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장문입니노. 글자를 별로 안좋아한다면 유감입니농...

중구난방으로 못쓴거 알고있습니노...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말아주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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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십 년 사이 급속도로 발전한 가상현실 기술은,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졌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관련 사업에 투자하는 등, 비단 가상현실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전반적인 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흐음... 이게 프로토타입이라고?"


"네. 굵직한 오류는 전부 수정한 상태입니다. QA팀한테 방금 공수받아온 따끈한..."


"굉장히 그럴싸하게 생겼네. 자네가 이번에 처음 맡는 프로젝트지? 굉장히 잘했네. 첫 작품 치고 잘했다, 이런 것이 아니라 진짜로. 굉장해. 이 정도면 자네를 향한 비난을 잠재우고도 남을 거야. 정 팀장. 아니... 곧 승진할테니 다른 말로 불러야 하나? 하하!"


"네? 저를 향한... 그런 말이 있었나요?"


"자네 몰랐나? 낙하산이네 뭐네... 말도 말게. 후우... 고속 승진이 워낙 질투가 난 모양이지 다들. 그래도 이걸 보여주면 녀석들도 입도 뻥긋 못하겠지. 잘했어. 정말."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이 VR 개발 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장치를 개발해낸 SCT 대기업 산하의 FT 가상현실 연구소. 그리고, 그 장치의 개발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최연소 연구팀장인 정도윤. 지금 그는, 제법 깐깐하기로 유명한 호랑이 상사 앞에서, 자신의 첫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저기... 그 높으신 분들 환심을 살 만 한가?"


"높으신분들 뿐만이 아니죠. 아이를 가진... 특히 어린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에게도, 훌륭한 교육 보조 장치라고 설명을 하면,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헛헛헛! 아주 좋아!"


"다만..."


"응? 다만. 이라니."


차분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설명하며 다시 자신의 발명품을 챙겨드는 도윤. 무언가 놓친 것이 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상사에게, 도윤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아직 프로토타입입니다. 큰 오류는 모두 잡았다고 해도, 자잘한 오류라던가, 예상치 못한 버그, 혹은 사용자들의 불편점을 캐치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죠."


"듣고 보니 그렇군. 묘안이라도 있나?"


"제가 3일의 시간동안 직접 사용해보겠습니다. 장치간 근거리 연동 기능도 시험해봐야 하기도 해서요."


"좋네. 그럼 그때 보세나. 좋은 결과를 기대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끼익...)


고글과도 같은 장치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서는 도윤. 물끄러미 자신의 물건을 바라보며, 이것을 어떻게 테스트해야 하나 싶은 고민에 빠진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띠디디디디디디디디디-♬]


"...음? ...또 무슨... 아, 누군가 했네..."


이젠 익숙하다는 듯, 심드렁하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도윤. 전화기 너머에선, 괄괄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지금 시간 괜찮냐?]


"너 때문에 안 괜찮아질 예정."


[지랄하지 말고 나 태우러 와라. 나 뚜벅이로 걸어가는거 보기 싫으면. 알았지?]


"...하아... 그래. 알았으니까 끊..."


문득,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로토타입 장치의 실험을 위해선, 2인의 참가자가 필요하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다른 한 사람으로는 누굴 채울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매사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해서 가까운 이들이 별로 없었던 데다가, 상사가 말했던 회사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협조를 해 줄 사람이 아예 없게 될 것이라는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자신의 상황을 아주 잘 파악한 그는,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그녀가 문득 고맙게 느껴졌다.


[...뭐냐? 왜 말을 하다 말아? 여보세요?]


"...어? 아. 미안. ...너 오늘 시간 괜찮냐?"


[나도 누구 때문에 안 괜찮아질 예정인데?]


"...제발. 그러지 말고, 나 한번만 도와주면 안될까?"


[흐음... 밥 한끼 사 주면, 요 근처 매운 라멘집에서.]


"...너는 돈도 훨씬 많은 애가 월급쟁이 간을 빼서 먹으려고..."


[아 싫음 말고~ 하루종일 책보고 자고 글쓰기도 빠듯한 사람한ㅌ...]


"아 그래! 알았으니까, 나를 위해서 하루 정도만, 시간을 좀 내줄 수 있겠냐? 제. 발?"


[푸훗... 진작 그럴 것이지. 얼른 튀어와라. 알았지?]


[삡-]


"...하아아..."


도윤과 통화를 마친 여인의 이름은 송지영. 여기로부터 멀지 않은 서점의 사서이자, 그의 오랜 소꿉친구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진짜 드라마 속 재벌집 자녀 모습이랑 달라도 저렇게 다르냐..."


그가 근무하고 있는 대기업 회장의 막내딸이기도 했다.




(덜컹... 부르릉-)


그는 자신의 차를 몰고 그녀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본 학교를 보자, 문득 옛 생각이 나기 시작하는 도윤.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도윤이 지영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이었다. 둘이 겨우 초등학생 티를 벗어내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전학을 왔다고 했었지..."


그녀는 전학생이었다. 이전 학교에서, 학교폭력이니 뭐니, 아무튼 아주 심한 놀림이나 금전적 갈취를 당했다는 뜬소문이 있었던 것으로 그는 기억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당시에도 제법 굴지의 대기업이었기에, 그녀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가해자들에게 사회의 쓴 맛을 보여줄 수 있었겠으나, 그녀 선에서 거부했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의견을 존중했을지, 안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전학을 온 그녀는 제법 겉돌았다. 좀처럼 친구를 만드려고 하지도 않았고, 늘 혼자였으며, 점심시간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곤 했었다. 그때 당시, 반의 모범생으로서 반장과 함께 담임을 도와 학급의 운영에 이런저런 기여를 하고 있었던 그는, 소리없이 매번 사라지는 그녀가 걱정되기도 했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탓에 묘한 관심이 생기기도 해서, 자신이 그녀를 데려오겠다고 한 뒤 몰래 점심시간에 그녀의 뒤를 밟았던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도착한 학교 지하의 빈 창고에서 그가 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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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갔지? 분명 여기로 갔는데..."


(타박... 타박...)


"...발소리... 저기구나...?"


소리를 죽여 걷는 도윤. 어째서인지, 전혀 그럴 이유가 없었음에도, 그는 그녀의 뒤를 따라, 쿰쿰한 곰팡내가 나는 지하 창고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녀가 걱정되기도 해서 그랬지만, 신비로우면서도 아주 예쁜 그녀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라는, 조금은 불순한 목적이 섞여있기도 했던 것이다.


"...말도 없이 들어가면 짜증내려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든 도윤은, 들어가는 것 대신, 옆에 놓여진 작고 낡은 의자를 밟고 올라 서서, 튼튼한 철제 책상 위로 올라가 높다란 창문 너머로 창고 너머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읏챠...! 후우... 지영이라고 했던가?"


창고 한 가운데서, 고개를 살짝 앞으로 숙이고 배를 부여잡고 있는 지영. 어딘가 아픈 것인가 싶어 걱정이 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만, 곧바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에, 도윤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제 자리에 굳어버렸다.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뿌푸드드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


순식간에, 낡은 창문이 덜컹이고, 바닥에 자욱히 깔린 먼지와 낡은 종잇조각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창고 안의 낡은 기자재들이 덜컹거리며 흔들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면, 그것은 바람이 아닌... 지영의 엉덩이에서 터져나온, '방귀' 였다.


"...웁...!"


문틈과 창문틈으로 스멀스멀 피어난 악취는, 순식간에 가녀린 소년의 코를 늑대처럼 물어뜯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고통에, 소년은 순간 비명을 지를 뻔 했지만, 들키면 더 큰일이 날 것이라는 경각심 하나로 어떻게 버텨내는 것에 성공했다.


뿌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우우우웅! 뿌푸푸푸푸푸푸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한번 터져나온 방귀는, 봇물이 터진 댐처럼 통제력을 상실한 것 마냥 쉼 없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코가 삐뚤어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럭저럭 적응을 마친 그의 코는, 이 냄새에 점점 무뎌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적응의 상태에 접어들자, 소년은 무언가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고... 무언가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이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아...!"


그러나, 그 낯선 감정을 더 느끼기도 전에, 창고 안에서 뒷정리를 하고 황급히 나오려는 지영을 보고, 도윤은 황급히 책상에서 내려와,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밖으로 나오는 지영을 마주했다.


(끼이익...)


"...!"


"...어... 안녕. 지영이 맞지? 선생님이 걱정하셔."


"...그래서? 내가 내 점심시간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혹시... 급식이 맛이 없거나 그런거야? 아니면 사람이 별로 싫다던가?"


"알아서 뭐하게. 왜, 너도 나한테서 뭐 뜯어낼 거 있냐? ...저리 가. 꺼져버리라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지영. 뜻밖의 행동에 도윤 역시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그래도 그녀에 대한 걱정을 거둘 수 없었던 도윤은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말을 걸었다.


"...내가 너한테? 왜? 그거... 나쁜 짓이잖아. 그냥... 걱정되가지고..."


이윽고 도윤은, 쭈뼛거리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냈다.


"...먹을래? 배고플텐데."


"..."


"...그러지 말고. 그냥... 이건 내가 주는거니까. 나도 옛날에 혼자였던 적이 많아가지고... 외로운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서."


그녀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있게, 최대한 무해한 친구의 모습을 하고 그녀에게 순수한 호의를 베푸는 도윤. 비로소 그녀가 그의 손에서 초콜릿을 건네받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그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도윤은 가볍게 웃어보였다.


"...웃었네."


"응? 그야... 웃는 건 좋은 거라고 쌤들도 그랬잖아."


"...너도 참 특이하네. 보통은 내가 이렇게 막 밀어내면... 다들 돌아가서 나에 대한 욕을 하는데."


"친구잖아. 같은 친구를, 그렇게 쉽게 두고 가겠어?"


"...친구..."


"응. 친구. 헤헤... 우리 이제 친구지?"


"...너 이름이 뭐야?"


"나는 정도윤. 너는... 무슨 지영이야?"


"송지영. ...잘 부탁해."


"응! 나도!"


도윤은, 새로운 친구를 만든 것 보다도,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여자아이와 친해졌다는 것이 더 즐거웠고, 그와 더불어 자신이 그 광경을 보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그녀와 함께 학급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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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진짜 용케도, 그 가스통 녀석 옆에서 이 저주받은 취향을 들키지 않고 잘 숨겼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어느새 도윤은 그녀가 일하는 서점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끼이이익-!)


"...야!"


"오! 왔네? 오늘도 땡큐~!"


"야, 탈거면 빨리 타라. 똥폼잡지 말고."


"...윽. 야, 조금만 기다려. 방금 뭐 집어먹고 왔거든? 그거 냄새좀 빼고..."


먹을 것 냄새를 빼겠다면서 엉덩이 부근에 손부채질을 하는 지영. 도윤은 그 모습을 애써 모른 척 넘기며, 그녀에게 조금의 시간을 주었다.


(덜컹... 쿵!)


"냄새 다 뺐지! 이제 뭐 냄새 안나지?"


"고릴라 냄새 난다. 탈취 더 하고와."


"뒤진다 진짜?!"


지영은 냉큼 도윤의 차 위에 올라탔다. 원래대로라면 곧바로 출발을 했을 도윤이었지만, 이번엔 출발 대신 지영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였다.


"...출발 안해? 뭐 있어?"


"...하루... 도와달라고 한 거 있잖아, 주말까지... 내 집에서 머무르면서 나좀 도와줄 수 있어?"


"응? 뭐... 까짓거. 주말이니까. 그래! 대신..."


"알았어. 제대로 대접해줄게."


"오호~ 웬일로 고분고분해?"


"너의 도움이 꼭 필요해서. 부탁할게."


"...뭐야? 갑자기 진지하게. 알았어. 뭐든 도와줄테니 걱정 마."


확답을 받은 도윤은, 대뜸 차에서 내렸다.


"...야? 뭐해? 집 안가?"


"...저번에 내가 부탁한 칩, 있지?"


"칩...? 아...! 있지, 저 안에 창고에 있어."


"다행이네. 잠시... 창고에 있다고 했지? 여기서 기다려줄래? 책 몇권만 좀 빌릴게."


"책을? 갑자기? 뭐 지적인 남자 코스프레라도 하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라도 생긴거야? 니가?"


"...그런 거 아냐. 조금만 기다려 줘."


(덜컹... 쿵-!)




(위이잉...)


"...스위치가..."


(딸칵-)


"찾았다..."


창고 안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기기와 호환되는 칩을 찾아낸 도윤. 이내 그는, 문헌 정보가 기록된 모의고사 묶음 문제지, 장편 소설, 동화책 등 몇 가지 책을 집어, 가방 안에 챙겨넣었다. 그리고, 문 밖으로 나서려던 찰나, 그의 눈에 책 한 권이 마법같이 그를 사로잡았다.


"...저 책은..."


[방귀쟁이 며느리 - 함께 체험해봐요!]


그 순간, 도윤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 검은 구름같은 것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싶은 묘한 흑심을 품게 된 그는, 홀린 듯 비밀스럽게, 그 동화책을 챙겨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이제 어서 가야지."


(위이잉-)




(덜컹... 쿵!)


"...흐응...?! 아... 너냐? 뭐하다가 그리 늦었어? 딸쳤냐?"


"너는 사람이 꼭 말을 해도... 아니다. 어서 가자."


(드르르륵... 부르릉-!)


"출발한다. 안전벨트 찼냐?"


"응. 그런데... 어디, 뭔 책을... 응? 2061-2063 3개년 교육청 주관 통합 학력평가 문제집? 이건 또 뭐야, 파우스트? 노인과 바다? 이건... 논어? ...블라디미르... 설마... 으엑! 롤리타?! 야, 너 무슨... 무슨 컨셉이야? 얼씨구? 동화책도 있네? ...바...방귀쟁이 며느리?"


"...몇 가지 샘플이 필요해서. 테스트 할 기기가 있거든."


"샘플? ...어라? 그런데 이 동화책... 동화책은 이 라벨지가 아닌데?"


"잘못 붙었나보지. 어서 가자고."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지영을 태우고,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도윤. 그때까지만 해도, 둘 모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끼익...)


"어서 들어와. 차린 건 없는 집이지만!"


"...내 집이거든?"


문 앞에서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는 둘. 지영은 아주 자연스럽게 냉장고 앞으로 가더니, 이내 시원한 맥주 두 캔과 안주거리로 삼을 만두를 꺼내 전자렌지에 돌리고는, 제 집인 양 소파에 퍼질러 누우며 도윤에게 말을 걸었다.


"야. 전자렌지 땡 치면 거기서 만두좀 꺼내와."


"...여기가 니 집이냐?"


"아 그러지 말고~ 니 맥주도 꺼내놨으니까~"


"...그거 니 맥주냐?"


"아~ 새끼 쪼잔하게 남자가 진짜! 좀 해줘라 좀!"


"...에라이. 알았어. 근데 너 진짜... 이러고 있는 모습 보니까 그룹 오너 가족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거든. 내가 친누나는 없지만 아마 있다면 딱 너랑 비슷한 느낌 아닐까 싶다."


"그러냐? ...그리고 오너 일가같은 소리 하지 마. 난 그런거 싫다고. 그거 때문에 옛날에... 아니다. 괜히 우중충한 이야기 하긴 싫네."


[띵-]


"아! 됐다 됐다! 어서 한 상 차려봐! 돕는건 나중에 도울테니까~"


"...알았다. 누가 널 이겨먹겠냐..."


한숨을 푹 내쉬며, 만두에 간장, 맥주, 그리고 이런저런 안주거리와 과자를 늘어놓는 도윤. 그 모습을 보고 다가온 지영은, 감동이라는 듯 눈을 빛내며 의자 앞에 앉았다.


"캬~! 니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것도 준비해놨어?"


"...요즘 간편식이 워낙 발달했잖냐. 떡볶이랑... 치킨너겟, 좋아해?"


"없어서 못 먹지!"


"...그래. 많이 먹어라."


'...적색육... 야채가 듬뿍 들어간 만두... 계란... 어라? 생각해보니...'


한껏 음식을 먹는 그녀를 보며, 도윤은 희미한 미소를 무의식 중에 지었다.




얼추 4인분은 차린 듯 했지만, 그 모든 음식은 순식간에 지영의 뱃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늘 보지만 참으로 괴물같은 먹성이라고 도윤은 생각했다. 뭐, 그는 오히려 그것을 좋게 보고 있었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던 도윤은 만두만 몇 개 집어먹고, 맥주를 입에 탈탈 털어넣은 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가방에서 VR 장치를 꺼내들어보였다.


"...파하... 잘 먹었다... 이게 뭐야?"


"이번에 우리 연구소가... 너네 투자를 받아가지고 VR기기 개발을 시작했잖아? 그 첫 제품이야. 여기... 이 부분에, 전자칩을 삽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책들 보이지? 이거, 일반적인 책처럼 보여도 내부에 전자기기랑 연동을 할 수 있는 회로가 구현되었다는 그런 의미거든."


"아까 나한테 말했던 칩이 그거구나? 오호... 으응... 그런데?"


"그 칩이랑 호환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이거야. 원래 이 기기보다 회로가 먼저 만들어졌고, 책을 먼저 만들었거든. 근데... 좀 많이 만들어서, 어디 보관할만한 곳이 없어가지고 네 서점 창고에 임시로 발주넣어서 맡겨놓은거거든. 다른 경쟁사들 눈도 피할 수 있고."


"그래? 응... 그건 몰랐는데. 근데, 이거는 특징이 뭐야?"


"써 보면 알걸. 자, 우선... 이 모의고사 문제집으로 할까."


[딸칵...]


"자. 이거 쓰고, 여기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봐."


"...이거... 이렇게 쓰는건가? 어디..."


"이거 전원을 눌러야지... 아니 거기 말고. 바보야?"


"아 모를 수도 있지 너는..."


(딱-)


"...응? 아무 일도 없... 으... 으우와아아...?!"


"...어떤 풍경이 보이지?"


"...어...어버버...버으으어...그게... 순식간에... 온통 흰 방 안에... 책상 두 개랑... 문제집 두 개..."


"...나랑 똑같은 광경이네. 멀티 기능은 확인했어."


"이...이게 뭐야?!"


"뭐긴. 문자 그대로... 책을,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장치지. 사람의 뇌신경에 간섭해서, 특정 부위에 전기자극과 신호를 가해서, 실제로 느껴지는 것 처럼 뇌를 속이는거지. 우리의 몸은 가만히, 의자 위에 앉은 그대로지만, 뇌는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책 속으로의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르게 말하면... 극도로 리얼한 가상현실 구현 장치라고 할까? 책이랑 연관된."


"...우...우와..."


"다른 책으로 넘어가볼까."


도윤은, 손목시계를 보며 계속해서 시간을 체크했다. 물론... 시간을 꼼꼼하게 측정하며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더 큰 목적은...


'대충... 책 다섯 권 정도를 더 보면 소화가 슬슬 되려나?'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도윤. 그의 인생 첫 일탈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자. 이건 어땠어?"


"...정말... 정말 현실감... 와아... 마지막에 너무... 신? 으로 묘사된 그 부분이 너무 눈부셔서... 정말 현실감 있고... 감동적이고... 인상적이고... 파우스트의 영혼이 구원받는 순간에..."


"후후... 어때, 대박칠 것 같아?"


"...완전 대박. 이거 짱이다! ...니가 만들었지?"


"...응. 좋게 봐줘서 고마워. 지영아."


"헤헤... 옛날부터 너 능력있는건 알고 있었거든! 내가 말은 항상 이렇게 해도. 그러니까... 조금 더 자신감 좀 가졌으면 좋겠어."


"그럼 다음부턴 니가 밥좀 사라."


"풋... 뭐래."


"자. 이제 마지막이야. 어린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에게 얼마나 어필이 될 지, 아이들 전용 동화도 마찬가지로 작동할지 봐야겠어. 어린이용으로는... 조금 더, 특별한 제작 과정을 거쳤거든."


"뭔데?"


"으음... 연기 체험 기능이지. 동화 속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는 골자는 같지만, 읽는 사람들이 등장인물이 직접 되어서 진행하는 방식이야. 아, 걱정하진 마. 대사만 읊을 필요는 없어. 잡담도 할 수 있거든. 아무튼... 이것도, 한번 체험해보면 알걸?"


"...으응... 그렇구나... 저기... 근데 조금만..."


"미안. 지금 멈춰버리면 배터리 잔량이 안 맞아서 중간에 꺼져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좀 급한데 나..."


"...제발.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응?"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애원하듯 그녀를 올려다보며 도와줄 것을 종용하는 도윤.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지영은, 그동안 받은 것도 있고, 학창시절부터 이런저런 도움을 받으며 지내왔던 것 때문에라도, 그를 한번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대신... 이건 니가 확실히 빚진거다, 알았지?"


"알았으니 어서. ...그리고 고마워. 배려해줘서."


"...너도 참... 진짜 착해빠져가지고... 으휴..."


"좋은 거 아냐? 너 착한 사람이 좋다고..."


"그... 그 이야기는 굳이 안해도 그만이잖아?! 시작이나 하자고!"


물론, 그녀의 이런 배려에는, 자신의 장에 대한 굳센 믿음이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옛말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라는 말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더라면, 그녀는 이 배려를 하지 않았을 터이지만.


...아닐 수도 있고!




(딸칵... 우웅...)


[♬ ♬ ♪ ♩ ♩ ~]


"...뭐야? 이 발랄한 음악소리는."


"애들 물건이잖아. 설명은 이거면 충분하지?"


"어... 그래.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두 사람의 앞에 HUD 화면이 떠올랐다.


"...응? 이건..."


"원하는 주연 배역을 골라. 스토리를 따라서 진행되니까."


[A. 며느리]


가장 먼저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며느리라는 배역이었다.


"...흥...?"


무의식적으로 며느리를 고른 지영.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고를 수 있는 배역이라고는 이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다른 인물... 시어머니나 어머니... 뭐 이런건 주연 배역이 아니구나... 뭐, 이걸 고르라는 의미겠지?"


[며느리. 배역을 골랐어요! 지금부터 친구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냄새나는 방귀를 아주아주 많~이 뀌는 아가씨가 될 거에요! 방귀를 잘 뀌지 못해도 괜찮아요! 우리 마법의 동화 요정이, 친구의 몸을 방귀쟁이로 잠깐 바꿔줄거에요! 히힛!]


"흐응? 이런 기능도 있구나? 애들이 좋...잠깐...? 뭐...뭐라고?! 무슨..."


순간적으로 지영은, 하복부에 가해지는 기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자주 가스가 차는 체질이었던 그녀는, 이 불쾌감의 정체를 순식간에 간파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일시정지를 요구했다.


"야... 야! 이거 중단ㅅ..."


[...남편. 배역을 골랐어요! 지금부터 친구는...]


"응? 뭐라고 했어? 일시정지 기능? ...어... 그거 없는데? 어차피 러닝타임도 짧아서..."


"이...이익...! 무슨 리얼리티를 얼마나 중시하려고 이딴 기능을 집어넣은거야!"


"그치만... 애들은 방귀 하면 자지러지게 좋아하는걸?"


"그... 그건... 그건 그렇...지만..."


"왜? 어차피 동화 내용이잖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테니 걱정 마."


"...이거 가지고 놀리면 진짜 죽여버린다... 사회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알았어?"


"그래. 걱정 마. ...아, 이야기 시작한다. 나레이션이 읽어주는 내용 뒤로, 네가 읊을 대사에는 하이라이트가 들어갈 거야. 알았지?"


"...그래. 일단은 어울려 줄 테니... 너, 나중에 비싼 데서 한 끼 사라. 알았어?"


"그래. 진짜 시작한다. 셋...둘...하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도윤. 곧이어, 싱그러운 음악소리와 더불어, 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함께, 가상현실로 이루어진 한 마을과 더불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레이션의 목소리와 함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너무나도 오래 전이라 호랑이가 미성년자라서 담배 사러갔다가 빠꾸먹고 씨발거리던 시절, 아름다운 강과 대나무가 유명한 작고 소박한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꽃처럼 아리따운 한 아가씨가 있었어요.]


나레이션의 진행과 동시에, 둘을 둘러싼 배경이 바뀌더니, 한 작은 시골 마을로 변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지영은, 반투명한 모습으로 변한 도윤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야! 너 몸이!"


"당연하지. 나는... 이 시점에선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배역이니까. 자. 어서 진행해."


곧이어, 지영의 눈 앞에 떠오르는 붉게 강조된 대사.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빨리 해치우고 끝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한 그녀는, 무미건조한 톤으로 대사를 읊었다.


"아 더워. 물을 길었으니 어서 돌아가야지."


"..."


[...]


"...뭐야?"


"몰입도를 위해서 악센트라도 좀 넣어야 진행이 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있거든."


"...진짜 지랄... 에휴."


한숨을 푹 내쉬고, 나름 연기톤으로 대사를 읊는 지영. 퍽 부끄러웠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아~ 더워라... 웃챠... 물을 길었으니, 어서 돌아가야지."


[오늘도 부지런히 강가에서 물을 길고, 빨래를 하는 아가씨. 동네 청년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들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와 동시에, 그녀 주위의 담벼락 너머로 떠오른 얼굴 없는 사람의 형상들. 물끄러미 그것들을 바라보던 지영은, 다시 배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엑스트라들인가... 결국 이 물을 들고 돌아가야..."


(띵-)


그녀의 앞에, 그녀가 걸어가야 할 길이 나타났다. 지영은 바닥에 홀로그램 형태로 놓인 물동이를 집어들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뿌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흐잇?! 으..."


그녀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무지막지하게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그녀의 엉덩이에서 터져나온 지독하기 그지없는 메탄과 유황의 폭풍. 너무나 깜짝 놀란 지영이 몸을 다시 치켜들며 엉덩이를 양 손으로 감싸쥐었고, 그 순간, 불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킁킁... 아이 씻팔! 이게 무슨 냄새야!]


[어휴... 코가 삐뚤어 질 것 같구먼! 얼굴은 반반하게 잘 생겨가지고... 떼에잉...]


[저...저저... 쯧쯧쯧... 저러니 저 아가씨한테 장가들 남자가 있겠나! 1년도 2년도 아니고 거의 이십 년을 저렇게 지저분하게... 쯧쯧쯧...!]


[와아~ 방구쟁이 누나다~ 우엑! 냄새~!]


다채로운 목소리의 나레이션들이 엑스트라를 연기하며, 그녀의 방귀를 질책하는 대사를 읊었다. 그렇게 그녀가 얼굴을 붉히자, 다시 나레이션의 해설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아가씨의 혼기가 다 차도록,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총각은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모두들, 방귀쟁이 아가씨의 지독~한 방귀냄새를 맡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도망쳤기 때문이죠.]


다시, 지영의 눈 앞에 떠오른 자신의 대사. 부끄러워 펑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그녀는, 서둘러 대사를 읊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어...어머어머... 이를 어째... 부끄러워라... 남들이 보기 전에, 어서 돌아가야겠다."


[이럴 때 마다, 아가씨는 너무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종종걸음으로 방귀를 뿡뿡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답니다.]


"...후우... 염병 개지랄..."


(타박...)


뿌우우우우우우우우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응!


(타박...)


뿌우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로로로로로로로로록!


(타박... 타박...)


뿌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뿌부부부부푸푸푸푸푸루루루루루루루두두두두두두두부부부붑!


지영이 가상현실이 안내하는 대로 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그녀의 통제를 벗어난 폭발적인 방귀가 무지막지한 소음과 함께 터져나왔다. 가상현실 속이었지만, 방귀는 모두 진짜였다. 냄새도, 소음도. 모두 다. 아까 전까지 편안하게 대하던 도윤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극한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지영. 동화 속의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가해지는 가상 현실 프로그램이 주는 특수 자극과, 미친듯이 가스가 차오르는 그녀의 체질이 뜻하지 않은 폭발적인(물리) 시너지를 일으켜, 그들이 가상현실을 즐기고 있는 방 안을 지독한 유황 독가스 냄새로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뿌부부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프프프프프프프프프프프프픕! 뿡!


[집에 도착할 때 까지, 방귀쟁이 아가씨의 방귀는 전~혀 줄어들지를 않았답니다.]


"...아아... 부끄러워... 아, 냄새를 빼고 들어가야지. ...휘휘... ...이제 안 나겠지?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그래, 왔느냐? 수저 들어라. 네가 좋아하는 고구마와 꽁보리밥이란다. 산에서 잡아온 꿩고기도 있으니 많이 먹거라.]


[고된 일 끝에 받은 식사는, 아가씨가 제일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답니다. 편식을 하지 않아 항산 건강한 몸을 가진 아가씨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끝마쳤지요.]


그 짧은 대사를 읊는 동안, 지영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었다. ...더 정확히는, 강제로 소화해내었다. 밥 한그릇, 꿩 한 마리, 군고구마 두 개를 문자 그대로 순식간에 먹어치운 그녀. 물론, 실제로 먹은 것은 아니었으나,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가스를 차게 하는 것 정도는 이 기기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지영의 배가 순식간에 부풀었고, 그녀는 잔뜩 부른 배를 문지르며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푸...하아... 흐으...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덜 먹는 거였는데... 끄윽...! 밥 꼬라지 진짜...!"


(띵-)


밖으로 나가라는 화살표와 함께, 다음 대사가 그녀의 눈 앞에 떠올랐다.


"...어...?"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눈을 질끈 감고 감정을 실어 다음 대사를 내뱉는 지영.


"...어...어머니... 저 잠시... 뒷산 좀 다녀와도 되겠사옵니까?"


[그러려무나. 얘. 그리고, 더 소문이 나지 않게 조심하렴. 옆 마을에서까지 그 소문이 퍼질까 애미는 무섭구나.]


"...걱정 마시어요. 어머니. 그럼..."


[다급한 표정으로,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하고 빠른걸음으로 뒷산을 향해 내달리는 아가씨네요.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진짜 저 나레이션 죽여버리고 싶네...!"


(타박... 타박...! 타다다다닷-!)


그녀의 뱃속은 미친듯이 부글거렸지만, 그럼에도 방귀는 나오지 않았다. 강제로 뀌라는 문구만 없다면, 그녀의 통제력에 따라 충분히 참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느낀 지영은, 빠른 걸음으로 뒷산을 향해 내달렸다.




(차박... 차박...)


[방귀쟁이 아가씨는, 온 힘을 다해 방귀를 참으며, 뒷산의 산기슭을 따라 작은 공터에 도착했답니다. 유독 풀도 꽃도 나무도 적은 이 공터는, 아가씨만이 아는 쉼터였답니다.]


나레이션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주위가 다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산골짜기 작은 쉼터엔, 그녀와, 반투명한 형태의 도윤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후우... 흐으... 이게 무슨... 동화 내용이 이랬나...?"


"그러게. 책을 잘못 가져왔나."


"...너 진짜... 후우... 아니다... 다 보고 있었냐...?"


"응. 나도 배역이니까."


"...부끄러우니까 더 말하지 마라 너..."


[아가씨는, 누가 오나 주위를 열심히 두리번거렸어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이 방귀를 들켜서 평생 혼자 살게 되면... 그것만큼 불효도 없을 거야..."


다음 대사와 행동을 기다리던 지영은, 이내 나레이션이 읊는 대사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가씨는, 남들 몰래 방귀를 뀌기 위해, 그 자리에서 치마와 속곳을 벗었답니다.]


"진짜 벗어야 되냐?"


"...그렇지."


"에휴... 치마는 뭐... 그렇다 치고, 근데 속곳이 뭐야?"


"...한복의... 속옷을 말해. 특히... 여인들이 치마를 입을 때 밑에 받쳐 입는... 그러니까 소위 팬...티같은..."


"...그걸 벗으라...고...?"


"...응."


"...뭐?! 야! 이거... 이거 동화 맞아?!"


"학습 구연동화니까...?"


"...그래도 개소리잖아! 이... 이거 맞아?! 무슨...!"


"검토는 해봐야겠네. 그래도... 이게 다 끝나기 전까진 우리 둘 다 나갈 수 없으니..."


"알았어... 으으... 이게 무슨... 야, 너... 내 몸에 손대면 진짜 죽여버린다...?!"


"...눈 가리고 있을까? 아니면 뭐 땅에 머리박고..."


"뭐?! 아... 그... 그럴 필요까진 없고..."


중얼거리며, 옷을 벗기 시작하는 지영. 그녀는, 뽀얀 엉덩이가 다 드러난 상태로, 무언가 불가항력에 휩쓸린 듯, 그대로 쪼그려 앉은 자세를 취했다.


[아가씨는,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한 뒤, 지금껏 참아왔던 방귀를 모조리 뀌기 시작했어요.]


"...무...뭐가 어째?!"


(꾸르르르르르륵-!)


"...커흡?!"


(꾸과라라라르르라라라라라라랅-!!!)


온 힘을 다해 방귀를 참아보려 했던 지영. 하지만, 동화 속의 스토리 진행 앞에서는 그 저항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끄...흐흡! 후우... 끄...앗!"


뿌부윽! 뿌부봐바바바바바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다다닥! 뿌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뿌부부우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참을 수 없는 불가항력이, 지영의 소화기관과 괄약근, 그리고 항문에 걸쳐 폭풍처럼 작렬했다. 마치 휘몰아치는 강물의 상류가 폭우에 범람하듯, 한계치를 넘어버린 그녀의 괄약근은 이내 모든 통제력을 상실하고, 엉덩이와 항문이 얼얼하게 느껴질 정도의 허리케인같은 방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홀로그램으로 조금 구현된 꽃들이 전부 시들고, 풀이 말라버리고, 재잘거리던 새들이 추락하는 정도의 진한 신경독에 버금가는 방귀를, 무려 수 분이 넘도록 단 1초도 쉬지 않고, 휘몰아치는 싹쓸바람에 비견될 정도의 풍압으로, 뇌정이 파산하며 일으키는 폭음을 능가하는 굉음과 함께 배출한 지영. 부끄러움과 더불어 살짝 통증까지 느껴진 지영은, 이내 고개를 가리고 부끄러워하기 시작했고, 도윤은 빳빳해질대로 빳빳해진 자신의 쥬지를 가리려 애쓰고 있었다.


"...나 부끄러워서 자살할거같아..."


"쿨럭! 쿨럭... 너무 그러지 마. 다... 다 동화니까..."


"그딴 말 할거면 기침이라도 하지 말던가..."


"아... 하하... 미안, 내가 방을 청소를 안해서 현실 세계에 먼지가 좀..."


"...그냥... 그냥 부끄러우니까... 조용히 해줘..."


그토록 방귀를 뀌어댔건만, 아직도 그녀의 배는 잠잠해질줄을 몰랐다. 오히려, 자신의 뇌에 간섭하는 VR 기기 때문에라도, 계속해서 가스가 차오르며 부풀어오르는 배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불쾌감과 답답함을 느끼며, 나레이션이 읊조리는 상황에 휩쓸려 모든 통제력을 상실하고 계속해서 독가스를 내보낼 뿐이었다.


[누군가가 여기를 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가씨는 마음이 점점 급해졌답니다. 예쁜 얼굴이 찌푸려지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힘을 주며, 뻐벙뻐벙! 커다란 소리와 함께, 아가씨는 계속해서 방귀를 뀌었어요.]


뿌푸프프브브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프프프프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뿌푸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뿌부부우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진짜 나가 뒤질까... 하으으..."


"...그... 그치만... 이건... 이건 이야기로 쓰여진 동화...니까..."


"무슨 동화가 여자가 엉덩이를 까고 방귀를 뀌는데!"


"...방귀쟁이 며느리?"


"...내가 못살아... 에휴..."


한숨을 내쉬는 그녀와, 머쓱한 표정으로 발기쥬지를 숨기는 도윤. 그때, 다시금 나레이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요동치는 것 같은 우당탕탕 커다란 방귀소리와 함께, 호랑이도 이리도 승냥이도 코를 감싸지고 울고불며 도망치게 만드는 지독~한 악취로 산을 덮어버린 아가씨는, 혹여나 누가 볼세라, 황급히 다시 종종걸음으로 산을 달려 내려가며, 잔방구를 뿌웅뿡 뀌며 돌아갔답니다.]


"냄새... 그치만... 이제 당분간은 방귀를 조금 참아도 괜찮을거야..."


(띵-!)


(차박... 차박차박...)


뿡뿌부부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뿌드프프프드드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닷!


또 다시, 그렇게 방귀를 뀌고도 매 걸음마다 방귀를 쏟아내며 집으로 달려가는 그녀였다.




뿌부부부부부푸푸푸푸푸푸루루루루루루루루룹!


(타박... 타박... 탓!)


"다... 다 도착했다... 냄새를 빼고... 응응! 다녀왔습니다. 어머님."


[얘 왔니? 점심에 먹다 남은 고구마 좀 먹으련?]


"...뭐? 자... 잠깐, 야, 정도윤, 어디서 듣고있지? 그... 이거 무조건 먹어야 해?"


"...스토리대로 흘러가야 끝이 나니까."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자신이 읽어야 하는 대사를 읊는 지영.


"와아...! 감사드립니다...! (...끄흐... 이런 씨... 무슨 이런 책을 가지고 온 거냐고...! 정도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 그녀였다.


[그렇게 방귀대장 아가씨는, 그렇게나 방귀를 뀌어대고도 또 방귀를 만드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고 해요.]


(우걱...우걱우걱...)


"응... 하아... 야, 도윤아. 조선시대에도... 고구마 있었냐?"


"대충 영조 정조 시기에 들어왔을걸."


태연한 척 잡담을 나누며, 앉은 자리에서 고구마 열 두개를 먹어치운 지영. 그렇게 또 다시 배가 빵빵해질 무렵, 나레이션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밤이 되었답니다. 달빛 어스름이 소리없이 내려앉은 은은한 밤, 아가씨는 엄마 몰래, 조용~히,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와, 마당에 섰답니다.]


또 다시, 배경이 휙휙 바뀌더니, 어둑어둑한 밤의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아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답게, 어둠 속에서도 곳곳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덕에 주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근데 진짜 동화 내용이 이따위...였나..."


(띵-)


"...또 네비야? 이번엔..."


[차르륵...]


불평을 늘어놓는 그녀의 눈 앞에 다시 떠오르는 대사. 이제 익숙해진 듯, 지영은 대사를 읊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우우... 고구마를 너무 많이 먹었나...?"


[아가씨는, 자신의 통통하게 부풀어오른 배를 부여잡고, 근처의 강가로 몰래몰래, 살금살금 걸어갔답니다. 또 방귀가 새어나왔지만, 아가씨는 엉덩이를 양 옆으로 쭈욱 벌리고 움직여서, 소리가 나지 않게 몰래 움직일 수 있었지요.]


"...윽...파...팔이...!"


지영은, 멋대로 움직이는 팔을 멈추어보려 했으나, 당연하게도 그 저항은 무위로 돌아갔다. 천박하게까지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움직이는 지영. 마치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려는 듯, 방귀 소리의 발생 원리를 설명한 HUD가 떠올랐다.


[궁금해요! 방귀소리는 왜 나는 건가요?]


[방귀는, 우리가 밥을 먹고 소화되면서 만들어진 가스가, 우리의 여기, 항문을 통해 나오면서, 주위 살을 덜덜 떨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살과 살이 부딪히며 소리가 난답니다! 그러니, 몰래. 조용~히 뀌고 싶다면, 우리 방귀쟁이 아가씨처럼 엉덩이를 쭈~욱 벌리고 뀌면 되겠죠?]


"...이딴거 알려줘서 뭐해...!"


뿌프프프프프... 프브프프브프프브프프프스스스스스스스스슷... 브프프르르프브프프프스스프브프프프븝프픕! 프프브스프프프스스프프브프스스스스스슷...!




부프프프프프프프르르르르르르르릇-! 쁘프프프프프프프프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겨우겨우 강가에 도착한 방귀쟁이 아가씨. 아가씨가 지나간 발자국 뒤로, 일 주일을 빨래해도 씻을 수 없는 지독~한 방귀냄새가 구수하게 피어나고 있었답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가씨는, 얼굴을 가리고, 아이 부끄러워! 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했대요.]


"...씨발... 저 좆같은 나레이션... 좆같은 깡통새끼들...!"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자신을 놀리듯 발랄한 톤으로 대사를 읊는 나레이션의 목소리를 향해, 저주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엉덩이를 쫙 벌리고 실방귀를 뀌어대는 지영. 그녀의 이런 분개한 모습을 본 도윤은, 그녀를 조금이라도 달래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미안. 내가 수정... 이 책은 그냥 폐기할게."


"...아냐. 니가 뭔 죄... 아니다. 있나... 아무튼... 너무 마음 쓰지 마. ...체념했어."


[아가씨는, 배가 너무너무 아팠어요. 방귀를 계속해서 참은 탓이었을까요? 아가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가 오는 것을 확인한 뒤, 몰래몰래 치마와 속곳을 벗어 자신의 앞에 개어두었어요.]


"...씹..."


(스륵... 부스스...)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다시 치마와 속옷을 벗고 빵빵해진 배를 부여잡는 지영. 지극히 불쾌한 순간이었지만, 나레이션은 그녀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차르륵...]


"대사... 후우... ...아... 밤에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다들 일어나면 어떡하지...? 아!"


[아가씨는, 징검다리 위로 올라서서, 시원한 강물에 엉덩이가 모두 잠기도록 하반신을 푹 담궜답니다. 밤이라 차디찬 물 때문에 고뿔에 걸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달리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지 뭐에요?]


(찰박... 찰박... 첨벙...)


"으... 쓸데없이 진짜 리얼하네... 진짜 물 속에 들어있는 기분이잖아..."


으슬으슬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그녀. 물론, 실제 물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빠르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는 지영은 자신의 대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솔직히 좀 불안..."


[차르륵...]


"...이럴 줄 알았어... 응...!"


(꾸르르르르륵...)


결국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자신이 예상했던 내용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튀어나온 대사를 체념하듯 읊으며, 물 속에 잠긴 아랫배를 문지르는 지영. 화산의 마그마가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대사는, 그 옆에서 그녀의 행적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도윤의 쥬지를 빳빳하게 만들고 있었다.


"웃... 다들... 내일 강 아랫물은 쓰면 안될 거야...!"


뿌브그럽! 뿌부구구루루룰구구루구루구루구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부루부루부루부루부구루루루루루루루루룹! 부푸푸부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뤄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그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럴러럴러럴럵! 부워뤄뤄뤄뤄뤄러러러러러러버버버버퍼버퍼버퍼버퍼러러러러러러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덕! 부글부글부르그그르그르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프브드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륿!


[큰 솥에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아가씨가 몸을 담근 강물이 부글부글 끌어오르기 시작했어요! 지독하디 지독한 방귀에 흙 속에 몸을 덮고 잠을 자던 메기도 깜짝 놀라서 일어나고, 강물을 헤엄치던 송사리나 붕어, 버들치들이 허연 배를 뒤집고 물 위로 둥둥 떠오르며 퍼덕거리기 시작했답니다.]


[여기서 잠 못자겠다 부엉! 방구대장 아가씨 때문에 잠도 못잔다 부엉!]


[날아가는 새들도, 노래하던 풀벌레들도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어디론가 숨어버렸다고 해요. 아, 이건 아가씨한텐 비밀이랍니다?]


"...아주 씨발 더 맥여라 맥여 그냥...!"


수치스러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들거리며 물 밖으로 나와 몸을 훌훌 털고 옷을 입는 지영. 금방이라도 부끄러움의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그녀에게, 도윤은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


"...있잖아, 지영아. 이제... 거의 반쯤 왔어. 그..."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리고... 이런 책... 후우... 아니다... 그래... 반쯤... 이제 무슨 줄거리지...?"


"...내가 너의 남편 역할로 나오게 되지."


"...불쌍하네. 이런 추잡스러운 책 속의 여인이랑 부부라는 관계를 연기해야 하니까."


"그런 말 하지 마! 니가 왜 추잡스러워? 오히려 귀하면 귀했지! 그리고 이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부탁도 잘 들어주고... 착하...고... 어... 그러니까..."


"...왜 니가 화를 내...?"


"...아...미안... 너무... 급발진이었지...?"


"...아냐. 정말... 말이라도 고마워. 이 착해빠진 녀석아."


조금 기운을 차린 듯, 힘없이 웃어보이는 지영. 그러는 사이, 나레이션은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차르르르르륵...]


[그렇게 아가씨가 동네 아낙들이 빨래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물을 더럽히고 나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답니다. 물론, 방귀쟁이 아가씨는 그 동안에도 계~속 방귀를 뀌어댔죠. 그날도, 밥을 먹고, 남들의 눈을 피해 방 안에서 괭이처럼 몸을 말고 방귀를 뀌려던 찰나, 엄마가 들어와서 그녀에게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줬답니다?]


[얘, 얘 아가야. 잠시 내 말좀 들어보거라.]


"무슨 일인가요, 어머니?"


[아니 글쎄... 너도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지 뭐니? 건넛마을 총각이, 물건 사러 여기 왔다가 너한테 한눈에 반했다더구나!]


"...정말인가요?!"


대사를 읊던 지영은, 고개를 살짝 돌려 반투명한 상태의 도윤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런 설정이냐?"


"윽... 야, 내가 만들었냐... 연기나 해. 어서."


"풉... 으흠흠! ...저... 혼례 날짜는 언제인가요?"


[사흘 뒤란다. ...명심해라 아가야. 시집가서는... 절대, 절~대로 방귀를 뀌면 안 된단다?]


"...알았어요. 어머니. 최대한 참아볼게요. (...이제서야 좀 원작 동화다운 내용이 나오는군...)"


[아가씨는, 자신이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어요. 누구와 하게 될까, 어떻게 지내게 될까. 그리고... 잘 참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나는 생각이, 아가씨의 머릿속을 뱃속만큼이나 완벽하게 뒤집어놓았답니다.]


"...야, 도윤아. 나레이션 온오프 기능 추가 안하면 화병으로 실려가는 사람 꽤 되겠다."


"오케이. 참고할게."


[하루가 지났어요. 이틀... 사흘... 그렇게 당일이 되었답니다. 최대한 방귀를 뀌지 않기 위해, 결혼식 한 시간 전, 아가씨는 몰~래 마을 공용 뒷간으로 들어가, 작별인사와도 같은 방귀를 뀔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이딴 내용은 또... 후우... 으극...! 아... 배가...!"


어느새 사방이 막힌 작은 뒷간 안이 구현된 가상현실. 밀려오는 복통에, 지영은 양 손을 옆으로 뻗어 벽을 짚고, 뱃속에서 미친듯이 내달리며 자신의 항문을 향해 질주하는 가스의 흐름을 느낀 뒤, 호흡을 가다듬고는 기합까지 넣으며 아랫배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결국 포기하면 편하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일까.


"...흐읍...!"


뿡뿌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부부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뿌드드드드드프프프드드다다다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랅! 뿌부부부부푸푸푸푸푸루루루루루루루두두두두두두두부부부붑! 뿌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뽜봐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푸두두두푸푸푸두푸푸프르르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구현된 푸세식 화장실 전체가 흔들거릴 정도의 방귀가 미친듯이 터져나왔다. 나무 합판을 덧댄 벽이 으스러지는 소리, 무언가가 썩어 비틀어지는 소리, 우지끈 소리와 함께 약한 나무판자들이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빠그러지는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정체 모를 기침 소리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내 그 자잘한 소리들은, 그녀의 우람하고도 탱글한 궁둥이 사이에서 실시간으로 연쇄적 폭발을 일으키는 인간을 초월한 화학 폭탄이 만들어 낸 소리에 묻혀, 아가씨 역할을 맡은 지영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귀가 겨우 잦아들고, 나레이션이 다시금 제 스크립트를 읽을 때 까지, 도윤은 그 옆에서 그 대단하다는 표현으로 한참 부족한 방귀의 대폭발쇼를 보며,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열심히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아가씨는 배가 홀쭉해질 정도로 방귀를 뀌어댔답니다. 우지끈, 쿠당탕!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에, 아가씨는 황급히 뒷간을 빠져나왔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가씨의 방귀를 견뎌내지 못한 뒷간이 그만 폭삭! 무너져버리고 말았대요.]


(쿠궁... 콰장창! 우지끈!)


"...지랄하네 진짜..."


[스멀스멀 퍼져나온 아가씨의 뿡뿡방귀는, 근처에서 풀을 뜯던 소들이 콧구멍을 닫아버리게 만들었고, 강아지들과 함께 뛰어놀던 아이들도 모두 숨어버리게 만들었죠. 날아가던 새들은 그 냄새를 맡고 모두 땅에 떨어져 기절해버렸고, 결혼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어슬렁거리며 찾아온 호랑이마저도 코를 감싸쥐고 다시 산으로 도망가버리고 말았죠. 게다가, 방금 빨래를 마치고 새 옷을 입고 구경온 총각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싶었던 아낙들은 이상하고 오묘한 구린내가 옷에 배어들지 않을까 발만 동동 굴렀고, 결혼식 음식을 준비하던 요리사들도 '재료가 상했나?' 하며 코를 감싸쥐고 조금씩 요리를 먹어보고 있었답니다. 정말 굉장하지요?]


"...씨발... 야, 나레이션 온오프가 아니라 그냥 꺼. 글자만 띄워주는 형식으로 제발 좀 바꾸자..."


"...그래야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레이션은 묵묵히 자신의 스크립트를 읽어나가고 있었다. 코에 사무치는 악취를 맡고, 순간 속이 뒤집어지는 착각이 들었던 도윤. 그는, 이 장치를 작동시키기 전 방의 문을 활짝 열고, 화장실의 환풍기까지 작동시키고 온 것에 대해 매우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방귀를 너무 뀌어서 홀쭉해진 몸으로 결혼식장에 도착한 아가씨. 그리고, 인사를 나누고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아가씨의 가슴은 콩닥콩닥, 빠르게 뛰기 시작했어요.]


"...으웃..."


"뭐야, 왜 그래, 지영아? 갑자기..."


"...몰라. 가슴이 막 뛰고... 이런 거 혹시..."


"...호...혹시 뭐?"


"...이거 심부전증이냐?"


"뭐? ...푸훗... 송지영, 너 덜 부끄러운가보네. 드립 칠 힘도 남아있고."


"...시끄러. 대사나 쳐."


"그래. ...으흠... 처음 뵙겠소. 부인."


"...네. 서방님. (으... 연기잖아... 왜 부끄러워하는데... 설레지 마라고...! 정신차려!)"


"실은...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대에게 반했소! 내 기필코 부인을 행복하게 해 줄 터이니, 우리 마을로 갑시다."


"후훗... 좋아요. 서방님."


[이야~ 이렇게 보니까 선남선녀가 따로 없구먼?]


[에구구... 다행히 저 아낙도 시집을 용케 갔구만... 다행이여... 다행이여!]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방귀쟁이 아가씨를 축복해주었어요. 엄마의 배웅과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가씨는 옆 마을로 서방님을 따라가게 되었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다 끝났다, 이런 거네. 그치?"


"맞아. 고생 많았어. ...이 책은 폐기해야겠다."


잡담을 나누며, 이야기의 종장을 향해 나아가는 둘. ...하지만, 그 종장엔 그들이 상상도 못한 전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가 시집을 온 지, 어느덧 세 달이나 지났어요. 살림도 잘하고, 착하고, 순하고, 땔나무도 동네 총각들보다 더 잘 팰 정도로 힘도 무지막지하게 강하고, 앉은 자리에서 보리밥에 고구마를 몇 그릇씩 먹어치울 정도로 먹기도 복스럽게 먹는 방귀쟁이 아가씨는 금새 모두의 귀염둥이가 되어있었죠. 하지만...]


나레이션이 끝남과 동시에, 지영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과 불쾌감이 온 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속이 더부룩했고, 피곤하기도 했고, 이유없이 짜증이 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니 씨... 이거 뭐야, 뭔 풍선이야?"


제법 부풀어오른 그녀의 배였다.


"...괜찮아? 이거 참... 아무리 가상현실이라고 하지만 사용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고려하지 않고 만든 책인가..."


자신을 걱정하며 배를 들여다보는 도윤에게 부끄러움을 느낀 지영은, 일부러 톡 쏘아붙이며 그를 밀어냈다.


"윽... 빨리 끝내게 대사나 좀 쳐."


"응. ...여보 마누라, 괜찮소? 이렇게 부푼 배라니... 설마..."


[얘, 아가야. ...으잉...? 설마... 영감! 영감! 잠깐 요좀 보소!]


[아니, 뭐야아? 무슨 노망이 나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그려!]


[우리 며늘아가 배좀 보소!]


[...으엉?! 서...설마...]


[순식간의 모두의 오해를 산 아가씨는, 다급하게 손사래를 휘휘 치며 아니라고 했죠.]


"아... 아니에요...! 저... 이건..."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방귀쟁이 아가씨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 채로 겨우겨우 대답을 했답니다.]


"저... 실은... 바... 방귀를... 뀌지 못해서... 그...그렇사옵니다..."


[...]


[...응?]


"...여보, 무슨 소리요? 방...귀?"


(...끄덕...)


[...푸...푸하하! 으하하하하하하! 하아... 아이고... 그려. 그런 이유였구먼.]


[에이구 아쉬워라... 근디 아가야. 너는 왜 방귀를 참느냐? 시원~하게 뀌면 그만이지!]


"저...정말인가요, 시어머님?"


[하모! 난 또 우리 아가한테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지 뭐냐. 아범아, 안그러냐?]


"맞아요. 아버지. ...여보.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이라도 할 것이지..."


"부... 부끄럽기도 하고... 제 방귀는... 남들과는 달라서..."


[다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아가야?]


[그려. 거 방귀가 강해봤자 얼마나 한다고. 속 시원~하게 뀌거라! 우리 아가!]


"...저... 네. 그... 그러면... 시어머님은, 저기 기둥을 붙잡고 계셔주시고, 시아버지는... 저기, 커다란 옹기를 잡고 계셔주세요. 제가 하루종일 길러놓은 물이 있으니, 꽉 잡고 계시면, 날아가지 않을 거에요."


이제서야 조금 정상적인 전개로 나아가는 동화를 보며, 지영은 안심이라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본 순간, 그녀의 표정에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이게 뭐야...?! 무... 무슨 내용이 이래...!"


"왜? 한번 보자. 오류났어?"


"오...오...오류가 아니라..."


"...응?!"


도윤 또한, 그 내용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어느 판본에도, 그 어느 비슷한 동화에도, 전혀 없는, 아니, 없어야 할 내용이 그 자리에 떡하니 들어가있었기 때문이다.


"...이...이거..."


"...평범한...동화가 아니었...나...?"


"..."


"...그래도... 지영아... 그... 끝은 봐야..."


"...알았...어..."


지영은, 마음을 다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대사를 읊었다.


"서...서방님은... 저... 제가 바지와 속곳을 내린 뒤...에... 쪼그려 앉을... 터이니... 그... 제... 아래에서... 제 엉덩이...를 주물러주세...요..."


어린아이의 동화에서는... 아니, 청소년들이 읽는 책에서도... 아니, 성인들이 읽는 싸구려 야설집이나 인터넷 소설집에서도 어지간해서는 나올 일이 없을 지극히 이상성욕적인 요구 사항. 그것을 읊조린 지영은, 이미 홍당무보다도 새빨간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쥐고 웅얼거리며 부끄러움을 표하고 있었다.


[응?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


[그래. 방귀 가지고 우리 며늘아가 너무 유난이구나! 오호호!]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둘을 뒤로 하고, 짜여진 스크립트대로 움직이는 홀로그램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현장 속에서, 제일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지영과 도윤. 결국 현실을 받아들인 지영은, 치마와 속곳을 모두 훌훌 벗어던진 뒤, 바닥 중앙에 쪼그려 앉았고, 도윤은 그녀의 엉덩이와 항문, 음부를 모두 볼 수 있는 장소로 몸을 옮겨 들어가 누웠다.


"..."


"..."


"...너... 너무 아무 말도... 없는..."


"...그... 어... 너 예쁘...다..."


"...미쳤어 정말..."


"...미안."


"...아니야. 그럼... 그... 시키는 대로 해볼래?"


"...응. 그... 대신... 신고하지 말아...주라."


"...푸흡... 뭐래는거야... 신고 하라고 해도 안할거니까... 어서 그... 하고... 응... 끝내고 나가자..."


"...만질게."


(주물... 쪼물딱... 쭈욱... 쮸복...)


[서방님은 탱글탱글한 복숭아같은 방귀쟁이 아가씨의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주물렀답니다. 마치 시루떡 반죽을 주무르는 것 마냥, 부드럽지만 힘있게 만지는 서방님의 사랑이 담긴 손길에, 방귀쟁이 아가씨는 금새 온 몸의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했어요.]


"읏... 갑자기 배가..."


(쿠르릉... 우릉우릉! 쿠구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아...아아... 읏... 야... 나온다...! 조...조심...!"


뿌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붜버버버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뿨버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럭!


[에...에구머니나!]


[아이쿠! 영감 살려!]


[몇 달을 참은 아가씨의 방귀가, 뻐버버벙!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쏟아져나왔어요. 팔도강산에 울려퍼지는 경천동지, 천지역전, 뇌정벽력, 천붕지탁의 소리에, 저마다들 깜짝 놀라 화들짝 뛰어오르며 놀라 자빠져버리고 말았어요. 그렇게 꼭 물건들을 붙들고 있었지만, 집 기둥이 그대로 뽑혀 이리저리 나뒹굴게 하는 며느리의 방귀 폭풍 속에서는 그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 가여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뿌푸부푸부우우우부부부부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우우우욱!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꼬끼오옥-! 이게 무슨 소리인꼬꼭!]


[우리 가문에 몰락이 찾아왔다꼭! 너 자신을 해방해라꼭! 존재를 깨워라꼭!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우주적 혐오를 받아들여라꼬꼭!]


[앞집 박씨네 양계장의 닭들도 놀라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코를 감싸쥐고 이리저리 날뛰었고,]


뿌붜붜풔뤄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럭! 뿌럴럴럴럴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럵! 뽜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음메에~ 씨발 음메에~! 뒷간 터졌다음메~!]


(와장창! 우장창창!)


[음멤메?! 멀쩡한 밥통은 왜 엎고 지랄임메?!]


[건넛집 김씨네 외양간의 황소들도 깜짝 놀라 펄쩍펄쩍 뛰며 여물통까지 엎어버리고 말았고요,]


뿌퐈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뿌부푸푸푸부푸푸루부부푸부루루루루루루루두드르르르르르드드드드드듭! 뿌프프프르르르브드드드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꾸이이익! 꾸익! 내 코! 내 코가 썩는거같다꿀!]


[돼지우리보다 더 더러운 곳에서 나는 냄새라니 믿을 수 없다꿀! 꾸이이이이이익! 더러운 인간 놈들의 수작이다꿀! 꾸이이이이이익!]


[어어? 어어어?! 이놈들이 왜이래! 무슨... 우욱! 이게 무슨 냄시여!]


[관아에서 기르는 돼지들도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마구 날뛰며 울부짖었고, 그 덕에 아전들만 고생을 백배 천배 만배 했다지요. 심지어, 뒷산 굴 속에 살던 도깨비가 깜짝 놀라 무슨 소리인가 하고 나왔다가, 이 소리가 이 참하고 예쁜 아가씨의 방귀소리라는 것을 알고는 너무 무서워서 다시 굴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고 하지 뭐에요?]


"읏...흐응...! 아...흐읏... 배가... 엉덩이가아... 앗... 기분 이상...해앳..."


나레이션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든, 지영은 이미 항문에서 시작해, 척수를 타고 흘러들어가 모든 신경계를 거칠게 뒤흔드는 '배설의 쾌락' 에 온 몸을 맡기고, 그저 가스가 차면 차는 대로, 미친듯이 뿡뿡거리며 내보내고 있었다. 가상현실에서 이런 폭풍을 몰고 온 것으로 모자라, 현실에서도 그녀의 무지막지한 방귀 소리를 들은 이웃집 사람들이 소음공해의 피해를 호소하며 벽을 치고, 메모지를 붙이고 가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냄새도 어찌나 심했던지, 항의 차원에서 메모지를 붙이고 문을 쾅쾅 두드리고 돌아가던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악취에 순식간에 중독되어 픽픽 쓰러져 땅바닥 위에 뻗어버린 것이었다. 이미,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은 그녀의 방귀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할 정도의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읍... 흐부븝...?! 읍...!"


한편, 집 주춧돌과 기둥을 뽑아버리고, 수백 미터 밖에서 들릴 정도의 강렬한 소음을 뿜어내고, 삭힌 홍어에 하우카르틀, 곤계란과 취두부, 훈제 청어와 수르스트뢰밍을 한 데 섞어 뭉친 음식물 쓰레기를, 폐타이어 안에 가득 채우고 더운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서 불에 태우는 것 같은 무지막지한 악취를 풍기는, 놀이동산 헬륨풍선을 스무 개는 너끈히 만들어 낼 정도인 양의 방귀를, 어떠한 필터 하나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도윤이었다.


"흐...으읍...! 쿨럭! 하아... 읏...!"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기절할 것 같았지만, 미칠 것 같았지만, 그는 상상 이상으로 멀쩡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배역을 고르며, 이런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친구는, 남편. 배역을 맡아서 연기하게 될 거에요. 건넛마을에 사는 남편인 친구는, 아주아주 건강하고, 튼튼하고, 체력이 좋고, 어려서부터 이것저것 이상한 것들을 많이 주워먹어서 너무 튼튼하게 자라, 독과 병에 걸리지 않는 아주아주 건강한 친구랍니다!'


"이게... 이게 이런 뜻인 줄은... 꿈에도... 쿨럭...!"


미친듯이 괴로웠고, 온 몸이 불타는 작열통이 느껴졌으며, 머리 속 뇌가 다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도윤은 이 상황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바라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해온 여사친의 묵직한 엉덩이 아래에서, 어떠한 필터 하나 없이 방귀냄새를 맡는다니, 수십년간 꿈만 꿔온, 자신의 이상성욕에 너무나도 이상적으로 잘 들어맞는 상황이었던 것이었기에. 즉, 지금 도윤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아... 아앙...! 계... 계속계속 나와...! 방귀가... 안 멈춰...아앙...!"


뿌봐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탁! 뿌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뿌부푸두두두두다다다다다다다다타타타타다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랍! 뽜봐봐바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랍!


도윤의 입가에, 무언가 비릿하고 끈적한 액체가 툭툭 튀어나 묻기 시작했다. 땅 바닥에 쳐박히다 못해, 땅을 뚫고 조금 내려가 음푹 패인 구덩이 속에서 지영의 엉덩이를 올려다 본 도윤은, 그녀의 말끔하고 깨끗한, 뽀얗고 깜찍한 음부에 반짝이는 맑고 투명한, 조금은 비릿한 액체가 선을 그리며 뚜욱뚝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 주저앉았다. 저것은, 저것은 분명 애액이라는 것인데, 여자가 흥분했을 때 성적 쾌락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와 비슷한 것인데, 저것이... 어째서? 지금? 하는 생각을 하며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지영은 어디론가 손을 뻗으며 도윤에게 부드럽고 달콤한 말을 건넸다.


"...하아아응... 여보... 섰네...?"


"...으븝?!"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지영은, 연기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이 모습은 연기가 아닌, 은연중에 튀어나오고 만 그녀의 본심이었다. 그녀 또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십년간 꾸욱꾹 누르고 누르고 또 참았던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취향이, 남에게 방귀를 뀌며 흥분하는 취향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방귀를 맡게 만들고 즐거워하는 취향이, 천박한 신음을 윗입 아랫입으로 내지르며 추잡스럽고도 지저분하게 몸을 섞고 싶다는 은밀한 취향이, 그 추잡스러운 리비도(Libido)가, 이 일을 도화선으로 결국 폭발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미친듯이 폭발해버린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의 손이 향한 곳은...


"딱딱하고... 뜨거워... 아응... 이게... 이게 쥬지..."


바로, 도윤의 남근이었다.


(타앗... 타앗... 타닷... 쮸븝... 타앗...)


위아래로 부드럽게 움직이며, 귀두부터 자지뿌리까지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훑는 지영의 맹공 앞에서, 도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바닥에 깔려 무지막지한 방귀를 맡으며, 신음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무력감이, 너무나도 행복하게 느껴질 뿐이었다고.


"아앙... 맑은 물이 자지에서... 야... 너, 갈 것 같지...? 으응? 너... 너도 이런 취향이었던거였구나? 으응...?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괜히 부끄럼이나 타고... 크흐흣... 아... 큰거 온다... 진짜진짜 큰거... 으응...!"


뿡뿌닥! 뿌프브브드르드브드르르브프프브드드르르브프프드브드드르프브드드프브드드프프프르르르드드드드드드드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뿌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빠아아아아아아아악! 뿌아아아아바바바바바파파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우우우우우우우두두두드드드드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라라라라라라락!


휘몰아치는 고통의 황홀경 속에서, 정신을 잃기 전의 도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사랑스럽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귀엽고도 아름다운 지영의 땀범벅 얼굴이었다.




(부스스슷...)


"...아...아아... 읏... 하아... 절정... 방귀만으로..."


아직까지도 여운에 젖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지영. 이내, 그녀의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미친듯이 발광하며 다음으로의 진행을 요구하는 그녀의 대사가 눈에 들어왔다. 정신이 번쩍 돌아온 지영은, 황급히 대사에 적힌 대로 옷을 다시 챙겨입고, 수줍게 대사를 읊었다.


"어...어머... 어쩜 좋아...앗...♥ 이래서어... 위험하다고 한 건데...에엣...♥"


...수줍게 하려고 노력했지, 수줍게 읊었다는 것이 아니지만.


[방귀쟁이 며느리의 방귀는 온 마을을 완전하게 뒤집어놓았어요. 여기도 폭삭! 저기도 폭삭! 곳곳의 건물이 무너졌고, 냄새 때문에 기절한 사람들도 정말 많았어요. 감옥을 지키던 옥졸들이 기절해버려 죄수들이 모두 탈출... 했다가, 악취를 감당하지 못하고 죄수들도 모두 기절해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무당들은 하늘의 벌이라며 곳곳에서 나나지성을 지르며 굿과 푸닥거리를 시작했고, 선비들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울기도 했다고 해요. 그런 난리 법석 속에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간신히 일어나, 핑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며느리를 바라보았지요. 며느리의 엉덩이 아래에서 기절해버린 남편을 보고, 시아버지는 큰 결심을 하고 말했죠.]


[얘... 쿨럭! 며늘아기야. 그... 잠시 친정에 조금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나중에... 나중에 부르마.]


"...네. 알겠어요."


[아이구... 아이구아이구... 아이구...]


[시아버지는 겨우겨우 시어머니를 부여잡고 무너진 집 잔해 위에 앉았고, 시어머니는 충격이 크신 듯 연신 '아이구. 아이구.' 하시며 힘들어했고, 남편은 이미 기절했답니다.]


"...기절? 헉...! 너무 했나..."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몰라하며 아랫도리를 축축하게 적시고 쾌락에 쩔어 기절해버린 도윤을 내려다보던 지영.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서야 깨달은 지영은, 문자 그대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패닉에 빠져, 그 원망스러운 나레이션이 흘러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귀쟁이 아가씨는, 기절한 남편을 들어올려 그나마 멀쩡한 사랑채로 옮기고, 말 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차르르륵...)


"내 대사... 에헴...! ...후우...어머니를 뵐 낯이... 서방님..."


[아가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짐을 싸다가, 자신의 옆에서 새근새근 잠이 든 채로, 몸을 쉬던 신랑을 내려다보고 생각했어요.]


묵묵히 진행하던 지영의 눈 앞에, 무언가 지시사항이 떠올랐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문구에, 그녀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모로 보나 바로 보나, 그녀가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남편 배역을 들어올려 몰래 도망치기)


"...이거 동화 아냐... 대체... 대체 무슨 이런 책이..."


우주 끝까지 날아간 어이를 뒤로 하고, 아직도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도윤을 들쳐업고, 다시 자신의 대사를 읊기 시작하는 지영.


"...미안해요. 서방님. 저... 잘못한 건 맞지만... 서방님을 잃고 싶진 않아요...!"


[방귀쟁이 아가씨는 아주 독하고 굳은 마음을 품고, 자신의 사랑하는 서방님을 지키기 위해, 몰래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어두운 밤이 찾아왔고, 그녀는 가상현실 속에서 도윤을 업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한참을 걷던 아가씨는, 신랑을 부드러운 풀밭에 뉘이고 자신도 잠시 발을 쉬기로 했어요. 그러자, 풀밭에 누운 신랑이 눈을 움찔거리더니, 그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답니다.]


"...아 씨발 머리야... 으... 뭐야, 밤이야?"


"...일어났네. 도윤아."


"...뭔... 무슨 일이... 아..."


"...미안. 정말... 정말 미안... 아무리... 후우...윽... 아무리 연기라지만... 너한테 결국..."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자신의 배를 원망스럽게 보며, 눈물이 고이려는 지영의 눈가를 대뜸 쓰다듬고, 그녀를 꼭 안아주는 도윤.


"...우...뭐야...?"


"...뭐긴, 니가 너무 자책하니까... 그러니까 그렇지. 그러지 마. 오히려... 너 너무 귀여웠으니까. ...실은, 다 알고 있었어. 너, 가스가 엄청 자주 차는 체질이었던거.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또... 이쁘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하고? 그래서... 으... 결국 너한테 이런 내 마음을 숨긴 내가 잘못인거네. 그치?"


"...그래도 내가 더 미안. 이건... 정도를 넘어섰잖아. 널 기절시키기나 하고..."


"...그렇게 치면, 내가 더 미안. 솔직히... 좀... 역겨웠지? 여자 방귀 냄새나 맡으며 킁킁거리고..."


"...그렇게 치면... 나는? 나도... 나도 너한테 방귀 뀌면서 막... 흥분했는데... 애액...도 나왔고..."


"...난 괜찮아. 오히려 좋아. 너."


"...뭐야, 그럼 나도."


"풋..."


"...무...뭐야? 건방지게 웃긴... 푸훗..."


작품의 진행은 잠시 미뤄두고, 두 남녀는,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에 조금 솔직해지기로 마음을 먹은 듯 했다.


"...저기, 지영아."


"...도윤아."


"나... 할 말이 있어."


"...나도."


"...좋아해. 다시 말하지만... 너를,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널 정말 좋아했어. 귀엽고, 순박하고, 착하고 털털하고, 그리고... 예쁘고."


"...나도. 겉돌던 나를 이끌어줘서, 매번 내 어리광을 받아줘서, 내가 힘들고 지쳐 울 때 마다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좋아해."


"...짝사랑이 아니었네."


"...취향도 일방통행이 아니었고."


"...조금 급작스럽지만... 그래서 더... 웃기고... 운명적이고..."


"...더 즐겁고 기쁘고, 니가 더욱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있어. 지영아."


어두운 분위기에서 오는 달콤한 무드를 안주 삼아,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는 진한 키스를 나누는 둘. 그녀는 다시금 아랫도리가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고, 도윤은 쥬지가 빳빳해지는 것이 다시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츄웃... 푸하아... 응... 더 하고 싶지만..."


"...우선 극을 마무리해야겠지?"


아쉽다는 듯, 서로를 잠시 마주보고 물러선 둘은, 자신들의 눈 앞에 떠오른 대사집을 읽으며,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차르르륵...]


"...여보? 여기가 어디..."


"...흑... 흐윽흑...!"


"...여...여보...! 왜 우시오...!"


"흑... 죄송해요... 실은..."


[여차저차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아가씨. 그 말을 모두 들은 남편은, 아가씨를 꼬옥 끌어안고 위로해주었어요.]


"여보 마누라, 그렇게 자책하지 마시오. 그토록 참아서 그런 것이지, 매일매일 조금씩 뀌면 될 것 아니오? 고작 방귀라는 것 때문에 내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싶지 않으니, 그 이야기는 다시 입 밖으로 내지 마시오. 오히려 귀여운 그대의 모습을 보아서 나는 너무나도 기뻤소."


"서방님..."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하는 아가씨와 함께 일어나려던 찰나, 수없이 많은 사람이 떠들며 생기는 아주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부인, 조용해보시오. 이건..."


"...떠들썩한 소리... 어디선가 훤화하는 소리가 들려요!"


"어쩌면... 설마, 나라에서도 골칫거리라는 산적떼가..."


[두 사람은, 홀린 듯 그 소리를 따라, 동굴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답니다.]




(저벅... 저벅...)


"...부인, 멈춰보시오."


"저... 저건..."


[동굴의 안에는, 곳곳에 횃불을 걸어놓고, 금은보화를 동굴 구석구석 가득가득 쌓아놓고, 술과 고기를 마시고 먹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도적떼가 있었지 뭐에요?]


[크하하하! 다들 먹고 또 마셔라! 든든하게 먹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저 아랫마을 관아를 훔치러 가는 것이다!]


[와아! 두목님 만세!]


"...어쩌죠...?! 우리 마을에...!"


"...관아에 알리기엔 너무 늦소. 아아... 이를 어쩜 좋단 말인가..."


[사랑하는 서방님의 안타까운 탄식을 들은 아가씨는, 품 속에 몰래 숨겨서 가져온 고구마와 감자를 우걱우걱 먹어치우기 시작했어요.]


"...부인?"


"(꿀꺽...) 서방님, 여기 가만히 계셔요."


[아가씨는, 고구마를 한가득 먹어치우고, 배를 마구마구 문지르며, 산적들이 떠들고 있는 동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어요.]


"...에헴! 이놈들!"


[앙?! 뭐냐! ...뭐야, 별 볼일 없는 여자잖아.]


"잘 들어라. 너희가 지금까지 훔친 보물들을 전부 돌려놓고, 관아에 자수해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뭐래냐? 으하하하하하하! 싫다면 어쩔테냐!]


"...그래? 그렇단 말이냐?"


그 말을 내뱉으며, 의기양양하게 선 지영의 눈에는 참을 수 없는 즐거운 감정이 서려있었다. 가학심일까, 기대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방귀를 뀌며 천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저 즐거운 것일까. 아니면 셋 다일까. 어떻든, 그녀는 진심으로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속곳까지 훌훌 내려버리고, 쾌락이 뚝뚝 흐르는 표정으로 엉덩이를 씰룩이며, 도윤을 바라보며 씩 웃어보였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 대사도 이제 재밌게 보이고..."


"어서 끝내고 싶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지영아."


그 말을 듣고 얼굴을 붉힌 지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산적(모양의 홀로그램) 을 향해, 힘껏 소리를 쳤다.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 모두 너희의 잘못이다!"


[이내, 의기양양하게 선 아가씨는, 복숭아같은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힘껏 힘을 주기 시작했어요!]


"...에잇...!"


뿌와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빠아아아아아아아악!!!


[으하하하! 저 꼴좀 봐라! 웃겨서 돌아ㄱ... 우... 우우욱!]


[어이쿠 냄새야!]


[방귀쟁이 아가씨는, 산적들을 향해 있는 힘껏 방귀를 뀌기 시작했어요. 뒷간에 쌓인 똥무더기보다도 훨씬, 훠얼~씬 지독한 냄새가, 산적들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었어요!]


뿍부뿌부뿌부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붜붜풔뤄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럭!!! 뿌럴럴럴럴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럵!!!


(우장창창! 꽈르랑! 쿠당탕타당! 콰자작! 우지끈!)


[아... 아이고! 책상 의자 다 무너진다!]


(우당탕탕! 쿠당탕! 꽈앙!)


[어이쿠! 산적 살려!]


형용할 수 없는, 인간의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의, 마치 강렬한 덥스탭 음악을 연주하는 커다란 앰프의 소음을 압도하고, 스컹크가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악취를 풍기며, 욕조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대량의 방귀폭풍이 휘몰아쳤다. 자신의 앞에서 혀를 쭉 빼밀고, 엉덩이를 시원스레 깐 채로, 그 커다란 궁둥짝을 씰룩씰룩 흔들며 방귀를 마구 쏟아내는 지영을 보며, 도윤은 문자 그대로 형용할 수 없는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 사정을 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다시금 쥬지를 빳빳하게 세운 도윤은, 그 끝에 맑은 액을 한 방울 맺게 하고, 흥분에 겨운 표정으로, 아주 열성적으로 그녀의 방귀 배출쇼를 감상하고 있었다. 지금 그는, 이 책을 챙겨오기로 결정을 내린 자기 스스로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하아... 읏... 으응...! 너희 전부 다... 쓰러져버렷!"


뿌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우우우웅! 뿌푸푸푸푸푸푸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뽜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그리고, 그 피날레를 완벽하게 장식하는 방귀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순간, 주위에 치직대는 노이즈가 일더니, 순간적으로 연결이 끊어지는 듯 하다가 다시 연결되었다. 믿을 수 없게도, 가상현실이 구현된 방 안에 들어찬 가스가 너무나도 짙었던 나머지, 전파 간섭이 생겨 VR 기기의 연결을 순간 방해한 것이었다. 근처에서 연신 악취를 들이키던 도윤은, 그 사실을 깨달은 것 만으로 미친듯이 흥분해, 어떠한 터치도 없이 사정을 할 뻔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악취를 이겨내지 못하고 혼절한 뒤 참아왔던 정액을 사정하는 것에 가깝겠지만...


[치직...이...치직...게도... 산적...들은, 아가씨의 방귀를 맡고 모두 기절해버리고 말았답니다.]


"...서방님! 저 안에 금은보화들... 저것들을 모두 챙겨 돌아갈까요?"


"...여보! 나는 그대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또 사랑스럽소!"


[방귀쟁이 아가씨는, 구석에 놓인 그나마 멀쩡한 달구지에 금은보화를 그득그득 싣고, 누가 눈치챌새라 재빨리 산길을 내달려, 다시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밝았어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아침부터 사라진 아들과 며느리를 찾아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지요. 바로 그 때였어요.]


"어머님! 아버님!"


[으잉...?! 너... 너희들! 어딜 다녀온... 으으엉?!]


[시아버지는, 둘을 보고 한번 깜짝 놀랐고,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보화를 보고 두번째로 깜짝 놀랐지요.]


"아버님, 실은요..."


[자신의 아들이 해 주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탄하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시부모님들은 며느리에게 크게 사과하며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었고, 날이 밝을 때 까지 동굴 속에서 기절해있던 산적들은 며느리와 남편의 신고를 듣고 관아에서 모두 체포해갔답니다. 그리고, 방귀쟁이 며느리의 업적을 길이길이 남기기 위해, 마을 앞에 커다란 비석과 석상까지 세워졌다고 해요! 그렇게, 방귀쟁이 아가씨는 남들 눈치 보고 방귀를 뿡뿡 뀌며,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발랄한 음악소리와 함께, 처음 들었던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한 나레이션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지금 바로 학습을 마치고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동화나라에 조금 더 머물면서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어요!]


[나가기 / 머무르기]


"..."


"..."


둘은 서로를 순간 지긋이 바라보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머무르기' 를 눌렀다.


"...배터리가 다 닳아 없어질 때 까지..."


"...우리, 조금만 더... 서로를 좀 더 알아볼까? 연기가 아닌, 진짜로."


"...그래. 서방님...♥️"


(꾸루루루루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후후... 도윤아. 나... 방귀쟁이라서..."


뿌락! 뿌부다다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퐈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너무 행복해...♥️"


"...지영아... 후웃..."


"아응... 마음만 급하긴...♥️"


둘에게 있어선, 아주 지저분하고, 기나긴 주말이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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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제품 발표회장.


"후우... 어떻게 잘... 끝내고 왔네..."


성황리에 발표를 마치고 무대 뒤편으로 돌아온 도윤. 그의 상사,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그에게 축하를 보냈다.


"잘했어! 정말 수고 많았네! 자네는 회사의 보물이야!"


"와아... 팀장님 진짜 멋있었습니다! 이렇게나 청산유수처럼 말씀도 잘 하시고...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다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이 제 지시를 잘 따라주는 유능한 직원들인 덕이죠. 그리고... 과장님, 믿고 맡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그런 말 말게. 이번 일은 순전히 자네 공이야! 자, 어디, 회식이라도 하겠나?"


"아하하...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


"선약? 자네가 그런 것도 잡는 사람이었나? 오호라..."


"어... 네. 네? 근데 제가 무슨 이미지이길래..."


"조금은 다른 사람들하고 교류하면서 지낼 필요가 있다니까. 정 팀장? 하하핫!"


"그...그렇군요... 아하하... 아, 근데 이제 슬슬..."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기 위해 팔을 꺼낸 순간, 비상구 뒷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의 여인이 도윤에게 말을 걸어왔다.


"야아~! 발표 잘하더라? 엄청 잘 봤어!"


"...아! 지영아! 여기까지...! 미안, 내가 마중이라도 나갔어야 했는데."


"에이~ 그정도 호의까진 바라지도 않아! 푸훗..."


"어머? 설마설마... 소문이 진짜였네요?"


"소문같은 소리 하네. 야, 거의 기정사실이지. 안그래?"


"...윽... 지영아, 남들이... 우리보고 막 뭐라고 하잖아. 조금..."


"뭘? 그냥... 그 감정도 즐기라고~"


한달음에 달려와 그에게 안기는 여인, 그리고, 회사 동료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이 조금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는 도윤. 그 모습을 본 그의 동료들은, 은근하게 그를 놀려댔다.


"으음... 완전 그냥 각별한 사이인데요? 서로 사귀냐고 물어봤을 때... 기를 쓰고 아니라면서 부정하시던 게 엊그제같은데... 어지간히도 부끄러우셨나봐요?"


"그러게 말일세? 하하! 우리는 슬슬 빠져줄까? 무려 '선약' 까지 잡았다고 하지 않았나!"


"으응... 두 분이서 뭐 하시려고 그래요? 솔직히 조금 궁금한데."


"어... 하하... 그... 그게..."


"흐응... 팀장님이 영 말을 못하시네? 저기, 대신 물어봐도 될까요? 무슨 약속이라도 잡았는지?"


말을 얼버무리는 도윤 대신, 지영은 씩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거의 폭탄 선언에 가까운 말을 했다.


"으응... 글쎄? 데이트? 식사? 아니면... 모텔? 그것도 아니면... 식장 예약?"


"...식장 예약이요?!"


그 자리의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한평생 연애라고는 해 본 적 없으리라고 보였던 그 목석같던 도윤에게 벌어진 일이라니.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놀라는 이들을 뒤로 하고, 돌처럼 뻣뻣해진 도윤의 볼을 쿡쿡 찌르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를 놀려대는 지영.


"응. ...흐응... 어지간히 부끄럽나보다? 아까부터 말이 영 없네? 그치? 서. 방. 님?"


"꺄아아아악! 서방님이래! 팀장님! 썰좀 풀어주세요!"


"그래! 지금 회식이 대수인가? 오랜만에 당 충전좀 하게 이야기좀 해주게나!"


"흐음... 다음 시간에 해 드릴게요! 가자! 우리 서방님!"


잽싸게 도망치는 도윤과 지영. 팀원들의 부러움 섞인 배웅을 뒤로 하고, 둘은 차에 올랐다.




(덜컹- 쿵-)


"...흐아아아... 기 다 빨린다... 너는 무슨 그런 말을 해가지고..."


"솔직히 재밌었잖아? 그리고... 이렇게 해야 니가 내 남자인 줄 알지. 안그래?"


"...그런가. 아 참, 그... 이제서야 알게 된 내용인데, 그... 동화 있잖아."


"...아? 그거? 왜?"


"그... 그런 책이 왜 시중에 있나 하고 찾아봤더니... 그거... 제작자가 나였어."


"...엉?"


"...내가 저저번 주말에 술 거하게 퍼마시고 취중에 그만... 그 서점에 하나 들여온 시범용 동화책의 전자 코드를 정신 나간 것 마냥 수정해서 성인 요소를 잔뜩 집어넣고 말았어. 그래서... 그... 자동으로 분류하는 라벨지도 달랐던거고... 동화가 아니라... 성인물 색...으로 붙여버렸더라고. 으... 그래도 어디 팔려나가기 전에 내가 다시 검토하게 되어서 다행이지..."


"...흐응... 그랬단 말이지? 너 생각보다 더 응큼하네? 음탕하고, 음습하고, 지저분하고..."


"윽... 아프니까 팩트로 때리는 건 이제 그만..."


조금 주눅이 든 채로 뒷머리를 긁적이는 도윤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푹 빠져버린 지영은, 이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그리고, 너무 귀여워서 못참겠어. 에잇!"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차 안을 지독한 방귀로 가득 채워버리는 지영. 당장 며칠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그녀의 이런 모습에, 도윤은 또 다시 흥분하며 쥬지를 세우기 시작했다.


"풋... 또 커진다. 또 커져. 으이구... 어쩜 사람이 이렇게나 야해?"


"이... 이게 누구 때문인데...? 아... 아무튼, 여긴 자동차 안이니까... 어서 돌아가자."


"그래. 열심히 일하고 받은 꿀같은 시간인데... 조금이라도 더 알차게 써야지?"


"읏... 야, 운전해야 하니까... 너무 붙진 말아주라. 사고낼거같아."


"흐응... 다른 사고를 내줬으면 하는데?"


지영은 자신의 복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그 모습을 본 도윤은 피식 웃으며 악셀을 밟았다. 그토록 오래 지냈으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그렇게 늦게 확인한 것이 아쉬워서라도, 더욱 깊고 따스한, 그리고 한없이 냄새나고 지저분한 나날을 보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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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릴까 말까 뒤지게 고민하다 그냥 올리기로 함... 동화 내용을 각색하거나 했다기보다는... 이상한 데서 영감을 얻어버림...



이거 보자마자 머릿속에 뭐가 막 떠오르기 시작하다가, 최근에 했던 게임에서도 각종 전기 자극이나 그런 기술을 통해 VR 기기를 작동시키는 것 만으로도 현실에 영향을 주는 리얼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설정을 봤었단 말임...

그런 정보를 접하고 나니, 만약에 '기술이 존나 발달해서 책 속의 상황을 리얼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된다면? 등장인물의 특성을 체험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기능을 통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똥방구범벅유황냄새가득섹스를하며 아이만들기나 하고 있다면?' 하는 생각이 딱 떠올라버렸음... 그래서 쓴게 이건데 아니 시발 무슨 해괴한 글이 나와버리고 말았어


그래도 똥챈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재밌게 봐주는 사람이 몇 명 정도는 되지? 않을? 까? 아님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