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업무가 끝났다. 

 

하지만 우리 승정원의 하루는 길다. 

 

 

 

 

 

"그렇죠. 이제 얼른 점심먹고 일해야죠" 

 

점심? 무슨 점심? 

 

조선 관료 근무시간에 점심시간은 없다. 

 

애초에 점심은 당시엔 새참 등과 같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중간중간에 허기를 달래는 느낌이지, 

 

당연히 먹는 3끼 식사가 아니었다. 

 

 

 

 

"그럼 위에서 아래까지 아침먹고 쫄쫄 굶으면서 12시간 일하고 저녁 먹는거?" 

 

임금은 예외다. 

 

임금은 평균 하루 5끼를 먹는다. 

 

3끼에 야식과 새벽 애피타이저로 죽 한사발 하신다. 

 

고기성애자인 세종을 제끼고 봐도, 

 

조선시대 대다수 임금님들은 사실 파오후다. 

 

특별히 지병으로 인해 수라를 잘 들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니 씹 그러면 왕이 점심먹을 동안 신하들은?" 

 

일하고 있지.  

 

실제로 영조의 경우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서 

 

곤란한 상소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게 되면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끌거나 흐름을 깨기도 했다. 

 

정치 9단 답게, 모든 요소를 정치적으로 활용한다. 

 

 

 

 

"그럼 배고프면 참아야 되나요?' 

 

물론 꼭 그런 건 아니다.  

 

널널한 근무시간이 보장된 만큼, 

 

관리들은 급한 일들을 마치고 집에서 보내주는 음식을 먹기도 했다. 

 

규정상 허락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정도는 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새끼들은 예외다. 

 

국왕 비서실인데 슬쩍 자리 비우고 밥먹고 온다는게 말이 돼? 

 

얘들은 진짜로 쫄쫄 굶는다. 

 

다행히도, 조선은 정의 나라다. 

 

이에 관한 영조의 훈훈한 일화가 하나 있다. 

 

 

 

 

"배고픈데 우린 뭐 안줍니까?" 

 

 

 

 

"우린 원래 점심시간이 없어. 그러려니 해" 

 

 

  

 

"남들은 복날이라고 삼계탕 처먹는 놈들도 있는데..." 


 

 

 

 

"아 공무원 생활 하루이틀해? 그냥 참고 저녁 많이 먹어" 

 

 

 

 

"승지 여러분, 주상께서 오찬을 함께 하시고 싶으시답니다" 

 

 

 

 

"지금 당장 가겠소. 점심... 아니 전하를 기다리게 할 수 없지" 

 

 

 

 

 

 

"그래, 더운데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일진대 어찌 고생을 논하리이까?" 

 

 

 

 

"특별히 먹고 싶은 건?" 

 

 

  

 

"전하께서 먼저 고르시면 따라서 고르겠나이다." 

 

 

 

 

"그럼 난 이거" 

 

 

 

 

 

 

 

 

"???????" 

 

 

 

 

"난 점심 많이 안먹어." 

 

 

   

 

";;;;;;;;;" 

 

 

 

 

"거기에 올해 영남이 흉작이라지? 백성들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 

   

 

"이럴 때 말복이니 어쩌니 하며 고기반찬을 먹는다? 이건 도적놈이지, 도적놈" 

 

 

 

 

":::::::::::::::::::::::::::::::" 

 

 

 

 

"그래서, 메뉴는 뭘로 할래?" 

 

 

 

 

"물에 만 밥 먹겠습니다" 



"소신도 밥에 물 한 잔이면 충분하나이다." 

 

 

 

 

"허허, 그대들 같은 어진 신하들의 보좌를 받으니 옛 요순이 부럽지 않구려" 

 

 

 

 

";;;;;;; 과찬이시옵니다 전하" 



가끔 승지나 친한 신하들과 점심을 같이하던 영조지만, 

 

원래 영조 자체가 하루 세 끼만 먹는 소식가이다. 

 

물론 조선 왕을 기준으로 소식인 거지만,  

 

실제로도 나물과 채소, 생선 위주의 식단을 선호하고 

 

점심은 물에 만 밥과 장(간장, 된장 등)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뭐라도 먹으니 다행이네요" 

 

가끔이다. 가끔.  

 

무튼 점심시간 포함해서 일과까지 일하면 퇴근이다. 

 

그래도 퇴근하면 내 세상인 것이 승지들이다. 

 

기본적으로 저녁을 화려하게 먹는 조선 관료들의 문화와 더불어 

 

국가 요직인 만큼 퇴근 후엔 편안 하다. 

 

위세도 부릴 수 있고, 동료들과 근처 식당에서 회식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내일도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거. 

 

그리고 또 하나. 

 

 

 

 

"? 너 뭐해 임마" 

 

 

 

 

"네? 7시라 퇴근하는데요?" 

 

 

 

 

"당직 등신아 당직! 너가 야대(밤에 하는 경연) 담당 아냐 임마!" 

 

 

 

 

"아 맞다! 근데 그럼 저 언제 퇴근해요?' 

 

 

 

 

"빠르면 9시, 늦으면 11시" 

 

 

 

 

"?????? 그럼 집 가면 12시인데 다음날 새벽 4시 기상이라굽쇼?" 

 

 

  

 

"잠을 왜 집에서 자?" 

 

 

 

 

";;;;;;;" 

 

 

 

 

"...그럼 휴일이라도 기다려야겠네요. 조선은 공휴일이 며칠인가요?" 

 

해마다 다르다. 



이 때문에 평소엔 눈길도 안주다가 연초면 항상 붐비던 기관이 있다. 

 

 

 

 

 

바로 서운관 되시겠다. 

 

 

 

 

"서운관이면 천문 쪽 담당하는 기관이잖아요?" 

 

조선은 음력을 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과감히 스킵함) 

 

그러니 달력을 만들 때 절기나 윤달 계산과 같은 일들은 

 

천문을 주관하는 서운관이 도맡아서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 해가 시작되면 서운관에서 달력을 만들어 관청과 관리들에게 배포한다. 

 

 

 

 

"그래서 저 사람들은 달력 받겠다고 저러고 있나요? 휴일은 정해져 있을텐데" 


 

 

 

 

"또 중요한 게 하나 있지. 저거 봐바" 

 

 

 

 

"아니 경칩이 15일인게 말이 돼? 계산 제대로 한거야?" 

 

 

 

 

"자자, 아저씨 계산은 정확해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세요." 

 

 

 

 

"아니 입추는 8일에, 우수는 23일, 동지는 15일, 장난해 지금?" 

 

 

 

 

"아 그걸 왜 나한테 따지냐고, 하늘한테 따져야지! 누군 좋은 줄 알아?" 

 

 

 

 

"아 시발, 의정부 노인네들은 누구 하나 안죽나?" 

 

참고로 조선의 임시공휴일 중엔 '정조시일'이라는 것도 있다. 

 

임금이나 중전, 왕자나 고위 대신들이 죽었을 때 

 

그들의 공을 기리고자 정 2품은 2일, 1품은 3일, 중전은 5일간 

 

국가 전체가 임시 공휴일이다. 

 

물론 이것 때문에 누구보고 죽어달란 소리는 안 했다. 

 

 

 

 

"이새끼 선넘네. 받았으면 빨리 가세요!" 


 

 

 

"아, 저거 때문에 그러는군요" 

 

조선시대 관공서의 정기휴일은 매월 1, 8, 15, 23일이다. 

 

이 날은 또한 금형일이기도 하다. 자세한 건 옛날 글 참고 

 

 

또한 24절기 역시 정기휴일이다. 

 

만약에 둘이 겹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린 임시공휴일이 없죠. 쌩으로 휴일이 날라가네요?" 

 

 

 

"응." 

 

 

 

 

"아참, 그러고 보니 저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당상관이시네요?" 

 

 

 

 

"휴일이라고 국가가 올 스탑할 순 없잖아?" 

 

 

 

 

"누군간 남아서 최소한의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지. 근데 보통 공무원들이 그렇듯 윗사람들은 그냥 짬때리지" 

 

 

 

 

"짬 안차는 관리들이 당직을 선다는 거네요." 

 

 

  

 

"그래, 걔들은 짜피 순번 정해서 교대근무하니 휴일도 별 관심 없을 거야" 

 

 

 

 

"그런데 저희는 저기 안갑니까? 나름 당상관들인데" 

 

 

 

 

"......국왕 비서실이 비서 없이 돌아가?' 

 

 

 

 

"!!!!!!!!" 

 

 

 

 

"우린 설날, 추석, 정월대보름 연휴만 쉬어" 

 

 

 

 

"!!!!!!!!!!!!!!!"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시발" 

 

승정원은 뼈빠지게 일하지만 휴일도 없다. 

 

6명의 승지들이 각각 6조의 보고서를 담당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빠져서는 안 되는 구조이다. 

 


 

 

 

"결국 메리트는 국왕 비서라는 거 하나 정도네요" 

 

그래도 일부 널널한 왕들의 경우는 업무 강도나 생활이 조금 편해 

 

야심있는 이들은 이 메리트를 위해 기꺼이 고생했으나, 

 

워커홀릭이거나 성격이 빡빡한 임금 때에는 (ex. 숙종, 영조) 

 

메리트고 나발이고 나이 4, 50 먹고 그 고생을 하기는 싫었던 사대부들이 

 

같은 품계 대비 기피직종 1위로 승정원을 꼽았다고 한다. 


승정원에 갈 만한 인재는,  


 

사실 다른 요직도 할 만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쪽을 선호한다. 

 

전제군주제에서 관료들이 군주의 비서를 기피하는 기현상. 

 

숙종의 한탄은 아마 여기서 비롯된 것이리라. 

 

 

 

 

 

오늘은 여기까지다. 

 

다음은 또 다른 주제로 돌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