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학생의거 사건.
이 당시엔 소련군이 군 기강을 빡시게 잡기 전이라 군인들이 상점가를 약탈하거나 부녀자를 희롱해대서 반감이 고조되고 있었고
특히 1945년 11월 18일 소련군과 조선노동당이 공장을 기습해 시민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교회 장로를 즉결처형하자 23일 6개 중학교에서 학생 5천명이 반소 시위를 열게 됨.
이에 소련군이 취한 대응은
T-34 전차와
지상부대를 지원할 Yak-3 전투기를 앞세워 진압 작전을 실시하는 것.
https://www.yna.co.kr/view/AKR20151121052800004?site=mapping_related
증언에서는 야크 전투기가 갑자기 기총을 쏘며 날아왔다는 이야기가 나옴.
일부 학생들이 돌을 던지며 저항했지만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힘
23명이 사살됐고 7백명이 부상을 입었고 2천명이 투옥되며 시위는 진압됨.
진압이 완료된 뒤 소련군정은 앞잡이였던 김일성을 보내 동중학교에서 일부 학생들이 선동을 당했다는 강연을 시킴.
독립유공자이자 민중운동가 함석헌도 이때 사상적 배후로 지목되어 끌려가 고문을 받고 간첩 누명을 뒤집어 써서 결국 월남을 결심하게 됨.
함석헌은 이후 민중의 통일정신 독립정신을 강조하고 군부 독재를 비판하며 꾸준히 사설을 발표하면서 겨레의 할아버지라고 불리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