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도 지붕이나 서까래면 몰라도 건물 외벽에다 금칠을 하진 않았음
동아시아의 전통가옥에는 외벽 사이사이에 큰 창이 나 있기도 했고
마야가 주사를 사용한 용도는 건물 전반을 칠하는 주 도료임
동아시아의 가옥에 대입해 보자면 창호를 제외한 석벽, 보, 기둥, 지붕을 죄다 원톤으로 마감하는 건데 거기다 죄다 금속칠하는 거면 그냥 우리 민족은 시력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진배없지 ㅇㅇ
네, 맞아요! 마야 시대의 옥수수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옥수수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마치 연필처럼 길고 가늘었죠.
크기와 모양: 고대 마야 옥수수는 현재 옥수수보다 훨씬 작았고, 길이는 약 10cm 정도였으며 지름은 1.5cm 정도로 가늘었습니다. 옥수수알도 훨씬 작고 단단했으며, 낱알의 줄 수도 적었습니다.
맛: 당도도 훨씬 낮았고, 녹말 함량도 적어서 맛이 덜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배: 수천 년에 걸친 인위적인 선택과 교배를 통해 오늘날의 옥수수로 진화했습니다. 마야인들은 초기 옥수수를 재배하고 개량하면서 점차 크고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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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대 마야 옥수수는 현대 옥수수와는 크기, 모양, 맛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야 문명에서 옥수수는 매우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고, 그들의 농업 기술과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옥수수는 마야인들에게 주식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의식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마야인들이 옥수수를 '신의 선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옥수수 신에게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했고, 옥수수를 삶거나 갈아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마야 시대의 옥수수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질문해주세요!
네, 맞아요. 진시황릉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수은 때문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시황릉 내부에 천장에는 천체를, 바닥에는 지형을 그려 넣었고, "장생불사의 약"으로 여겨졌던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실제로 1980년대에 진행된 토양 조사에서 진시황릉 주변에서 높은 수준의 수은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사기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시황릉 내부에 존재하는 수은은 단순히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수은은 휘발성이 강하고 독성이 높은 물질이기 때문에, 발굴 작업자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은은 금속을 부식시키는 성질이 있어서, 진시황릉 내부의 유물들을 손상시킬 우려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중국 정부는 진시황릉 발굴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수은으로 인한 위험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발굴을 미루고 있는 것이죠.
물론 수은 외에도 진시황릉 발굴을 막는 다른 요인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덤의 규모와 복잡성: 진시황릉은 엄청난 규모와 복잡한 구조를 자랑합니다. 발굴 과정에서 무덤이 붕괴되거나 유물이 손상될 위험이 높습니다.
도굴의 위험: 진시황릉은 엄청난 보물을 품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발굴 후 도굴꾼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문화재 보호: 진시황릉은 중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발굴 과정에서 유물이 훼손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진시황릉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수은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진시황릉 발굴은 중국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동시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실무 연구자가 그거 비판하는 연구 냈다가 하루아침에 반혁명 종파분자로 몰려서 숙청될 뻔했고, 간신히 숙청을 피한 것도 그 연구자가 실수로든 호기로든 한 번이라도 여자나 술 같은 건 건드리지도 않고 그저 오로지 책과 연구자료만 파묻혀 쭉 연구만 해 왔던 사람이어서 딴엔 불쌍하게 여긴 당에서 '한 번만 봐준다'라면서 봐줬다던가 ㅋㅋㅋㅋㅋㅋ
네, 북한의 경제난과 식량 부족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김일성 시대에 도입된 주체농법과 옥수수 증산 정책을 꼽는 시각이 있습니다.
주체농법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에 기반한 농업 방식으로, 화학 비료나 농약 대신 자연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옥수수는 북한의 기후와 토양에 적합하고 생산성이 높다는 이유로 주력 작물로 선정되어 집중적으로 재배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체농법은 현실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비과학적인 방법: 화학 비료와 농약 사용을 제한하고 퇴비와 같은 자연적인 방법에 의존했기 때문에 토양의 지력 유지가 어려웠고 병충해 발생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획일적인 옥수수 재배: 옥수수 증산에 치중하여 다양한 작물 재배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는 영양 불균형과 식량 부족 문제를 심화시켰습니다.
생산성 저하: 비효율적인 농업 방식과 농업 기술의 부족, 그리고 농촌 인프라의 낙후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체농법은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데 실패했고, 만성적인 식량난과 경제난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에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규모 기근 사태가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북한의 경제난은 주체농법 외에도 국제 사회의 제재, 경제 관리 시스템의 비효율성, 자연재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주체농법과 옥수수 증산 정책은 북한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까지도 북한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맞아요. 옥수수는 지력을 많이 소모하는 작물로 유명합니다.
옥수수는 다른 작물에 비해 질소, 인, 칼륨 등의 영양분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영양분은 토양에서 흡수되는데, 옥수수를 계속해서 재배하면 토양 속 영양분이 고갈되어 지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지력이 떨어지면 옥수수의 생산량이 감소하고 병충해에도 취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미국처럼 옥수수를 대규모로 재배하는 국가에서는 화학 비료를 사용하여 토양에 부족한 영양분을 인위적으로 공급합니다. 화학 비료는 옥수수 생산량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과도한 사용은 토양 산성화, 수질 오염, 생태계 파괴 등의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옥수수 생산을 위해서는 화학 비료 사용량을 줄이고, 윤작, cover crop 재배, 유기농법 등 토양의 지력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농업 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윤작: 옥수수와 다른 작물을 번갈아 재배하여 토양의 영양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콩과 작물은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어 옥수수 재배 후 토양에 질소를 공급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Cover crop: 옥수수 수확 후 토양을 덮어 토양 침식을 방지하고 유기물을 공급하는 작물입니다.
유기농법: 화학 비료와 농약 대신 유기물과 천적을 이용하여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입니다. 토양의 건강과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옥수수 재배로 인한 지력 소모를 줄이고 환경 문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마야 문명에서도 옥수수를 지속적으로 재배하기 위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밀파'라는 농법을 이용하여 옥수수와 콩을 함께 심어 토양의 지력을 유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옥수수는 지력 소모가 큰 작물이지만, 과학적인 농업 기술과 지속 가능한 농업 방식을 통해 환경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옥수수를 재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