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한 개인이건 국가건


한국이건 일본이건


일이 안풀리려고 할 때는 정말 세상 모든 것이 덤벼들어서 억까를 하려고 한다



종금사들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던 일본에서 돈을 단기 상환으로 빌려


동남아에 장기 상환 조건의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며 


그 이자 차익을 낼름하는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금융기관들이 이 상환을 당장 갚으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냥 종금사들만 부도나고 땡아님? 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종금사들은 시중 은행들이나 기업들과 사실상 연계된 회사들이었기에


종금사들이 그 빚을 갚지 못한다면 은행들과 기업들 그러니까 


결국 국가 전체가 그 빚을 떠안아야 할 판이었다



물론 이건 그냥 돌려막기를 하건 일본 쪽에 적당히 지불 유예를 해달라고하면 끝나는 문제였다


그러나 일본쪽도 코가 석자였다




우선 90년대 중반은 통칭 잃어버린 2,30년이라 불리는 일본의 기나긴 장기불황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이 장기 불황은 단순히 90년대 들어서 일본이 좆박은 게 아니라 


감히 거품 경제 따위로 미국에 도전한 죗값이었다




그보다 앞서 1970년대로 돌아가보자


전세계를 덮친 오일쇼크와 인플레이션은 케인지언들에게 종말을 선고했다



수십년에 걸친 케인지언 정책들에 의해


시중에 풀린 엄청난 통화량은 전세계에 막대한 버블을 형성해


인플레이션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결국 레이건 정부 들어서 FRB 의장으로 임명된 폴 볼크는 


이 버블과 폭등해버린 물가를 잡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마따끄...인플레를 잡기 위해 오늘부로 금리 11%로 올립니다



저 새끼 돌았냐! 지금도 고물가로 서민들 죽어나는데 진짜 다 죽일 있냐!! 



흐음....그렇군요



오늘부로 금리 15%로 올립니다



아니 미친새끼야!!! 이러다 다 죽는다고!! 폴볼커를 쳐죽여라!!!



흐음....정말 그렇군요



오늘부로 금리 20%로 올립니다



뷰...뷰르릇 헤으응....



현재 금리 5%따리로도 영끌족들의 곡소리가 한강을 가득 메우는데


인플레를 잡기 위해 무려 20%까지 기준 금리를 올렸다



생각해보라 윾붕이 연봉이 천만원이고 15년동안 갚을 생각으로 은행에서 1억을 빌려 집을 샀는데


갑자기 한은총재의 폭탄선언에 기준 금리가 20%까지 뛰어 매년 이자만 2천만원이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나고 볼커의 집 앞과 출근길에선 매일 같이 그를 죽여버리겠다는 


살해 협박성 시위가 계속 됐지만 볼커는 아랑곳 않고 초고금리 기조를 밀어붙였다




폴 볼커는 키가 2m나 되는 거한이었는데 월가에선 이를 두고 


볼커가 금리를 무지성으로 자기 키만큼 올렸다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국 미국 내 자산가치는 폭락하기 시작했고 부실 기업들이 줄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중에 풀렸던 달러들은 은행으로 은행으로 빠르게 흡수되었고 


그렇게 3년동안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었지만 미국과 전세계를 괴롭혔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잡힐 수 있었다




그럼 다시 아시아로 돌아가자


일본은 기록적인 엔저로 대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1달러에 160엔 하면 기록적인 엔야스라고 하는데


그 당시엔 무려 250엔을 넘나들었고 심하면 300엔을 바라보는 날도 있었다



이 엔야스의 힘입어 일본의 제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저 미국마저도 넘어설 정도로 막강한 최강의 제조업 국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은 잡혔지만 일본의 엔저 물량공세(!)에 


미국의 제조업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제조업에 종사하는 


블루칼라 미국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폴 볼커는 또 한번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흐음....정말 그렇군요



그럼 일본도 손 보지요 뭐




에...오늘 플라자 호텔에서 우리의 동맹국들이 자국 통화의 가치 절상에 합의했습니다



그랬다 말이 좋아 합의지


1달러에 200엔에서 250엔 사이를 오가던 엔화의 가치를 


약 2배인 100엔대로 절상하라는 합의를 가장한 협박,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다




심지어 미국 협상단은 일본 측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는지


회의가 길어지자 적당히 테이블에 놓여있던 티슈에 싸게싸게 올리쇼라 쓰고 


밀어넣은 뒤 합의했다고 발표해버리는 등 회의는 매우 강압적인 분위기였다


플라자 합의 후 단 1년만에 250엔하던 엔화는 2배 가까이 떡상해 120엔대까지 치솟았다


이게 바로 일본 버블 대폭발의 시작이였다




돈은 엄청나게 많이 벌었는데 하루 아침에 그 돈의 가치가 2배 가까이 올랐으니


일본인들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고 엄청난 엔고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거기에 타이밍 좋게 미국의 자산가격이 폭락했으니 돈이 썩어 넘쳐흘러 주체를 못하던 


일본은 그 돈을 떡락한 미국 자산 줍줍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버블시대의 일본은 도쿄만 팔아도 


미국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라는 말이 바로 이 시기에 나온 말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일본의 어느 은행이 뉴욕의 무슨 빌딩을 샀니 


헐리우드의 어느 회사를 인수했니 하는 뉴스가 신문 지면을 도배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이 국제결제은행(BIS)이 정한 재무건전성을 담보하는 자기자본비율, 


이른바 BIS비율을 준수하지 않으면 미국 은행과 거래할 수 없다는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자기자본비율? 그게 뭔데 씹덕아


쉽게 말해 은행이나 기업의 자산 중에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증권,부동산,대출 등 


금융자산의 비율이 총 자본의 일정 비율을 넘으면 안된다는 소리다



결국 일본 정부는 BIS비율 준수를 위해  


은행들을 쪼아 자산들을 팔고 빌려준 대출금들을 회수하도록 압박했다


엔다카로 행복하게 껴안았던 수많은 부동산과 증권들이 헐값으로 팔아치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995년 터진 고베 대지진은 


정신줄 놓기 일보 직전인 일본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지진 한번에 10조엔이라는 거대한 피해를 입은 일본은 더이상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흉흉했던 일본 사회에 옴진리교가 사린 테러를 벌이며 


더더욱 일본 경제는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결국 여유가 없어진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에 빌려준 돈을 냉혹하게 


회수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그것을 억제할 길이 별로 없었다




쓰나미가 오기 직전엔 엄청난 속도로 바닷물이 빠지는 전조현상이 있다


이 당시에도 수많은 그런 전조 현상들이 있었고


비유 그대로 외화가 쓰나미 일보 직전 바닷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그 당시 한국은 대선 시즌이었다




심지어 15대 대선은 오늘날의 무근본 시정잡배 수준의 후보들도 아닌


무려 DJ와 이회창이라는 좌우익의 초대형 근본 거물들이 벌이는 빅매치였다


국민들의 관심이 고작 동남아 위기 따위에 갈리 만무했다



거기다 여당은 대선을 앞두고 경제가 악재가 되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 쉬쉬했고


야당 또한 은연중에 경제 위기에 침묵하며 그것을 방조했다


경제가 파탄나면 여당의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에 빌려서 동남아에 빌려준 돈이 떼이는


이른바 '미스매칭'이 벌어지자 종금사들은 하나둘씩 부도가 나기 시작했고


종금사에 연결된 은행들과 기업들에게도 줄줄히 줄도산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그렇게 위기는 시작되었고 한국엔 낫을 든 저승사자가 찾아오고 있었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