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이상하게 우울한 날이었다.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항상 같은 곳만 빙빙 도는 느낌. 내 인생이 이대로 무기력하게 끝날 것만 같은 느낌.
 

그날이었다, 내 인생이 180도 바뀐 날, 아니... 정확히는 바뀌기 시작했던 날.
 

아무 이유 없이 깊은 숲속에 들어가 정처없이 걸었다.
맹수와 마주칠지도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단 생각이 들었다.


 

"...인간..."
 

"...응...?"
 

"인간... 이신가요...?"


 

그날이었다, 내 삶의 유일한 목적, 나의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 날.


 

(상상용 AI짤)




 

조그만 몸집에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특이한 머리카락, 똑같이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드레스, 그리고 저건... 동물 귀?!

 

"너-너... 누구야?! 아니... 대체 뭐야?!"
 

"흐앗, 저-저는 스컹크녀에요!"
 

"...뭐...뭐라고...?"
 

"...스...스컹크...녀요. 못 들으셨나요...?"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머리를 누가 망치로 쾅- 하고 내려친 기분이었다.
동물인간? 그런게 실제로 존재했단 말인가?

...소설이나 웹툰이라던가... 아니면 라노벨... 그런 데에만 있는 거 아닌가??


 

"...믿기 힘드시겠지만... 여긴 동물인간들이 살아요. 고양이도, 강아지도, 그리고... 저 같은 스컹크도..."



 

나는 그저 입을 떡 벌리고, 그녀를 보고 서 있었다. 현실의 상식을 부정당한 기분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여-여긴... 인간이 돌아다니기에 위험해요... 맹수도 많고... 길을 잃기도 쉽고..."
 

"...그러는 넌... 혼자 같은데, 왜 이 어두운 숲에 혼자 있는 거야? 부모님은...?"
 

"앗, 그건..."


 

그녀는 나에게 무언갈 설명하려 입을 열었는데, 그 순간


 

휘청-

 

"어...어어...? 잠깐... 머리가..."


 

"야-야! 괜찮아?!"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는 그녀를, 슬라이딩하듯이 뛰어나가 겨우 받았다. 하마터면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그녀의 눈이 순식간에 풀리더니, 이내 정신을 잃었다. 심장이 엄청나게 뛰었다.


 

"정신 좀 차려봐! 내 말 들려?!"


 

상태는 심각한 것 같았다. 
삐쩍 마른 몸과 색이 없는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오랫동안 먹지 못한 듯하다.
젠장, 왜 눈치채지 못했지?

난 잠깐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업고 숲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

 

...

 

"으우... 여긴..."
 

"일어났어?"

 

그녀가 눈을 뜨면서 본 건, 난생 처음 보는 흰색 천장
그리고 자신을 덮고 있는 포근한 이불.
아마도, 처음 보는 문명이겠지.



 

"히이이익- 인-인간이..."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나를 밀쳐낼 힘조차 없어보인다.
그 모습이 좀 불쌍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이것 좀 먹어."
 

"시, 싫어요! 여기 뭐가 들었을 줄 알고..."
 

"평범한 고기 스프야. 의심스럽다면 내가 먼저 먹을게."


 

내가 한 숟가락 먼저 들고 나서야, 
안심이 된 듯 그 자기 얼굴 두배만한 그릇을 통채로 들이키는 그녀. 
턱 아래로 조금씩 흐르고 있는 것도 모른 채로, 걸신 들린 것처럼 게걸스럽게,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어지간히 배고팠을 텐데 일단 거부하다니, 경계심이 크구나.
 

...애초에 야생동물이 경계심이 없으면 안 되는 건가?


 

"...겁먹었다면 미안해. 너가 갑자기 쓰러져서... 일단 내 집으로 데려왔어."
 

"우웅... 프하. 감사합니다아..."

 

내 수프를 순식간에 전부 먹어치우고, 만족스럽다는 듯 숨을 내뱉는 그녀.
귀엽구나... 엄청...

난 곧 내가 남자답지 않게 홍조를 띄우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하지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이게 바로...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건가...?


 

"이름이 뭐야?"
 

"...어... 그게... 저는... 하린... 이에요."
 

"하린? 예쁜 이름이네."


 

그녀도 나에 대한 경계를 좀 풀은 것 같다. 그녀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얻은 것 같아서 좋았다.


 

"근데... 아까 숲에서 말이야..."
 

"...네?"
 

"내가 너를 해칠 지도 모르는데, 왜 다가온 거야?"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이 소녀가 스컹크녀라면,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동물을 건드릴 리는 없을 텐데.


 

"...사실... 엄청 무서웠어요. 인간은 소문으로만 들었고, 동물인간을 사냥한다고도 했거든요.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그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 슬픔이 그녀에게도 전해졌나 보다.

그때의 나를 회상이라도 하는 듯
똑같이 우울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니 너무 미안해졌다.

그래서, 난 가벼운 유머로 분위기를 풀었다

 

"...동물인간들은 다 그렇게 귀여운가?"
 

"아-앗, 그- 무-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에요옷...//"
 

"얼굴 펴. 그래야 더 귀여워."
 

"우으... 네에..."




 

그나저나, 아까 그녀가 쓰러지기 직전에 물어본 게 생각났다. 아직 그 답을 받지 못했다.


 

"...왜 거기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던 거야?"


 

그 말을 하자, 그녀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건가?

그녀는 꽤 오래 망설이더니,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동물인간들은... 엄청 수가 적어요. 그 중에서 스컹크들은 더더욱 소수죠..."
 

"다른 동물들은 스컹크를 좋아하지 않아요... 스컹크의 그... 냄새 때문에..."

 

아, 맞아. 스컹크는 특유의 강력한 냄새로 맹수를 쫓아낸다고 했다. 
그 때문에 스컹크를 건드리려는 종족이 얼마 없을 뿐더러,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종족은 더욱 없을 것이다.


 

"...절 내쫓았어요. 숲에 냄새가 밴다면서... '너 같은 냄새나 풍기는 동물은 아무 필요가 없어' 라면서..."

 

...그렇구나.
이 소녀는, 무리에서 배척당했던 것이다. 그것도 이런 어린 나이에... 보호자도 없는 채로.
 

가슴 한 켠이 시려왔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는 바람을 피고 아빠랑 전전긍긍하며 살다가, 돈이 없단 이유로 집에서 내쫓겨지고, 노예처럼 부려지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쥐꼬리만한 월급이나 받으며 사는 나는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분명, 엄청 괴로울 것이다. 너무나도 외로울 것이다. 세상에 내 편을 들어줄 한 명이 있으면 할 것이다.

그래서, 잠깐 동안이라도 내가 그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당분간 내 집에서 지내."
 

"네-네에...?! 정말요...? 전... 냄새 날 수도 있는데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무조건 날 먼저 배려해주는 이 마음씨 여린 소녀를 내쫓은 그 자식들에 대한 분노가 솟구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혼자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아니까."


 

이 말, 
그녀를 잠깐이라도 이해하는 이 따뜻한 말 하나를 그녀가 얼마나 듣고 싶어했을까.


 

"..."


 

그녀는 바닥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점점 몸을 떨기 시작하더니...

 

"흑.... 흐윽... 으하아아아아앙...!"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혼자였던 시간 동안, 끔찍이도 참아왔던 그 외로움이 그녀의 눈물을 타고 내려왔다. 그녀가 얼마나 오래 혼자였을지, 얼마나 외로웠을지 알 수 없다.

그 닭똥같은 눈물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그녀에게 공감하는 슬픔과, 우는 모습도 귀엽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나는 그녀를 품 안에 안고,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거기 있어주기로 했다. 작은 도움이지만,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며.


 

"흐윽... 흐흐흑.... 그동안... 너무... 훌쩍... 힘들었어요... 끄흡... 늑대 아저씨도... 젖소 언니도... 믿었는데...! 흐아아아아아앙...!"


 

그녀의 감정이 다 녹아내릴 때까지, 나는 기다려 주었다.



 

...



 

"... 고...고마워요... 저는... 몰랐어요.... 저를 이해해 줄 사람이... 인간일 줄은..."
 

"괜찮아. 마음껏 울어도 돼. 그동안 수고했어."

 

나는 그녀를 꽉 안고 있었다. 여자와 이렇게 가까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까이. 내 사랑이 전해지도록.

그렇게, 계속해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쉬고 있었는데...





 

"...히끅!"
 

뿌우우우우욱!
 

"읏...?"


 

그녀가 훌쩍이면서, 의도치 않게 방귀를 내뿜었다. 따뜻한 바람이 내 하반신에 느껴졌다.

이거 뭔가 잘못됐다.
나는 곧바로 느꼈다. 스컹크의 방귀,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코를 막고 숨을 참았다.

 

"아앗... 그...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닌데... 배가 눌려서..."
 

"콜록.... 콜록...!"
 

"죄-죄송해요! 많이 지독했어요...?"


 

숨을 참아도 콧속 틈새를 귀신같이 찾아 후각 세포를 괴롭히는 끔찍한 냄새.

마치 썩어가는 쥐 시체 냄새처럼, 너무나도 불쾌했다.

이게 스컹크 방귀 냄새구나. 


 

"...이 정도로... 그런 반응이라고...?"
 

"쿨럭- 케흐윽... 뭐라고...?"
 

"아-아니에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쿨럭...! 괘...괜찮아..."


 

그녀는 다시 시무룩해졌다. 
뒤로 돌았지만, 그녀의 귀는 토마토처럼 빨갛게 익은 후였다.

 

나는 위로해 주려고 그녀의 복슬한 털꼬리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털 사이로 내 손가락이 스민다.

그 아름답고 푹신한, 환상적인 촉감을 채 느끼기도 전에


 

"아읏, 꼬리 만지지 마세요...!"

 

그녀가 멀리 떨어지며 꼬리를 나에게서부터 숨겼다.


 

"미-미안. 난 그냥 위로해주려고..."
 

"...꼬-꼬리는 민감하니까요... 잘못 만지면 '방어 기제'의 맛을 볼 거라구요...?"
 

"윽..."


 

그녀의 수줍으면서도 공포스런 협박에 난 곧바로 손을 내 등 뒤로 숨겼다. 

하긴, 어떤 동물이든 꼬리가 달린 뒤쪽은 취약하니까.

 

"...낮선 사람한테는 더욱... 냄새날 거니까요...!"

 

아무래도, 이 스컹크녀와는 좀 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으응... 지금 몇 시야...?"


 

이런, 그녀를 위로해 준답시고 같이 침대에 누웠다가 그만 잠들어 버렸나보다.
벌써 햇살이 하늘 높이 떠오르고, 새가 짹짹 울어대고 있다.


 

"하린아...?"
 

"으우... 흐아아암..."
 

"잘 잤어?"
 

"네에... 잘 잤어요."
 

"배고프지? 고기 수프 또 만들어 줄게."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앗, 잠시만요!"

"응? 왜?"


 

그녀가 내가 일어나지 못하게 손으로 막는다. 


 

"그-그으... 이불 안에... 자느라 뀌었을 수도 있는데에...//"


 

아...
젠장, 한 이불에서 자지 말걸.
내 하반신에는 뜨거운, 불쾌한 기분이 잔뜩 퍼져있었다.


 

"...내가 코를 막을 테니까, 빨리 좀 치워줄래...?"
 

"알겠어요... 으잇...!"

 

화아아악-

 

그녀가 이불을 걷자마자, 내 눈앞이 잠깐 탁한 노란색으로 변했다 되돌아온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웁, 콜록...콜록..."


 

나는 침대에서 뛰쳐나와서, 바로 냄새가 스민 바지를 갈아입었다.



 

그 다음엔,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냄비를 준비하고, 치킨육수와 쇠고기, 토마토까지. 불은 무조건 강하게! 요리에는 자신 있었다.
 

냄비를 휘저으며, 이 수프가 꽤나 맛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왠지 식욕이 전혀 없었다.


 

"하린아, 아침 먹어!"


 

하린이 신난 듯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내심 뿌듯해진다. 사랑스러웠다. 뽀뽀하고 싶을 만큼...

...나 퍼리충인가?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내 요리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



 

"으하... 끄어억- 흡...!"
 

"헤헤... 트림하는 건 귀엽네. 방귀랑 다르게..."
 

"...놀리지 말아요..."
 

"읏, 정색하지 말아줄래...? 미안해..."

 

다시 한번, 한결 긴장이 풀린 분위기...인데... 왠지 모르게 그녀의 이마에 주름이...

 

"읏... 암튼, 엄청 맛있네요... 숲에서는 맨날 저 혼자 사냥을 나가야 했어서... 쥐고기밖에 못 먹었었는데..."
 

"...소고기 처음 먹어보는구나. 맘에 들어?"
 

"엄청요... 너무 좋-"


 

꾸르으으으으르르르르르르르...! 꾸브브브브브브븝...



 

...어...
방금 뭐였지...?

천둥이라 해도 믿을, 집 전체를 흔드는 듯한 소리가, 그녀의 작은 배로부터 나왔다.


 

"아읏... 배...배가..."
 

"...하...하린아... 이거 설마... 아니라고 해 줄래...?"
 

"...죄송해요... 사실은..."

"어제... 고기 수프 먹었을때부터... 배가 엄청 부글거렸어요... 최대한 참았는데... 이젠 못 참겠어요..."



 

꾸르르르르르르르릐뤼리릭...! 

 

"어-어-어떻게 해야 돼?! 나-나가서 뀌면 안 될까?? 잠ㄲ"
 

"조-조용히 해주세요! 저도 배가 너무... 읏, 나가서 뀔게요..."


 

그녀는 한 손으론 배를, 한 손으론 엉덩이를 잡고, 상체를 숙인 채로 현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빨리 방귀의 여파를 피하기 위해 도망가려는데,
내 눈길이 그녀의 엉덩이로 향하고 말았다.

 

...그 엉덩이를 본 순간, 내 자지는... 그만 기상하고 말았다.

 

'얼굴은 앳된데... 엉덩이는 엄청 크네...?'
 

도망가려는 내 다리를 붙잡는 내 눈과 뇌, 그 요염한 자태에서 관심을 떼지 못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읏, 잠깐... 더 이상 못 참겠...!"
 

"어...어...?"

 

잠깐, 그녀의 옷 너머의 항문이 움찔거린 것도 같다.
재앙의 구멍이 열린 순간,

 

"흣, 흐으으으으으읏...!♡♡"
 

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마치 태풍과도 같은, 거대한 풍압이 나를 밀어냈다. 
눈으로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무지 따가웠다. 필사적으로 얼굴을 옆으로 돌려보는데, 그 무거운 냉장고가 마치 그냥 빈 종이 상자처럼 넘어가는 걸 보았다.

귀가 아팠다.
폭우가 내릴 때 바로 옆에 낙뢰가 떨어져도,
우리집 전자레인지가 터져도
이 정도로 시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미칠 듯이 괴로웠다.
숨을 최대한 참았지만, 강렬한 풍압이 내 콧구멍 안으로 그 작은 배에서 숙성되고 농축된 독가스 입자를 깊숙히 박아넣었다.

마치 화생방 가스처럼, 내 폐에 갈고리와 같이 달라붙어 천천히 오염시키고 부식시킨다.


 

"우욱, 우우우우우웨에에에에에엑!! 끄아아아아악!!!"


 

지옥의 울림 앞에서, 내 필사적인 비명은 그저 개미의 외침과 같았다.
나는 개미처럼, 하린의 방귀에 짓밟히고 있었다. 


 


-어어어어어어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러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


 

거대하고 웅장한 방귀의 대폭발은 점점 더러운 물방귀의 소리로 바뀌어간다. 

코가 마비되었다.
눈물 콧물 침이 얼굴을 뒤덮었다.
더 이상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눈앞이 온통 갈색으로 물든다.
 

고통스러워, 누가 나 좀 구해줘...
이 미친 독가스가... 고작 방귀 하나라니...
 

어리석게도 어제, 실수로 그녀가 내보냈던 방귀의 정도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오래된 농구공 표면에서 바람이 극미량 새어나가던 것일 뿐, 공기마개를 연 것이 아니었다.

 

내 의식이 멀어져가며, 머릿속에 삐- 소리가 점점 커진다. 마치, 수류탄이 터지고 난 후처럼.

 

결국, 난 그 방귀의 끝을 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요......"
 

"......세요......"


 

...나 죽은 건가? 난 분명...
...아. 그렇지. 나 스컹크녀의 방귀에... 

 

"일어나세요!!!!"

 

내 영혼이 몸으로 빨려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무지 상쾌했다. 공기가 그리웠던 건 화생방 훈련 이후로 처음이다.


 

"푸하아아...! 여...여긴..."

 

"아...아저씨... 아저씨...!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왜-왜 또 울고 그래- 우웁, 우우우욱...!"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자마자, 폐에 과포화되어있던 엄청난 양의 가스 중 '일부'가 역류해 빠져나왔다.

그 순간, 난 구토감을 참을 수 없었다.
곧바로 변기로 달려가, 먹은 것도 없는데 연신 토했다.

 

"우웨에에에에에에엑... 우웁... 우우우우욱..."


 

하린이는 그런 날, 안절부절 못한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변기 앞에서, 폐 안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가스가 빠질때까지 구역질을 했다. 



 

멈추지 않는 구토를 끝내고, 힘이 빠져 소파에 기대고 나면, 눈물범벅이 된 하린이가 내 앞으로 걸어온다.

두 팔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안아주지 않았다.

 

"아...안 돼요...! 또...또 제가-"
 

"그냥 이리 와."

 

나는 하린을, 처음 봤을 때 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방귀를 보아도, 내 마음은 변함없다고. 나는 널 싫어하지 않는다고. 그런 뜻이었다.
다행이도, 눈썰미가 좋은 그녀는 내 사인을 눈치챈 듯, 내 품에 다가와서 안겼다.




 

그리고는, 그녀의 혼자 품고 있던 근심을, 털아놓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숲에서 쫒겨난 이유도 그럴지도 몰라요... 숲 전체를 방귀로 뒤덮었거든요... 계속 참다가... 더 이상 못 참겠어서..."

"홀로 지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어요... 제가 정말 쓸모없는지... 정말 냄새나는 방귀만 뿡뿡 뀌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정말 죄송해요... 아저씨는 절 구해주셨는데... 전... 피해만 끼치고... 흐흑... 정말... 저는 쓸모없는... 방귀만 뀌는 스컹크에요... "

"그냥 절... 내쫓아주세요. 더 이상...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무슨 소리야."
 

"...에...?"
 

"넌 스컹크가 아니야. 넌 엄연히 인간이라고. 넌 쓸모없지 않아. 네가 냄새나는 방귀를 뀐다고 해서, 너의 가치가 낮아지는 게 아니야. 난 똑같이, 널 사랑해."

"사실, 널 처음 봤을 때부터... 널 사랑했어. 너의 모든 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네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는 것도, 네가 내 고기 수프를 게걸스럽게 먹는 것도, 그리고... 네 방귀도..."

 

...앗... 본심이 나와버렸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녀가 내 고백을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오직 그렇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가슴에 계속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후후..."
 

이윽고 그녀가 얼굴을 들면,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랑스러운, 그러면서도 약간의 음란한 표정이 섞인, 그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럼... 다행이네요. 저도... 사랑해요. 아저씨.
우리... 사귈래요...?"

 

...다행이다. 
그녀가, 드디어 마음을 열었구나.
 

난 대답 대신,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호흡이 부족할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으웃... 아저씨- 으응... 츄우우우..."



 

______________________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니거든? 이제 스물 다섯이야."
 

"에-에에에?! 그-그치만... 늑대 아저씨가... 키가 크면 다 아저씨라고..."
 

"..."
 

"...화...화나셨다면... 죄송해요."
 

"...아저씨 말고 오빠라고 불러. 그리고... 말도 좀 놓고."

 

"..."

 

"..."

 

"오빠."

 

"...!"

 

아무 생각 없었는대, 그 단어를 직접 듣는 순간, 내 심장이 멈추는 게 느껴졌다. 이런 걸 심쿵이라고 하지?

 

"사랑해...요. 오빠."

 

...하지만, 말 놓는 건 아직 어색한 것 같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번 주말에 데이트 갈까?"
 

"데...이트? 그거..."
 

"응, 그거."
 

".........///////"
 

"어디로 갈까? 해외로?"
 

"그-그냥 근처 카페나 가요..."
 

"피이, 알았어."



 

벌써부터, 이 커플 사이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1화빌런 탈출했다



이미 2편 3편까지 다 써놨고, 좀 간격 둬서 올려봄


진짜 진짜 진짜 열심히 썼는데

그래도 안꼴린다며는 어쩔 수 없는 거고..

꼴리면은 감상평 한 줄씩만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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