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잘린 적의 목을 투석기에 담아 던지는 전술은 있었다. 보통은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1차 십자군이 셀주크 수중에 있던 도시 니카이아(니케아)를 공격했을 때도 잘린 적병의 머리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법을 진짜로 완벽하게 써먹은 건 바로 몽골군이었는데 크림 반도에 있었던 제노바 공국령의 도시 '카파(페오도시아)'를 공격할 때 몽골군은 과거 십자군들이 사용했던 것처럼 이 전법을 사용했다. 당시 흑해 북쪽에는 돈에 환장한 이탈리아 상인들이 일부 도시에서 무역을 트고 있었고 종종 킵차크 칸국(금장한국)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킵차크 칸국 11대 칸이었던 자니 벡(Jani Beg).






자니 벡 칸은 1343년에 타나에 머무르고 있던 이탈리아 상인들이 이슬람 상인들과 상권을 다투다가 주먹다짐이 벌어지자 군대를 보내 포위했다. 그러자 이탈리아 상인들은 배를 타고 전부 제노바 공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던 도시 카파로 달아났고, 자니 벡은 곧바로 카파를 포위했다.


그런데 킵차크 군대 진영에서 설치류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전염병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사망자가 늘어났다. 포위가 워낙 완벽하게 되어 있었기에 사기를 떨어뜨릴 수 없었던 킵차크 군은 그 시신을 적당히 토막낸 뒤 투석기에 넣고는 카파 성내로 날려보냈다. 하지만 곧바로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온 구원병이 도착했고 이들은 킵차크 군을 공격해 15,000여명을 죽이고 투석기를 전부 파괴해 버렸다.


하지만 역병은 계속해서 창궐했고, 자니 벡 칸은 1345년에 다시금 카파를 공격했지만 전염병이 너무 심하게 번져서 오히려 아군들이 죽어나가는 판이라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 이탈리아 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킵차크 휘하의 항구들을 봉쇄해버렸고 1347년에 협상을 맺어 타나에 다시금 이탈리아 상인들이 머무르게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이탈리아 출신의 공증인이었던 가브리엘 데 무시의 기록에 의거한다.)





1346년, 그러니까 카파 포위전이 풀리고 이탈리아 인들과 자니 벡 칸이 서로 협상하고 있을 무렵, 동방에서는 괴상한 병이 나돌기 시자했다. 가브리엘의 기록에 의하면 체액 응고로 인해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부분이 부어오르면서 온 몸에 열이 났고 이내 그 부분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하며 픽픽 쓰러져 죽어갔다고 한다. 


당시 킵차크 군대가 카파 성내로 던져댄 시체는 상당히 많아서 거의 산을 이룰 정도였고, 시민들과 병사들은 그 시체들을 전부 바다에 던져서 버렸지만 일부 시체는 멀리 날아가 도시의 상수원으로 떨어져 물을 오염시켰고 미쳐 치우지 못한 살점들이 썩어가면서 공기도 오염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운답시고 시체에 손을 댄 인원들 역시 감염되서 쓰러져 갔다.


문제는 전쟁은 끝았지만 상업은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초원의 물자들은 배를 타고 같은 칸국이 장악한 동방은 물론이고 이슬람 항구도시들까지도 갔기 때문에 1346년부터 1348년 사이에 이 전염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부지기수로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파에서 배를 타고 탈출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 질병에 감염된 선원이 몇몇 있었으며 더러운 쥐들이 선박 안에 기어들어오기도 했다. 감염된 선원 중 일부는 배를 타고는 상권이 모이던 제노바로 향했고 무역선이었던 터라 다른 배는 베네치아 및 다른 기독교 지역으로 향했다. 이 때부터 질병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흑사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