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까지 100건 가량의 급발진 의심 신고가 발생했지만, 2015년 이후로는 그 빈도수가 감소하는 대신 각종 언론매체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급발진 의심 사례의 위험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 법원에서 급발진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판례는 0회.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 입장에서 자동차 사고의 원인이 제조사 측에 있다는 사실을 규명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러한 급발진 사고에 대한 분석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EDR과 ECU.


ECU는 자동차에 장착된 수많은 컴퓨터를 가리키는 말로, Electronic Control Unit (전자제어장치)를 말한다.


ECU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지만, 급발진 사고에서 핵심이 되는 부품은 바로 엔진의 연료 분사를 제어하는 엔진제어유닛.


이쪽에 실제로 문제가 생겨 발생한 사건이 바로 도요타 리콜 사건이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발생했던 도요타 차량들의 급발진 사고로 인해 무려 1천만대 가량의 차량이 리콜 조치에 들어갔던 유명한 사건사고.


물론 온전히 ECU만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당시 사고의 원인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2009년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한 운전석 매트의 결함으로 인해 장판에 액셀러레이터가 끼면서 차량이 계속 가속을 하는 문제 발생.


2. 페달에 들어가는 스프링이 엔진열과 반복적인 사용으로 인한 마모 등으로 원래의 강도와 탄성을 잃어 가속페달이 발을 떼어도 원상복구 되지 않고 계속해서 눌려있는 문제 발생.


3. ECU 메모리 영역에서 간섭현상이 발생해 크루즈 컨트롤 도중 가속을 하는 도중 신호 오류가 발생하면 스로틀 밸브가 고정되어 가속이 지속되는 문제 발생.


이러한 점들로 볼 때, 급발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급발진은 다양한 이유로 실제로 발생할 수 있으며, 꼭 휴먼 에러가 아닌 기계적/전자적 결함으로 인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에 보도되는 다양한 급발진 의심 사고 또한 모두 제조사 결함에 의한 급발진 사고일까?


그렇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다시피, 급발진은 기계적 결함이 아니더라도 휴먼 에러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페달 오인에 의한 급가속 사고다.







미국 NHTSA에 의하면 미국 내 교통사고 발생 운전자의 2/3은 남성이지만, 페달 오작동 사고의 경우에는 2/3의 여성이라고 밝힘.


급발진 의심 사고 영상에서 운전자가 노령의 여성일 경우에 꼭 나오는 댓글이기도 하다. "또 노인이야? 또 여자야?"


물론 어떤 성별적으로 차별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사실이 그렇다는 것.


페달 오인 사고는 우리 생각보다 꽤나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누가 페달을 헷갈려?" 하는 식으로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페달을 오인해서 브레이크를 액셀러레이터로 착각하고 밟아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https://youtu.be/aJKVzf9ozas



한국에서도 꽤나 알려졌던 중국 테슬라 급발진 사건.


하지만 CCTV 분석 결과 후방 브레이크등에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급발진이 아닌 페달 오인 사고로 결론이 났다.


"아니, 사고 나면 원래 브레이크 딱딱해져서 안 밟히는 거 모르냐? 브레이크 등이 어떻게 들어옴?" 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브레이크 등의 작동 원리는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고, 전자식으로 제어가 되는게 아닌 기계식 구조이기 때문에 쉽게 고장이 나지도 않는다.














이 과정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붙어있던 접점이 떨어지는데, 이 접점이 떨어지면 후방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는 구조임.


한 마디로 브레이크 등 점등 유무는 가장 직관적으로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는가?'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라는 것.






간혹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반대다.


지금까지도 자동차의 브레이크 등은 앞서 설명한대로 브레이크 페달이 조금이라도 밟히면 접점에서 떨어지는 것을 감지하고 점등되게 되어있다.


전기차도 기존의 가솔린/경유/LPG 자동차와 형태와 구조는 조금 다를 뿐, 


결국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피스톤이 브레이크 액을 직접 밀어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브레이크 등이 점등되지 않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물론 앞서 말한 것 처럼 기계적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0은 아니나, 지극히 단순한 구조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장날 가능성이 낮다.)



또한 자동차 제조사들은 구동 계통에 오류가 생기더라도, 제동이나 조향 계통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둘을 기계적으로 완전히 분리하고 있기 때문에 둘 다 한 번에 고장난다는 것은 더욱 극악의 확률을 뚫어야 하는 셈.


그래서 과거에 LED가 아닌 백열전구를 브레이크 등에 넣던 시절에는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 브레이크 등의 온도를 측정했다고 한다.


브레이크 등이 점등되었다면 백열전구라서 뜨거워졌을테고, 그러면 사고 직후에도 그 열기가 남아있기 때문.



그럼 도대체 급발진 사고의 원인이 뭐임?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페달에 블랙박스를 달아놓은 것도 아니고, 국과수가 사고 장면을 목격한 것도 아니고, 사고를 낸 운전자는 죽거나 정확한 진술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과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는데에는 앞서 말했듯 사고 발생 5초 전부터 ECU의 정보가 기록되는 EDR 기록과 주변 CCTV, 목격자 진술 등 다양한 정보를 모아서 간접적으로 그 원인을 파악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이 바로 EDR 정보. EDR은 에어백을 제어하는 컴퓨터에 붙어있는 작은 칩인데, 에어백이 전개될만한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사고 발생시점 5초 전부터의 기록을 자동으로 저장하게 되어있다.


EDR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기록되는데, 대충 시간별 차량 속도, 엔진 스로틀, 액셀러레이터 페달 압력, 기어 상태, 핸들 조향 상태 등이 기록된다.



이런 기록을 토대로 국과수에서는 사고 영상과 조합해서 사고 장면을 3D 모델링으로 재현해내기도 한다.


이런 EDR에서 추출한 정보에 더해서 참고하는 것이 바로 주변 CCTV를 비롯한 정보들.


앞서 본 것 처럼 후방 브레이크 등이 점등되었는지 여부 또한 운전자가 페달을 오인한 것은 아닌지 판단하는 주요 근거로 작용한다.




맨 앞에서 우리나라에서 급발진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0건이라고 밝혔는데,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운전자(소비자) 입장에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기본적으로 운전자와 자동차 제조사 사이에는 막대한 정보의 격차가 존재한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사고가 난 것도 억울한데,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서 실험하는 것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마련이다.


거기에 더해 가족이 죽거나 다쳤을 경우 이를 재현하는 것 자체가 아픈 기억을 자극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고 장면 재현에 나선다고 해도,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애초에 급발진의 유력한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슷한 차량을 수십대 준비해놓고 변인을 완벽하게 통제해가면서 동일한 환경의 실험을 반복적으로 진행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두 번째 이유는, 그렇다고 제조사에게 '네가 책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시키는 것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부존재의 증명' 문제에 해당하기 때문.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악마를 보여주면 그만이지만,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세 유럽에서부터 사용되었던 악마의 증명 문제와 동일하다.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한 일이고, 결국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반증을 찾아낼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당연히 외국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인 만큼, 외국에서도 급발진 의심 사건들은 주기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자동차 천국, 미국의 사례를 알아보자.


미국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를 부르는 명칭은 SUA(Sudden Unintended Acceleration, 의도하지 않은 급가속).


미국에는 자동차 회사들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NHTSA라는 기관이 존재한다.


수 천만, 수 억 달러의 벌금을 물리고 한 순간에 자동차 회사를 문 닫아버리게 만들 수도 있는 미국의 아주 권위있는 기관인데,


NHTSA는 이런 SUA 사고들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하고, 해당 조사 결과를 모두 홈페이지에 공개하게끔 되어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차량의 운전자, 제조사 뿐만 아니라 보험사와 목격자, 심지어 출동한 소방관까지 소환해서 조사를 하고,


해당 차량의 모든 부품과 잔해를 수거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문제 여부를 조사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데다가,


수 명의 전문가들이 2~3년씩 조사를 마친 후 SCI(Special Crash Investigation)라는 보고서를 내놓게 된다.


이런 노력이 들어간 보고서는 그 자체로 매우 중립적이고, 각종 사고의 원인 파악에 있어서 공신력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러한 NHTSA같은 전문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제조사의 결함을 밝혀내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문제이고,


그렇다고 제조사에게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는 것 또한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문제이니만큼


제3의 독립적이고 투명한 기관이 전담해서 철저히 조사하고 결론을 내 주었다면 지금처럼 억울한 사람이 많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은 황색언론이 키우고 있다.



황색언론이란 언론사가 보도의 근본적 기능, 취지나 그 윤리보다 영리활동에 집중해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만을 내보내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단어다.


한국 언론 또한 마찬가지로 급발진 사고에 대해서 운전자의 책임을 주장하기보다는 제조사의 책임을 주장하는 쪽에 보도가 치우쳐 진 상황이다.


왜냐하면 똑같은 사고여도 '운전자의 페달 오인 사고'보다, '급발진 제조사 결함 있나?'는 식의 헤드라인이 조회수가 더 달달하게 뽑히기 때문.



실제로 JTBC에서 방영중인 모 프로그램에서는 가수 설운도씨의 급발진 의심 사고 장면을 보여주며 해당 위치에 브레이크 등이 점등했다고 표시했는데,






실제로 사고 직전까지 브레이크 등이 점등되지 않았음에도 브레이크 등이 점등되었다고 표현하는 등 명백한 허위 정보를 방송에 내보냈다.


물론 이 영상은 지금도 JTBC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으나, 업로드 초기에 달린 숱한 악플 때문인지 지금은 댓글을 막아 놓은 상황.














이 당시 정부는 급발진 의심 사고로 여론이 악화되자 급발진의 원인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산업계, 학계, 연구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사람을 전부 불러모아서 급발진 사례에 대한 원인분석을 실시했다.


조사의 모든 과정을 언론에 투명하게 공개했고, 거기에 차주가 원한다면 해당 사고차량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전부 오픈하겠다고 밝혔을 정도.



그리고 그 조사대상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2012년 당시 있었던 '스포티지 임산부 급발진 의심 사고'.


너무 오래 전이라 원본 영상을 찾을 수 없었지만,


1,000km 운전한 스포티지R 가솔린 터보 차량이 주차 도중 갑자기 튀어나갔고, 충돌 이후에도 계속 RPM이 올라가며 굉음을 낸 사고였다.



무려 해당 차량이 4.7초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가속력을 보이며 충돌했다는 점.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가속이 브레이크를 이겨버릴 정도로 너무 강력해서 제동이 불가능했다는 점. 


당시에 전문가들은 이 두 가지를 사고의 원인으로 꼽았다.
























동일한 차량을 똑같이 구입해서 충돌 실험을 진행한 결과


실제로는 비정상적인 가속도 아니었고, 충돌 당시 속도와 RPM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다.


이것 외에도 1가지 사례가 더 있었는데, 그건 유튜브에서 보는 걸 추천.




















그렇다면 '급발진 전문가'들은 정말 중립적인가?




















(판사님 저희 고양이가 컴퓨터를 할 줄 알아요)








그래서 급발진은 있는 거임? 없는 거임?



급발진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고, 실제로 몇몇 사례들 중에서 급발진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사례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


물론 원인을 규명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 인정받는 것은 매우 어렵지 않을까.


다만 최근에는 형사 사건에 한해서 운전자의 무죄를 인정하는 판결이 종종 나오는 추세에 있다.


물론 형사 사건은 피고의 명백한 죄가 입증되어야 하는 만큼,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힘든 급발진 의심 사고에 걸맞는 판결이라고 보이기도 한다.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합리적 의심'에 의해서 급발진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브레이크 페달 대신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잘못 밟는다고? 무사고 30년인 운전자가?' 라는 생각은 사실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무사고 경력 30년의 운전자라면 본인이 페달을 잘못 밟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을 뿐더러,


대부분 그러한 운전자는 지각능력과 반응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노년층의 운전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는 안타깝지만, '설마 가족을 태우고 브레이크랑 액셀을 헷갈리겠어?'


하는 식의 사고가 자극적인 황색언론의 보도와 맞물려 급발진에 대한 일종의 종교적 신앙에 가까운 음모론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페달 오인 사고에 대해서 국내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막중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격차를 이용하기만 했을 뿐, 그동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

















일본에서는 이미 노년층의 페달 오인 사고가 끊임없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바람에 이런 장치를 대부분의 차종에 탑재하도록 하고 있었음.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게 현실.





세 줄 요약


1. 급발진 의심 사고 원인이 뭐임? -> 진짜 차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 운전자가 페달을 착각했거나


2. 그럼 언론은 정확한 보도를 하고 있나? -> 오히려 자극적인 소재와 내용을 위해 음모론 확산에 기여함


3. 그럼 뭘 해야 함? -> 대중의 인식 개선, 강제력/공신력 있는 조사 기관, 제조사의 사고 방지 대책 마련, 황색언론의 퇴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