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에서 제일 멀리떨어진 유럽국가, 포르투갈에서 있었던 무혈혁명이 성공한날이야.

흔히 4월25일 혁명 또는 카네이션 혁명으로 알려졌어


당시 포르투갈은 한국처럼 징집제도였어. 하지만 외국에있으면 잡아가진 않았음. 그냥 면제

그리고, 징집당하면 3년의 군생활중 2년을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보냈어야 했다고 해.


당시 아프리카에 있던 포르투갈 식민지는 앙골라, 모잠비크, 기네비사우가 있는데

1961년도부터 독립전쟁이 터지면서 포르투갈은 이들과 전쟁에 들어갔어.

당시 포르투갈군 약 17만명중에 15만명이 이 전쟁에 투입되었지.


포르투갈에게 앙골라, 모잠비크, 기네비사우는 생각보다 뜻깊은 곳이었어.

포르투갈을 강하게 만들었던 주역이자, 300년동안 유지중인 유일한 식민지였지.

그래서 포르투갈의 총리 살라자르는 무조건 아프리카 식민지를 사수해야한다곳 생각했어.

그와 동시에 우리는 식민지를 잘 대해주고, 오히려 키워준다는걸 보여주기 위해서

앙골라, 모잠비크에는 도로를 다시깔고, 댐을 만들고, 의료시설이나 교육시설등을 만들었지.


그렇게 몇십년동안 전쟁을 해버리면서, 포르투갈은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부분적인 승리를 얻고 독립군을 외곽지역까지 몰아내는데 성공해.

하지만 기네비사우에서는 남아공의 지원이 없었기에, 포르투갈 단독으로 주변에 많은 지원을 받은 기네비사우와 싸워야했어.

기네비사우는 적도에 위치하고, 굉장히 많은 늪지와 정글을 가지고있어. 그래서 일반부대로는 작전이 힘들었지.

그리고, 기네비사우 독립군은 훈련하고 무장도 굉장히 잘되있었다고 해.

여기를 포기하면 다른곳도 좆됐기에 포르투갈은 포기할 수 없었고, 1970년대까지 주요도시 비사우와 그 근방만을 방어하기에 이르러.

해병대를 포함해서 꽤 많은 전과를 올렸지만 역부족이었지.


1970년부터, 포르투갈은 상당한 재정난에 이르러. 전쟁으로 인해서 당시 예산의 40%를 군대에 쓰고있었지.

또한, 많은수의 젊은이가 전쟁으로 인해 징집되고, 희생되었어.

그러자 1973년부터 전쟁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청년장교(30대 후반)들은 MFA, 국군운동을 결성시켜서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해.


1974년 4월 25일, 새벽 00시20분에 Zeca Afonso - Grândola, Vila Morena의 노래가 울려퍼지면서 쿠데타를 시작하게 되지.

쿠데타세력은 빠르게 방송국, 공항및 기타 군사시설을 점령하면서 빠르게 나갔어.

그리고 부대가 리스본에도 진입하게 되지.

https://youtu.be/jthlDhHpblo



https://youtu.be/IVKf00VGjGM


당시 살라자르는 이미 뇌진탕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였어.

카에타누 총리는 리스본 주둔군에 반란진압을 명령하지만, 짧은 대치끝에 주둔군도 반란군의 편으로 돌아서.

그렇게 빠른속도로 리스본을 점령하고, 카에타누 총리는 결국 투항하게 돼.



당시 사진들



시민들은 다음날 아침, 혁명이 성공했음을 알게되고,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했지.

군인들은 이에대한 보답으로 총구에 꽃을 꽂아두었어.

이 혁명의 명칭중 하나인 카네이션 혁명은 여기서 왔지.


이런식으로 말이야.


그렇게 4월25일의 혁명은 끝이나.


이후, 포르투갈은 민주주의 정권으로 접어들게되고, 

모든 식민지를 포기함과 동시에 군축을 진행하게 되지.

당시 전쟁때문에 미국과의 수출도 제한되어있었거든


그렇게 세계 최초의 무혈혁명이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