도 말했지. 나 생각하는 것도 좋은데, 너부터 걱정하라고." 여름이가 말했다. "어차피 농담이었어. 이번 건 영거리에서 뀌었다간 진짜로 사람 한 명 죽일 거 같거든."

 

"그래도... 이런 경험은 일생에 한 번 밖에 없을텐데."

 

"내가 그 정도로밖에 안 보여? 또 이렇게 못할 거 같아?"

 

가을이는 고개를 휘저었다.

 

"따라와. 얼굴에 맞지 않아도 충분히 맞은 것처럼 느끼게 해줄 테니까."

 

그리고 여름이는 가을이를 끌고 학교 건물 1층의 대문 앞으로 나왔다. 상쾌한 공기와 넓게 펼쳐진 운동장. 이렇게 넓고 상쾌한데도 교실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느라 1년 중 몇시간 제대로 활용도 못하는 곳. 지금은 그에 대한 응징의 차례였다.

 

"마지막인데, 뭐 할 말 없어?"

 

"솔직히, 어제오늘 너무 좋았어. 너랑 친구하고 모두 터놓게 돼서..."

 

"나도. 그럼 더 끌어볼까?"

 

"아니. 끝낼 건 끝내야지. 근데 넌 지금까지 계속 뀌면서 어떤 느낌이었어? 안 피곤해?"

 

"피곤하긴 한데 그보다 훨씬 시원하지. 진짜 스트레스든 뭐든 지금까지 쌓아뒀던 걸 가스랑 같이 모조리 뿜어낸 듯한 느낌인걸. 너 덕분에."

 

"앞으로도 내보낼 거 있으면 언제든 불러."

 

"그럴게." 여름이는 가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근데 아직 마지막으로 내보낼 게 하나 남았지? 이것까지 터놓는 거다?"

 

가을이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물었다. "뭔데?"

 

그러자 여름이는 가을이와 어깨동무하고, 엉덩이를 학교 건물의 입구로 조준한 후, 마침내 마지막 범생이의 자존심마저 내려놓았다. 

 

"제일 깊숙히 갇혀있던 진짜 나, 한여름 파워!"

 

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24시간의 끝을 장식하는 이번 분출은 전조곡부터 남달랐다. 어제 오후부터 학원, 집과 오늘 오전까지의 모든 배출의 역사를 5분만에 요약하는 듯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 묻겠지만, 가을이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최고의 친구, 반전 매력의 절정 소녀의 진정한 대장 연대기가 지금 시작되고 있음을.

 

여름이는 결코 마무리를 완벽하게 하지 않을 생각이 없었다. 녀석은 눈을 질끈 감고, 온 힘이 위장에서부터 대장 끝까지 리듬에 맞추어 흐르도록 한 손으로는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또 다른 팔으로는 단단히 친구를 휘감아 이 피날레의 협주자로 무대에 올렸다.

 

푸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드디어 완전하게 세상에 터져나온 여름이의 방귀, 그것은 아름다움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겉모습의 아름다움이 아닌, 인간으로써, 예술으로써의 아름다움. 어느 누가, 그것도 어떤 우등생이 학교 앞에서 복도 전체를 몇 분 만에 뒤덮을 만한 가스를 그 다소곳한 스커트를 휘날리며 뿜어낸다는 말인가? 다른 하이퍼라면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이 아름다움을 절대 흉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 아름다움의 주축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있었다. 23시간 40분 동안 둘의 일상의 개념을 뒤집어 놓은 여름이의 장은, 이제 이를 승화해 시간 자체를 느리게 가게 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아무리 새라도 하루종일 울 순 없고, 고래도 그렇게 오래 숨을 참을 순 없다. 하지만 녀석은 다르다는 걸, 하이퍼는 다르다는 걸 가을이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20분이 지났을까, 격렬히 꾸르륵거리는 여름이의 아랫배는 그랜드 오케스트라도 저리가라 할 웅장한 소리를 내었다. 만일 이걸 공연장에서 뀌었다면 몇 분 가지도 않아 모두 대피해야 했을 것이지만, 가을이는 지금 이것을 온몸으로 받으며 여름이와 한 몸이 된 듯 완벽하게 같이 전율하였다. 부모님 사이에서도, 선생님 사이에서도 절대 찾아보지 못했던 완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둘은 이 거사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산더미같은 썩은 가스를 매 초당 배출하며 생기는 반작용이 너무 강해 다리를 넓게 벌려 겨우 지탱해야 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90%의 가스는 학교 건물으로 세차게 불어나갔지만, 휘어져 다시 코로 돌아온 10%만으로도 가을이의 코를 태우기엔 충분하였다. 여름이의 장 제일 깊숙한 곳에서 특제 제작된, 진정한 한여름같은 따스하고 습한 썩은 빵와 치즈 냄새 가스. 오히려 그 냄새가 너무 강렬해 내용물을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학교의 1층은 이미 범생이 소녀에게서 뿜어져나온 어두운 진노란색 가스로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의 포화 상태였지만, 소녀의 대장은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실력만을 온전히 발휘하는 자기표현의 결정체, 그것을 비로소 완전히 개방한 여름이는 어느 때보다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배출한 가스량은 정말 얼마나 될까. 몇백, 몇 천 리터? 빌딩 하루 난방용 가스로 쓸 수 있을 정도? 이게 진짜 어떻게 생물화학적으로 가능한 건지 둘 모두 의문이 들긴 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생물학 화학이 아닌, 옆에 있는 서로의 리듬과 마음이었다. 그 어떤 생물학적, 화학적 배출이라도 오히려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그 마음.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뿌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마치 야자시간을 4개는 이어붙인 듯 영원과도 가까운 시간 동안 내내 비행기의 엔진에 들어가 배를 깐 것과 같은 진동이 몸을 흔들었지만, 가을이는 여름이와 함께 죽기까지 버텼다. 서로를 위해, 서로가 있으니까. 그렇게 마지막 8분, 9분, 10분이 지나 마침내 다시 7교시의 끝, 여름이는 정말 해냈다. 그 작고 소심한 몸으로, 24시간동안 다른 누구도 해내지 못할 방출을. 마침내 영원처럼 느껴진 하루가 지나서야 소녀는 드디어 있는 힘껏 힘을 주어 항문을 완전히 잠갔다.

 

가을이는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1층은 말할 것도 없고, 2층, 3층, 심지어 직접 뀌지 않은 4층 창문에서도 노란색 가스가 스멀스멀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여름이는 마지막 남은 가스까지 털어낸 후, 비로소 안경을 바로잡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둘에게는 현실적 걱정이 앞섰다.

 

"...이제 빨리 가자..!"

 


 

둘은 화장실에서 대충 옷에 밴 냄새를 씻고, 강당으로 아무도 모르게 합류했다. 어차피 아싸들이라 신경 쓴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곧 공연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려던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좀비 아포칼립스라도 벌어진 듯 학교 건물 전체에 퍼진 진한 썩은 냄새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그 지독한 냄새에 강당 밖으로 한 발짝을 내밀자마자 도로 들어갔고, 용감하게 나온 사람은 두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둘 중 한 여학생은 그 냄새를 맡자마자 의문의 미소를 지었다. 그 긴머리 소녀를 본 다른 학생들의 반응은 뻔했다.

 

"야 한가람, 진짜 네가 한 거 아니라고?" 뒤에서 코를 쥐고 있는 한 남학생의 말이었다.

 

"잠깐씩 몇 번 나간 거 빼고는 나 계속 여기 공연장에 있었잖아. 못 봤어?"

 

"어두워서 못 봤는데. 이렇게 할 사람이 너 말고는 없잖아?"

 

"글쎄,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너가 아니라는 건 어떻게 확신하는데?"

 

그러자 가람이는 팔짱을 끼고, 한쪽 다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살짝 뒤로 뺐다. 별다를 거 없는 자세였지만, 가람이가 그 자세를 취하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소녀는 곧 웃으며 말했다.

 

"내 청소날이라면 이 정도로는 절대 안 끝나거든."

 


 

"우와. 이렇게 시원한 게 몇 년만이야."

 

여름이는 하늘을 걷는 듯 가볍게 뛰었다. 그 광경에 가을이도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눈이 살짝 감길 정도로 피곤하긴 했지만 말이다.

 

"앞으로는 이 정도로 가스 쌓일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에이, 왜 그래. 친구 사이에 방귀 딱 한 번 뀐 거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