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로 등재되어 있는데, 실제 일제 강점기 때 도지사 등의 고위직을 지낸 것은 맞으나, 조선인 참정권 및 자치론을 주장하였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내용이며, 그의 활동으로 짐작해보면 연방국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처럼 민족은 다르지만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나라를 구성하는 체계를 생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주장하였고 다른 친일파들이 흔히 보인 탐욕성과 달리 일상 생활에서 성실하였으며 악습 근절에도 앞장섰다. 신간회, 물산 장려 운동 등에 참여하였다. 창씨 개명, 병력 동원, 공출, 일제를 위한 군수물자 지원 활동 등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전쟁 관련해서 참여한 것은 조선인 참전 병사 위문품 후원회 및 원조처럼 순전히 조선인과 관련된 활동에만 참여하였다.

다만 조선인들이 악질적인 구습을 타파하지 못하였고 나라를 충분히 발전시키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일제에 합병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며, 독립 운동에 대해선 현실성이 낮다고 판단하였다. 실제로 3.1 운동 당시 평안도의 최고 직위에 있었으나 독립 운동에 반대(3.1운동을 신경쓰지 말고 생업에 집중하라는 지시)한다는 경고문을 붙이기도 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스스로 쟁취한 해방이 아니니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고, 자신은 나라를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화려한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장례식에는 미군정 관계자들은 물론 이승만의 특별 조문단 이기붕, 윤치영 등과 김구의 특별 조문단 이외에도 강원도지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친일반빈족행위자에 등재되어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장례식 당시에 독립운동의 큰 축이였던 김구와 이승만이 조문단을 보낸걸 보면 최소한 당시 명망이 바닥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강원도에서 학교 다녔던 가난한 고학생들의 등록금을 자비를 털어서 내줬던 사람이다.

이승만은 이규완 사후인 1953년 그의 차남 이선길에게 신신 백화점 부지 및 주변 토지를 무상으로 불하해주겠다 제안하였으나 이선길은 도가 지나친 호의라며 이를 거절했다. 




출처는 보다시피 꺼무위키 참고했음


솔직히 올바른 친일이라 생각함