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상남도 하동군 근처에서(세부주소 첨부) 이상현상 목격.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신기루 같은 이상현상이 발견됨. 가까이 접근하지 않을 시에 약 5분 이내로 사라지는 것으로 보임.

D등급인원 15명을 투입하여 이상현상 조사중.

대략적인 위치는 확인했지만 현재까지 이상현상 미등장.

데이터수집을 위한 D등급 인원 추가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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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치신 분들께, 동심으로 돌아갈 기회를 드립니다. 

본 놀이동산은 오직 어른들을 위한 놀이동산이며 일상에 지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으신 성인들에게 추천드립니다. 

그 당시의 꿈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던 분들, 동심을 잃어 예전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으신 분들께 다시 한번 예전의 모습들을 기억할 기회를 드립니다.

부디 삭막하고 메마른 현실을 벗어나 그때의 그 기억들을 되짚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도 안되는 캐치프레이즈지만 나는 지금 저곳으로 향하고 있다.

허구한날 쪼아대는 상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기 때문일까.

내 모든 행동들이 아니꼽다는 상사의 매서운 눈초리를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무시하며 연차를 쓰고 나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스팸으로 치부하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나도 모르게 겨우 몇 줄의 광고 문구에 홀려 3시간을 걸쳐 이 이름모를 테마파크를 찾아가게 되었다. 

이유는 아마 동봉된 사진이 내 어렸을 적 기억의 테마파크와 똑같기 때문이겠지.

숲 속에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찾아가는 길주변엔 온통 나무뿐이었다. 출근길 빌딩같이 빽빽한 나무들을 지나 누가 봐도 인위적인 시설과 마주치게 되었다.


[환상의 나라]


특유의 휘황찬란하고 유치한 대문에 떡하니 적혀 있는 문구. 테마파크의 주인의 형편없는 작명센스에 혀를 차면서도 드디어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되었다. 


“사람이 없군.”


평일, 비수기 치고도 너무 사람이 없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도 서너 대 뿐,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 하나 없고 보이는 것은 창문에 비친 다크서클이 깊게 내려앉은 내 얼굴뿐이다. 뺵빽한 나무들만 감옥의 철장처럼 황량한 주차장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무슨 생각으로 혼자 이 곳에 왔을까. 테마파크 혼자가기는 혼밥, 혼술에 익숙한 나로써도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이다. 애초에 테마파크란 개인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우정, 사랑, 가족애를 과시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찾는 곳이지 그 중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는 나를 위한 자리는 없다.


“대충 주변만 둘러보고 산책하다 가자.”


 적적함을 깨기 위해 혼잣말을 지껄여보다 문득 깨닫는다. 어째서 음악 하나 들려오지 않는 것이지?

그제서야 들려오는 디즈니 풍의 음악들. 나는 이 작위적인 타이밍에 왠지 모를 불쾌함을 느끼며 매표소로 향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환상에 나라]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젠장, 나는 이쁘장한 여자 매표원을 기대했지 저런 칙칙한 중년을 기대한게 아닌데, 매표소의 남자는 중절모를 벗은 채 우스꽝스런 콧수염을 씰룩이며 내게 말했다.


“저는 이 테마파크의 관리인입니다. 만나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저희 테마파크는 아직 시험 운영중에 있어 메일을 보낸 몇몇분들께만 개방되어 있습니다. 시범운영중이지만 모든 어트랙션의 안전상태를 확인하였고 편안한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부디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남자의 ‘시범운영’이란말에 나는 당황하여 물었다.


“아니 그럼 아직 정식으로 개장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고객님. 본 테마파크는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어 있지 않으며 10년 전 폐장한 놀이공원을 인수하여 리모델링 후 운영준비중에 있습니다. 인수한 놀이공원을 재밌게 즐기셨던 고객분들 중 몇몇에게 본 테마파크의 사전 관람을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보내드린 메일에도 분명 적혀있을텐데요, 대신 본 테마파크의 이용과 서비스 모두 무료로 제공됩니다.”


메일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 작위적인 느낌에 끈적거리는 불쾌감이 올라온다.


“죄송하지만 제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온 터라 어트랙션은 타기 힘들 것 같군요. 그저 테마파크 주변 산책만 하고 싶습니다.”


“물론 괜찮습니다. 고객님. 테마파크란 고작 몇 개의 기계와 장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환경 모든 것이 합쳐진 것이죠. 퇴장하실 때 의견 몇 줄만 적어주시면 충분합니다. 고객님의 편안한 관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냥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미 장시간에 걸쳐 내려온 것이기에 그냥 주변 산책만 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남자의 환영을 받으며 야릇한 느낌을 주는 테마파크 안으로 입장하였다.

입장 후 바로 정면, 어느 테마파크들이 그렇듯 테마파크를 상징할 만한 큰 나무로 이루어진 커다란 시설이 보인다. 그 시설의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세희?”


“진혁오빠?”


이 황량하고 이상야릇한, 테마파크에서 마주친 인물은 4년전 헤어진 전여자친구였다.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된거야?”


“오빠야말로, 지금 회사 바쁠 때 아니야?”


“나도 모르겠다 어쩌자고 그냥 내팽겨치고 온건지.”


“하, 나랑 만날때는 그렇게 회사가 중요했으면서”


세희, 그러니까 내 전여자친구와 테마파크를 걷고있는 이 비현실적인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친구들도 다 결혼했고, 간만에 일도 안들어오고 있어서 집에서 빈둥거리는 중에 메일이 왔더라고. 그냥 할것도 없고 옛날생각도 나서 와봤지. 오빠를 다시 볼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 있을걸 그랬나”


할말이 없다. 계속되는 업무들과 세희와의 관계에 지쳐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말을 꺼낸건 분명 나였으니까.


“어… 요즘 뭐하고 지내? 인스타 올라오는거 보면 그래도 재밌게 살고 있는거 같은데.”


지금 내가 뭐라고 씨부리고 있는거지, 당황한 나머지 뇌속에서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입밖으로 뛰쳐나온다.


“하, 내가 잘 지내는거 같아보여? 그럼 다행이네 누구 보란듯이 잘 지내려고 노력했으니까.”


손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있고 등은 이미 젖은지 오래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은 아닐까.


“저기 세희야. 예전에는 있지…”

“됐어, 말하지마… 오빠, 기억나? 오빠가 처음 고백한 곳.”


“그래, 동아리 맴버들이랑 놀이공원왔을 때 너에게 고백했었지.”


“잘 아네. 그럼 이런건 어때? 마침 나도 혼자 왔고 오빠도 궁상맞게 혼자 다니고 싶진 않을거 아냐. 오늘 하루만 예전으로 돌아가 보는거 어때. 그때 오빠가 고백한 그날 말이야.”

“......세희야”

“미안, 괜한 말을 했네. 잊어줘. 내가 지금 뭐라는 거람…”


고개를 숙이는 세희의 귀가 붉어져 있다. 우리는 진실로 사랑했었다. 영화와 만화에 나오는 사랑처럼 누구보다 뜨거웠고 식을 줄 몰랐다. 영원할 줄만 알았다. 멈출줄 모르는 나의 사랑이었지만 세상 누구나 그러하듯 내 심장은 세월에 마모되고 사회에 침식되어 더는 사랑조차 기운을 소모해야될 과업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 심장에 일말의 온기라도 남아있는 것일까. 너무 오랜만에 만난 이 만남이다시금 내게 감정을 불어넣는다. 이런 떨림을 느껴본지 얼마나 됐을까. 다시 찾아온 내 심장의 박동이 그저 흘러가게 두기로 했다.


“그래 좋아.”


“어?”


“오늘하루는 같이 예전으로 돌아가 보자.”


세희의 당황한 얼굴이 귀엽다. 어느새 눈물까지 맺혀있었나.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한걸까, 나중에 후회할지 몰라도 이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작고 가녀린 손을 잡았다. 많이 긴장했는가 그녀의 손이 나의 손으로 미세한 진동을 전한다. 나는 더 꽉 잡아 떨림을 멈추게 한다.


잡은 두 손을 꽉 쥐고 놀이기구로 향했다. 손에 흐르는 땀이 누구의 땀인지는 상관없었다. 진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듯이 내 심장은 존재를 증명하겠다는 듯 요란히 쿵쾅대고 있다. 


함께 장미 정원을 걷고, 작은 서커스를 보았다. 정말 과거로 돌아간 듯이 우리는 의도적으로 근황에 대한 주제를 피했다. 세희의 모습은 예전의 내 첫사랑일때의 모습과 똑같았고 그녀에게도 나는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함께 놀이기구들을 타며 웃고 떠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지금 이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마음 졸이던 그녀와 맺어진 순간이니까. 그녀와 함께인 이 순간을 얼마나 상상했던가. 가끔 밤중 이런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며 입꼬리를 올린 채 행복한 꿈에 빠지곤 했다. 심장은 계속 쿵쾅대고 있고 그 꿈이 현실이 된 지금이 너무 행복해져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이 하루가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세희야, 정말 좋아해. 동아리때 처음 만났을때부터 쭉. 나랑 사귀어줘서 정말 고마워.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다.”


관람차 안에서 세희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미치겠다. 세희에게 내 심장소리가 들리면 어떡하지?


그녀는 웃으며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우리 둘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이젠 내 심장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야! 진혁이 이새끼 뭐하냐?”





난데없이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며 밖을 바라봤다.


“어? 김준수?”


“와 이새끼 여자끼고 있네, 세상이 미쳐 돌아가나보다”


밖에는 오랜만에 보는 내 친구들이 서 있었다. 얘네가 여기 무슨일이지. 


“세희야 여기는 내친구 준수, 민혁, 병건이. 이새끼들아 여기는 내 여친님이시다. 빨리 대가리 박지않고 뭐하냐?”


“와 진혁이 여친분이라고요? 진짜요? 혹시 이새끼한테 돈빌렸어요? 제가 대신 갚아 드릴게요, 빨리 헤어져요”


“하, 이새끼도 여친이 있는데 왜 나는…”


인원이 5명으로 늘어났는지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라 나도 신이 나기 시작했다.


“이게 얼마만이냐 새끼들아. 그동안 잘 지냈냐?”


“나름 잘지낸거 같은데 니새끼 면상을 봐서 지금 다 망쳤다. 니가 나보다 먼저 여친을 사겨?”


늘 그랬듯이 우리는 티격태격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됐고 빨리 저거나 타러가자 줄 오래 기다려야 돼. 병건이 자식은 무서워서 못탄다니까 걍 버리고 우리끼리만 타러가자”


“아니 진짜 인간적으로 저거 사고나면 어케할꺼냐고 진짜 니들이 생각이 없는거지”


“네 다음 쫄보새끼ㅋㅋㅋㅋㅋㅋ 어 진혁이 너도 설마 쫄?”


“하 이새끼들이 난 저거 안전바 없어도 타지 찐따들아”


“ㅋㅋㅋㅋ 새끼 허세는 야 빨리가서 줄이나 서자”


우리는 제일 무섭다는 롤러코스터에 줄을 섰다. 할 얘기가 넘처나 벌써 1시간은 줄 선거 같은데도 화제거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아 그러니까 니가 맨날 브론즈지 ㅋㅋㅋㅋㅋ”


“아 시발 그게 여기서 왜나오는데”


“닥치거라 브론즈는 말할 권리가 없느니라!”


“앜ㅋㅋㅋㅋㅋㅋㅋ 진혁님 송구하오나 버스한번만 가능한지 아뢰옵니다”


게임얘기로 시시덕대며 마침내 롤러코스터에 오르게 되었다. 밑을 바라보니 아득하다. 아니 여기서 떨어진다고? 미친거 아니냐, 아 씨 애들있어서 이거 쨀수도 없고 개떨리는데 어떡하지?


“야, 진혁아 쫄리냐?ㅋㅋㅋㅋㅋ”


“너나 지리지 않게 조심해라아아아아아아아ㅏ!!”


눈깜짝할사이에 롤러코스터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내 온몸의 내장들이 다 뒤로 쏠리는 기분이다. 머리칼은 바람에 휘날리며 내 앞길을 막는 공기들을 얼굴로 찢으며 우리들은 질주했다.






“우웨에에에에에엑”


“야 병건이 토한다 ㅋㅋㅋㅋㅋㅋㅋ””


병건이에게는 너무 과한 자극이었나보다 ㅋㅋ 애가 정신을 못차리네 ㅋㅋㅋ


“지금 시간이 거의 다 됐으니까 하나만 더 타고 가면 대충 집합시간에 맞을 것 같다”.


“오키 그럼 하나는 귀신의 집으로?”


“아 존나싫어 시발 진짜 제발”


“응 병건이는 집에가던가 ㅋㅋㅋㅋ”


소수의 의견은 묵살한채로 우리는 귀신의 집으로 갔다. 와 겁나 섬뜩하네 이래서 들어가겠냐?


개쫄리지만 일단 티낼 수 없으니까 친구들 눈치 좀 보자.


“야 진혁아 안들어오냐?”


미친놈들 그새 들어갔다고?


“야이 새끼들아 기다려!”


뒤쳐지지 않게 부리나케 쫓아간다. 하지만 앞은 아무것도 없는 어둠뿐, 이새끼들은 도대체 어디간거야? 아무리 앞으로 걸어도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으스스한 배경음악과 소품들이 내 간은 더 쫄리게 만든다. 


“아 시발, 내가 이걸 왜 온다고 해서”


진짜 장난이 아니고 존나 무섭다 바지에 살짝 지린거 같다. 아 중간에 출구도 못찾겠는데 아 진짜


어느새 배경음악은 멈추고 주위에는 질척이고 음침한 적막만이 감돈다. 

귀 사이로 벌레가 들어가는 것 같은 고요한 적막속에 몸부림 치며 앞을 향한다


온 신경을 밖으로 집중한 채 걸음걸음을 조심히 내딛는 순간,



‘턱’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내 어깨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촉감에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지르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마!!!!!”


“아니 여보! 그러니까 애를 왜 이딴 곳에 대려와요! 내가 봐도 무섭구만!!


“아니… 남자애가 이런거 하면서 담력도 기르고 하는거지…”


“애 울잖아요!!! 진짜 미쳤어 정말”


“엄마아아아아!!!”


나는 뛰어가 엄마 품에 폭 안겼다.


“아빠가아아아ㅠㅠㅠ”


“오냐오냐 내새끼, 많이 무서웠어요~~?”


아빠는 진짜 싫다. 무서운데, 가기 싫은데 나를 데리고 왔다.


“진혁아 괜찮니? 아빠가 미안하다..”


이제 아빠랑은 말안할꺼야. 절대로 말안해야지.


“아빠가 미안해. 진혁아 츄러스 먹을래? 츄러스 사줄까?”


“츄러스…?”


아빠는 밉지만 츄러스는 좋다. 츄러스만 먹고 다시 아빠랑 말안할꺼다.


“우리 진혁이 엄마랑 동물보러가자, 저기가면 커어다란 코끼리 아저씨도 있어요!”


“코끼리 아저씨! 조아!”


코끼리 아저씨는 엄청 크다! 코로 바나나를 먹었다! 와! 나도 코로 먹을 수 있을까?


“저기 봐 저기 기린이다! 진혁아 아빠보다 키크지?”


“아빠랑은 말안할꺼야."


“그러게 여보 잘 좀 하지 그랬어요, 우쭈쭈 우리새끼”


“아니… 진혁아 아빠가 미안해… 우리 그럼 꼬마기차 타러갈까?


“꼬마기차?”


“그래 꼬마기차! 진혁이가 직접 운전해보자!


칙칙폭폭기차는 엄청 길다 내가 운전하면 나도 칙칙폭폭할 수 있을까?


“자 진혁아 저기 기관실가서 앉자. 안절벨트 메고~~ 앞에 헨들 보이지?”


“이거?”


“그래 그거! 그걸로 운전하는거야. 우리 진혁이 잘 할 수 있지?”


“응!”


“진혁아. 엄마 아빠는 언제나 우리 진혁이를 지켜보고 있단다. 혼자 운전을 하게 되도 무서운곳에 가도 엄마아빠는 언제나 진혁이 뒤에서 진혁이를 바라봐주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진혁이 어디를 가던지 겁먹지 말고 항상 힘찬 모습으로 있으렴?”


“네! 엄마!


“그래 진혁아. 이쁜 내새끼, 엄마가 꼭 안아줄게, 세상이 무서워도, 어떻게 가야되는지 몰라도 엄마아빠는 항상 진혁이를 사랑한단다.”


엄마의 품은 따스했다. 봄의 따스한 햇살이 창밖으로 비춰 내 몸을 어루만져 주듯이, 어머니의 온기는 항상 나의 긴장과 두려움을 녹아내리게 해주시고, 아버지의 눈길은 역경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게끔 큰 버팀이 되어주셨다.


“잘 가렴, 진혁아.”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대화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기차는 부모님을 지나쳐 출발했다. 한 손에 팝콘통을, 한손에는 핸들을 잡고 내가 모는 꼬마기차는 어두운 터널을 향해서 나아갔다. 끝이 없는 어둠을 지나 곧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 빛은 점점 밝아지더니 이내 시야를 모두 가릴 만큼 거대해지고 강렬해졌다. 시신경을 불태워버릴만한 그 강렬한 빛에 나는 고개를 숙인채 두 눈을 질끔 감을 수밖에 없었다.


빛이 점점 사그라들고 차분하고 부드러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은 한치 앞도 볼 수 없이 찬란했던 광경에 한줄기 내려앉아 이내 사물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시각은 밤.

한 손은 그대로 핸들 위였다.

달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밝게 떠 있었고,

빽빽한 나무들은 그 달빛을 피해 달아나지 못하도록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꿈을 꾼 것일까, 

약에 취한 것일까.


또다른 손에 팝콘통처럼 들고있던 수면제와 우울증 치료제를 내려놓으며 머리를 핸들에 박았다.

방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에 혼란스러웠다.


세희는 2년전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준수, 민혁, 병건이는 연락이 안된지 오래다.

어머니 아버지는 3년전에 돌아가셨다.


대책없는 꿈을 꾼 걸까. 땀에 절어있는 몸을 일으켜 차 문 밖으로 나갔다.


서늘한 바람이 내 몸을 훑으며 지나친다. 

달은 그자리에 오만하게 떠 있을 뿐이다. 


잠깐, 주위에 차가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 창문사이로 확인해 본다.


“씨발,”


시체썩은 내가 풍긴다. 차 안에는 파리가 들끓고 있다.


“이게, 지금 무슨,”


그 순간 한 번 더 몸을 서늘한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달은 다 이해한다면서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다.


나는 걸음을 차 안으로 옮겼다. 


사랑했던 여자는 떠났다.

친구들도 모조리 떠났다.

부모님도 더 이상 계시지 않는다.

더 이상 내가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손에 수면제 통을 든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께서는 어떤 역경이라도 항상 지켜봐주시고 응원해 주신다고 하셨다.

힘들고 두렵더라도 언제나 곁에서,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달은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랑했던 이는 이제 없다.

함께했던 이들도 없다.

내가 있을 곳도 없다.

내가 있을 곳은 오직 나를 원했던 추억뿐이다.

놀이공원에서 행복했던 그 추억말이다.


과거를 떠올리니 지금의 모습이 더욱 초라해 보인다.

지금의 나는 누구와 함께 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달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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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 투입된 D인원 중 10명이 사망.

사인은 자살로 추정.

평소 우울증을 앓고있던 인원들이 주로 사망했으며, 이들은 공터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됨.

약을 먹거나 목을 매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며 2명은 구조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이미 숨진 채 발견

공터에는 챠량 9대가 있었으며 이들은 차량내에서 자살한 것으로 추측

공터는 폐쇄조치 하였으며, 공터 입구에 적힌 문구를 따 이상장소의 임시명을 [환상의 나라]로 부를 것을 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