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포 소설계의 거장 스티븐 킹(Stephen King). 


영미권에서 킹의 입지는 가히 독보적인 수준으로, 철저한 장르문학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공포'라는 근원적 감정에 대한 독창적 해석 덕에 문학 평론가들에게까지 극찬을 받고 있다. 웹소설 판타지 작가가 신춘문예 심사위원들한테 작품성으로 찬양받는 거라 이해하면 쉽겠다.


이런 킹 작가가 1980년 집필한 작품이 바로 이번에 소개할 미스트(Mist). 


'안개'라는 뜻을 지닌 제목으로, 인간과 종교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공포 소설이다



플롯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어느날 정체불명의 안개가 미국 메인주 전역을 뒤덮고, 그 안개 속에서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코즈믹 호러와 마주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분투기가 스토리의 주축.



이 미스트를 원작 삼아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각색, 제작한 작품이 바로 영화 미스트이다. 


일단 큰줄기에서는 영화의 내용도 원작과 큰 차이가 없다. 


1. 어느날 메인주를 정체불명의 안개가 뒤덮고, 그 속에서 괴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2. 어린 아들 빌리를 데리고 대형 마트로 쇼핑을 나왔던 주인공 데이빗은 이로 인해 마트에 다른 사람들과 고립되고 만다.


3. 점점 난폭해진 괴물들이 마트를 습격하기 시작하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마트 내 사람들은 점점 미쳐가게 된다.


4. 그러다 마트 생존자 중 카모디 부인이라는 광신도가 예언자 행세를 하며 생존자들을 장악, 데이빗의 아들 빌리를 산제물로 바쳐야지만 상황이 해결된다고 선동을 한다


5. 이에 데이빗과 그에게 동조하는 소수의 이성적인 사람들은 마트에서 탈출, 안개를 뚫고 차를 구해 가까스로 일대를 벗어난다.


이 부분까지는 소소한 차이를 빼면 원작과 비슷한 얼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전개가 갈리는 부분은 바로 영화의 엔딩. 참고로 이 엔딩은 원작자인 킹조차도 가히 천재적인 발상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원작 소설의 끝맺음은 사실 굉장히 모호하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도중, 데이빗은 라디오로 생존자들이 집결하는 장소가 있다는 교신을 듣는다. 비록 불확실한 상황임에도, 데이빗은 희망을 잃지 않고 아들과 함께 생존자 캠프를 찾아 떠나면서 소설이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영화의 엔딩은 어떨까? (강 스포주의)







- 가도가도 안개는 끝이 없고, 결국 도로 한복판에서 차가 기름 부족으로 멈추고 만다. 결국 데이빗 일행은 괴물에게 죽느니 차라리 자살하자고 결정, 데이빗이 모두를 총으로 쏴죽인다





- 아들을 포함, 모두를 제 손으로 죽인 데이빗은 오열하고, 자신도 괴물에게 죽기 위해 차 밖으로 나온다. 일행은 총 다섯 명이지만 총알은 네 방 뿐이라 총으로 자살할 수 없었기 때문.





- 어서 자신을 죽이라고 절규하는 데이빗. 이에 화답하듯, 멀리서부터 기괴한 소음이 들려오며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온다.


-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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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랍게도 생존자들을 구조하고 있던 미군 전차였다.

이미 군부대에서 사태를 차근차근 수습하며 괴물들을 무찌르고 있던 것 





- 데이빗이 망연자실해 하던 중, 생존자들을 태우고 가던 트럭의 한 여인과 눈이 마주친다. 

배우 수잔 맥브라이드가 분한 단역 캐릭터로, 미드 워킹데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캐롤을 연기한 배우임을 익히 알아볼 것이다.


- 사실 이 여자는 영화 초반, 안개가 드리우고 괴물이 튀어나올 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마트를 뛰쳐나간 어머니다. 

초반에 그렇게 퇴장하고 한동안 재등장하지 않기에, 관객은 모두 그녀가 죽었을 거라 예상했다. 


- 그러나 그녀는 기어이 살아남아 군대에게 구조를 받았고, 자신의 아이들까지 모조리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희망을 버린 데이빗은 정반대의 결과를 맞고 말았다.





- 절망한 데이빗은 그대로 주저앉아 미치광이처럼 울부짖고, 놀란 병사들이 그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스티븐 킹 소설의 전개는 무자비하고 절망적이기로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 본인이 언제나 강조하는 한 가지 테마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희망(Hope). 


불가사의한 공포 앞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과도 같은 희망이 킹 소설의 본질이다. 소설 미스트의 대미를 그렇게 애매하게 장식한 것도 이러한 주제의식 때문이다. 과연 데이빗 일행이 희망을 버릴지 말지는 독자의 상상과 가치관에 달려있다. 


하지만 다라본트 감독은 아예 그 엔딩을 뒤틀어 '희망'이라는 주제의식을 더 아이러니하게 강조한다.


영화의 데이빗은 희망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정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몇 분만 기다렸다면 데이빗 일행은 미군과 조우했을 테고,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에 빠져 도피를 선택했고, 그 결과 데이빗은 완벽하게 파멸하고 만다. 


이는 초반에 마트를 나간 윗짤의 어머니와 대비되며 관객에게 더 절절한 감정을 안겨준다. 데이빗 또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같은 결말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자기 소설의 엔딩을 바꾼다는 점에 불만족스러워 하던 킹도, 이 엔딩을 보게 되자 감독을 극찬하며 "더 나은 엔딩이 있을 수 없다"는 말로 만족감을 표했다.



설명으로만 듣지 말고 영상으로 직접 보기를 권하며 함께 첨부한다





이렇듯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며, 절대로 포기해서도 안 된다.


구원의 동앗줄이 언제 어디서 내려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윾붕이들도 힘들고 좌절스러운 일이 벌어질 때마다 영화 미스트의 엔딩을 되새기며 다시 힘을 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