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에 걸쳐 발생한 LA 흑인폭동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도주한 중범죄 용의자 로드니 킹을 체포하고 재판하는 과정에서 수반된 과한 폭력과 백인들 뿐인 배심원단이 그 원인이었다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폐지된 지 오래였어도 아직 그 여파가 남아있던 시대였기에


로드니 킹 사건은 뿌리깊은 흑인 사회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단초로 작용하게 되었다









경찰차들도 총기를 든 폭도를 피해 달아나는 상황에서, 침착하고 적절한 대처로 재미 한인들은 큰 주목을 받았다


폭동 발생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 코리아타운이었기에, 이성을 잃은 폭도들에게 많은 상점이 약탈당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한인 AM 라디오 채널인 라디오 코리아를 통해 통일된 체계 하에 명령을 신속하게 전파하고


총포상 주인이 나눠준 자동화기와 권총, 산탄총으로 무장해 자발적으로 집과 상점을 지킨 것이다










물론 그들도 사태 초기에는 영주권자와 시민권자같이 서로의 의견이 갈려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다수의 한인들이 흑인과 히스패닉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 무장을 결심하게 되었다


자신들을 지켜줄 공권력은 LA 북쪽의 백인 거주지를 보호하기 위해 떠나버렸으므로


우리의 터전은 우리가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모두에게 퍼져나간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집과 상점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지 않았다


당시 치안 공백 상황에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차가 출동하려 했으나


총격을 가하는 폭도들에게 위협당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나타난 무장 한인 자경단원들이 소방차를 호위해준 덕에 무사히 출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로스엔젤레스 경찰국이 한인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재고할 만큼 인상적인 사건이었으며


LAPD와 한인 커뮤니티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것에는 어두운 면도 존재하는 법


이 루프탑 코리안들에게도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폭동 한가운데의 시내를 중계하던 리포터가 가게를 지키는 한인을 보며 두서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묘사하기도 했고


LA로 건너와 조직 생활을 이어가던 조폭들이 폭동 발발 직후 흑인들이 덮치기 전에 미리 알고있던 가게들을 털어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미 한인들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뉴스 중간에는 앵커가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한인들의 모습을 정정보도하거나


폭동 이후 돌아온 조폭들이 다시 갈취를 시작할 때 총을 들고 맞서며 용기를 얻은 상인들이 깡패들을 역으로 쫓아버리는 등


한인 커뮤니티는 이전의 고립된 사회를 벗어나 바깥의 다른 미국인들과 소통하며 새롭게 일신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인들에게도 한인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그들은 한인 자경단을 바라보며 자유와 권리를 위해 압제에 맞서 들고 일어난 건국의 아버지들이 남긴 발자취를 느꼈고


거대한 영토 때문에 경찰력이 깊게 미치지 못하다보니 공권력 불신과 함께 자기방어를 중요시하는 미국인들의 감성에도


가족과 사회를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선 자경단의 모습은 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시민의 완성형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루프탑 코리안들은 오늘날까지 회자되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총기 소유와 소지의 권리를 신성시하며 그들을 치켜세우는 우파 공화당 세력과


이를 또다른 형태의 인종차별이라 비판하며 대립하는 좌파 민2주당 세력이 서로 그들을 언급하며 설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LA 폭동이라는 안타까운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국가가 시민을 버렸기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한인들은


그저 가족을 지키자는 마음 뿐이었음에도 전혀 관계없는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죄없이 욕을 먹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