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s://scp-wiki.wikidot.com/disintegration

저자: Fishish

비현실부 연작 - [클릭하여 텍스트 수정하기]

1. 오후 (비현실부 오리엔테이션) 저자 Fishish, 역자 Cubic72

2. 당신의 상상 속 친구 저자 Fishish & Deadly Bread, 역자 Cubic72

3. 무언가 빛나는 것 저자 Deadly Bread, 역자 Cubic72

4. 비현실로부터의 조난자 저자 Fishish, 역자 Cubic72

5. 진짜가 아니야, 진짜였던 적 없어, 이 불쌍한 바보들아 저자 Fishish, 역자 Cubic72

6. SCP-6208 - 그녀의 이름은 기억상실증 저자 Elunerazim & Fishish, 역자 Langston77

7. SCP-6938 - 알렉스 톨리가 받은 선물 저자 Uncle Nicolini & Fishish, 역자 2018

8. 날 홀려줘, 홀려줘, 홀려줘 저자 Fishish, 역자 Cubic72

9. 분해


당신의 아파트로 햇살이 비춘다. 침대 프레임 구석에 묶어놓은 커튼이 그걸 막고 있다.


아무 문제 없는 또 다른 하루다.


당신은 가슴팍에 양팔을 교차한 상태로 누워있다. 몇 달 동안 소파에서 자다가 생긴 버릇인데, 사라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당신은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며 침대 가장자리를 피한다.


몇 달 동안 밖에 나간 적이 없다. 이젠 진짜로 업무에 복귀할 때가 되었다.


5분마다 알람이 당신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려 한다. 알람은 8:30부터 울리는데, 완전히 꺼버릴 에너지도 없기에 당신은 손을 침대 옆 탁자 위로 뻗은 뒤, 타이머를 다시 5분 뒤로 맞추고는 곯아떨어진다. 매일마다 열에서 스무 번은 이 과정을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몇 번 더, 당신은 알람을 끄려 한다. 당신은 결국 손이 딱 닿지 않을 거리에 핸드폰을 놓고, 5분이 지난 뒤 잠자기에는 너무 불편할 정도로 강제로 움직이게 된다.


씨발.


당신은 마지못해 침대에서 일어난다. 창문을 통해서 해가 뜬 게 분명히 보인다. 당신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침대 옆 탁자 위에 두고는 아파트 안을 거닌다.


당신은 상자 하나를 밟는다. 안에는 포장된 음식이 들어있다. 길 아래쪽에 있는 멋진 중국집에서 사 온 음식이다. 뭐, 어제가 특별한 경우였다. 한 달이 지났던가. 당신이 그곳을 떠난—


스스로 말을 멈추는 방식에서 느껴진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걸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급료가 계속 보내진다는 것이다. 장막 내에서 사는 생활의 비용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다. 서둘러 공간 변칙존재로부터 격리된 아파트를 구해야 할 때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 당신이 있는 포틀랜드의 침실 하나짜리 아파트는 저축해둔 돈을 어마무시한 속도로 까먹어가고 있다.


당신은 부엌에 도착해 물 한 잔을 따른다. 유리 식기를 놓는 곳에 당신은 플라스틱 컵 큰 봉지를 넣어뒀다. 그중에서 새로 하나를 꺼내 쓰는 대신, 당신은 매일마다 수도꼭지 옆에 두는 늘 쓰는 컵을 집는다. 물에서는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금속 맛이 느껴진다. 어쩌면 오후까지 늘어지게 잔 것에 대한 뒷맛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발을 질질 끌며 화장실로 향한다. 거울 속에 비친 당신이 당신을 쳐다본다.


당신은 지금 샤워하는게 얼마나 쉬운 일일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금 당신은 부엌에 있다. 냉장고는 거의 비었다. 음식 배달을 알아낸 것과 그 이후로 아파트 안에서만 지낸 것으로 인한 피해자였다. 안에 남은 것 중에서 가장 먹을 수 있는 것 상을 받을만한 것은 육포 한 팩뿐이다. 그 옆에는 석고판에 구멍을 내는 데에 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빵 한 덩어리가 있다. 냉장고 뒤편에는 마요네즈 한 통이 있으나, 인간이 섭취하기에 적절하진 않은 상태다. 당신은 굶기로 한다.




이제 당신은 아파트 한복판에 누워있다.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진정으로 자유를 쟁취했다는 신호다. 이제 막 격변의 시간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제 당신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지루한 채로 있어도 좋다. 영원히 말이다. 아무 데도 갈 필요가 없고, 누구도 만나지 않아도 된다. 눈꺼풀을 통해 보이는 것들을 주의할 필요도 없다. 복제본도 없고, 단숨에 당신을 찢어발길 수 있는 것들 위에 서 있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뱃속에 자리한 구덩이가 물러났다. 당신은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당신은 불멸이다. 방황하며 주변 세상과 무언가 실체가 없는 연관성을 만들고자 하던 나날은, 이 공간과 이 시간에 이르렀다. 당신은 마침내 평온함을 거머쥐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해가 막 뜨고 있다.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다는 환상을 배신하는 광경이다. 적어도 하루는 꼬박 지났다. 당신은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움직이려 하나, 전혀 소용이 없다. 양팔은 여전히 바닥에 딱 붙어있다. 좀 전만 해도 정말이지 따뜻하다 느껴졌던 바닥이다. 다리는 뇌에서 보내는 명령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숨은 쉬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뇌가 주고받는 신호가 전부 익숙하게 느껴진다. 눈을 뜨진 않았으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멀 것만 같다. 당신은 고개를 돌리려 하나, 또 다른 인간의 형상이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에 몸을 움찔한다. 보자마자는 그게 인간이라는 것을 몰랐다. 얼굴은 수술용 마스크로 가렸고, 수술용 모자를 뒤집어쓴 사람이다. 당신은 여기가 어딘지 알아보지 못한다. 주변 모든 것이 눈을 뜨자 사라진다. 여전히 당신의 아파트다. 당신의 삶도 여전히 여기 있다. 눈을 다시 감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신은 눈꺼풀을 뚫고 볼 수 있다. 당신은 이제는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누군가가 메스를 집어 드는 광경을 지켜보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린다. 의사가 복부를 처음 절개하기 시작하는 동안, 당신은 비명을 지르려 한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자, 양팔이 바닥에 세게 부딪힌다. 당신은 울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삶이 당신에게서 뜯겨 나갔다.





사건 기록 [음성 전용] — 제19기지 | 톨리 씨의 사무실 내부.


[기록 시작]


[02.35 AM]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02.35 AM] 한숨.


[02.36 AM] 문이 열린다.


[02.36 AM] — 알렉스 톨리: 뭐—


[02.36 AM] 발소리가 들려오고, 의자가 갑자기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온다.


[02.37 AM] — 불명: 알렉스.


2분 40초 동안 모든 기록 장비의 전원이 꺼진다. 이 시기에 비디오카메라가 전부 고장 났고, 사건 전에 이미 켜져 있던 톨리 씨의 개인용 음성 녹음기를 제외하고 방에 있던 모든 장비도 마찬가지로 고장 났다. 녹음기가 다시 작동한다.


[02.39 AM] — 알렉스 톨리: 호— 혹시 그냥, 눈을— 음— 감아도 될까요?


[02.39 AM] 침묵.


[02.39 AM] — 알렉스 톨리: 피가 무서워서요.


[02.39 AM] 침묵.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02.40 AM] 다수의 총성.


[02.42 AM] 문이 닫힌다.


[기록 종료]


톨리 씨는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타고난 것처럼 알아차린다. 방이 암흑 속으로 빠져버리기 전에 불빛이 서서히 희미해지며 깜빡이는 방식에서 알 수 있다. 전구가 최후의 순간에 울음을 터트리듯 불을 뿜어내다가, 마침내 완전히 꺼져버리는 그 모양에서 말이다. 방금 방 안을 가득 채운 어둠 속에 있던 인물이 소파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선다. 한 단어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온다.


돌아왔어.


이젠 낯설게 느껴지는 바닥을 가로지르며 급히 달려간다. 소파는 더는 거실 한가운데에 있지 않고, 조금 전만 해도 분명 없었던 벽 옆에 있다. 가면 갈수록 산 적도 없던 물건들이 발치에 채인다. 문을 열자 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다. 침실이 더는 거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제 그 자리에는 어떤 부엌이 있다. 절박하게 제 물건을 찾아 부엌을 전부 뒤엎는다. 지불되지 않은 청구서와 이 앞으로 날아온 공고문과 당좌 대월 요금서. 분명 존재하지 않는 공무원이 보낸 것이리라. 패배를 인정하듯 양손을 들어 올린 채로, 가장 가까이 있는 문을 향해 달려간다. 문틀의 모습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깔끔한 직사각형 명판에는, 보다 작게 써진 명칭 위에 자신의 이름이 보인다. 장막 너머로 돌아가는 길이다.


알렉스 톨리

비현실부


문으로부터 최대한 떨어지고자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린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서 본능적으로 가속한 바람에, 아파트 원목 바닥에 어깨로 넘어진다. 다시 거실이다. 어깨를 흘낏 쳐다보고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보니, 다시 한번 가구들이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기분 좋게 배치한 장식들은 효율만을 따지는 디자인으로 바뀌었고, 따스하던 분위기는 차갑게 바뀌었다. 부엌문 너머로, 사무실로 향하는 이상하리만치 밝은 문이 보인다. 방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서두른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문이다. 문고리를 잡고 열자, 온전한 상태의 침실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눈이 번득인다. 허둥지둥 침대 옆에 있는 탁자로 가서, 옷더미를 파헤친다. 어쩐지 아까 전보다 옷더미가 커진 느낌이다. 양손으로 하얀 리넨 천 가방을 움켜쥐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그 내용물을 침대에 쏟아부으니, 텅 빈 지갑과 카페 영수증 여러 장, 열쇠 몇 개와 무언가 들어있는 약병이 굴러 나온다.


미소를 지으며 [용기] (?) 뚜껑을 비틀어 여니, 공기가 변한다. [그 안의 내용물] (?)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목구멍 너머로 넘길 때마다 몸을 움찔거린다. 시야가 서서히 흐려지자, 미소가 지어진다. 제대로 작용한다. [개인] (자신?)에게 [약] (?)의 효과가 돌며, 방의 색상과 모양이 서서히 희미해지면서 전부 사라져 간다.


세상이 회색빛으로 물든다.




사건 기록 — 제43기지 | 구내식당.


[기록 시작]


[03.52 AM] 문이 열린다. 알렉스 톨리가 비틀거리며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03.52 AM] 톨리가 구내식당 중앙 쪽으로 몇 걸음 더 걸어온다.


[03.53 AM] 톨리는 근처 탁자로 가서 그 앞의 의자에 앉으려 한다. 콘크리트 바닥에 의자가 끌리는 소리만이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다.


[03.54 AM] 톨리는 비틀거리며, 앉는 대신 의자를 지지대로 삼는다. 스웨터 앞자락에 붉은 자국이 보인다.


[03.55 AM] 톨리의 입에서 무언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곧 의자를 잡고 있던 손을 놓친다.


[04.04 AM] 톨리가 바닥에 쓰러지며 쿵 하는 소리가 난다.


[기록 종료]


톨리 씨는 몇 시간 뒤 죽은 채로 제43기지 경비원에게 발견되었다. 시신에는 복강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인은 실혈사다.




당신은 아파트 밖에 앉아있다.


불공평한 일이다. 당신에겐 이제 삶이 있다. 멋진 삶은 아니다. 돈도 없고 오늘까지는 은둔자처럼 살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당신의 삶이었다. 그 꼼수를 다시 쓸만한 배짱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당신에겐 이제 선택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은, 포틀랜드 길거리에서 울고나 있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다.


당신은 처음에는 재단이 보낸 모든 걸 불태우려 했다. 그러고는 그쪽에서 보내는 급료 정도는 자기 소유로 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젠, 다시 돌아왔다.


그 무엇보다도, 당신은 몇 달 전까지 있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한기가 느껴진다. 움직일 수도 없다. 벌써 며칠 동안, 당신은 영안실 꿈을 꾼다. 몸이 들어있는 상자가 너무 비좁아 숨조차 쉴 수 없는 꿈을 꾼다. 칼날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꿈을 꾼다. 그래도 버틸 수 있다.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공포로 인해 밤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죄책감은 버틸 수가 없다. 당신은 죽었다.


당신은 도망칠 수 있다 생각하던 그때를 떠올린다. 당신은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기 자신이 나오는 광경을 봤고,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제 당신은 눈을 감을 때마다 자신의 행동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중전화로 걸어간다. 사실 어느 문이나 괜찮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걸 더는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작은 약병이 도움은 되었으나, 무한히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공중전화 문으로 손을 뻗자 주변 도로가 길게 늘어나는 것만 같다. 당신은 앞에 쓰인 자신의 이름을 보고 머뭇거린다. 당신은 자신의 작은 아파트와, 그곳에 두고 온 시신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영원히, 평화롭게 자고 있을 그 몸을 말이다.


당신은 문손잡이로 손을 뻗는다. 그러는 동안 손이 떨려온다.


돌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목적이 있어야 한다.


더는 혼자 있고 싶지 않다. 어느 시점에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만약 돌아간다면, 아무 이유도 없이 그래서는 안 된다. 무언가 의미가 있어야 한다.


당신은 돌아올 것이다. 살아있을 것이다. 당신이 이해하는 삶을 거머쥘 것이다.


당신은 문을 연다.




사건 기록 [음성 전용] — 제19기지 | 영안실. 변칙인물동.


[기록 시작]


[05.48 AM] 금속 두드리는 소리.


[05.57 AM] 금속 두드리는 소리.


[06.35 AM] 금속 두드리는 소리.


[07.50 AM] 금속 두드리는 소리와, 아주 희미한 알람 소리가 함께 섞여 있다.


사건 이후, 유해를 분석하기 위해 제19기지에 있던 알렉스 톨리 씨를 데려왔다. 사건과 연관된 인과는 찾을 수 없었다. 화장되지 않은 연구원의 복제본이 든 관은 기존의 철제 보관함 안에서 멀쩡하게 발견되었다. 화장된 뒤, EE-02395741와 연관된 모든 대상은 처리되었다.


각주

1. 비현실부 연락관 알렉스 톨리의 완벽한 클론 25명이 갑작스럽게 출현한 사건


SCP 재단 위키에서 가장 기묘한 연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비현실부 연작의 마지막 편이다. 전편들을 안 읽으면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전편들을 보고 읽는다고 해도 딱히 이해가 잘 되진 않을 수도 있겠다.

솔직히 비현실부가 뭐냐? 라고 하면 걍 기묘한 분위기의 잘 쓴 글에다가 비현실부 살짝 끼얹으면 그게 비현실부 작품이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실제로 등장하는 비현실부 소속 사람은 알렉스 톨리라는 설정만 지키면 된다.

근데 뭔가 Minimalist BHL 테마 없으니까 비현실부 특유의 분위기가 확 죽는 것 같다는 느낌을 안 받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비-위키닷 업로드의 한계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여느 때와 같이 비평 받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