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려인은 19세기부터 연해주로 이주해 한반도 북부 출신 한인을 시조로 한 러시아의 소수민족이다.


그러나 연해주가 아닌 사할린으로 이주한 한인들에겐 '고려인'이란 단어는 '매우 불쾌하고 욕이나 다름없는 말'로 받아들이는데 


그들이 '고려인' 명칭을 왜 불쾌하게 받아들이는지 한번 알아보자.


(참고:일본 점령하 남사할린의 정식명칭은 '일본령 가라후토'지만 이 글에선 편의상 '남사할린'으로 칭하겠습니다)


우선 한인들이 사할린 섬에 정착하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선 러일전쟁 직후, 즉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된 시점(1905년)으로 가봐야한다


러일전쟁 직후, 포츠머츠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사할린 남쪽을 일본한테 할양했으며 이에 일본은 남사할린을 외지(식민지, 조선,대만 등)로 선언한 뒤 일본인들을 정착시켰다.


남사할린이 외지로 선포된지 약 33년 후 1938년, 일본에선 중일전쟁의 장기화로 국가총동원법이 시행되었으며

 

'외지인'이던 조선인들도 남사할린에 탄광,군수공장 등의 노무자로 끌려가 온갖 말 못할 착취를 받았고

 

1943년 남사할린이 외지에서 내지(일본 본토)로 편입되었지만 가혹한 노동환경은 계속될 뿐이었다.


그로부터 약 1~2년 후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은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일선전포고를 하면서 소련-일본 전쟁이 발발하게 됐다


결국 8월 25일 남사할린 주둔 일본군은 항복했고 40년만에 사할린 전체가 소련(러시아)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 후 1946년 소련과 일본 정부는 사할린에 남은 일본인들은 모두 본토에 송환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사할린에 남은 조선인(이하 한인)들의 송환은 해방이후의 한반도가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라 송환할 여력이 없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 됐을땐 이미 냉전이 시작돼서 소련과 대한민국의 송환 협정은 없다시피 했다


결국 소련 정부는 북괴놈들을 직접 데려와 사할린 한인들을 회유하는 방법으로 송환시키게 만들거나


자기 스스로 소련 국적을 취득하라는 선택지를 줬지만


사할린 한인들은 한반도 북부지방 출신 고려인들과는 다르게 한반도 남부지방 출신이 대다수여서 북괴의 회유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소련 국적을 취득한 일부 한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국적자로 남아 불우한 여생을 보냈으나....


1990년 대한민국과 소련과의 관계가 원만해져 순차적으로 송환이 시작되자 드디어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할린 한인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르면 왜 욕으로 받아들일까?

 

그 이유는 고려인들과 사할린 한인들의 행적을 비교해보면 답이 나온다


고려인: 구한말 본인이나 가족들이 자발적인 이유로 연해주에 정착했으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를 당한 케이스


사할린 한인: 처음부터 자신이 원치 않음에도 징용 노동자로 끌려갔는데 반평생동안 고향에 못돌아가고 국적마저 말소된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