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scpfoundation/30129047

안봐도 무방합니다.

대회를 오늘 알게 돼서 D-3을 이틀 전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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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야~]


"거기 날씨는 어때? 서울은 진짜 죽을 맛이다."


코로나 19 판데믹 이후, 모 정부의 반 강압적인 통제 덕분에 2인 이상 집합이 금지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여자친구와 계획했던 제주도 여행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둘 만이 가게 됐고, 나는 이 황금 같은 연휴에 다시 회사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


[ 너어무 시원한거 있지? 다음에는 꼭 같이 오자! 자기가 예약해준 숙소도 바람 잘 통하고 진짜 좋아! ]


"그래도 네가 웃는 모습 보니 나도 힘이 난다. 오늘 아침만 해도 부장님이 막~ 어휴, 됐다. 여행 나간 애한테 뭔 한탄이냐.."


[ 히히.. 걱정마! 내가 돌아와서 꼭 같이 욕 해줄게! ]


"그래~ 재밌게 놀다 오고, 갔다와서 보자. 선물 잊지 말고!"


[ 야! 나 최예나야.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다구~ ]


그녀의 행복한 미소를 보니 힘든 일상 속에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영상 너머로 비치는 야자수들이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니 괜스래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담배 피러 올라간 새끼가 아주 꼴갑을 떨고 있구만~? 홀로 남겨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옥상에서 잠시 담배를 핀다는 명분으로 사무실에서 나온 나였기에, 솔직히 저런 말을 들어도 싸다.

다행인건 들킨게 부장이나 팀장이 아닌, 내 동기인걸까?


"말도 마라. 대머리 독수리 그 놈 성깔 알잖냐. 미치겠다 진짜. 돈 많이 주니 하루 하루 참는거지."


"새끼. 엄살 하고는. 불 좀 줘봐라."


동기가 담배를 입술에 물고는 고개를 까닥거리자 피식 웃고는 담배에 불을 지펴주었다.

나 또한 한 개비를 받아 피웠던건 덤.


"그래서, 여자친구는 잘 도착했다냐?"


"응. 진짜 좋아보이더라. 나도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면서 수영하고 싶다.  이런 쿱쿱한 매연에서 벗어나서~"


"임마, 우리같은 사축은 평생 이러다 죽을 상이다~. 니는 여친 잘 만난줄 알아. 나는 시발 가방에, 화장품에 다 사달라서 골이 다 땡긴다."


"크큭. 얼굴만 보고 사귀어서 그래. 다 폈으면 슬슬 내려가자. 임계치 낮은 누군가가 펑! 터지기 전에."


"아, 받아라!"


동기가 던진 무언가가 무의식적으로 펼친 손에 그대로 들어왔다.

동시에 느껴지는 차디찬 감촉.


"앗! 차가!"


"나이스 캐치!"


데미 소다. 

새로 나온 청포도 맛.

언제 챙겼는지는 몰라도 방금 뽑은듯 아직 냉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


이윽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가는 동기를 따라 나도 사무실로 돌아갔다.

여자친구에게 일하러 돌아간다는 문자를 보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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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각. 째각. 째각.

 

벌써 6시다.

슬슬 돌아가고 싶어도 부장과 팀장이 저렇게 떡 버티고 앉아 있는데, 어찌 몸을 일으키겠는가.


다른 곳은 다 자택근무를 하는데, 이놈의 회사는 그럴 기미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동기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저 인상을 찌푸리고는 애꿎은 키보드만 난타하고 있다.


100 퍼센트 화풀이다. 

분명 모니터 속 한글 파일에는 '시발'만이 가득 채우고 있겠지.


'카톡!'


이런 분위기 속에도 쓸데없이 경쾌한 알림음이 주머니 속에서 일정하게 울리고 있었다.

아마 여자친구가 그녀가 얼마나 재밌게 즐기고 있는지 사진을 보내고 있겠지.


어차피 퇴근은 그른거 같은데 동기에게 눈치껏 담배를 피자는 사인을 보낸 후,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차피 동기가 올라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으니, 그 전에 알람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안전 안내 문자

[ 서울 시청 ] 07.16.(금) 00시 기준 서울시 신규 확진자 562명 발생. 자치구별 현황 및 동선은 bityl.co/6I7T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전화 120 


이놈의 코로나는 끝날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다.

걸려봤자 독감 정도인데, 뭐이리 호들갑을 떠는 건지.

누가 들으면 세상이 멸망한다해도 믿을 정도다.


그 외에도 수없이 온 안내 문자를 지운 후 진지하게 알람을 꺼야하나 중얼거리며 카카오톡을 열었다.


채팅방을 수놓은 알람 총 17개.

전부 여자친구에게서 온 사진들이다.


미리보기로 보이는 사진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즐겁게 지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룹으로 묶어서 보냈음에도 이 정도 분량이라니.


"여! 이 몸, 등장!"


"늦어. 어떠냐, 분위기는?"


"오늘도 집에 일찍 가긴 글렸다. 여기서 30분 정도 노가리느 까다 들어가자."


"크큭.. 월급 루팡 새끼. 그러니 막내 비서가 너보고 그런 표정을 짓는거야."


"야, 그년 백 써서 들어온 주제에 뭐 그리 잘났다고 나대는거냐?"


주제가 그쪽으로 흐를 것 같은 기미가 보이자 서둘러 동기의 말을 끊었다.

지금은 여자친구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잠깐, 잠깐. 나 답장 좀 하고. 오늘 내내 일하느라 아까 점심 이후로 확인도 못했다."


"같이 봐도 되냐? 나도 이 존나게 답답한 곳에서 벗어난 기분이라도 느껴보자."


"맘대로 해라."


어차피 숨길 사진도 없고 그녀가 즐긴 사진일텐데, 괜찮겠지.

그녀와의 톡방에 들어가니 제주도의 시원한 하늘이 우리를 반겼다.


"키아~ 시뿔. 죽이네!"


잔잔한 바닷 바람이 머릿결을 감싸며 살랑거리고, 야자수는 그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슉슉 거리는 돌하르방과 다음사에 지어진 노트북을 만지는 돌하르방, 가지각색의 돌맹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어때보여? - 오후 1:31 

자기 일하나보네 ㅜㅜ 고생한당 - 오후 2:03

울 자긔 힘내라고 수영복 한 컷! - 오후 2:04


"오우오우. 여자친구 참 잘만났어?"


"... 넘어간다."


수영복 사진에 저장 버튼을 누른 후, 나중에 깊게 감상하리라 다짐하며 다음 사진 목록으로 넘어갔다.

전의 그룹이 제주도의 풍경이었다면 이번에는 제주도의 바다.


그녀는 수영복 사진을 찍은 후 곧장 바다로 향했는지, 그녀의 어머니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사진들은 웃음으로 가득찼다.


"진짜 좋아보이네."


"그러게. 나도 같이 가는거였는데."


".. 나랑 속초나 갈래?"


"미친 남자새끼랑 둘이서 가긴 어딜 가."


어느새 내 옆에 바짝 기대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그를 떼어낸 후, 다시 핸드폰 속 카카오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동기는 질리지도 않는지 어느새 다시 내 옆으로 와서 같이 구경하긴 했지만.


이거 봐! 짱 신기해! 언제 떠밀려왔대? 신기해서 그런지 사람들도 참 많이 모여있어! - 오후 5:43


어느새 마지막 사진이다.

뭐가 신기한건지 그녀가 사진을 보냈긴 했지만, 사람들의 인파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뭐가 보이냐? 나는 네 사모님 밖에 보이질 않는데. 사람이 저렇게 모였으면 뭐 돌고래 시체라도 떠밀려왔나?"


"우리 아직 결혼 안했거든? 그리고 나도 안보여."


"아직? 이새끼, 마음 있었구만? 딱 걸렸어!"


한 건을 잡았다는 듯 신나서 날뛰는 동기를 쫓아 한참을 옥상을 달렸다.

그 사이 여자친구가 보낸 사진은 그만 기억 뒷편으로 사라졌고, 나와 친구는 다시 내려가서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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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야. 내 정신 좀 봐. 벌써 시간이 10시네. 아직까지 퇴근들 안하고 뭐했어? 나 먼저 가볼테니 열심히들 해~"


저 새끼. 알면서도 저런다.

지가 여기 죽치고 앉아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집에 간담 말인가.

벌써 석양은 졌고, 맥크리는 집에 돌아갔는데.


지 와이프랑 싸워서 집에 늦게 가는걸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는데.

심지어 팀장도 질렸는지 그가 집에 가자마자 우리한테 고생했다 한마디 하지 않고 집에 가버렸다.


"시발. 우리 이러고 내일 7시 출근 실화냐? 심지어 오늘 금요일이라고. 불타는 금요일!!"


"그니까. 누구는 제주도에서 호캉스 즐기고 있는데."


"아! 제주도 하니까 생각났네. 결국 아까 사진은 뭐였냐?"


"니랑 여기서 앉아서 일하고 있었는데 낸들 확인했겠냐?"


"에휴.. 빨리 돈 모아서 떼려치운다, 진짜."


"그거 이번 시즌 1917번째야."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의 농담이나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한다.

거의 매일을 같이 보내니 새로운 주제도 딱히 없기에, 그냥 그러려니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것만 보고 가자. 이대로 집 가면 궁금해서 못 잘듯."


"걱정 마. 나도 궁금했으니까."


다시 핸드폰을 열어 카카오톡을 확인해본다.

고작 4시간인데도 몇일은 못 본것 마냥 핸드폰이 반갑기만 하다.


재난문자를 한번에 전부 지우고는 여자친구가 보낸 톡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쌓여있는 사진들과 문자들.


숙소 도착! 오늘 하루 진짜 알찼다. 이따가 전화할게용~ 오후 8:11

지금 확인해보니 아까 사진 잘못보냈네. 다시 보냄! - 오후 8:14

일 끝났어? 끝나면 전화 주랑 - 오후 9:33


"지금까지 놀았나보네."


"여자친구 바람은 걱정 안하냐? 제주도 하면 금태양 아니냐."


"시꺼, 결혼 약속까지 했는데 뭔 걱정이야."


"그 있잖아. 결혼 전 마지막 일탈."


"에휴, 넌 사진 없다. 평생 궁금해하며 살아라."


"미안! 미안! 농담이지? 너네 완전 잉꼬 부부라 질투나서 그랬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3일 연속 증정! 이걸로 퉁?"


못 이기는 척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진을 열었다.

어차피 나도 그 아니면 이렇게 놀 상대도 없기에 그도 알고 그런 장난을 친거겠지.


열어본 사진은 정말로 사람들이 몰려들만했다.

처음보는 돌맹이가 오색빛깔을 뿜어대고 있으니 사람들이 환장할만하지.


"우와, 저거 빛나는거냐? 동영상 없어?"


"밑에 있네. 재생해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바다 속 파도 소리. 그리고 그 위를 나는 갈매기 소리를 바탕으로 영상이 재생되었다.


돌은 마치 사람의 심장처럼, 직접 심장을 본 적은 없지만 영화 속 느낌 그대로.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다.


돌맹이가 두근거리며 박동을 시작할때마다 빛이 튀어나왔고, 그 빛은 아름답게 주위을 수놓았다.

마치 비온 뒤 생기는 무지개처럼, 프리즘을 통과한 듯한 찬란한 빛깔의 색들은 주위의 시선을 확 끌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기획한 공연 전시인가?"


"그렇다기엔 공무원들이 없지 않아?"


"처음 볼때는 좀 이쁘고 신기했는데 계속 보니 또 심장같아서 불쾌한데."


정말 그의 말대로였다.

마냥 신기한 돌맹이로 보기엔 생명의 처절한 몸부림처럼 징그럽기도 하였다.


꼭 저번에 여자친구와 강릉 여행을 가다 로드킬을 했던 사슴의 눈이 떠오르는 듯한 생물적 본능의 기분 나쁜 혐오감...


"뭐 궁금증도 풀렸으니, 난 집에 가련다. 너는? 통화 좀 하다가 갈꺼?"


"아니, 집에서 여유롭게 전화하게. 영상통화를 하기에 내 배경이 조금.. 그렇잖아?"


"네~네~ 보나마나 '자기얌~ 나 수영복 보여줘~' 이 지랄이나 하겠지."


"크큭 부럽냐?"


"흥이다."


동기와 떠들며 여자친구가 보낸 사진과 동영상을 보다 보니 벌써 오후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00시를 넘어가겠지.


후.. 이러고 내일 이른 오전 출근이라니...

확,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밤이라 그런지 도로에 차는 없어 한산하기만 했다.

조금 일찍 집에 들어갈 수 있을거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해 자동차에 연결된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오는 최신 가요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가는 속도를 높히기 시작했다.


"영원한건~ 절대 없어! 그렇게 넌~ "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그런 신나는 분위기를 눈치 없이 깨는 전화 한 통.


"아이씨, 내일 작업 내용이면 상사고 뭐고 없다."


항상 집에 가서 내일 일을 보내는 부장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싶어 전화를 무시하려했다.

사람 부려먹는 것도 한두번이지, 오늘같이 야근까지 하고 또 일 내용의 전화라니 말도 안된다.


잠자코 전화를 무시하자 전화가 끊겼고, 이어서 다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누가 이기나 보자.


그렇게 전화는 연속으로 4번 울렸고, 나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놈의 망할 고물 스피커는 노래가 재생되는 동안 전화를 건 상대방의 이름을 표시해주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부장이게니와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운전 중이..."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내가 예상했던 사람이 아니였다.


[ 오빠!! 오빠!!! 오빠!! ]


더더욱이 내가 예상한 일도, 분위기도 아니였고.


째깍. 째깍. 째깍.

시계는 00시를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