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보


세종 5년, 시장에 유통됐던 지폐인 '저화'의 사용을 보조 및 물물 교환 경제를 타파하기 위해 발행했지만, 당시엔 시장의 발달이 저조했기에 저화도 쓸까 말까한 상황이였는데 당시 부족한 구리로 통보를 만든다고 하니...

당연히 민중들은 개듣보 취급하니 얼마나 심했으면 동전을 갈아서 도자기 재료 취급까지 했을정도였다.

시장경제는 다시 본래의 물물 교환식으로 돌아가고 화폐개혁의 실패로 보였지만...












시장경제 활성화와 금속 화폐 통용은 전대였던 태종때 부터의 숙원사업이였기 때문에 세종께선 어떻게든 개혁을 성공시켜야 했었다.

그 결과 강경책으로 

1.물물교환을 금지

2.상품은 오직 저화와 조선통보로만 결제

3.통용 화폐는 저화, 조선통보만 해당되니 세금도 그걸로 내라


당연히 민중과의 반발은 심해졌고, 뜻하지 않게 강원도의 대기근 악재가 겹쳐저 결국 개혁은 실패로...



조선통보의 실패중 하나로 꼽혀졌던 시장규모의 미비는 임진왜란 이후로 서서히 활성화 됐으니 머왕님 입장에선 답답했을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