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이 좀 길지만 방커물을 위한 빌드업이다
이해하고 읽어주길 바람



“마츠다 군. 마츠다 군도 야동 봐?”

“야동?”

“응. 야한 동영상. AV 같은 거. 찔끔하는 거 보니까 보나보네...?”

내가 찔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치나미와 잠자리를 갖기 전에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쪽 주제로 먼저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미유키가 먼저 언급을 하니 놀랐기 때문이다.

헌데 나는 떡밥을 던져놓는다고 쳐도, 미유키는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을까?

혹시 동성 친구들과 이런 쪽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나?

뭐가 됐든 미유키가 먼저 저런 주제를 꺼낸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기에, 뜻밖에 횡재를 얻은 나는 슬쩍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 보지는 않지.”

“그래...? 지금도 봐? 새로 산 노트북으로? 아니면 휴대폰으로?”

“모르겠는데.”

“뭘 몰라? 평일에 혼자 해결한 적도 있어?”

예전의 미유키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과감한 질문이다.

역시 성적으로 충분히 발전한 지금이 딱이야.

나는 최대한 냉정한 척,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찔리는 척 연기를 하며 미유키를 다그쳤다.

“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운전할 때 집중하라며.”

“알았어...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 되게 창피해하네...”

꿍얼거리는 미유키를 흘깃거리며 실소를 터뜨린 나는, 곧 비가 올 것 같은 흐릿한 날씨를 뚫으며 보금자리로 향했다.

그러다가 미유키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려 퍼지자 귀를 쫑긋했다.

“응, 엄마.”

-어디니? 오고 있어?

“오늘 친구 집에서 잔다고 말했잖아.”

-친구 집?

의미심장한 미도리의 목소리에, 미유키가 입을 꾹 다물었다.

“.....”

괜히 찔려선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는 그녀.

자신의 딸이 당혹스러워하는 게 재미있었던 걸까?

휴대폰 너머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친구한테 안부 전해주고, 시간 나면 놀러오라고 해.

“뭐래...”

-알았니?

“아, 알았어...”

-안전하게 놀고. 안전이 중요한 거야. 안전.

피임은 꼭 하라는 소리를 에둘러 강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눈치챈 미유키의 얼굴이 순식간에 확 빨개졌다.

“알았다니까...!”

-네 친구한테도 전해주고.

“아 엄마...! 알았다고...!”

-왜 짜증을 내? 걱정하는 건데.

“.... 엄마 말대로 할게... 됐지?”

-응. 그리고 내일은 일찍 데려다달라고 해.

이정도면 거의 대놓고 얘기하는 거 아닌가?

미유키의 거짓말을 알았음에도 순탄하게 넘어가줬을 때부터 개방적인 건 눈치챘지만, 저렇게까지 오픈되어있을 줄은 몰랐다.

저런 유부녀가 밤엔 더 조신한 법인데... 갑자기 막 꼴린다.

전화를 끊은 미유키가 자신의 얼굴에 손부채질을 해댔다.

빨간불 신호에 차를 멈춘 나는, 그런 그녀에게 장난을 쳤다.

“아주머니야?”

“응.”

“뭐라셔?”

“그냥 친구 집에서 잔다니까 조심히 놀다 오랬는데...”

“그래? 조심히가 아니라 안전하게 아니냐?”

모든 대화내용을 엿들었다는 것을 넌지시 돌려 말하자, 미유키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목 뼈 부러지겠다. 조심히 노려봐라.”

이어지는 내 말에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치는 미유키.

한동안 날 노려보던 그녀는 이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조수석 의자를 젖혔다.

**

“야... 야! 뭐하냐?”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는 미유키가 탁상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미유키가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인터넷 조금 하려고 하는데...”

“휴대폰으로 해.”

“노트북이 더 편하잖아. 근데 비밀번호는 왜 걸어놓은 거야? 여기 뭐 있어?”

“있긴 뭐가 있냐? 영화나 보게 그거 덮어라.”

“노트북으로 안 봐?”

“화면이 더 크잖아.”

“그러네...? 알았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노트북을 덮는데, 보고 말겠다는 의지가 눈에 보여서 웃기다.

요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미유키의 뒤에 앉은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대로 누웠다.

그에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영화 목록을 살펴보던 미유키가 날 나무랐다.

“영화 보자면서 왜 이러는데? 앉든가 똑바로 눕든가 하나만 해.”

“오랜만에 같이 눕는 건데 이것도 못 봐주냐?”

“응.”

삐쳤네. 노트북을 못 보게 해서 삐쳤어.

비밀번호는 네가 알만하고, 또 좋아할만한 것으로 걸어놨으니까, 나중에 내가 자고 있을 때 몰래 살펴보렴.

“나 봐봐.”

“싫어.”

“봐봐. 빨리.”

나긋한 목소리로 달래고 나서야, 미유키는 마지못한 척 몸을 돌려 내 몸 위에 올라탔다.

그런 그녀의 젖어있는 옆머리를 살살 풀어준 내가 물었다.

“오늘 부활동 시간에 뭐했어?”

“.... 똑같지 뭐... 학생회 회의...”

“무슨 회의했는데?”

“기말고사 끝나고 수학여행 보낸대서... 1학년들은 도쿄 근교에 있는 온천으로 보낼지, 아니면 아예 홋카이도로 보낼지 상의했어.”

내가 플레이했을 땐 홋카이도로 갔는데, 그땐 기말고사를 보기 전이었다.

이번엔 어떻게 되려나?

아무리 미래가 달라졌다고는 해도, 굵직한 이벤트는 예정과 약간의 오차가 있을 뿐 잘 진행된 걸 되새겨보면 아마 장소가 바뀌지는 않을 거다.

미유키의 엉덩이를 일정한 리듬으로 토닥거린 내가 말했다.

“결정했어?”

“그건 아직이지만 아마 홋카이도로 가지 않을까 싶어. 올해 기부금이 많이 들어와서 비용 문제도 없어서...”

“그래? 그럼 나랑 같은 방 쓸 거지?”

“어, 어떻게 그래...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묶지... 개인적으로 가는 여행도 아닌데...”

같이 한 방에서 자는 것을 상상해봤는지, 미유키의 얼굴이 확 상기되었다.

그리고는 내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묻으며 부끄러움을 잔뜩 표출했다.

남녀가 분리되어있다면 따로 하나 더 구해서, 밤에 몰래 빠져나오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

이건 내가 미유키 몰래 알아서 해야겠다.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나는 미유키가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는 사이, 손을 허리춤까지 내린 채로 골반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자 내가 바지를 벗으려 함을 알아차린 미유키가 자신의 손을 내 티셔츠 안으로 쏘옥 들이밀었다.

복부까지 파고든 따뜻한 손길이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허리를 살살 간지럽힌다.

머릿속에 쾌락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나는, 미유키의 정수리에 입술을 가져다대면서 그녀가 입은 반바지를 쭈욱 잡아당겼다.

후욱.

동시에 가슴팍에서부터 후끈한 느낌이 일었다.

서서히 찾아오는 둘만의 시간에 흥분하기 시작한 미유키가 내 가슴에 콧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마츠다 군...”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날 부르는 미유키.

부드럽고 탱글탱글한 그녀의 엉덩이를 살며시 쓰다듬은 내가 대답했다.

“왜.”

“.... 그거 없어...?”

“그거 뭐.”

“그거... 안전한 거...”

“콘돔?”

“응...”

미유키가 안전을 강조한 걸 신경 쓰고 있나본데, 콘돔은 무슨 콘돔이야. 죽어도 싫다.

끼는 순간 자지가 확 쪼그라들 것 같아.

“밖에다가 할게.”

조금 더 밀어붙이닌 미유키의 표정이 확 일그러진다.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고있는 것 처럼 울상이 되었지만 끝내 거절을 하지 못했다.

우물쭈물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몇 번 내 얼굴과 자지를 번갈아 바라보다 끝내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절대로 안에다는 안돼...알겠지?"
"약속할게."

작게 한숨을 쉬는 미유키. 한 걸음 더 다가와 내게 안기며 까치발을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안고. 키스를 시작한 미유키.
아랫배를 누르고 있는 자지가 신경이 쓰이는지 골반을 좌우로 비틀며 맹맹한 콧소리를 낸다.

임신에 대한 걱정은 달콤한 키스에 덧칠되어 미유키의 표정이 점점 음란해져 갔다.
그렇게 또 한번의 관계를 가진 나와 미유키.

이후 지쳐버린 나는 그대로 미유키를 끌어안고 침대에 축 늘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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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 콕.

마츠다의 몸 이곳저곳을 찔러보던 미유키는 아무런 반응도 없는 마츠다의 모습에 슬쩍 고개를 들어 마츠다의 얼굴을 바라봤다.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 속삭이듯 불러보고 귀에 바람도 불어보지만  눈만 살짝 찡그릴 뿐 뒤척거리며 작게 코를 고는 모습에 미유키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그대로 베게에 머리를 축 늘어트렸다.

미유키는 자신도 모르게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분명 온 몸이 아프지 않은곳이 없을 정도였고 다리 사이는 열상이라도 입은 것 처럼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몸은 마른 오징어 처럼 축 늘어지고 싶은 생각 뿐.

그러나 몸과 다르게 정신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이대로 자기는 너무 아쉬운 느낌. 여행의 마지막 날 처럼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지만, 마츠다를 꺠우지는 못하고 아쉬움에 괜히 마츠다를 끌어안는 미유키였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가만히 눈만 감고있던 미유키.

"마츠다 군..."

"..."

"자...?"

"..."

대답이 없는 모습에 화장실이라도 고개를 돌린 미유키.
그런 그녀의 눈에 구석에 놓여진 노트북이 눈에 밟혔다.

그렇게 보여달라고 해도 보여주기를 꺼려하던, 노트북.

"..."

미유키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껴안고있는 마츠다의 팔을 들어올린뒤 옆으로 한바퀴 굴러 품에서 벗어났다.
발 끝을 들고 침대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노트북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몰래 본다는 생각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츠다는 저번에도 이번에도 노트북을 보여주기 껄끄러워 하는 기색이었다.
들키기 싫다는 무언가가 여기에 있다는 뜻.
그리고 그 무언가는 분명히...

'야동이겠지.'

미유키는 노트북의 전원을 키자 걸려있는 비밀번호에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양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
어쩐지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입력란 밑에를 보니 [추억] 이라는 힌트.

"나와 관련된  걸까?"

호기심은 점점 욕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츠다에게 조금 더 특별했으면 하는 마음.
노트북 같은 개인적인 물건에 나와의 추억으로 되어있는 비밀번호가 있었다면...솔직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첫 만남에서 부터 시작해볼까?"

가장 떠오른 추억은 전철이었다.
마츠다가 치한의 손길에서 구해주었을 때의열차칸 번일까?
기억에 없는데...아마 마츠다도 그런 것 까지 기억하지는 않을 테니 이건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조심스래 그 날자를 입력해본 미유키.

'아니네...'

은근히 진심이 되어버리는 미유키였다.
이후 여러번 떠오르는 대로 비밀번호를 입력해 보았으나, 오히려 답답함만 가증되기 시작했다.

어느세 수십번은 틀려버린 상황.
금방 풀 수 있을거란 자신감은 어느세 한숨밖에 튀어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만약 비밀번호가 자신과의 추억이 아닌, 돌아가신 부모님과 관련된 거라면?
그렇다면 방법이 없다고 봐도 좋았다.

'미치겠네...'

그래도...나를 알고난 이후 산 노트북인데...
마츠다 군도 나를 엄청 좋아하는데 가능성이 아예 없는걸까...?

"아."

그렇게 고민을 하던 미유키는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어떠한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아직 입력하지 않은 추억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미유키가 입력하는 건 날자나 장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의 가슴은 더욱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만약에 생각이 맞다면 정말로 기쁠 것 같아서.

"후우..."

그 생각에 엔터만 남기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미유키.

탁.

[환영합니다.]

엔터를 누르자 비밀번호가 해제되면서 나타난 윈도우 화면.
미유키는 두 눈을 끔벅였다.

"돼...됐네...?"

미유키가 입력한 비밀번호는 [MKHM]

마츠다 켄, 그리고 하나자와 미유키. 서로의 앞자리의 이니셜 이었다.
라멘집에 붙여놓았던 포스트잇에, 그림을 그리면서 캐릭터 위에 써놓은 4글자 이기도 했다.

"히힣... 헙...!"

미유키는 헤픈 웃음을 내뱉다 다급히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지는걸 참아낸 미유키.
자고있는 마츠다를 슬쩍 바라본 그녀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들키기 싫었다면 혼자만 아는 비밀번호를 걸어놓든가 하지... 쯔쯔...

헌데 다른 남녀의 성관계 영상을 보는 게 좋은 건가?

아니면 야동에서 나오는 상황들이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나?

어쨌든... 야동이야 자신 또한 안 봤던 것도 아니고, 마츠다가 굳이 보겠다면야 충분히 이해해줄 여지가 있다.

야동 속 남녀는 자신들이 아니고, 남자들 중에선 안 보는 사람이 없다고들 하니까...

게다가 자신과의 관계 때마다 매번 진심으로 만족해하는 기색을 풍겨서 딱히 질투 같은 감정도 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상한 체위나 봉사를 강요하지도 않으니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전혀 없었다.

돈을 후원하면서 이상한 생방송을 보거나, 시도 때도 없이 자위만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괜찮은 내용의 야동이 있다면, 은근슬쩍 참고해서 직접 마츠다에게 서비스를 해줄 수도 있을지.

가령 찢어진 스타킹을 입어주거나... 뭐 이런 것들.

남자들은 이런 쪽에 판타지가 있잖은가. 해주면 잔뜩 흥분해선 달려들지도 모른다.

이 생각은 이쯤하고, 이제부터 마츠다의 취향을 알아봐줘야겠다.

두근두근한 마음을 뒤로한 채, 미유키는 폴더 안으로 들어가 파일 이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얼굴에서 웃음기를 싸악 뺐다.

가장 위에 있는 파일 이름이 [여친과의 임신섹스]였기 때문이다.

“.....”

아니, 임신섹스라니... 제목이 너무 적나라하잖은가. 왠지 자신이 창피해진다.

이 외에도 [치녀의 손코키] 라거나, [A급 마사지사의 스타킹 풋잡] 같은...

보기만 해도 낯부끄러워지는 듯한 이름의 영상을 살펴보던 미유키는, 후끈해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다가,

‘응...?’

파일 목록 가장 밑에 [특별1][특별2] 라고 쓰인 폴더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특별...?’

마츠다가 스페셜하게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는 야동이구나.

따로 폴더까지 만들 정도라...? 안 볼 수는 없지.

여전히 곯아떨어져있는 마츠다를 흘끗거린 미유키가 한쪽 입꼬리를 쓰윽 올리며 폴더를 더블 클릭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은, 수십 개나 있는 동영상 파일의 난잡하고 저렴한 제목을 일일이 읽어가면서 점점 벌어져갔다.

[도내 최고급 에스테티션들의 3P 서비스]

[매직미러 자매덮밥 쓰리섬 스페셜]

[길거리 헌팅 후 3P]

[여친과 여친 친구의 유혹, 번갈아가며 골라 넣는 절륜남, 중출 스페셜]

‘이, 이게 뭐야...?’

@@

머엉.

마우스에 손을 올린 채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미유키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조금 충격적이라서, 순간 정신을 놓아버렸다.

‘자매덮밥...?’

혹시 막... 자신, 그리고 카나와 침대에 누워있는 걸 상상해보고 그러는 건가?

[여친과 여친 친구의 유혹]도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마츠다를 놀리려고 엿봤는데 반대로 자신이 놀려지는 기분이다.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리라고 다짐했고, 딱히 뭐라 할 생각이 없는 것도 그대로긴 하지만 속은 좀 탄다.

남은 하나의 폴더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특별2] 폴더로 들어간 미유키.

"어..."

한동안 벌린입을 열어 놓은채 다물지 못했다.

[너는 마조이니까 아줌마의 방귀냄새로 반성이야], [선생님의 방귀 지도]
[잠자는 누나의 방귀], [메이드님과 목욕하면서 방귀플레이].

전 폴더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면, 스크롤을 내리는 지금의 미유키는 수치심에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남몰래 숨겨왔던 비밀이었다.
가끔 자신도 모르게 엄청나고 지독한 방귀가 나올때가 있는 건.

"역시...그날..."

미유키는 마츠다가 이런 야동을 모으는 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잠결이지만 엉덩이에서 뿜어지는 방귀를 느꼈다.
엉덩이를 꾸욱 누르는 딱딱하게 발기한 막대와,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행동까지.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에.

"하아..."

가슴을 쓸어내린 미유키는 일단 모니터를 끄고, 노트북을 원위치에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등진 채 자고 있는 마츠다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찰싸악-!

왠지 얄밉고 짜증나는 마음이 들어, 그의 엉덩이를 아주 강하게 때렸다.

“아. 뭔데...?”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 건지, 무미건조한 감탄사를 터뜨리며 상체를 일으키는 그.

미유키가 능청스레 핑계를 대었다.

“그냥.”

“.... 그냥?”

“응. 그냥 때려봤어.”

“뭐냐...? 갑자기 정신이 나갔나?”

“뭐래... 나 잘 거야.”

콧방귀를 끼고 요에 누워버리는 미유키.

그녀의 목소리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마츠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그냥 자서 화났냐? 더 얘기할 거 있었어?”

마츠다의 잘못은 전혀 없었다.

충동적인 행동을 한 자신이 문제인 거지.

“.... 아닌데.”

“맞는 것 같은데... 이리 와봐.”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저리 말한 마츠다가 미유키 자신의 몸을 끌어당겼다.

복부에 올라간 마츠다의 손을 꼬옥 붙잡은 미유키는, 자신의 뒷목에 그의 따스한 숨결이 닿자 삐죽 내밀었던 입술을 오므렸다.

자신은 오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츠다와 자신의 사이가 틀어지는 일은 없었다.

야동 취향이 조금 특이하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그건 서로의 관계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을 것이었다.

노트북을 엿보기 전에 마츠다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태도를 되새겨보면, 그리고 지금 그가 자신의 배에 손만 올렸음에도 가슴속에 봄바람이 찾아오는 걸 보면 확실했다.

방금 봤던 것들은... 일단 마음속에 담아두려 하지는 말자.

순간적으로 그런 장르가 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잖은가.

물론 [특별]이라는 폴더를 따로 만들어놓은 상태라 그저 충동이라고 치부하기엔 어폐가 있긴 하지만... 괜찮다. 현실과 판타지는 다른 거니까.

그래도 마츠다의 취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

‘봤구나.’

내가 얕은 잠에 빠져있을 때, 미유키는 분명히 노트북 비밀번호를 풀고 내가 받았던 것들을 봤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짜고짜 엉덩이를 갈길 이유는 없었다.

조금 충격을 받았을 테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슬슬 치나미와의 잠자리도 가시권인데, 몰래 해버렸다가 미유키가 모든 전말을 알게 되면 엄청난 원망을 쏟아낼 것이다.

여태까지는 치나미와 끝까지 가지 않은 채로, 그저 마사지라는 명목으로 애무만 했고, 미유키도 전부는 모르지만 마사지를 했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어 안전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치나미와 하룻밤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이제부터는 아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여자친구 몰래 다른 여자와 자는 걸 좋아하겠는가?

상황이 엄청 심각해지기 전에, 미유키를 설득하는 편이 나았다.

단, 단도직입적인 설득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회로를 사용할 것이었다. 미유키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게끔 선택권을 주면서 말이다.

내 야동 취향을 들키는 것이 그 포석.

이게 잘 될 경우, 미유키는 처음엔 거부감을 갖겠지만 서서히 적응해나가겠지.

앞으로의 하렘계획도 무탈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잘 풀리게 될 것이고.

그러나 만약 잘 안 된다면... 대놓고 말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할 터다.

미유키가 탐탁찮아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다만 한 가지 기댈만한 부분은, 현재 미유키와 내 사이가 최고조로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부디 미유키가 널따란 마음으로 잘 받아주길 기원해보자.

미유키의 머리카락 사이에 코를 묻은 내가 말했다.

“미유키.”

“응...?”

“왜 화났는데.”

“화난 거 아니야... 얼른 자.”

“잠깐 나갈래? 라멘 먹을까?”

“지금...?”

“어. 아직도 먹기 싫냐?”

“아니... 난 좋은데... 안 졸려?”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때려놓고선 안 졸리냐고?”

그 말에 미유키가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를 덮어버렸다.

자신이 했던 행동이 부끄러웠던 모양.

킥킥거린 나는 미유키를 놓아주고 요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유키가 이불을 홱 걷어내더니 상체를 일으켰다.

“뭐해...”

“라멘 먹으러 가야지. 너도 옷 입어라.”

“더 안아줘.”

양팔을 앞으로 쭉 뻗는 그녀.

드물게 보여주는 적극적인 모습에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겉옷을 입다 말고 쪼그려 앉아 미유키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머리가 굉장히 복잡하겠지?

내게 그 야동에 대해서 언급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을 테지만, 말을 꺼내기 어려워할 터다.

그러니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다정하게 행동하자.

미유키가 용기를 낼 때까지는 물론, 그 이후로도.

그렇게 미유키와 포옹을 하며 시간을 보낸 나는, 그녀와 라멘을 먹고 돌아와 사이좋게 잠들었다.

이후 다음날, 미유키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스윽.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을 하고 있던 나는, 문득 미유키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마치 똥마려운 사람처럼 안절부절.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던 미유키.

“뭐하냐...?”

황당한 투로 미유키를 추궁해보았지만, 그녀는 식은땀을 감추려는 것인지 손등으로 뺨을 조심스래 훔치며 창밖을 바라봤다.
와중에 평평한 시트에 기울어진 골반은 마치 엉덩이를 꽉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아무래도 방귀가 나올 것 같은 모양.
참는게 쉽지 않은지, 체온보다 낮은 창문에 이마를 가져다 대고 하아, 뜨거운 숨을 내뱉는 모습에 나는 은근 슬쩍 엑셀에서 발을 때어냈다.

"으으..."

미유키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분명 창 밖으로 느려지는 주변의 환경이 보였을 탠데.

여기서 좀 돌아가볼까?
아마 방귀를 참기 위해 두 눈도 질끈 감고 있는 모양인 것 같은데.

"괜찮아?"

"뭐, 뭐...뭐가?!"

"안색이 안좋아 보여서."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미유키는 발작하듯 화들짝 놀라며 그제서야 나를 바라봤다.

'뚝! 뚝!'

어느세 턱 끝으로 땀을 흘려보내고 있는 미유키.
아무렇지 않은척 연기를 하고 있지만 뻔히 보였다.
얼마나 물어 뜯었는지 살짝 붉어진 입술과, 파르르 떨리는 눈썹.
그리고 꽉 다물어져 있는 두 다리.

"자...잠깐! 우리집은 이쪽 방향이 아니잖아."
"지금 차가 막혀서 조금 돌아가는 게 빨라."
"..."

미유키는 뒤늦게 차의 방향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닿고는 무의식 중에 내 손을 붙잡았다.
파르르 떨리는 미유키의 손.

"하윽...!"

그대로 미유키의 허리가 앞으로 꺾였다.
푸쉬이이이~! 하고 무언가 세어 나오는 소리가 차안을 가득 채운다.

"자, 잠깐만...차좀..."

미유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애절한 표정으로 내 팔뚝을 잡고 흔들었다.

"응? 차가 왜?"

애써 모른척을 했다.
그러자 미유키는 차에서 당장이라도 뛰어 내리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차는 도로를 열심히 달리는 중.

'달칵! 달칵! 달칵!'

다급히 몸을 돌려 창문이라도 열려는 듯 버튼을 수없이 누르지만 이미 운전석에서만 컨트롤 할 수 있도록 막아놓은 상태.

"아...흐읏, 하으으으..."

'픽~! 피슈우우우우우~!'

그러는 사이 미유키의 항문이 벌름거리며 점점 빠져나오는 가스의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수치심 가득한 표정과 냄새에 심한 자극이 찾아오기 시작한 아랫도리.

나는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조심조심 운전을 해나갔다.

그렇게 미유키의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즈음.

"으흣...흐아아아아앗...!"

'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밀폐된 차 안이 순식간에 방귀 냄새로 가득 차버렸다.

"콜록! 콜록!"

넒은 방과는 달리 좁은 차 안은 고작 한 번의 방귀였음에도, 눈이 따가워 운전을 할 수 가 없었다.

이를 악 문 나는 미유키의 동네에 진입하자마자, 갓길에 차를 세웠다.

'벌컥!'

미유키는 그대로 차에서 뛰쳐나가, 뒤꿈치를 들고 엉덩이를 꽉 조인채 총총 차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뿌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빵~! 뿌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딕~!!!'

그러나 소리는 너무나도 잘 들렸다.
도대체 뭘 먹었길래 어제부터 저러는 건지.
라멘이 문제였나? 아니면 같이 서비스로 나왔던 낫토가 문제였을지도.

"...더 이상 못참겠다."

냄새를 생각하니 가만히 자리에서 있을 수가 없었다.

"오, 오지마!!"

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아직까지 방귀를 뿡뿡 뀌고있는 미유키.
내가 한 걸음 다가가니 뒤로 돌아 뿡뿡 거리며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진짜 엄청 꼴리네.
입고있는 치마가 펄럭거리잖아.
저 안에 얼굴을 처박고 팬티에 코를 가져다 대면...

"오지말라고!! 진짜 경고했어!!"

뿌우우우욱~!

이후로 한동안 미유키는 방귀를 뀌며 계속해서 나와 걸리를 벌렸다.

바람을 타고 솔솔 코 끝을 간질이는 구수한 방귀냄새.
아무래도 낫토가 맞는 것 같았다.

이후 다시 차로 돌아온 미유키는 발기가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내 자지를 보고는 그대로 대딸을 해주며 정액을 한 발 빼주었다.

아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미유키도 확실하게 눈치 챘을거다.
내가 방귀에 성적인 패티쉬즘이 있다는 것을.

**

노트북을 본 날 이후, 미유키는 대놓고 야동을 언급하고는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수업시간 전에 빵녀, 그리고 부반장과 그런 쪽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들은 야동을 그렇게 좋아한대.”

“그렇다고들 하더라. 근데 갑자기 웬 야동 얘기야? 마츠다 군이 창피해하겠다.”

“오히려 좋아할 걸? 마츠다 군은 속이 음흉하니까.”

음흉하다.

미유키가 매번 하는 말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책상 위에 엎드려있던 내가 나직이 말했다.

“다 들린다. 조용히들 해라.”

그에 미유키와 부반장이 까르르 웃고, 빵녀가 콜록거리더니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내게 있어서 이런 미유키의 태도변화는 좋은 징조였다.

미유키가 슬슬 용기를 내보려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지금은 먼저 언급하기가 부끄러워서 은근슬쩍 날 떠보려는 여우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나, 조금만 더 지나면 스스로 답답함을 느끼고 대놓고 물어올 것이었다.

그래, 서로 솔직하지 못한 커플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라고.

그러니까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봐주렴. 그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그렇게 다가온 부활동 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오지랖을 부리는 테츠야를 애써 무시하며 부실로 향한 나는 렌카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부장.”

“안녕하십니까! 부장!”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건네는 나와는 달리, 테츠야는 군기가 바짝 잡힌 사람마냥 우렁찬 목소리를 터뜨렸다.

그에 깜짝 놀랐는지 어깨를 떤 렌카가 어색한 낯으로 한손을 들어올렸다.

“안녕, 미우라. 지금 온 거야?”

인사는 동시에 했는데, 왜 저 새끼 것만 받아주냐.

벌로 채찍질 10회 추가다.

“네, 부장.”

“옷 갈아입을래?”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테츠야가 부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놈의 뒤를 따라가려던 나는,

“마츠다. 넌 남아.”

날 대기시키는 렌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요.”

“남으라면 남아.”

렌카의 말투에서 엄한 기색이 느껴져서인지, 테츠야가 안쓰럽다는 낯짝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렌카에게 혼이 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계속 그렇게 업보를 쌓아봐라. 어떻게 되나.

짜증이 그득한 표정으로 놈을 보낸 내가 렌카에게 물었다.

“마지막 소원 쓰려고요?”

“.... 자꾸 날 볼 때마다 소원에 대해서 묻는데... 그렇게 불안해? 힘든 일 시킬까봐?”

“불안한 게 아니라, 기대가 돼서 그래요.”

“기대라니?”

“부장이랑 또 어떤 추억을 쌓을 수 있을지 두근두근해서요.”

“추, 추억은 무슨 추억...! 악몽이라면 몰라도...”

“왜 성질을 내고 그래요. 오늘 안 좋은 일 있었어?”

“널 보는 게 안 좋은 일이야...!”

“부장이 불렀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너 요즘 자꾸 나랑 말할 때 평어를 섞는데... 무슨 경우야? 예의는 갖춰주지?”

“왜 서운하게 해요. 우리 사이가 딱딱한 상하관계도 아니고... 평어 정도는 섞을 수 있다고 보는데요.”

“웃기지 마...! 너랑 나는 딱딱한 상하관계여야 맞아...!”

“아, 그럼 주인님은 나네요?”

“이...!”

렌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아아... 이젠 하루라도 저 모습을 안 보면 아쉽게 느껴지는데, 어쩌면 조교를 당하고 있는 건 렌카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다.

낄낄거린 나는 멀리서부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가오는 치나미를 발견하고 렌카에게 손을 흔들었다.

“농담이에요. 수고해요.”

그리고는 렌카가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치나미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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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승님, 주말은 잘 보냈어요?”

“.....”

안부를 물었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날 올려다보는 치나미.

아이스크림을 문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왜 이렇게 깜찍할까.

볼은 빵빵해가지고... 귀여워 죽겠다.

“왜 말을 안 해요?”

내 재촉에 열심히 입을 우물거리던 치나미가 아이스크림을 떼어냈다.

“후배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하세요.”

“이번에 열릴 전국 동계대회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딱히 관심은 없는데... 왜요?”

“후배님께서 참가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때 기억나시나요? 후배님이 검도부에 들어오고 얼마 뒤에, 제게 가르침을 청하셨잖아요. 저는 동계대회를 위해 힘내보자고 했구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음음... 그때 약속을 했으니 이번엔 참가를 하시는 게 맞다고 봐요.”

딱히 약속을 한 기억은 없지만 뭐...

치나미가 가자고 하면 가야지.

현재 내 입장에선 영양가가 없는 대회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가주마.

가끔 리프레쉬도 필요한 거지. 암, 그렇고말고.

“알겠습니다. 단체전이라면 참가할게요.”

흔쾌히 승낙해서 기뻤을까?

치나미의 입가가 활짝 펴졌다.

팔을 쭈욱 뻗어 내 등을 두드린 그녀가 말했다.

“개인전은 2, 3학년 위주로 나가게 될 예정이라 자리가 없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예. 근데 스승님.”

“네?”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너무 치사하지 않나요?”

“앗... 맞는 말씀이에요. 그러면 제가 새 아이스크림을 가져올까요?”

“아뇨. 하나 다 먹기엔 조금 그렇고, 한 입만 먹을게요. 그거 주세요.”

“뭘요?”

“그거요. 스승님이 먹고 있는 거.”

어리둥절해하는 치나미의 허리춤에 있는, 타액이 잔뜩 묻어있는 아이스크림을 가리키는 나.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그녀의 눈에 크게 뜨였다.

“이걸 달라구요...?”

“예. 한 입만 먹고 줄게요.”

“이, 이건 제가 침을 묻혀놓은 건데요...?”

“상관없는데.”

“네에에...? 그럴 수가...!”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한 리액션이다.

언제 봐도 맛있어.

나는 자신이 먹던 걸 주는 게 망설여지는 듯 우물쭈물하고 있는 치나미의 손목을 잡았다.

이후 그녀가 화들짝 놀라는 사이, 아이스크림 윗부분을 삼키고 베어 물었다.

“흐아아앗...!?”

경악을 한 치나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복숭아 향을 목 아래로 삼킨 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요.”

“.... 넷? 그, 그러신가요...?”

“오늘 할 일은 뭔가요?”

“그... 호구 청소랑... 비품 체크랑... 아, 그 전에 소모품이 배달오기로 했는데... 짐을 좀 날라야하기도 하고...”

“나르는 건 제가 할 테니까, 스승님은 비품 체크할까요?”

“앗... 같이 해도 되는데...”

치나미는 알고 있을까?

지금 자신의 몸이 배배 꼬이고 있다는 것을.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으로 간접키스라도 했다고 생각하나보지?

치나미답다. 치나미다워.

나는 무릎을 굽혀 치나미와 시선을 맞추고,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허리를 토닥였다.

“힘 쓰는 건 제가 할게요. 알았죠?”

“.... 네...”

“오늘 부활동 끝나고 뭐해요?”

“레, 렌카와 놀기로 했어요...”

“그래요? 뭐하면서?”

“렌카가 자기랑 단둘이 케이크를 먹으러 가자고 그래서...”

나만 빼놓고 간다 이거지?

버릇없는 노예의 반항... 주인님께서 담아두지 않을 수 없지.

“그래서, 스승님은 알겠다고 했고요?”

“네에...”

“제자는 쏙 빼놓고 둘이서 케이크라니...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아서 서운하네요.”

“어허...! 따돌림이라니, 말씀이 심하세요...! 저야 당연히 후배님을 데리고 가고 싶지요...! 가능하다면 하나자와 후배님도 같이요...! 다만 오늘은 렌카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서, 친구끼리 속을 터놓고 대화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여자끼리의 대화... 뭐 이런 건가요?”

“음음! 맞아요. 그런 거예요. 다음엔 꼭 후배님을 데리고 갈 테니, 널따란 마음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 호익?”

치나미가 말을 하다 말고 온몸을 달싹였다.

내 손이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토실토실한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라인을 사근사근 쓰다듬었기 때문이었다.

“후, 후배님...! 손버릇이 아주아주 나쁘시군요...!”

지금 뭘 하시는 거냐며 따질 줄 알았는데, 레퍼토리를 벗어난 대사를 치네?

게다가 내가 만지고 있는 곳이 야릇한 부위인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까지 풍기다니.

우리 치나미... 성적으로 많이 발전했다.

“그냥 쓰다듬어주는 건데?”

“무, 물론 그렇겠지만... 여긴 바깥이에요... 남들이 본다면 괜한 오해를 해서 남사스럽다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몰라요...”

“아무도 없잖아요. 동산은 부원들이 올라오지도 않고요.”

“.....”

할 말이 없어졌는지 아이스크림을 앙 무는 그녀.

김이 새어나올 정도로 추운 날씨에 저게 잘도 들어가는구나.

헌데 요새는 복숭아를 아끼나? 도통 먹는 모습을 못 봤네.

“조금만 이렇게 있다가 일할까요?”

나긋나긋한 내 물음에, 치나미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쑥스러웠는지 발을 안쪽으로 오므리는 그녀의 등에서 전해져오는 온기.

그 덕에 차디찼던 손이 적당히 따뜻해졌을 즈음, 나는 콧바람을 훅훅 내뿜고 있는 치나미의 머리카락을 잘 정리해주고 굽혔던 무릎을 폈다.

**

시끌벅적한 소리는 물론, 사람들까지 빽빽한 어느 건물 안.

어두컴컴한 조명과 번쩍번쩍 빛나는 기계 사이를 가로질러간 나와 미유키는, 분홍분홍한 분위기가 감도는 어느 코너의 부스 앞에 섰다.

“여기야?”

“응.”

우리가 온 곳은 도심에 있는 큼지막한 오락실 안에 있는,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부스였다.

미유키가 지갑에 넣을 사진을 찍고 싶다기에 왔는데, 이런 아날로그, 레트로 감성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무엇보다 신선해서 좋았다. 매번 같은 장소만 왔다 갔다 하다가, 새로운 곳에 오는 게.

“사람 없네? 운 엄청 좋다... 얼른 들어가자.”

내 손목을 잡아끌어 부스 안으로 들어가는 미유키.

능숙하게 기계를 조작하는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부스 안에 마련된 의자에 껄렁하게 앉아있던 내가 물었다.

“이런 거 많이 해봤나보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이랑 자주 찍었었어.”

“그러냐? 미우라랑도?”

“응. 많이는 아니지만 찍긴 했지.”

“짜증나네.”

그 말에 미유키가 고개르 홱 돌리더니 눈웃음을 쳤다.

투덜거리는 내가 웃긴 듯한 모습.

저 요염한 얼굴을 보니 여기서 한 판 하고 싶어지는데... 진정하렴, 내 자지.

시도 때도 없이 꼴리면 어떡하니. 이러다가 블루볼 현상이 일어나면 어떡하려고.

귀여운 효과음이 튀어나오는 화면을 터치하여 필터와 효과를 이것저것 넣은 미유키는, 자리에 앉아 내 팔에 팔짱을 껴왔다.

[하나, 두울...!]

미유키의 태도에 좋아하는 사이, 기계 안에서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찰칵-!

카운트다운이 지나가고 사진이 찍히자 꾸미기 화면에 나온 우리 둘을 살펴보았다.

뭔가 한쪽 공기가 찬데. 내 표정이 조금 어색한가?

그러한 생각을 하던 찰나, 미유키가 화면에 똥 스티커를 잔뜩 붙여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얼굴에.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진 내가 물었다.

“뭐하냐 지금?”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 두 번째엔 좀 웃어봐. 알았지?”

"다음에는 내가 꾸밀게."

"내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싶은게 있어서 그래."

내 얼굴에 똥을 뿌렸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게 해줘야겠지.

"그래 이제 좀 웃으니까 보기 좋네."

미유키는 사진기 앞에서 내가 웃음을 짓자 그제서야 마음에 드는지 내 팔을 끌어안으며 살짝 고개를 기대왔다.
가슴이 살짝 눌려 뭉클한 느낌이 팔뚝에서 전해져온다.

곧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환한 플레시 불빛이 나와 미유키를 짧고 강렬하게 비췄다.

촬영이 끝나자 마자 나는 그대로 부스 밖으로 나와 패널 앞에 섰다.

짧은 로딩이 끝나고 방금 전 찍은 모습이 화면으로 출력됐고, 양 옆으로 꾸미기 위한 태마와 스티커 들이 주르륵 채워져 간다.

망설임 없이 미유키가 똥을 골랐을때 들어갔던 테마를 누른다.
도대체 이런 건 왜 있는건가 싶었다.
덕분에 좋은 생각이 났지만.

"뭐, 뭐하는거야...!"
"얼굴에 똥을 찍었으니 나는 방귀로 하려고."
"그냥 장난이었잖아...진짜 이럴꺼야?"
"진심으로 좋아서 하는거야."
"말이 되는 소리..."

미유키는 감정에 휩쓸려 화를 냈지만, 곧 진지한 내 표정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그리고 진지한 내 표정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 시켰다.

결국 드러난 감정은 단순한 창피함이 아니었다.
허벅지에 살짝 힘이 들어가고, 신고있는 신발의 코부분이 살짝 올라온게 발끝이 오무라드는 미유키의 반응.

애무를 해줄때 와 똑같았다.
확신이 생겼다. 미유키도 나와 같이 방귀를 뀌는 것에 성적이 페티쉬즘이 있다는 걸.

"미유키는 이 정도는 되어야지?"
"진짜...놀리지 마. 나도 싫단 말이야."
"나는 좋아하니까 내 앞에서는 괜찮아."
"정말...로?"

방귀연기로 자욱한 사진.
반대로 웃고있는 미유키와 나의 모습.
그 모습이 꽤나 괜찮게 그껴졌다. 사진을 바라보던 미유키도 마찬가지인지 좀처럼 화면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미유키의 장난으로 시작됐지만, 어느세 진심이 되어버렸다.
확신 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방귀의 방자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강하게 밀어붙이면 미유키가 내게 방귀를 뀌는 모습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고.


미유키


치나미



렌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