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왜소한 남자. 나이는 한 50대 초쯤 되었을까,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다면 자식의 대학 진학을 위해 분주히 일하고 있을 나이다.



“으슥한 곳이네요.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고 써져 있던데, 잘못하면 재단 잠복 요원이 아니라 경찰에게 걸려서 난리나는 거 아니에요?”



남자는 처음 약속장소인 모 한적한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만난 다음, 불결한 골목의 깊숙한 곳에 있는 술집으로 안내했다.



술집도 골목과 비등할 정도로 불결했다. 쓰레기가 떨어져 있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매캐한 담배 연기, 때가 잔뜩 탄 식탁, 어딘가 일그러진 사연을 숨기고 있는 듯한 손님들과 종업원. 



나같은 고등학생이 드나들기에는 문제가 많은 장소다.



“이 근처의 경찰들은 일을 더럽게 못하니 걱정 마라. 가끔 순찰 도는 경찰들도 우리들이 뇌물을 잔뜩 먹인 부패경찰이니 그런 것 정도는 눈 감아 줄 거다.


그리고 술집은 어디까지나 재단의 눈을 피하기 위한 위장이다. 저기 손님과 종업원처럼 보이는 놈들은 전부 우리 쪽 사람들이지. 거래 과정에서 사소한 ‘문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대기하고 있는거다.”



요컨대 허튼 짓 하려 들면 순식간에 죽여버릴 수 있으니, 생각도 하지 마라, 이 정도다.



“그런 짓 할 능력도, 이유도 없거든요. 그저 초상세계에 발만 살짝 들여 놓은 여고생이랑 암흑 세계에서 오랫동안 구른 당신들이랑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형술을 약간 알고 있긴 했지만, 이 사람들에게 통할지는 의심스럽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여자애에게 털린 적도 있다고. 무해해 보이는 여고생이라고 해도 방심 할 수 없다 이거야.”



남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물건을 보여 주시겠어요?”



“좋을대로.”



남자는 몸을 뒤로 돌리더니 주방을 향해 ‘송골매가 주문한 장난감 인형을 가져와’ 라고 소리쳤다.



잠시 뒤 전형적인 술집 요리사처럼 차려 입은 여자가 꽤 커다란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여자의 표정이 평온한 걸 보니 그리 무겁지는 않은 듯 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상자를 건내고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새크리파이스 돌스 고딕 no.108>···. 이거 맞나?”



남자는 포장지에 붙어 있는 송장을 읽었다.



“제가 찾고 있는 거랑 이름은 똑같긴 한데, 같은 상품인지는 좀 의심스럽네요.”



“우리는 사기 같은 건 안쳐. 확인해 보고 싶으면 포장을 뜯어 주마.”



“그러시던가요.”



남자는 손톱으로 상자의 포장지를 뜯어냈다.



“·····.”



포장지를 뜯어내자 고급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의 갈색 나무 케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케이스의 옆면에는 가방처럼 손잡이가 달려 있어, 어디서든 안에 든 인형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가방의 맨 위에는 원터테인먼트의 로고가 고풍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그동안 인터넷에서 접한 원터테이먼트사의 상품에 그려져 있던 로고와는 사뭇 다르다.



“이리 주세요.”



“먼저 물건부터 내놔.”



남자는 가방을 건네 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죠 뭐. 제게 가치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매고 온 핸드백에서 ‘그것’을 꺼냈다.



“USB로군.”



“네. 이 안에 다 들어 있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남자는 USB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내 물건도 같이 들고 갔다.



나는 술집의 비어 있는 의자에 적당히 앉아 멍하니 술집을 둘러 봤다.



손님으로 위장한 남자의 동료들은 나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앞서 남자가 말했다시피 이사람들은 초등학생 처럼 보이는 무언가에게 털린 사람들이니까. 잔뜩 경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남자랑 만나기 전에 나눴던 라인 메시지 중, USB에 든 내용물은 ‘한낱’ 장난감을 사기 위해 낭비 하기에는 너무나도 값진 거라고 했다.



허튼 소리였다. 원더테이먼트의 인형 공방에다 주문 제작을 넣으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했고, 남자가 소속된 곳이 뜯어 가는 수수료를 감당하려면 이 정도는 필요했다.



그래도 내장 이식을 할 때 돈이 추가로 안 나가서 다행이다. 그쪽에다 돈을 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내가 직접 해야 된다.



반드시.



“·····.”



“그 정도면 충분하죠?”



“····이건··· 대체 어디서 구한 거지?”



“모르시는 게 좋을 걸요.”



아까 전보다 몇 배는 침울해진 남자의 말에 적당히 대답했다.



USB에 들어 있던 건 아버지의 업무용 컴퓨터에서 빼낸 재단의 기밀이다.



빼내는 것만 간신히 성공했지 파일의 암호화를 풀지 못해 재단이 꼭꼭 숨기고 있는 게 대체 뭔지는 보지 못했지만, 남자의 표정을 보건데 해독을 성공했고 기밀을 봐 버린 모양이다.



“아무튼 거래 성립이다. 우린 바로 기밀을 너가 거래했던 고객에게 넘길 거고, 수수료도 고객이 지불할 거다. 이제 이거 들고 꺼져.”



남자는 나에게 거칠게 말하며 가방을 건냈고, 나는 말없이 가방을 받아 들었다.



“거래 감사했어요. 근데 죄송한데, 여기서 가방 좀 열어 봐도 될까요? 빨리 제 눈으로 확인 하고 싶거든요.”



“·····.”



남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가방을 상 위에 올려 놓고 잠금 장치를 만졌다.



·····가방은 열리지 않았고, 나는 그제서야 가방의 자물쇠에 꽂혀 있는 작은 열쇠를 발견했다.



나는 열쇠를 돌리고 가방을 열었다.



“·····.”


 

가방 안의 푹신한 천 위에 누워 있는 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구체관절인형.



피부는 이름 있는 공방이 만든 인형답게 티끝 하나 없이 하얗고, 검은 흑발은 향기롭고 보드랍다.  



나는 감겨져 있는 눈꺼풀을 살살 벌려 아름다운 초록색 눈동자를 확인했고, 찢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눈꺼풀을 닫았다.



복잡한 프릴이 잔뜩 달린 검은 드레스도 완벽하다. 흠잡을 곳이 없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천사의 외모를 그대로 따 와서 만든 건데 귀엽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제 가라. 오래 있어 봤자 너에게 좋은 건 없으니까.”



남자는 넋을 놓고 인형을 바라 보고 있는 내가 불편했는지 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방을 들고 술집 바깥으로 나왔다. 더 이상 여기에는 볼 일이 없었다.



여기서 허비할 만큼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를 그 꼴로 만든 건 이미 재단 사람들이 알아차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 집에 들릴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 들릴 장소는 두 곳밖에 없었고,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모든 게 끝날 것이다.



나는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내밀었다.



*



-사건 파일-222505074 -



피해자: ██████ 박사



발생 장소: 오오곤 현의██████박사의 자택



경과: 2225년 5월 7일 13:33분 경에 재단 안전확인부에서 ██████ 박사 (이하 박사라고 호칭)의 심장이 정지된 걸 식별,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잠복 요원을 박사의 집으로 파견.


13:50분 요원 도착. 경찰로 가장해 집의 문을 두들기고 밸을 눌러봐도 반응이 없음. 요원은 상부의 지령을 받아 문을 따고 집으로 들어감. 


13:55분. 박사의 서재에서 알몸으로 죽은 채 발견된 박사 발견. 시체에는 신체의 일부를 잘라낸 뒤 철사로 꿰맨 듯한 흔적이 다수 발견. 


요원은 재단 인트라넷이랑 연결된 컴퓨터의 전원이 켜져 있는 걸 발견. 기밀 누출을 염두에 두고 상부에 보고.


14:22분. 기동특수부대 ‘아라시-452(놀러 나온 오소리)’ 도착. 시체 인계. 현재 시체 운송중.



-키사라기 박사가 단 주석-


박사에게는 열 다섯살 짜리 딸이 한명 있고, 이름은 ██████ 메구미임. 재단을 비롯한 초상세계와는 일절 관련이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지만, 딸의 방에 있는 컴퓨터에서 변칙 개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을 발견했고, 인형술과 관련된 프린트 밑 변칙 개체들이 침대 밑에 있던 상자에서 찾아냄.


정확한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박사의 시체에 나타난 꿰맨 자국들은 인형술의 피해자에서 발견된 상흔들과 매우 유사함.


██████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외부로 재단의 기밀을 유출했을 가능성 또한 높음. 하루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함.    —키사라기 엘링턴 박사



*



“평안하신지요.”



나는 병실 문을 닫으면서 천사에게 인사했다.



“메구미 님····.”


천사는 힘겹게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켜 나에게 인사했다.



천사는 어른스럽게 성장했다. 어릴 때만 해도 덧없고 연약해 보였건만, 지금은 학원의 자매들이 우러러 볼 정도로 멋있고, 아름답게 성장했다.



그에 비해 나는? 키만 조금 자랐을 뿐 초등학생 때랑 달라진 게 거의 없다. 가끔은 중학생으로 오인 받을 때도 있었고, 내가 천사의 ‘언니’라는 걸 자매들은 잘 알아 차리지 못했다. 반대로 착각한 적이 훨씬 많았으니까.


 

“자매들이 병문안을 자주 와 주나 보구나.”



나는 신선한 백합꽃들이 꽂혀 있는 하얀 꽃병과 천사의 같은 반 자매들이 찍어서 보내준 듯한 단체 사진이 든 액자를 보면서 말했다. 



모두 병실의 탁자 위, 천사가 누워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놓여져 있었다.



“····자퇴, 하셨다고 들었어요.”



천사는 한 마디 한 마디를 힘겹게 내뱉었다.



천사가 걸린 병은 처음에는 다리를 죽이더니, 팔, 손가락을 죽였고, 이제 천사의 심장마저 갈기 갈기 찢어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쫓겨난 건 아니니 걱정 안해도 괜찮단다. 어디까지나 내 의지로 나온 거니까.”



하루랑 앤은 내가 천사에게 예의와 품위를 갖춰 말하는 걸 볼 때마다 비웃었다. 왠 꼬맹이가 언니 노릇 하니 웃겨 죽겠다면서.



물론 하루랑 앤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기에, 단순히 친구로서 장난을 친 것에 불과했다.



교우관계를 망가트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도 따라 웃었지만, 속으로는 둘을 찢어 죽이는 상상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지들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나와 천사의 숭고한 베글레이트(Begleit)를 비웃는 거지? 역겨운 년들. 너희는 성 브리간테 학원의 자매의 자격이 없어!



자퇴한 이후에는 저 둘과의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 내 집으로 찾아 온 적도 있었지만, 나는 집에 아무도 없는 척을 하고 둘을 보냈다.



그 뒤로도 몇 번을 찾아 왔지만, 난 매번 둘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틀 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는 둘을 집에 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참, 귀여운 동생을 위해 선물을 가져왔단다.”



나는 천사의 말을 끊고 가방을 열어 천사와 꼭 닮은 인형을 꺼냈다.



“와아!”



천사는 내가 꺼낸 인형을 순수함이 초롱거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천사의 팔이 마비된 탓에 인형을 받을 수 없었기에, 나는 천사의 다리 위에 인형을 앉혔다.



천사는 다소곳이 앉아 있는 인형을 내려다 보며 활짝 웃었다.



“정말, 정말 언니가 저에게 주시는 선물이에요?”



“그래, 이제 네 거야. 너 그 자체이기도 하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천사는 웃다 말고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제가, 이걸 받아도 괜찮을 까요? 비싸 보이는 데다 전 남은 살 날이 얼마 남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양 팔로 천사의 머리를 안고 가슴 쪽으로 살포시 끌어 당겼다. 내 심장 소리를 천사가 들을 수 있도록.



“그래도····.”



“이제 인형은 네 거야. 죽을 때 까지, 죽고 나서도 네 것일 인형이지.


그러니 거절하지 말고 받아주렴.”



“·····정말 고마워요, 언니. 아아, 따뜻해····.”



천사는 내 빈약한 가슴에 귀를 대고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인형 뿐 만이 아니야. 병에 걸리기 전에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가고 싶은 곳이요? 죄송해요, 잘 모르겠어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갑갑한 병실 생활을 해서 그런 걸까, 소중한 소원마저 희미해져 버린 모양이다.



“힌트 줄게. 미친 장난감 회사 사장이···.”



“아! 기억날 거 같아요! 으···· 으으····· 죄송해요. 잠시만요·····.”



천사가 끝까지 떠올리지 못할까봐 걱정됐지만, 다행히 천사는 생각해 냈다.



“원더테인먼트 랜드! 맞죠? 언니?”



세인트 레위시아 여학원은 초상세계에 발을 들이기로 마음먹은 소녀들을 위한 배움장.



동시에 서로 간의 자매애를 돈독하게 다지는 교류의 장소이기도 하다.



“맞아.어디에 있는 지 간신히 알아 냈단다.”



원더테인먼트 랜드는 기이하고 재밌는 놀이기구들로 가득 찬 놀이동산이라는, 막연한 소문만이 도는 불명확한 장소.



그곳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자매들은 몇 번 만나 봤지만, 각자 말이 모두 달라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간신히 원더테인먼트 랜드를 찾아냈다. 자퇴하고 아버지마저 인형으로 만들어 버린 뒤 남아 도는 게 시간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사는 항상 원더테인먼트 랜드로 가고 싶다고  나에게 재잘거렸다. 다른 자매들의 얘기만 들어보면 원더테이먼트 랜드는 즐겁고 행복으로 가득 한 최고의 놀이동산이었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언니. 이런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나 자기 희생을···.”



“그 전에, 사소하게 해야 될 일이 있는 데 괜찮겠니?”



나는 천사의 머리를 풀어 주고 허벅지 위에 놓아 둔 인형을 들어 올렸다.  



“네! 언니가 시키는 일이면 모든지요!”



천사는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아아, 몇 번을 봐도 천사는 아름답다.



하지만 천사를 목졸라 죽이고 있는 세상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



“이 안에, 마나를 넣을 거야.”



나는 주머니에 넣은 메스를 꺼내 천사의 눈 앞에 대고 흔들었다.



·····.



“배를 가르고 뇌와 창자를 비롯한 모든 내장을 꺼내, 거기서 마나를 이루고 있는 생명의 흔적을 추려내고 응축시킨 뒤 이 인형에 집어 넣을 거야.


그러면 마나는 인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병으로 썩어 문드러진 몸뚱아리랑은 이제 안녕이야. 다시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어. 둘이 함께 할 수 있다고.”



나는 메스로 천사의 뽀얀 얼굴 피부를 살짝 긁었다. 메스에 의해 상처 입은 뺨에서 피가 조금 흘러 나와 칼날에 묻었다.



“물론 많이 아플 거야. 몸에 칼이 들어갔는데도 아파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니까. 마취도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못해서 정말 정말 아플거야.”



메스에 묻은 빨간 피를 혀로 핥으며 나는 말을 이었다.



“괜찮지? 상냥한 언니가 하는 부탁이니까.”



거절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천사가 거절하면 따로 가져 온 밧줄로 천사를 침대째로 묶어 강제로 수술실로 끌고 갈 생각이었다.



“네!”



하지만 천사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마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저를 생각해서 하시는 일이잖아요. 저는 뭐든 좋아요.”



아아, 마나. 나의 사랑스러운 베글레이트(동반자)여.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미리 준비해둔 메시지를 누군가에게 보냈다. 



내장 담기를 시작하기 위해. 천사를 구하기 위해.



*



「부탁할게」



메구미가 보낸 문자는 이거 하나 뿐이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절박함이 잔뜩 묻어 나오는 문자. 정말 메구미스러웠다.



“그거 메구미가 보낸 문자 맞지?”



앤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앤은 혼돈의 반란에서 제식 장비로 채택한 투박한 전투복을 전부 다 입은 상태였다.



전투복은 얼굴부터 몸까지 모조리 가려 안에 든 게 가련한 꽃이라는 걸 숨기고 있었다.



앤만 혼돈의 반란 전투복을 입은 건 아니었다. 메구미를 돕기 위해 자원한 선배와 동기, 후배들도 갑갑해 보이는 전투복을 걸치고 총기를 들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총을 쓰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우리가 이제부터 저지를 일은 학살이 아니니까.



“응, 이제 사전에 논의한 대로 들어가면 될 거 같아.”



“메구미 선배님을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오긴 했지만, 함부로 못 죽이게 하는 건 좀 아쉽네요. 어차피 우리가 죽여도 혼돈의 반란이 죄다 뒤집어 쓸 거 아닌가요~?”



앤 옆에서 서서 총을 점검하고 있던 타카네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민간인을 함부로 쏴 죽이면 안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재단은? 재단 새끼들은 쏴 죽여도 괜찮지?”



“야, 앤까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타카네야 그렇다 쳐도 너까지 그러면···.”



“네? 선배는 저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요?”



“음···보이는 대로 죽여서 일만 키우는 머저리?”



“키이이이익!”



화가 난 타카네가 바둥거리는 걸 보고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자자, 모두 진정하고. 카산드라 선배! 가짜 변칙 개체 준비는 다 됐어요?”



“그거야 진작에 끝났지.”



유일하게 혼돈의 반란 전투복을 걸치지 않은 카산드라 선배가 변칙 개체를 데리고 뒤쪽에서 나왔다.



“섭취한 영양분으로 몸 안에서 무한한 핵분열을 일으키는 6살 연령의 남자 아이. 혼돈의 반란같은 변태 사이코들이 환장할 변칙 개체지. 그치들이 이걸 회수한다면 인간 원자력 발전소로 쓰던가 재단 본부에다 투하할 핵폭탄으로 쓰지 않을까? 


뭐, 혼돈의 반란에게 혹사당하기도 전에 방사능 피폭으로 몸이 못 버티고 죽겠지만.”



“좋아요. 그럼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복습하자.


타카네 팀은 제일 먼저 들어가서 병원 cctv 시스템을 장악해 줘. 경비실과 서버실이 주 목표야. 마침 둘의 거리도 가까우니 순조롭게 공격 할 수 있을 거야.


앤 팀은 병원 지하 영안실에다 저 변칙 개체를 가져다 놔줘. 최대한 꼭꼭 숨겨서.


나랑 앤서주 팀은 병원의 민간인들을 한 곳에 모으자. 3층 홀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


총기 사용은····· 민간인들은 저항이 너무 격렬하다 싶으면 경고 한번 하고, 그래도 저항하면 쏴 버려. 그리고 재단은···.”



“보이는대로 모조리 쏴 죽여 줘.”



앤이 내 말을 대신 끝마쳤다.



세인트 레위시아 학원의 자매들 중에서 재단을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재단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잃고 증오로 불타는 사람, 그저 언니들의 영향으로 재단을 싫어하는 사람 등등···.



세인트 레위시아 학원은 재단의 명백한 ‘적’이었지만 아직 재단은 학원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정말 하루답기 그지 없는 작전이네. 하아, 대학반으로 갈 때 까지 몇 개월 안 남았는데 왜 애들 장난에 어울려 주고 있는 거지···.”



카산드라는 한숨을 내쉬며 불평했다.



“선배는 이제 돌아가셔도 돼요. 메구미도 선배가 현장에서 뛰는 걸 바라지는 않을 거에요.”



“뭘 돌아가? 난 여기 남아서 너네 후퇴하는 거 도와야지. 중등부 3학년들에게 그런 중요한 역할을 무책임하게 내던진 너 때문에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그렇게 말하고 카산드라는 전투복을 주섬 주섬 입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선배.”



메구미. 마나의 병에 대한 죄악감 때문에 자퇴하기 전 까지 학원을 위해 희생한 학생회장.



메구미랑 내가 속한 고등부 뿐만이 아니라 중등부, 대학에서도 메구미의 명성은 잘 알려져 있었다.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메구미랑 그녀의 베글레이트에게 구원 받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자, 그럼 시작할게.


오퍼레이션 「세브스모어 아이네스 메이첸 (소녀의 자살)」을!”



자, 메구미.



너와 마나를 위한 장송곡. 우리들이 연주해 줄게.



*



「이제 다 괜찮아」



메시지를 보건데 하루가 작전을 다 끝낸 모양이다.



좋아.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가자, 마나.”



“언니가 이끌어주시는 길이면 어디든 좋아요!”



나는 병실 문을 열고 천사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끌기 시작했다.



복도에는 혼돈의 반란 전투복을 입고 순찰을 돌고 있는 자매들 몇 명밖에 없었다.



천사는 자매들은 무시하고 오직 나를 보며 재잘거렸다. 난 간간히 자매들에게 손을 흔들어 가면서 천사의 재잘거림을 받아줬다.



수술실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의사들이 수술을 하다 급하게 도망친 건지, 수술대 위에는 배가 벌어져 폐가 그대로 드러난 사람이 누워 있었다.



숨은 쉬고 있지 않았다.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나는 시체를 수술실 밖에다 버린 뒤 천사를 수술실 침대 위에 눕혔고, 수술등의 전원을 켰다.



“언니, 상냥하게 대해 주세요.”



천사는 나를 보고 미소 지었고



“응.”



나도 미소지으면서 천사의 배에 메스를 꽂아 넣었다.



비명을 지르는 천사의 얼굴도 아름다웠다.



*



손 안에서 요동치는 창자, 자꾸 도망치려고 몸을 꼼지락거리는 십이지장.



다시는 밥을 먹을 일이 없을 위, 메스의 날카로운 칼에게 맥 없이 갈라지는 횡경막.



모두 함께 빨간 피 안에서 춤을 춘다.



천사는 이제 비명 지르지 않는다. 더 이상 비명 지를 생명의 힘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머리뼈를 가르는 건 날카로운 그라인더를 써도 어렵다. 그라인더의 날은 새 것 처럼 깨끗했지만 머리뼈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단단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해냈다. 나는 천사의 뇌를 꺼내 수술대 아래에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내장 더미에다 내려놨다.



뇌는 철푸덕 소리를 내며 징그러운 곤죽이 되어 버렸지만, 딱히 상관 없다.



나는 몸 안의 내장이 전부 다 적출 당해 텅 비어 버린 천사를 내려다 봤다. 



천사는 추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비명지르다가 죽었다. 눈에는 아직도 그때 흘린 피 섞인 눈물이 매달려 있다.



맞다, 안구랑 혀 적출하는 걸 깜빡했다. 



혀를 잘라내는 건 쉬웠다. 입 안에 손을 집어 넣고 이빨과 침의 감촉을 느끼며 축 늘어진 살덩이를 잘라내면 끝이니까.



문제는 안구였다. 조금 터지는 것 정도야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천사의 예쁜 눈을 손상시키고 싶지 않아 조심조심, 심혈을 기울여서 도려 냈다.



시신경을 끊어버리는 건 대충 대충 했다. 안구만 안 부서지면 되는 거니까.



나는 천사의 두 눈을 내장 더미 위에 살포시 내려 놓고 미리 만들어 놓은 낼캐 혈주술이 담긴 A4종이 한 장을 내장 더미 위에 내려다 놓았다.



천사가 들어갈 인형은 내장 더미 앞에 앉혔다.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이 인형에 묻지 않게 조심해 가면서.



종이에 피가 배어 들어 낼캐 고대 문자가 희미한 붉은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주문을 외웠다.



“내장아, 내장아. 인형으로 스며 들어라. 너의 모든 활력과 용기를 담아, 인형에 스며 들어라.


내장아, 내장아. 너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인형이다. 원래 육신은 쓸모 없는 고깃덩이로 변했으니 이제 인형으로 스며 들어라.”



학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낼캐의 인형술.



그 괴물딱지들이 만든 혈주술 치고는 상당히 온건한 축에 속하는 마법이었고, 준비과정이 귀찮을 뿐 나도 문제 없이 구사할 수 있었다.



“내장아, 내장아. 인형으로 스며 들어라. 너의 모든 활력과 용기를 담아, 인형에 스며 들어라.”



내장 더미에서 붉은 안개 같은 게 올라 오더니, 인형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형은 순식간에 안개에 둘러 싸였고, 안개는 인형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갔다.



“내장아, 내장아, 인형으로 스며 들어라. 너의 모든 활력과 용기를 담아, 인형에 스며 들어라.”



나는 계속 주문을 외웠다.



내장이 만들어낸 안개 때문에 몸에는 소름이 돋았고, 머리를 불안하게 만들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천사를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내장아, 내장아, 인형으로 스며 들어라. 너의 모든 활력과 용기를 담아, 인형에 스며 들어라.”



마침내, 모든 안개가 인형 안으로 들어 갔다.



나는 인형을 조심스럽게 들어 수술대 위에 앉혔다. 천사의 시체 다리 사이에 앉혀 놓은 탓에 묘하게 출산을 연상시켰다.



“·····마나?”



나는 조심스럽게 천사의 이름을 불렀다.



천사 인형의 눈꺼풀이 살짝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떠 아름다운 초록색 눈동자를 드러냈다.



그리고 인형은 입을 열었다. 인형의 몸이 익숙치 않은 건지 힘겨워 보이긴 했지만



“······언니.”



천사의 음성은 아름다웠고, 나를 보고 방긋 웃는 얼굴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고귀했다.



재단 기동부대에게 가운데손가락을 보여주고 놀이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가제)에서 이어집니다. 



경연 열리고 있는 거 알았으면 빨리 참가하는 건데... 이틀밖에 안 남아서 너무 애매하다....


따로 인터넷에 연재 중인 것도 있어서 완결 낼 수 있을지 모르겠음. 일단은 3화 이내로 끝내는 게 목표긴 한데 모르겠다


재단 감성이랑 안 어울린다고 생각되면 미안할 뿐임... 천성이 이런 거 좋아하는 씹덕이라 어쩔 수가 없다.


작중 언급된 원더테인먼트 랜드는 여기 https://blog.naver.com/wkddydrnr123/220709667231 참고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