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새벽에 천둥이 울고 비가 내렸는데 개기를 기다려 길을 떠났다. 내가 암행어사가 되어 서도로 나온 이후로, 멀고 가까운 곳의 자잘하고 간사한 무리들이 어사의 수행원이라고 거짓말을 하거나 어사와 친한 사이라고 칭하기도 하면서 관리와 백성들을 공갈 협박하여 돈과 재물을 빼앗았다. 그 죄는 죽여도 시원치 않고 폐단 역시 적지 않은 까닭에 일찍이 여러 읍에 공문서를 내려 보내 조사해 잡아들이도록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오자 읍의 장교들이 오히려 내가 돌아다니는 것에 의심을 품어, 몰래 발자취를 더듬어 쫓아다니면서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몹시 힘이 들었다.


어떤 고개에 도달하여 인마와 수행원을 먼저 보내고 나무 아래에서 홀로 쉬노라니 추적하는 자가 도달했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먼저 엉뚱한 일을 말하면서 나를 살피느라 내려 보고 올려보고 하였다. 나는 얼굴색에 조금도 변함이 없이 묻는 대로 대답하였더니 그 사람은 암행어사가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가짜어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지금 남몰래 조사하러 다니는 중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끝내 내 행동거지가 수상하다는 말까지 하였다.


그러더니 민간에서 붉은 실(紅絲)이라고들 부르는 쇠줄을 허리춤에서 꺼내어 보이며 말했다. "길손은 이 물건을 알아보겠는가." 이 지경에 이르러 화가 곧 머리에 닥치는 터라 나도 대답 없이 가슴에서 마패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너는 이 물건을 알아보겠는가." 그 순간 그 사람은 얼굴색이 흙빛이 되어 입을 다물고 말을 못하면서 쳐다보더니 곧 쓰러졌는데 언덕을 따라 판자 위의 작은 구슬처럼 몸이 굴러가다가 평평한 곳에 이르러서야 멈췄다.


나는 마패를 들어 다시 가슴 속에 감춘 후 밑으로 내려가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위로하였다. "너나 나나 모두 각자 나라 일을 하는 것이다.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되니 힘을 내서 일어나 가거라." 그러고 나서 앞장서 자리를 떠나 고개를 넘어 가버렸다. 그 광경은 참으로 포복절도 할 일이었다.


박내겸, 서수일기, 순조 22년 4월 22일자




참고로 붉은 쇠줄은 조선시대에 공권력의 상징이었음. 수갑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