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 여행자...!"


머리가 둥둥 울린다. 무언가에 세게 맞은 모양이다.

내 몸을 좌우로 세차게 흔드는 손길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차려! 지금이 기회라구!"


눈앞에는 마신 하나가 고통스러워하며 휘청거리고 있다.


그제서야 기억이 조금 살아났다.

내가 저놈에게 무지성으로 달려들었고, 덕분에 쌍방으로 치명타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지금이 기회가 맞긴 한 모양이었다.



"윽... 진짜 지긋지긋한 놈..."

"그래도...! 그래도 이제 진짜 끝이야! 조금만 더...!"


도대체 내가 며칠을 이러고 있었을까. 이제는 생각하는 것도 지친다.

망할 놈. 하나밖에 없는 남정네의 꿈조차 이루게 해주기가 그리 싫더냐.


"드디어... 드디어 끝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놈에게 칼을 박아넣었다. 정말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마구잡이로 쑤셔넣었다.

놈은 고통스러운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고... 그럴수록 나는 칼을 더 깊이 쑤셔넣었다.


"이젠... 좀... 죽어!!!!"



마신의 몸을 꿰뚫은 칼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자리에는 작은 팔찌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내가 원하던 게 눈앞에 보이는구나.


"괜찮아? 너 상태가..."

"괜찮아, 그보다..."


나는 그 팔찌를 손에 쥐었고, 페이몬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내 손을 따라갔다.


내가 이거 하나 가지자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어으, 진짜 상상도 하기 싫다.


"크으... 그래도 내가 이겼다... 거지같은 놈..."





동굴을 나오는 내내, 페이몬은 내 주위를 뱅뱅 돌며 내가 새로 찬 팔찌를 쳐다봤다.

원래같았으면 정신사납다고 무어라 했겠지만, 기분이 최고조인 지금의 나에게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이 작은 팔찌에 사람의 몸을 조절하는 무시무시한 능력이 있다는거지...?"

"응, 호흡기부터 순환계, 신경계, 그리고 배설계까지... 이거 하나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가능해."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물건이 있다니... 어휴, 나쁜 놈들 손에 안 들어가서 다행이지!"


사실 나도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 물건을 그렇게 엄청난 야망을 위해 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손 하나 까딱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물건이니까.



그리고... 내가 이걸 내 개인적인 야망을 위해서 쓰려는 것도 사실이고...



"이제 어떻게 할거야? 일단 모험가 길드에 가서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

"아냐, 됐어. 거기다 보고하면 이거 반납해야 할 거 아냐."

"엥? 그럼 어떡하게?"


나는 뭘 묻냐는 표정으로 대꾸했고, 페이몬의 표정은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너, 너 설마... 이걸로 나쁜 짓을 하려는 건..."

"나쁜 짓이 맞기는 하지~ 그래도 이정도는 돼야 내가 그 고생을 한 보람이 있지 않겠어?"


나는 눈앞에서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실험체 1호기에게 팔찌를 찬 오른팔을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페이몬의 표정은 정말 곧 죽을 사람처럼 뭉개지기 시작했다.


"야, 야...! 난 네 파트너잖아! 그, 그거 안 내려놔?!"

"파트너...? 아아, 이것 말인가?"

"야! 너 지금 그게 무슨...!"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팔찌를 작동시켰고...



'꾸르르르르륵~'


페이몬의 배에서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또 배가 고픈거냐고 물었겠지만... 아마 그런 이유였다면 저 녀석이 지금 저렇게 식은땀을 흘리지는 않았겠지.


"야, 야...! 너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으윽...!"

"어라? 왜 그래? 아까는 나한테 뭐라고 말하려고 하지 않았었나~?"

"이, 이 배신자...! 너만큼은 믿었는데...! 끄으윽...!"


페이몬은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보아하니 정말 어지간히 배가 아픈 모양이었다.


"왜 그래? 혹시 방귀라도 마려운거면, 편하게 해도 되는데~"

"흐, 흥...! 내가 순순히 당해줄까봐...? 으윽...! 절대 안 돼...!"


배를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내 앞에서 가스 사고가 일어났던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나즈마에서는 우유 먹고는 탈이 나서 축젯날 내내 가스를 뿜어댔고...

수메르에서는 대추야자 숯탄 전병을 먹고 자는 내내 지독한 방귀를 뀌었으면서.


새삼스럽게 저러는 것도 참...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평소에는 별로 의식도 안 했으면서.



"으윽...! 끄으으윽...! 아흐윽...!"

"정 그렇게까지 참으시겠다면야... 내가 좀 도와줘야겠네."

"야, 야...! 너 저리 안 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하ㄹ..."



나는 하늘에 둥둥 떠있는 녀석을 뒤로 돌려 살짝 안았고, 그저 얹혀있기만 한 손을 통해 뱃속의 엄청난 진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은 순식간에 표정이 하얗게 질렸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웃었다.



"참으면 병이라고? 내가 편하게 해줄게~"

"야...! 당장 손 안...!"

"읏챠~"



나는 아주 살짝, 정말 아주 살짝 배를 당겼다.


지나가던 나비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말 부드럽고 약하게 배를 당겼을 뿐이다.


하지만...



"히으으으윽?!!!"



녀석의 괄약근은... 그 잠깐의 압력조차 견디지 못한 채...

마치 바늘로 찌른 풍선처럼, 온 힘을 다해 가스를 뿜어내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르르르르르르륵!!
뿌아아아아악!!!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덕!!!!!



"흐응...! 아흑...! 흐아아앙... 아흐으윽...!"



이미 표정은 한껏 풀어져버린 녀석은,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건지... 이제는 몸을 약하게 떨며 온몸이 뱃속의 모든 가스를 내보내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부으으으으으으윽!!!
뿌르르르르르륵!! 뿌우!!
부륵... 뿌으윽...



"헤엑... 헤엑... 흐아아... 아앙..."



어느새 페이몬은 내 품 안에서 마치 탈진하듯이 늘어진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나는 내가 며칠동안 했던 개고생이 조금도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 수준으로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페이몬의 호흡이 천천히 진정되고... 녀석의 새하얘졌던 머리에 천천히 생각이라는 것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흑... 으흑..."


녀석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진짜 너무해!! 내가... 내가 그래도 너는... 너는 믿었는데...!"

"............."

"너 미워!!! 다시는 너랑 안 다닐거야!!"


그런 말을 하고는 녀석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고...

나는 홀로 남아 잠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차라리 동료를 잃은 슬픔이었으면 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움직일 수 없던 이유는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 이거, 진짜 죽이는데...?"


이 말도 안 되는 능력에... 순전히 감탄을 하고 있었을 뿐...


나는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초 2부터 취향에 눈을 뜨고는 한참동안 똥챈에서 살던 잡종 방붕입니다...


지금은 어쩌다보니 대학에서 이런 소설이나 쓰고있지만... 사실 그냥 무작정 쓰고싶다고 쓴거라 퀄이 참 개판이네요.


반응 좋으면 후속 만들고, 아니면 그냥 흑역사 되는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