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참 좋은 울림이다.


그동안 밀고 당겼던 연애의 마지막 날을 기리기에는 최고의 날짜가 아닐까 싶다.

한 주를 시작하는 출발의 날임과 동시에 코로나로 쳐진 일상 속에 한줄기 빛이 되어줄테니.


그래서일까, 아직 이틀이나 남았음에도 이 떨리는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서양의 누군가가 사랑을 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는데, 정말 이 상황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한 말이 아닐까 싶다.


"201 레이더 보고!"


이 완벽한 분위기를 깨는 저 얼빵한 녀석이 없다면 말이지.


다른 병사들은 눈치껏 알아서 묵묵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꼭 중간에 들어와서 초를 친다.

한 번 보고를 외친 이상 어쩔 수 없이 응답을 해야했기에 한숨을 쉬곤 그의 말을 받아치려했다.


"201 레이더 보, 보고!"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해서일까, 다시 한 번 외치는 띨방한 녀석.

어깨에 떼가 탄 초록 견장을 단 병사가 그의 분대원에게 눈빛으로 주의를 주는 모습이 보인다.


"보고해. 말 절지 말고."


"현재시각 04시 16분! 좌표 폭스 델타! 601 39 지점에서 미식별 표적 한 척 포착되었습니다! 기지로 부터 거리.. "


"됐어, 됐어 그만해."


폐급 새끼.

안그래도 새벽에 꼭 저 지랄을 하고 싶을까.

오죽하면 그의 분대원들 마저 그를 째려보고 있지 않는가.


"하,하지만.. 정말 여기 미식별 표적이.."


"야."


"이,이병 박!창!수!"


"니가 근무하는 곳이 어디냐."


"해남에 있는 관측 기지입니다!"


"지금 시간은?"


"새벽 4시 18분입니다!"


아직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건가.

바보도 아니고, 이 시간에 '북한'에서 최남단의 여기에 침투라도 하겠는가.

그것도 2021년에?


"시덥잖은 소리 집어치우고 자고 있는 니 선임이나 깨워라."


모처럼 남이 기분이 좋아 자는 애들도 묵인해줬더니만, 쓸데없이 나대고 있어.

끽해봐야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이겠지.


"그래도 이쪽으로 오고 있는데요..."


"요~오~?"


"죄,죄송합니다!"


내 기분을 읽은 것일까, 그의 분대장이 그를 잡아 장비실로 데려갔다.

그가 앉아있던 레이더 자리에는 옆에서 졸면서 cctv를 보던 선임이 앉게 되었고 그는 창수가 잡았던 미식별 표적을 지우고는 어선 처리를 해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앉은 채로 시야는 컴퓨터를 보며 취침.


어차피 이렇게 더운 날, 그것도 새벽에는 배도 몇 척 없어 막내를 제외한 병사 전원이 졸거나 떠들고 있었다.

아량 넓은 간부인 나는 그것을 눈감아주었고.


"... 창수야, 니 와 이러노? 저 상 크기면 제주도 만한긴데, 상식적으로 그런게 여기 해남 밑에서 다가오는게 말이 되는 소린거 같나? 내가 그렇게 큰건 허상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게가?"


그 또한 잠에서 깨서일까,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로 그의 후임을 갈구는 소리가 컴퓨터 뒷편 장비실에서 들려왔다.

요즘 군대가 군대같지 않아 폭력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상당히 말을 많이 들었는 듯, 축 처진 창수와 그의 분대장이 다시 상황실로 온건 30분을 지나서였다.


"이철용 상사님? 이틀 뒤에 결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기지장님이 어찌나 상사님 칭찬을 하시는지.. 제가 듣다 못해서 몇 마디 뒷담 좀 했습니다! 하하하하!"


잠이 깨서 일까, 아니면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서일까 분대장은 창수를 구석 통신병 자리로 보내놓고는 내 옆에 앉아 말을 걸었다.


"임마, 내가 너 내 결혼식에 초대해준 것만 해도 감사한줄 알어. 니가 노래도 잘부르고 우리 앞에선 사투리도 안하니 특별 취급이야. 맛있는거 많이 먹고, 결혼식 끝나면 외박까지 하고 와."


"저,정말입니까? 남자가 한입으로 두 말 하기 없기입니다?"


"그래, 그래."


사회에서 모델일을 하다 왔다는 그는 이 시기에 결혼하는 내게 있어 나름 괜찮은 패였다.

내가 담당하는 병사 중 이런 잘난 애도 있다는걸 신부측에도 보여줄 수 있을 뿐더러 군복 입은 남자들로 가득찬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으니까.


이걸로 그도 외박을 나가면 서로서로 좋은거 아닌가?

내가 이걸 허락 받으려고 그 대머리 준위에게 얼마나 아부를 했는데.


그래도, 정말 기쁜 듯한 그의 얼굴을 보니 나름 괜찮아졌다.

어차피 내일 교대시간까지 밤은 길다.

남은 시간 동안 그랑 대화나 하면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일로 와봐. 상황 칠거 없지? 뭐, 해군 애들도 자고 있을거 아니냐."


"걔네는 아침에도 잡니다. 정기 교신도 항상 실패해서 유선으로 전화하면 맨날 알아보겠다 하고 끊는 새끼들에게 뭘 기대합니까? 심지어 오늘은 교신 실패 연락도 안합니다. 새끼들이 빠져가지고는. 이제는 육군 아니겠습니까?"


"크큭.. 그럼 나랑 연애 얘기나 하자. 니는 얼굴도 반반하게 생겨가지고 여자 좀 홀렸을꺼 같은데, 재밌는 썰 없냐?"


"그거라면 제가 또 전문 아니겠습니까? 이야기 보따리만 해도 이~만큼..."


한창을 떠들고 있었을까, 슬슬 해가 보이기 시작해 빨리 퇴근하고 2일을 기다리자는 생각에 부풀어올랐을 무렵, 다시 한 번 정적을 깨는 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통신병 보고!"


"뭐?"


상황실이 좁아 터졌으니 나름 거리가 있는 무전기 자리에서 외치는 소리마저 귓가를 찡찡 울린다.

그리고 정기 교신 시간도 아닌데, 뭔 보고야, 보고는.


"됐다. 정기보고를 지금 왜 하고 자빠졌어."


"아, 아니.. 그게 해군측에서.. 고속 상황 전파 체계를 한 번 확인해보라고 다급하게..."


"바보야, 그게 날라왔으면 큰 소리로 알람이 오지, 우리가 몰랐겠냐?"


"아,아까 알람이 울렸습니다..."


상황을 담당하는 분대장이 내 옆에서 떠들다보니 제때 확인하지 못했나보다.

어차피 별 시덥잖은 이야기겠지만.


"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오냐."


하여간 저 이병, 마음에 안든단 말이야.

내 옆자리에서 일어나 상황병 자리에 달려가는 병장을 보며 참 비교가 되는 둘이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이, 이철용 상사님? 직접 와서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그의 말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방에서 울리는 전화음들.

심지어 군대 내 유선 전화가 아닌, 내 개인 핸드폰도 울리기 시작했다.


뭔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

이런적은 과거 육군 참모 총장에게 고속 상황 전파 체계를 잘못 쐈을 때 이후로 처음...


"뭐, 뭐 잘못한건 없지? 야!! 일어들 나봐!"


자고 있던 인원 전부를 깨운 후, 서둘러 휴대폰 속 전화를 받는다.

상황실 내부는 어차피 총기 보관함을 제외하면 CCTV에 찍히지 않는다.

문제 없을거야.


"통신보안. 전화 받았습니다. 레이더 간부 상사 이 철 용.."


[ 야!!! 새끼야!!!! ]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리는 고함소리.

처음 듣는 목소리였음에도 그 어투나 말뽄새에서 그의 직급이 나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시발, 상황보고 안하냐? 저게 뭐야?" 해군 새끼들은 왜 이제야 연락하고 지랄인데! ]


"저희도 처음이라 알아보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병이 고속 상황 전파 체계 작성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거짓말을 해봤자 어차피 저기 앉아있는 자들은 알 수 없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한다.

눈짓으로 서둘러 이들이 말하는 '저거'를 찾으라고 한 뒤, 계속 말을 질질 끌기 시작했다.


[ 일단 K-6 실은 육경정 띄워. 해군 애들한테 연락 올거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명심해라이, 이거 실제 상황이다. 아직 이른 아침이니까, 괜히 미디어 타기 전에 끝내라고!


"실,실례지만 누구신데 그런.."


[ 사단 작전장교 시발아! 전화를 받지 않으니 개인 전화로 했지! ]


"죄송합니다! 바로 조치를 취한 후 다시 연.."


뚜-. 뚜-.


싸가지가.


그의 전화가 끊기자마자 이번에는 대대 작전장교에게서 연락이 왔다.

뭐길래 이렇게 연락이 온단 말인가.


기분 나쁘게 수화기를 받아 귀에 데려는 찰나, 상황실 내 거대한 TV 화면에 연결된 CCTV에서 무언가가 비춰지자, 휴대폰을 떨어트릴 수 밖에 없었다.


"저,저게 뭐야.."


거대한 대지.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채 마르지 않은 흙 위로 나무와 야생화들이 난잡하게 보이고 있었다.

특이사항으로는 그저 압도적인 질량 뿐.


문제는 그 대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생물도 아닌것이, 마치 의지를 가지고 정확히 이쪽으로 오는 듯한 움직임.


"저게 여기까지 올때까지 뭐 한거야! 서둘러 캡쳐를 띄워봐!"


레이더 화면에 비친 상은 기본적으로 일정 시기마다 캡쳐가 된다.

201 레이더 위치에 앉아있던 상병은 허겁지겁 캡쳐 파일을 열었고, 저 상이 어선으로 마크가 되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친 새끼야! 저게 무슨 어선이야!"


"저,저건 아까 이병이 보고한.."


"뭐?"


정말이다.

처음 새벽 4시 경에 폐급이 보고했던 그 표적이다.

한 번도 그 크기를 줄이지 않고 일직선으로 여기로 이동하는 모양새.


솔직히 위기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괴물도 아니고, 그저 섬 하나가 떠밀려오는거 같은데 부딪치고 끝나지 않겠는가?


문제는 내 징계.

이 새벽에 저런걸 놓치다니.


현재 시각 6시 48분.

아직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캡쳐본 지우고 장비실 가서 레이더 꺼."


"네?"


"내 말 안들려? 니들도 저거 놓쳤다는거 알면 다 영창이라고. 말년에 쉽게 쉽게 문제 없이 가야지?"


입꼬리가 경직되며 올라가는 것을 느꼈지만, 정정할 여유는 없었다.


"우리는 4시에 레이더가 고장나서 고치러 갔던 거야. 차량 출입 명부에 남겨놔. 그 시각 CCTV도 통신 문제라 하고 파일 지우고."


괜찮아.

아직 충분히 만회 가능해.


"저건 어떻게 해야합니까?"


"육지에 부딪치고 끝나겠지. 별 일 있겠어?"


"그,그치만..."


"정신차려 새끼야! 지금 배 타고 내가 나갈테니까,  밖으로 나가서 간부 숙소에서 자고 있는 김기찬 하사 깨워서 상황 보게 해. 전화 다 걔가 받게 하고. 너랑 너. 따라 와."


그나마 쌩쌩했던 분대장과 이병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기지가 산에 있음에도 얼핏 보이는 꽤 커다란 섬.

저런게 어떻게 갑자기 바다에서 떠올라 여기로 오는거지?


"상사님.. 저건.."


"... 빨리 차에 타."


서둘러 항구로 향한 후, 육군 전용 배를 탔다.

크기도 크지 않으면서 낡아서 털털거리는 배.

항상 투덜거리면서 탄 기억은 있지만, 이렇게 긴장해 타는 것은 처음인거 같다.


"막내 너는 무전기 점검해서 기지랑 연락하고 병장은 K-6 잡고 있어. 어차피 사격은 안할거니까."


배를 가동시켜 천천히 섬으로 향했다.

해군이랑 연락하라더니만, 아직도 연락이 없는 해군에게도 화가 났고, 레이더를 똑봐로 보지 않던 병사들에게도 화가 났다.


이정도 크기면 육안으로도 보였을텐데, 새끼들이 다 빠져가지고는.

자기의 보고가 맞았기 때문일까, 괜히 이병의 기분이 좋아보여 머리 한 대를 쥐어 박고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야, 기분 좋냐? 지금 다 좆되게 생긴 마당에?"


"아닙니다!"


"그럼 무전이나 똑바로 해."


"... 상사님? 저것 좀 봐주셔야겠습니다."


"뭔데, 또."


그러던 찰나, 병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표정의 색소가 다 빠져나간게 뭔가 못 볼꼴을 본 모양.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돌하르방?"


우거진 나무나 아무렇게나 박혀있는 암석들 사이로 돌하르방이 보였다.

그 옆에는 < 혼저 옵서예~ > 라 적힌 팻말.


"저게 뭐냐..?"


"그 뒤에는 이상한 배도 붙어있습니다.."


"저거 해군 함정이잖아.."


뭔가 이상했다.

이제와서지먼 생각해보니 제주도와 해남 사이에는 섬들이 많다.

큰 섬인 보길도 같은 섬도 있고.


그런데 거기에 부딪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통신병 보고!"


"시발! 이럴때까지 형식 지키지 말고 빨리빨리 말해!"


다급해서인지 제대로 된 판단이 되질 않았다.


시발. 시발. 시발.


이틀 뒤면 내 결혼식인데, 시발.


"캡쳐본을 확인해 본 결과 상이 점점 커지면서 다가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알기 쉽게 설명해!"


"그게.. 제주도 만한 크기의 상이 분명 섬들이랑 박았을텐데, 멈추기는 커녕, 점점 커지면서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흡수한 것 마냥 말입니다."


다시 고개를 올려 멀찍히 보이는 섬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붙어있는 돌하르방.


"... 저거 사람이냐?"


그리고 조금 더 가까이 섬이 오며 보이는 섬에 빨려들어간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

아니, 사람이라기에는 몸이 섬과 동화가 되어 매우 끔찍한 몰골이였다.


"우웨에에엑.."


비위를 견디지 못했는지 바닥에다 토를 하는 이병.

거치적거리는 그를 발로 차고는 K-6의 사수를 맡으라고 하였다.


"쏴."


"예? 하지만 총기 발사는.."


"쏘라고!! 시발, 저거 지금 우리쪽으로 오는거 안보여? 배가 반대로 가는 속도보다 빠르다고!"


섬이 생명과 지능을 가진 것 처럼 이쪽으로 향한다는게 말이 되는건가?

나 스스로가 웃기긴 해도 방법이 없었다.


"병장 정찬승! 현재시각 07시 11..."


"그냥 닥치고 쏘라고!!"


총알이 발포되며 울리는 끔찍한 소리가 고요한 해상을 덮는다.

무수히 많은 탄피들이 육경정 내부에 떨어지며 탄흔을 남겼지만, 섬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도발을 당한 것 마냥 이쪽으로 더욱 속도를 높혀 다가오기 시작했다.


< 지직-. 지지지ㄱ--- >


"통신기에서 소리가 납니다!"


K-6에 넣을 총알들을 잡느라 손이 사커먼 떼로 탄 이병이 통신기에서 울리는 잡음에 달려가 보고를 했다.


"나도 들려, 시발!"


< 여긴 해군 함정 716-A.. 실제상황. 실제상황. 제주도 내 모든 해군과 교신이 끊겼다. 현재 위치 로미오 75 마이크 112. 현재시각 오전 1시 32분. 다시 한 번 전파한다. 현재 제주도 내 모든 해군과 교신이 끊겼다. 이에 함장 자체 판단으로 복귀를... >


"이게 왜 지금 들리는겁니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이미 해는 중천에 떠버렸다.

시간도 지금은 훨씬 지난 8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 으아아악!! 저게 뭐야? 저게 뭐냐고!!! 통신기 꺼! 우리 위치를 알고 정확히 따라 오잖아! 총 발포 하지 말라고! 아무런 효과 없는거 안보여? 오히려 속도만 빨라지고 있잖아! 속도 최대로 올려!! >


섬은 계속해서 우리와 가까워지고 있었고, 섬이 다가옴에 따라 들리지 않았던, 아니, 이미 한참 전에 보냈던 교신들이 통신기에서 멋대로 울리기 시작했다.


< 구조 요청! 구조 요청! 배가 섬에 접촉하는 순간, 모든 전자 기기 작동 불가! 서둘러 병사들을 배 밖으로 내보냈지만 그대로 땅 속으로 빨려들어갔음! 지금 당장.. >


"저희..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미 도망가기는 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섬의 속도가 점점 크기에 맞지 않게 빨라지고 있었음으로.


시발.


이 긴급한 상황에 전혀 맞지 않게 하늘은 너무나도 화창했다.

그리고 배의 후미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


"배,배가 섬에 닿았습니다!"


"시발, 저게 뭐야.."


배가 섬에 닿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리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일부였다는 듯, 부딪친 그 모습 그대로 실시간으로 굳고 있었다.


"그러게 제 말을 왜 무시했습니까! 그 때 제대로 대체만 했으면 이 상황까지는.. 아니, 왜 저를 항상 얕보고 막 대하고.."


마지막이라 느꼈기 때문일까, 이병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오며 성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뒷편에 있던 그는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에 나와 병장이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넘어져 어벙거리는 사이, 이병이였던 것은 그대로 배 밑으로 녹아 사라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흡수되는 것 처럼.


사람의 몸이 녹으며 몸의 내용물이 밖으로 튀쳐나오자 도저히 바라볼 수 없었다.


나도 곧 저것 처럼 되버리는건가?

결혼까지 고작 2일인데?


"상사님..."


병장은 우리가 타고 있는 배의 앞면을 보고는 이내 포기한 듯 주저 앉아 말을 하였다.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저게 만약 먹은 것들을 흡수하며 그 크기만큼 몸을 부풀린다면..."


병장이 내게 뭔가를 말했지만 귓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장을 희생해서라도 도망갈 수 없나?


"점차 부피도, 속도도 빨라지는 이 괴물이..."


이병이 녹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빨라진 속도에 몸이 굳어버렸다.

뜻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이런 나를 병장은 체념한 듯 바라보며 그의 말을 이었다.


" 한국에 닿아, 그 너머인 아시아에 접촉하는 순간... "


알게 뭐냐고. 어서 나를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입술이 도저히 벌려지지가 않았다.

시야가 점차 작아지며 닿지 않을 욕설만을 내뱉었다.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병장의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