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의외로 모르지만 조선시대에 버터가 존재했다.


바로 수유(酥油) 라고부르며 서양식과 똑같이 소젖으로 만든다.


만드는 방식은 소젖을 끓여 표면에 뜨는 찌꺼기를 모아서 만드는 방식으로 


매우 비효율적인데다가 조선시대 황소의 버터생산량은 서양의 1/8이였기에 생산량이 매우 적었다고한다.


조선시대 수유장인은 부역(군대)을 안하는대신 1년에 1정()을 세금으로 내야하는데 40돈에 해당하는 단위로 약 150g정도된다.


그런데 1년에 겨우 150g을 만들지못하는 장인들이 수두룩했다고...


조선시대에 수유장인들은 약 400호 정도가있었는데 이들이 세금으로 내는 수유는 100정(15kg)도 되지않았다고한다.





이런 서울우유 버터 30개가 조선의 1년 버터생산량이다.




아무튼 조선시대에는 이런 귀한 버터로 2가지 요리를 해먹었다.



1. 수유차(버터차)


구기자차 3 : 버터 1 비율로 섞은 차다.


구기자차만 아니라 다양한 차에 버터를 넣어마시지만 조선시대에서 최고로 친건 구기자차로 만든 수유차다.


마시는 순간 정신이 맑아지고 눈이 번쩍 떠진다고한다.




2. 타락죽(우유죽)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조선시대 우유요리 타락죽.


사실 조선시대에 그 귀한 타락죽 중에서 버터를 넣어만든 타락죽을 최고로 쳤다.


단지 버터를 만드는게 너무 힘들어서 상대적으로 구하기쉬운 우유를 넣어만들게되었다.


버터를 넣어만든 타락죽은 그 풍미와 맛이 정말 끝내줬다고하지만 조리법이 실전되어 알수없게되었다.





아쉽게도 조선시대 수유(버터)의 역사는 16세기로 끝이나게되는데


이유는 수유장인들은 부역을 하지않는다는걸 이용해 위장전입이 너무많아 세종대왕이 수유 제조를 금지시켰다.


어느 수유장인 집에는 성인남자 21명이 위장전입해서 세종대왕이 격노했다는 기록이있다.


이후 민간에서 몰래 만들다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버터역사는 끝나버리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