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천장
낯익은 침대
깨질 것 같이 울리는 머리를 감싸쥐며 겨우 일어났다.
비몽사몽한 감각에 겨우 더듬거리며 안경을 집어 머리에 끼우다시피 눌러썼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찬 바닥에 눌러앉아
폰을 확인하니 시간은 새벽 5시 경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당황하며 눈가를 훔치려던 손등을 타고 후두둑,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편같은 잠 속 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난 꿈 속에서 괴물을 보았다.
먹구름 속 큰 외눈을 내보이며 자신을 보고 경악하고 두려움과 혐오로 가득 차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는 이상한 휘광을.
그건 찬란했으나 요사스러운 태양 빛 같았다.
밀려오는 부재중 전화와 톡들.
그리고 북마크 설정해둔 사이트들의 알림소리 사이로 나는 멍하니 침을 흘리며 다시 꿈을 향해 빠져들어갔다.
마치 구속되어 늪에 빠지는 듯 거부권이 거부된 것만 같은 느낌에, 자격이 빼앗겨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된 느낌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딘가 낯선 어둠 속, 익숙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그게 내 정신세계임을 깨달았다. 나와 작별하는 내 정신세계에 나도 마지막 작별을 고하겠다고 내 존재의 바닥을 보았고

거기서 산낙지를 보았다. 맛이 느껴졌다. 짭짤하고 몰캉하며 때로는 질기고 또 달고 고소하다. 그래 맛있었고. 지금도 맛있다.
친숙한 죽음의 맛이었다.
그리고 생명의 맛이었다.
처음 먹었을 때의 기억이 오버랩되며 그대로 구현되었다. 죽은 주제에 목구멍을 틀어막고 입천장과 목젖에 달라붙으며 나를 죽음에 몰아넣더니 결국 짭짤한 맛과 맛있는 향,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안도감을 남기고 뱃 속으로 소화되었던 산낙지.
평생토록 잊지못할 황당한 위기를 선사해준 그것을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집어삼켰다.
이내 내 머리가 몸 속으로 뒤집어지더니 끓어오르는 바닷물 속 피와 태아가 엉긴 심장이 보였다. 그래 이게 나구나. 800그람짜리 아기. 칠삭둥이.
태생부터 사선을 넘어온,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부정하며 나를 부정하는 세계를 부정해온 반항아. 야아 중이병 걸렸네 씨발. 오글거린다.
그래도 오글거려 후들거리는 가슴깨를 붙잡고 나니 이제 뭔가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 이후도. 심장이 원래 박동을 찾아 고요히 육신을 운항했다.
병신같은 구름눈깔 괴물아. 넌 나를 몰라. 날으는 스파게티 신이 너보다 신 같다. 나는 나보다 못한, 신앙과 소유욕, 배고픔만이 존재하는 갖잖은 괴물을 한껏 조롱하고 낯을 굳히고 표독스레 모욕했다.
시야가 점점 번지더니 이내 습기찬 유리알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듯 선명해져 갔다.

좋아, 눈깔괴물은 물리쳤다.
아마도.

방 안이 환해져 바닥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찔렀다. 시간이 많이 흘렀나보네.
시계를 보았다. 5시간이 지나 해가 중천이었다.
 여전히 알림이 쉴새 없이 울렸다.
밤새 이런 현상을 겪은 것이 나만은 아니었다
만약 자아와 빠이빠이하고 패배하고 깨어나면 극도의 흥분을 하며 경련을 일으키고 쓰러진다는데 무슨 정신에 간섭하는 약을 적절히 복용시키면 증세가 완화된다는 소식이 스마트폰 화면 가장 위에 큼지막하게 떠있었다.
다른 알림은 가려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렸다.

창 밖이 소란스러워 내다보았더니
어젯밤 소동에 아무대나 주차한 차로 대충 막혀있었지만 고요했던 거리는
정신병원과 병원, 약국에서 약을 탈취하고 복용하려는 사람들, 사람들로부터 약을 지키거나 빼았거나 거래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혼합된 짬통같았다. 기절한 아이를 들쳐업은 한 아이의 아버지가 약 한상자를 모두 가져가려는 사람과 시비가 붙어 싸우고 있었고, 그런 일들이 눈을 돌린 어디에나 있었다. 벌써 누구는 맞은 듯 피흘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바위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고함과 다툼은 점점 커져갔고 그 사이로 기독교도들은 혼란을 틈타 전도를 하고있었다. 심지어 그 가운데서 찬송가 틀어놓고 예배도 하고 있었다.
 다크소울이냐. 블러드 본이냐고

바람이 땀에 젖은 옷과 얼굴을 스치며 몸을 식혔다.

그리고 나는 일종의 확신을 갖고 기다렸다.
곧이어

재단의 알람이 모든 스피커에서 최대 볼륨으로  흘러나왔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파란 파장이 머리 안에서 번뜩였다.
사람들은 진정을 하고 안정을 되찾았다.
다만 그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정신이 무너진 사람들을 구원하지는 않았다.
 윗 층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피눈물과 개거품을 물고서 자기 옷을 뜯어내며.
쾅! 철퍽. 육편과 피가 바닥을 수놓고 빨간 점을 찍었다.
푸른 빛 사이로 재단의 방송이 울렸다.

자아가 탈취되어 신도화가 진행된 사람들은 포악합니다. 제물이 되기 위해 어떤 것이던 감수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기절한 사람들 주변으로 가지 마십시오.
일어나면 방해자를 치울 것입니다.
신도의 반경 3이내에 맨 몸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특히 피를 주의하십시오.
신도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도를 막고 싶다면 사지를 무력화 하십시오.
신도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할 방법은 없습니다.
푸른 빛은 꺼졌다.

기절해서 업힌 아이가 아버지의 팔을 물어뜯고는 아파트로 내달렸다.
곧 우당탕거리고 건물 입구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동네 모든 아파트에서 가족이었던 것의 투신을 막기 위한 사투가 벌어졌다. 어젯밤 까지만 해도 아이였던 것들이 울며말리는 부모와 형제들을 때리고 흉기로 찌르며 난동을 부렸고
부모였던 것들이 말리는 자녀들과 배우자를 내던지고 발로 찼다.
그러나 곧 조용해지며 그쳤다.
가족들마저 감염시킨 그것들이 계단으로 올라가며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귀에 들리는 신호음 사이로 아파트에 울렸다.
2분도 다 지나지 않아 소요는 정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아직 대다수의 사람들은 밖에 나와 있었으므로
곧 떨어지는 시신의 비를 맞이하고 말았다.
퍼벅
피와 살점이 흩날렸다.
인도와 조경수, 자동차들은 빨갛고 흰 것들로 뒤덮혀 이 세상 뭔가가 아닌 것 같았다.

-ㅡ-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마음이 갈가리 찢겨 파편만 남기고 사라졌다.


곧 정신이 나가 울고 포효하며 가족의 있을 시신더미로 달려드는 사람들을 그나마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이 뜯어말리고
 옷을 벗고 열심히 피를 닦아내는 사람들과 그를 돕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머리부터 흥건하게 피에 젖어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의 옷을 빌려 가장 열심히 몸을 닦던 사람이 곧 행동을 멈추고 눈에서 빛이 꺼지고 촛점이 사라지자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안 보는 것은 피에 닿은 사람들 뿐.

피를 뒤집어 쓰거나 튀기거나 흩날리는 핏방울에 닿은 사람들 주위로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가족마저도. 절절 끓는 목소리로 정신을 차리길 기원하며 이름과 호칭을 나지막이 부르긴 했지만 사방에 보이는 참상에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붉고 흰 김이 나는 뭔가의 것들로 빨갛게 칠해진 흰 아파트와 헐벗은 채 가만히 서있는 사람들.
비현실이 실현되어 보이는 기괴한 분위기는 보는 것 만으로 정신을 깎아먹고 압도했다.
 그것들은 고개를 쳐들어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가장 높은 아파트의 입구로 질서 정연하게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 길을 터줬다.
 행여나 피가 튈까 최대한 뒷 줄에 서려했고 맨 앞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아직 멀쩡한 나무나 자동차 뒤에 서 그것들을 방패삼았다.
그들은 고함도, 비명도, 울음도 내지 못하고 가족이었던 무언가가 일렬로 계단을 올라가 사라지는 것을 조용히,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리고 조금 뒤에 그들이 옥상 위에 차례로 등장하자 그제야 소란을 피우며 빈 자동차나 상가 건물 안으로 피신했다.

퍼벅벅 으직 후둑

다시 한 번 피가 튀었을 때에는 아무도 소리내지 않았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길 잠시 시체들의 가장 커다란 무더기에서 종양이 자라기 시작했다. 주변의 뼈로 살덩이를 보호하듯 진을 친 그것은 잠시 박동하더니 터졌다.
드러나는 살점의 거체.
육벽. 그건 그렇게 밖에 표현 할 수 없었다.
사르킥 숭배.
김이 빠지듯 삶을 포기했던 내 마음에 두려움이 일었다. 이기긴 지랄.
그 구름눈깔이 사르킥과 관련있는 걸까?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불을 껐다.

살아 움직이는 육벽이 역병을 뿜어내어 사람들의 몸에서 종기가 자라나게 만들고 곧 터져나온 악취나는 고름에서 부패와 오염의 역병이 다시 터져나온다. 사람들은 피주머니가 된 자기 몸을 이끌고 인근의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에 올라
높은 곳에 있던 것들은 자기 자신을 떨어뜨려 공양하고 낮은 곳에 있던 것들은 서로 깔아뭉개며 찢고 물어뜯어 피를 모두 흘러나오게 했다.
가장 외곽에 있던 것이 껍데기만 남은 육편을 뒤로 집어던지고 곧 자기도 무릎을 꿇어앉이 피구덩이에 흘러들어가지 않게 하고서는 할복하듯 근처에 나뒹구던 뼛조각을 손에 쥐고 배를 갈랐다.

똑.딱!똑.딱!
깨어나고 30분도 체 지나지 않았다.
난 이 마을의 유일한 일인가구 주민이었으니 가족 전부가 멀쩡했던 것이 아니라면 아마 생존자는 나만 남았을 것이다.

목이 탔다.

새로운 피에 닿은 육벽이 피는 내버려두고 기어가 고기와 뼈를 이용해 버스만하게 몸집을 불리더니 2개, 4개.. 곧 승용차만한 크기의 살덩이 6개로 증식했다.

욕조와 그릇에 물을 받고 모든 배수구를 막았다. 부엌에서 야채들을 씻고 불렸다. 살아남기 위해.
육벽에 둘러쌓여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저것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불을 싸질러서 다 태우고 자살해야 했다.
저것들은 위키에 따른다면 생명체의 피, 그리고  따듯한 것들의 움직임과 촉각에만 반응하니 지하주차장에는 없을 것이었다. 독가스만 조심하고 무사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만 있다면 내 스타렉스가 알아서 해주리라 믿었다.

밥을 먹고 도시락을 싼 뒤
육류는 핏물을 받아 두 봉지에 나눠 넣고 밀봉한 뒤 뼈와 살은 모두 비닐에 싸서 냉동실에 처박아뒀다.
실크와 면으로 된 옷들,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로 된 옷들은 가위로 잘라 적당히 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쌀과 통조림 라면, 건조식품과 옷가지를 챙기고지갑에 가족이 찍힌 사진들을 넣고 스테인리스 보온병에 물을 넣고 도시락통에 현금과 귀금속을 넣었다.
구급약품과 마스크, 코로나용 방독면과 정수필터, 통과 비닐들, 세제, 락스, 표백제와 부탄가스, 압축산소와 액체석유 키보드 청소 스프레이, 숯과 라이터, 기름, 실리콘, 금속자재들과 공구, 태양광 전기 충전기와 축전지, 변전기, 카메라렌즈, 알람시계와 종, 보드마커, 페인트와 잉크, 끝이 뾰족한 펜들과 소화기, 밧줄과 노끈, 벨트, 면과 나일론, 실크 재질 옷들,호스, 옷걸이, 돗자리, 아령들과 원판들, 휴대용 카트와 여벌장갑과 글러브, 무기들을 챙겨 여행용 케리어에 넣었다.
어찌나 양이 많은지 케리어 3개도 모자라다.
5개나 있으니 다행이지.
옷장문과 유리창문, 현관과 복도의 방화문을 때어 밧줄로 묶어 복도 벽에 붙여 놓았고 집에 있는 철제란 철제는 모두 때어 또다른 케리어에 넣었다.
 완성된 짐들을 한 번 더 비닐로 싸고 줄로 감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실었다.

제작년 예비군훈련 갈 때 신었던 전투화를 신고 안전화를 챙겼다. 몸에 보호구를 두르고 방역복을 입은 뒤 방독면을 썼다. 코로나가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 더 큰 재난을 만났을 때라니 나참.

마지막으로 내가 문을 때어내 휑한 현관을 나무 상자들로 막아 둑을 세우고 망치로 가스관을 부수고 전기장판을 부수고 튼 뒤, 온 집안 바닥을 적실기세로 물을 틀어놓고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건전지와 라이터, WD-40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또 짐볼과 마사지 건에 핫팩들을 붙여 놓고 기다렸다.
이 집이 하나의 미끼와 트랩이 될 때 까지.
현제시각 오후 2시 48분.
12분만 기다리자.
낮 3시가 되자 밖의 기온이 36도까지 올랐고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일기 시작했다.
집 안 모든 곳에 물이 차올라 곧 쇼트가 일어나게 생겼다.
핏물받은 봉지 하나를 열어 계단의 중앙 틈에 흘려놓고 다른 하나를 베란다를 열고 던져 육벽과 가까운 쪽으로 떨어지도록 했다.
그 작은 철퍽 소리가 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피가 흘러 가장 가까이 있던 육벽에 닿자 색다른 맛을 본 놈이 꿈틀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촉수를 뻗어 다른 놈들에게 알렸다. 놈들 중 넷이 움직였다. 천천히 그리곤 갑자기 급속도로.

나는 그 꼴을 보고 마사지건을 켜 찬장에 둔 뒤, 전자레인지를 3분 뒤 작동하도록 해놓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내려갑니다. -삑- 지하 1층. 출발합니다.
오늘따라 낡은 아파트의 덜덜거리는 진동이 유쾌하게 느껴진다.

시동을 걸고 짐을 다 싣자 우릉! 쾅! 소리가 육벽의 괴성과 함께 들려왔다.

차를 타고 나가며 보는 광경엔 불이 난 우리집과 쉽게 꺼지지 않는 불에 구워지고 눌러붙어 아무것도 못하고 타들어가는 종양덩이들이 보였다.

그 진동과 움직이는 불덩이에 뒤늦게 다른 두 놈이 몰려들지만 그러면 나야 더 좋지. 다 타뒤져라.

한산한 언덕, 사상 초유의 재앙으로 인해 아무도 없는 뒷산에 도착한 나는 시동을 끄고 물자를 정비했다.

그리고 몰려오는 피로감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