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을 습격하기 전, 강변의 마을로 다시 찾아가 칼리에 대해 물어봤던 게 생각났다.

 

"아, 칼리라고? 예전에 마을 떠나서 안 온 줄 알았는데. 좀 냄새나고 별종이긴 했지." 한 물마법사가 말했다. "걔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 얼음마법 쓰는데 방귀도 자주 뀐다고, 메탄 하이드레이트."

 

"너는 별명같은 거 있어?" 난 공기마법사 소녀에게 물었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쾌활하면서도 더러운 내 친구, 가스마법의 마스터 지연. 전투에 간다고 하니 이번엔 좀 헤진 로브를 입고 왔는데, 엉덩이를 중심으로 누르스름한 색깔이 감돌았지만 여전히 그 순백색은 우아했다. 녀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도로 물었다.

 

"몰라. 네가 지어줄래?"

 

"그냥... 방귀마법사... 가스마법사?"

 

"에이, 뭐가 그렇게 시시하냐? 뭐 폭풍 가스의 여왕... 그런 걸로 해달라고."

 

"너희 공기마법사는 그런 계급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어허, 여왕한테 말이 많다!" 지연이는 그리고 엉덩이를 또 내게 향했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르르르르르르르륵! 푸드득!

 

지금까지 배운 공기마법으로 썩은 가스의 방향을 틀어보려 했지만, 속을 훤히 궤뚫고 있는 녀석은 손짓으로 다시 휘돌려 바로 내 코로 직행하게 했다. 분명 어제 수련할 때 방귀보단 약했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야!" 난 코를 싸쥐고 말했다.

 

"이것도 예비 훈련이라 생각해~" 녀석은 웃으며 내 목을 감쌌다.

 

너무 당하고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냥 이렇게 노는 게 좋았다. 불마법학교 애들이라고 뭐가 달랐나. 다른 점은 지연이는 정말 날 아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녀석한테는 얼마든 당해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내가 빛날 기회도 있었으면...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랑~!!

 

"야."

 

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닥!! 뿌으으으으우우우욱!!!

 

"-야!"

 

정신을 차려보니 손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칠흑같은 던전에 갇혀 있었다. 옆의 지연이도 같은 처지였고 말이다. 그 자세로 날 깨우려 흰 로브를 휘날리며 던전을 메아리치는 방귀를 연달아 뀌고 있었다.

 

"...여기가 던전 안인가?"

 

"기억 나? 우리 들어가려다 기절했잖아."

 

"아, 그 냄새 때문에.. 칼리였겠지?"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우, 나도 그런 냄새엔 안 익숙한데, 방심한 사이에... 힘들 수도 있겠는걸."

 

"일단 이 쇠사슬부터 내가 녹여볼게..."

 

난 집중해 휘파람을 부는 듯한 입모양으로 불꽃을 생성한 후, 내 손을 묶은 쇠사슬을 정확히 조준했다. 녹슨 쇠사슬은 불길에 서서히 녹아내렸다. 

 

녀석은 나를 따라 가만히 불꽃에 집중했지만, 불행히도 지연이의 아랫배는 그러지 못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득! -푸우우우르르르르르르르르륵!!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랑~!! 뿌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좀 참아봐! 녹이는 도중에 뀌면 폭발할 수도 있다고!"

 

"알겠어, 빨리 해. 전투 모드로 배에 마법 걸어놔서 지금 엄청 부글거리거든..." 지연이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다시 방 안 공기의 메탄과 수소 밀도가 폭발하지 않을 레벨이 되자 난 재시작했다.

 

팔 하나를 푸는 데 10분 가까이 걸렸다. 그나마 이게 학교에서 30분 걸린 것 보다 훨씬 빠른 거였다. 손을 쓸 수 있으니 좀 더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기마법사 소녀의 배에 가스가 차는 속도는 따라갈 수 없었다.

 

"...아직도 안 됐어?" 녀석은 침을 삼키며 말했다.

 

"조금만..."

 

내 팔다리를 다 풀고 옆을 보니, 눈에 보일 정도로 불룩해진 녀석의 아랫배가 보였다. 전혀 불룩하지 않았을 때도 폭풍같은 방귀를 뀔 수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나 한계야!" 처음으로 지연의 목소리에서 긴급함이 느껴졌다. 빨리, 빨리 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다..."

 

시한폭탄을 해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 얼굴엔 모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달랐지만 말이다. 녀석은 이제 눈까지 꾹 감고, 주먹을 꽉 쥐고 온 힘을 다해 괄약근을 잠그고 있었다. 

 

심장이 내내 터질것만 같던 총합 20분만에, 지연이의 다리를 감싼 쇠사슬까지 녹였다.

 

"됐다!"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불꽃을 끌 새도 없이 녀석은 항문을 열었다. 작은 불꽃이었지만 폭발적으로 공급된 수소와 메탄가스에 불길이 치솟는 건 삽시간이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모든 마법 지식을 총동원해 가스와 불길을 모두 방 바깥으로 유도하고, 다 빠져나가길 빌었다.

 

다음으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오히려 멀쩡했다. 아니, 시원했다. 올려다보니 지연이가 우릴 그새 바람으로 감싸 보호했던 것이다. 내가 유도한 메탄 폭발은 굳게 잠겨있던 문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안도보다는 조금 화가 났다.

 

"휴... 그러니까 좀 참으라니깐!"

 

"야, 네가 말한 대로 끝날 때까지 참긴 했거든?" 녀석은 배를 두드리며 대꾸했다. "그래도 제법이다. 폭발도 다른 곳으로 유도할 줄 알고."

 

그러나 저렇게 순수하게 웃으며 칭찬까지 해주니, 화를 낼려야 낼 수가 없었다. 녀석에 대한 감정은 다 사라지고, 나에 대한 감정만 남았다.

 

"너 아니었으면 우리 둘 다 여전히 화상 입었을 뻔 했잖아. 심화 과정까지 끝냈어야 했는데..." 

 

"내가 보기에 네 문제는 너무 소극적이라는 거야. 불마법사가 뭐가 무섭냐? 화끈하게 조종해야지!"

 

"그래도... 괜찮아? 혹시 너도 다치면 어쩌고?"

 

"내 똥구멍이 불타든 뭔 상관이야. 사실 이미 몇 번 탔을걸. 그러니까 네 진짜 힘으로, 할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며 지연이의 손을 잡은 후, 우린 던전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던전엔 갖가지 몬스터가 서식하고, 그들은 모두 보스를 섬긴다. 처음으로 만난 몬스터는 진흙인간 무리. 질척거리는 몸에 머리에선 썩은내가 진동했다. 하지만 최고 가스마법사에겐 코가 있다는 사실만 있으면 충분했다. 

 

지연이는 가볍게 로브를 휘날리며 뒤로 돌아, 엉덩이를 치켜들고선,

 

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도와줄 것도 없었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그 몬스터들의 두뇌는 온갖 음식을 샐러드처럼 비벼 푹 발효시킨 녀석의 소화기관의 걸작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마치 비바람 속 눈사람처럼 녹아내렸다. 기절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나 자신을 도와야 했다. 다행히 진흙이라 냄새를 흡수하고 죽는 듯 했다.

 

죽음의 함정 몇 개를 공기마법으로 가볍게 넘어간 후, 우릴 마주한 건 산더미같은 해골 군단들. 불행히도 이 녀석들에겐 코 자체가 없었지만, 통풍이 너무나 잘 되었다. 공기마법과 불마법의 소년, 그리고 공기마법을 앞뒤로 쓸 수 있는 소녀 앞에서 이미 그들의 최후는 정해져 있었다.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당~!!!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드득!!! 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그 광경은 정말 방 안에 토네이도를 소환한 것 같았다. 만일 토네이도가 몇 배는 두껍고, 누르스름하고, 유황불로 구운 썩은 밥 냄새가 난다면 말이다. 해골들은 그 폭풍과 같은 방귀에 휩쓸린 나뭇잎마냥 맥없이 산산히 흐트러졌다.

 

뿌아아아아푸아아아아다다다다다당!! ~뿌푸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랑!!~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공기마법은 가끔씩 날아오는 해골과 무기들을 피하는 데에만 필요했다. 지연이는 그럴 것도 없이, 위로 날아다니며 느긋하게 웃으며 가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비료 신세가 된 해골 군단들을 헤쳐 나가며, 더 몇 층을 내려가 던전의 최심부에 도달하였다.

 

딱 봐도 세련된 문 앞, 마지막으로 그 앞을 가로막은 건 거대한 얼음 골렘들이었다. 코가 없어 냄새는 통하지 않았고, 바람 따위도 물론 통하지 않았다. 녀석도 이번엔 좀 당황한 눈치였다. 화염을 내뿜자 녹긴 했지만, 나 혼자서는 녹이는 데 한세월이 걸릴 것 같았다. 거기다 공격도 피해야 하니...

 

결국 그 방법밖에 없었다. 난 엉덩이를 내밀고 자세를 취하고 있는 녀석 앞에 불씨를 가져다댔다.

 

"나 믿지?"

 

"그럼!" 그리고 녀석은 눈을 감고, 가스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뿌아아아아아아아화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내 손가락 끝 스파크가 녀석의 통통한 엉덩이에서 뿜어져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황과 수소, 메탄가스와 만나자 휘황찬란한 불꽃이 방안을 온통 밝혔다. 마치 수천개의 폭죽을 터뜨린 듯한 그 광경에 냄새조차 잠시 잊혀질 정도였다.

 

얼음 골렘들은 우릴 바로 내리치려 했으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녀석의 엉덩이에서 폭발해나오는 그 엄청난 화염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저번에 물마법사들과 싸울 때도 해본 적 있으나, 지금은 그 스케일이 2배 이상 커진 건 물론이고, 불길도 더 폭발적으로 퍼졌다. 정확히 1분이 지나서 지연이는 가스를 끊고 가볍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 큰 골렘을 처리하고 우아하게 서 있는 모습은 정말 마법의 마스터를 보는 것 같았다.

 

"나이스 잡!" 녀석은 날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난 기꺼이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제 충분히 워밍 업 됐지?"

 

"그럼! 이제 준비됐어!"

 

그리고 우린 마지막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최심부의 문 뒤 우릴 맞이한 것은 은은한 분위기의 넓은 방, 그 한쪽 면엔 흐르는 강물이 얼음벽 밖으로 보였다. 입구에서 시작해 방을 가로지르는 파란색 카펫의 끝, 그 보좌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일어날 때까지 좀 기다리려 했는데, 알아서 찾아주셨네."

 

우리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그 녀석은 다른 물마법사들과 비슷한 구릿빛 피부에, 푸른색 털옷 드레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란색이 감도는 곱슬머리 위엔 던전 주인의 표식인지 에메랄드빛 왕관을 쓰고 있었다.

 

"네가 칼리냐?" 지연이가 먼저 물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라 불러. 넌 가스마법사 지연이지? 얘기 많이 들었어. 근데 옆에 넌 누구야?"

 

"차현이라고 내 제자."

 

그러자 갑자기 기분이 상한 듯 칼리는 자리에서 일어서 날 바라보았다.

 

"와, 어떻게 제자도 찾았어? 역시 재수 없는..."

 

"잡다한 얘기는 집어 치우고, 왜 강물을 오염시키는 건데?"

 

물마법사 칼리는 날 노려보다가, 이내 강물으로 눈을 돌렸다.

 

"어려서부터 방귀 많이 뀐다고, 이상한 마법 배운다고, 더럽다고 놀린 저 망할 물마법사들한테 가스마법의 힘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거지."

 

"그래서 강물 테러하면 퍽이나 널 다시 받아주겠다."

 

"내가 받아달라고 이런 일 벌이는 줄 아냐? 어차피 뭔 짓을 해도 안 받아 줄 테니까, 차라리 공포의 상징이 될 거야. 너도 한번 공기사원 방귀로 초토화해서 지금은 아무도 안 건드리는 거잖아?"

 

"ㄱ-그건 실수였거든?" 지연이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가스마법 쓴다고 해도 우릴 받아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잖아, 얘처럼."

 

"운좋게 좋아하는 사람 한명 만나니까 모든 게 쉬워 보이지?"

 

"얘 좋아하는 거 ㅇ- 그냥 제자 - 아니 어쨌든, 이 멍청한 던전에서 나가서 다시 말이라도 해보라고! 설리도 너 괜찮게 말하는 거 같던데."

 

"그럴 거면 진작에 했겠지. 이미 너무 늦었어."

 

"...어쩔 수 없지. 미안."

 

가스마법사 소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엉덩이를 칼리를 향해 조준했다.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또다른 가스마법의 마스터를 상대하고 있었기에 지연이는 전혀 봐주지 않았다. 내 친구, 평범한 소녀의 작은 엉덩이에서 한순간에 방 전체를 울리며 초거대 드래곤 브레스를 방불케 하는 방귀가 터져나오는 장면은 몇번을 봐도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냄새도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분명 99%는 칼리를 향해 뿜어내고 있는데도, 돌아온 1%만으로도 눈물이 핑 돌게 하기엔 충분했다. 오기 전 같이 먹은 콩국수, 고구마, 갈비, 온갖 게 모두 대장에서 코로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칼리는 물을 방어막처럼 사용해 간단히 방귀를 막아내었다. 물론 벽을 기어온 냄새까지는 미처 막지 못했지만, 그정도는 가볍게 버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지연이의 계산 안이었다. 계속되는 방귀에 방심할 찰나, 지연이는 몸을 돌려 물을 뚫고, 칼리에게 고속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칼리는 여유롭게 비웃으며, 오히려 물으로 순식간에 지연이를 감싼 후 꽁꽁 얼려 가뒀다. 

 

"그렇게 자만하다간,"

 

꺼내달라는 지연이의 목소리가 안에서 어렴풋이 들렸다. 생각할 틈도 없이, 칼리는 얼음 감옥에 구멍을 하나 뚫고 그곳에 자신의 큰 엉덩이를 갖다댔다.

 

푸푸다다다다다다다다다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소리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젖은 방귀였다. 방 안을 가득 메운 하수구 오물 방울 수백개가 터지는 듯한 소리. 아까 우릴 기절시킨 방귀도 딱 이거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연이는 지금 이걸 훨씬 작은 얼음 감옥에서, 온전히 받고 있다는 것 뿐.

 

조금 새어나온 냄새마저 내 코를 이미 차지한 지연이의 냄새를 뚫고 그 존재감을 어필하였다. 강물의 모든 물고기를 소똥에 비벼 회를 친 듯한 최고의 비린내와 구린내의 궁합. 내가 느끼기에도 똥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거 같은데, 지연이는 지금 어떨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당장 이 방을 나가고 싶었지만, 녀석을 생각해야 했다. 지연이가 말한 대로만 하자. 난 바닥에 겨우 남은 신선한 공기로 내 몸을 감싼 후 스파크를 일으켰다. 방이 워낙 커 폭발하진 않았지만, 엄청난 양의 메탄이 갑자기 타오르자 칼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 틈을 타 난 불꽃으로 얼음을 녹였다.

 

얼음을 녹이자 더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괜히 메탄 하이드레이트, 가스를 머금은 얼음이 별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눈물콧물을 모두 흘리더라도 지연이를 포기할 순 없었다.

 

겨우 다 녹였지만 녀석은 이미 정신을 잃은 거 같았다. 나도 곧 그럴 거 같았고 말이다.

 

"재수없는 넌 좀 빠져!" 설상가상으로 그새 일어난 칼리는 나에게 엉덩이를 조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푸아아아아아아아아뿌푸으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푸푸푸푸푸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지연이의 냄새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폐 전체가 썩어가는, 아니, 다른 몬스터로 변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반은 좀비화된 인간, 반은 썩어가는 물고기로. 지연이의 냄새에선 그나마 음식의 영혼이 일말이라도 남아있었지만, 물마법사 소녀의 가스는 그 영혼마저도 썩힌 것 같았다.

 

칼리는 지금 그런 가스를 역시 방 전체를 채울 기세로 내뿜고 있었다. 기침할 틈도 없이 자리에 고꾸라져 정신의 희미해졌다. 맞다, 문이라도 다시 열어야... 하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굴복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칼리는 의식을 잃기 직전인 우릴 보고 비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방귀는 전혀 끊지 않은 채.

 

"이제 좀 힘의 차이를 알겠냐? 뭘 안다고 나불대... 흡..?"

 

그러나 갑자기 칼리는 자리에 주저앉아 입을 막았다.

 

"제법인데. 이제 나 없이도 잘 하고."

 

분명 기절한줄만 알았던 지연이는 처녀귀신처럼 그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나를 보고는 살짝 윙크했다. 그 때 나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방 안에 쌓인 두꺼운 죽음의 안개마저 거침없이 뚫고 퍼져나온, 차원이 다른 밀도의 유기적 가스. 녀석은 기절하는 척하며 그동안 계속 이 조용한 방귀를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지연이가 왜 가스마법의 마스터인지,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네 냄새 진짜 적응 안 됐는데, 오히려 내 냄새로 덮으니까 더 버티기 쉽네. 차현아, 신선한 공기는 알아서 마련해둬."

 

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극복하는 게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칼리의 냄새조차 이 극한의 냄새 앞에선 꽃향기처럼 사그라들었다. 산더미같은 고구마와 계란을 집채만한 크기의 대장에서 몇 년간 유산균을 주기적으로 부으며 농축, 발효시켜 만든 순수한 썩은 냄새. 정말 내가 평소에 알던 그 지연에게서 나온 게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칼리도 이 정도 냄새는 부담스러웠는지 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구역질했다. 나도 간신히 제때 공기 배리어를 만들어 방 전체를 에워싼 녀석의 가스에서 벗어났고 말이다.

 

"봐줬더니 편했지?"

 

"뭐? 봐줘?"

 

그러자 칼리는 물 보호막을 자기 손으로 던져버렸다. 난 직감적으로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엉덩이를 서로를 향하고 자세를 잡은 두 가스마법사, 본격적 방귀 전면전이 펼쳐졌다.

 

뿌르르르르르르드드드득!! 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당!!! ~ 푸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푸우우우우우르르르르두두두둥~!! 뿌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드등!! 푸르르르르르르르르륵! 푸뿌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던전 전체가 두 소녀의 엉덩이와 함께 전율하는 듯 했다. 샛노란색, 갈색, 초록색, 주황색 갖가지 스펙트럼의 가스가 뿜어져나와 물감처럼 방을 매번 새로운 색깔으로 물들였다. 이제 앞도 거의 보이지 않아 색깔과 바람의 변화와 소리로만 누가 뀌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난 밑바닥에서 구한 신선한 공기를 마법으로 공처럼 머리에 두르고 겨우 버티고 있었다. 찐득한 가스가 몸에 닿기만 해도 똥이 닿은 것 마냥 역겨울 정도인데, 조금이라도 대충 배워 공기가 새나갔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뿌아아아아라라라라푸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당!!! 푸르르르르륵-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랑!! 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뿌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두두두두두두두두둑~!! 푸르르르르륵! ~ 뿌아아아아아다다다당~!!!

 

볼 순 없었지만 분명 지연이가 이기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갈수록 방 전체에 지연이의 가스의 샛노란색과 갈색이 짙어지고 있었고, 녀석 특유의 폭발적인 가스바람은 전혀 잦아들지 않고 방을  순환했다. 시간이 지나자 공기마법사 소녀의 압도적인 가스량과 항문의 진동에 가려져 칼리의 젖은 방귀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난 용기를 내어 둘에게 다시 가까이 가보았다. 역시나, 칼리는 자리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지연이는 도리어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때, 이제 내 말 들을 거냐?"

 

지연이는 칼리에게 다가가 물었다. 하지만 칼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이거라도..!"

 

그러나 그 때, 칼리는 갑자기 얼음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물마법으로 작은 구멍을 만들더니, 강물이 새기 전 엉덩이를 가져다 대 구멍을 틀어막았다.

 

 "야, 막아!"

 

하지만 난 어쩔 줄 몰랐다. 집중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이 죽음의 공기에 노출될 게 뻔했으니까. 칼리는 마지막으로 날 노려보고는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배를 부여잡고 눈을 꼭 감았다. 지연이는 뒤늦게 달려와 칼리의 머리 위에 걸터앉았다.

 

"미안하지만 최후 승자는..!"

 

부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당~!!!

 

동시에 뿜어져 나온 둘의 방귀는 한 편의 화음을 이뤘다. 공기마법사 소녀의 우아하면서 강력한 소프라노와, 강물을 울리는 물마법사 소녀의 묵직한 알토. 일 초를 한시간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 광경에 넋이 나가 이대로 가다간 강물 전체가 오염되어 폐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잠시 잊혀질 정도였다.

 

지연이는 조금이라도 빨리 칼리를 기절시키기 위해 그 얼굴에 엉덩이를 바로 대고, 최고급 썩은 가스를 영거리에서 쏟아내었다.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 무섭다기보다는 더 궁금했다. 저 우아한 공기마법사 소녀의 전투마법을, 연습이 아니라 실전에서 온전히 경험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푸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푸으으으으으으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뿌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뿌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3분이 지나도 끊이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로브를 휘날리며 더 강력하게, 더 진하게 가스를 내뿜는 지연이의 모습. 어떤 대마법사도 견주기 힘든 그 광경은 정말 방귀의 여신을 보는 듯했다. 결국 자신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공기마법사 소녀의 엉덩이 아래 칼리는 굴복했고, 강물에 내뿜던 가스도 끊겼다.

 

하지만 이미 그 3분동안 강물에 너무나 많은 유독물질이 방출되었다. 마을 하나가 한달동안 배출하는 오물의 양을 능가할 정도로. 지연이는 칼리가 기절한 것을 확인하고 내렸지만 여전히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강물이 모조리 오염되어 생태계가 망가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 때, 내 머리에 한가지 방법이 더 올랐다. 나밖에 할 수 없는 방법.

 

내가 해야 했다. 

날 믿어야 했다. 녀석이 말한 대로.

 

난 칼리를 빼어내고 강물에 손을 댔다. 그곳에 집중하자 머리를 감싸던 신선한 공기가 흩어졌다. 모든 음식 썩은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와 눈앞이 하얬지만, 어차피 눈으로 할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남은 정신으로 지연이의 가스를 조종했던 때를 떠올렸다. 메탄가스, 이산화탄소, 온갖 냄새가 줄기를 치며 뻗어나가는 느낌을. 물속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리고 그 줄기를 따라 불길을 뿜었다. 

 




강물이 온통 불타는 광경에 사람들은 놀라 수군댔다. 하지만 불과 함께 썩은 냄새는 모두 사라졌고, 강가의 물고기들도 대부분 무사했다.

 

깨어나보니 강변이었는데, 지연이가 기절한 나와 칼리를 데리고 침수되는 던전에서 탈출했다고 한다. 곧이어 칼리도 깨어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신선한 공기를 너무 오래 마시지 못해 나도 피곤했다. 그렇게 우린 칼리를 데리고 말없이 물마법사들의 마을로 다시 향했다.

 

돌아가자 사람들은 우릴 환영해 주었지만, 칼리를 알아본 몇몇 마법사들은 수군대기에 바빴다. 그 때 누군가 대표로 나와 물었다. 물마법사 설리였다.

 

"칼리는 어디서 만난 거야?"

 

지연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어, 그게... 그 던전 보스한테 인질로 잡혀 있더라고. 이름이..."

 

"리치."

 

"맞아, 리치한테! 그래서 우리 힘을 합쳐서 그놈이 강 오염시키는 거 막고 왔어!"

 

지연이는 칼리에게 윙크했다. 칼리는 표정 변화 없이, 의미심장한 한숨을 내쉬기만 했다.

 

"진짜야? 그러니까 조심하지, 그동안 걱정했잖아..."

 

그리고 설리는 칼리를 데려갔다. 이제 둘이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물 마법사 녀석들을 배웅한 후, 난 다시 지연이에게 눈을 돌렸다. 옷은 아직 덜 말랐고, 얼굴도 아직 후끈했지만, 처음으로 같이 일을 해결했다는 것에 우리 둘 다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띄고 있었다. 물이 증발되면서 몸이 떨렸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따스했다. 역시 지연이와 함께하기를 잘했다. 이 순간을 더 느낄 수만 있다면…

 

“-아야!”

 

하지만 그 분위기를 깬 건 갑작스러운 녀석의 외마디 비명이었다. 눈 깜짝할 새 녀석의 미소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대신 배를 부여잡고 신음하고 있었다.

 

"왜 그래?"

 

"미안, 전투가 끝난다고 내 배도 자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