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고통받지 않아도 됐을텐데> - 지크 예거



부모들은 다 죽어 마땅해


'낳은 죄'를 저질렀으니까


자식에게 미리 동의도 구하지 않고


무조건 자식을 낳았으니까.


부모들은 다 죽어 마땅해


정말 대역죄인 '낳은 죄'를 저질렀으니까.


마광수의 시 <낳은 죄>



반출생주의란, 인간의 출산과 생식이라는 행동이 이기적이고,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며, 인간의 출산과 생식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철학사상을 의미함.


쉽게 말해 '아이들은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태어나서 강제로 고통을 겪고 있으니, 아이 자체를 낳지 않는 것이 공리적으로 더 나은 행동이다'라는 사상임.




반출생주의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책 -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에서는 반출생주의의 우월성을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설명하고 있음.




X가 만약 존재하고 있다면, 쾌락과 고통을 동시에 겪을 것임. 반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쾌락도, 고통도 없을 것임. 여기서...


1. 고통이 존재하는 것보다 고통이 부재하는 것이 명백하게 더 좋음.


2. 쾌락이 부재한다는 것은, 쾌락을 박탈당할 당사자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에 쾌락의 존재는 부재하는 쾌락에 대해 딱히 우위라고 보기는 힘듬(=나쁘지 않음)


따라서 X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어떤 경우에라도 더 낫다라는 논리임.



더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인간 사회에서의 기초적인 윤리 중 하나인 '남에게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한다'를 떠올려보면 됨.


우리가 남에게 갑작스레 쾌락을 선물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죄는 아님. 하지만 남에게 뜬금없이 고통을 선물한다면 그건 죄임.


하지만 여러 철학자들이 말했듯, 인간은 살면서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고통을 주게 됨. 진실을 말하든 침묵하든.


예를 들어, 상대방의 동의를 얻었다면 책임은 면제됨. 가령 상대방의 동의를 받았다면 성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하게도 합법임.


그러나 예외사항이 있음. 어린 아이나 장애인, 또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는다고 해도 성관계를 맺으면 범죄임. 그야 어린아이, 장애인, 술에 취한 사람은 판단력이 낮아 정당한 동의를 얻을수 없기 때문임.


하지만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대상이 있음. 바로 태어나기 전의 정자와 난자, 그리고 태아임. 부모는 고작 자신의 번식 본능 때문에 동의 없이 자신의 아이에게 동의없는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준 것임.


쾌락이 고통을 상쇄할수 있지 않냐고 주장할수 있겠지만, 고통이 쾌락보다 더 큰건 당연함. 막말로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사람도 어느 한순간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면, 그런 행복들은 더 이상 누릴수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반출생주의자는 아이를 정말 가지고 싶다면, 입양할 것을 주장하고 있음. 이미 '낳음당한' 아이들을 거둬서 키워주면, 아이들에게도 부모라는 것이 생기고, 반출생주의자 본인도 아이를 가지고 싶다라는 욕구를 해결할수 있기 때문에 서로 윈윈이 되는 결과 아니냐라는 논리임.




이러한 논리는 환경과 동물권에도 적용됨. 인간은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난 이상 필연적으로 동물 피해와 환경 파괴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으며(=고통을 주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인류의 감소,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멸종이라는 결론임.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들 중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해롭기 때문에 인간의 숫자가 줄어들면 당연히 환경과 동물들이 받는 피해도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


반출생주의 이론에서는 동물 역시 같은 논리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여기고 있음. 하지만 고통 없는 중성화수술이라는 것은 현재로썬 없기 때문에,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을 입양하되, 번식하진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 반출생주의자들의 논리.


이렇게 일치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동물권자나 환경운동가들이 반출생주의 이론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음.



이런 논지를 접한 사람들은 많이들 이런 질문을 하게 됨.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자살해야 한다는 이야기네요?'


그에 대해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의 저자인 데이비드 베너타는 부정하고 있음. 일단 이미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죽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이 낫다라는 논지임.


현재 대부분의 문화는 자살을 극도로 부정적 행위로 여기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살은 주변 사람들에게 심대한 정신적 손해를 끼칠수 있기 때문이라고 함. 단, 저자 본인은 이러한 문화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존엄사처럼 주변인들의 동의를 받은 자살인 경우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음.


이러한 반박에 대항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쓰이는 논지들임.



1. 로버트의 투옥


1) 로버트는 20세의 나이에 누명을 뒤집어쓰고 무기징역형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


2) 하지만 로버트는 오랫동안 감옥에서의 생활에 만족했고 동료 재소자들과 가까워지면서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우정과 안정감 등을 느끼기 시작했다.


3) 그러던 와중, 로버트의 누명이 밝혀졌고, 로버트는 석방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로버트는 감옥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여 감옥에서 나가길 싫어한다.


4) 그럼에도 로버트는 강제로 가석방되었고, 바깥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로버트는 자살했다.


여기서 무고한 투옥=원치 않았던 자신의 출생, 감옥=삶, 석방=죽음으로 대입해 살펴보면 됨.


반출생주의자들은 이 논지에서 '감옥은 안 좋으니 거기에 사람 집어넣지 말자'(=출산이라는 행위를 하지 말자)라고 주장할 뿐, '모두를 감옥에서 해방시켜야 한다(=타인에 대한 학살)' 내지는 '탈옥해야 한다(=자살)'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음.



2. 납치


1) 당신은 밤길을 가던 중 괴한들에게 습격당해 의식을 잃었다


2) 깨어나보니, 승합차 뒷좌석에 탄 상태로 고속도로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 결박은 되어있지 않았다.


3) 당신은 납치범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4) 그러자 납치범은 '결박하지도 않았고 차 문도 열어놨으니까, 나가고 싶으면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려라. 여기서 차를 멈출수는 없으니 우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해도 그것밖엔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납치=원치 않았던 자신의 출생,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인생, 중간에 뛰어내리는 것=자살로 대입해서 살펴보면 됨.


반출생주의자들은 이 논지에서 '납치를 하지 말아야 된다'(=출산이라는 행위를 하지 말자)라고 주장할 뿐, '납치가 부도덕한 행위라고 생각하면 뛰어내리면 되는거 아니냐'(=태어난게 싫다고 생각하면 자살하면 되는거 아니냐)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음.



앞에서 '반출생주의'가 '하루빨리 모든 인류가 자살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철학 사상도 있음. 바로 '친죽음주의'.


'인간은 존재함으로써 서로에게 고통을 주고받는, 존재 자체가 민폐덩어리인 동물이며, 이러한 민폐덩어리는 하루빨리 없어지는게 이득이다'라고 믿는 것이 친죽음주의인데, 아무래도 전제까지는 동일하다보니 반출생주의가 심해져서 친죽음주의로 진화(?)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고 볼수 있음.




행복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