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집안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밥 나물 탕 등 요리를 하는건 여자가 하고(전은 애초에 올리는게 아님) 위 음식과 과일 떡 같은걸 다듬고 그릇에 올려 옮기는건 남성이 하는거임
추가적으로 제사는 아들딸 상관없이 돌아가면서 지냈고 이후에 장손이 맞으면서 술은 장손과 맞며느리가 올리게 됐음
애초에 안올리는건 애초에 중국에는 전이라는 음식자체가 존재하질 않았기때문에 안올리는거지 올리지 말라는 법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음 정 능력 없으면 물한잔 떠서 올려도 상관 없고 밥,국,나물은 올리되 그 외에는 고인이 생전에 먹던거 올리라는게 전부였음 한국 제삿상이 육류는 올라가도 불교의 향신채를 금하는 재료로 이루어진건 그냥 불교영향이 불교 조진 조선시대에도 아예 없진 않았기에 지금까지 그냥 내려왔다 뿐임 그냥 전통적으로 그리 해온것뿐이지 그리고 유가적인 전통을 따지자면 장남이 제일 중요함 현대에는 의미가 다르지만 장남이 기본적으로 제주가 되는 이유가 고인이 된 부모를 제외하면 맏이 이기때문에 집안의 가장포지션이었기때문에 다른 문제가 있지 않는한 원칙적으로는 부모제사때 형제자매들을 불러들일 의무가 있었음
애초에 제사를 만든 사람부터가 그럴 의도로 장남에게 그러한 권한을 준거임 그래서 실제로 장례를 할때도 미성년자가 아닌이상은 상주로써 조문객들을 상대하고 맞절하고 하는거지 근데 이건 가문을 다룰 힘이라는 권한과 권력을 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책임도 있었고 제일 중요한 유산자체는 동등하게 분배되었기에 조선시대에도 왜란이전까지는 문제가 되질 않았음 어떻게든 조상제사를 지내기위해 유산분배가 장남에게 몰빵되기 시작하는 조선후기가 되면서 문제가 됨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때는 불교식 제사로 간단하게 지냈고 남녀 번갈아가면서 지냈음
유교국가 조선시대가 되면서 유교식 제사로 과도기 거치면서 서서히 바뀜
정해진게 없다는 차례상 특성으로 보면 그대로 검소하게 지낸가문도 있을거고 화려하게 지내기 시작한 가문도있을거고
몇몇 특별히 검소했던 양반집안 차례상사진 올리면서(대부분 명재선생 종가집차례상) 양반들 다 검소하게 차례 지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관리들이 전부다 검소하게 살았을리는 없잖아
그건아닐걸요 불교식제사라고 해봤자 육류나 향신채가 없었던 제사에 불과하고 절차순서 자체는 유교식 제사와 동일함 왜냐하면 애초에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건 3세기 전후고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건 기원전후시점임 그렇기에 제사할때 순서같은건 불교식이나 유교식이나 같은거고 차례는 유교식제사가 문제라기보단 중국인들의 과도한 상차림 예절(존나 많이 차리고 손님은 그걸 남기는 예절)때문에 문제가 되서 주자가례를 만든거고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그중 차례라는 명절제사방식이 말기의 고려와 조선이 받아들인거임 한마디로 주희의 손자인 주잠이 고려로 망명하기전까지는 차례라는게 없었음
그리고 차례상이 정해진게 없는게 아니라 제사상부터가 정해진게 없는거죠 밥,국,나물만 필수로 올리라고 하고 금한건 오직 사람고기임(오리지날 상나라식 제사대로 하자면 인신공양이 필요하기에 이사람들 후손인 공자가 야만적이라면서 조상들 제사 까면서 인신공양금지 괴력난신금지한거임) 덤으로 고인이 먹던거 지금 사는곳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라고 했는데 제한을 두질 않았으니까 다 먹지도 않을건데 과도하게 상차림하는 중국인 성향상 존나게 낭비를 했고 사상적인건 둘째치고 이게 존나 낭비라고 봤기에 주자가례가 만들어지고 그중 명절제사인 차례도 만들어졌는데 중국에서는 이론적이라 전혀 쓸모없다는 이유로 까이고 정작 통한건 동쪽의 반도였음
아무리 병신같은 문화여도 웃어른이 이악물고 반대하면 어쩔 수 없긴 함.. 80넘은 할머니께 암만 차례 의미없고 허례허식인걸 알려드려도 제사 안지내면 조상들이 화낼까봐 무섭다고 지내야한다고 계속 그래서.. 해마다 조금씩 간소화는 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십자가를 신으로 믿는게 아니니 우상숭배로 안침. 제사도 마찬가지. 그냥 우리 조상님들 기억하면서 가족들끼리 하하호호하는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님. 근데 이때 조상님들 저 수능 붙여주세요/직장 들여보내주세요/여친 만들어주세요 하면서 제사를 지내면 이때부터 우상숭배가 되는 거임
대신 저런 집안들은 제사가 1년에 계속 돌아옴. 기본적으로 나름 이름 있는 집안은 4대봉사라고 해서 제주의 윗대로 4대, 즉 현조 할아버지까지 기제사를 지내게 됨. 이걸로 끝이냐, 사시제라고 해서 계절마다 지내고, 4대조 말고 나름 이름 있는 조상은 '불천위'라고 해서 4대 지나도 계속 제사를 지내주는데 이계 계속 늘어나기만 하지 줄어들지 않는 시스템임. 그 외에도 다종다양하게 있음. 주자가례 기준으로 차례는 원래 절기 제사라서 크게 안쳐주는 제사이기도 하지만, 그런거 없어도 1년에 수십번을 지내는 제사라서, 지금 생각하는 제사 규모로 지내고 싶어도 못지낸다. 이런거 신경 안 쓰고 돈 걱정 없었던 조선 왕실은 거의 1년 내내 제사만 지냈다고 봐도 됨. 1년에 340일 넘게 제사일정으로 잡혀 있었다는 글도 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