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백제의 왕성인 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서울 풍납동 토성.


안내판을 보면 금연이나 훼손 금지, 배설물 수거와 같은 당연한 내용 뿐 아니라 

'밭 작물 등을 경작하는 행위', '겨울철 눈썰매를 타는 행위', '취사, 야영하는 행위'같이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내용이 붙어 있는데


저런 이상한 내용이 안내판에 쓰여 있는 이유는

과거엔 진짜로 그랬기 때문이다.


실제로 땅을 팔때마다 문화재가 나오는 동네가 되기 전에는 저게 뭔지 아무도 몰라서 그냥 저기에다 농사를 지었음.


당시에는 하남에 있는 이성산성이 하남위례성일 것이라고 추정되었고, 자연스럽게 '하남'이란 이름도 하남시가 가져가게 됨. 그러나 여기서 30년을 발굴했는데 나온 유물들이 죄다 백제 양식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하남위례성의 정체는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됨.


그러다 1980년대 올림픽공원과 올림픽 경기장을 만들다가 몽촌토성이 발굴되면서 이전까지 그냥 흙무더기인줄로만 알았던 몽촌토성이 사실 백제의 수도일 거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함. 또 초기에는 그냥 흙을 쌓아둔 성터 정도로만 여겨졌는데 발굴 결과 아주 치밀하게 쌓아올린 성벽 그 자체라는 사실이 드러남.


하지만 백제 유물도 많이 나오고, 대형 유적지도 발굴되고, 다 좋은데 이게 왕성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안 나왔음. 


뭔가 살짝 아쉽긴 하지만 아예 백제 유물도 안 나오는 이성산성보다는 이게 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리려 할 때,


갑자기 1997년, 옆동네에 있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이상한 도자기가 자꾸 나온다는 사실이 신고되었음.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급하게 부랴부랴 긴급발굴팀을 꾸려 조사한 결과 백제의 유물임이 확인되었음. 추가로 기록과 일치하는 백제 왕성의 흔적들도 나옴. 이렇게 종전의 가설들을 모두 뒤집고 하남위례성의 정체가 풍납동 토성인 것으로 확인됨.


근데 확인해놓고 주변 꼬라지를 보니 존나 좆된 거임.. 이미 홍수로 반이 쳐 날라갔는데? 이미 여기다 농사짓고 있었는데? 왕성 자리에 전부 건물 올라가 있는데? 재개발 준비중이었는데? 주민들에게나 문화재청에게나 재난이 아닐 수 없었음. 덕분에 재개발 계획은 전면 취소. 


이 일로 주민들에게 빈축을 산 것인지는 몰라도 한동안 관리 상태가 매우 안 좋았음.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기다 텃밭을 차리는 사람들이나 겨울에 눈썰매 타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음. 눈썰매는 지금도 탄다.....


TMI로 윾식머장이 이 동네 출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