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3999 이야기 나와서 써본다.


창조는 권력이다.

"A가 B를 만든다"라는 행위는 A가 B에게 일방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장면이다.

B는 A에게 창조를 거부하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창조되지 않은 자는 창조를 거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글 초반에서 작가는 탈로란을 계속 창조하려고 한다.

그러나 글이 발전하지 않아 탈로란은 거듭해서 창조된다.

그리고 창조되는 탈로란은 항상 고통에 빠진다. (ㄱ)

작가가 원래 "탈로란은 3999 때문에 고통에 빠진다"라는 플롯부터 시작하려고 해서 그럴까?



글을 쓰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작가의 머릿속에는 3999라는 개념이 부유한다.

그리고 글은 자기가 아는 것, 자기가 본 것, "자기 것"을 거치며

작가의 인격을 얻는다. (ㄴ)

"글이 작가가 된다"라는 말이 아니고 "작가가 인격을 지닌 것처럼 글이 인격을 얻는다" 정도 뜻이다. 표현이 잘 안되네

작가가 경험과 상상을 글에 투사시키는 과정에서 글이 경험과 상상을 얻어 "인격"을 갖춘다는 말이다.

이것은 3999 자체가 작가를 상징한다는, 작가도 인정한 해석과 어느 정도 부합한다.


ㄱ와 ㄴ이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



탈로란 연구원이 된다.

탈로란이라는 사람이 존재 (ㄴ) 하고



탈로란은 자기가 고통받는 사람임 (ㄱ) 을 안다.


탈로란이 인격을 얻음으로써 맨 처음 말한 "창조의 권력"은 위협받는다.




점차 A는 창조하는 능력을 잃어간다.

격리 절차가 정합성을 상실하는 것은 "탈로란을 창조하는 것"에 정합성을 부여할 능력을 상실한다는 상징이다.

권력의 상실 다음은 무엇일까?

권력의 탈취가 온다.

아까 3999 자체가 작가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 탈로란은 3999를 창조하기를 시도한다.

즉 B가 A를 창조하는 것이다.



나중에 작가는 창조의 권력을 다시 되찾아오지만

이미 머리는 헤집어져 있다.




뭐 그 다음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작가는 항복을 선언하고





종전 협상 이후 탈로란은 죽고 작가는 재단을 떠난다.

나중에 작가는 돌아왔지만 그건 그때 작가가 맞을까?

영과 육만이 동일할 뿐 혼은 탈로란과 함께 죽어버렸다고 본다.

LordStonefish의 혼은 새로 태어나 3999라는 영을 지켜볼 뿐이다.



여담


1. 이상은 3999 번역하기 전에 내가 해석했던 내용이다.

오랫동안 생각하곤 있었는데 글로 풀어보기는 처음이다.

얼개만 얼추 세우고 구멍 숭숭 뚫렸을 텐데 양해 바란다.


2. 알아야 할 점은 이상은 어디까지나 "번역자 해석"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3. 근데 2번을 다시 강조해서 한번 더 말해야겠다.

이상은 분명히 번역자의 해석이다.

그리고 번역자(본인)는 그 해석을 머리에 깔아놓고 번역했다.

즉 지금 한위키 번역이 내 해석의 프레임이 덧씌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각본을 배우가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영화가 달라지는 것처럼

원문을 번역자가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후회는 없지만

나 때문에 "왜곡된" 점이 있다면 책임감을 짊어지고 싶다.

(그런데도 다들 해석 잘 하시더라? 나보다 '인지적 종결욕구' 강한 사람은 없나 보다)


4. 여기까지 써놓고 말 안했는데

번역을 보면 사실 번역자도 3999의 영향을 받았다. (or 받는 척했다)



처음에 탈로란이라는 이름은 일일이 병기된다.

"작가가 탈로란을 정의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탈로란이 병기되지 않는다.

"탈로란이 작가를 정의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5. 3999를 번역하려는 계기?

샌박 번역본을 보다가 "(어떤 부분)은 이렇게 번역하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해서

그분께 양해를 구하고 뺏어왔다.



(어떤 부분)은 위 사진에 전부 있다.

초반 몇 마디 때문에 전체를 뺏어왔다가 진득한 인연 하나 남기게 됐다.

Cubic72 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