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걸로 주장하는 건 아니고 기록의 주장으로 나온게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 에요.
죽산에 안씨 족보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세종이 변음등에 고민하다가 여러 대군들에게 문의하나 다들 답변을 못하고 정의 공주가 풀어 받쳤다. 기뻐하며 수백의 노비를 하사 하였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걸 바탕으로 상상을 더한게 저 소설이고요.
참고로 죽산안씨대동보는 죽산에 안씨 집안에서 우리 집안 사람이 이렇다고 하더라...의 카더라로 만들어진 글로
우리가 아는 소나기 보다 더 최근에 1976년 만들어진 카더라 글임. 자료 조사 없이 카더라로 적힌 안씨 집안 소설
긍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아리까리하네.
한국어라는 언어 체계 자체는 그 이전부터 있었는데
거기에 표기 체계가 메이져 업데이트로 올라온 개념이라고 이해해서 저렇게 보고있었음.
만든 시대 기준으론 중국어를 표기로 쓰다가 충돌 개 심해서 새로 만든거니 떼어놓고 보는게 맞는지
지금시점으로 보면 같이 발전한거니 하나로 봐야되는건지 헷갈리네.
근데 사실 다 개소리인게 훈민정음은 결국 그냥 세종대왕 혼자 만들었다는 게 지배적인 설임. 집현전이니 뭐니 이런 거 다 필요없고 혼자 만들었음.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이전부터 언어와 음운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이 부분을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훈민정음》이 아직 기밀 사안이었을 시절에도 중국어 관련 서적을 탐독하자 신하들이 "전하, 중국어 책은 왜 자꾸 보십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으며, '내가 지금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던지, "중국어 공부를 좀 해놔야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질문을 했을 때 미리 답변을 생각해 놓지 않겠는가?" 라며 핑계를 대기도 했다.
『세종실록』의 훈민정음 창제 관련 기사를 인용하고 있는 이 글에 따르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세종이다(親制: 친제). 그럼에도 옛날 교과서는 물론이고 요즘 나오는 여러 책들에까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을 공동 창제자인양 서술하는 것은 ‘설마, 왕이 문자를 만들었겠어?’라는 의구심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어학계를 비롯한 관련 학계의 결론은 ‘훈민정음은 세종이 혼자 창제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공표할 때까지 훈민정음 창제를 시작했다거나, 새 문자 창제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다는 내용 등이 실록에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가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세종 혼자서 문자를 창제했다는 것을 뜻한다.
원래부터 언어학에 능통한 편이었는데 그걸 기반으로 혼자 만들었음. 근데 그게 말이 되는 수준인가? 싶어서 누가 도와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 같은 게 있어서 자꾸 저런 말이 나오는 거라 생각하는데 이순신 장군이 13 대 133을 어케 이김 씨발 이런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함.
이게 진짜 정배인게 그 당시 집현전은 한글을 만드는데 오히려 반대했다고 하더라고. 실제 집현전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하고 한글로 된 책을 만드는데 일조한거라고 하더라
한글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거는 자기 아들인 세조랑 문종 정도가 많은 도움이 됬다고 했던것 같은데... 이 부분은 상세하게 모름
사실 유무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일단은 흠집내고 깎아내리는 게 우선인 거임 권위를 깎아내린다는 거 자체가 걔네들에겐 일종의 대의를 위한 저항? 이딴 개념이거든 말이 되든 안 되든 자기들 목적이 숭고하니 비하하는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고 기왕이면 만인에게 인정받고 인지도 있는 사람일수록 더 좋은 거지
실제로 걔네들이 반인륜, 반지성적인 짓거리를 미친듯이 저질러도 그저 권위에 대항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말도 안 되는 옹호부터 하고 본 그짝 성향들 많았음... 아무리 성향이 그쪽이라지만 ㄹㅇ 똥오줌도 분간 안 했던 거지 덕분에 정신나간 애들만 신나게 설쳤고 그 결과가 지금의 끝도 없는 젠더혐오의 연쇄인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