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내용 존나 김 (7.7만자 넘음)

              원래 2편 3편 이런식으로 연작 만들어볼려다가 저능아라서 실패함 수구...

              존나 장문이다보니까 내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모순이 조금 있다거나 아니면 이름이 충돌하거나 할 수 있음... 눈치껏 이해해서 넘어가고 잘 봐주셂... 앓...

              부족한 글이라는거 알고 있으니까 너그럽게 봐주면 매우 고맙겠습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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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인간이 되고자 하는 소망.


"...비나이다... 비나이다..."


"...흐응? 이런 곳 까지 인간이...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거지?"


그런 마음을 품은 요괴들이 정말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하늘의 이치를 알고, 땅의 법도를 알며, 불로장생을 누리고 온갖 신기를 부리는 그들이, 정녕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냐고.


"...무슨 기도를 올리는걸까? 돈? 땅?"


"...우리 집이 아들만 셋입니다... 이번에는 부디 딸아이를..."


"...헤에..."


뭐, 그런 요괴들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예를 들자면, 산 입구에 자리한 낡은 불상에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는 이 인간 부부를 보는, 이 꼬리가 여덟 개 달린 어린 여우 요괴의 경우가 그러했다.


"...인간... 인간이라..."


(팍-!)


"...아얏! ...엄마?"


"어휴... 얘도 정말! 인간들 곁에 가까이 가지 마라고 그랬잖니!"


"그치마안~! 우리 증조할머니도 인간이랑 결혼하셨고... 구미호도 되었다면서요! 왜 저는 안되는데요!"


"...얘야, 인간은 약하단다. 금방 늙어버리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늙어버린단다."


"...엄마? 무슨 말씀이에요?"


조금은 안타깝다는 눈으로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어미 여우 요괴. 그녀의 심각한 표정을 본 이 어린 요괴는, 무슨 의미냐는 듯 궁금하다는 표정을 하고 위를 올려보았다.


"...아니란다. 어서 돌아가기나 하자꾸나. 오늘은... 노루의 간을 좀 먹어보겠니? 아주 신선한 붉은 간이란다."


생간, 한 입 베어물면 피가 뚝뚝 떨어져나오는 신선하고 비릿한 생간. 보통의 여우 요괴들이라면 아주 환장을 하고 덤벼들 별미였지만, 그녀에겐 아니었다.


"...우욱... 죄송해요... 너무 비리고... 피가 너무... 싫어서..."


"...괜찮단다. 그럴 줄 알고 몰래 작물을 좀 구해왔으니."


"...여우 주제에 간도 못 먹고..."


"...너는 옛날부터 특이했잖니. 괜찮단다. 아가야, 돌아가자."


"...네. 엄마."


다시 숲 속으로 돌아가는 둘. 어린 요괴는, 계속해서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며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한 듯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물... 우물우물...)


"...야, 넌 진짜 안 먹어? 이 맛있는걸?"


"괜찮아. 언니들 다 먹어."


"...에휴... 그래. 알았어."


"나중에 달라고 해도 안 준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어린 요괴는 자신의 몫을 전부 두 언니에게 양보하고는, 조용히 콩, 보리, 그리고 고구마와 감자 따위의 인간들이 먹는 작물들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그게 맛있냐?"


"응. 한입 줘?"


"우욱... 싫어. 마음만 받을게."


"작은언니는?"


"...나도 별로.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진짜 요술 급하게 부릴 때 아니면 입도 안대는 음식인데..."


"에~ 그치만! 난 그거 때문에 이거 먹고 나서 요술도 훨~씬 잘 부리게 되었는데."


"그런 과한 요술은 필요 없어서 말이지. 너 많이 먹어라."


언니들의 말을 듣고, 빙긋 웃으며 남은 음식까지 모조리 먹어치운 어린 요괴. 육식을 하는 것이 보통인 요괴들이지만, 간혹 부족한 힘을 채우기 위해 이러한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들을 먹기도 한다. 장 속에서 오랫동안 소화되며 활동에 필요한 힘을 내어주고, 그 과정에서 풍부한 장내 세균들에 의해 발효되어 만들어진 막대한 양의 가스가 요괴들의 특이성 체질에 의해 몇 배로 증폭되는데, 요괴들은 이 가스를 밖으로 쏟아내는 대신, 거의 전부에 가까운 수준의 가스를 다시 요력의 흐름 속 일부로 흘려넣고 정제하여, 더욱 강한 요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요력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욱... 잠깐... 우웩!"


(툭... 데구르르...)


"...엄청나게 강력한 여우구슬이네. 올 한달 들어서 벌써 열 두개째야. 이제 중순 지나는데. 거의 하루 걸러 하루 꼴로 만들고 있다고."


"음... 이런 구슬이 늘어나면 우리야 좋다만... 막내야, 너 건강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에헤헤... 그치만... 결과는 좋은걸? 그리고 나 엄청 건강해! 저번에 달릴 때 보다, 두 배는 더 빠르게 산등성이를 따라 달릴 수 있게 되었는걸!"


"...그래. 니가 그렇다면야. ...고기 좀 줘?"


"...불에 구워서!"


"어휴... 알았어. 훅-!"


언니 요괴는 공중에서 몇 바퀴 재주를 넘더니, 꼬리 끝에서부터 타오른 불씨를 한 데 모아 입김과 함께 훅 불어 날렸다. 바닥에 모인 마른 가지와 나뭇잎에 불씨가 옮겨붙더니, 이내 활활 타는 모닥불이 되었다.


"자. 적당히 익혀서 먹어."


"와아...! 언니 최고! 헤헷..."


"...우리 몸 속에 담긴 요력으로 치면 니가 나보다 몇 수는 더 위인데 이런 건 너 혼자 해라. 좀."


"그치만... 까딱 잘못하다간 산이 홀랑 타버리는걸..."


"...알고 너한테 타박 주는거니까 좀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야, 너도 뭐라고 좀 해봐. 듣고만 있게?"


"나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라서!"


"...잘 났다 정말..."




"..."


딸들의 대화를 듣던 어미 요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장 어린 요괴를 보았다.


"...그래. 언젠가는... 언젠가는 했지만..."


모든 것이 보이는 어미 요괴였다. 인간과 너무나도 유사한 그 성격도, 살생을 피하는 그 여린 마음도, 인간의 세상에 대한 숨길 수 없는 호기심도. 그리고, 인간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가족을 만들고 살아가고 싶다는 그 마음도, 모두 볼 수 있었다.


"...정말, 인간의 핏줄을 아주 진하게도 타고났구나. 우리 딸... 후후..."


이별을 예감한 어미의 눈이, 미약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 밤--------------------------




"다들 자고있겠지?"


(부스럭...)


"...엄마, 큰언니... 작은언니..."


망설임 가득한 목소리가 조용히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하지만, 이내 어린 요괴는, 마음을 독하고 굳게 먹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조용히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미안, 나... 꼭 돌아올게...!"


(타다다다다다닷-)


그렇게, 그녀가 내는 발자국 소리마저 멀어져 들리지 않게 되었을 즈음, 또 다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여행 잘 하고 오렴, 우리 딸. ...부디, 배운 것이 있길 바란단다... 그래도, 그래도 가끔은... 얼굴이라도 비추러..."


어미의 눈가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이, 달빛을 만나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긴가... 여기... 으응... 여기같기도... 아!"


요괴 소녀는 곧바로 조용히, 한 민가에 숨어들었다.


"...신발 수를 보아하니... 남자가 더 많고... 아들이 셋... 남편 하나... 그리고 부인 하나... 응... 여긴가?"


조용히, 아주 조심스레 다가가, 호롱불에 그림자가 남지 않게 모습을 숨기고 다가가 벽에 귀를 대고 대화를 엿듣는 여우.


"...에휴우... 떡두꺼비같은 딸 하나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산신령님이, 그리고 부처님이, 그리고 삼신할머님이 점지해주신 운명인데 말이죠..."


"그러게 말이오, 부인... 후우우... 어디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기라도 하면 차라리 좋을텐데..."


"당신도 참, 그렇게 팔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에헤에... 안 될 것도 없지! 이렇게...! 호잇!"


곧장 달려나가, 문 앞에서 폴짝 폴짝 재주를 넘고는, 오리무중의 짙은 안개로 자신의 몸을 감싼 뒤, 모습을 바꾸고 다시 안개를 흩어버리는 요괴.


'으흠흠... 이 정도면 되려나? ...어라? 목소리가 잘... 으응... 이러면 별 수 없지. 인간 아기들이 하는 짓을 해볼까?'


"응애~!"




한편, 방 안에서 잠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던 둘. 그들의 귓가에...


(응애~!)


"...아기 울음소리 아니오?"


"엄청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은데... 한번 나가볼게요. 여보."


"조심하시오. 부인."


(끼익...)


"...으응...?"


"응애~! 응애~!"


"...에...에구머니나! 누가 여기에 아이를!"


"...무슨 말이오 부인? ...으엉?!"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어린 아이가, 그들의 집 앞에서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일단 아이를 안아드는 둘.


"아이구... 딱한 것! 누가 이런 이쁜 아가를 버렸을꼬..."


"...관아에 물어보는 게 어떻소, 여보?"


"그래야지요. 날이 밝는 대로 우선..."


'...음... 너무 어려져버렸나...'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잠에 빠지는 여우 요괴, 그녀의 인간으로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 말이 모두 사실이렸다?"


"예, 사또 나리, 모두 사실입니다."


"...어허... 하늘이 두 쪽이 나려고 하나, 땅이 갈라지려고 하나? 이런 재액이라니, 이런 변고라니! 어떻게 부모 된 자가 자식을 이렇게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단 말인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한 사또는, 이 아이의 처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전들은 들으라,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나라의 법도에 의거하여, 가족도, 친족도 없는 무연고자는 공노비가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옵니다만..."


"저 어린 것을... 노비라고 칭하기에는..."


"법도 이전에, 하늘의 도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이 그대 생각이라. 어허... 참.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엑,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되게 생겼잖아! 에잇... 몰라! 어디... 아! 저기 똑똑한 영감님이 있었지!'


일단 큰 일이라서 나와보긴 나왔지만, 나이가 들고 잠만 늘어 하루종일 꾸벅거리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지혜로운 노인, 현자라고 불리는 남자. 그를 알아본 요괴 소녀는, 그의 마음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사또 나으리, 이 쇤네가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무엇입니까, 영감님?"


"저 아이는 조금 특이한 것 같습니다. 야밤에, 아무 이유 없이 저 부부의 집에 놓인 것도 모자라, 호환은 커녕 이리나 승냥이한테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꼭 하늘이 점지해준 것 같구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좋다! 판결을 내리겠소, 부부 내외는 들으시오, 이 아이를... 부디, 잘 키워주시길 바라겠소."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또 나리!"


"...감사합니다 나리! ...여보, 이름부터 정합시다."


어린 여자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그들. 그렇게, 여우 요괴는 자연스럽게 인간들 사이에 섞여드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또 십년 하고도 오년이 더 지났다. 강산도 십년이면 바뀐다고, 마을을 다스리는 사또도 바뀌고, 마을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소녀의 모습을 한 요괴 또한 서서히 성숙해지기 시작했다. 다만...


"백란아! 얘! 어이구... 어딜 그렇게 쏘다니니!"


"헤... 죄송해요, 어머님, 바깥 공기가 너무 좋아서요."


"그래도... 그렇게 너무 바깥을 활보하고 다니면 별로 좋지 않게 보일 것 같구나. 옷감은 다 꿰메두었니?"


"그럼요! 여기도 꼬맸고... 여기도 좀 헤져서 다 제가 꼬맸어요!"


"우리 딸, 잘했구나. 정말 잘했어! 엄마보다 훨씬 잘하네?"


마치 강아지 쓰다듬듯 백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요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 그 격한 손짓이, 결코 싫지 않았던 그녀였다.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다녀왔니? 오늘도 고생 많았단다."


"나는 인사 없나? 조금 섭한데? 하하!"


"여보!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자, 숟가락 드셔야죠. 그리고 너희도 배고프지? 자, 어서 앉으렴."


모든 하루 일과가 끝나고, 꿀맛같은 휴식의 시간이 찾아왔다. 제법 부유한 집안임에도 청빈, 검소한 생활과 나눔과 베품을 중요시하는 집이었던지라, 오늘도 거의 매번 비슷한 곡류와 감자 등으로만 이루어진 요리에, 몇 가지 나물 반찬이 끝이었다. 하지만, 힘든 노동 끝의 식사인지라, 모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물론, 애초에 그런 음식들을 별미로 치는 백란에게는 이 식단이 진수성찬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풋... 백란이 너, 우리보다 배는 잘 먹는데... 우리보다 힘도 막 엄청 강한 거 아냐?"


"형, 너무 그러지 마. 백란이도 여자잖아. 상처받을라."


"난 좋게 생각해. 멋지고 강하잖아!"


"허허! 우리 막내가 백란이를 참 아끼는구나!"


"네? 으...에헤헤..."


'푸훗... 인간 남자애들도 귀여운걸...? 아우응... 확 깨물어버리고 싶어! 후훗...'


백란은 아무렇지 않은 듯 피식 웃었다. 마치 사람을 홀릴 것만 같은 아리따운 미소였다.




이런 나날이 영원히 반복될 줄 알았지만...


(꾸룩... 꾸르구루구루루구루루르르르르륵...!)


"...아하으... 배야..."


백란에게, 첫 번째 시련이 닥쳤다.


(꾸르르르르르르르르륽...!)


겉 모습은 바꿨다고 할 지라도, 속까지 모두 바꿀 순 없는 법. 요괴 시절에, 부족한 요력을 채울 수 있도록 장내의 가스를 증폭시켜주는 그 고마운 미생물들이, 지금의 그녀에게는 힘겨운 시련을 내리는 나쁜 미생물이 된 것이다.


"죽겠네... 으으..."


요력을 순환할 수 있는 신체 구조를 만들기에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여우가 아닌, 반은 인간, 반은 여우인 요괴의 모습이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즉, 요력을 순환시킬 수단이 없는 그녀의 몸은, 가스를 받아들일 힘이 없어, 그 가스를 밖으로 배출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조용히, 요력을 끌어모으고 집중하여 요술을 부리기 시작하는 백란. 곧 그녀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걸으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몸이 되었다.


"...밤 외출이나 하고 와야지..."


(끼익...)


조용히 방을 나서는 백란이었다.




(타박... 타박...)


마을 흙길을 따라 걷는 백란. 잠시 긴장을 풀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배가 미친듯이 부글거리며 끓어올라, 그녀에게 '당장 가스를 내보내라' 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다들 자고 있길 바래야지...! 으응...!"


뿌프프프프프프프프프프프프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뿌부부부부부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룹!


홍수에 제방이 터진 것 모양새마냥, 한번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가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추잡스러운 소리와 함께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하우으... 부... 부끄러워... 안 그러다가 왜 이러는거냐구..."


곰곰이 생각해보던 백란. 곧 그녀는, 최근 사이 자신의 식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을 떠올렸다. 이전에는 먹어도 많이 먹지 않아서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급격한 성장을 한 탓일까, 그녀의 몸은 계속해서 대량의 음식들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꾸르르르르르르륵... 꾸과르르르르르르르라라라라락!)


"...끄응... 아직도...? 많이 뀌었잖아... 1분이나 뀌었는데...!"


솥이 부글거리는 것 마냥 미친듯이 끓어오르는 배를 매만지며, 그 예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복통으로 인한 불쾌감을 표출하는 백란. 이미 이 자리에서는 충분히 내보낼만큼 내보냈기에, 들키지 않기 위해 자리를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타박... 타박...)


"...후우... 읏..."


부봐롸라락! 뽜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뿟뿌푸프브바라라라라라락!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몇 번이나 내보냈을까, 밤이 아주 깊도록...


"...빨리... 빨리 걸어야 해..."


(꾸르르르르르륵...)


뿌부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뿌뤄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럭! 뿌푸붜풔붜더더더덕! 뿌부브프프프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마을 이곳 저곳, 발이 닿지 않았던 곳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그리고 멀리...


(꾸룩... 꾸구구구구루루구루루루루루루루루루룩-!)


"아흥... 또 배가...! 흐으응...!"


부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룹! 뿌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붓! 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뿍!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녀의 우윳빛 엉덩이 사이, 한없이 추잡스러운 방귀구멍은 제 자신만큼이나 한없이 역하고 지저분하고 더럽고 요한스럽고 추잡한 파열음을 힘차게 내지르며, 마을 곳곳을 자신의 악취로 물들였다.


"...으응...!"


뿌붜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럵! 뿌푸푸푸부부부부부부부부뷔피피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릭! 뿍뿌앙! 뿌프프스스스스스스스스슷-...


"...하아으... 이제 좀 살겠네! 어서 돌아가야지...!"


백란의 요란스러운 방귀 산책은, 호랑이가 가장 흉악해진다는 인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


"...소식들 들었느냐?"


"예? 무슨 소식인가요, 아버지?"


"글쎄... 깊은 밤에 아녀자로 보이는 괴이한 무언가가 마을 방방곡곡을 쏘다녔다고 하더구나. 워낙 재빨라서 눈으로 쫓기도 힘들었다고도 했고, 그리고... 그 이동한 자취를 따라서 아주 고약한 악취가 났다고 하더구나."


"...콜록!"


"응? 백란아, 괜찮니?"


"괘...괜찮아요. 저... 사래가 들려서 그만..."


"...조심하거라. 아무튼, 뭔가 요괴같은 거 아니겠느냐? 괜히 그런 소문에 홀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소문이 진실인지도 모르지 않느냐. 그래도 조심하거라."


"아버지도 참, 저희야 항상 아버지와 함께 일하지 않습니까."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허허! 자, 마저 수저 들어라."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얼굴을 붉히고 애먼 밥그릇만 뒤적거리는 백란이었다.


'으... 느낌상 이틀에서 사흘에 한번은 이 난리통을 피워야 할 텐데...'


마음 속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백란. 하지만, 그 고민이 해결되기도 전에, 또 다른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다.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백란은 여느 때처럼 헤진 옷과 천을 꿰매던 중,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아얏!"


"얘! 괜찮니?"


"...어머니? 아... 손이 조금 찔려서..."


"요즘 자주 다치는구나... 에휴... 괜찮니? 의원에라두..."


"아... 아녜요! 피곤해서... 피곤해서 그러니, 조그음... 조금 자면..."


'...허해... 뭔가 부족하고... 힘이 없어... 설마...?'


"에휴... 미안하구나. 이렇게나 뭘 만드는 족족 뺏어가버리니 너희들을 배불리 먹여주지도 못하고..."


(끼익...)


"저 먼저 왔어요, 어머니."


"막내아들 왔구나. 그래. 오늘은 좀 그럭저럭 잘 넘어갔니?"


"...아니요. 에휴우... ...내가 다 미안하네. 장차 형님들이랑 같이 가문을 이끌어나가야 할 우리가 이런 모습이나 보이고..."


"...그게 왜 어머님이랑 오빠 잘못인데요, 그리 생각 마셔요. 전... 괜찮... 후우..."


가조들을 안심시키는 백란. 하지만, 그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식사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이 부족한 느낌, 설명할 수 없는 허기, 분명했다. 이것은...


'...고기... 고기가 먹고 싶어...'


바로 참을 수 없는 육식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전에 고을을 다스리던 사또가 너무 바른 말을 한 것일까, 어느 순간 파직되어버려 뜻을 함께하던 관아의 관리들과 함께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 자리를 채운 새로운 사또는 고을의 백성들을 수탈하여 제 배만 불리기에 바빴다.


그 탓일까, 매주 열리던 장도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게 되자 서서히 열리지 않게 되더니, 이내 몇 주 전부터는 완전히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게 되어, 제대로 고기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배고파... 아... 후우... 고기... 육즙... 닭... 돼지... 소... 노루... 고라니... 꿩...! 흐으으으...!'


결국, 그날 저녁, 백란은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달조차 구름 뒤로 숨어버린, 땅거미가 자욱하게 깔린 칠흑 같은 어둠 속, 아주 미약하기 그지없는 달빛이 만든 흐릿한 인영이, 어둠 사이를 소리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고기... 고기...! 관아... 관아에는 분명 고기가 있을 거야... 저번에... 저번에 분명... 사람들한테서 막 뺏어갔으니...!"


(타닥-!)


관아의 지붕에 몰래 내려앉은 백란. 관아 한 구석에서 잠을 청하는 소, 돼지, 닭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생고기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킁킁... 냄새... 음식 냄새...! 우우... 츄읍... 더는 못 참겠어...!"


동물적인 본능으로,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의 근원지를 단번에 찾아낸 백란. 몇 명의 군졸들만이 내일 아침상에 오를 반찬들을 지키고 있는 식량창고였다.


"...으흐응... 배고파... 하지만 도둑질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백란. 하지만, 곧 그녀의 눈에, 수많은 백성들로부터 강제로 몰수한 수많은 재물들이 보였다. 놋그릇, 멧돌, 반지와 장신구... 돈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싹 훔쳐간 것을 본 백란. 그녀의 마음 속에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끓어오르는 감정은...


"...저건...?!"


작은 옥 가락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로 시집을 가시던 그 날, 약소하지만 나름대로의 정성을 담아 직접 만들어 온, 투박하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던, 서툰 실력이지만 한땀 한땀, 정성을 쏟아부어 만든 어머니만을 위한 한 쌍의 옥 가락지. 최근 자신을 길러준 인간 부모님들의 시름이 깊어진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백란의 끓어오르는 감정은, 이것을 계기로 폭발하고 말았다.


"...탐욕스러운 놈들! 매운 맛을 보여줘야겠는걸!"


(꼬르르르르르르륵...)


"...고기로 배에 기름칠도 좀 하고. 호잇!"


조용히 요술을 부린 백란은 문자 그대로, 바람처럼 내달려 순식간에 식량 창고의 앞에 도달했다. 앞을 지키는 군졸은 겨우 셋. 백란은, 순식간에 그들 사이로 침투한 뒤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끌었다.


"...엣헴!"


"...뭐냐?! 왠 놈ㅇ...!"


(덥석-! 꽈아아악-!)


날렵하게 폴짝 뛰어올라 한 군졸의 안면을 양 다리로 꽉 감싸안고, 코 깊숙한 곳까지 냄새가 잘 닿도록 엉덩이를 최대한 밀착하는 백란. 곧이어, 한없이 기분이 언짢은 그녀의 뱃속에서 미친듯이 끓어오르던 '악취의 근원' 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으븝?!"


"...뭐...뭐냐?! 뭔 일ㅇ...!"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뿌붜붜붜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럭-!


"...우웁...! 꾸웨에엑!"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취에, 정신이 아찔해진 군졸.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악취에 물들어버린 코를 감싸쥐고, 바닥을 이리저리 뒹구는 것 밖에 없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ㅇ..."


(타닷- 쉬익-!)


"흐응...!"


(퍼억-! 물컹...)


"...으읍?! 크...쿨럭!"


"한숨 자고 일어나라구!"


뿌붑! 뿌부부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룩!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쿨럭...! 끄...끄아악...! 냄...우우욱...! 웨엑!"


"그리고 너도!"


"자...잠ㄲ..."


뿌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푸푸푸풋! 뿌브르르르르르르르르르드드드드드드드드다다다닥!


독극물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 것인지, 둘의 생존 본능이 이 모든 것을 당장 뱉어내라고 강요하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이 쏙 빠지도록 독한 냄새를 직빵으로, 단 하나의 거름망도 없이 받아들여버린 군졸들은, 요괴의 너무나도 강하고 진한 악취를 감당하지 못하고, 온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다 그대로 기절해버리기 시작했다.


"후후... 방해꾼들은 이걸로 끝이고... 어디..."


(끼익...)


"...킁... 우와...!"


얼추 열댓명은 배불리 먹고도 남을 것 같은 분량의 음식들. 고기, 나물, 산적, 계란 요리, 시원달콤한 과일들까지, 그 옆에서 자리를 지키던 이들도, 밖에서 스멀스멀 흘러들어온 방귀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상태였다.


"...잘 먹겠습니다! 헤헷!"


그리고, 본능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한 백란은 순식간에 상 앞으로 달려가 음식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끼익...)


"아니, 방금 무슨 소리 안 났어?"


"...쿨...응?! 어... 글쎄다. 소리가 날 만한 곳이 있나?"


"여기서 안 보이는 곳은 딱 하나 뿐인걸."


"식량창고? 에이... 뭐 보물창고도 아니고 그런 데를 털어가려고 하겠냐."


"그렇지 역시? 아, 식량창고 옆에 이번에 징수해온 특별 세금이 있다고 하던데."


"야, 아무도 안 듣고 있잖아. 우리끼리는 그냥 대놓고 뜯어온거라고 하자고."


"푸핫! 그런가? 아무튼, 거기 뭐가... 킁... 우욱... 야, 어디 뒷간 무너졌냐? 뭔 냄새가 갑자기..."


"...어후... 야, 어디 뭐 상한거 아냐? ...설마 음식창고가...?!"


"침입자가 거기로 간 모양인데? 혹시 모르니 어서 가보자!"


퍼져나온 지독한 악취를 맡고, 코를 한 손으로 꽉 눌러 싸매고 식량창고 쪽으로 가는 군졸 둘. 곧 그 둘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쿨럭... 으... 눈도 제대로 못 뜨겠... 누구냐!"


"(우적... 우적우적... 꿀꺽...) ...응? 후엥!"


"...여자? 잠깐... 저 귀... 꼬리...! 매구다! 요괴다! 사람 홀려 죽이는 여우 괴물이다!"


"...(꿀꺽...!) 엣?! 나 그런 나쁜 요괴 아니거든! 흥! 없이 사는 백성들 벼룩의 간까지 빼먹는 니들이 나쁜놈들이지!"


"...욱... 내... 냄새! 으극...! 이게 무슨...!"


(쿠당탕-!)


"웬 소란이냐!"


"사또 나리! 꼬리 아홉 달린 매구가 나타났습니다!"


"뭣이라!"


"...난 꼬리 여덟갠데. ...근데 이거 맛있다! (우적... 오물오물...)"


태연자약하게 온갖 종류의 음식을 씹고 뜯고 삼키는 백란. 그 모습에 약이 바짝 오른 사또와 군졸들은, 화가 나서 날뛰며 금방이라도 백란을 향해 달려들 기세로 소리를 쳐댔다.


"뭣들 하느냐! 저 역겨운 불여우년을 당장 끌어내 죽여라!"


"으응... 성질도 더럽고 실력도 부족하네. 그러니까 매관매직으로 사또나 하고 있는거지."


"...ㅁ...뭬야?!"


"아후웅... 잘 먹었다. (꺼으으으으윽...!) 오홋! 미안! 조금은 남겨주고 싶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서 다 먹게 되더라고?"


그 말마따나, 텅텅 비어버린 그릇들을 보며, 더욱 화를 내는 사또. 하지만, 백란은 여전히 알 바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용트름까지 하며 일어났다.


"이제 여긴 볼 일 없으니까... 나는 이만 가볼게용?"


(타닷-! 탓!)


순식간에 허공을 날아 사또와 군졸들을 지나쳐 땅에 발을 딛은 백란. 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제대로 눈조차 뜨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백란은 소리 높여 깔깔 웃었다. 어둡고 음산한 밤에, 꼭 여우 목소리같은 여인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그들의 마음 속에 제법 깊은 공포를 심어놓았다.


"아하하하하! 웃겨 죽겠네, 이래서야 어디 사또 노릇이나 하겠어?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으니까, 밥값 정도는 주고 갈게! 후우..."


하루 종일 모아두었던 요력을 아랫배에 집중하여, 가스의 양을 부풀려주는 미생물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백란. 이내, 천둥소리를 능가하는 커다란 복명이 울려퍼졌다.


(꾸르르르릉... 꾸륵... 꽈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푸훗... 잘 먹었습니다!"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뿌우우우우우우우우웅! 뿌웅뿡! 뿌푸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프프프프프프프프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봐라라라라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앍!


문이 들썩이고, 창호지가 찢어지고, 횃불이 넘어지고, 건물이 흔들리고, 아름드리 나무의 나뭇잎이 모조리 떨어져버리고, 사람마저 날아가버리는 어이없는 광경. 그 미친 풍압의 방귀가, 뒷간 변소의 똥물을 수십 바가지를 모아 나무 두레박에 꽉 눌러담은 뒤, 한 방에 그것을 얼굴에 뿌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정신이 나간 악취와 함께 거칠게 휘몰아치며, 관아를 완전히 쑥밭으로 만들어놓았다.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토사물을 쏟고,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군졸들과 바닥을 나뒹굴며 괴로워하는 사또를 보며, 일부러 눈을 마주치고는 엉덩이를 씰룩거리고는 혓바닥까지 내밀어 야무지게 놀려주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백란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오늘도 새로운 날이 밝았구나. 자, 일하러 가자꾸나."


"아...아버지! 잠시만요!"


아들들과 함께 대장간으로 일을 하러 가려는 아비를 불러세우는 백란.


"응? 왜 그러느냐?"


"저어... 이것을 찾았어요..."


"...으응?! 이건...!"


놀랍게도, 백란의 손에 들린 것은 성질 나쁜 군졸에게 잘못 걸려 힘없이 뺏겨버린 작은 옥 가락지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든 그녀의 아버지에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어디서... 어디서 찾았느냐...?"


"어제... 응... 관아에서 엄청 큰 소리가 나길래, 한번... 몰래 나가봤다가, 밖에 튕겨나오기라도 했는지 길 위에서 반짝이고 있던 것을 주워왔어요. 아버지."


"...고맙...구나... 내 딸아... 고마워..."


"아버지, 일 안... 우왓! 이건...!"


"...헤헤..."


"이야아...! 대단해! 백란이가 우리 형제 셋보다 나은걸? 하하! 정말... 너의 오빠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워."


아버지를 찾아 들어온 막내아들은, 백란이 찾은 소중한 보물을 보고, 깜짝 놀라는 동시에 매우 기뻐하며 그녀를 꼬옥 끌어안았다.


"...!"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여우 요괴로 살면서도, 인간으로 살아가면서도,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 아찔하고 기묘한 기분. 마치 강아지풀로 온 몸을 간지럽히는 이 오묘한 느낌, 달콤한 꿀을 콕 찍어 맛보는 것 같은 즐거움... 머리가 화르륵 타 버릴 것만 같았던 그녀는, 막내 아들이 자신을 놓아줄 때 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하하... 숨 쉬기 힘들었지? ...괜찮아?"


"...아? 아! 괜찮아요. 오빠. 저... 나중에 괜찮으시면, 또 안아주세요... 너무 따뜻해서..."


"응? 그...거야 얼마든지! ...아버지, 형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서 가볼까요?"


"그러자꾸나. 자. 앞장서거라."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무어라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백란. 그녀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깡-! 깡-!)


"너희도 손에 굳은살이 제법 박혔구나."


"정말인가요?"


"그럼. 나중에 내가 눈을 감아도 너희 덕에 편안하게 감겠구나."


"...에휴, 이러면 뭐합니까? 또 그새ㄲ..."


"아들아, 말을 삼가거라! 누가 들을라!"


"...죄송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만..."


"...나도 너무 분통하고 애석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느냐..."


일을 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망치질을 잠시 쉬는 아버지. 그의 눈길은, 풀무질까지 마치고 어엿한 도구로써의 소임을 다할 준비가 된 농기구들을 거쳐, 다시 철을 녹이는 용광로로 향했다.


"...본래 이런 도구들을 만드는 것이 우리 일이지만..."


"...이제 기억도 잘 안 나네요. 저런 도구보다도, 한낱 사... 아니, 누군가에게 가져다 바칠 장신구 따위의 공물을 만드는 데 대부분의 철을 써야 한다는 것이..."


"이런 낭비라니, 저 정도 장신구면 몇 년치 농기구 정도는 아주 산더미처럼 만들고도 남겠다!"


"돈으로 산 벼슬이니,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또 돈을... 에휴. 마을이 어떻게 되려는지..."


저마다 한숨을 내쉬며, 불평과 푸념, 그리고 한탄을 늘어놓는 세 아들들. 누군가 볼까 말려야 하는 아버지였지만, 그 또한 이제 말릴 힘도 남지 않은 듯 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쩐지... 마을 분위기가 다들 좋지 않더니...'


그리고, 대장간 뒤 우거진 수풀 사이에 숨어, 아버지와 아들들이, 특히 막내아들을 몰래 바라보던 백란은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쉴 뻔 했다.


"...백란아. 나와서 봐도 된다. 거기 있다가 벌레 물릴라."


"...으에에?!"


...숨었다고 생각한 것은 백란 그녀뿐이었지만.


"어... 어떻게..."


"숨으려면 좀 더 가만히 있어야지. 수풀이 계속 부스럭거리잖아."


"그리고 그 검은 머리카락도 잘 좀 숨겨보라고."


"치마도 붉은색이라 그런가 녹색 풀숲에서 더 잘보이네."


"...으으..."


여우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 백란은, 후다닥 달려나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여기서 정말 봐도 되나요?"


"그럼. 우리 딸인데. 우리 귀한 백란이."


"참... 너는 호기심도 많다니까. 하하!"


"으응... 조금 더울 수 있겠다. 저기 우물에서 물 떠서 마실 수 있거든? 더우면 가서 마시고 와."


첫째와 둘째가 다시 일로 복귀했다. 보는 눈이 있으니 묘하게 의식도 되고,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망치질이 더욱 정교해지고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


그리고, 막내는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온 찐 감자 하나를 건네주며 싱긋 웃어보였다.


"보는 건 괜찮은데, 안 다치게 조심해. 알았지? 쇳물은 많이 뜨거우니까."


"헤헤... 알았어요, 오빠."


그저 히죽히죽, 실없이 웃음만 나오는 행복한 백란이었다.




"...응? 아버지, 저기 군졸들 아닙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왜 여기로 오는 게지?"


그러다가 몇 시간 뒤, 검은 옷에 편곤, 도리깨 등을 든 무장한 이들이 대뜸 대장간에 들이닥쳤다. 일을 하다 말고 아버지와 아들들은 대장간을 마구 뒤집어 엎으려는 그들을 막아섰고, 백란은 눈치껏 뒤로 숨었다.


"아니, 이게 무슨 짓들입니까?"


"...여기 있었군!"


우악스럽게 아비의 손을 낚아채는 군졸들. 늙은 몸으로 저항하려는 그의 저항을 무시한 채로, 군졸들은 아비의 손가락에서 옥 가락지 하나를 뽑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한 아들들은 무어라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망연한 표정을 본 막내가 급히 달려들어 그들을 제지하려 했다.


"왜들 이러십니까!"


"저리 안 꺼지냐!"


(빠각-!)


"...윽...!"


물푸레나무로 만든 단단한 편곤에 얻어맞아 힘없이 쓰러지는 막내. 형들은 급히 막내에게 다가갔고, 그 틈을 타 군졸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원망의 눈빛을 보내는 아비를 강제로 일으켜 세워,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놔라! 노인 공경도 모르는 것들!"


"흥! 소란을 틈타 관아의 물건을 도적질이나 하는 놈들이 입만 살았구나!"


"...도적질?! 이 막되먹은 후레자식들이! 같잖은 이유까지 붙여가며 이집 저집 다 들쑤시고 재물들을 훔친 것은 네놈들 아니더냐!"


"이 늙은 놈이 못하는 말이 없구나!"


(빡-! 빠악-!)


"아버지!"


"꺼져라. 몇대 더 맞고 싶냐?"


이죽거리며 철 도리깨로 위협을 가하는 그들 앞에서, 아직 약한 아들들은 겁을 먹고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막내가 더욱 그러했다.


'...저 새끼들이...!'


백란은, 그 모습에 순간 이성을 잃고 꼬리와 귀를 드러낸 뒤, 여우구슬의 요력으로 저들을 산 채로 불살라버릴 뻔 했지만, 요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더 큰 일이 생길 것 같았기에,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았음에도, 꾹 참아냈다.


"이 늙은이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기 위해선..."


가락지를 빼앗은 군졸은, 그 옥가락지를 보여주며 엄포를 놓았다.


"...나머지 하나도 가져와야 할 것이다. 서둘러라. 사또 나리의 인내심은 그리 좋지 않으니."


(저벅... 저벅... 저벅...)


"...크...흐윽...!"


그들이 돌아가자, 피를 흘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는 막내. 그런 그의 모습을 본 그의 형들의 마음도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백란이가 찾아다 준 가락지를..."


"...머리가... 후우... 윽... 어서 어머니께..."


"...어머니..."


인간이 어디까지 추잡해질 수 있는가를 깨달은 백란은, 처음으로 그 사또와 그 끄나풀들에게 '혐오' 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백란아, 이런 모습을 보여서 정말 미안하구나. ...돌아가자꾸나. 한동안... 대장간 일은 못하겠구나. 후우..."


"...아니에요. 어서... 어머니께 알리고 아버지를 구해요. 오빠들."


"이게 무슨 변고인지..."


힘없이 막내를 업고 돌아가는 오라비들을 보는 백란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미워지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끼익...)


"어머, 벌써들... 아...에그머니나...! 이... 이게 무슨! 막내야! 삼준아!"


피를 흘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누운 아들의 손발을 애타게 주무르며, 어쩔 줄을 몰라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간신히 진정시킨 백란과 두 아들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실은..."




-----------------------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풀썩-)


"...어머니!"


"...난 괜찮다. 너무...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래... 가락지를 달라고 했다고? ...가서 전해주거라, 그리고... 그리고..."


"...아버지는 꼭 무사히 모셔오겠습니다. 반드시..."


가락지를 손에 쥐고, 다시 문을 나서는 아들들과 백란. 첫째와 둘째가, 셋째를 말리려 했다.


"삼준아, 넌 쉬는 것이 좋지 않겠니?"


"...아버지께서 제가 맞는 모습을 보고 많이 마음을 졸이셨을겁니다. 제가 무사히 잘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말리진 않겠다만, 무리하진 말거라. 막내야."


"네. 형."


"저... 저도 갈게요! 제가... 제가 문제였으니까... 제가... 그 반지만 안 가져왔어도..."


애초에 어디서 주운 것도 아니고, 되돌려받는다는 핑계였지만 결국은 도둑질을 한 그녀였기에, 그녀의 죄책감은 그 누구보다도 높았다. 오빠들이 그녀를 말려보았지만, 요지부동인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이것 참... 알았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난 괜찮다. 너희가 괜찮은 모습을 보여야지... 그렇지? 자, 가보거라..."


(끼이익...)


한없이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을 굳게 믿기로 했다.




(저벅... 저벅... 저벅...)


"서두르자. 붙잡힌 아버지께서 어떤 고초를 겪으실 지 모르겠구나."


서둘러 걸어 관아 앞에 도착한 넷. 그 때, 갈라진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와 함께, 둔탁한 것으로 살덩이를 내려치는 것 같은 타격음이 들려왔다.


(퍼억-! 퍼억-!)


"...잠깐, 이 소리는... 설마...!"


앞을 막는 군졸들을 밀어제치고 문을 박차고 들어간 넷.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형틀에 묶인 채로 종아리 살이 다 터져 피가 철철 흐르도록 몽둥이찜질을 당한 것을 보고, 기가 차고 수족이 떨리며 눈물이 차올라 무어라 말조차 하지 못하고 그 참상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느 안전이라고 이렇게 요란스럽게 들이닥치느냐!"


"...이런 개 씨ㅂ..."


이성을 잃고 욕을 퍼부으려던 둘째의 입을 틀어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하는 첫째.


"...예, 옥 가락지를 다시... 도...돌려드릴 터이니...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 순간 깜짝 놀란 백란. 첫째 일준은 차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눌러가며 간신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고, 둘째는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욕설을 퍼부을까봐 혀를 깨물고 버티고 있었으며, 막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주먹을 쥔 손의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어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화를 참고 있었다.


"흐응... 무어라? 잘 들리지 않는다. 똑바로 말해라!"


"예...! 훔쳐간... 가락지를...! 돌려... 드리려고... 합니다...!"


"흥. 진작에 그럴 것이지. 여봐라! 저 도적놈의 아비 되는 놈을 풀어주어라!"


(덜컹- 철퍼덕-!)


"아버지!"


"이제 썩 꺼져라! 다시는 관아의 물건을 도적질하지 마라! 두 번의 자비는 없으니!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 같으니..."


"...뭐가 어째...? 사람 같지도... 않은...?!"


속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어지는 것 느낌을 받은 백란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세우고 관아로 다시 돌아가 한바탕 소란을 일으킬 기세였다. 하지만...


(꽈악...)


"...오빠...?"


"...돌아가자... 백란... 란아... 먼저... 아버지를 쉬게 해 드려야..."


온전치 못한 몸으로, 분노를 삼키느라 제대로 된 말조차 하지 못하는 막내 삼준을 보며, 백란의 분노는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결국, 그녀는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응. 오빠..."




"쿨럭! 커허윽...!"


"또 피를... 백란아, 닦을 것좀 가져다줄래?"


"응... 오빠..."


아버지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어만 갔다. 어머니도 깊은 화로 몸져누우셨고, 첫째와 둘째가 그나마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간에서 일을 했지만, 넷이서 하던 일을 둘이서 하려니, 제대로 속도도 나지 않았고, 몸의 피로도 나날이 누적되어만 갔다. 머리의 외상을 회복한 삼준도 겨우 몸을 일으켰지만, 아직 완전한 회복은 멀었기에 백란과 함께 부모님의 병수발을 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끼익...)


"...우리 왔어..."


"...형들 왔구나?"


"아버지는?"


"..."


"...후우... 어머니도 편찮으시니?"


"...응..."


"...씨발... 이 개 좆같은 쓰레기 자식..."


첫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둘째는 무릎을 꿇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발을 주물렀다. 차갑게 식어가는 발에 젊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지만, 이내 그 온기를 전해받은 수족은 그 마음이 무색하게도 다시 식어버리고 말았다.


"...아들아..."


그때였다. 아버지가 입을 열고,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마당... 가운데... 조심... 껴...서... 아아..."


"아버지... 아버지!"


"...춥구나..."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의 몸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눈동자는 총기를 잃고 흩어졌으며, 더 이상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더욱 차게 식어버린 몸은, 자식들에게 지독할 정도로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아버지...!"


"...큽...으윽...! 크흐윽...!"


"...슬퍼할... 시간이 없다... 아버지의 말대로..."


첫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삽과 곡괭이를 가져와 마당 한 가운데를 파기 시작했고, 정신을 추스른 둘째와 셋째, 백란까지 달려나와 마당을 파 내려갔다.


(터엉-!)


"...이건..."


아들 셋이 겨우 들어야 움직일 수 있는 묵직한 궤짝. 땅에서 나온 것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게 열지? 자물쇠가 있나?"


"...잠시만요, 오빠들."


(철컥... 철컥... 틱-)


"...으응?!"


"어...어떻게 했느냐?!"


"아... 그... 이전에 시장에 마실을 나갔다가 우연히 배웠지요!"


'...요술을 부려서 땄다고는 죽어도 말 못해...'


아무튼, 열린 궤짝을 들여다 본 넷. 그리고 넷은, 까무러치게 놀랐다.


"...이... 이게 다 얼마란 말이냐...!"


"...누가 보겠어! 어서 들어가서 마저 보자!"


"그래요 형. 어서!"


끙끙거리며 집 안으로 궤짝을 가져온 형제들. 그 안에는, 아버지가 직접 조각으로 새긴 철판 하나가 들어있었고, 수많은 재화가 들어있었다.


"철판에..."


[아껴 써라. 십 년은 갈 거다. 여보, 미안하오. 아들들아, 부디 너희의 뜻대로 잘 살아가거라. 백란아, 부디 좋은 사람을 만나거라.]


"...아버지..."


철판을 품에 부여안고, 조용히 눈물을 삼키는 첫째. 아버지의 뜻을 깊이 새기겠노라고 다짐하는 그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의 깊은 밤. 세 아들들은 백란과 어머니와 함께 모여 한 자리에 앉아있었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세 아들들이 입을 열었다.


"우린 잠시 집을 떠나려고 한다."


"...네?!"


"생각해봐라. 날로 갈수록 수탈은 심해지고, 마땅히 돈 들어오는 일도 없는 마당에, 한 명이라도 먹는 입을 줄여야 하지 않겠어?"


"...그...그렇지만... 오빠들..."


"걱정 마. 나나, 이준이나, 삼준이나. 다들 배워먹은 기술도 있고 하니까, 어디서 굶은 일은 없을거야."


"그리고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닌걸. 10년 뒤에... 10년 뒤에, 돌아오기로 서로 약속했으니까."


"이준이 말이 맞아. ...그래. 슬프지만, 잠깐 이별인거지."


"그래. ...형은 뭐 할 생각이야?"


"...글쎄, 힘 쓰는 일이나... 그래, 바다 건너로 가서 용병 노릇이나 해볼까. 넌 어떠냐, 이준아?"


"난 이제 좀... 자유롭게 살고 싶어. 아버지가 남겼던 말처럼. 뭐, 놀기만 하는 삶은 또 아니고."


"막내야. 너는?"


"...전 아직 조금 더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첫째와 둘째 아들이 일어섰다. 이미 그들은 짐을 미리 다 챙겨둔 상황이었다.


"...군졸 녀석들이 우릴 보면 뭐라 할 지 모르니, 늦은 밤에 출발하려고. ...백란아."


"...오빠..."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


"...아들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한스러울 따름이지만... 어쩔 수 없는걸."


"...먼저 가세요. 형님들. ...저도 곧 떠날게요."


"...그래. 막내야. 연이 닿는다면 10년이 지나기 전에 어디선가 다시 보겠지. 그렇지?"


"그럼요. ...건강하세요. 형님들."


"그래. 그리고... 이 못난 오라비들을 둔 너에게 정말 미안하구나. 백란아."


"흐으...윽... 못났다 못났다 소리... 하지 마라고요...! 히끄윽...!"


"미안하구나. ...이제 진짜 이별이네. 백란아. 건강해라."


"...모두 잘 될 거야. ...안녕."


(끼익...)


떠나가는 이들을 보며, 소녀는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나도 곧 가야겠네. 백란아."


"...나 잊으면 안돼... 알았지...?"


"...당연하지, 사랑하는 우리 동생, 백란아. 그럼..."


(부스럭...)


"...잘 지내."


(끼이익... 쿵-)


"...우으... 흐으윽...! 흐으아아아아아앙!"


새벽이 오기 전, 마지막 오라비까지 떠나보낸 백란은 결국 슬픔을 참지 못하고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훌쩍... 우으... 흐으으윽..."


밤공기를 마시며, 자신도 모르게 여우 귀와 꼬리를 드러내고 서글프게 울던 백란은, 문득 모두가 떠나버린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텅 비어버린 방, 먼지만 쌓이는 대장간의 도구들, 주인 잃고 나뒹구는 농기구들, 그리고... 막내 오빠?


"...백란아?"


"...오...빠...? 왜...?"


"...짚신을 조금 더 가져가려고 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던, 막내 삼준. 반가운 마음도 잠시, 그녀는 지금 자신이 귀와 꼬리, 이빨과 발톱 등 영락없는 여우 요괴의 모양새로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놀라 도망치려 했다.


"잠깐만!"


(덥석-!)


"...으읏!"


하지만, 막내의 움직임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 빨랐다.


"...백란아."


"...미안... 미안해..."


"...왜 사과를 해."


"...사람도 아닌 주제에... 감히... 내가..."


"...그런 말 하지 마."


(포옥...)


백란을 품에 안고,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막내. 당황해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그녀였으나, 이내 누구보다도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몸을 맡기고 안겨들었다.


"...여우면 뭐 어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했던, 그리고 함께 할 추억이 없어지기라도 할 것 같아?"


"...우...우으으으... 오빠아... 훌쩍..."


"누가 뭐래도, 넌... 내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여동생이니까."


백란은 막내를 끌어안고 펑펑 울어댔다. 안도감이 찾아옴과 동시에, 반려로 삼고 싶은 이 소년과 10년이나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절로 차오르는 그녀였다.




"...조금 진정했어?"


"...응... 오빠, 어디로... 떠나는거야?"


"...한양으로 가려고. 과거 시험에 급제해서,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도록 해 줄 거니까."


"...그럼 오빠, 이걸... 이걸 받아줘."


품 속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는 백란. 오묘한 기운을 풍기는 하늘색의 작은 구슬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건..."


"...여우구슬. 들어봤어?"


"...허... 정말이야?"


"...이걸, 입 안에 넣어줘."


"...응. 그 다음엔?"


"...삼키고, 하늘을 올려다 봐."


"...(꿀꺽...) 그리고...! 으극...! 으악!"


두통과 함께,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고 순간 움찔하며 머리를 감싸쥐는 막내 삼준. 머릿속에, 이 세상 만물의 모든 이치, 천기, 법도와 규율이 순식간에 흘러들어왔다. 타고난 두뇌의 소유자였던 막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모든 지식을 체득하는 데 성공했고, 순식간에, 눈 깜짝 할 사이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학자가 될 머리를 갖게 되었다.


"...비로소 눈이 뜨인 기분이구나."


"...오빠... 꼭... 꼭 잊지 말고 돌아와야 해...?"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럼... 막내야. 잘 있어야 해. 알았지?"


"...잠깐, 부탁이... 있어."


"...부탁이라니?"


"...입술... 잠깐 내밀어볼래?"


"...으...으응? 응... 이렇게?"


"...(츄웃...) ...이제 됐어. ...잘 가, 오빠."


"...어흠... 그... 그러니까... 후우... 잘 있어. 내 동생. 꼭, 돌아올게. 어머니를 잘 부탁해."


어둠을 틈타 산등성이를 거쳐 빠르게 이동하는 막내, 삼준. 얼핏 뒤를 돌아본 그의 눈에 비춰진 백란은,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다시는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짓게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소년은 형들이 했던 것 처럼 자신만의 길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10년 뒤------------------------------------




"...신을 부르셨습니까, 전하."


"잘 와주었네."


10년 뒤, 막내는 어느덧 조정에서 임금에게 가장 신뢰받는 신하가 되어 있었다. 학문적 성취는 수십년간 나라의 녹을 먹어온 연로한 신하들보다도 몇 배는 더 월등히 높았으며, 문무겸비라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전략 및 전술의 수립, 냉병기들과 활을 다루는 실력 또한 이루 말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대에게 긴밀히 부탁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 불렀네."


"...소신, 이 한 목숨을 바쳐서라도 완수하겠나이다."


"...과인은 그 대답을 기다렸네. ...이것을 저 자에게 전해주어라."


환관으로부터 상자를 건네 받은 삼준. 문득 자신에게 상자를 건네는 환관의 표정은, '자네 고생 꽤나 하겠군, 무운을 비네.' 라고 말하는 듯 했기에, 그는 상자를 받아들고 고개를 들어 임금을 바라보았다.


"...그 상자를 숭례문 밖으로 나가서 열어보아라."


"그리 하겠나이다. 전하."


인사를 마치고 물러나는 삼준. 그 모습을 본 환관들은, 저마다 몰래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그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곳으로 가게 된 모양이지?"


"아이구... 젊은 친구가 고생이 많구먼. 사헌부도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밝혀내는 것에 실패했다며?"


"너무 걱정들 하진 말자고. 우리보다 검도, 붓도 더 잘 다루는 하늘이 낳은 인재가 아닌가?"


"맞다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을 다 제치고 '어사' 가 된 것이 아닌가?"


"그건 그렇지.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저벅... 저벅... 저벅...)


"이쯤이면 되려나? 누구 오는 사람도 없고... 잠깐, 설마..."


(덜컥...)


"...암행어사라..."


마패를 비롯한 간략한 구성품들을 본 삼준은 묵묵히 다시 상자를 닫고, 임금이 직접 써 내린 지령서를 보았다.


"...여긴... 음...?"


봉서를 찬찬히 읽어본 삼준은 피식,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올해로 딱 10년째로구나. 이런 식의 귀향이라니."


곡창지대를 가득 메운 벼를 보면 마음까지 풍성해지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검소하게 대장간에서 함께 살아갔던 추억이 잠든 그 마을을 향해, 그는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준비를 했다.


"...근처 역참에 잠시 들러야겠군. 수행원도 동행해야겠어. 그리고 이건... 백미와 서리태인가. ...백란이가 참 좋아했는데. 이건 민어와 석어를 말린 어포인가. 누구 코에 붙이라고... 음, 이럴 때가 아니지. 서둘러야겠군."


삼준은 서둘러 역참으로 향했다. 10년 전, 백란이 삼키라고 전해준 여우구슬의 마력이 보통 강한 것이 아닌지, 그에게 항상 힘을 불어넣어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었기에, 신속히 도착할 수 있었다.




(타닷...)


"으잉? 언제 오셨습니까요?"


"방금 왔다네."


눈을 왕방울처럼 뜨고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역참에게 마패를 보여주는 삼준.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은 삼마패 하나, 그리고 일마패 둘. 그가 한창 말을 고르고, 함께 임무를 수행할 역졸 하나를 구하려던 차에, 조금 비루한 행색의 양반처럼 보이는 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이닥쳤다.


"허억... 허억... 하아... 나리...! 아무리 제가 보잘것없는 서리라고 하지만 두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응? 아... 그랬지. 미안하네. 조금 생각이 많아져서 천천히 걷다 보니 그만..."


"...이게 천천히 걸으셨다고요? 나리, 제가 이래 뵈도 발재간은 좀 빠릅니다만, 제가 전속력으로 달려도 걷는 나리를 따라잡을 수 없었는뎁쇼?"


"설명하자면 좀 길다네. 자, 긴 여정이 될 테니 마패 하나 받게."


"이건..."


"일마패라네. 자네가 타고다닐 말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걸세. 그리고..."


역졸을 하나 구해, 그에게도 마패를 건네는 삼준.


"...함께 잘 해 보지. 그러고보니 자네들 이름이 뭔가?"


"저는... 후우... 하아... 김성익이라고 합니다... 홍문관에서 서리로 일하고 있습죠..."


"전 여기 역졸인 이성이라고 하옵니다."


"좋네. 자, 말도 빌렸으니 더 서둘러야겠지, 어서 가세나. 이럇!"


"...아이고 나리! 또 혼자 가신다! ...말 타 봤수?"


"...길러는 봤습니다만..."


"아이구, 고생길이구만. 아무튼 따라갑시다! 이랴!"


수행원들과 함께 남쪽 땅의 고향으로 향하는 삼준이었다.




그렇게, 약 2주일 뒤.


"...거의 다 왔군. 조금만 더 힘내게."


"...나리, 아무리 그래도 말이 답답하다고 그 짐들을 직접 들고..."


"말보다 빨랐으니 괜찮지 않나?"


"...어사님, 혹시 호랑이가 둔갑하신 거 아니유?"


"예끼! 이 사람아, 어디 그게 할 말인가?"


"둔갑이라. 하하! 재밌네. 그래보였나?"


"아니... 그도 그럴 것이 저번에 커다란 호랑이를 만나가지고 다 죽었구나 하고 벌벌 떨고 있을때 품 속에서 그... 작대기 무어라 했지?"


"유척. 맞나?"


"맞는거같은디? 암튼 유척 그거 품 속에서 꺼내셔가지구 호랑이 머리를 박살을 내놓으시던만..."


실제로, 삼준이 품 속에서 꺼낸 유척은, 대충 7치 (20cm 정도) 의 길이를 가진, 환곡을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고을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자' 였다. 헌데, 그런 쇠막대기같은 자를 가지고 대뜸 자신들을 노려보는 범에게 달려들어 아주 머리부터 시작해서 온 몸을 작살을 내버린데다가, 죽은 호랑이를 여우처럼 재빨리 토막내서 고기는 함께 나눠먹고, 호랑이 가죽은 벗겨서 팔아치우고 한동안 편안한 숙박을 할 수 있는 수준의 돈까지 벌었으니 말이다.


"자네들도 할 수 있다네! 오늘 호랑이를 만나면 해보겠나?"


힘차게 도리질을 하는 수행원들을 보며, 껄껄 웃는 삼준. 그렇게, 전력으로 달리는 말과 비슷한 수준의 빠르기로 내달려 (이 시점에서 이미 수행원들은 그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역참에 도달한 세 사람.


"...여기서부터는 말을 반납하고 걷는 걸로 하도록 하지. 이제..."


"...본격적으로 정보를 캘 때가 온 것입니까, 나리?"


"...그렇지."


"...꿀꺽..."


"일단은 옆 마을부터 가보지. 가깝기도 하고, 오늘은 거기서 하루를 묵도록 한다."


"예. 나리."




(터벅... 터벅...)


"주막에서 제일 싼 것이 보통 뭐더라?"


"...주모한테 물어보죠!"


"...여보 주모, 지나가는 나그네들인데, 하룻밤 묵어가고 싶소만."


그들의 행색을 보고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주막의 주인, 주모. 그 때, 눈치 빠른 이성이 이전에 가죽을 팔아 구했던 엽전 꾸러미를 꺼내들자, 주모의 안색이 바뀌며 그들을 방으로 들였다.


(끼익...)


"하룻밤 자고 가기엔 충분하시겠죠? 호호!"


"깔끔하군. ...식사는... 요즘 제철인 나물들로 나오지요?"


"꼭 그렇지만은 않답니다. 방금 여러분이 지불하신 금액이라면... 네. 꿩이나 닭 등의 고기도 드릴 수 있죠."


"오오... 이런 곳에서 누군가 고기를 공급해주는 겁니까?"


"아, 그건 아니고... 옆 마을에서 몰래몰래 팔러들 온답니다."


"옆 마을이라면...?"


"...나리, 그건..."


"...잠깐, 내가 묻겠다. 어흠... 혹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소? 내가 옆 마을이 고향인데, 이제 딱 10년만에 방문하는구려."


"10년이요? 세에상에...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남았겠네요? 으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식사를 내 온 다음에 설명해드릴게요?"


(끼익... 탁-)


"...백란이가 무사하려나..."


아무도 듣지 못하게 조용히 중얼거리는 삼준이었다.




(후룩...)


"...이 집 고기 실허네."


"그러게요. ...그런데 어ㅅ... 아니, 나리님, 그 마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듣기만 해서는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는구나. 일단, 마을 사람들, 특히 아녀자들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고 하니 거리마다 굶는 이들이 가득한 통재라고 생각했건만..."


"...낫빛만 누렇다 뿐이지, 오히려 다른 지방에 비해 더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랍니까?"


"행복하다고 느끼는 백성들도 다른 지방에 비해 월등하게 많더군요."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보리, 콩, 고구마와 감자 따위의 수확물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부부 사이의 금슬도 좋고, 친구 사이에는 우애가 있으며, 부모와 자식간에는 인의가 넘치고, 매일같이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태어나는 아이들도 다들 건장하게 태어난다고 하는데,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고도 합니다."


"확인을 해 봐야겠구나."


국밥과 고기반찬으로 배를 채우고, 숭늉으로 입가심까지 한 셋. 수행원 둘은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금새 쓰러져 잠이 들었다. 삼준은, 백란을 생각하며 조용히 마을이 자리한 곳을 쳐다보았다.


"...백란아..."


오늘따라 밤이 너무나 더디게 가는 것 같았던 삼준이었다.




(부스럭... 부스럭-! 화악-!)


"자, 일어들 나라!"


"...아... 야한꿈 꾸고있...헉! 나리! 죄송합니다!"


"...으응? 아... 지금이... 크흐헉! 해가 중천에! 이러다간 서리 파직 위기다! 짐! 짐이 어딨는겨!"


"...무슨 꿈? 이성이, 은근한 구석이 있군 그래? 그리고 김성익 자네도 너무 요란은 떨지 말게. 푸흐흡... 웃겨 죽는 줄 알았네. 풋... 나오게. 둘 다."


(저벅... 끼익...)


"...잘 묵었소. 주모. 저기가 그... 그 기묘한 소문이 도는 마을이 맞소?"


"맞답니다. 모쪼록 편안히 가시길."


(저벅... 저벅...)


길을 걷는 삼준.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수행원들. 어쩌면 동생을 먼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삼준의 발걸음이 바빠졌고, 덩달아 그 뒤를 따르는 수행원들도 숨이 턱에 차도록 걷기 시작했다.


(저벅... 탓...)


"후우... 후우... 나리?"


"...왜... 멈춰서십니까?"


"...무슨 기묘한 향취가 나지 않느냐?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음..."


"흐음. 똥간 냄시가 나는 것도 같고 말이죠?"


"말을 해도 그렇게 저렴하게 진짜!"


"...얼추 비슷해. 변소의 악취다. ...하지만, 심하진 않아. 헌데, 어디서?"


"논도 밭도 없는디..."


"...하다못해 사람 흔적도 안 보이는 산골임다."


"...잘 짚었다. 냄새 자체가 날 이유가 없는 장소란 말이지..."


무언가 잠시 생각을 하는 삼준. 조금 심란한 표정으로 생각을 하던 그는, 은밀하게 둘을 불러 제안을 했다.


"...잠시 흩어지자꾸나. 김성익, 그리고 이성, 자네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여행객이나 몰락양반 행세를 하며 정보를 모아주게."


"예. 나리는요?"


"나는 여기가 고향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는 집들이 있을 터이니,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알아오겠네. 해가 저 서산 너머로 들어갈 때, 이 자리에 다시 모이는 것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나리."


"꼭 무사히 오십쇼."


먼저 사라지는 둘. 그리고 삼준은, 그제서야 자신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여서 미안하게 되었지만... 조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지."


옛 집 터를 바라보던 그는, 백란이 있길 바라며 서둘러 옛 집으로 향했다.




(끼익...)


"...집이..."


거의 폐허가 되어버린,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 씁쓸한 마음을 삼키며, 문 안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보려던 그 때, 무언가 덜컹-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슨...!"


"...아...아우...누...누구세요...? 저... 저희 집 돈 없는데...?"


"...!"


척 보기에도 알 수 있었다. 깊고 진한 흑요석같은 눈동자, 약간 붉은 빛이 도는 찰랑이는 머리카락, 여우같이 고운 목소리. 삼준은, 그녀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백란아. 나 기억나?"


"...오빠...? 사...삼준 오빠...! 흐... 흐으아아아아아아앙! 오빠!"


길어온 물통까지 내팽개치고, 와락 달려들어 그의 품 안에서 재회의 기쁨을 담은 눈물을 흘리는 백란. 품 속에서 한없이 우는 그녀를 안은 삼준은, 말없이 그녀를 쓰다듬어주었다.


"...좀 들어가자꾸나. 누가 볼라."


"...녜헤에... 오빠아..."




(탁-)


"저... 진짜로 남는 게 없어서 보리차라도..."


"괜찮다. 아침은 주막에서 대충 먹고 나왔으니. ...혹시 어머니는..."


"...후으..."


어머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손발을 덜덜 떨며 눈물을 흘리려는 백란.


"...아주...아주 위독하세요... 제가... 잘못해서..."


"...아니란다. 10년도 더 전에 아버님을 먼저 보내시고 마음의 병을 얻으신 것이겠지. ...직접 뵙고 싶구나."


"...네..."


삼준은 백란의 인도에 따라,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방과는 다르게 아주 깔끔하고, 정갈한,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방에, 그의 어머니가 몹시 수척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어머니..."


"...삼...준이...로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불효해서..."


"...아니란다... 난... 네가 자랑스럽구나... 다... 알고 있었으니..."


"...네?"


"...마음씨 고운... 여우들이... 다 알려줬단다... 너랑... 일준이... 이준이가... 어떻게 사는지..."


"...그게... 그게 무슨..."


"처음엔... 거짓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모두 사실이더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눈으로 보고 갈 수 있어서... 여보... 나 이제..."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머니!"


"..."


"...어머니...?"


"..."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 그 이름을 애타게 몇 번 부르던 삼준은, 이내 고개를 떨어트리고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백란도 그의 옆으로 가 함께 오열했다. 너무 늦었구나,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었는데, 하다못해 임금님께 청을 올리고라도 어머니를 뵈러 왔어야 했구나, 너무 늦어버렸구나 싶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끼익...)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여어, 오늘은 나 혼자 왔다... 둘째가 사냥을 아직 덜 끝냈다고 해서. 야. 언니가 왔는...데...? 아?"


"...후...후으으... 언니이..."


"...누구야? 설마... 아, 혹시 당신이... 우리 동생의 새 가족인가?"


"...?"


알 수 없는 소리에, 눈물을 닦고 뒤를 돌아보는 삼준. 그의 뒤에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한 여인이 있었다.


"누구..."


"언니...!"


그리고, 백란은 그녀에게 안긴 채로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여인은 백란을 잠시 밀어놓고, 자리에 앉아 삼준에게 질문을 건넸다.


"...음. 그러니까... 누구야? 당신."


"...그런 질문을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 음... 자세한 건 못 말해주지만. 이 녀석 언니 되는 여우라고만 알아둬."


말을 마친 그녀는, 감춰두었던 여우 꼬리와 귀를 내비치며 다시 삼준을 바라보았고, 삼준 또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그렇군. 그렇다는 일이 있었... 아니, 잠깐. 여우구슬을 삼키고 멀쩡했다고?"


"...네. 좀 머리가 아팠지만."


"...너... 너도 꽤나 대단한 녀석인데. 우리 막내가 보는 눈은 있다니까. 참... 근데, 10년 만에 무슨 일이야? ...어이구, 좀 씻고 다녀라."


"...그럴만한 일이 있어서..."


"...응? 꾀죄죄한 행색에... 흠... 너 설마 어사로 왔냐?"


"쉿! 누가 듣겠습니다!"


화들짝 놀라며 백란의 언니의 입을 틀어막는 삼준. 순간 아차 싶었던 그녀는 황급히 물러서며, 헛기침을 하며 사과를 했다.


"으흠... 미안하군. 인간 문화에 적응해가고 있는 참이라, 그런 건 잘 몰라서."


"...아무튼, 그런 이유가 있어서 왔습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던데..."


"이상한 일?"


삼준은 주막 등지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 다 전했다. 아녀자들이 낯빛은 그리 좋지 않지만, 다른 지방에 비해 훨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소문이 났어?"


"이 외에도 쌀 등의 곡식 대신 감자, 고구마, 콩 등이 다른 지방에 비해 더 높은 수확량을 보이고도 있고, 마을 어귀에서부터 무언가 기묘한 내음이 나기도 했고..."


"으음... 풋... 아...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백란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그..그...그그그...그을쎄요...?"


갑자기 땀을 뻘뻘 흘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백란. 그 모습에, 더욱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삼준이었다.


"...참, 너... 그 어사라며? 수행원들은 없어?"


"...아, 따로 백란을 만나고 싶어서... 잠시 개별 임무로 정보를 수집하게 두고, 잠깐 들른 참이라..."


"...둘을 따로 보냈다고? 흐음... 어디로?"


"주막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휘유! 다행이네. 짓궃은 여우 친구들한테 잘못 걸려서 정기가 쏙 빠져나가는 일은 없겠는걸."


"정기가 빠져나가...? 설마 죽는...!"


"에이~ 아니야! 야, 그 귀한 인간들을 우리가 왜 죽여?"


"...네?"


상식과 상식이 충돌하는 삼준. 그리고 그는, 정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정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아...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워낙 순수해서 동생 말고는 너 데려갈 임자도 없겠네?"


"...네? 백란이가 뭘..."


"푸훗... 아냐. 그나저나... 백란이?"


"...예. 우리가 붙인 이름인데..."


"호오... 그래? 백란... 흠. 예쁜 이름이네. 근데 너 이름이 뭐냐?"


"전 삼준이라고 합니다."


"그래. 삼준아. 그나저나... 흠... 벌써 시간이?"


문득 바깥을 바라본, 자신을 백란의 언니라고 소개한 여우 요괴. 그녀의 말을 들은 백란도 바깥을 보고는 놀라며 말했다.


"아...! 시간이... 그렇지만..."


"...여기 이 분 때문에 그래?"


"...응."


차갑게 식어버린 노모의 시신을 보고는, 다시금 슬픈 표정을 짓는 백란. 그녀의 언니는 할 수 없다는 듯, 품 속에서 여우구슬을 꺼내 요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너는 오늘 내 몫까지 대신 해줘. ...그리고, 거기 인간. 삼준이라고 했지? 음... 백란이가 안내를 해 줄 거야. 산으로 따라와. 어머님 묘소를 만들어드릴게. 아버지 옆에다가."


눈 깜짝할 사이, 노모의 시신과 여우 요괴가 사라졌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있는 그의 손목을 잡아끄는 백란.


"...저... 오빠."


"백란아? 이게 무슨..."


"그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설명해드리면서 빠르게 갈게요..."




백란의 손에 이끌려 가며, 삼준은 지난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듣게 되었다.


"저... 오빠들이 떠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들이 찾아왔어요..."


"언니들?"


"네... 저희 언니들이요. 큰언니랑... 작은언니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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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끄윽... 흐윽... 오빠아..."


서글피 울고 있던 그녀의 뒤로, 어느새 두 마리의 여우가 다가왔다. 기척을 아예 감추고 다가온 탓에, 백란은 두 여우의 접근을 눈치조차 못 채고 있었다.


"우으...훌쩍... 외로워..."


"외로워? 우리 동생?'


"...흐야앗?!"


"너는 뭐 그렇게 놀라고 그러냐?"


"어...언니...들...?"


"그래. 엄마가 너 많이 걱정하시는 것 같더라. 요즘 네가 간 인간들 마을의 민심이 영 흉흉하다고."


"...다... 알고 계셨어?"


"너 떠나는 날부터 알고 계셨거든."


"...부끄럽고... 죄송하고..."


"얼씨구, 알면 됐어. 우리 동생. 반성좀 하라고. 이 철없는 녀석아."


"큰언니가 말은 그렇게 해도 너 걱정 엄청 한거 알아? 엄마가 너 여기서 사니까 보고 오라고 하니까 대번에 달려나가는게..."


"시끄러."


"...저... 언니들, 고맙지만..."


"...고맙지만 왜. 떠날 수 없다고?"


"응. 실은..."


그녀는, 조용하게, 그리고 나지막히,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대강 설명해주었다. 큰언니는 묵묵히 그 말을 들어주었고, 둘째언니는 백란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 그녀의 말을 확인했다. 척 보기에도 심각하게 노쇠한 모습의, 숨 쉬는 것 조차 힘들어보이는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문을 닫고 큰언니의 곁에 앉았다.


"...마음고생이 심했겠네. 우리 동생."


"...고생 많았다는 말 밖에는 해줄 것이 없네..."


"...괜찮아요. 나... 언니들을 본 것 만으로..."


"...그래도. 도움이 좀 필요하겠는걸."


"그래. 그리고 개인적인 원한도 생겨버렸고. 감히 우리 귀여운 막내가 이렇게 펑펑 울게 만들어?"


어느덧 요력을 쌓았는지, 아홉 개의 꼬리를 꺼내고 날카로운 손발톱을 내비치며, 타오르는 눈을 하고 이빨을 드러낸 뒤, 개과 동물 특유의 으르렁거리는 위협하는 소리를 섞어 말하는 언니들을 본 백란은, 깜짝 놀라며 그들을 말렸다.


"그...그래도 목숨까지는...!"


"...알아. 복수보다도, 네가 먼저니까. 대신... 개인적으로 좀 알아봐야겠어. 저기 사또인지 뭔지 하는 그놈이라고 했지? 흥... 돈 쏟아부어서 올라온 녀석이 뭘 무서워하나 좀 볼까?"


"더 많은 돈을 쓰는 거?"


"...그랬다간 여기 고을 백성들이 더 수탈당하겠지. 그건 안돼."


잠깐 고민을 하던 둘째 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별 수 없네. 그럼... 후웃...!"


"흐읏!"


(펑-! 퍼펑-!)


"...우와앗...!"


"...어때, 어울려?"


"산에 자주 나물 캐러 오는 인간들을 보고 대강 흉내를 내 봤지. 어때?"


요염한 여인으로 변한 둘을 본 백란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우와! 언니들 엄청... 완전 자연스러운 둔갑술이네!"


"너만할까? 후후... 자, 이제 인간의 형상도 취했겠다... 언니, 알지?"


"그래. 사또 놈을 계속 지켜보면서, 그 녀석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봐야겠어."


늦은 밤, 그녀들은 오랜만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후일을 도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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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구나."


"네. 언니들은...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저를 만나러 왔어요. 가끔 약재 같은 것도 구해주시고, 그러다가 어머니랑 면식도 생기셨고요."


"어머니가?"


"네. ...저... 원래는, 어머니가 우릴 보고 여우라고, 요사스럽다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뭐라고 하셨니?"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이요."


"...그러셨구나."


"...저도 물어봤어요. 딸처럼 키운 사람이 여우인데, 밉지 않으시냐고요. ...그러셨더니..."


'네가 여우면 뭐 어떻단 말이냐. 사람의 마음을 가진 너를, 가슴으로 품은 내가 길러낸 너를, 어떻게 이제 와서 밉네 뭐하네 하겠느냐, 우리 딸.'


"...참 어머니다운 답이셨네."


"...헤... 실은 그날 좀 울었는데..."


"울 법도 하네. 우리 백란이."


"...으으... 아무튼! 언니들이 무슨 약점을 알아냈냐면..."


(타닷-! 탓!)


"...이따 알려줄게~요!"


말을 마친 백란은, 어느새 커다란 창고 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여긴? 처음 보는 공간인데."


"언니들이 만든... 일종의 작은 밭 같은 공간이죠. 여기 마을 사람들이 한 끼 정도는 채울 수 있는... 아, 이거 만드느라고 그...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도 다 써버려서..."


(끼이이이익-)


"오! 오늘도 늦지 않았네!"


"란이구먼! 허허! 우리 안사람이 얼른 가서 받아오라고 어찌나 성화를 부리던지! 으허헛! 그것도 귀여워서 참..."


"아... 털보 아저씨! 앞집 목수 아저씨도 오셨네요!"


"...잠깐, 저 분들은..."


"...응? 백란아. 네 옆에 남자... 혹시..."


"...삼준이냐? 삼준이 아니냐! 몇년만이냐 이게!"


"아...아하하... 오랜만이에요. 아저씨들. 저..."


"...으응... 한양 가서 출세하고 온 모양이구먼? ...아버지가 분명 좋아하실 게야. 백란이가 매일 묘를 관리해서 아주 깔끔했지?"


그 말을 들은 삼준은, 백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마워. 백란아. 너한테 큰 빚을 지네 자꾸."


"...오빠잖아. 누구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우리 오빠. 그리고, 항상 나를 아껴주셨던 아버지의 무덤인데."


"...정말 고마워."


"...그...그래... 우웃... 자 이제..."


(웅성... 웅성웅성...)


순식간에 벌떼처럼 몰려든 사람들. 거의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였다고 삼준은 생각했다. 그 정도의 구름같은 인파였다.


"어휴, 오늘도 늦을 뻔 했네!"


그리고, 


"아! 순이도 왔네! 저기, 잘 되어가?"


"...그...그건 비밀!"


"후훗... 자, 그럼... 다들 줄 서세요 줄! 다 받아갈 수 있으니까요~!"


작은 포대자루를 가져와서, 한 줄로 서는 사람들. 포대자루가 아주 가득가득 차도록 고구마를 나눠담아주며, 삼준에게 추가로 설명을 하는 그녀.


"...이게 뭐야? 고구마?"


"응. 고구마 밭을 요술로 만들었거든요. 후후... 이 고구마는, 조금 특별한 고구마라는 말이에요!"


(우두둑... 후수수수...)


"이야... 오늘도 실하구먼! 매일같이 고맙네!"


"어제 장어를 그렇게 구워주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구먼... 허허 참."


(스륵... 후두두둑...)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고구마랑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정말 이거 하나면 다 해결돼?"


"얘도 참! 그렇대두! 느 옆집 돌쇠가 나무하러 나갈때 몰래 같이 가가지구 요 같이 먹으면..."


풋풋한 처녀총각들도, 혼례를 치른 새신랑 새신부들도, 농익은 사과처럼 단물 냄새를 풍기는 아내를 둔 동네 아저씨들도, 모두 한데 모여 백란에게서 자루 하나 가득 고구마를 받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어디다 쓰일 예정인데?"


"오빠도 참... 옛날부터 궁금한건 정말 많으시네요? 후훗..."


"학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란다. 백란아."


"알겠어요. 오라버니. 자세한 건... 우훗... 저희 큰언니 몫을 나눠드리러 가는 길에서 알려드릴게요! 자! 따라오셔요!"


(쉬익-! 타닷-!)


질주하는 백란을 따라, 삼준은 산을 넘고 강을 내달리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타닷-! 타닷...)


"후...후아... 조금 쉴까요...?"


"응? 급한 거 아니었어?"


"...안 지쳐요, 오빠?"


"...글쎄?"


"헤에... 아, 급하긴 한데... 언니는 조금 늦게 나눠주시거든요. 그래서... 조금 여유가 있어요. 자, 나머지 내용도 설명해드릴테니, 잘 들어주세요? 오.빠.?"


"...묘한... 아니다. 그래. 설명해줄래?"


"네. 그 일 이후, 작은언니랑 큰언니는 관아 근처에서 자주 머무르거나, 그 주위를 산책하는 여인의 흉내를 내며 지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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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거의 하루가 멀다 하고 뭘 내놓아라 바치라 하네."


"인간이라는 종족의 탐욕은 끝이 없다니까. 한심해."


"생간만 보면 눈 뒤집혀서 달려드는 너도 큰 차이는 없어보이는데?"


"윽... 언니는 뭐 잘났다고 타박이야?"


"...아, 잠깐. 녀석이 뭐라고 말하는거같은데."


"언니, 귀 정도는 꺼내도 괜찮지 않을까? 쓰개치마도 있고."


"그게 좋겠네. 집중하자. 후우..."


(쏘옥-)


여우의 귀를 꺼내고, 온 힘을 다해 집중해서 관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 두 자매.


'으윽... 아직도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느냐! 게 없느냐!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도록 여길 청소해라!'


'...이건 또 무엇이냐! 안뜰이 이렇게 더러워서야! 여봐라!'


'옷에도... 관아에도... 모든 것에! 먼지가 이렇게! 여봐라, 여봐라! 당장 깨끗하게 청소해라! 당장!'


조심스럽게 그 대화를 듣던 둘은, 조금 의문스럽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깔끔한 것이 좋다지만..."


"...많이 과하지? 왜일까..."


"아, 설마... 깨끗하지 않은 것을 싫어하고, 또 무서워하는걸까?"


"...오호라? 음... 그렇게 된다면..."


더러운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깨끗한 것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하는, 소위 결벽증이라는 증세를 보이는 것 같은 사또를 보며,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저 산책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 순간, 둘은 동시에 배에 가해지는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배가... 갑자기... 우극... 왜 이러지...?"


"...알 것 같은데."


"...언니? 윽... 뭔데?"


"...우리의 몸 속에서... 항상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요력을... 그 요력의 순환을 돕는 기관이... 윽... 우리가 인간의 모습을 갖추더니..."


"하아... 윽... 거기서 생겼단 말이지? 이 복통이라는 게..."


"...얼추 그럴걸... 마력이... 제대로 돌지 않고 흡수되질 않으니... 밖으로 나와야겠지... 으극...!"


뿌푸풋! 뿌브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큰언니의 엉덩이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치마가 들썩일 정도로 큼직한 방귀 소리. 달리 주위에 지나가는 행인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있었다면 인간이 된 지 겨우 일주일만에 가장 부끄러운 경험을 할 뻔한 그녀였고,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소리내어 웃는 그녀의 여동생이었다.


"푸흣... 푸하핫! 언니, 엉덩이에서 천둥소리가 나네? 뭐 잘못 먹기라도 했어?"


"...이게... 놀리긴! 너도 남말 할 처지가 아니게 될걸?"


"흐응... 그러셔?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여기 힘이 강하거든? 그러니까, 겨우 그 정도 자극으로는..."


"...이건 어떨까?"


"...흐냣?"


순식간에 동생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배를 꾸욱 누르는 언니. 잔이 꽉 차서 넘칠 정도의 물이 담겨졌다고 해도 무방한 상태였던 그녀의 아랫배는, 그 손길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녀의 언니보다도 추잡스러운 소리를 아랫입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뿌브롸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부루루루라라라라라라락!


"...풋... 뭐가 어째?"


"이...이건 반칙이지! 이런게 어딨...윽...!"


뿌르르르르르르르르드드드득! 뿌부부부부부부부부부우우우욱! 부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끄...흐읏... 배가... 진짜 무슨... 어으... 상한 간을 먹었을 때... 그때보다도 아주 그냥 부글부글... 끓어...오르...네...!"


뿌뷰쥬쥬쥬쥬쥬쥬류류류류류류류륙-! 뿌부풋! 뿌퓌피리리리리리릭! 뿌브브르르드드드드다다다다다다닥!


연신 배를 붙잡고, 치마 뒤편이 누렇게 물들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방귀를 뀌어대는 그녀의 여동생. 조금 심했나 싶어 그녀의 용태를 살피기 위해 언니가 가까이 간 순간, 짓궃은 미소를 머금은 여동생의 손바닥이 언니의 배꼽 아래에 타앙-! 하고 꽂혔다.


"...끄흣...! 너... 언니한테 이게 무슨...!"


"크흐... 내 배 눌러가지고 여우가 아니라 어디 노린재같은 여우를 만든 건 무죄고? 한번... 당해 보라구...!"


(꾸욱... 꾸욱 꾸우우욱-!)


"아... 으...! 야...! 야! 잠깐...! 아흣...!"


부루뤅! 뿌뤅! 뿌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뿌푸부루롸라라라라락! 뽜봐봐봐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부푸푸프르르르르르를스스드드드드드다다다다다다닥! 푸-뿌푸푸푸부푸후부푸루부부루루푸부루루부푸푸부부부붑!


"이야... 언니 대단한데? 뿌웅뿡~ 아주 냄새가 그냥!"


"으극... 언니를 놀려?! 이게...! 흐응...!"


"읏?!"


뿍뿌루루루룩! 뿌루루루루르르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뿌부푸부푸푸부푸푸부부푸푸루루부푸푸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룩! 뿌푸푸푸루루르프프브르르브프프드드드브프드드드브프프드드드드득!


가뿐히 날아올라, 꼬리로 여동생의 목을 감싸안고 그대로 아래로 짓누른 뒤, 속에서 부글거리던 독가스를 힘차게 쏟아내는 그녀. 조금은 즐거워하는 모습처럼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끄흑... 대체 뭘 먹고 사는거야? 어휴... 콜록콜록! 으... 냄새...!"


"하! 너랑 나랑 자매거든? 내가 이 요력 흡수율이 원체 높아가지고 나오는 방귀도 많은거지!"


(덜컹-!)


둘이 티격거리는 사이, 관아의 문이 열리더니 사또와 옥졸들이 나와 그녀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웬 소란이냐! 우욱... 냄새...!"


"윽... 냄새의 근원을 찾은 것 같습니다!"


"이익... 당장 저것들을 잡아들여라! 아니... 집어치워라! 저 역겨운 냄새부터 치워라! 청소! 청소를 하란 말이다!"


"이크... 야, 일 커지겠다. 일단 튀어!"


"응!"


날래게 도망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기 시작했다.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약점을 잡은 것은 이쪽이니, 이제 남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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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일이 있... 잠깐, 여우들이 인간으로 변한 뒤, 요력을 흡수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면 혹시 너ㄷ..."


"그...그건! 그건 나주...나중에 다 말해줄게! 이익...! 지금...은... 응! 지금은 큰언니의 몫까지 대신 일하는게 우선이니까!"


(쐐애액-! 타닷... 타닷-!)


"...응? 야! 백란아! 같이 가자고!"


부끄러운 듯 재빨리 도망치는 백란을 보며, 삼준은 재빨리 그녀의 뒤를 쫓았다.




"...읏챠!"


(타닷-)


"휘유... 뭐가 그리 부끄러워서 나까지 놓고 가?"


홀로 내달려 또 다른 커다란 창고와도 같은 공간에 다다른 그녀를 따라잡은 삼준. 얼굴을 붉히고 애써 '자신이 언니들보다 더한 방귀쟁이' 라는 사실을 알아낸 삼준을 외면하는 그녀였다.


"으으... 조용히 해! 놀리지 마라구... 부끄러...운데..."


"상상해보니까 좀 귀여워서 말이지. 너 말이야."


"우...우우웅..."


어쩔 줄을 몰라하던 백란은, 어느새 자신의 앞에 잔뜩 늘어선 사람들을 보며, 머리를 한대 콩, 하고 치며 정신을 차린 듯 행동했다.


"하우웅... 늦어서 죄송해요! 자! 어서 줄을 서세요~!"


"...참, 그래서 그 다음 일은 어떻게 된 거지? 이 밭같은 창고는 또 무엇이며... 왜 사람들이 다 이렇게 피부색도 조금 변하고..."


"으응... 그건 또 말이죠..."


(후수수수...)


"언니들이 그 귀한 자료를 가지고 돌아온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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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닷... 끼익-)


"...우응...? 큰언니...? 작은언니도 왔네...? 무슨 일이야?"


"흐응... 저 살만 뒤룩뒤룩 찐 사또 녀석의 약점을 잡았단 말씀!"


"그래. 의외의 일면이 있더군? 지나치게, 아주 지나칠 정도로 깔끔한 것에 집착을 하고, 조금이라도 더럽다거나 싶으면 아주 질색팔색을 하며 싫어하더라고."


"그건... 그걸 어떻게...?"


"너도 잘 알텐데? 우리 막내."


"...엥?"


"엥? 이 아니지. 생각해봐. 자, 우리가 여우에서 인간으로 변신했지? 그러면... 우리가 여우로 지낼 때, 정제되어 여우구슬로 나올 정도의 깊은 마력이 제때 순환하지 못하고, 거의 절반 이상이 빠져나가게 될 거 아니니?"


"...아...아아...?! 으엥?!"


얼굴을 붉히고 땀을 흘리며, 부끄러운 듯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에 손을 가져가는 백란. 그 모습을 보며, 두 언니는 피식 웃었다.


"후훗... 그래. 맞아.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추잡한 소리를 내는, 특히나, 우리처럼 육식을 자주 하는, 특히나 여우 요괴들은... 아주 진~한, 씻겨지지 않는 냄새를 남길 수 있단 말이지?"


"그래. 복수의 수단이 조금 지저분하면 어때? 그 무엇보다도 간편하고, 효과적인데! 푸훗... 우후훗!"


피식피식 웃으며 여동생을 꼬시는 두 언니. 결국, 그 둘의 감언이설에 홀랑 넘어간 백란은, 두 언니와 행동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으응... 알았어! 언니들!"




그날 이후, 그녀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물론, 병환으로 힘들어하는 노모를 모시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고구마, 보리 등을 비롯한 음식들을 이전보다 거의 세 배는 더 많이 먹게 되었고, 매 끼니마다 고기를 먹게 되는 그녀였다.


"우응... 작은언니, 근데, 이 많은 고기들을 어디서 놨어?"


"후훗... 산에서 사는 여우가 이 정도 고기도 못 물어올까?"


"우와... 대단해! 그럼 나 이거 다 먹어도 돼?"


"그래. 넌 걱정 말고 어서 먹기나 해. 요력 자체의 크기는 니가 제~일 컸잖아? 자, 어서 먹고 힘내서 뿡뿡 해보라고~ 푸훗..."


"으우우... 부끄럽게 그럴거야? ...근데 큰언니는?"


"마을 세 군데에, 한 입만 먹어도 거진 반나절은 하루종일 방귀만 뀔 수 있는 고구마 밭을 만들고 있지. 우후훗..."


"...에에?! 그게 돼?! 그... 그런데 그러면... 맡는 사람들도 다 고생하지 않을까...?"


"후후... 언니가 다 대책을 마련해뒀지!"


그녀들이 말한 골자는 이것이었다. 마을에 세 개의 창고를 나누고, 궁핍한 사람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양의 특제 고구마를 만든다. 자신들같은 암컷 요괴나 젊은 여인들이 먹으면 그녀들의 몸에 흐르는 음기에 반응하여 몸에 순식간에 부글거리는 가스를 들어차게 하고, 젊은 남성들이 먹으면 그들의 몸에 쌓인 양기에 반응하여 체력과 힘이 큰 폭으로 오르며, 감각이 일시적으로 왜곡되어 '여성의 방귀' 라는 것을 매우 외설적이면서도 매력적인 행위로 인식하게 만든다. 노인들의 경우, 몸에 양기와 음기가 모두 쌓인 상태이기에 반응하지 않고, 그저 최상급의 식품으로서의 기능만을 한다. 그런 요력이 깃든 고구마가 마을의 창고에서 마구 자라나게 만들어, 사또와 그 관리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방귀냄새로 인한 괴로움이 단 하나도 없게 만들고, 마을 전체를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사또가 너무나도 두려워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되게... 대단하네..."


"...응. 엄마가 알려준 요력의 운용 방법이다? 우리 말을 듣고는 화를 버럭 내면서 당장 그놈을 잡아 조지려고 하다가, 죽는것보다 더 무서운 지옥도에 가둬버리라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알려주셨지."


"우에에..."


"자,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시작? 뭘?"


(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하응... 배에 살살 반응이 오지 않아? 자, 관아 한바퀴 산책이나 하자고!"


"아...아앗!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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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그런 일이... 음... 마을 전체에 이런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우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오빠. 그... 만나야 하는 사람들 있다고 안했...던가요?"


"...아차! 내 정신좀 봐라... 어서 마을 어귀로..."


"...혹시 모르니, 저도 따라갈게요. 사실 지금... 이 마을 안에는 우리랑 비슷한 여우 요괴들이 암수 할거없이 은근 많이 있거든요!"


"그래? 그럼... 좋아. 대신 비밀로 해야 한다?"


약속했던 마을 입구로 바람처럼 달려가는 둘. 몇 가지 궁금증은 해소되었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도 있었기에, 삼준은 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타닷...)


"으응? 먼저 와서 기다리고들 있었구먼."


"나리! 이제 오십니까요!"


"늦었군. 미안하네."


"...옆에 분은?"


"아... 설명하자면 좀 길다네.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 정도라고나 할까."


"...안녕하신지요?"


"아이고. 반갑소. 나리님의 동생?"


"...조금 안 닮았다 했더니 그런 거였구먼. 아, 나리, 일단 저희가 얻은 정보는..."


성익과 이성은 차분하게 자신들이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약 9년 정도 전, 그때부터 관아에서 사또가 비명을 지르며 당장 향긋한 것을 가져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었고, 몇년 전부터는 아예 관아 안에 틀어박혀서 밖을 제대로 나오지도 않으려 했으며, 밤이 되면 가끔 관아 안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들이닥쳐서 순식간에 군졸들을 모두 재우고 기절시킨 뒤, 사또가 숨어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침 해가 뜰 때 즈음에나 웃음소리를 내며 방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이기도 했고, 사또뿐만 아니라 이호예병형공 6조를 맡던 관리들마저도 악취에 치를 떨며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


"근데 우리는 그렇게 심하던 않았는디..."


"우리가 아니고 자네겠지. 자네 고뿔에 걸려서 코가 막혔지?"


"...아하?! 자네 안색이 그리 좋지 않던 이유가..."


"에이구... 인자 알았나? 근디 뭐 이게 코가 참 떨어질 것 같이 맹맹하면서도 조금 적응은 되었단 말이지.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인해 사또를 제대로 본 이는 아주 손에 꼽는다고 합니다요. 마을 전체에 뭔가 기묘한 일이 생긴 것 같은디..."


"기묘하긴 하지만, 결국 백성들이 행복하게 되었으니 큰 문제는 없지 않겠느냐. 그래도... 일단 내일 관아에 출도는 해봐야겠구나. 굳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과거에 저지른 폐단이 있었다면 이것을 수집해서 장계로 올리는 것이 도리에 맞으니 말이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요. 나리. ...그런데 벌써 날이 저물어가는군요."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저가는 해. 잠을 청할 곳이 필요했지만, 집에서 넷이 다 자기에는 제법 좁은 상황이었기에, 삼준은 성익과 이성에게 엽전이 든 꾸러미를 내밀었다.


"고을 중앙에 있는 주막을 아느냐?"


"알지요. 나으리. 거기서 정보를 얻었으니까 말입니다."


"좋군. 그렇다면 그 주막에 가서 방을 구하게나. 내일 아침 일찍 내 자네들을 찾으러 갈 터이니, 피로를 풀어두게."


"감사합니다요. 하지만 나으리는요?"


"나는 10년만에... 내 집에서 잠을 청하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요. 편안히 주무십쇼. 나리."


인사를 꾸벅 하고 물러가는 둘을 보며, 삼준은 백란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한숨 자고 싶은데, 괜찮지?"


"암요... 괜찮고 말고요. 자요, 오빠... 후훗..."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자신을 인도하는 백란. 여우의 요염한 매력을 아낌없이 발산하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만 충동을 이기지 못할 뻔 했던 그였다.




(타박...타박...)


"아... 인영이... 언니들이 먼저 오셨나...봐요?"


"왜 그러니?"


"신발이... 언니들 것이 아닌 신발이...?"


"...흠..."


긴장한 듯, 살며시 문으로 접근하는 둘. 혹여나 자신의 언니가 뭔가 사고라도 치는 것인가 싶어, 갑작스럽게 내달려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백란.


(벌컥-!)


"...언니?"


"...응? 막내야?"


"백란...? 너... 너 백란이 맞지!"


"두...둘째오빠?! 작은언니?!"


"형님!"


"...삼준아!"


"...뭔 상황이래 이거?"


"형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렇다마다. 너도 아주 잘 지낸 모양이더구나. 성문 밖에 널 칭찬하는 소리가 자자해!"


"하하... 다들 과찬이십니다. 헌데... 지금 형님이랑 이분은..."


"아... 그건 말이지. 음... 오해를 할 법도 한데..."


"오해고 나발이고, 뭐 별거 없잖아? 안그래? 젊은 나이에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윽... 조용히 하십쇼! 이 동네 여자들은 죄다 기가 이렇게 강한 건가... 꽉 잡혀들 살겠구먼..."


한숨을 푹 내쉬며, 등에 맨 바구니에서 사냥해 온 동물들을 꺼내는 둘째 이준. 그리고, 언제 봤냐는 듯 아주 친밀하게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백란의 작은언니였다.


"아~ 다들 들어와서 앉아. 음... 어쩌다가 만나게 되었냐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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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산을 누비며 사냥감을 찾는 백란의 둘째 언니. 그녀는 늘 하던 대로, 사냥감의 흔적을 추적하여 쓸만한 고기를 찾고 있었다.


"여기로 가면... 아! 저깄다!"


토끼 한 마리. 먹을 것이 많이 없다고는 해도, 저 정도면 냄새를 고약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수준의 고기였다. 그렇게, 번개처럼 달려들어 토끼를 덮치려는 그 순간.


(쐐액-! 퍼억-!)


"...우앗?!"


소리없이, 치명적이고 날카롭게 날아든 도끼가 토끼의 목을 후려갈겼다. 단번에 목숨을 잃은 사냥감. 그 군더더기 없고, 아름답고 잔혹하게 보일 정도로 완벽한 사냥에, 그녀가 순간 넋을 놓아버린 참이었다.


"...잡았군. ...음? 아녀자?"


"...사냥꾼...?"


"...위험했군. 그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소. 사과하지."


"괘...괜찮아요. 저... 저기..."


"음?"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사냥에 필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그녀는, 그를 붙잡아 세우고는 그 옆에 달라붙어, 팔을 부여잡고 애원하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어...어흠... 처자, 왜 그러시오?"


"...실은...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십니다... 그래서... 고기를 조금 드리면 어쩔까 싶어서 올라왔는데..."


순간, 그의 눈이 서글프게 바뀌었다. 동병상련의 처지에 공감한 것일까. 그는, 단칼에,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 제안을 수락하였다.


"좋소. 따라오시오."




그렇게 둘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여우의 날카로운 감각을 살려 사냥감의 위치를 읊어주면, 정확하게 날아드는 그의 도끼가 사냥을 마무리했고, 멧돼지나 호랑이 등의 큰 짐승이 둘을 위협하는 순간이 오면, 그는 허리춤에서 길다란 장검을 빼들고 용맹하게 맞섰다. 그렇게, 한참을 사냥한 둘은, 산 아래로 내려왔다.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나도 고향에... 이 땅에, 병드신 노모께서 계시기에 그 아픔을 잘 헤아릴 수 있소."


"그러셨군요..."


"그렇소. 아마... 오늘인가, 아니면 내일인가... 내 동생들과, 10년이 되는 날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곧 그 날이구려. 어머니는 잘 계시련지..."


"...부디...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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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그게 두 분의 첫만남이었다고요? 몇 시간 전에?"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 이 처자가 내려오는 길을 보아하니 아무리 봐도,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우리 집 아니겠느냐? 그래가지고 보니까, 아니 글쎄 내가 잡아준 꿩을 제가 다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겠어?"


"하하! 형님, 보기 좋게 여우한테 속으셨구려?"


"...내 역정이 나가지고... 그렇게 들이닥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백란이랑... 너무, 너무 닮은 것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뽑아든 검도 다시 집어넣게 되더구나. 그렇게 고민하던 사이, 이 처자가 진짜 하늘을 나는 듯 내달리더니 어디 마을 구석진 곳으로 가더라고. 그래서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지. 그랬더니 다시 오더군. 여우 꼬리랑 귀를 달고 말이야."


"푸훗... 엄청 깜짝 놀라던데, 그렇게 놀랐어?"


"구미호한테 홀린 격 아니냔 말이오. ...아, 그리고 곧바로 삼준이 너랑 백란이가 왔고."


"...에헤헤... 장난쳐서 미안. 그래도... 얼마 전까지, 우리 세 자매가 너희 어머니를 돌봐드린 건 사실인걸?"


"맞아요. 형님. 백란이가 고생이 많았다고 합니다."


"에헴! 우리도 많았다니까?"


"...그래요. 알았어요."


삼준은 조금 서글픈 눈으로, 백란을 보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느낌이 싫지 않은 듯, 여우 소녀는 삼준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나저나 백란이라니. 그게 얘 이름이야?"


"네. 예쁜 이름이죠?"


"백란... 우리 막내가 희고 보드랍긴 하지? 후후... 아, 나도 이름 좀 지어줄래?"


"이름? 으... 으흠... 아, 형님, 형님이 지어드리는 게 어떻습니까?"


"...내가 왜? 나는 얘한테 내 사냥감 값을 받아내야 하는 빚쟁이 입장인데?"


"그래도 형님, 이것도 다 좋은 만남 아니겠소? 그리고 근 10년간 우리 어머니의 마지막까지 봐 주신 분들인데. 그 정도면 싼 값 아니오?"


"...그렇구나. 어머니... 후우... 어머니... 각오는 했습니다만..."


"...이봐 인간. 그... 우리 언니가 양지바른 산 중턱에 작게나마 묘소를 만들었거든? ...나중에 안내해줄게. 동생이랑 같이 보러 와."


"...고맙소."


"...고마우면 내 이름이나 한번 지어줘 봐. 솔직히, 나도 백란이같은 예쁜 이름 하나 갖고 싶거든."


"당신들은 서로 이름을 붙이지 않소?"


"...마땅히 없지. 어서. 나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줄거야?"


"...혹시 좋아하는 것이 있소?"


"나? 내가 좋아하는건... 으응... 아! 붉은 생간이라고나 할까? 여우니까! 후훗..."


"...붉은 색이라는 뜻의 홍, 그리고 백란의 이름에도 들어간, 아름다운 꽃을 뜻하는 란을 합친 홍란은 어떻소?"


"홍란... 홍란이라... 으응..."


"...조금 식상한...가?"


"...맘에 들었어! 후훗... 언니랑 엄마한테도 날 이렇게 불러달라고 말해야지~"


생글생글 웃으며 둘째 이준에게 더욱 찰싹 달라붙는 둘째 여우, 홍란. 숫총각인 그에게 제법 강한 자극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기에, 그는 애써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왜애? 싫어?"


"흠... 싫은 것은 아니다만... 어흠! 그... 너무 붙지 마시오! 날도 더운...데... 흐흠..."


"풋... 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너. 귀여운데?"


"...크흠! ...아, 막내야. 나는 이런 사냥꾼이 되었다만... 너는 어떻게 지내었느냐?"


"...실은 말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하는 삼준. 백란에게 여우구슬을 받아 삼키고, 어사가 되고나서부터, 수행원들과 함께 산 넘고 물 건너 고향을 찾아간 것을, 그리고 이 마을에 도착하게 되어 백란을 만나게 된 것을, 그리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백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렇구나. 그럼 너랑 함께하는 수행원들은?"


"마을 중앙의 주막에 가서 묵도록 시켰소."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더구나. 후우... 좀 피곤하군."


(타닷-!)


"...응? 누가 또 왔는데?"


(끼익...)


호기심에 문을 열어젖히는 둘째 여우 홍란. 그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복색을 한 사내가, 익숙한 외모의 여인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었다.


"...언니? 옆에 누구야?"


"집이 조금 소란스럽군."


"이 목소리... 형님!"


"형님 왔구먼! 우리요 우리!"


"둘째... 막내...? 이준아! 삼준아! 아이고... 딱 10년만이구나!"


감격의 형제 상봉을 한 셋.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세 여우 자매도 한 자리에 모였다.


"큰언니! 이제 왔구나?"


"막내구나? 우리 둘째랑... 여어, 자네도 있었군. 근데 그 옆은?"


"네, 제 작은 형님이십니다."


"그렇구나... 어쩌다 보니 다들 사연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였네? ...들어가도 되겠어?"


"...음. 그러시오."




(끼익...)


"...늦은 밤에 이렇게 다 같이 모일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이지..."


"...나도. 어휴... 여우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아, 그런데 형님들. 형님들은 우리 백란이랑... 여기 이분들이 여우라는 걸... 받아...들이셨네요?"


"...나는 직접 여우로 둔갑하는 걸 봤거든. 근데 뭐... 사람 해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고기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조금 딱해보이기도 하더라고."


"...윽... 얼마나 불쌍한 여우로 비춰진건데?"


"뭐, 불쌍한 건 둘째 치고, 참...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은근 예쁘기도 하고... 나한테 은근히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우리 막내 백란이의 언니라고 하니까,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고. 귀엽기도 하고."


"...음... 뭔가 나름 위엄있는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하하... 우리 형님이 그런 쪽으로는 전혀 겁이 없거든요. 홍란 씨. 큰형님은요?"


"...우연히 산을 건너다가 그녀를 보았다. 한 쌍의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추모를 하고 있더군."


"...그 묘소가..."


"...그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 묘였다. 처음엔 몰랐지, 헌데 다가가서 보고 있자니, 영락없이 그 무덤 앞에 놓인 가락지는, 10년 전 어머니의 것이었다."


"...이전에 막내가 말해줬어. 그 가락지에 얽힌 사연을. 그렇게 슬프게 떠나신 분을 생각하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그래서... 막내가 떠나고 다시 그 자리로 가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거든. 그런데... 산을 타고 한 남자가 오더라고."


"...낳아 준 어머니도 아닌 분을, 어떻게 보면 일면식도 없는 분을 이렇게 모셔주는 분이라고 생각하니, 마찬가지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속이 답답하고, 고맙고 슬프기가 이루 말할 수 없더군."


"슬픈 건 슬픈 거지만. 그래도 진실을 알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이 분이 보는 앞에서 내 모습을 바꿨거든. ...근데 아무 신경도 안 쓰더라고."


"아무렴 어떻소. 그대는 내가 본 여인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인간다운 마음을 갖춘 여인인데."


"...흠흠! ...그렇게 되었어. 그래서... 다들 뭘 할 생각이야?"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전환하는 첫째 여우. 그 말에, 일준부터 그 답을 시작했다.


"...난 이제 용병 노릇도 끝났고, 재물도 꽤 벌어왔으니 다시 이 마을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오. 이준이, 삼준이 너희는?"


"저는 뭐 사냥꾼 계속 하겠죠. 이전에 황해도 어디서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가 마을까지 내려왔을 때, 그때 제가 그 녀석을 잡았었거든요? 크... 그때 주위에서 저를 향해 막 환호를 보내는게... 어우, 이것 때문에라도 그만 못하죠. 막내야, 너는?"


"...나는 내일 관아로 출두할 생각입니다."


"...아, 너 어사였지?"


"어사... 어사라. 그래, 그래서 행색이 그 모양이었군. 우리 막내."


"...네. 수행원들하고는 아침 일찍 만나러 가기로 했고, 음... 출두하려면 역졸들을 조금 더 데려와야 하려나..."


"우리가 함께하지."


"네? 위험할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역만리 땅에서 용병 노릇을 하다 온 내가? 그리고, 사람 죽이는 호랑이도 잡아서 멱을 따버린 이 녀석이? 크핫! 막내야, 걱정이 지나치구나."


호탕하게 웃으며, 함께 힘을 보태기로 한 둘. 그렇게 형제의 우애를 다지는 현장에, 홍란은 조용히 고구마 몇 개를 내밀었다.


"이게 필요할걸."


"...고구마? 으음... 달큰한게 좋긴 한데..."


"풋... 아주 맛있을걸. 그리고, 둘에게 주고 싶은 게 있어서."


"주고 싶은 것? 나한테? 그리고 형님께?"


"응. 잠깐만. ...후읏!"


(빠직-!)


품에서 작은 여우구슬을 꺼내고 깨트려, 그 요력을 고구마 속에 진하게 집어넣는 홍란. 뜻밖의 행동에 무어라 질문을 하려던 삼준이었으나, 백란이 그의 옷깃을 잡아 끌고, 조용히 해달라는 듯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에,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듣기로 했다.


"아...하암... 저는 조금 피곤한데, 삼준 오빠, 저랑 같이 옆방에서 잘까요?"


"어...그러자꾸나. 마침 나도 체력 안배가 필요한 상황이니..."


"에헷... 신난다..."


막내 삼준과 백란이 나간 후, 가장 언니인 여우 요괴 또한 여우구슬을 깨트려 요력을 고구마 안에 집어넣으며, 그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이름..."


"이름? ...내 이름은 일준이라오. 한번 말했던 것 같은데."


"아니... 내 이름 말이야. ...둘째는 듣자하니 홍란이라는 이름이고, 막내는 백란이고. 맞지?"


"맞아. 내 이름은... 우훗... 여기가 지어줬거든. 이준, 맞지?"


"허...흐음... 맞긴 하지."


"...일준. 그러니까... 내 이름도 지어줘."


"...막내가 백란. 둘째가 홍란이라고 했으니... 음..."


순간, 일준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이 떠올랐다. 녹음이 우거진 산의 숲 속에서, 푸르른 무덤 앞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그 모습을. 그렇게 아름답고, 풋풋하며, 푸르른 소나무같은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청란...은 어때?"


"청란?"


"...동생들이랑 이름 글자도 맞고... 그리고, 숲 속의 아름다운 나무같은... 그런 푸르른 너라서."


"...좋아. 재밌는 이름이네. ...청란이라... 후후..."


"아, 언니 웃었다. 언니 좀처럼 웃는 일이 없는 사람인데?"


"...시끄러, 이 녀석아."


청란이라는 이름을 얻은 여인은, 고구마 하나를 집어들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먹어 둬. 요력이 깃들었기 때문에, 큰 힘이 되어줄거야. 검을 휘두를 때, 붓을 잡을 때, 그리고... 오늘 밤을 지새는 데 말이지."


"...저기... 그 말은?"


"...먹어줘."


"나도 질 수 없네. 야, 사냥꾼!"


"이름으로 불러주면 안될까, 홍란?"


"...이...이준...! 그.. 그러니까..."


"...왜 갑자기 부끄러움을 타는데?"


"우... 몰라! 일단 이거나 먹어!"


(우적-!)


"우븝... 야... 야! 갑자기 입에 쑤셔박... 커흡... 목아파 이년아! 아이고...!"


"나... 나도 먹을거니까 불평하지 맛!"


옥신각신하는 둘을 보며, 청란이 입을 열었다.


"풋... 동생분이 은근 귀여운걸."


"...남이사. 그래도 난 네가 더 예쁘다. 청란."


"...후후... 여우의 마음을 홀리다니..."


일을 치르기 전, 주위에 민가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첫째 일준과 청란이었다.




(스륵...)


"우후훗..."


"백란아, 좋은 일이라도 있어?"


"그냥... 언니들이 재밌게 잘 지내고 있어서요. 큰오빠랑 작은오빠랑요. 그리고... 좋은 일은..."


(스르륵...)


먹던 고구마를 단숨에 삼킨 뒤, 헐렁한 옷을 입고,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 삼준의 속으로 부드럽게 파고드는 백란.


"...오빠 그 자체가, 너무나도 좋은 일인걸요. 자요. 이거 먹어요. 잠이 잘 올거에요."


"고구마... 아까 나눠주던 그 고구마지?"


"에헤헤... 조금 달라요. 제가 공들여 만든 고구마거든요. 히힛..."


"그래? 그러면 아주 고맙게 먹어야겠는걸."


따뜻한 찐고구마. 그 온기를 느끼며, 삼준은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하고도 건강한, 그리고 오묘하고도 부드러운 느낌을 즐기며, 그녀가 건넨 고구마를 천천히 씹어 삼켰다.


"에헤헤... 맛있죠? 같이 나눠먹으려고... 이만큼 가져왔는데..."


"그런데 그 하나 빼고 우리 백란이가 다 먹었구나?"


"우웅... 이히힛..."


부끄럽다는 듯 웃으며 더욱 깊이 파고드는 백란. 그 따스한 체온을, 맥박치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삼준은 서서히 불이 붙는 것 같은 마음을 애써 억눌러야만 했다.


"...하하... 백란이가 이런 어리광쟁이였나?"


"...그냥 어리광이 아닌걸요. 저..."


"백란아."


짐짓 근엄한 목소리. 움찔, 하고 움직이는 백란을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삼준은 조용히 그녀를 타일렀다.


"...넌 여동생이야. 난 너의 오빠고."


"...피가 이어져있나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우리는 사실상 남이잖아요. 주워온 자식이잖아요? 저랑 오빠는... 남남인 사이 아닌가요...?"


"...윽... 백란아..."


"...오빠를 오래 전부터 사모해왔는걸요... 저를... 부디... 제발..."


"백란...아..."


"...외로운 건 이제 싫어요... 오빠... 더는... 혼자 두지 말아주세요... 우우..."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의 이성은 그만 툭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백란아. 네가 자초한 일이다...!"


"네에... 오빠...!"




철퍽, 철퍽.


파도가 치는 것 같은 소리인지, 아니면 살덩이와 살덩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인지, 혹은, 음탕하기 그지 없는 물소리인지. 작고 좁은 방 한 구석에서, 그 철썩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응... 흐읏... 하으..."


"크읏... 백란아...!"


자신을 애타는 눈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올려다보는 여동생을 범하는 삼준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었다. 쾌락, 죄책감, 해방감, 정복감, 배덕감... 그리고,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로 깊은 사랑. 삼준은, 자신의 두 팔 아래에서 타오르는 촛불같은 따스하고 간드러지는, 흩날리는 것 같은 신음소리를 흘리는 소녀를, 여동생을, 연인을 품에 안고, 10년간 쌓인 묵은 애욕을 해소하고 있었다.


"...아우으... 잠시만...요... 배가...!"


"후...읏... 배가 왜...?"


"우으... 바... 방귀가... 마려워서... 잠시..."


고구마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그녀의 장. 그대로, 내부에서 미친듯이 꾸륵거리며 배회하는 가스의 격류를 내보내기 위해, 그녀의 장은 커다란 장명음을 내고 있었다.


"후우... 그렇다면야..."


순간 멈칫하는 삼준.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어째서 이 음란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방귀를 낭비해야 하는 것이지?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곧바로 실천에 옮기려는 삼준은, 그녀를 대뜸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그녀의 엉덩이 사이로 얼굴을 파묻기 시작했다.


"하...하으으읏?! 아...우웅...! 오빠아...앗... 장난이... 지나치...셔요...옷... 저어... 방귀... 뀌어버린다구...요옷...!"


"하아... 스읍... 뀌어다오... 그 냄새를... 더 맡고싶구나...!"


"느...흐에엣...?! 아... 아읏.... 안돼...요...옷...! 으응!"


뿌푸부루루부푸푸루부프프드드드드드드드드득! 뿌루루루뤼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릭! 뿌롸라락! 뿌푸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강 어귀에서 건져올린 썩은 동물 사체에서나 날 법한 끔찍한 악취가 터져나와, 금새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못해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가스를 빼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지만, 최근 이런저런 일로 바빠 거의 일주일 씩이나 제대로 된 가스를 제거할 시간을 갖지 못했던 그녀의 배는, 미친듯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방귀를 마구마구 내뿜고 있었다.


"크흡... 후우... 그래... 네 말이 맞구나... 그 고구마 때문인지... 너의 방귀가... 이렇게나 음탕하게...!"


"이...흐이잇... 오빠... 오빠앗...!"


뿌부룹! 뿌붜풔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럭! 뿌푸뤄러러러러러러러러러럭!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뿌부우우웃! 뿌부루루루루루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그리고, 그녀의 방귀를 더할 나위 없는 쾌락의 정수로 받아들이게 된 삼준은, 얼굴을 파묻다 못해 혀까지 꺼내 그녀의 항문을 정성스럽게 애무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옆구리와 가슴, 엉덩이와 허벅지를 고루고루 매만지며, 그녀로 하여금 온 몸에 달큰한 꿀을 바른 것 같은 폭발적인 쾌락을 선물하고 있었다.


뿌루루루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둑! 뿌부퓌뷔피피피피피피피피피핏! 뿌푸푸프르르르프프프루르프푸프프득! 뿟뿌루루루루르르르르르르륵!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빠아아아아아아앙!


항상 조신하기만 했던 이 아이가, 치마도 속곳도 모두 벗어던진 채로, 아랫도리를 축축하게 적신 채로, 엉덩이 사이의 깊은 구멍까지 드러내놓고 그 구멍을 뻐끔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라니, 그는 도저히, 이 상황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영민한 머리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귀여웠고, 아름다웠고, 음란했고, 한없이 지저분했다.


"흐으... 아... 너무... 부끄러...워요... 읏...!"


부푸푸부부루루루루르르프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뽜라라라라라라라랅! 뿌푸르르르릇-! 푸뷔리리리리리리리릭-!


한편 백란은, 자신의 엉덩이 골 사이에 얼굴을 모두 파묻고, 격한 숨을 내쉬는 삼준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뜨거운 콧김이 항문 끄트머리에 닿을 때 마다, 축축한 혀가 음부와 엉덩이 깊은 곳을 마구 핥을때마다, 따뜻하면서도 거친 손길이 허벅지와 엉덩이를 마구 훑을때마다, 온 몸을 전율하며, 뱃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요력이 빚어낸 '방귀' 를 아무런 저항 없이, 그의 안면에 마구 분사하고 있었다.


"크...흐읏... 하아... 하아... 너무 좋아... 이 방귀라는 것이... 이렇게나 음란한... 그리고 즐거운 것이었구나... 백란아..."


"아우으... 오...빠앗... 정마알... 우응..."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녀의 마음 속에서 피어난... 격한 감정은, 자신을 안은 오라비에게 방귀를 분사한다는 수치심보다도 더욱 커다랗고 강한 감정이 되어, 소녀의 마음을 서서히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꾸르르르르르르르르륵... 꾸륵... 콰르르르르르르륵-!)


"하아... 오빠야... 삼준 오빠..."


"후우... 이 소리... 백란아...?"


"...그렇게... 여동생 방귀가 좋아요...?"


"...너라서 더 좋은 것이지... 너니까..."


"그러면... 이것도... 좋아하시겠네요...?"


(부스럭... 푸확-!)


"...으븝!"


순식간에 그녀의 꼬리뼈 부근에서 꼬리 여덟개가 튀어나오더니, 이내 그 수많은 꼬리가 삼준을 감싸안았다.


"으음... 이건..."


"어때요? 제 꼬리... 언니들이랑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답니다...?"


"...푹신하구나. 부드럽고..."


"그리고... 이런 것도 할 수 있죠...!"


목과 얼굴을 휘감고 도는 보드라운 꼬리. 그 꼬리가, 삼준의 머리를 강하게 끌어당겨, 그녀의 엉덩이 사이 깊숙한 곳으로 집어넣었다.


"...으읍...?!"


"하아... 우웅... 오빠가 잘못하신 거에요... 저어... 이래뵈도 참고 있었는데... 이렇게... 이렇게 하시면...!"


뿌부퓌뷔피피피피피피피피피핏! 뿌푸푸프르르르프프프루르프푸프프득! 뿟뿌루루루루르르르르르르륵!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빠아아아아아아앙! 부푸푸부부루루루루르르프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뽜라라라라라라라랅! 


삼준은 코 끝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아까보다 몇십 곱절은 심해진 것 같은 썩은 악취가, 삼준의 코를 미친듯이 물어뜯고, 할퀴어댔다. 호흡이라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 괴로웠다. 의금부에서 불에 달군 인두로 코를 지지는 형벌을 받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삼준. 하지만, 그 온 몸이 불살라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삼준은 그 어느 무엇보다도 강렬한 쾌락과 즐거움을 느끼며,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먹지 못해 안달이 난 아이처럼, 백란의 온 몸을 마구 만지고, 쓰다듬고, 냄새를 맡으며, 그녀와 더욱 진하고 깊게, 그리고 지저분하게 몸을 섞고 있었다.


"...너무... 좋구나... 백란...아...!"


"오빠...! 오빠...하앗...! 으그흐아앗...!"


살갗과 살갗이 닿으며 농밀한 관계가 이어져갔다. 부드럽고 따스한 서로의 체온을, 그리고 불타오르는 작열감을 안겨주는 방귀를 맡으며 극한의 쾌락에 빠진 삼준과 백란. 부드러운 꼬리로 함께 감싸진 둘은, 움직일 때 마다 벽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방귀의 악취를 맡으며, 함께 절정에 다다르며 달콤한 일탈을 마무리했다.


"읏... 오빠...!"


"크읏...! 백란...아...!"


뷰퓨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릇-! 뷰류류류륫-! 뷰륫... 뷰퓨퓨프르르르르르릇-! 뷰릇... 뷰웃...


"...하아... 하아... 오빠..."


"...후우... 아프진... 않았지...?"


"...응... 같이 자자..."


"...그래... 내일은 일이 많으니..."


작은 창 너머로 쏟아지는 어스름한 달빛을 받으며, 둘은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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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삼준. 기지개를 펴던 그는,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잠든, 쫑긋거리는 귀여운 귀와 푹신한 꼬리를 살랑거리는 백란을 보고 피식 웃으며 그녀의 귀를 매만졌다.


"...응우웅...? 오빠...?"


"아, 미안. 깨워버렸네. 후후..."


"헤헤... 일찍 일어나면 좋죠 뭐. 저어... 어제 밤에 물 길어놨으니... 그걸로 세면이라도 하실래요?"


"그게 좋겠구나."


"...앗...우으..."


"요녀석. 내가 무리하지 마라고 했지?"


"에헤헤..."


일어나려고 하다가 앞으로 풀썩 쓰러지는 백란. 삼준은 그런 그녀를 들쳐업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솨아... 첨벙...)


"...후아... 어쩌다 보니 멱까지 감게 되었구나. 분명 세수만 하려고 했는데..."


"뭐 어때요? 덕분에 강가까지 나와서 잠도 깨고."


"으이그... 물도 안길어놓고 핑계는. 푸훗..."


"헤에... 길어놓은 줄 알았는데..."


두레박에 물을 퍼담으며, 아침을 준비하기 위한 물을 준비하는 백란. 몸을 정갈하게 하고 옷을 입으며 밖으로 나오는 삼준을 본 순간, 백란은 물통을 툭 떨어트릴뻔 했다.


"...왜 그러냐? 어디 뭐 묻어서?"


"...에헤헤... 아무것도 아니에요..."


"풋... 그래. 어서 들어가자."




(저벅... 저벅...)


"음? 다들... 다들 일어났네."


그 말대로,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하던 백란의 두 언니도, 삼준의 두 형님들도 일어나서 신선한 공기를 쐬며 잠을 쫓고 있었다.


"...나 허리아파."


"...미안해. 이준."


"허리뿐만 아니라 다리도 아파. 아직도 목도 마르고... 피곤하고... 머리아프고... 집중 안되고... 코도 떨어질 것 같고... 약효 풀리니까 어지럽다구..."


"그으... 아윽! 미안하다니까!"


"...참, 둘이 성격이 참 비슷하네. 형으로서 어떻게 생각해, 일준아?"


"...내 앞에선 안저랬는데. 홍란이가 많이 편한가봐. 이준이가. 훗..."


"그런가? 후후... 아, 우리 막내 오네."


"우리 막내도 오는군. 어디 갔다 오는거야?"


"물도 길고... 전 멱도 감았죠. 이제 저는 관아로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너도 일해야지 그래."




"...으응...?!"


순간, 백란이 귀를 쫑긋 하고는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백란아? 왜그래?"


"...아, 왜 그러는지 알것 같은데..."


홍란과 청란 또한 몸을 일으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마치, 익숙한 누군가가 오는 것을 감지한 듯.


"...엄마...?"


"너희들, 나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안 들어오는거야?"


(팡-!)


눈 앞에 자욱한 안개를 일으키며 나타난 한 마리의 커다란 은빛 여우. 백란은 꼬리를 흔들며 커다란 여우에게로 다가갔다.


"엄마!"


"...참, 너도 많이 변했구나. 그래. 인간 세상은 어떻더냐?"


"...재밌었어요. 재미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고, 화나는 일도 있었지만... 저... 헤헤... 지금은 행복해요. 언니들이랑... 오빠들이랑..."


"...그래. 후후... 그거 아니? 넌 우리 중에서 가장 인간의 피를 진하게 타고 태어난 아이였었단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지."


"...네에..."


"...자, 그러니... 삼준. 이라고 했지? ...우리 딸을 잘 부탁함세. 자네들도."


"...제가 체력이 좀 딸려서 말입니다. 아직도 허리가 아ㅍ..."


"아 좀!"


"...풋... 제가 잘 돌볼게요."


따뜻한 가족애를 나누는 현장을 뒤로 하고, 삼준은 자리를 뜨려 했다.


"음? 자네 어딜 가나?"


"...아, 제 일을 하러 갑니다."


"...흠. 관아로 출두할 생각이로군?"


"...이거 참. 어사 파직이군요. 이렇게야 쉽게 들켜서는..."


"...내가 1200살이 넘는 요호인데, 내 앞에서 뭘 숨기려고 하다니. 후후... 발칙하고 귀엽네. 우리 딸이 눈여겨볼만해."


"어흠... 그렇습니까? 이것저것 알아야 할 것도 많아서요."


"...흐음... 그나저나 다들 인간 모습인데, 나만 이러고 있으면 좀 신경이 쓰이겠지? 기다려보거라."


(휘릭-! 팟-!)


안개를 뿌리고 재주를 넘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여인으로 변한 그녀. 태어나 처음 보는, 그녀의 세 딸들은 신기해하며 그녀 주위를 둘러쌌다.


"우와...! 엄마... 이런 모습이었구나...?"


"으응... 근데 키가 엄청 크네?"


"엄마니까 그런 거 아닐까?"


그리고, 삼형제도 한 마디씩 했다.


"...묘하게 홍란이를 닮으신 것 같기도 하고..."


"기골이 장대하시군요. 흠... 제가 6척이 조금 넘는데..."


"얼추 8척...?"


"후후... 천 년 묵은 여우를 얕보지들 마려무나. 자... 그럼, 우리 아이들이 지내는 마을 산책이나 한번 해볼까?"


위엄있게 나서는 여인. 그 모습에, 삼준은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제가 무엇이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이름이..."


"이름이라... 그런 것은 생각해본 적 없구나. 나에겐 너무나 의미없는 것이거든. 나의 딸들도 그러했고. ...하지만, 이렇게 다정하게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을 보니..."


몸을 뒤로 돌리고, 허리와 다리를 굽히며 자신의 세 딸과 삼형제에게 접근하는 흰 여우.


"...그래. 나도 하나 정도는 갖고 싶구나. 이름이라는 것을."


"음... 저, 제가 글자를 조금 알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호선이라는 이름은 어떠신지요?"


"호선?"


"여우를 뜻하는 호, 그리고 신선을 뜻하는 선을 합친 이름입니다. ...산신령처럼 보인다고나...할까요?"


"푸훗... 인간들에겐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지. 좋다. 그 이름, 받아들이마. 그럼 이만, 후후..."


(휘오오-!)


휘몰아치는 안개와 함께,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호선. 삼준은 비로소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함께 가지, 동생."


"그래. 심심했는데 마침. 아, 여우구슬인지 뭔지 그거 먹고 난 뒤로 몸도 한참 가벼워져서."


"아, 그럴까요? 대신, 잠시 주막에 들러서 제 수행원들을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일준과 이준 또한 함께 나설 준비를 했다. 그리고, 세 마리의 여우는 자신들이 할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흐음... 그럼 우리는 얘들 다음에 들어갈까?"


"응. 그게 좋겠네. 막내야, 우리랑 같이 동참하는 건 처음이지?"


"...우으... 조금 긴장... 언니... 무슨 일을 하게 되는거야?"


"후후... 긴장할 것 하나 없어. ...아, 너흰 먼저 출발해. 우린 조금 시간이 필요해서. ...아, 그리고, 이준이 잘 부탁할게. 저 허당, 은근 약하더라고?"


"글쎄다. 너 구미호랍시고 나를 아주 바짝 쥐어짜겠노라고 엄포를 놓던 것 치고는 그냥..."


"이익... 빨리 저리 가!"


(타닷-!)


"...애가 좀 새침데기라서 그만. 자, 나중에 보자고. 가자, 백란."


"응. 언니."


(타닷-! 타닷-!)


멀어져가는 여우들을 보며, 세 형제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몇 분 뒤, 주막.


"...얼추 한 시간은 걸리던 거리지만..."


"지금이야 뭐 아주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요. 여우구슬이 좋죠?"


"그러게요. 형. ...아, 저깄군."


아침부터 술잔을 기울이며, 농땡이를 피우는 둘. 그리고, 그 둘의 곁으로 순식간에 다가가 둘의 귀를 잡아올리며, 타박을 주는 그였다.


"야, 야야, 성익이랑 이성이, 둘 다! 아침부터 술판이야?!"


"아... 아이쿠 나리! 잘못했습니다요! 나리가 안 오셔서 그만!"


"아야야얏...! 얌마! 너는 이 상황에서까지 남탓으그극... 아파요! 그만!"


"...에휴. 그래. 내 잘못이다. 너무 늦게 와서 말이지."


"풋... 우리 막내 삼준이도 은근 한 성깔 하네."


"...흠... 놀리지 마십쇼. 형님."


"...형님? 저... 뒤의 두 분이..."


"그래. 내 형님들이시다. 예를 갖춰라."


"처음 뵙겠습니다요. 전 홍문관에서 서리로 일하는 김성익이라고 합니다."


"저는 역졸 이성이라고 하옵니다."


"그래. 어서 관아로 가보도록 하지."


"에? 나리, 역졸들이 더 필요하진 않으시겠습니까?"


"날 믿어라. 역졸보다 더 든든하신 분들이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너도 주인 잘못 만나서 쉬지도 못하고 고생이로군."


일준이 검을 빼들며 나지막히 중얼거렸고, 옆에서 이준도 날카로운 도끼를 꺼낸 뒤, 길다란 중검을 허리춤에 차고 읊조렸다.


"내가 쓰러트린 호랑이, 곰, 이리, 승냥이가 어느덧 이 두 손으로 셀 수도 없을 지경이로군. 사람이라니. 고작 그런 것에 겁을 먹을 것 같나?"


서슬 퍼런 기세에, 둘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얌전히 세 형제의 뒤를 따랐다.




(저벅... 저벅...)


"...으음... 숨을 쉬기 힘든 정도의 악취가 나는군."


"코가 뻥 뚫릴 것 같습니다."


"그럭저럭 버틸 만 한데요?"


"...젊어서 부럽구먼. 에휴... 내가 홍문관 돌아가면 이 짓도 때려치던가 해야지..."


콧물이 줄줄 흐르는 코를 닦으며 중얼거리는 성익.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위를 둘러보는 이성. 그 둘과는 달리, 이미 여우들과 하룻밤을 지샌 세 남자들은, 이 악취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수행원들도 대충 눈치를 챈 듯 했다.


"어음... 혹시... 혹시 우리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훨씬 더... 거시기한 뭐가 있기라도 한 것일까요?"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지?"


"...주막에서 어떤 꼬맹이들이 준 고구마를 먹었다가 음... 조금 험한 꼴을 당했지 뭡니까. 부끄럽게도..."


"그런디... 저희가 그런 몰골로 있었는디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데요?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 처럼..."


"눈치가 아예 없진 않군. ...자, 이제 마음 단단히 먹어라. 관아로 출도할 것이니까."


(끼익-!)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삼준과 형제들. 암행어사 출도야, 라고 외치려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기묘한 풍경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아하. 너희들 왔구나? 언제 오나 했지."


사또가 일을 봐야 하는 관아의 중앙 자리에, 커다란 궤짝을 놓고 그 위에 앉은 호선. 그녀의 곁에는 꼬리가 세 개 정도 되는 하급 요호들이 그녀의 수발을 들어주는 동시에, 사또의 옆에서 백성들을 수탈하는 데 앞장섰던 육조를 담당하던 탐관오리들을 묶어놓고 그녀들만의 방식으로 처벌을 가하고 있었다.


부브르르브프프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뿌부부부부부붓-!


"으... 으으... 제발 그만..."


"아하아... 시원해... 하우으... 이게 요력을 순환시키는 방법이구나? 우후훗..."


"어... 호선...님? 이게..."


"아, 우리 귀염둥이들은 신경쓰지들 말고 어서 들어와. 일들 하라고."


"...네. 음... 일단 곳간부터 봐야겠군. 형님들, 잠시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성익이랑 이성이 자네. 자네들은 저기... 저 분께 가서 장계를 작성하게나."


"예 나리."


"알겠사옵니다. 킁... 이제 좀 익숙해졌군."


유척을 꺼내들고 곳간의 기구들을 조사하기 시작하는 삼준과 그를 돕는 그의 형제들. 한편, 두 수행원은 삼준의 명을 받고 호선에게로 다가갔다.


"저... 장계를 작성하러 왔습니다."


"으흠? 장계? 그건 무엇이지?"


"아, 이 고을의 수령, 즉 군수라던가 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ㅈ..."


"...잠시 실례. 흐응..."


뿌루룹! 뿌푸프드드드드드드듯! 뿌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천자총통을 쏘는 것 같은 괴멸적인 폭발음이 울려퍼지며, 옷자락이 펄럭펄럭 휘날릴 정도의 강렬한 열풍이, 축축하고도 뜨거운 악취를 머금고 몰아닥쳤다. 제법 훌륭하게 잘 버티고 있던 이성도 코를 감싸쥘 정도였고, 원체 이런 냄새에 약했던 김성익은...


"...우우웩!"


...더는 버티지 못한 듯 했다.


"...흥? 너무 심했나?"


"...어쩌면요?"


"그렇게 말하는 네놈은 잘도 버티고 있군. 푸훗... 맘에 들었다. 인간."


"...감사합니다? 음. 아녀자한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은 처음이라. ...서리님, 일어나시지요? 음?"


거품을 물고 기절한 그를 그늘로 옮기려는 순간, 그녀가 깔고 앉은 궤짝이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흥. 아직도 힘이 남아있나보군. 다음 번에는 의식만 유지하고 힘은 쭉 빼버리는 저주를 걸어야겠어."


뿌봐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푸롸라라라라라라락!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다 꺼져가는 신음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리는, 코와 입을 갈고리로 사정없이 긁어 찢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악취.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이성은, 이내 마땅히 관아에 있어야 할 사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후후... 눈치 챈 모양이네. 그래. 이 녀석, 맨날 냄새난다고 우는 소리나 하면서 일을 안 한다고 그러더라고. 믿을 수가 없어가지고 가서 보니까 진짜더라? ...아, 이거 장계에 적으면 되겠네. 그치?"


(탁-)


그녀가 손가락을 탁 튕기자, 허공에서 붓이 나타나더니 자유롭게 춤을 추듯 종잇장 위에 글자를 써내려갔다.


"아, 장계는 대충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로군? 모월 모일 밀린 백성들의 상소가 아직까지도 처리되지 않음... 아, 실례. (뿨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럭! 뿌푸푸푸부루루루루루뤼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릭!) ...흐응... 그리고 모월 모일에는 병환을 핑계로 일을 보지 않았음... 그리고 또... 아, 자꾸 끓네... 이봐 인간, 버틸만하지?"


"못 버티고 기절한 아저씨는 저기 모셔뒀죠. 전... 쿨럭! 네. 조금 독하긴 한데. 괜찮네요."


"아... 정말, 갈수록 마음에 드는 인간이라니까? 자, 힘 내서... 으응...! (뿌두두두두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룹! 뿌보포로보로로보로로보로로로보로로로로로로로로로록! 뽀뷔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피피피피픽! 뿌뤼리리리리리리리릵!) 하아... 힘내서 저기 기절한 친구 몫까지 대신 써야지. 그렇지? 후후..."




그렇게 호선은, 무언가가 들어있는 궤짝의 위에 걸터앉은 채로, 요력을 통해 과거의 모든 일을 낱낱이 분석하여 파헤친 뒤, 요력을 담은 붓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두꺼운 장계를 막힘없이 써내려나갔다.


(꾸르르르르륵...)


"흐음... 뭐 파도 파도 끝이 없니? ...아. 또 속이..."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뿌부부부부부부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룹! 뿌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풉!


...물론, 그렇게 장계를 오래 써내려가도록 그녀의 방귀가 멈추는 일은 없었지만.


그리고 그 때, 


"...장계는 어떻게..."


"한번 보게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군요. 여기..."


"이게 뭔가?"


"...곡식을 세금으로 징수하는 도구들을 일부러 크게 만들어 세금을 더욱 많이 걷었고, 나누어줄때는 반대로 작게 만들어진 도구를 이용한 흔적입니다."


"흐음... 야, 아주 악질이네?"


발뒤꿈치로 상자를 퉁퉁 치는 호선. 일부러 어지러우라는 듯, 큰 소리가 나도록 상자에 발길질을 하던 그녀는 다시금 배를 부여잡고는 뱃속에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방귀의 폭풍을 쏟아냈다.


"...흥...!"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뿌프프프프프프프프프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뽀보보보뷔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릭! 뿌뷔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빗!


"...하아... 역시 인간 모습은 조금 불편하다니까."


"쿨럭... 후우... 참... 굉장하네요."


"칭찬으로 받지. 후훗... 음?"


"왜 그러십니까?"


"...아니... 우리 애들이 왔단 말이지?"


자신의 세 딸, 백란, 홍란과 청란의 기운을 느낀 호선은, 살짝 정신을 집중해 그 곳에서 전해져오는 기운을 탐지했다.


"...으응? 흠... 우리 아이들만 온 게 아니네?"


"네...? 그게 무슨..."


"음... 다른 여우들이랑 아낙들도 많이 왔네. 무슨 일일까?"


"음? 다 아시는 거 아니었어요?"


"...이 마을에 자주 오질 않아서 말이지. 그리고, 우리 애들도 나한테 걱정끼치기 싫다면서 비밀로 하는 것들도 많고. 그래서 나도 내 발품 팔아서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냈지 뭐니?"


"...그런... 그렇구나..."


(벌컥-! 우당탕!)


"뭐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 있으려고 그래? 이제 슬슬 우리한테... 엄마?"


관아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궤짝에 앉아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호선을 본 세 자매는 


"어머, 둘째 왔구나? 첫째랑 막내도 왔네?"


"...어...엄마...?! 여... 여긴 왜..."


"엄마한테 뭘 숨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니? 우리 막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엣... 그... 그건... 그... 죄송해요..."


"아니~ 얘들아,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말하는 게 먼저 아니니?"


"그치만... 우리 막내 이렇게 고생하는 거 보면 엄마가 많이 걱정할까봐..."


"...어휴, 그래. 어련하겠어. 언제 말하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그렇다고 10년씩이나 넘게 말 안할줄은 몰랐단다. 이 불여시들아."


"에헤... 죄송해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 백란.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마찬가지로 멋쩍게 웃는 청란과 홍란.


"그래서, 무슨 일로 왔어?"


"그... 그게..."


언니들한테 무슨 일을 하게 된 것인지 귀띔을 들은 백란은, 제법 부끄러워하며 좀처럼 말을 하지 못했고, 그런 그녀를 대신해 청란이 대신 호선에게 달려가 그녀에게 자신들의 목적을 속삭임으로 전해주었다.


"으흠... 흐음... 후훗... 오호호! 그래? 그거 괜찮은 생각이로구나. 후후..."


청란으로부터 무언가를 전해들은 호선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7척에서 8척에 달하는 거대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자신이 앉아있던 궤짝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후후... 이제 잠깐 바깥 공기나 좀 쐬게 해주어야겠네."


그녀가 의자처럼 쓰던 궤짝의 윗부분은, 커다란 구멍 하나가 뻥 뚫려있었다. 그녀의 발길질이 상자에 닿을 때 마다, 싯누런 연무가 그 구멍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나며, 궤짝 안이 얼마나 지옥같은 상황인지 설명하고 있었다.


"...나와!"


(쾅-! 우지끈!)


상자를 발로 걷어차 와장창 무너트리며, 안에 갇혀있던 무언가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호선. 물론, 그 안에 들어있었던 것은...


"으...으허헉...! 제발... 제발 그만...! 살려..."


"아... 쫑알쫑알 시끄럽군. 야산에 던져놓으면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어져 죽을 녀석이... 오래도록 살 수 있게 해줬는데도 이러기냐?"


"크...우욱... 우웨엑...!"


...10년 전, 그들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했던 고을의 사또였다.


"이야... 10년만이네."


"...흠..."


오랜만에 그 면상을 본 이준과 일준은, 각기 손도끼와 장검을 꺼내들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들었고, 마패를 내보이며 앞으로 나서는 삼준이 그 공포심을 사또의 가슴 속에 깊이 때려박았다.


"...나를 알겠느냐."


"히...히이이익...! 사... 살려주십시오! 반성하겠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비굴하게 바닥을 기는 그를 보며, 삼준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엄포를 놓았다.


"네놈의 치부를 낱낱이 조사했다. 노름과 술에 빠져 민생을 돌보지 않고,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도록 변명만을 늘어놓으며 본분을 외면하고, 무엇보다도 공명정대해야 할 세금의 징수마저 그렇지 못하게 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수탈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진해서 내는 세금으로 위조하여 백성들의 재물까지 수탈하다니,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네놈이 지은 죄가 무엇에도 비할 바 없이 무겁구나.


"아...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목숨? 푸훗...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삼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사또는 지레 겁을 먹은 듯 했다. 그리고, 삼준은 사또에게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목숨이라니. 그래도 죽는 것 보다는 악취의 구덩이 속에서 구르는 것이 더 즐거운 모양이지?"


"...예? 예?! 그...그건...!"




사또가 절규하듯 외치는 소리가 무색하게, 발랄하면서도 섬뜩한,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이제서야 우리 시간인건가?"


"그런 듯 하군, 오래들 기다렸다. 오늘도 고생좀 해줘야겠어."


홍란과 청란이 피식 웃으며 길을 열자, 그 뒤로 얼추 스무 명은 되어보이는 각양각색의 여인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하아... 오늘도 스트레스 좀 풀까?"


"으이구... 남편인지 웬수인지 모르겠다니까? 여기서라도 잠시 속 좀 달래야지."


"으응? 오늘은 개똥이 엄마도 왔네? 얘, 잘 생각했다니까? 여기서 화난거 좀 달래면, 집에 가면 훨씬 기분도 좋아지고 서로 화도 안낸다니까? 어쩌면... 아들이나 딸이나 하나 더 볼 수 있을지도? 호호!"


"어머어머... 얘는 정말! 우후훗..."


(우르르르르...)


"...아니 잠깐, 이게 다 무슨..."


"음... 청란이한테 물어봐야 하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관아에 들어오자, 첫째와 둘째는 제법 당황한 듯 했지만, 막내 삼준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피식 웃으며 사또의 부정을 빼곡히 적은 장계들을 챙겨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응? 막내야, 너는 이 상황이... 익숙하냐?"


"아니요? 저도 처음이긴 한데... 백란이가 와서 귀띔해주더군요.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 말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래? 왜 우린 몰랐지?"


"형님들이 저기서 물건 꺼내시느라 바쁠 때 몰래 와서 전해주고 다시 도망가더군요."


"...그렇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한동안 저기... 저기는 근처도 가지 마세요. 아무리 멱을 감아도 씻겨지지 않을 악취가 남을 테니."


"...어째서 그 말이 이리도 무섭단 말이냐? 어제 그건... 장난 비슷한거였단 말인가?"


"...돌아가야죠. 저는 장계를 정리해야 해서요. 그리고..."


그때, 이성이 소쿠리에 두루마리를 빼곡히 담아와 말을 걸었다.


"음, 나리. 여기, 장계 추가분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고생 많았네. 이성. ...성익은 왜 그러고 있나?"


"...저기 흰 분의 악취를 감당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럴 법도 하군. 자, 형님들, 그럼 저는 잠시 저 안채 안에서 장계를 정리할 테니..."


"우린 먼저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고생이 많다. 삼준아."


(화아아아아아-!)


그 순간, 안개가 자욱히 피어나더니 세 형제의 앞에 호선이 나타났다.


"잠시, 이 아이는 내가 볼 일이 있는데... 잠깐만, 괜찮을까?"


"음... 알겠습니다. 대신, 유시가 되면 이성을 제가 있는 곳으로 보내주셔야 합니다. 전하께 장계를 올리러 가야 하니 말입니다."


"후후... 유시라, 닭들이 다시 닭장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대로구나. 알았다. 내 그리 하마. ...너희도 돌아가보거라. 고생 많았고... 우리 홍란이랑 청란을 잘 부탁하마. 후후..."


"예. 그럼..."


"...에?"




(타박... 타박... 끼익...)


두 형제가 떠나고, 막내 삼준은 기절한 성익을 데리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안채로 들어갔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이성에게 호선이 다가왔다.


"후후... 귀여운 것, 아주 잘 버텨주더구나."


"저... 저 별로 맛 없어요..."


"어머? 우후훗... 이런 귀한 인간을 우리가 왜 먹니? 그저..."


(쿡쿡...)


"...읏... 저... 이런 희롱은..."


이성의 바지를 툭툭 건드리는 호선. 볼이 빨개진 숫총각 이성은 헛기침을 하며 뒤로 몸을 뺐지만, 그의 아랫도리는 욕구에 참으로 솔직해져, 커다란 강물에서 용솟음치는 회오리마냥 우뚝 솟아있었다.


"푸후훗... 하아... 그래, 남편인지, 잡것인지, 그 빌어먹을 여우 놈이 바람이 난 뒤로 환멸이 나서 수컷들은 상대를 안 하고 있었다만... 우리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 나니, 조금 생각이 바뀌었지 뭐니?"


"읏... 저기..."


"호선이라 부르라."


"호...호선 님... 저... 저는... 이런 건 해본 적이 없고... 또..."


"괜찮단다. 괜찮아. 아가야. 후후... 그저,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의 일장춘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한 이성은, 자신보다 얼추 두 척 하고도 반 척은 더 커 보이는 여인을 올려다보며, 심정을 털어놓았다.


"...일장춘몽이라... 그렇다면, 이 일이 끝나면, 저는 다시는 이 꿈을 꿀 수 없는 것인가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호선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아련한 마음을 담은 숫총각의 진심이었다.


"...후후... 우후훗! 마음에 들었다. 자, 따라오너라. 그래... 너도 그런 마음을 품은 것이지? ...여성이 이렇게나 추잡한 소리를 내며, 아랫도리에서 달큰한 물을 뚝뚝 흘리며 더러운 바람을 마구 뿜어내는 것이, 한없이 음탕하다고 생각한 것이지?"


"...네..."


"후후... 우후훗! 솔직해서 더욱 좋구나. 이렇게 귀여운 아이라니... 아아... 조금이라도 더 인간 세상에 관심을 가질 걸 그랬구나. 자, 따라오거라. 좋은 것을 보여주지."


그의 손을 이끌고 가는 호선. 마치 어머니와 아들과도 같은 모습이었고, 이성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끼익...)


관아의 구석진 곳에 자리한, 낡은 창고와도 같은 방. 그 방 한가운데는, 특수한 주술이 걸린, 위 아래가 막히고 옆면에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 원통이 하나 있었고, 한 켠에서는 아녀자들이 아랫도리에 걸친 치마를 벗으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더라? 후후... 좋은 거 알려줘서 고마워요. 후후..."


"뭘~ 나는 그동안 너희들이 힘들었을 거 생각해서 제안만 한 것 뿐인걸? ...아, 엄마?"


"후후... 참 좋은 계책이로구나. 홍란아."


"어머... 그쪽은 이름이 홍란이셨군요? 후후... 이제서야 이름을 알게 되네요."


"아유... 너도 참, 잡담 그만하고 이거나 먹어둬."


포대자루에 가득 담긴 고구마를 가져와, 서로에게 나눠주는 그녀들. 달덩이같은 엉덩이들을 씰룩거리며 고구마를 야무지게 먹는 그녀들을 본 이성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어어... 그러니까... 저 여기 있어도 되는 거 맞죠?"


"후훗... 그렇다니까. 아... 나도 좀 배가 고픈데. 청란아, 내꺼 있지?"


"그럼요. 여기요."


"고마워라. 후훗..."


얼추 스무 개는 되어보이는 고구마를 몇 분이 채 되지않아 순식간에 해치운 호선. 금새 가스가 부글거리기 시작하는 배를 문지르던 그녀는, 이성을 데리고 잠시 방 구석에 앉으며, 피식 웃으며 자신의 세 딸들과 그 사이에 섞인 아녀자들을 바라보았다.


"후후... 인간한테는 자극이 너무 큰 것이 아니려나 모르겠네?"


"저... 그럴까요...? 근데... 무슨..."


(꾸룩... 꾸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룩...)


그와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여인들의 배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녀들은, 씩 웃으며 엉덩이를 뒤로 쭉 빼밀고, 원통에 난 구멍에 자신의 양 엉덩이 사이 항문이 자리하도록 위치를 잡았다. 그리고, 곧이어 원통 안쪽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나, 여인들은 듣기 싫다는 듯, 무심하게 더더욱 큰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 온다 온다... 으응...!"


뿌루루루루루루루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뿌푸푸루루루루루루루룹!


...아랫입으로 말이다.


"어머... 얘, 너는 그렇게 참고 있었어? 너도 참... 돌쇠 그런거 좋아한다니까~ 왜 말을 안믿어? 응... (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부프프프프프프프픗!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하아... 이렇게 내뿜으라니까. 응?"


"하으... 그치만, 이거 뀌고 남은거인걸? 아주 기절 직전까지 뀌어줬고... 그... 흰색 끈적한... 아응! 몰라! 아무튼 이게 남은거라고! 아으... 소리질렀더니 또..."


부루루루루드드드드드득! 뿌푸푸푸프르르르르르르르르르프프프프프픅! 뿌뷔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릭! 부뷰쥬쥬쥬쥬류류류륙!


"으헤~ 대단한데?"


풋풋한 여인들은 총각들 이야기를 나누면서 원통 안을 방귀로 가득 채우며 시간을 보냈고,


"어으... 요즘 보리밥만 너무 먹었나?"


뿌루루루룩! 뿌푸푸푸푸푸푸푸풉! 뿌우우우우우우우우으드드드드득! 뿌푸루부푸부루루붑!


"어우... 두팔이 엄마도 참, 눈치가 그렇게 없어? 저번에는 고구마 줄기무침까지 해줬다면서 남편이?"


"...으응... 그럼 설마...?"


"어머머... 호호! 여기서 너무 많이 뀌면 안되겠네~? 으응... (뿌부부프프르르르르브프프븝르르르프브드드프르르브프픅! 뿌뷰뷰뷰뷰뷰류류류류류류류류류류류류류류륙!) ...하아... 나는 이거 그대~로 전해주면 우리 남편님 또 기절해버려서, 우후훗... 조금 빼고 가야겠더라고~ 호호!"


잘 익어 고개를 숙인 벼이삭처럼 농염한 매력을 뽐내는 아낙들은 남편 이야기, 아이 이야기, 미용 이야기 등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며 방귀를 뀌었고, 


뿌푸루부푸르브르르프프드드드프프르르르르르르프프프브브브브브브브븟-!


"하아... 시원해. 오랫동안 인간 모습으로 지내다 보니까 방귀만 늘었다니까?"


"아우으... 그래도 언니들 정도면... (뽜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나은 편이지... 나는 진짜... (뿌부프드드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아까부터... 진짜 찰나의 틈도 없이..."


뿌루루루루루루루루루르르르드드득! 뿌푸푸푸푸푸푹! 뿌아아아아악!


"하아... 이러는데에..."


"후후... 우리 막내 장이 아주 튼튼하네? 아... 이런, 고구마를 너무 먹었나..."


뿌부왁! 뿌부프르르프프프르르르르르프프브르르륵! 뿌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루루루루루루룩!


"우와... 다들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렇게 요력을 담아두실 수 있는거에요? 읏...! (뿌루르르륵! 뿌푸푸푸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뿌루루룩!) ...으하아... 전 이렇게 만들어지는 족족 나오는데..."


"응? 아하핫! 우리 막내가 먹는 음식에 정답이 있으려나? 인간들보다 한 다섯배 많이 먹으면 될지도?"


이 모든 것을 주도한 세 여우 자매들은, 그녀들이 숲 속에서 꼬셔온 여우 요괴들과 함께 흘러넘치는 요력이 만든 가스를 분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우와아..."


"우후후... 이성이라고 했지? 너, 꽤나 쾌락에 솔직한 인간이로구나? 우후후... 아주 마음에 들었어. 푸후후훗..."


딱딱해져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의 쥬지를 툭툭 건드리며, 피식 웃는 호선. 그리고 부끄러워하는 이성.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호선의 뱃속에는...


(꾸루루루루루루루루룩...)


"어머... 나도 준비가 다 된 모양이네."


...가히 재앙이라는 표현으로 부족한, 이 자리의 여인들의 방귀를 모두 합친 것 보다도 강렬한 악취를 풍기는, 진심전력이 담긴 방귀가 부글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후우... 으으응...! 하아... 오늘은... 다들 여기까지만 하실까? 벌써 신정시가 다 되었네."


"어머, 벌써? 아쉬워라~"


"분이 엄마. 다음에도 기회는 많으니 걱정 붙들어 매~ 응? 푸후훗..."


"아... 아차! 오늘 돌쇠가 유초시에 만나자고 했는데...!"


"그래? 서둘러야겠네? 푸후훗... 나도 득칠이나 보러 갈까나~"


(우르르르...)


왁자지껄 잡담을 나누며, 순식간에 밖으로 흩어지는 아녀자들. 그리고, 호선의 세 딸만이 남아, 그녀에게 귀띔을 해 주었다.


"요력으로 저 자의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는 있지만, 어머니, 너무 강한 힘은 쓰지 마셔요."


"걱정 마려무나. 후후... 내 실력, 너희가 더 잘 알지 않느냐?"


"그건 그러네요. 후훗... 엄마, 좋은 시간 보내요? ...거기 인간?"


"...예? 그... 좀 어지럽네요. 나쁘다는 건 아닌데..."


"푸훗... 뭔 말 하려는지 대충 알 것 같아. 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 대신... 우리 어머니를 즐겁게 해줘야 해?"


"...이 한몸 바쳐서..."


"아하하! 역시 인간들은 재밌어~"


홍란까지 밖으로 나가자, 단 둘만이 남았다. 아, 단단히 잠긴 나무 원통 속에 갇힌 사또를 포함하면 셋이지만.


"후으응... 이 순간을 어찌나 기다렸는지..."


그녀는, 익숙한 듯 엉덩이를 가린 치마와 속곳을 훌훌 벗어던졌다. 백옥같은 하얀 살결, 살짝 삐죽 튀어나온 것이 나오는 음모, 땀방울이 살짝 흐르는 볼기짝. 문자 그대로, 남심을 자극하는, 폭력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관능적이고 육감적인 몸매였다.


"우후후... 눈을 떼질 못하네, 인간? 아니... 이성?"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어마무시한 몸매에 시선을 완전히 강탈당해 불타는 색욕만을 느낄 터였지만, 희미한 빛과 함께 슬쩍 비춰진, 그 묵직하고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둔부를 본 나무통 안의 사또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아마, 묘지에서 뻣뻣한 시체가 되살아나 '내 다리 내놔~' 하고 쫓아오는 것 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후후... 공포심이 느껴지는군. 어이, 거기 너. 제대로 느껴보라고. 어미의 분노를. 그리고... 독기를. 푸후훗..."


"그만... 그만...해... 이제... 할만큼... 했잖아...!"


"...10년 전. 네놈이 한 짓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차가워졌다. 서릿발같은 목소리로 분노를 표하는 그녀는, 영락없는 구미호 요괴였다. 요괴가, 진노하고 있었다.


"...내 딸이... 그리고 우리 막내딸을 친자식처럼 키워준 고마운 분들이... 그리고, 그녀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오라비들이...!"


(꾸륵... 꾸르르르르르릉...)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느냐?! 아니면... 네놈 일도 아니라 신경 쓸 것 없다는것이냐! 이 악독한 것!"


"...히...히이이이...! 죄송합니다!"


"...흥. 목숨만은 부지해주지. 영원히, 아주 오래오래 살아라."


"...예...?"


"오래오래... 우리 고을 사람들의 화풀이 인형으로 살라는 것이다!"


(꾸르르르라라라라라락...!)


"아...아아...! 차라리 죽ㅇ..."


뿌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뿌뿌부부봐롸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지붕이 들썩들썩 울릴 정도로, 방구들이 우르릉 내려앉을 정도로,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그 형태를 조금 잃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강렬하고 구역질나는 방귀의 초강태풍이 휘몰아쳤다. 그녀가 틀어막은 큰 구멍을 통해 나무 기둥 속을 질주하던 방귀가, 또 다른 뚫린 구멍들을 통해 쏟아져나오며, 방 안을 한층 더.. 아니, 한 층 따위가 아닌, 그런 형태로는 설명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역겹고 지독한, 무시무시한 악취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 악취의 범람 속에서...


"후훗... 이제야 조금 속이 편해졌네. 뭐, 이런 방귀를 한... 수십 번은 더 내보내야 오늘 일이 끝나겠지만?"


한 명은, 즐거움과 정복감에 웃음짓고 있었고,


"으...끄흥...윽...! 끄웨에에에엑! 우욱... 우웨에에에엑...! 제... 제발...! 죽여주세요!"


한 명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미친듯이 신음하며 울고 있었고,


"...우...우와아... 지독...해... 그리고... 너무... 너무 황홀해..."


한 명은, 상식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고통스러운 쾌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흥분의 격류에 빠져들어, 그 상황의 모든 것을 즐기고 있었다.


"아하하... 이성아. 잠깐 내게로 와보련? 자... 옳지... 그래. 후후... 불편하지? 자... 바지를 벗겨버려야겠구나..."


그녀가 이성을 힘으로 제압하고, 그의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곧이어, 묵직한 빨래방망이같은 쥬지가 벌떡 튀어나오며 그 자태를 드러냈고, 수백 년 만에 남근을 본 그녀는, 빠르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아아... 우후후... 이거지... 그래... 하나 맹세해줄래? 너... 이성이 너는, 날 떠나지 않을 거지?"


"...제 삶이 끝나는 날 까지... 호선 님..."


"우후후... 후훗... 아아... 이런 감정... 너무나 오랜만이야... 그래... 그 배신의 아픔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엉덩이를 나무통에 꽂은 채로, 묵직한 쥬지를 입에 물고 핥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호선, 그리고 이성. 다만, 그렇게 오랜만에 성적 쾌락을 탐하게 된 탓인지, 그녀의 요력 조절 능력은 빠르게 그 힘을 마저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꾸루루루루룩! 뿌꾸구구구구구구루루루루루루루룩-!)


...그 잃어버린 힘 만큼, 그녀의 엉덩이는 더욱 커다랗고 지저분한, 불협화음으로 가득찬 풍악을 연주할 힘을 갖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호선은, 요력으로 부적을 하나 만들어 나무통 안으로 훅 불어 날렸다. 부적이 제대로 사또에게 붙은 것을 확인한 호선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엄포를 놓았다.


"아으응... 또 나오겠네...! 야... 한 열 방... 아니, 한 삼십 방만 버텨... 알았어? 이건 명령이니까... 기절도 할 수 없을걸? 후후... 으응...!"


자신의 미래를 직감한 사또는, 그만 좌절감에 마음이 무너져버리기 시작한 듯 했다. 물론...


뿌우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뿌앙! 뿌부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가 어떻게 되건 말건, 호선의 엉덩이는 방귀를 미친듯이 뿜어낼 것이지만 말이다.




(우지직... 쿵-!)


"...어머?"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무 기둥의 한 쪽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져버렸다. 토사물과 거품을 입에 물고, 온 몸이 누렇게 뜬 채로 죽지 못해 살아만 있는 사또의 부들거리는 모습이, 그 사이로 드러나 있었다.


"하아... 참 약하다니까. 나중에 다시 고치던가 해야겠어. ...그나저나, 정말... 기절조차 안하고, 대단한데?"


"그...흐으... 우... 너무... 기분이 좋아서 기절을 할 수가..."


"어머... 후후... 나 같은 나이 든 여자의 몸이 그리 좋은거였어?"


"...그런 게 아니라... 호선 님... 이라..."


"우후훗... 그래, 장난 조금 쳐 봤어.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흐응... 조금 여유가 있는데, 혹시 소원이라도?"


"...저... 저기... 호선 님이랑... 저... 하나가..."


"...후훗... 아하하! 이렇게 도발적이고 용감한 녀석이었구나? 자... 그럼."


뿌루루루르르르르르르르르프프프드드드드드드득! 뿌부푸푸우부부부부루우우우우우우우우욱!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선물을, 네개 안겨줄게. 후훗..."


오랜만에 아주 뜨겁고 지저분하게 타오르는, 천 년 묵은 여우였다.




"...하아윽...! 아직도 코가 아픈데요..."


"조금만 더 참아. 이제 다 끝났으니까. 환곡 쪽에 장난질을 쳐놓은 장계는 다 되었나?"


한편, 관아의 안뜰에서 장계를 모으고 정리하는 둘. 일어나자마자 일을 하게 된 성익은, 연신 불평을 내뱉으며 장계를 정리하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주 고맙네. ...이제 다시 출발해볼까. 임금님을 뵈러 말이야."


(끼익...)


"응?"


문이 열리고, 호선이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지독한 악취에 푹 절여진 이성과 함께 말이다.


"...그, 조금 늦어서 미안하구나."


"괜찮아요. 다 끝났거든요. 이제... 임금님을 뵈러 가야죠."


"...흠. 돌아가는 것도 귀찮겠구나.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요력을 끌어모아, 떠날 준비를 하는 호선.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셋. 호선이 요력을 양 손에 모으자 순간 빛이 번져나갔고, 넷의 주위로 조선 팔도 강산이 순식간에 휙휙 지나가더니,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한창 경연을 벌이고 있던 홍문관이 나타났다.


(화아아아악-!)


휘몰아치는 흰 안개와 함께 그 자리에 나타난 넷. 천재지변과도 같은 상황에 모두가 흩어지는 우박처럼 혼비백산한 찰나, 안개를 뚫고 임금에게 나아가 예를 표하며 장계를 올리는 삼준.


"전하, 소신이 이제서야 돌아왔나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무릎을 꿇은 성익과 이성. 그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호선이었다.


"...그...이것들이 다..."


"전하, 장계를 받아주시옵소서."


"..."


묵묵히 그 자리에서, 그들이 정리해낸 장계를 읽어내려가는 임금. 본격적으로 청란과 홍란이 개입하기 전 까지, 수 년간 이어져 온 관리의 부정부패를, 그리고 그로 인해 날로 높아져가는 백성들의 원성을 기록한 문건을 읽으며 임금은 탄식하며 괴로워했고, 결국 인간이 아닌, 조정이 아닌, 숲을 지키던 여우 요괴들의 도움을 받아 그제서야 고을의 법도를 새로이 세우고, 백성들이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접한 임금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을 내뱉었다.


"...과인이 덕이 부족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가뭄으로 말라버린 호수마저도 과인의 부족한 덕보다 나을 정도로구나!"


그러고는, 몸소 고개를 숙이며 호선에게 감사를 표하는 임금. 돌발적인 그의 행동에 신하들이 만류하려 했지만, 임금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이 과인의 덕이 부족한 나머지, 그대들에게도 신세를 지고야 말았소."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왕이시여. 제 딸들에게, 그 마음을 전해드리죠. ...단, 부탁이 있사옵니다."


"부탁이라?"


"이 마을은... 우리를 비롯한 요괴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으며,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것들도 이 마을의 구성원이 되어 지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로 전해지면, 우리 평화로운 마을을 노리는 이들이 우후죽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니... 이 마을을,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아주 비밀스러운 마을로 남도록 해주십시오."


절까지 올리며 간곡한 청을 올리는 호선. 그에 마음이 감화된 임금은, 단칼에 그 청을 수락하였다.


"내 그리하겠소. 이 자리의 모든 신하들 또한 과인의 결정에 동의하리라고 믿소. 그들의 힘만으로 태평성대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선택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대여."


삼준과 두 수행원을 바라보는 임금. 셋은 그 인자한 모습을 한 임금에게, 더더욱 예를 갖추었다.


"그대들이여, 바라는 것이 있는가."


"...제가 발령을 받았던 곳은, 10년 전, 제가 머무르던 고향 땅이었습니다. 전하. ...여동생이 홀로 어머니를 지키고 있었나이다. 그리고, 선산에 어머니의 무덤 또한 만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혈육으로서, 제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삼준이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듣 김성익은 말을 받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이제 홍문관의 서리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합니다. 저도 이제 내일 모레면 나이도 나이이고, 제 안사람도 몸이 요즘 편치 않아 제 도움이 필요합니다. 청을 승낙해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성이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 계신 분들께 큰 도움을 입었습니다. 임금님의 은혜는 하늘과도 같으며, 제가 역졸로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제 주위 사람들 덕입니다. ...제가 나리를 따라 발령을 나갔던 그 곳에선, 저처럼 치안을 담당해주는 역졸이 너무나 부족했나이다. 그렇기에, 제가 그 자리에서 저와 같은 이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저마다의 대의를 드러낸 셋. 임금은 크게 감동하여, 모든 청을 승낙해주었다.


"참으로 소탈하고, 꾸밈없으면서도, 훌륭하기 그지 없는 청이로구나. 여봐라, 이들의 청을 받아들여주어라!"


모든 것이 최선의 결과로 마무리 된 모습을 보며, 호선은 마을에서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생각을 하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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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대충 여기서 끝! 뭐... 나중에 들려오는 말로는, 사또는 계속 장난감 취급을 받으며 살았고, 그 김성익이라고 하는 분은 어느 날 금화가 가득 담긴 항아리를 받았대. 여우의 보은이라고 적혀있었다나? 그리고 뭐... 나머지 우리 선조분들은, 다 같이 그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았고."


"..."


"...뭐야? 그 표정."


"...내가 분명 여우 누이... 라고 하는 동화의 판본들을 알아보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게 씨발 대체 어디 판본이야?! 나...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작은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한 쌍의 소년소녀. 과제로 나온 동화를 통해 역사와 시대상을 유추한다는 주제에 걸맞는 보고서를 쓰기 위해 방문했고, 우연히 전학을 온 동급생을 만나 '자신만이 아는 여우누이 동화의 구전 설화가 있다.' 라는 이야기에 혹해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듣다가,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소년이었다.


"...어우... 깜짝 놀랐네. 근데 뭐? 어디 판본이냐고? 그야~ 우리 고향 판본이지! 후훗..."


"...진짜 뭐랄까... 되게 허무맹랑한 전학생이다, 너?"


"...이게 안믿기는... 야, 어떻게 하면 니가 믿을래? 치, 이럴 때를 대비해서라도 여우구슬이라도 가져왔어야 했는데."


"얼씨구? 여우의 후손처럼 이야기하네?"


"...아! 야, 내가 여우의 후손이라면, 내 말 믿어줄거지?"


"아니면?"


"아니면 내가 니 소원 하나 들어준다. 근데, 내가 맞으면, 니가 내 소원 하나 들어줘."


"하~ 참... 야, 너 게임을 너무 많이 했어. 너 니가 무슨 아리라도 되는 줄 알아?"


(불쑥-!)


"...에?"


순식간에 소녀의 단발머리 사이로 노란 여우 귀 한 쌍이 튀어나왔고, 소녀의 엉덩이 부근에서는 빳빳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운 꼬리가 세 개나 튀어나왔다.


"...어때?"


"'...어...그... 그러니까..."


"소원, 들어줘야겠지? 그리고, 내 말도 믿어줄거고?"


"...응. 근데 나... 돈 별로 없다?"


"푸훗... 걱정 마. 저렴한 부탁이니까. 으흠... 야, 너..."


조금 쭈뼛거리다가, 이내 말을 하는 여우 소녀. 그녀의 발언에, 그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주말에 시간 괜찮아? 나... 영화표가 두 장 있는데..."


"...괜찮지. 안 괜찮아도 무조건 괜찮게 만들거니까."


"풋...아하하! 참... 너답다고 할까, 아... 그리고, 질문이 있는데."


"뭐?"


(꾸루루루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너, 방귀에 대허서 어떻게 생각해?"


"...응? 그야... 뭐라고 해야 네가 만족할까...? 훗..."


여러모로 주말이 기다려지는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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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그지같은 장문을 썻냐고? 몰라 시발 요양원 구석에서 먼지만 폴폴 쌓여가던 책들 정리하다가 우연히 동화책 하나를 찾았는데 요즘 몬무스 이런거에 꽂혀가지고 그런가 보자마자 대가리에서 뇌내망상 존나 돌아가길래 호기롭게 쓰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좆박다가 결국 이도저도아닌 결말을 내버리고 찍싸버린글인데... 시발... 나도 글 잘쓰고싶다고... 내일 비 거의 다 그치면 더위를 느끼면서 대리만족이나 할 겸 클좆 글카스나 쓰기 시작해야지 또...

나는쓸모가업서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