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가 문과라서 방사선에 대한 전문 지식을 모르니 오류가 있을수 있음. 맹신하지는 말자


1999년 9월 30일, 도카이촌에 위치한 JOC사의 핵연료 가공시설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인은 역시나 인재. 상부에서 위법적인 작업을 과정까지 간소화 시켜서 일어난 사고였다. 당시 피해자들은 10년 이상 일한 프로들이었지만 그 위험성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였다.


우리는 일단 가장 피폭을 심히게 받은 오우치에게 집중해보자


사건 직후 오우치는 아무런 이상도 없이 건강해 보였다


사건 직후에도 다른 동료들의 쾌유를 빌고 간호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등 대단히 침착한 사람이였다. 간호사들 또한 그가 한달정도 입원하면 퇴원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몸속은 그러지 못했다


위 사진은 그의 염색체의 모습으로, 방사선 피폭의 영향으로 산산조각난 상태였다


염색체가 파괴됐다는것은 더이상 그의 몸이 죽은 세포를 대체할 새로운 세포를 만들지 못한다는걸 의미했다. 


그 결과 그는 이틀만에 소변량이 줄고, 산소호흡이 어려워졌으며, 배가 부풀어 올랐다. 일본 최고의 의사들이 모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먼저 멸종된 세포는 백혈구였다. 백혈구가 없으니 약한 병원균이 침투해도 막을수가 없게 되었다. 그 다음은 혈소판이었다. 혈소판이 사라지면서 작은 상처도 출혈을 멈출수 없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피부를 구성하는 세포들도 분열을 멈추면서 오우치의 몸은 문자 그대로 '붕괴' 되기 시작했다. 


의료용 테이프를 때자 피부가 벗겨져 나갔으며, 수건으로 몸을 닦는 정도로도 피부가 벗겨졌다. 나중에는 손톱도 전부 빠지고 폐에는 물이 차기 시작했다


의료진들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를 대량으로 투입했으나 문자 그대로 살가죽이 힘없이 뜯기는 상태니......


이 모든 일은 일주일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우치의 몸은 움직이는것 조차 힘들어서 오전 내내 한 자세로 고개조차 가누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사고에도 침착한 그였으나,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환각을 보기도 하였다


피폭후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는 피부가 전반적으로 붕괴되어 전신에 붕대를 감아야 했고, 눈은 말라 비틀어져서 연고를 주기적으로 투입해야 했었다. 피폭이 심한 부위부터 근육을 포함한 신체가 부패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전문의들이 왔지만, 체르노빌 사태를 겪은 러시아 의료진 조차도 유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진들은 그의 여동생의 세포를 이식해 새로운 세포들을 공급하려고 했다. 초반에는 성공적으로 보였으며, 일시적으로 백혈구 수치가 복구됐다


그러나 그렇게 재생한 세포들은 8일만에 붕괴되었다. 그의 몸속 나트륨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방사선 물질인 나트륨-24로 변했다. 즉, 그의 몸이 이미 방사선을 스스로 배출하게 되었다.


의료진들은 임상실험중인 약물까지 투여하고, 급격하게 유출되는 수분과 혈액을 보충했으며, 호흡기기 제기능을 하지 못하자 폐에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면서 각지의 대학에서 받은 70매의 피부와 동생의 피부를 이식하려고 시도했으나, 출혈로 실패 혹은 섬유화되고 말았다.


일련의 과정들은 필연적으로 몸의 내구도를 소모시켰고, 혼수상태였던 그는 결국 83일만에 그는 심정지로 사망하였다


그가 83일 동안 버틸수 있던것은 심장만큼은 멀쩡히 기능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끔찍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JOC는 비슷한 사건들과 위법행위를 추가적으로 저질렀으며, 12년 이후 또다른 거대한 인재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남일만은 아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