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1904년 대한제국을 두고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사실 일본의 이 승리는 피로스의 승리, 즉 이겼으나 이긴 것 같지 않은 승리에 가까웠다.


청일전쟁때까지 전쟁으로 짭짤한 이익을 얻은 일본은 이번 전쟁에서도 이기면 대한제국도 꿀꺽은 물론이고 전쟁배상금도 두둑하게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청나라까진 개좆밥군대가 맞았는데, 러시아 제국부턴 일본이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제대로 된 군대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본군이 홈 어드밴티지가 있어서 러시아군과 싸우면 이겼으나, 러시아군이 일방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버티다가 물러가는 식이었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러시아가 지고 있었으나 일본군 역시 그 사상자 수는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계속 이기고 있는 일본군에게는 돈의 압박이란 큰 문제가 점점 쌓이고 있었다. (러시아도 돈 문제가 크긴 했으나 당시 일본 제국과 비교하면 경제 규모가 약 3배 이상이었다. 즉 국내사정을 감안해도 작정한다면 일본보단 지속적으로 전쟁할 여력이 있었음)








일본의 국내 사정을 한 번 보자.


당시 일본의 1년 세입이 2억 엔에 못 미쳤는데

러일전쟁 총전비는 이미 19억 8400만 엔에 육박하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있던 1905년을 보면 그 때 군사 예산은 GDP 대비 23.69%였다.


여기서 12억 엔을 영국과 미국이 지원하긴 했지만

러시아가 강경론을 펼치거나 몇달만 더 있음 일본은 진짜 국가 파산나서 망하기 일보직전이었으니


일본 제국으로서는 청일전쟁마냥 냥냥하게 이득 챙길려다 오히려 파산까지 할 위기에 처한거다.








그렇게 조마조마하던 와중, 결정적으로 한 전투에서 러시아군이 패배하자(일본군의 피해도 막심했다.)

니콜라이 2세는 이걸 졌다 판단하고 미국에게 중재자 역할을 부탁했다.


피의 일요일 사건도 터져서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웠던건 러시아도 마찬가지였으나, 당시에 이 사건은 러시아만 알고 있었고 서방은 여전히 러시아를 경계하고 있었다. 

(심지어 영국은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고 바로 인도로 올까하고 쫄았다 한다)


어쨌든 두 나라는 미국 중재 하에 포츠머스 조약을 맺게 된다.






일본은 당연히 청일전쟁 생각하고 당당하게 배상금부터 내놓으라 했으나, 러시아 대사는 이미 일본의 상황과 러시아의 국력을 계산한 후 알빠노 시전하는 바람에 배상금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동등한 열강 인정, 그리고 국민국가로서의 단결을 빼면

일본 제국이 얻은 실익은 당시 쓸모도 없던 남사할린, 그리고 대한제국 뿐이었음.






일본 국민들은 청일전쟁과 반대로 이득은 커녕 손해만 오자 자기 아들은 뭘 위해 싸운거냐는 등 폭발하여 전국적으로 폭동이 남.


그 폭동의 대표 사건은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이 있음.(히비야 방화사건)


물론 러시아도 손해는 컸음. 







그러나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럼에도 러시아가 패전국으로서 손해본 것이 그리 많지 않단 점

그리고 일본의 실익이 거의 없단 점에서


남에게 보이는 본인의 태도, 그리고 남에 대한 정보가 중요함을 알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